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晉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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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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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荀蕤생몰연도 미상
동진의 인물. 자는 영원(令遠). 예주 영천군(潁川郡) 임영현(臨潁縣) 출신으로 순숭의 아들. 동생으로는 순선(荀羡)이 있다.
2. 생애
비서랑으로 천거되었다가 승진하여 상서좌승으로 옮겨졌는데, 행실이 바르고 풍채와 인망이 있어 일찍이 회계왕 사마욱의 신임을 받았다.영화 4년(348년) 4월, 평북장군 환온이 성한을 멸망시키자, 동진 조정에서는 촉 평정의 공로로 예장군(豫章)을 환온의 식읍으로 하사하려 했다. 그때 순유가 반대하며 말했다.
"환온은 다시 왕위(王威)를 가장해 북을 평정하고, 낙양을 함락한 뒤 원릉을 수복하려 할 텐데, 장차 어찌 하려고 이와 같이 힘을 실어주려 하십니까!"
이에 조정은 그의 말을 받아들이고, 환온을 예장군공이 아닌 임하군공(臨賀郡公)에 봉했다. 이후 산기상시, 소부(少府)에 임명되었으나 순유가 사양하며 받지 않으니, 조정에서 그를 동양태수로 부임하게 했다. 그 뒤로 건위장군, 오국내사 직책을 역임하던 중 세상을 떠났다. 그의 후사를 이은 아들 순적(荀籍)은 관직이 산기상시, 대장추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