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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0 01:20:08

시제

발화시에서 넘어옴
1.
1.1. 종류1.2. 시제의 유형1.3. 한국어
1.3.1. 2시제설1.3.2. 3시제설1.3.3. 3시제설에 맞지 않는 수많은 예외들
1.3.3.1. 형용사화1.3.3.2. 과정을 설명하는 경우1.3.3.3. 불완전 동사로 쓰이는 번역체1.3.3.4. 부정적인 기정사실을 나타낼 때에는 과거형으로 쓰기도 한다1.3.3.5. 소망을 표현하는 문장에는 과거 일이건 비과거 일이건 과거형으로 쓰이기도 한다1.3.3.6. 현장감이 중요한 경우는 현재 시제를 주로 쓴다1.3.3.7. '~(으)ㄹ 때'를 쓸 때1.3.3.8. 미래 시제 문제
1.3.3.8.1. 미래형 구문 문제1.3.3.8.2. 글 작성 시 문제
1.3.3.9. 상대적 과거와 상대적 미래를 비교할 때1.3.3.10. 명사형 어미의 시제1.3.3.11. 한국어에선 시간축이 두 개
1.3.3.11.1. 옛 사건을 현재/미래 시제로 설명함1.3.3.11.2. 대과거형 문제1.3.3.11.3. 미래/현재 사건을 과거 시제로 설명함
1.3.4. 무시제설
1.3.4.1. 미래에 대한 문장을 부정할 때 과거 시제를 사용함
1.3.5. 동작상
1.4. 일본어1.5. 중국어1.6. 영어1.7. 프랑스어1.8. 독일어1.9. 튀르키예어
1.9.1. 현재1.9.2. 과거1.9.3. 미래1.9.4. 2시제설 기준
1.10. 러시아어
1.10.1. 불완료상 동사의 시제1.10.2. 완료상 동사의 시제1.10.3. 형동사와 시제1.10.4. 부동사와 시제1.10.5. 기타의 경우
1.11. 라틴어
2. 3. 4.

1.

문법 개념
명사 인칭
동사 시제 ( 어휘상) 서법
통사 어순 품사 굴절
의미 의외성 유표성

/ Tense

시제는 문장을 통해서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발생했는지를 표시해 주는 문법 범주이다. 보통 동사를 통해 나타낸다.

전통적 문법 범주들이 으레 그렇듯이 시제도 형태론적 표시(morphological marking)를 근거로 분류할지 의미 기능(semantic function)을 근거로 분류할지의 기준이 학자별로 천차만별이다. 형태론적 표시를 근거로 하여 시제를 분류하면 영어에는 현재와 과거의 두 개의 시제만 있다고 할 수 있고('동사의 미래형 굴절'이라는 것은 없으므로), 의미 기능을 근거로 하여 시제를 분류하면 영어에는 과거, 현재, 미래의 세 가지 시제가 있다고 할 수도 있다(조동사 'will'이 담당하는 의미 기능에 미래라는 의미가 포함된다고 말할 수 있으므로).

판단 기준이 객관적이고 깔끔해 보인다는 이유로 형태론적 표시를 근거로 한 시제 체계를 의미 기능파보다 선호하는 언어학자와 언어교육자들이 더러 있다. 그러나 사실 굴절어에서 벗어나 교착어 고립어로 가면 형태론적 표시를 근거로 한 시제 이론도 그렇게 질서정연하거나 경제적인 것은 되지 못한다. 가령 교착어는 하나의 어간에 여러 개의 의존형태소가 붙을 수 있어서 애초에 굴절어처럼 (방대하긴 해도) 깔끔한 어형변화표를 만드는 것 자체가 어렵고 소모적인 작업이 된다.

시제는 과 혼동되는 경우가 있다. 영어에는 현재, 현재완료 등의 시제가 있다고 말하는 경우가 대표적. 시제는 동작의 시점에 중점을 두는 것이고, 상은 동작이 어떤 상태인지(끝나 있는지 진행하는지 등)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시제와 상은 별개의 문법 범주이지만 전달하는 정보의 성격이 얼마간 비슷하기 때문에 상이 발달된 언어에서는 시제 범주가 위축되는 경향이 있고, 시제가 발달된 언어에서는 상 범주가 위축되는 경향이 있다.

1.1. 종류

1.2. 시제의 유형

1.3. 한국어

언어학계에서는 한국어의 시제를 두고 몇 가지 견해가 대립하고 있다. 학교문법에서는 이 가운데에 과거, 현재, 미래가 구별된다는 3시제설을 채택하고 있고, 상의 경우 진행상(-고 있다), 완료상(-(어/아) 버리다), 반복상(-고는 하다)이 있다고 가르친다.

이와 같이 명확하게 선을 그어 설명하기가 어려운 개념인 만큼, 여기서는 흔히 거론하는 점을 간단하게나마 설명했다. 우선 세부 시제를 논하기 전에 살펴야 할 것이 발화시사건시의 개념이다. 발화시는 화자가 말을 하는 시점이다. "나 방금 밥 먹었어."라고 하면 이 문장은 현재 순간에 화자가 말하고 있는 것이므로 발화시는 현재가 된다. 사건시는 문장의 사건이 일어난 시점이다. 앞서 예로 든 문장의 사건은 '밥을 먹는 것'이며, 이 일이 일어난 때는 지난 때이므로 사건시는 과거가 된다. 발화시를 기준 시점으로 나타나는 시제를 절대 시제라고 하며, 사건시를 기준 시점으로 나타나는 시제를 상대 시제라고 한다. 흔히 '~했다', '~한다', '~할 것이다'와 같이 표현하는 것은 절대 시제를 나타내며, '~한', '~하는', '~할'과 같이 표현하는 것은 상대 시제를 나타낸다.

1.3.1. 2시제설

아래 내용은 2시제설에 따른 기준이다.
대개 평소에 일어나는 일을 서술할 때는 다음과 같이 쓴다.
민희는 매일 버스에 타서 등교한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방법
D씨는 지금도 사람들을 돕는다.

비과거이니 '-(으)ㄹ 것이다'를 현재 상황에 쓸 수도 있다.
소설 같은 창작물은 보통 시간대도 가상의 시간대이니 창작물 시점을 기준으로 할 수도 있다.

한편, 미래 상황에 '-(느)ㄴ다'를 쓰는 것을 일본어 번역체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1.3.2. 3시제설

아래 내용은 3시제설에 따른 기준이다.

1.3.3. 3시제설에 맞지 않는 수많은 예외들

단순히 시제 어미의 의미가 다르게 쓰인다고 해서 문법이 파괴되지는 않으니 문법에는 문제가 없다.
1.3.3.1. 형용사화
해당 사이트는 웃게 한다는 뜻으로 지은 커뮤니티의 이름인데, '웃다'의 사동사인 '웃기다'를 형용사로 쓴 경우로, 결과적으로는 과거 시제를 쓴 셈이다. 하지만 이 경우, '웃기다' 자체가 형용사로 갈라진 문법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사례이므로 시제의 문제는 아니다.
1.3.3.2. 과정을 설명하는 경우
인터넷을 통한 거래 절차
쇠를 이용한 인쇄 방법

이 같은 사례 역시 현재와 관련이 있음에도 과거형을 사용하는 사례로 볼 수 있는데, 이 중에서 첫 번째 것은 그렇게 볼 여지가 있으나, 나머지 둘은 사실 모순점이 없다. '쇠를 이용한', '인간을 사용한'은 결국 쇠나 인간을 사용하는 과정을 통한 다음에 나오는 결과물을 두고 하는 때가 많기 때문에 이 점에서 보면 과거 시제를 쓰는 것이 적절하다.[2]
1.3.3.3. 불완전 동사로 쓰이는 번역체
국민을 위한
미래에 관한/대한 예상
이 세 가지는 형용사로 오해되지 않지만 상 구별 없이 거의 과거형만 쓰이는 사례이다. 특히 '관한'과 '대한', '위한'은 불완전하게 쓰이는 번역체이기도 하다. '웃긴'을 '웃기는'의 준말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먹는'과 '먹은'의 차이를 생각하면 차이를 알 수 있다.
1.3.3.4. 부정적인 기정사실을 나타낼 때에는 과거형으로 쓰기도 한다
내일 난 선생님한테 죽었다.

거의 확실시된 부정적인 기정사실을 나타내는 때에 과정을 설명하는 경우, 소망 표현처럼 과거형으로 쓰기도 하는데, 아무 동사에나 다 쓰지는 않고 '죽다', '망하다'처럼 극단적인 경우에만 쓴다.
1.3.3.5. 소망을 표현하는 문장에는 과거 일이건 비과거 일이건 과거형으로 쓰이기도 한다
가정이나 조건을 나타내는 '-()'은 과정을 설명하는 경우, 부정적인 기정사실을 나타낼 때처럼 뜻이 거의 같을 때도 '-었으면'을 써도 문제가 없는 때가 많기 때문에 다루기 조금 까다롭다. 자세한 것은 ' 면(어미)' 문서 에서 볼 것.
1.3.3.6. 현장감이 중요한 경우는 현재 시제를 주로 쓴다
취재물은 기본적으로 이미 벌어진 일을 현재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과거 시제를 써야 한다. 하지만 현장감이 중시되는 경우에는 현재 시제를 쓰는 일이 많다.
(위로 올라간 때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두고) 지난 XX일, A씨는 어디로 올라갑니다.
꽁꽁 얼어붙은 한강 위로 고양이가 걸어다닙니다.

더 나아가 역사같이 명백한 과거 사실만을 기술할 때에도 아래와 같이 현재 시제를 쓰는 일이 많다. 실제로 역사적 고증/사실을 기술할 때에 자신도 모르게 현재 시제를 쓰는 일이 많을 정도로 일반적이면서 보편적인 용법으로, 라틴어 등에 있는 역사적 현재 어법을 떠올리게 한다. '~게 된다.', '~고 만다.' 식으로 자주 쓰인다. 다만, 이는 동사에 한정된 듯하다. 형용사에 이 용법을 쓰면 현재 진행형으로 느껴 어색하게 느끼는 모양. 이런 표현은 영어나 일본어로 직역하면 한국어 번역체 영어/일본어가 될 수도 있다. 이는 시제가 없는 언어의 화자가 영어를 쓸 때 시제 불일치를 저지르곤 하는 식이다(< 비문(문법)> 문서 참고).
이들은 이후에 만주 망명 항일 독립 투쟁을 벌인다.
훗날 어디에서 대통령이 되는 A씨이다.
훗날 A 역을 맡게 된다.

이런 용법이 퍼져서인지 평소 일을 '~고 있다'가 포함된 현재 진행형으로 나타내곤 한다. 언론 기사에서는 물론, 나무위키에서도 이 표현이 줄줄이 남발된 글을 보기 쉽다. '~(ㄴ)ㄴ다'와 '~고 있다'가 같은 뜻이면 문장에서 '있다'를 남발할 필요가 없다는 말도 있지만, 실상은 과거와 현재 진행으로 구별되곤 하는 셈이다.
D씨는 지금도 사람들을 돕고 있다.

또한 옛 일을 서술할 때, 관형사형 다음에 '탓'과 비슷한 뜻으로 쓰이는 '바람'이 오는 경우에는 현재형을 쓰는 경우가 많다.
아무것도 없이 오는 바람에 아무것도 못 했다.
아무것도 없이 온 바람에 아무것도 못 했다.
아무것도 없이 오는 탓에 아무것도 못 했다.(?)
아무것도 없이 온 탓에 아무것도 못 했다.

위 ' 과정을 설명하는 경우' 문단 내용에 따르면 반대로 "이들은 이후에 만주 망명 항일 독립 투쟁을 벌일 것이다.", "훗날 어디에서 대통령이 A씨이다.", "훗날 A 역을 맡게 될 것이다.", "직후, B씨는 어디로 올라갈 것입니다."처럼 쓸 수도 있지만 현재 기준으로 미래라는 느낌이 세서인지 정작 이렇게는 안 쓰며, "직후, B씨는 어디로 올라가기 시작합니다."처럼 대신 쓰기도 한다. 굳이 찾으면 아래에 적힌 '후술할' 정도뿐이다.
1.3.3.7. '~(으)ㄹ 때'를 쓸 때
F에 갈 때 G를 한다.
F에 갔을 때 G를 한다.
F에 갈 때 G를 했다.
F에 갔을 때 G를 했다.

이 가운데에서 두 번째와 세 번째로 자주 나타난다.
1.3.3.8. 미래 시제 문제
1.3.3.8.1. 미래형 구문 문제
앞으로 일어날 일을 기술할 때 쓴다.
민수는 내일 시험 보면 망할 거야.
저 차는 아마 몇 분 뒤면 멈출 거야.

위 문장들은 사건의 실현 가능성이 확정적이라고는 할 수 없고, 단지 그럴 수 있다고 추정만 하는 문장이다. 특히 후자는 부사 '아마'의 의미 때문에 더욱 불확실한 추측이 강화된다. 이 경우, "저 차는 아마 몇 분 정도 뒤면 멈췄어."나 "저 차는 아마 몇 분 정도 뒤면 멈춰."와 같이 표현하면 대단히 어색한 표현이 된다.

'--' 및 '-(으)ㄹ게'를 쓴 동사의 경우, 화자의 의지를 반영한다. "내가 먹겠다/먹을게."라고 하면 화자 자신의 의지를 내비치지만 "네가 먹겠다/먹을게."나 "민수가 먹겠다/먹을게."와 같이 인칭이 2인칭이거나 3인칭이면 매우 부자연스러워진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손님 여러분, 안쪽으로 들어가실게요."와 같은 표현은 잘못된 표현이다. '들어가시다'라고 '-시-'를 쓰면 문장의 주어를 높여 주는 게 되는데, 여기에 '-(으)ㄹ게'를 넣었으니 동사를 통해 나타낸 공손의 대상인 손님(3인칭)과 의지의 주체인 화자(1인칭) 사이의 부조화가 일어난다. 사물 높임법과 더불어 주로 각종 매장에서 들을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어법이다.

위 내용처럼 현재 시제, 심지어는 과거 시제가 미래 시제의 의미로 쓰이는 예가 있으니 미래를 나타내는 것이 반드시 미래 시제인 것만은 아니다. 미래의 의미로 쓰인 과거 시제와 현재 시제는 하나 같이 별다른 사정이 없는 한 예정대로 사건이 일어남을 뜻한다. 반면에 이른바 미래형으로 일컬어지는 '-겠-', '-(으)ㄹ 것이-', '-(으)리-' 등은 추측의 의미를 겸한다. 즉, 과거형이나 현재형을 사용한 미래의 의미보다는 확정성이 낮다. 앞서 과거 시제와 현재 시제를 통해 살펴본 미래의 의미로 쓰인 예들을 보면, 확정성으로만 보면 과거, 현재, 미래 순으로 약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어에서는 과거가 미래로 갑니다!!

'-겠-'과 '-(으)리라'와 같은 단독 어미 일부를 제외하면 한국어 또한 영어의 미래형처럼 특정 구조의 현재 시제로 미래의 뜻을 나타내는 언어이다. 흔히 미래형 구문으로 알려진 '-(으)ㄹ 것이-는 상대 시제 '-(으)ㄹ'과 의존명사 '', 의존 형용사의 어간인 ' 이-'로 구성된 말이며, 이 어간 뒤에 '-다'나 '-고' 등 어미가 붙으면 현재형이 된다. 영어 'will'을 기계로 번역하면 대개 '~(으)ㄹ 것이다'로 옮기는 편이다. '(체언)'s will' 꼴로 쓰이기도 하는데, 이는 한국어로 치면 '(체언)의 것'의 '것'을 '의도', '의지' 따위 뜻으로 쓰는 셈이다. '-(으)ㄹ 것이-'와 '-겠-'을 순수한 미래 시제로 보면 이들과 과거형이 결합한 '-(아/어)ㅆ겠-', '-(아/어)ㅆ을 것이-', '-(으)ㄹ 것이었-'은 미래에서 현재를 통하지 않고 과거로 바로 뛰어넘는 게 되어 시제를 설명하기가 어려워진다.[3]

' will' 문서도 참고할 것.
1.3.3.8.2. 글 작성 시 문제
현재(문서 수정 완료) 시점에서 이미 서술됐거나 (시간을 기준으로 할 때) 오히려 먼저 서술됐는데도 그 자세한 서술이 단지 아래에 있다고 ' 후술할', '후술하겠지만', '밑에 서술하는' 등 모순으로 쓰인 표현이 흔하다. 작성자가 서술 시점을 문서 수정 완료 전, 곧 독자가 읽기 전부터 실시간으로 여겨서인 듯하며, 시간을 기준으로 하는데 아래 내용이 먼저 쓰여서 '아래에 전술한'처럼 써도 오히려 이를 모순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공간을 기준으로 하면 '먼저 후술되었다'도 그르지 않지만.
1.3.3.9. 상대적 과거와 상대적 미래를 비교할 때
상대적 과거가 현재도 마찬가지이건 아니건 그것을 과거형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199X년에 나온 A에 쓰인 것은 B였지만, 20XX년에 나온 C에 쓰인 것은 D이다.
B가 현재 남아 있는가 이미 멸종했는가는 무관하다. 정작 '-었었-'을 쓰면서도 "198X년에 나온 E에 쓰인 것은 F였었다."처럼 쓰지는 않는다.

또한, 현재 기준 미래 일에 '-(으)ㄹ 것이다'를 쓰면서도 어느 과거 기준으로 상대적 미래이면 위 현장감이 중요한 경우처럼 '-(느)ㄴ다'를 쓰기도 한다.
E 성우는 F 작품의 G 목소리를 맡았다. 이후에 H 작품의 I 목소리를 맡게 된다.
1.3.3.10. 명사형 어미의 시제
명사형 어미 '-(으)ㅁ'이 과거 시제처럼 쓰이는 때가 있는데,[4] 사실 '-(으)ㅁ'은 모든 시제의 의미를 나타낼 수 있다. 그럼에도 마치 이 어미가 과거형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실제로 과거형의 의미로 쓰이는 구문들이 있기 때문인 듯하다. 다음이 그 예이다. 이처럼 '-(으)ㅁ'이 과거의 사건과 곧잘 어울리는 까닭에 과거형의 일종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이 과거적 용법은 '-(으)ㄴ 것'으로 나타낼 수도 있는데, 관형사형 어미 '-(으)ㄴ'이 과거를 나타내는 점으로 보면 '-(으)ㅁ'이 과거 시제의 뜻을 상당히 내포하고는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과거 시제처럼 쓰이지 않기도 하는 듯한데, 아래 '미래/현재 사건을 과거 시제로 설명함' 문단 참고.
1.3.3.11. 한국어에선 시간축이 두 개
한국어에는 시제를 나타내는 문법적 시간 축이 두 가지가 있다는 견해가 있다. 이 설에 따르면 모순어법이라고도 할 수 있을, 앞서 나온 복잡한 예외적인 용법들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다.
1.3.3.11.1. 옛 사건을 현재/미래 시제로 설명함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말할 때, 그 사건은 말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과거이므로 과거 시제로 표현할 수 있지만, 그 사건 당시를 기준으로는 현재이므로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현재 시제도 쓸 수 있다. 이는 절대 시제 및 상대 시제와도 관련이 있는데, 이를 다시 설명해 보면 아래와 같이 된다.
민수는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감상에 젖었다.
민수는 떨어질 낙엽을 보며 감상에 젖었다.
위 문장의 서술어는 두 개인데, 부속절(관형절)의 것은 현재/미래 시제, 주절의 것은 과거 시제이다. 이때 절대적 시간축이 주절에 적용되므로 '젖은' 시점을 기준으로 해서 과거에 일어났음을 뜻한다. 그런데 '떨어지는', '떨어질', '보며'는 '민수가 감상에 젖은' 시점을 기준으로 해서 상대 현재 시제, 다시 말해서 감상에 젖은 시점과 낙엽이 떨어지는/떨어질 시점이 일치하므로 현재형이 쓰인 것이다.
민수는 떨어진 낙엽을 보며 감상에 젖었다.
같은 원리를 적용하면 위 문장의 '떨어진'은 '감상에 젖은' 시점을 기준으로 해도 과거이므로 상대 시제 과거가 된다. 즉, '떨어진'은 과거보다 앞선 과거, 흔히 말하는 대과거와도 같은 시점이 된다. 바로 이 용법이 영어에 가면 과거완료의 대과거 용법이 되는 것이다.

형용사도 같은 원리로 해석할 수도 있다.
민지는 맑은 물을 보고 과거를 떠올렸다.
민지는 맑던 물을 보고 과거를 떠올렸다.

여러 사건을 서술할 때는 중간 서술어에도 해당 시제대로 쓴다.
민지는 맑은 물을 보았고, 민수는 떨어지는 낙엽을 보았으며, 둘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절대 시제가 현재 시제이면 다음과 같이 된다.
민수는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감상에 젖는다.
민수는 떨어진 낙엽을 보며 감상에 젖는다.

인용 표현으로 예를 들면 보다 뚜렷하게 나타낼 수 있다.
C씨는 "A 지역에 갑니다."라고 했다. (직접 인용)
C씨는 A 지역에 간다했다. (간접 인용)
이 발언은 C씨가 A 지역에 가기 전 과거에 한 것이다.
C씨는 "A 지역에 갔습니다."라고 한다. (직접 인용)
C씨는 A 지역에 갔다한다. (간접 인용)
반면에 이 발언은 C씨가 A 지역에 간 후 평소에 하는 것이다.

단, 이것을 기준으로 해도 '위하다', '의하다' 등 과정 설명에만 쓰이는 몇몇 용언은 '~는', '~(으)ㄹ' 꼴로 안 쓰여서 예외로 볼 수 있다. 그 일부는 번역체에서 나온 표현이기도 하다.
1.3.3.11.2. 대과거형 문제
1.3.3.11.3. 미래/현재 사건을 과거 시제로 설명함
일단 저녁 식사가 뭔지 확인하기 전에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오늘 저녁 식사가 뭐지?
여러분이 점심 때 저녁 메뉴를 확인했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여러분은 조만간 저녁 식사를 하러 갈 예정인데, 여러분은 이때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오늘 저녁 식사가 뭐였지?
저녁 식사는 미래에 하기로 예정된 현재의 일임에도 뜬금없이 과거 시제로 서술했다. 점심 시간은 절대적 시간축에서 과거이고 점심 시간에 일어난 사건(메뉴를 확인한 것)은 과거인데, 이는 저녁 식사가 뭔지 확인은 했지만 잊은 때로서, 저녁 식사를 확인한 시점, 즉 점심 시간을 기준으로 상대적 시간축이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과거부터 현재도 이어지는 일에도 '-었-'을 사용할 수 있다. 실제로 신문기사, 소설 등 기본적으로 과거형으로 쓰이는 글에서는 '-였다.'(= '-이었다.')가 '-이다.'와 동일한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나무위키의 일부 유행어 또한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전자는 황폐화된 어느 미지의 행성에서 활동을 했는데 알고 보니 그곳이 지구라는 설정이고, 후자는 어떤 이가 죽었다는 설정인데, 해당 미지의 행성을/그 죽은 이를 찾(알)고 직접 활동하는 동안에 주인공들이 그곳이 지구임을/그가 살아 있음을 몰랐다. 즉, 이 시점에서 지구임을/그가 살아 있음을 아는 경우에는 '사실은 지구이다.', '사실은 살아있다.'라는 서술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이 그 행성이 지구임을/그가 살아 있음을 뒤늦게 깨달은 순간에 비밀의 진실이 드러난 것인데, 이때에 미지의 행성을/그 죽은 이를 찾은(안) 때를 기준으로 상대적인 시간축을 적용해 해당 사실을 과거 시제로 나타낼 수 있다.

그런데 뒤늦게 깨달은 게 아닐 때도 쓰인다.
(노래 시작 전) 이번에 나오는 곡은 A(가수)의 B입니다. (노래 종료 후) A의 B였습니다.
XXX는 좋았다

상술됐듯이 '-(으)ㅁ'은 모든 시제의 의미를 나타낼 수 있다지만, 이런 뜻일 땐 '사실은 지구.', '사실은 살아있음.'처럼 쓰이기보단 '사실은 지구였음.', '사실은 살아있었음.'처럼 훨씬 많이 쓰인다. 또, 자주 나타나는 표현은 아니지만 '더는 지구가 아니라는 뜻'을 내포할 때, 곧 과거부터 이어졌지만 현재는 이어지지 않을 땐 '지구였었다.' 같은 표현을 대신 단절 과거의 의미로 쓰기도 한다. 이 또한 위 내용처럼 여러 학설이 있는 원인이다. '-었-'의 어원은 '-어 있-'이지만, 후자처럼 쓰일 땐 '사실은 살았었다.'처럼 줄지도 않는다.

1.3.4. 무시제설

현 시점에서 한국어의 시제를 논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고 각양각색의 해석이 나오고 있다. 상은 인식한 시점 기준으로, 시제는 현재 기준으로 하는 게 간단한 방법인데, 꼭 바로 위 문단에 적힌 문제가 아니어도 시제조차 말하는 시점이 기준으로 과거, 현재, 미래로 나뉘지 않고 의미와 특정 사건의 시점(상의 단절)에 따라 쓰임이 달라져 간단명료하지 않다. 특히 언론에서는 과거 일을 말하면서도 동영상이나 사진을 두고 이야기할 때에 현재 시제를 쓰고 동영상이나 사진이 없이 이야기하거나 그 속의 사건 다음 일을 이야기할 때에 과거 시제를 쓰는 등, 특히 역사나 사진, 동영상이 설명의 수단이면 과거 시제와 현재 시제가 동의어, 유의어로 혼용되거나 용법이 서로 바뀌기도 하며 오락가락한다. 이 때문에 무시제론도 대두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이와 같은 시제 논란이 영어 같은 서구 언어의 문법적 잣대로 한국어를 해석하려고 들었기 때문이라는 비판도 있다. 위에도 있듯이 한국어에는 상대적인 시점 설정이 있어 상대 시제가 있고, 이 때문에 영어와 같은 대과거와 영어에는 없는 대미래를 설정할 필요가 없지만, 영어는 그렇지 않아서 위의 예인 '독립 투쟁'처럼 특별히 현장감을 살리는 등의 일탈 효과가 아닌 한은 과거 일은 과거로만 서술하고, 대과거도 따로 설정해야 된다. 이와 같은 서구 언어의 문법적 틀을 가지고 어족과 문화가 완전히 다른 한국어를 해석하려고 들었으니 불협화음이 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는 것이다. 이 글처럼 '-었었-'이 번역체로 몰리기도 했다. 어찌보면 '-었-'이 번역체일 때도 있겠지만('was', 'were'의 직역 등).
1.3.4.1. 미래에 대한 문장을 부정할 때 과거 시제를 사용함
얼핏 말하는 시점 기준으로 모순으로 보이는 시제 문제의 예도 있다.
이틀 뒤가 외식이었는데.
대놓고 '이틀 뒤'라는 미래 사건을 암시했음에도 과거형을 썼다. 그러나 가볍게 볼 과거 시제는 아니다. 다음을 보자.
이틀 뒤가 외식인데.
이틀 뒤가 외식이었는데.
현재 시제와 비교하면 뜻 차이가 명확해진다. 이는 위의 상대적 시간축 해석 방법과는 다르다. 전자에는 외식 예정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만, 후자에는 일정이 취소 혹은 변경되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 현상은 한편으로 선어말어미 '-었-', '-겠-' 따위가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영역이 어간까지인지, 아니면 어간을 초월한 범위인지 논란을 야기하기도 한다. "이틀 뒤가 외식이었는데"에서 '-었-'이 서술격 조사 결합 구성의 어간부인 '외식이-'에만 영향을 미친다고 보면 '이틀 뒤'와 같은 미래 표현이 나타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반면에 '-었-'이 어간부를 넘어서 그 앞 전체인 '이틀 뒤가 외식이-'를 몽땅 과거로 바꾼다고 해석하면 왜 '이틀 뒤'가 나올 수 있는지 설명할 수 있다. 이를 정리하자면, 선어말어미 '-었-', '-겠-' 따위는 서술어의 시제 및 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앞까지 문장 전체의 시제 및 상을 바꾼다는 것이다. 즉, 이 문장에서의 '-었-'은 '외식이다'가 아닌 '이틀 뒤가 외식이다' 전체를 과거로, 다시 말해서 '더 이상 이틀 뒤가 외식이 아니다'라는 뜻으로 바꿔 버리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3일 뒤가 좋은데"를 "3일 뒤가 좋았는데"로 바꿀 수 있는 것도 '-았-'이 '3일 뒤가 좋은데' 자체를 과거로 바꿈으로써 '더 이상 3일 뒤가 좋지 않은데'의 뜻으로 만든다.

바로 위 설대로 쓰면 한국어의 선어말어미 '-었-'은 과거를 나타내기보다는 지속적 부정을 나타내는 형태소가 된다. 이는 'A이었다'와 'B를 했다'라는 과거형 문장이 '더 이상 A가 아니다'와 '더는 B를 안 한다'라는 부정형 현재형 문장과 동치되는 점에 따라, 서로 다른 시제의 명제가 같아지는 모순된 문제를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미 한국어의 시제는 '과거-비과거' 대립의 2시제라는 이론이 상당한 힘을 얻은 상황인데 여기서 이 설을 받아들이면 과거가 사실상 지속적 부정을 나타내는 현재가 되므로 과거도 미래도 없이 현재만 있어 시제 구별이 무의미해지기 때문에 무시제론에 힘이 실린다.

1.3.5. 동작상

동작상(動作相, aspect)은 어떤 동작이 일어난 형상을 표시하는 문법 범주이다. 그 형상이란 완료진행, 예정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학교 문법에서는 완료와 진행만을 다룬다. 완료상은 동작이 끝남을 나타내며, 진행상은 동작이 한창 일어나는 중임을, 예정상은 동작이 앞으로 일어날 모양임을 나타낸다.

1. 완료상
'-아/어 있-': 앉아 있다, 말라 있다
'-고 있-': 들고 있다, 알고 있다
'-고서': 앉고서
2. 진행상
'-고 있-': 앉고 있다, 마르고 있다
'-(으)면서': 앉으면서
3. 예정상

1.4. 일본어

일본어는 과거와 현재(비과거)의 두 가지 시제가 있다는 견해가 중론이다. 미래도 현재형으로 나타낼 뿐, 미래형만 별도로 사용하는 경우는 없다. 그런데 '~だろう', '~でしょう'[6]가 미래형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추측을 나타내는 어미에 더 가깝다. 곧, 한국어의 2시제설과 비슷한 것. 현재 시점에서 추측하는 경우에도 역시 '~だろう', '~でしょう'를 쓸 수 있지만 반어법으로 쓰기도 한다.

과거 시제, 현재 시제의 용법은 한국어와 비슷하다. 「夢だった。」(꿈이었다.), 『そんなふうに考えていた時期が俺にもありました。』( 그렇게 생각하던 시기가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残念! さやかちゃんでした!』( 유감! 사야카였습니다!) 그런데 영어와는 달리 현재를 과거 대신에 사용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의역으로 보이기도 한다. 예) U.N.オーエンは彼女なのか? - U. N. 오웬은 그녀인가? - U.N. Owen was her? 이건 '彼女だったか?(그녀였나?)'가 아닌 '彼女なのか?(그녀인가?)'의 번역으로 알려졌다.

시제의 용법 때문인지 한국어처럼 무시제론도 있다.

1.5. 중국어

중국어에는 문법상 시제가 없다는 것이 주류 의견이다. '昨天, 今天, 明天, 去年, 明年...'과 같은 시간명사와 了(완료), 过(경험), 着(지속)와 같은 동태조사[7], 要(예정)[8], 正在(진행)같은 조동사, 부사 등을 통해 시제를 나타낸다.

1.5.1. 광동어

중국어와 마찬가지로, 시제랄 게 없다. 다만 噚日,今日,聽日,舊年,出年 등의 시간명사와 咗(완료), 過(경험), 緊(진행) 등의 동태조사가 존재하며 會(대체로 예정된 미래) 등의 조동사가 존재한다.

1.6. 영어

1.7. 프랑스어

단순과거, 복합과거, 반과거, 단순미래, 근접미래, 근접과거, 대과거 등등 엄청나게 많은 종류의 시제가 있으나, 현대 회화언어생활에서(문학작품 제외) 사용하는 시제는 복합과거와 반과거, 단순미래와 근접미래, 그리고 물론 현재시제 정도가 대부분이다.[9] 이 정도만 알아도 먹고살 만큼의 불어는 소화 가능하다. 단순과거[10]같은 경우는 이젠 고서나 문학작품에서나 볼 수 있고, 근접과거나 대과거도 단순과거정도는 아니지만, 그렇게 자주 쓰이는 시제는 아니다.

조건, 명령, 접속 등은 강조 표시해놨듯 시제가 아니라 '서법' 이다!

대표적인 시제 만드는 법을 소개하자면 이러하다. 하술된 형태로 보이듯 역할 역시 영어의 현재완료와 거의 일치한다.[11] 단순과거 시제는 문학 이외에는 거의 안쓰이는 편이고 복합과거로 소화되지 않는 부분은 반과거로 처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구조가 단순과거(passé simple)보다 단순하고 원칙도 영어의 현재완료와 다소 다른 부분만 외우면 문제가 없으나, 하술된 예외 때문에 다소 헷갈릴 소지가 큰 파트이다. 자주 쓰이는 시제들 중 하나이기 때문에 신경써서 공부해야 할 필요가 있다.

avoir나 être 동사의 현재변형 + 본동사의 과거분사 형태로 만든다. 일반적으론 avoir조동사를 많이 쓰고, aller, entrer, mourir 등의 왕래발착 이동동사가 해당 의미로 쓰이[12]거나 대명동사에선 être조동사를 사용한다.[13] 그리고 이때만은, 직접목적보어가 분사 뒤로 빠져나왔을때나 상호적 용법일 때를 제외하고는 주어에 대해 과거분사의 성,수를 일치시킨다. 그리고 avoir조동사를 사용하더라도 직접목적보어가 분사 앞으로 올라올 때는 그 직접목적보어에 성수일치를 해야 한다. 하지만 간접목적보어가 올라올 때는 안 한다. 뭐가 이렇게 복잡해 이 근처는 원래 이렇다예문을 만들어 보자면. 프랑스어로 된 문법용어대로 불완전한 과거 시제를 의미한다. "불완전 과거" 쪽이 좀 더 제대로 된 번역이라고 볼 수 있겠으나, 시중에 나온 한국어 번역 문법서에서는 전부 반과거로 돼있다. 복합과거가 완료된 형태 즉 점이라면 반과거는 선과 같다고 볼 수 있다.[14] 보통 복합과거로 적고 뒤에 반과거를 써서 앞에 있는 문장을 보충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소설에서 반과거를 지나치게 많이 쓰면 전개가 늘어지는 느낌을 준다.[15]

비교적 간단하다. 직설법 1인칭 복수(nous)의 현재형 어간에 -ais, -ais, -ait, -ions, -iez, -aient만 붙여준다고 외우면 된다. 물론 당연히 예외도 있다. 그건 그때마다 외우면 된다.

예를 들어 가장 쉬운 기본동사인 'prendre'를 변화시켜 보자. 1인칭복수의 현재형 변화형태는 nous prenons이므로, 어간은 pren-이 된다. 그럼 여기에 어미만 붙이면 된다!
Je prenais / tu prenais / il prenait / nous prenions / vous preniez / ils prenaient

단, 1인칭복수와 3인칭복수의 어간이 다르다던가, 여타 발음상의 이유로 약간씩 규칙에서 다른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manger동사가 있다.
1인칭복수의 현재형은 nous mangeons, 그러니까 어간은 mange...라고 하면 반만 맞았다.
Je mangeais / tu mangeais / il mangeait / nous mangions / vous mangiez / il mangeaient

이는 발음상의 문제이다. je mangais가 되면, '망게'가까운 발음이 되므로(g+ai) 동사 원 발음과 너무나도 달라지므로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긴다. 또한 nous mangeions이 되어버리면 '망줴용'이 되어 버리므로 역시 탈락. 근접미래는 aller의 직설법현재변화형 + 동사원형을 쓰면 된다. 이는 말 그대로 곧 일어날 변화를 나타낸다.
Je vais partir demain.(난 내일(당장) 출발할 거야)

단순미래는 동사를 단순히응? 변화시키기만 하면 된다. 보통 동사원형의 -r부분을 어간으로 하고, 어미 -ai, -as, -a, -ons, -ez, -ont를 붙이면 된다. 물론 불규칙 변화가 차고 넘친다[16] 제일 만만한 manger동사를 예로 들어보면
je mangerai, tu mangeras, il mangera, nous mangerons, vous mangerez, ils mangeront이 된다.
battre, croire, prendre같은 동사는 e를 떼고 ~r까지를 어간으로 하면 된다.

이 둘의 가장 큰 차이는, 근접미래는 '곧 일어날 변화'를 나타낸다면, 단순미래는 '언젠가 미래에 일어날 막연한 일'을 뜻한다고 보면 된다.[17] 예를 들어, 'Je vais avoir un bébé'는 곧 아이를 낳을것같이 생긴 만삭의 산모가 할 말이고, 'J'aurai un bébé'는 6살짜리 꼬마아이도 할 수 있는 말이다. venir의 직설법 현재변화형 de 동사원형을 쓰면 된다. 과거인데 가장 최근의 일을 나타낸다.
Nous venons de vendre la voiture.(우린 (최근에) 자동차를 팔았다.)
의외로 현지인들은 근접 과거(passé récent)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거의 안써서가 아니라 종종 쓰는데 그것이 근접 과거 임을 잘 모르는 것이라 그 형태를 보여주면 "아 그거"라거나 "그게 그거인지 방금 알았어"라는 반응을 보인다.
시제에 나와있긴 한데 근접미래와 같이 문법적으로는 pouvoir + 동사원형과 같은 현재시제의 용법에 가까워서 목적어 대명사를 집어넣을 때 복합과거랑 헷갈리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1.8. 독일어

독일어/문법 문서의 시제 문단 참조.

1.9. 튀르키예어

시제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전통적으로는 유럽식 시제구분법에 따라 과거, 현재, 미래 3시제 구분법을 채택하고 학교에서 가르치지만, 더 깊이 파고 들면 3시제설로 설명할 수 없는 문법적 예외들이 꽤 있기 때문에 아예 완료/미완료 2시제로 구분하는 학자도 있다. 터키어에서 과거 시제를 나타내는 접사 -di, -miş 는 다른 시제를 나타내는 모든 접사 뒤에 와서 과거 시제를 만들 수 있는데, (iyordu '하고 있었다', ecekti '할 것이었다' 등등. 3시제설에서는 복합과거시제라고 한다) 현재 시제 접사 -yor 와 미래 시제 접사 -AcAk 은 이렇게 사용할 수 없다. 왜 과거 시제 접사 -di, -miş만 다른 시제 접사들과 자유롭게 결합해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3시제설로는 마땅히 설명할 방법이 없다. 2시제설에서는 과거 시제 접사 -di, -miş와 시제 접사가 나타나지 않는 현재 시제만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시제어미들은 터키어의 특징인 모음조화에 따라 앞의 모음과 조화하는 특징을 갖고 있으며 끝에는 인칭에 따라 인칭대명사어미(kişi eki)를 붙인다. 여튼, 학교문법 (3시제설)을 설명하자면 대략 다음과 같다.

1.9.1. 현재

두가지 파생형이 있는데, Şimdiki Zaman (-iyor)은 현재 진행중인 일을 나타낼때 사용하며, Geniş Zaman (-ır)은 어떠한 일을 반복적으로 진행하고 있을 때에 사용한다.

Şimdiki zaman:
Okula gidiyorum. (나는 학교에 간다. - 현재는 가고 있지만, 그 전이나 그 후에 어땠는진 모름.)
Geniş zaman:
Her haftaiçi okula giderim. (나는 매 평일마다 학교에 간다. - 반복적인 행동)
이 외에 추측형(Rivâyet bileşik zamanı, -miş+kişi eki, -인 것같다.)같은 파생또한 존재한다.

1.9.2. 과거

Bilinen Geçmiş Zaman (단순 과거형: -Dı)과 Öğrenilen Geçmiş Zaman (누군가에게 들은 과거형: -mış), -miş'li Geçmiş Zaman(완료된 행동에 대한 과거형: -mıştı) 세가지의 파생형을 가지고 있다.

Bilinen Geçmiş Zaman:
Dün arkadaşımla rakı içtim, ve sarhoş olup eve geldim.
(어제 친구들과 라크를 마셨다. 그리고 취해서 집에 돌아왔다.)[18]
Öğrenilen Geçmiş Zaman:
Özgür arkadaşlarıyla rakı içmiş, ve sarhoş olup eve gelmiş.
(외즈규르는 그의 친구들이랑 라크를 마셨다고 한다. 그리고 취해서 집에 돌아왔다고 한다.)
-miş'li Geçmiş Zaman:
Hani rakı içmiştin. Hani sarhoş olmuştun, öyle mi? Çok ayıp ya.
(너 왜 라크 마셨었다매. 왜 취했었다매. 정말이야? 망신스럽기는.)

1.9.3. 미래

Gelecek zaman (미래형: -Acak) 시제는 한가지만 가지고 있지만, şimdiki zaman(현재형) 또한 가까운 미래를 말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 또한 소망어미(Dilek Kipi), 소원어미(İstek Kipi[19]), 필요형(Gereklilik Kipi)어미를 붙여 그 의미를 확장시킬 수도 있다.

Gelecek zaman:
Yarın Gaziantep'e gideceğim. (나는 내일 가지안텝에 갈 것이다.)
Gelecek zaman + Geçmiş zaman:
Seni arayacakm ama unuttum. (너한테 연락하려했는데, 잊어버렸어.)
Dilek kipi:
Allah onların evlerine ateşler salsın! (신이시여 그 놈들 집에 불이 번지게 하소서!)
Gereklilik Kipi:
Bize yeni araba almamız lâzım. (=Bize yeni araba almamıza gerek.)
(우리는 새 자동차를 살 필요가 있어/ 우리는 새 자동차를 사야해.)

1.9.4. 2시제설 기준

2시제설에서는 과거 시제와 현재 시제만 존재한다고 본다. 과거 시제는 다시 가시적 과거와 비가시적 과거로 분류된다. 과거 시제 접사인 -di, -miş 는 접사로 사용할 수도 있고, 독립형인 idi, imiş 로 사용할 수도 있다.

1. 가시적 과거 시제 (-di)
2. 비가시적 과거 시제 (-miş)
3. 현재 시제 (시제 접사 없음)

2시제설에서는 상기된 3시제설에서 시제를 나타내는 접사들을 상을 나타내는 접사로 본다.
iyor (진행상), ar (반복상), acak (예정상), di (가시적 완료상), miş (비가시적 완료상)

geliyorum - gel + iyor (진행상) + (현재시제, 없음) + um (인칭접사): 현재시제 진행상 (나는 오고 있다)
geliyordum - gel + iyor (진행상) + (du, 가시적 과거시제) + m (인칭접사): 과거시제 진행상 (나는 오고 있었다)

gelecek - gel + ecek (예정상) + (현재시제, 없음) + (인칭접사, 생략): 현재시제 예정상 (그는 올 것이다)
gelecekti - gel + ecek (예정상) + (ti, 가시적 과거시제) + (인칭접사, 생략) 과거시제 예정상 (그는 올 것이었다)

geldim - gel + di (완료상) + (현재시제, 없음) + m (인칭접사): 현재시제 완료상 (나는 왔다.)
gelmiştim - gel + miş (완료상) + (ti, 가시적 과거시제) + m (인칭접사): 과거시제 완료상 (나는 왔었다)

1.10. 러시아어

러시아어에서 대부분의 동사는 불완료상/완료상의 쌍을 가지고 있다. 동사의 상은 시제를 나타낼 때에도 다른 역할을 한다. 일반적인 경우 불완료상 동사는 동사변화를 통하여 단순과거, 과거진행, 단순현재, 현재진행형을 표현하는데 쓰이고, 여기에 조동사 역할을 하는 'быть'를 함께 사용하여 단순미래, 미래진행형을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대과거, 완료진행형의 구분은 명확하지 않은 편이다. 완료상 동사의 경우에는 과거완료와 미래완료를 표현하는데 사용하는 것이 기본적인 용법이다. 다만 언어 문법이라는 것이 수학공식처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것이 아니라서, 문맥에 따라서 동사와는 별개로 문장의 시제가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러시아어 동사에서 완료상과 불완료상의 용법 차이는 단순하게 '시제의 구분'이라는 틀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시제를 표현하는데 중요하게 사용 될 뿐이다. 그 외에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형동사(동사의 뜻을 가진 형용사, 일하다/일하는, 수정하다/수정하는 등) 개념이 발달해 있으므로 형동사로도 시제표현이 가능하다. 그래서 러시아어는 상대시제를 표현하기 수월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1.10.1. 불완료상 동사의 시제

기본적으로 불완료상 동사동작의 결과가 나왔는지, 동작이 끝났는지에 대한 개념을 중요시하지 않고 동작 그 차제를 설명하기 위해서 쓰인다. 그러므로 (과거에 시작된 행위의) 지속, 습관적 행동, 자연현상 등의 평면적인 사실,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일 등을 표현할 때 주로 사용한다. 그러므로 불완료상 동사의 의미에는 기본적으로 진행형을 담고 있으며, 진행형인지 단순동작인지의 차이는 문맥에 달려있다. 만일 헷갈린다면 진행형으로 번역하는 것이 보다 나은 선택이며, 현재시제는 일반적으로 불완료상 동사에만 있다.

불완료상 동사의 기본적인 현재시제 용법은 불완료상 동사를 주어에 맞게 동사변화시키는 것이다.
Мы видим грядущее нашей страны в победе коммунизма.
우리는 공산주의의 승리 속에서 우리나라의 미래본다/보는 중이다.[20]
소련 찬가
불완료상 동사의 현재시제는 단순현재, 현재진행, 현재완료형를 모두 포함할 수 있다. 보통은 시간을 나타내는 다른 부사가 쓰이지 않을 경우에 현재형이나 현재진행형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흔하다. 일회적이지 않고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상황, 딱히 결과랄 게 없지만 과거로부터 시작되어 지속되어온 동작 등도 불완료상 동사를 사용해서 표현한다.
Нельзя курить!
흡연을 금함!
이렇게 특정 행동의 금지를 표현할 때는 불완료상 동사가 사용된다. 말 그대로 그 행동의 완료는 중요하지 않고 행동 그 자체를 금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Я пью.
나는 술을 마신다.
이런 습관, 능력적인 단순동작을 설명할 때는 불완료상 동사가 사용되는데, 이럴 때 의미는 '나는 술을 마시는 중이다' 라는 현재시제로도 해석되기보단 일반적으로 동작 그 자체에 대한 설명을 담아 '나는 술을 마실 줄 안다' 혹은 나는 '술을 마시곤 한다'로 통하게 된다.

불완료상 동사를 과거형으로 쓰면 단순과거형과 과거진행형이 된다.
Мы растили нашу армию в сраженьях.
우리는 숱한 혈전 속에서 아군양성하곤 하였다/양성하고 있었다.
소련 육군송가
불완료상 동사 과거형은 특정하지 않은 반복적인 상황이나 과거에 있었던 경험 등을 묘사할 때 사용하며, 문장에서 표현한 동작이 현재 시점에서 끝났는지 모르거나 아니면 동작의 종결 여부 자체가 중요하지 않은 경우, 혹은 과거에 진행되고 있었던 일 자체에 대해서 표현할 때 사용한다. 불완료상 동사 과거형의 경우, 현재 시점에서 동작이 끝났는지 아닌지는 중요한 정보가 아니게 된다. 만약에 동작의 완수를 표현하고 싶다면 완료상 동사를 사용한다. 한국어로 번역하는 경우에는 '-했다' 라는 어미로 과거시제를 많이 표현하게 되는데, 불완료상 동사의 과거형에서는 완료되었다는 의미를 배제하는 것이 좋기 때문에 '-하곤 했다', '-하고 있었다' 정도가 나을 수 있다.

불완료상 동사는 스스로 미래시제를 표현하지 못하고, 시간을 뜻하는 부사 혹은 'быть'와 함께 미래시제를 이룬다.
Будут дети играть в космонавтов!
아이들이 우주 비행사역할을 하리라!
우주군
'быть' 동사의 사용법 자체는 영어의 조동사 'will' 사용례와 어느정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먼저 'быть' 동사를 주어에 맞게 변화시킨 다음, 그 뒤에 불완료상 동사의 원형을 붙여쓴다. 일반적으로 단순미래, 혹은 미래진행형 문장으로 해석된다.

'быть' 동사를 쓰고, 그 뒤에 형용사나 형동사 등을 사용하여도[21] 문장에서 시제가 표현된다.
Мы будем беззаветно верны Отчизне.
우리는 조국에 몸바쳐 충성하고 있을 것이다/충성하게 될 것이다.
소련 찬가
'быть' 동사는 그 자체로 시제표현이 가능하므로, 형용사와 결합할 수 있다. 'верны'는 형용사 단어미 복수형으로, 원형(장어미 남성형)은 'верный( 베르니)'이다. 형용사의 단어미형은 장어미에 비해서 절대적인 성질의 수식보다는 일발적인 상태변화 따위를 표현하는 데 주로 사용한다. 형용사 외에도 많은 형동사를 가진 러시아어의 특성상 이렇게 구성되는 문장이 많은 편이다.

불완료상 동사가 사용된 문장에서는 부사 등을 사용해서 단순시제인지 진행형인지를 명확히 할 수 있다.
Вчера в двенадцать дня он обещал в столовой.
어제 낮 12시에 그는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Иногда он обещал в столовой.
종종 그는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곤 했다.
만약에 문장에서 불완료상 동사가 2개 이상 쓰였는데 시제가 같다면, 일반적으로 동시에 진행되는 일을 뜻한다.
Полки идут стеной, красиво держат строй, и гордо шелестят знамена.
부대가 벽처럼 나아가면서 아름답게 대오를 갖추며, 깃발은 자랑스레 펄럭이는 소릴 내고 있다.
러시아에 복무함

1.10.2. 완료상 동사의 시제

러시아어의 완료상 동사는 불완료상과는 반대로, 한번 일어난 일이나 시발된 동작의 종결, 결과를 표현할 때 사용한다. 그러므로 사전적으로 완료상 동사의 시제는 과거완료와 미래완료 둘뿐이다. 당연히 동작의 진행되고 있다는 뜻의 현재형이 만들어지지 않는데, 동사 자체를 변화시키면 그것이 미래시제로 사용된다.

완료상 동사의 과거시제는 동사의 과거형 동사변화를 사용한다.
Те, кто молчал, перестали молчать.
침묵해왔던 사람들은 침묵하기를 그만두었네.
고요한 밤(Спокойная ночь), 키노
완료상 동사의 과거형은 동작이 끝나 현재에는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 경우만을 뜻하며, 일회성인 행동, 동작의 완수를 표현한다. 그래서 과거시제일 때는 과거완료형이 된다. 위 문장에는 불완료상 과거형과 완료상 동사의 과거형이 동시에 나와있는데, 예문의 가사에서는 불완료상 동사의 과거형인 молчал과 완료상 동사의 과거형인 перестали를 같이 썼다.
위 가사는 불완료상과 완료상의 차이를 잘 알려주는 예인데, 먼저 침묵하다에 해당하는 동사를 불완료상으로 씀으로써, 단지 침묵한 것이 아니라 과거에 침묵했던 행위를 반복해왔다는 의미를 강조함으로써, (사람들이) 그동안 침묵해왔다는 뜻을 강조하며, 그만두다를 완료상으로 씀으로써 '(완전히) 그만두었다', 즉 (여태까지) 침묵해왔던 사람들이 침묵을 (완전히) 끝냈다는 표현을 강조했다.
동사를 불완료상 과거형으로 쓸 경우, '여태까지 그만두기를 반복해왔다' 라는 의미가 섞일 여지가 있으나 완료상일 경우에는 '(더이상) 그만두었다'는 뜻밖엔 표현되지 않는다. 한국어의 과거형 어미인 '-했다'는 러시아어 완료상 동사 과거형의 해석과 유사한 편이나, 보다 명확하게 하고 싶을 때는 '-를 다했다', '-를 끝냈다' 정도로 쓰면 보다 정확해진다.

완료상 동사는 현재시제를 표현하지 못하고, 동사 자체를 주어에 맞게 동사변화시키면 미래시제가 된다.
Мы сметём подлых захватчиков с дороги.
우리는 비열한 침략자들을 길에서 몽땅 쓸어낼 것이다.
소련 육군송가
완료상 동사의 미래시제는 결과의 확신, 진행중인 동작의 완수를 중시할 때 사용하며 표현되는 동작은 단발적이다.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예정인 것(미래진행), 혹은 미래에 반복될 행동을 표현코자 하는 경우라면 불완료상 동사를 사용한다.

만약에 문장에서 불완료상 동사 + 완료상 동사가 쓰였는데 시제가 같다면, 불완료상은 진행, 완료상은 그 도중의 완수를 말한다.
Советская армия всегда побеждала всех врагов и победила фашистов орду.
소련군은 모든 적병을 언제나 패퇴시켜 나갔으며 파시스트 군세에 (최종적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소련 육군송가
완료상 동사가 2개 이상 쓰였다면, 시제가 같아도 순차적으로 진행된 동작을 말한다.
Мы отстояли Ленинград в боях, отстояли родной Сталинград.
숱한 전투 속에서 우리는 레닌그라드수호해 내고서, 경애하는 스탈린그라드수호해 냈다.
소련 육군송가

1.10.3. 형동사와 시제

러시아어는 동사에서 파생된 형용사인 형동사가 많이 쓰이는데, 그 용법이나 해석 자체가 동사 그대로인 경우가 많아서 이것으로도 시제 표현이 된다. 형동사는 동사와 마찬가지로 불완료상과 완료상의 구분이 있고, 과거시제와 현재시제로 구분되기 때문이다. 다만 형동사 중에 일부는 하도 많이 쓰여서 아예 명사화 되어 있거나, 그냥 형용사가 되어버린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애매한 구석은 있는 편이다.[22]

피동형동사 완료상 과거시제
Наш путь солнцем славных боёв озарённый.
우리의 여정은 영광스러운 전장의 태양에 의해 밝혀져 있다.
소련 육군송가
이 문장에는 동사가 없지만, 'озарённый'라는 피동형동사가 술어 역할을 하며, 형동사가 과거형이므로 시제는 과거완료이다. 'озарённый'는 '밝히다' 라는 뜻의 완료상 동사 'озарить'에서 구성되며, 마찬가지 현재 시점에서 종결된 동작을 표현한다. 피동형동사의 과거형은 일반 형용사와 마찬가지로 단어미형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데, 예문의 경우라면 주어인 'путь'가 남성명사이기에 'озарён'이 된다. 이 경우엔 '밝혀져서 지금도 밝다'라는 의미보다 '그때 밝혀졌다' 라는 의미가 보다 강조됨.

능동형동사 완료상 과거시제
Родная армия, в боях познавшая радость побед!
여러 전투에서 승리의 기쁨을 맛본, 경애하는 군대여!
소련 육군송가
능동형동사의 과거형은 불완료상과 완료상 동사 모두에게서 구성될 수 있는데, 이 경우에도 동사와 마찬가지로 동작의 진행 그 자체, 혹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행위를 나타내는 것인지(불완료상), 아니면 동작의 종결을 나타내는 것인지(완료상)에 따른 해석 차이가 있다. 예문에 사용된 형동사는 '경험하다'라는 뜻의 완료상 동사 'познать'에서 구성된 것으로, 과정보다는 ' 지금은 경험을 마쳐 성숙한 상태'라는 의미가 강하다.

문장을 나누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시제를 만들 때 형동사를 사용할 수 있다.
Мудрость народная, данная предками нас ведёт к победе!
선조들에 의해 주어진 인민의 지혜가 우리를 승리로 이끌고 있다!
러시아 찬가
형동사가 불완료상 동사에서 파생된 것이면 보통 문장의 동사가 표현하는 동작과 동시 진행되는 상황을 말하는데, 완료상 동사에서 파생된 것이라면 먼저 일어난 동작을(선행동작) 말하는 경우가 많다. 'данная'라는 형동사는 '주다' 라는 뜻을 가진 완료상 동사 'дать'의 피동형동사 과거형이므로, 선행 동작을 표현한다. 예문의 동사가 과거형으로 쓰였다고 하더라도 형동사가 선행한다. '주어진' 것이 먼저이고 '이끈' 것이 나중이다.

1.10.4. 부동사와 시제

형동사가 동사에서 파생된 형용사라면, 부동사동사의 뜻을 지닌 부사이다. 의미는 원형 동사와 같으며, 과거시제와 현재시제가 존재한다. 부동사와 마찬가지로 상대시제를 표현할 때 유용하게 사용된다. 부동사 현재형은 불완료상 동사에서, 과거형은 완료상 동사에서만 만들 수 있다.

부동사 현재형은 불완료상 동사에서만 만들어지며, 하술된 동작과의 동시진행을 뜻한다.
Творя невиданный полёт, мы сознаём, как крепнет флот воздушный.
경이로운 비행을 행하는 동안, 우리는 항공 편대가 어찌 강대해지는가를 깨우칠 것이다.
항공행진곡

부동사 과거형은 완료상 동사에서 만들어지며, 순차적으로 진행된 동작을 뜻한다.
Скинув черные бушлаты, черноморцы в дни войны, здесь на танки шли с гранатой.
흑색 수병외투를 벗은 후, 전시에 흑해 함대 장병들은 이곳에서 수류탄을 지니고 전차를 향해 전진했다.
전설의 세바스토폴
부동사 과거형이 사용된 문장에서는 하술된 동사가 무엇이든지 부동사가 뜻하는 동작이 선행된다.

1.10.5. 기타의 경우

시간을 나타내는 부사가 함께 쓰인 경우나, 문맥 혹은 일부 특정한 상황에서 문장의 시제가 동사와 다를 수 있다.
Пока, я пошёл!
안녕, 나 갈게!
동사는 분명히 완료상 과거형이지만, 문맥상의 의미는 현재시제 아니면 미래시제로 통하게 된다. 다만 러시아인들은 이 문장을 발화한 시점에서 이미 본인은 만남이나 대화에서 빠져나간 상태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과거형이 어색하지 않은 것이다. '꺼져버려!' 라는 말도 러시아어에서는 그냥 'Пошёл!'이라고 한다. ' 넌 이미 갔다'는 의미인 셈.

시간을 나타내는 부사 사용에 따라서 시제가 결정되는 경우가 있다.
Завтра я еду домой.
내일 난 집에 간다.
이 문장에서 동사는 현재형이지만, '내일'이라는 부사 사용으로 미래시제가 된다. 특별하지 않은 정해진 예정이나 일어날 동작의 진행 수순 등을 표현할 때는 특별히 문장을 복잡하게 구성하지 않더라도 미래시제를 나타낼 수 있다. 이런 단순문장에서의 경향은 한국어도 비슷한데, '오늘 간다', '내일 간다' 모두 동사가 같다(...)

가정법의 경우, 부사 'бы', 혹은 'чтобы'와 사용되는 동사는 시제가 무시되며 과거형을 사용한다.
Все народы, не стоит того, что бы мы превратили вас в пепел?
만백성이여, [23]우리가 그대들을 잿가루로 만들 필요야 없지 않겠느냐?
소련 행진곡
Работать так, чтобы товарищ Сталин спасибо сказал!
스탈린 동지께서 사의를 표하시도록 그렇게 일하십시오!

1.11. 라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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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의 제목.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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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기일 제사의 대상이 아닌 5대조와 그 위의 조상들을 대상으로 하는 제례. 음력 10월 중 하루를 잡아서 지내게 된다.


[1] 기준 시점이 과거 시제인데 '날아간'과 '떨어진'은 그보다 앞선 시제이므로 영어로 치면 대과거에 해당하는 용법이다. 이와 같이, 한국어에서는 영어와 달리 대과거를 따로 설정해 쓰지 않고 상대적인 시점을 이용해 쓴다. 달리 말하면, 영어에는 상대 시제가 없기 때문에 대과거가 발달했다고 할 수 있다. [2] 그런데 결과물 전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그른 것도 아닌 데다가 과장이 아닌 경우에는 "이걸 이용하는 사람은"처럼 현재형이나 미래형으로 나타내므로 현재 시제나 미래 시제를 쓰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할 수도 없다. 또, '-(으)ㄴ'과 '-었던'이 동의어처럼 쓰이는데도 '쇠를 이용했던 인쇄 방법'처럼은 안 쓰인다. '~를/을 ○용한'을 문법화한 것에 가깝다. [3] 영어에 2시제설이 대두된 이유 또한 이와 유사하다. 영어에는 시제가 뒤로 당겨지는 특수한 문법인 tense backshifting이 있는데, 흔히 영어를 배울 때 간접화법 등에서 조심하라고 배우는 그 시제 현상이다. 2시제설은 이 현상을 깔끔하게 설명할 수 있다. [4] 음슴체가 아니더라도 각종 공식 문서에서도 간결한 표현으로 쓰인다. [5] '기억하다', '떠올리다' 같은 회상 동사 [6] 둘 다 '~겠지' 라는 뜻이다. [7] 중국어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의 인식과는 달리, 이 세 조사는 시제와는 관련이 없다. [8] 일부 미국 쪽 중어학자들은 要를 조동사로 보지 않는다. 보통의 학교 문법에서 조동사+본동사로 구성된 구조를 이들은 要는 동사, 그 다음에 오는 것은 명사화된 동사로서 목적어로 본다. 즉, 我要去와 我要這個에서 要는 같은 구조라는 것이다. [9] 현재, 근접미래, 근접과거는 A1, 복합과거와 반과거는 A1~A2에 걸쳐서 배우고, 대과거가 B1, 단순과거는 B2정도의 시기에 배운다 [10] 먼 과거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시제이기 때문에 문학 뿐만 아니라 뉴스에서도 가끔 볼 수 있다. [11] 복합과거와 반과거의 사용법은 영어와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복합과거는 영어의 현재완료형과 거의 일치하기도 하지만 영어의 단순과거 시제의 기능도 일부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영어의 단순과거의 역할을 일부분은 복합과거가, 나머지 부분은 반과거가 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12] 왕래발착 움직임의 의미로 쓰인다는 것 [13] 수동태의 형태가 être + 과거분사로 왕래발착자동사의 복합과거와 형태가 같지만, 복합과거가 être의 형태를 갖는 경우는 모두 자동사로 목적어를 취하지 않는다. 이는 대명동사의 복합과거도 마찬가지이다. [14] 과거에 한번 한 것에 대해해 쓸 때는 복합과거를 과거에 했던 습관(used to)을 쓸 때는 반과거를 쓴다. 이외에도 많은 용법이 있으며, 영어의 현재완료와 단순과거의 차이처럼 복합과거와 반과거 사이의 모호한 경계도 존재한다. 이 경우에는 예문을 많이 접해서 구분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 [15] B1등급 이상의 시험을 치거나 비슷한 수준의 점수를 취득하려면 두 시제의 차이를 잘 이해하고 있어야하지만 두 과거 시제 중 복합과거와 반과거의 중요도를 비교해보면 각각 80%, 20%정도로, 자신 없으면 복합과거 위주로 학습하라고 권하는 강사들도 많다. [16] envoyer의 복합과거는 avoir envoyé이지만 단순미래(3인칭 단수 기준)는 enverra이다. 형태가 -er이기 때문에 과거에 envoyera나 envoiera로 썼던 흔적은 발견할 수 있다. [17] 현재와 시점이 가까우냐의 문제 보다는 그 일이 미래에 일어날 가능성이 높으냐 낮으냐로 보는 것이 맞다. [18] 이 시제는 미완료시제로 여겨진다.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다. 라는 것을 표현할때도 사용하지만, 과거에 하던 일이 지금 끝나있는지, 안 끝나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또한 터키인들과 이야기할때, 'Kapattım.' (나 전화 끊는다) 처럼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을 가지고도 이 시제로 말하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위에 나온 터키어의 완료/미완료 2시제설도 그 때문에 제기된 것. [19] 소망어미와 동일한 어미를 갖는다. [20] 'видеть' 동사는 뜻이 영어의 'see' 와 같다. 즉 '바라보고 있다' 라는 능동적인 해석보다는 '보인다', '(보면서) 이해/파악되고 있다' 라는 피동적 해석이 적절하다. [21] 다만 제한이 있기는 하다. 'быть' 동사는 영어의 'Be' 동사 역할을 한다고 설명할 수 있고 뜻도 비슷하다. 따라서 대게 성질형용사만 가능하다. [22] 다만 이미 형용사화 된 형동사라도 문장성분의 배열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형동사로 기능할 수 있다. 특히 피동형동사의 경우에는 행위주체를 조격으로 쓴다는 특징이 있다. [23] 러시아 제국 시절에는 차르 영어의 장엄복수형처럼 스스로를 1인칭 복수로 칭했던 적이 있긴 하지만, 칙서에나 쓰는 문어적인 표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