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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해경 경비정 제863호 침몰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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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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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사건 전개3. 사건 이후4. 이후

1. 개요

1974년 6월 28일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앞바다에서 어선을 보호하던 대한민국 해경 속초기지대 소속 초계정 제863호가 조선인민군 해군 경비정 3척과 교전 도중 침몰해 승조원 28명이 모두 전사 또는 실종된 사건이다. 언론에서는 속초해전이라고도 불리는데 둘 다 맞는 말이다. 대한민국 해양경찰청 창설 이래 10대 해상사건 중 하나다. #

2. 사건 전개

1974년 6월 28일, 판문점에서는 남북조절위원회 부위원장 회담이 열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8시 50분경 어로보호를 위한 경비를 서던 해양 경비정 제863호에 조선인민군 소속 경비정 2척이 접근해 왔고 10시 30분 동쪽 군사경계선 남방 해상에서 경비정 3척에 둘러싸여 교전 중이라는 속보가 대한민국 국방부를 통해 보고되었다.

이후 대한민국 국방부 조선인민군 함정 3척은 863호를 납북하려고 했으며, 863호의 승무원들이 완강하게 저항하자 북쪽으로 밀고 가다가 포격 등으로 침몰했다고 한다. 수적으로 열세였던 863호의 승무원은 결사항전을 택했다는 것.

북한은 군사분계선 해상연장선 부근 해역에서 경비정 1척을 침몰시키고 여럿 승무원을 사로잡았다고 보도했다는 사실이 도쿄 UPI[1]를 통해 알려졌다.

승무원 28명중 중 8명은 전사했으며 18명은 실종되었고 2명은 납북되었다고 한다.

당시 대한민국 공군 소속의 전투기인 F-4D가 조선인민군 함정을 공격하기 위해 이륙했으나 찾지 못했고 조선인민군 MiG-15 또한 출격했으나 이 당시 기상이 워낙 안 좋아서 앞도 잘 보이지 않았던 모양인지 2마일을 앞두고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3. 사건 이후

이 당시 사고 현장 수습을 했어야 하지만 기상이 워낙 안 좋았던 관계로 공군기와 해군 함정으로의 수색은 불가했다고 한다. 낮고 짙은 구름이 끼어 있었다고.

7월 2일 한국의 오징어잡이 어선이 시신 2구를 인양했으며 7월 3일에는 경비정이 시신 2구를 추가로 인양했다고 한다. 7월 4일에는 구명복을 입고 머리에 관통상을 입은 시신 2구를 인양했으며 7월 13일 7월 15일에는 각각 경상북도 영일군 경상북도 영덕군이 인접한 앞바다인 영일만에서 각각 1구의 시신이 인양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심한 파편상과 총상을 입었다고 알려졌으며 6구는 총탄에 맞은 다리를 지혈하기 위해서 옷을 찢어서 동여맨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당시 교전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 심지어 경상북도까지 떠내려온 시신은 신원 확인 결과 김시오 순경과 김원한 순경으로 밝혀졌는데 이들의 고향이 경상남도 울주군 경상북도 영일군임이 알려지면서 자신의 고향에 있는 부모, 형제, 처자를 찾아 먼길을 떠내려온 것이 아니냐는 말과 함께 많은 이들을 눈물짓게 했다.

당연히 판문점에서는 난리가 났다. 대한민국은 회담 도중에 북한이 무력 도발을 했다며 항의했는데 북한은 오히려 남한의 도발이라며 어거지를 부렸다고 한다. 유엔 한국대표부는 북한이 남한 해양경비대의 초계정 863호를 격침 시킨 데에 대해 항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북한 측의 요청으로 7월 1일 판문점에서 열린 제352차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에서 북한은 28일 8시 10분에 중무장을 한 해경 경비정 1척이 안개 낀 군사분계선 북쪽 9마일 해상에서 정탐을 하다가 북한 함정이 나타나자 먼저 포격을 했고 이에 북한 함정은 격침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863호의 경비정의 통신장과 갑판원의 자백 테이프를 들려줬다고 한다. 북한 말로는 생포된 2명이라고 한다.

하지만 북한 측의 주장은 말도 안 되는 것들이 많다. 유엔군에 의하면 863호는 최대 속력이 13노트에 불과한 데다 30년 전에 건조된 낡은 경무장 초계함이며 어선의 월선을 막는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였다고 반박하였다. 또 그 자백 테이프 또한 녹음 상태가 별로인 데다 납북되었다는 포로들이 문화어를 쓰고 있다는 점을 들어 반박했다.

여기에 863호는 1941년 일본에서 건조된 최대 속력 13노트의 200톤급의 소형경비정이다. 1953년 대한민국 해경 창설 당시 인수되었으며, 창설 발대식 당시 사진에 있던 소형정 중 하나가 바로 863호이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해누리급의 소형경비정에 불과한 셈. 따라서 중무장이 기본인 해우리급에 비해 톤수가 한참 모자란다. 남한의 도발이라고 하기에도 웃긴 것이 북한은 애초 경비정 2척으로 숫적 우위를 점해 놓고 무슨 남한의 도발이라고 하는 건지 의심되는 수준. 침몰 당시인 1974년에는 무려 33년이나 지난 셈이다. 초계정이 숫적으로 열세면 학살당하는 건 북한도 알 텐데 말이다.

이 사건까지 북한의 대형 해상 대남도발은 지난 10년 간 무려 16번이나 일어났다.
<colbgcolor=#315288> 대한뉴스에 방영된 규탄식 모습

고성에서는 당연히 들고 일어났다. 6월 29일 오전에는 고성 공설운동장에서 5만여 명이 모여 북한의 도발 행위를 규탄하는 궐기대회를 열었으며 희생자의 유가족이 다니던 부산광역시 중구의 봉래국민학교에서 3천 명이 모인 규탄 대회가 열렸다. 7월 1일에는 인천광역시 중구에서 33만 명이 모여 희생자 보상과 생존자 송환을 요구하는 궐기대회가 열렸다. 주문진에서는 3만 명이 참여한 궐기대회가 열렸다.

7월 2일 대한민국 국회 내무위원회에서 863호가 침몰된 곳까지 간 이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여 논란이 일었고 7월 12일 대한민국 국회에서 열린 합동간담회에서 국방부는 "경비정이 어선을 보호하던 중이였다."고 설명했으나 수산청에서는 "사고 당일 날씨가 좋지 않아 어선이 출어하지 않았다."고 밝혀 논란이 일었다.

경비정 침몰에 대한 책임으로 7월 11일 해양경찰대장인 박용전 치안감이 사퇴하였다.

4. 이후

YTL30호 침몰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던 터라 충격이 더 컸다.

이처럼 많은 희생자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이 당시 국회에서는 오히려 "863호가 월북하려고 한 게 아니냐"며 논란이 일었고 국방부와 정부 또한 이 사건에 대해 제대로 조사하려고 하지 않자 유가족들은 아예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말았다. 이 사건이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이유. 실제로 72정 침몰 사건에서도 해경은 열악한 환경과 시설 조차도 주목받지 못했고 일부 해경 정도만 아는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대한민국 해양경찰청 창설 이래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온 사건인데도 말이다.

이후에도 중국과 북한의 도발로 인한 해경의 희생은 계속되었고 대한민국 해경 1986년 12월 30일에 순직·전사한 호국영령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충혼탑을 건립했다. 강원도 속초시 장사동에 있는 해양경찰 충혼탑이 그것. 처음에는 충혼탑만 달랑 있었고 그 또한 건립하기까지 애로사항이 굉장히 많았다. 사건이 알려져 있지 않은 것도 있지만 언론과 정부의 관심에서 점점 잊혀져 갔다가...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인 2002년 4월과 6월에 드디어 이 충혼탑이 세워진 일대를 성역화 작업을 했고 참여정부 시기인 2003년 4월에 새로 조경공사를 하면서 해경 속초 충혼탑이 완성되었다. #

[1] 통일교 소속의 국제합동통신. 당연히 UPI 코리아와는 관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