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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리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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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리성
しゅりじょう | Shuri Castle | スイグシク[1]
파일:슈리성 정전.jpg
▲ 2019년 10월 화재 전소 이전의 정전
파일:suri guske.png
슈리성을 묘사한 그림
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svg 유네스코 세계유산
류큐 왕국의 구스쿠 유적지와 관련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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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큐 왕국의 구스쿠 유적지와 관련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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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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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재유형 문화유산
지정번호 972
등재연도 2000년
등재기준 (ii)[2], (iii)[3], (vi)[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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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가는 방법3. 역사4. 화재5. 주요 건축
5.1.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6. 매체에서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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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attachment/슈리성/1.jpg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파괴되기 전의 정전. 오키나와 테를 수련하는 오키나와인들
파일:attachment/슈리성/4.jpg
▲ 슈리성의 성벽
파일:attachment/슈리성/3.jpg
しよりもり げらへて げらへたる きよらや
슈리성을 세워, 세워진 아름다움이여
かみ しもの 世そろゑる ぐすく
여기 류큐의 세상을 다스릴 구스쿠
(又) まだまもり げらへて げらへたる きよらや
(다시) 마다마무이[5]를 세워, 세워진 아름다움이여
류큐 왕국의 신가집(神歌集) 《오모로소시(おもろさうし)》 中
일본 오키나와 나하시에 있는 류큐 왕국의 왕궁이자 거성( 구스쿠)이다. 참고로 슈리 나하와 별개의 지역으로서 류큐 왕국의 수도였는데 지금은 나하시의 일부로 합병되어 있다. 상세한 내용은 슈리 문서를 참고하기 바람.

오키나와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화려한 유적지이다. 본토 일본이나 한국, 중국과는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다른 독자적인 양식을 볼 수 있다. 오키나와 여행을 간다면 거의 반드시 한번쯤 방문하게 되는 대표적인 명소다.

2. 가는 방법

오키나와 도시 모노레일선 슈리역이나 그 앞 역인 기보역에서 도보 5분 정도 거리인데 경사가 약간 있어 편한 복장으로 가는 것이 좋다. 모노레일을 통해 나하 공항 및 도심과 직접 연결된다.

입장료는 820엔인데 왕궁의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정전으로 들어가는 데에서 입장료를 받는다. 정전 외의 다른 곳은 모두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3. 역사

파일:external/livedoor.blogimg.jp/fcf7c1d2.jpg

슈리 성이 처음 지어진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13세기 슌텐 왕조의 왕인 슌바준키가 건설했다고 하나, 슌텐 왕조 자체가 실제 역사가 아닌 전설이라는 주장도 있어서 분명하지 않다. 오키나와판 삼국시대 삼산시대에는 중산 왕조의 성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쇼하시 왕 우라소에를 함락시키고 중산을 지배하기 시작할 때에 수도가 되었다.

오랫동안 한중일의 사이에서 중계무역을 하며 류큐 왕국은 번영했지만 1453년 왕위다툼인 시로·후리의 난(志魯·布里の乱) 당시 슈리성이 불타 없어진 적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등장하는데, 경복궁 근정전과 닮았다는 묘사가 있다. #

쇼네이 왕 치세인 1609년, 사츠마 번의 침략으로 슈리성에서도 전투가 일어났지만 결국 패하여 류큐 왕국은 사츠마의 속국이 되었다. 슈리 성에는 지금도 중국 사신과 일본 사신을 알현하는 시설이 각각 따로 있다.

이후 류큐 처분과 폐번치현을 거쳐 쇼타이 왕 도쿄로 압송되어 왕궁의 역할을 상실하였다. 이후로는 일본군 주둔지로 쓰이다가 신사 건립을 위해 철거될 뻔 하기도 하는 우여곡절을 거쳐 일제에 의해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의 막바지에 벌어진 오키나와 전투 당시, 육군 제32군 총사령부가 슈리 성 지하벙커[6]에 자리잡은 관계로 격렬한 전투에 휘말렸다.

1945년 5월 25~27일간 벌어진 3일간의 격전에서 뉴멕시코급 전함 USS 미시시피의 14인치 주포를 집중적으로 얻어맞아 건물은 완파되고 수많은 류큐 왕국의 문화재가 소실되었다. 5월 27일에 제32군 사령부가 퇴각을 결정하자, 부상을 입어 따라나설 수 없던 약 5,000명이 이곳 벙커에서 집단자결하는 참극도 벌어졌다. 또한 이때까지 기적적으로 보물창고는 온전하였으나, 슈리 성을 점령한 미군 장병들이 수장품을 전리품으로 챙겨가는 바람에 파괴를 모면한 문화재들도 많은 수가 행방이 묘연한 실정이다. 해당 전투는 콜 오브 듀티 월드 앳 워에서 간접체험 가능하다. 미군 스토리의 마지막 임무가 슈리성에 공습을 유도하는 것이다.

파일:attachment/슈리성/Univer.jpg
전쟁 이후 빈터에 류큐대학 캠퍼스로 사용되기도 했었다. 지금은 학교는 다른 곳으로 이전했고 슈리 성은 1992년부터 차례로 복원됐다.

2018년에는 세이덴 외벽 보수작업으로 인해 당분간 볼 수는 없으나 건물 내부로는 들어갈 수 있다.

1958년 슈레이문이 복원되고 1989년 복원 공사를 시작하여 2019년 1월에 기나긴 복원 공사가 완료되었다.

4. 화재

파일:shuri_castle_fire.jpg

2019년 10월 31일 오전 2시 40분경 대형 화재가 발생해 주요 건물 대부분이 전소했다. 복원이 완료된 지 불과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벌어진 참사였다.

관련 뉴스 보도( 1, 2)에 따르면 정전에 설치된 화재 경보기에 오전 2시 34분 반응이 있었고, 그것을 본 민간 경비회사 직원이 화재가 발생한 것을 확인하고 오전 2시 41분에 소방당국에 신고, 이후 정전에서 북전, 정전에서 남전으로 각각 화재가 번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소방차 30여대와 100여명의 소방대원들이 출동해 진화작업에 나섰으나 정전(正殿), 북전(北殿), 남전(南殿), 서원(書院) 및 쇄지간(鎖之間), 황금어전(黃金御殿), 이층어전(二階御殿) 등 총 6개동이 전소했으며, 어정 입구의 봉신문(奉神門)도 반소되는 등의 피해를 입었다. 화재는 오전 11시경 진압되었다. 소방대원 한 명이 열사병 증세를 보여 병원으로 호송되었으나 # 기타 인명 피해는 확인되지 않았다.

심각한 문제는 슈리성 내에 전시되거나 보관되고 있는 1,510점의 유물이 손상되었다는 것이다. 현 지정문화재 3점을 포함한 과거 류큐 왕국의 유물들이 슈리성에 기탁되어 보관, 전시되어 있었는데, 해당 재단에서는 주요 유물의 보관 장소만 알고있다고 발언했다. 결국 433점의 염직류, 화화, 칠기 등 유물은 전소된 것으로 판명났고, 천만다행으로 남전에 있던 수장고는 화마에도 버텨서 내부 수장 유물은 일단 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 수장고에서 유물을 반출하여 보존처리를 하러 순차적으로 옮기는 중

일본 언론들은 슈리성 전소 소식을 특보로 내보내었으며, 지역 신문인 오키나와타임즈는 이 날 호외를 발행하고 슈리성 전소 소식을 전했다.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 슈리성은 류큐 역사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큰 충격을 받았다.

경찰은 불이 난 이날 새벽까지 축제 행사[7]를 준비하는 작업이 진행됐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 사고 현장에서 전기 합선 흔적이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

나하시는 시청 본청사 1층에 모금함을 설치하였다. 구마모토현도 부흥 지원으로 응원 모금을 실시하며, 지진으로 무너진 구마모토 성 복원공사 노하우도 전수한다고 한다. # 3일 만에 모금액 1억엔이 돌파하였다. #

2019년 10월 31일 슈리 성이 불타버리자 자유민주당의 도시공원녹지 대책 특별 위원장 에사키 데쓰마가 도시공원 정비 촉진에 관한 긴급 결의를 실시할 것을 국토교통성 및 당에 요청했다. 아카바 가즈요시 국토교통대신은 "슈리는 국영 공원에서 소중한 문화재로, 정부 차원에서 제대로 대처하겠다"고 대답했다. #

그렇지만 재원, 문화재 수리 인원 등 1992년과 달리 어려움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1945년 전쟁으로 불타 버린 슈리 성의 재건이 시작된 것이 1990년경이었고 그 결실을 본 것이 거의 30년이 지난 2019년 3월인데, 1년도 못 되어 이렇게 전소되어 버린 것이기 때문. #

화재 원인은 감시카메라가 배전판에서 번쩍이는 섬광을 포착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전기 합선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와는 별개로, 화재 직후에는 SNS에서 방화범이 재일 한국인 혹은 한국인, 또는 중국인이라는 근거 없는 낭설이 돌기도 했다. #

2020년 6월 12일부터 유료구역에 한해 일반공개 된다고 하며[8] 11월 3일부터 본격적인 복구 작업에 들어갔다. #

5. 주요 건축

사진 설명
파일:attachment/슈리성/11.jpg 슈레이몬(守礼門, 수례문)[9]
슈리 성의 정문이다. 일본 엔 2000엔권 지폐의 도안이기도 하다. 오키나와 전투에 휘말려 전소되었고, 1958년 복원되었다. 현판에 적힌 글씨는 수례지방(守禮之邦)으로, 해석하면 "(류큐는) 예절(禮)을 중시하는 나라다"라는 의미다.
파일:attachment/슈리성/12.jpg 세이덴(正殿, 정전)[10]
왕궁의 정전이다.
파일:attachment/슈리성/13.jpg 난덴(南殿, 남전)[11]
왕궁의 남전으로 정전 옆에 있다.
파일:attachment/슈리성/14.jpg 타마우둔(玉陵, 옥릉)
류큐 왕국 역대 왕들의 왕릉이다. 슈레이몬에서 200m정도 내려간 곳에 위치해있다.

5.1.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2000년 12월에 옥릉(타마우둔)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슈리 성 터만이 등재되었고, 전후 재건된 건물과 성벽은 세계유산이 아니다. 세워진 당시의 건축물이 아닌데다 현대식 공법으로 만든 현대 복원물이라 건축적인 가치는 없기 때문.[12]

6. 매체에서

7. 관련 문서



[1] 오키나와어 [2]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 [3]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 [4]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 [5] 真玉杜, 슈리 성의 옛 별명 [6] 나하 공항 인근의 카이군고(海軍壕) 공원에 있는 구 해군사령부 벙커와는 다른 것이다. [7] 10월 27일부터 11월 3일까지 일정으로 류큐 왕국 시대의 의식을 재현하는 '슈리성 축제'가 진행중이었다고 한다. [8] # [9] 오키나와어로는 위누아야죠(上之綾門)라고도 한다. [10] 오키나와어로는 문다시(百浦添) 또는 카라화후(唐破風)라고 한다. [11] 오키나와어로는 훼누우둔이라고 불렀다. [12] 수원화성도 대부분 현대에 복원된 유적인 만큼 이와 같은 이유로 반려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화성성역의궤를 참고하여 그때 당시의 건축법으로 복원했다는 점을 인정받아 세계유산에 지정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