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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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9236A><colcolor=#ffd400> 조선 광해군의 후궁
수빈 허씨 | 粹嬪 許氏 |
|||
출생 | 1595년[출처] | ||
사망 | 1623년 이후 | ||
조선
충청도
제천군 유배지 사저 (現 충청북도 제천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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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 | 미상 | ||
재위기간 | 조선 숙의 | ||
1614년 1월 29일 ~ 1622년 이전 | |||
조선 수빈 | |||
1622년 이전 ~ 1623년 4월 13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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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9236A><colcolor=#ffd400> 본관 | 양천 허씨 | |
휘 | 정순(貞純)[출처] | ||
부모 |
부친 - 허경(許儆 1566 ~ ?) 모친 - 평산 신씨 신수일(申守一)의 딸 |
||
형제자매 |
|
||
배우자 | 광해군 | ||
자녀 | 없음 | ||
봉작 | 숙의(淑儀) → 수빈(粹嬪) |
[clearfix]
1. 개요
조선 광해군의 간택 후궁. 아버지는 의금부 도사를 지낸 허경(許儆)이며, 어머니는 평산 신씨 신수일(申守一)의 딸이다.2. 생애
1595년(선조 28년) 허경과 평산 신씨의 장녀로 태어났으며 이름은 허정순(許貞純)이다. 할아버지는 지중추부사를 지낸 허잠(許潛)이고, 할머니 민연향(閔蓮香)은 성종의 딸인 경숙옹주의 손녀다. 민연향의 오빠 민사준(閔士俊)의 딸이 선조의 후궁인 정빈 민씨로, 즉 수빈 허씨는 정빈 민씨의 5촌 당조카가 된다.[3] 또 수빈 허씨의 고모 허순영(許順英)은 연안 이씨 이광정(李光庭)에게 시집갔는데, 그 외손자가 인현왕후의 아버지인 민유중이다.1613년(광해군 5) 광해군의 후궁으로 간택되어 입궁해 숙의에 봉작되었다.
한편, 딸이 후궁이 되면서 허경은 순서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관직이 올랐고 뇌물을 받아 챙겼다.[4] 심지어 당시 기록에는 허경의 아들이 글도 모르는데 과거 시험에 뽑혔다는 이야기까지 있다.
왕이
성균관(成均館)에 거둥하여 성묘(聖廟)에 배알하였다. 인하여 과거를 베풀고 선비들에게 시험을 보여, 허직(許稷) 등 5명을 뽑았다. 허직은 허 숙의(許淑儀)의 오라비이다. 교만하고 어리석어 문자를 몰랐는데, 다른 사람의 글을 표절해 고시관을 통해 뽑혔다고 한다.
《 광해군일기》 광해군 9년 9월 24일
《 광해군일기》 광해군 9년 9월 24일
이후 정1품 빈으로 승격되어 수빈(粹嬪)에 봉해졌으나,[5][6][7] 1623년(인조 1년) 인조반정이 일어나면서 제천(堤川)에 유배되는 처분을 받았다.
3. 여담
- 《공사견문록》에는 수빈 허씨를 모신 궁녀에 대한 일화가 실려 있다. 궁녀 조씨는 계해년에 인조가 불러다 궁중에 두었고, 현종이 태어나자 보모 역할을 맡았다. 현종이 5, 6세 때에, 불을 가지고 장난을 치자 조씨가 "저의 조부가 불로써 나라를 얻었으니 저도 배우려 하는 것인가" 라고 말하였다. 현종이 이를 기억해두었다가 왕위에 오른 다음에 조씨를 내쳤다고 한다.
4. 가족 관계
- 조부 : 허잠(許潛)
- 조모 : 민연향(閔蓮香) - 민희열[8](閔希說)의 딸
- 고모 : 허순영(許順英)
- 고모부 : 연원부원군 이광정(延原府院君 李光庭)
- 숙부 : 허한(許僩)
- 사촌 : 허적(許積, 1610 ~ 1680)
- 아버지 : 허경(許儆, 1566 ~ 1617?[9])
- 어머니 : 평산 신씨(平山 申氏)
- 큰오빠 - 허자(許秭, 1588 ~ ?)
- 작은오빠 - 허직(許稷, 1590 ~ ?)
- 남동생 - 허익(許䄩, 1598 ~ ?)
- 남동생 - 허륙(許稑, 1603 ~ ?)
- 여동생 - 허예순(許禮純, 1604 ~ ?)
- 여동생 - 허애순(許愛純, 1608 ~ ?)
- 여동생 - 허종순(許終純, 1610 ~ ?)
- 여동생 - 허말순(許末純, 1615 ~ ?)
- 서모 : 미상
- 이복 남매 - 허충(許种)
- 남편 : 광해군(光海君, 1575 ~ 1641)
[출처]
출처
[출처]
출처
[3]
5촌 당고모 정빈 민씨의 자녀들과는 6촌 남매인 동시에 시동생, 시누이/형수, 올케 관계가 된다.
[4]
허경은 1617년(광해군 9)에 병을 앓다가 죽었기 때문에 화를 면할 수 있었다.
[5]
서치상. (2020). 광해․인조 연간의 해인사 수다라장과 법보전 상량문 연구. 건축역사연구, 29(1), 65-76.
[6]
정확한 진급 시기는 미상이나 1622년(광해군 14년)에 수빈으로 칭하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최소한 그 이전에 빈에 봉작된 것으로 보인다.
[7]
여담으로 이 수빈(粹嬪)이라는 작호는
인수대비가 세자빈 시절 받았던 빈호(嬪號)와 똑같다.
[8]
경숙옹주의 아들
[9]
광해군일기 중초본 122권, 광해 9년 12월 15일 병오 7번째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