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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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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별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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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Liber Samuelis
영어 Books of Samuel
한자(한국어) 사무엘記
중국어 撒慕爾紀
일본어 サムエル記 (サムエルき)
기본 정보
전승되는 저자 사무엘[1]
기록 연대 B.C. 8세기[2]~6세기 중엽 (신명기계 역사서)[3]
B.C. 950년경[4]
분량 사무엘상: 31장 / 사무엘하: 24장
주요인물 사무엘상: 사무엘, 사울, 다윗
사무엘하: 다윗

1. 개요2. 내용
2.1. 사무엘상 (사무엘기 상권, 1사무)2.2. 사무엘하 (사무엘기 하권, 2사무)
2.2.1. 본문(1~20장)2.2.2. 부록(21~24장)
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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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네가 칼을 차고 창과 표창을 잡고 나왔다만, 나는 만군의 야훼의 이름을 믿고 나왔다." 주머니에서 돌 하나를 꺼내어 팔매질을 하여 그 불레셋 장수의 이마를 맞혔다. 돌이 이마에 박히자 그는 땅바닥에 쓰러졌다.
사무엘상 17장 45, 49절 ( 공동번역 성서)
다윗은 나이 삼십에 왕위에 올라 사십 년을 다스렸다.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는 삼십삼 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다.
사무엘하 5장 4~5절 (공동번역 성서)

성경의 9, 10번째 권.

원래 한 권이었으나 분량이 너무 길어서 상권과 하권으로 나누게 되었다.

탈무드에 따르면 사무엘이 저자라고 하지만 사무엘이 이미 사무엘 상권[5]에서 죽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다윗의 측근인 선견자 가드와 예언자 나단 또는 사무엘의 제자들이 정리한 역사를 바탕으로 신명기계 역사가들이 편찬했다고 본다.[6] 또는 문체와 내용의 배열이 일관되게 유지되는 것을 근거로 단일 저자가 사무엘, 가드·나단의 관련 기록을 참고하여 서술했다는 견해도 있다. 한편 궁정의 음험한 이야기들이 서술되어 있어서 열왕기와 같이 궁정 내관이나 궁정 역사가들 혹은 그들의 기록에 접근 가능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 서술에 참여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내용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시점인 판관 시대가 끝나고 본격적인 왕정시대가 열리는 시점을 다루고 있으며, 마지막 사사인 사무엘과 초대 왕 사울, 그리고 골리앗을 물리치고 주목받게 된 다윗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구약에서 스토리 전개가 출애굽기 전반부와 함께 가장 흥미진진한 편에 속한다.

2. 내용

사무엘서는 하느님의 질서가 붕괴한 세상에, 무너진 질서를 다시 세울 사람(사무엘)이 불러들여지는 과정과, 그렇게 불러진 사람이 질서를 가져올 왕을 잘못 세우는 사례[7]( 사울), 그런 실책을 극복하고 제대로 세워지는 왕의 모습( 다윗), 그리고 그렇게 세워진 "이상적인 왕" 조차도 결국 잘못되어 무너짐[8](마지막 장들)을 담고 있다.

제목은 사무엘이지만, 정작 사무엘은 상편 후반부에서 노환으로 죽어 퇴장해버리고, 이후 하느님의 질서를 가져올 왕으로써 다윗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물론, 질서를 다시 세우기 위해 불러져 일하는 사람(사무엘)에 대한 이야기이므로, 제목과 내용이 다른 것은 아니다.[9]

사무엘을 통해 다시 세워진 질서와, 그 질서를 세우고 지킬 "왕"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열왕기에서 이어지는데, 사무엘서 끝 자락에서 언급되듯, 하느님의 백성들은 또 다시 같은 잘못을 반복한다. 그렇게 질서가 무너지고 다시 회복되는 일을 반복하는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한번 모아 정리해주는 것이 역대기. 이를 끝으로 결국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없는 인생은 반드시 죽으리라고 선언된 그대로 영속하지 못하고 죽을 수 밖에 없으며, (노아와의 언약에 따라) 죽음의 선언에서 인생이 피할 수 있도록 무너지지 않을 왕, 곧 메시아가 세워질 것임을 알리는 것이 예언서들이며, 그렇게 나타날 메시아가 바로세울 질서를 위한 지혜를 담은 것이 소위 "성문서"들이다.

이 메시아가 어떻게 올 것인지, 그리고 죽음의 선언에서 인생이 어떻게 구해질 것인지에 대해 어떻게 믿느냐에 따라 유대교와 기독교가 나뉜다.[10] 이런 이유로 유대교와 기독교가 서로 다른 구역 성서 배치 순서를 가지고 있으며, 유대교와 기독교 각 종교 내에서도 교파에따라 성서 배치가 다르다.

2.1. 사무엘상 (사무엘기 상권, 1사무)

총 31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작은 판관(사사) 시대 후기, 에브라임에 사는 숩 가문의 레위 지파의 사람 엘카나(엘가나)의 두 아내 중 하나인 한나의 이야기이다. 한나는 남편의 사랑을 받았지만 오랫동안 아이를 낳지 못해, 남편의 다른 아내인 브닌나에게서 온갖 설움과 조롱을 당하고 있었다. 엘카나가 한나를 더 아끼고 사랑하는 것을 브닌나가 질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11] 게다가 한나와는 달리 브닌나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둘이나 낳은 상황이었고, 이는 브닌나에게는 한나를 괴롭힐 좋은 구실이 되었을 것이다.

결국 한나는 실로[12]에 올라가 주님께 눈물로 호소하며 아이를 낳게 해달라고 하며, 만약 주님께서 이러한 기도에 응답하시면 아이를 나지르인(나실인, '하느님의 사람')으로 평생 바치겠다는 서약을 드린다[13]. 사실 이 기도는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서약[14][15] 중에 하나이다. 대사제(대제사장) 엘리가 그 광경을 보았다. 엘리는 한나가 술에 취해 헛소리를 하는 줄 알고 나무랐다가, 사정 이야기를 듣고 미안해한 뒤 위로해서 돌려보냈다.

이후 한나는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바로 예언자 사무엘이었다.

한나는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약속대로 사무엘이 젖을 떼는 3살이 되자 그를 대사제 엘리에게 맡겼다. 사무엘은 당시 실로 성소의 대사제였던 엘리의 시종이 되고, 엘리는 한나에게 사무엘을 대신할 아이들을 낳을 것이란 축복을 해주었다. 이후 한나는 엘카나와의 사이에서 세 아들과 두 딸을 얻는다.

어린 사무엘이 성막에 왔을 당시 대사제[16] 엘리는 늙었고,[17]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18]는 부패의 극을 달리고 있었다. 모세가 정한 제사의 율법에 따르자면 주님에게 바치는 고기는 주님께 바친 뒤에야 사제들이 먹을 수 있었지만, 이 두 아들은 주님께 바치기도 전에 먼저 사제들 몫을 따로 내놓으라고 행패를 부린다.[19] 그것도 자신들이 원하는 부위로만 말이다. 본래 율법에 따르면 사제들의 몫은 흔든 가슴살과 들어올린 뒷다리인데 이들은 율법을 어긴 셈이다. 이것도 모자라 성스러운 성막에서 봉사임무를 맡은 여성을 건드리기까지 하는 등의 일들이 묘사된다.[20] 엘리는 이 기막힌 상황을 전해듣고 아들들을 꾸짖지만[21] 먹히지 않았는데, 한두 번도 아니고 자기를 우습게 아는 이들 부자의 행태에 격노한 주님은 엘리의 집안을 벌하겠다고 결심한 터라 이를 사무엘에게 말씀하신다. 성경에 따르면 주님께서 자고 있던 어린 사무엘을 불렀고 사무엘은 엘리가 자신을 부르는줄 알았다. 엘리도 세 번째에서야 주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 것을 알고 대답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이는 엘리의 총기기 심히 떨어졌음을 알리는 대목이다. 그리고 네 번째에 주께서 사무엘을 부르고 사무엘이 "주여 말씀하소서 주의 종이 듣고 있나이다." 라고 대답하자 주님은 엘리와 두 아들은 나의 뜻과 계율을 어기고 부패히 살고 있으니 내가 그 집안에 큰 벌을 내릴 것이라고 경고하고, 사무엘이 다음날 아침에 그대로 엘리에게 전한다.[22] 엘리는 사무엘이 전한 주님의 전언을 들은 뒤 일족의 운명을 직감하고 한숨을 푹 쉬었다.[23]

이후 사무엘은 주의 율법을 전해들으며 이를 이스라엘 내 백성들에게 알리는 판관(사사)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주님의 예언대로 머지않아 이스라엘 필리스티아(불레셋·블레셋)의 전쟁에서 패배해 엘리의 두 아들은 전사하고 하느님의 궤도 빼앗겼다.[24]
당일에 어떤 베냐민 사람이 진영에서 달려나와 자기의 옷을 찢고 자기의 머리에 티끌을 덮어쓰고 실로에 이르니라
그가 이를 때는 엘리가 길 옆 자기의 의자에 앉아 기다리며 그의 마음이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떨릴 즈음이라 그 사람이 성읍에 들어오며 알리매 온 성읍이 부르짖는지라
엘리가 그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이르되 이 떠드는 소리는 어찌 됨이냐 그 사람이 빨리 가서 엘리에게 말하니
그 때에 엘리의 나이가 구십팔 세라 그의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그 사람이 엘리에게 말하되 나는 진중에서 나온 자라 내가 오늘 진중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엘리가 이르되 내 아들아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
소식을 전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였고 백성 중에는 큰 살륙이 있었고 당신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임을 당하였고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나이다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가 많고 비대한 까닭이라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사십 년이었더라
사무엘상 4장 12절~22절(개역개정)
이때 베냐민 지파 소속의 병사가 옷을 찢고 산발한 머리에 재를 뿌린 뒤 실로로 달려와서 이 비보를 알리는데 98세의 늙은 엘리는 이 소식을 듣고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즉사(…),[25] 둘째 며느리는 임신 중이었는데 남편의 죽음을 듣고 충격으로 등을 구부린 상태로 분만하게 되어 난산하게 되고 결국 그 후유증으로 아이만 남긴 채 죽고 만다. 이때 산파들이 "두려워 마세요. 지금 건강한 아들이 태어났습니다."라 위로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기뻐하지도 슬퍼하지도 않고 죽으면서 아이의 이름을 '이카봇(이가봇)'[26]이라고 짓는데, 이는 "하느님의 영광이 떠났다."라는 체념의 뜻이다.[27] [28]

한편 필리스티아인들이 빼앗은 궤를 아스돗의 다곤 신전에 전리품으로 놔뒀더니 다곤 신상이 첫날에는 넘어져 있어서 다시 세워놓자 다음날에는 오체분시되어 널부러져 있는 사건이 일어나고, 다른 도시로 옮기니 전염병이 창궐하는 재앙이 벌어지고 결국엔 필리스티아 내 전지역 주민들이 악성 종기에 걸리고 쥐까지 창궐하는 상황에 처한다. 그렇게 7달이 흐르고, 한 순간에 큰 재앙을 받은 필리스티아인들 모두 화를 내며 왕에게 따지고 결국 필리스티아 왕이 무당에게 자문을 구하자, 무당은 점을 친 뒤 "먼저 황금으로 종기 5개, 쥐 5개를 만들어 야훼께 제사를 드리시고, 새끼를 낳은 지 얼마 안 된 암소 두 마리에게 수레를 맨 뒤, 수레에 성궤를 싣고 소 맘대로 가게 내비두십시오. 단 송아지는 외양간에 매 둬야 합니다. 만약 암소들이 이스라엘의 벧세메스로 가면 이 재앙은 야훼가 내린 것이니 제사에 따라서 우리를 용서해 주실 것이고, 소들이 새끼를 찾아서 외양간으로 가면 이 재앙은 그냥 우연히 일어난 겁니다."라고 한다. 소들은 곧바로 국경을 넘어갔고, 결국 궤가 이스라엘로 돌아왔다. 궤가 돌아오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암소들을 잡고 수레를 패서 감사제사를 올린다. 돌아온 뒤에도 호기심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안에 뭐가 있나 보려다가 재앙으로 죽는 사태가 벌어진 뒤에, 사실상 다윗 예루살렘으로 옮겨올 때까지 바알레유다라는 곳의 아비나답이라는 사람의 집에서 약 20년간 봉인된다.[29]

이스라엘이 필리스티아에 패배해 위기에 처했을 무렵, 성장한 사무엘이 등장해 이스라엘 전 국민을 미스바[30]라는 곳으로 모으고 주님께 용서를 빌게 한다. 필리스티아가 이 소식을 듣고 미스바를 기습공격했지만 주님의 기상공격(!)으로 도리어 역관광당하고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판관(사사)가 되어 20년 넘게 이스라엘을 다스린다.[31]

사무엘이 늙자 사무엘의 두 아들인 요엘과 아비야가 판관(사사)직을 계승했는데, 뇌물을 받고 공정하지 못한 판결을 하는 등의 문제가 생기자[32][33]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을 요구한다. 사무엘은 이에 크게 실망해 여호와께 기도를 드리고 주님은 왕정이 생길 경우 일어날 일을 알려주었지만[34][35], 백성들은 우리에게도 왕이 있어서 저 이민족들의 왕처럼 우리를 다스리며 전쟁에 우리를 이끌고 나가 싸워야한다며 요지부동.[36] 결국 왕을 세우기로 하고 베냐민 가문 출신의 사울이 왕으로 임명된다. 하지만 아직 판관 시대와 왕정 시대의 과도기였던 탓인지, 어정쩡한 위치에 있던 중 쳐들어온 암몬군을 무찌르고[37][38] 정식으로 왕정의 체계가 갖춰진다.

그러나 사울은 왕이 된 후 사람이 달라져서 주님을 실망시키는 일을 저지르게 되고, 필리스티아와의 전투를 앞두고 대사제가 해야 할 번제 사울 본인이 함으로 사무엘과 하느님의 분노를 사게 된다.[39] 결정적으로 주님이 명한 대로 아말렉 족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후 아말렉 족의 모든 생명체들을 죽여야 했지만, 좋은 가축과 아말렉 왕 아각을 빼돌리고, 승전비를 세웠다가 사무엘에게 들켰다.

결국 하느님 사울의 왕위를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주겠다는 선언을 하고 만다. 이때 나온 유명한 말이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40][41] 다급해진 사울이 사무엘의 옷자락을 잡고 매달리다가 옷자락이 찢어지자, 이처럼 하느님 사울의 이웃에게 나라를 떼어줄 것이라는 예언을 한다.[42] 사울이 살려두고 있던 아말렉의 왕 아각은 사무엘이 직접 죽이고,[43] 사무엘과 사울은 다시 보는 일이 없었다. 후술할 라마 나욧 일을 생각하면 이성을 지닌 채 사울이 사무엘을 알아보고 대화다운 대화를 다시하지 않았다는 게 더 정확하지만.

사무엘은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베들레헴에 갔다. 사무엘은 차기 왕을 보러 간다고 하면 사울 왕에게 죽을 것이 분명하다며 어떡할 지 여쭙고, 이에 하느님은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제사를 드린다는 핑계를 대라고 한다. 하느님의 명을 따라 시찰을 간 사무엘은 그곳에서 양치기 소년 다윗을 찾아 그에게 기름을 붓는다. 또한 다윗 사울의 마음에 들어 시중이 되었는데, 사울이 악령에게 괴롭힘을 받을 때마다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아 성령을 받은 다윗이 수금을 켜면 회복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다윗 군대에 간 형들에게 식량 심부름을 갔다가 이스라엘을 도발하는 골리앗을 보았다[44]. 그가 하느님의 군대를 모욕했다 여긴 다윗 사울에게 자기가 그를 해치우겠다고 말해 허락을 받고[45], 물매로 골리앗을 기절시킨 뒤 그의 칼을 빼앗아서 목을 친다.

다윗은 일약 국민적 영웅이 되고 사울의 아들 요나단의 후원을 받게 되지만, 여인들이 "사울은 수천을 치셨고, 다윗은 수만을 치셨다네!"라는 노래를 지어 부르는 것을 듣고 빡친 사울 다윗에게 왕의 자리마저 가겠다며 경계하기 시작한다.[46] 사울은 여느 때처럼 수금 타던 다윗에게 창을 던졌지만 죽이지 못했고, 꼴도 보기 싫어서 그를 천인대장으로 임명해 전쟁터로 내몰았지만 연전연승해 역효과만 났다. 약이 오른 사울 다윗을 죽이겠다고 엄포를 놓지만 아들 요나단 및 딸이자 다윗의 아내인 미갈이 그를 감싸서 목숨을 건졌다. 이때부터 다윗 사울의 창끝을 피해 도피생활을 시작했다. 도망을 칠 당시 사무엘이 살고 있는 라마에 있는 나욧(예언자 학교, 예언자 공동체로 해석)으로 피했으나, 사울이 병력이 채 도달하기도 전에 병사들이 일제히 성령에 취해 예언을 하면서 맥없이 돌아가는 일이 발생한다. 세 차례 파병에도 같은 일이 일어나자 결국 사울이 직접 쳐들어오지만, 오히려 라마 나욧에 도달하기도 전에 사울 역시 성령에 취해 옷을 벗고 누울 정도로 인사불성이 되어 예언을 하는 일이 발생한다. 심지어 사무엘 눈앞에서! 여튼 사무엘에게 있는 성령의 능력으로 계속 다윗은 보호를 받았지만, 이에 자기의 존재로 사무엘및 선지 생도들에게 누를 끼쳤다는 심적인 부담을 느낀 탓인지, 아니면 사울이 더 이를 갈고 크게 쳐들어올 것을 두려워했는지 모르지만, 다윗은 사무엘의 곁을 떠나 도주의 길에 다시금 오른다.

사울 다윗을 끝없이 추적하고, 다윗은 필리스티아로 망명한다. 다윗은 2번이나 사울을 죽일 기회를 잡았지만 하느님이 지명한 왕을 죽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옷자락만 자르거나 창과 물병을 들고 나와서 사울에게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당신을 안 죽였다. 왜 나를 쫓아오느냐?"고 외친다. 사울은 그때마다 울면서 자기가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었지만 그때 뿐이었고 다시 다윗을 죽이려 들었다. 결국 다윗은 자신의 수하들과 함께 아예 적국인 필리스티아의 지역인 가드로 망명했다. 문제는 다윗이 골리앗에게 뺏은 검을 차고 있었는데 다윗은 사울의 치세 하에 수하 장수로서 필리스티아와의 여러 전투들을 수행해 이긴 전쟁 영웅이니만큼, 필리스티아에서는 기가 막혔을 것이다. 그래서 다윗이 망명해왔을 때, 필리스티아의 고관들이 "이 새끼 사울보다 위대하다고 칭송받는 다윗 아님? 마침 골리앗 죽인 원수니 당장 잡아죽여야지 망명은 무슨ㅋ"이라고 하여 분위기가 심상치않게 되자, 다윗은 그들 앞에서 대문에 몸을 비비고 침을 질질 흘리며 미친 척(…)을 하고, 필리스티아 가드의 왕 아기스[47]는 "내 주변에 미친 놈이 없다고 진짜 미친 놈을 다윗이라고 데려왔냐?" 며 다윗을 내쫓아버린다. 이후 다윗이 아둘람 동굴에 은거한다는 소문을 들은 온갖 사회의 낙오자 400명이 오면서 자연스럽게 다윗은 용병단을 구성하였고 600명까지 세를 불렸지만, 여전히 한 용병단이 한 나라의 군대를 피하는 데에 한계가 있어 다시금 필리스티아로 망명을 청한다. 이 때 필리스티아 왕 아기스[48]의 눈에 들어 시글락이라는 본거지가 생기고 여러 전투로 승승장구하게 되지만, 자신의 조국 이스라엘과 싸워야 할 상황에 처한다. 애초에 다윗은 사울을 죽일 생각 따윈 없었기 때문에 그는 큰 고뇌에 빠진다. 만약 싸우게 되면 이스라엘 족속에게 매국노 취급을 받을 게 뻔하고, 거절하자니 객장이라는 아슬아슬한 위치가 마음에 걸려 기도하던 중 뜻밖의 희소식이 날아오는데, 다윗을 경계하던 필리스티아의 다른 부족들이 "이봐요, 히브리하고 전쟁하는데 히브리 인을 써먹는 거 너무 불안한데? 게다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다윗을?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하고 칭송받던 그 다윗이 뒤에서 히브리 인들과 힘을 합치면 뒷감당 어떻게 하시려고?" 하며 반대한 것. 결국 다윗은 본거지인 시글락으로 돌아가게 된다.[49]

한편, 하느님에게 버림받아 어떠한 방법으로도 대답을 얻지 못하고, 사무엘 예언자마저 죽은 상황에서 다윗도 없이 필리스티아가 쳐들어오자, 공포에 휩싸인 사울은 엔돌이란 곳으로 가서 여자 무당에게 죽은 사무엘의 영혼을 불러서 예언을 들으려 한다. 그런데 진짜로 죽은 사무엘의 영혼이 나타난다. 이는 구약에서 죽은 자의 영혼이 나오는 유일한 부분이다. 무당이 자기가 불러놓고도 놀라는 황당한 내용이 압권.[50][51][52] 사울의 부름에 노골적으로 성가심을 표하던 사무엘의 영혼은 " 하느님께서 너를 떠나 네 적이 되신 지가 언젠데 이제와서 나를 찾느냐? 너와 네 아들들이 내일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 하고 예언한 뒤 사라진다. 그 예언대로 이스라엘군은 길보아산에서 필리스티아 군대에게 참패를 당하는데, 요나단을 비롯한 사울의 아들들[53]은 모두 전사, 사울은 비참한 상황이 절망하여 자살하는 것으로 사무엘상이 마무리된다.

2.2. 사무엘하 (사무엘기 하권, 2사무)

총 2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정작 사무엘은 이미 죽었으므로, 다윗기나 다름 없다.[54]

주로 이스라엘의 2대왕 다윗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초대 왕 사울의 죽음을 다윗이 맞게되는 것부터 시작되어 다윗의 치적, 범죄(간음 및 살인)와 그에 따른 하느님의 벌(연이은 반란) 등으로 끝을 맺는다.

2.2.1. 본문(1~20장)

본거지를 습격하여 자신들의 재산과 가족들을 약탈한 아말렉 사람들을 쫓아가 죽이고 빼앗긴 것 모두를 다시 찾은 뒤 다윗이 시글락으로 돌아온지 3일째 되던 날, 사울 진영 소속 아말렉 소년을 만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아말렉 소년은 죽음을 애도하는 자세를 하고 있었고, 소년의 증언을 들은 다윗은 처음으로 사울 요나단의 죽음을 알게 되는데, 이 소년 병사는 자신이 큰 부상을 입고 괴로워하는 사울 왕을 본인의 요청대로 죽였다고 보고했다가, 기름부음 받은 왕을 시해한 죄로 처형된다.[55] 다윗 사울과 더불어 가장 친한 인물이자 자신을 알아준 은인 요나단을 추모하는 활 노래를 지어 백성들에게 부르게 했다.

하느님의 명으로 헤브론에 올라간 다윗은 나이 30세에 유다 지파에 의해 유다의 왕이 되었다. 하지만 사울의 군장인 아브넬과 나머지 11지파는 마하나임에서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56]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게 되는데, 2년 만에 이스보셋으로부터 아버지 사울 후궁과 동침했다고 추궁받은 아브넬이 열받아서 다윗에게 전향했다.

그러나 아브넬은 곧 다윗의 오른팔인 요압에 의해 살해되었는데, 예전 싸움에서 그가 요압의 동생인 아사헬[57]을 살해했기 때문이었다. 다윗은 아브넬의 죽음을 크게 슬퍼하며 "넬의 아들 아브넬이 피를 흘리고 죽었으나, 나와 내 나라는 영원히 야훼께 죄받을 일이 없다. 그 죄는 요압의 머리와 그 가문에 돌아갈 것이다. 그 집안에는 성병환자, 문둥이, 물레질이나 할 자, 칼에 맞아 죽거나 굶어 죽을 자가 끊이지 아니하리라."라는 말을 한다. 아브넬의 죽음으로 혼란에 빠진 이스보셋도 곧 암살당해, 다윗에게 대항하던 세력은 와해된다. 암살자들은 이스보셋이 침상에서 낮잠을 자고 있을 때 배를 찌르고 목을 베어 다윗에게 가지만 악인이 의인을 침상에서 죽였다며 사형에 처하고 사지를 잘라 헤브론 못가에 매달았다.[58] 이스보셋의 머리는 아브넬의 무덤에 합장하고 장사를 지내라고 명했다.

이스보셋이 죽은 뒤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나아와서 다윗 이스라엘 왕으로 삼는데, 헤브론에서 5년 6개월을 더 머물다가 예루살렘을 빼앗고 다윗성을 세운 뒤 천도하여 33년을 더 통치, 총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다윗 성으로 법궤를 가져온 후 성전을 지으려고 시도하지만 하느님이 거부하여[59] 대신 성전건축에 필요한 자재들을 차곡차곡 잘 모아놓았다. 주변 나라들을 정복하여 영토를 에돔에서 유프라테스 강 상류 및 시리아까지 확장, 대왕국을 건설했지만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와의 NTR 사건[60] 이후 어려움에 빠지기 시작했다.

말년에는 삼남 압살롬의 반란과 죽음,[61] 베냐민 지파 사람 세바의 반란을 진압하던 중 압살롬의 장수였다가 다윗에게 발탁된 아마사가 죽는 일[62] 등으로 큰 심적 고통을 겪게 되었다.

2.2.2. 부록(21~24장)

이 부분에 기록된 흉년, 다윗의 유언, 인구조사는 20장까지의 이야기 흐름과 조금 동떨어진 듯한 내용인데, 기존 내용(1~20장)에 붙은 부록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있다.

삼년 기근을 해결한 것과 다윗의 노래 및 유언, 인구조사를 했다가 이스라엘 땅에 사흘 간 전염병이 창궐한 일 등이 서술되어 있다.

기근의 원인은 여호수아와 기브온 사람들이 하느님의 이름을 두고 맺은 계약을 사울이 어기고 기브온 사람을 전부 죽이려고 했기 때문인데, 기브온 사람은 아모리 족속 중 하나로 가나안 정복 당시 멸족을 당했어야 했지만 여호수아를 속여서 하느님의 이름을 두고 죽이지 않기로 계약을 맺은 탓에 대신 성막에서 나무를 패고 물을 긷는 종으로 삼았다. 기브온 사람들이 사울의 자손 7명을 넘겨 달라고 요구하여 절친이었던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만 빼고 넘겨주었는데 전원 목이 매달려 죽었다. 이후 사울의 첩이었던 리스바가 비가 쏟아질 (기근이 끝날)때까지 이 사람들의 시체를 돌보았다.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은 이 매달려 죽은 자들의 시체뿐 아니라, 길르앗 야베스에 있던 사울과 요나단의 시체까지 가져와서 사울의 가족묘에 합장해 준다.

사흘 간의 전염병은 하느님이 이스라엘에게 화가 나서 다윗에게 인구 조사를 명했고, 다윗이 요압을 시켜 그대로 했더니 예언자 가드를 통해 3가지 벌칙 중 하나를 골라 내린 벌이었다. 나머지 2개는 7년의 기근과 3달간의 도피생활이다. 다윗은 하느님의 진노를 잠재우기 위해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 올라가 제단을 세우고 제물을 바쳐 재난을 멈추었다.

3. 여담



[1] 전승상으로는 이렇지만 책의 후반부도 아니고 중반부에서 사무엘이 사망하므로 말이 안된다. 이에 대한 설명은 하단 참조. [2] 사무엘기의 원형이 등장한 시기 [3] 에리히 쳉어(Erich Zenger) 등의 《구약성경 개론(Einleitung in das Alte Testament)》 한국어판 (분도출판사 2012). 1013쪽. [4] 전통적 견해 [5] 28장 3절에서 사망. [6] 참고 : 다윗 왕의 행적은 처음부터 끝까지 선견자 사무엘의 역사서와 예언자 나단의 역사서와 선견자 가드의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의 통치 비화와 무용담, 그리고 그와 이스라엘과 세상 온 나라들이 겪은 역사가 아울러 기록되어 있다. 역대기하 29장 29-30절(공동번역성서) [7] 또한 질서가 세워짐과 동시에 바로 다시 무너지는 근본적인 원인, 곧, 홀로 길을 찾을 수 없는 가련한 인생의 본질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8] 하느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하느님의 소유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하느님의 것인 하느님의 백성들을 셀 권한이 없음에도, 불안을 극복하지 못하고 기어코 권한을 침범함으로써 큰 벌을 받게된다. 솔로몬이 잠언과 전도서에서 지혜의 근본은 야훼를 두려워하며 섬기는 것이라 말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9] 또한 이후 등장하는 사울과 다윗은 모두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았기 때문에 사무엘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까지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10] 구체적으로는, 십자가 사건의 정당성이 어디에 있느냐로 갈린다. [11] 어느 정도였냐면 한나가 아이를 낳지 못하여 걱정하자 "아이를 못 낳는다고 무얼 그리 걱정하오, 내가 아들들보다도 더 낫잖소?"라고 위로까지 해 줄 정도였다. [12] 실로는 예루살렘 이전의 성소로, 실로로 올라가 먹고 마셨다는 것은 제사를 지내고 올린 번제, 소제물을 가족들이 나누어 먹은 것이다. [13] 이를 성경에서 '나지르인 서약(나실인의 서원)'이라고 하는데 나지르인은 1.)머리를 자를 수 없으며, 2.)포도주나 포도로 만든 식품을 섭취할 수 없고, 3.)장례식에 참석할 수 없음(친부모상 포함), 과 같은 조항이 붙었다. [14] 서약은 것은 하느님의 나에게 축복이나 기적을 베푸시면 그에 합당하게 내가 무엇을 하겠다라는 내용의 기도이다. 한나의 기도의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주님께서 아이를 낳게 해주셔서 주님의 축복만 자신의 원통함을 해결해준다면 자신의 아이지만 자신의 아이로 키우지 않고 주님의 아이로 바친다는 점에서 이른바 말하는 기복신앙과도 매우 다르다. 서약의 내용은 반드시 지켜져야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15] 민수기 30장 11-12절에 의하면 아내의 서약은 남편이 철회하면 지키지 않아도 된다. 즉 사무엘을 바치는 것은 엘카나도 동의한 일이다. 오늘날에는 이 서약의 내용이 곡해되는 바람에 일부 개신교 가정에서 자녀에게 목사가 될 것을 강요하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 [16] 사무엘상 1장에서는 이미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사제를 맡고 있었으므로 현대식으로 말하자면 엘리는 당시의 주임사제, 홉니와 비느하스가 보좌사제로서 전례를 주관했다고 할 수 있다. [17] 단순히 나이만 많이 먹어 늙은 것뿐만 아니라 심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많이 흐리고 약해졌다고 묘사된다. 성경 안에서 나타나는 엘리의 모습은 항상 어딘가에 누워있거나 앉아있는 모습으로 굉장히 무기력하며 비만한데다 말년에는 눈까지 멀었다고 한다. 그리고 명색이 대사제인데 처음 한나를 만났을 때 술 취한 사람으로 오인했다는 부분이나, 시종으로 일하던 사무엘이 자다가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엘리가 부른 줄 알고 엘리에게 두 번이나 갔을 때 엘리는 하느님의 음성이라는 걸 모르고 "내가 안불렀으니 돌아가 자거라."라고 한다. 세번째에야 하느님의 음성이라는 걸 짐작하고 사무엘에게 돌아가 하느님이 또 부르시면 부름에 응답하라는 말을 하지만, 대사제나 되는 인물이 기도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나 하느님의 음성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걸 보면 육신으로도 영적으로도 많이 둔중해진 것. 야훼가 홉니와 비느하스뿐 아니라 '엘리의 집안'을 벌하겠다고 하는 건 이런 이유에서이다. 말년에 결국 총기를 잃은 엘리까지 징벌하려는 것. [18] 비느하스란 이름은 아론의 손자로 사제직의 약속을 야훼께 받은 사람의 이름이기도 하며, 여기에서 영어권 인명인 '피니어스'가 나오기도 했다. 같은 이름을 씀에도 이름값 못 하는 사람이라니 [19] 어떻게 행패를 부렸냐면, 그중 하나로, 고기를 번제로 바쳐 태우기 전 날고기를 물에 삶아 기름(비계를 부정하게 여겼기 때문)을 모두 뺀 다음 여기서 사제의 몫을 남겨 사제에게 주고 나머지를 불에 태워 바치게 되는데, 당연히 한 번 삶은 후 그걸 다시 조리해서 먹는 것보다, 비계가 있어서 마블링이 좋은 날고기를 바로 조리해서 먹는 게 더 맛있기 때문에 홉니와 비느하스는 삶아서 기름을 제거하기 전의 날고기를 갈고리로 건져서 자기 맘대로 가져갔다. [20] 현대로 치자면 '섹스 스캔들'이 터졌다고 볼 수 있는 큰 일이다. 옛날 신전을 관리하는 신녀들에게 스캔들이 터지면 장본인은 일족이 몰살당하고 신녀들에게는 가장 가벼운 형도 추방이며 기본적으로 생매장을 당한다는 걸 기억하자. [21]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데 적당히 해라 정도의 꾸짖음으로 기록되어 있어, 전혀 통할 리가 없다. 엘리 자체가 살이 매우 쪄서 게으르고 자기관리가 안 되어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성정이 나쁘다기보단 무르고 무기력한 성정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어찌됐든 호부견자도 아닌 견부견자. [22] 이미 엘리는 한 예언자를 통해 그 두 아들들의 죄악으로 인해 신벌을 받을 것이라는 예언을 받았는데, 바로 집안 남자 후손들이 모두 단명하여 노인 남성이 없을 것이라는 예언과 함께 생계유지를 위해 성직을 구걸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23] 근데 딱히 무서워하는거 같지도 않은게… 이 양반 반응이 "뭐 신께서 그렇다고 하시면 그런 거겠지" 정도다(…). 아들들이 저지른 죄도 죽어 마땅한 죄지만, 애초부터 엘리 자신도 자식에게 엄한 훈육을 하지 않고 잘못 기른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터라 체념하고 더 이상 미련이 없는 듯하다. 게으르고 무기력하단 추측이 이 반응으로도 가능하다. [24] 패전이 계속되자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하느님이 우리와 함게 계시지 않은 것 같은데, 실로에 있는 성궤를 가져와 선두에 내세우면 하느님이 함께 계시는 셈이니 우리가 이길 것이다.'라며 실로에 안치되어 있던 성궤를 제멋대로 가져와 전장에 끌고가는 짓을 했다. 쉽게 말해 무속 신앙마냥 성궤를 부적 취급해서 들고 갔다는 것. 본인들이 신앙의 초심을 잃었기 때문에 버림을 받았다는 근본적인 원인은 모르쇠하고 애꿏은 성궤를 모세 때의 금송아지로 바꾸어 우상화하는 불경을 저지른 것이다. 당장 오늘도 여러 교회에서 "'십자가'가 아니라 십자가가 상징하는 '예수'를 믿어야 한다"고 십자가 우상화를 각별히 주의시키고 있는 판국인데, 이때는 오죽했겠는가. [25] 엘리의 최후를 서술하는 장면에서 나이가 많아 늙고 몸이 비만했기에 뒤로 넘어지며 목이 부러졌다고 서술하고 있다. 여러모로 엘리가 총기를 잃고 게으르게 살았다는 것을 은근히 까는 부분. 이 때가 향년 98세. [26] 팀 버튼의 영화 슬리피 할로우의 주인공 이카보드 크레인( 조니 뎁 분)의 이름의 유래가 된 인물. [27] 전쟁에서 졌고, 두 사제들이자 아주버님과 남편인 홉니와 비느하스, 시아버지인 대사제 엘리까지 죽고 하느님의 궤도 뺏겼기 때문에 완전히 끝장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28] 성경 만화나 어린이용 성경 또는 일부 성경 해설집에서는 이카봇도 이스라엘 안까지 처들어온 블레셋 군사들의 칼에 맞아 어린아이인 상태에서 죽어 이름대로 저주를 받은 것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 역사에서 이카봇은 산파가 몰래 숨겨서 키웠기에 전쟁 후에 사제직을 수행했고 후세를 남겼다. 물론 엘리 가문의 저주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엘리의 후손이라 할 수 있는 아히멜렉은 도피중이던 다윗을 도와줘 사울 어그로를 끌었다. 결국 자신을 포함한 사제 일가가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 1명만 빼고 전원 몰살당하는 참사를 당한다. 생존자였던 아비아달은 다윗의 치세에 사독과 함께 공동으로 대사제직을 수행했지만, 솔로몬 대신 아도니야를 지지하는 바람에 반역죄로 대사제직을 박탈당하고 쫓겨난다. 자세한 부분은 요압 참조. 정말 제대로 망한 셈. 그리고 엘리 가문의 마지막 후손인 선지자 예레미야는 온갖 고생 끝에 유다 왕국이 멸망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 [29] 이 아비나답은 20년간 성궤를 잘 보관하고 관리한 덕에 야훼께 복을 받았다고 한다. [30] 미츠파라고도 한다. 단어 자체는 파수대라는 뜻이다. [31] 이 시기가 삼손과 동시대인지, 혹은 삼손의 사망 이후인지에 대해서 해석이 갈린다. 일반적으로는 삼손의 죽음 이후로 보고 있다. [32] 사무엘이 어떻게 이런 아들들에게 사사직을 물려줬는지는 논란이 있지만, 일부에선 아들들이 사무엘을 협박해서 판관 자리를 빼앗은 게 아니냐는 추측을 한다. 그 근거는 아들들이 판관이 된 장소가 이스라엘의 최남단 사막 근처의 브엘세바라는 지역으로, 판관이 되긴 되었는데 정당하게 된 건 아니라서 시골 오지에서 판관이 되었다는 것이다. [33] 또한 비슷하게 아들 교육에 실패한 이유를 생각해보면, 엘리의 사례를 보고 그래도 나름의 최선을 다했을 테지만 사무엘의 일생 사역이 이스라엘 순회사역이었다는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는 추측이 있다. 사무엘이 해마다 벧엘, 길갈, 미스바, 자기 집 라마를 돌면서 일생동안 이스라엘을 사역해온 것을 생각해보면, 사무엘이 기러기 아빠 아닌 기러기 아빠로 살면서 한 아버지로서 아들들에게 필요한 유대감이나 훈육 등에 신경쓰지 못했음을 정황상 추측해볼 수 있다. [34] 사무엘상 8장 11~17절까지의 내용으로 표준새번역 기준으로 적자면 "너희를 다스릴 왕의 권한은 이러하다. 그는 너희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다루는 일을 시키고, 병거 앞에서 달리게 할 것이다. 그는 너희의 아들들을 천부장과 오십부장으로 임명하기도 하고, 왕의 밭을 갈게도 하고, 곡식을 거두어들이게도 하고,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이다. 그는 너희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유도 만들게 하고 요리도 시키고 빵도 굽게 할 것이다. 그는 너희의 밭과 포도원과 올리브 밭에서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왕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너희가 거둔 곡식과 포도에서도 열에 하나를 거두어 왕의 관리들과 신하들에게 줄 것이다. 그는 너희의 남종들과 여종들과 가장 뛰어난 젊은이들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왕의 일을 시킬 것이다. 그는 또 너희의 양 떼 가운데서 열에 하나를 거두어 갈 것이며, 마침내 너희들까지 왕의 종이 될 것이다. 그때에야 너희가 스스로 택한 왕 때문에 울부짖을 터이지만, 그때에 주께서는 너희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실 것이다." 이렇게 주께서 사무엘의 입을 통해 경고한다. 압축해서 적자면 "왕의 막강한 권한과 권력으로 남자들은 군사로 뽑아 총알받이처럼 쓰이거나 왕의 농지를 가꾸는 농부가 되거나 대장장이가 되어 무기들을 만들고 딸들은 궁녀가 되어 왕실의 안살림을 맡게 되며 너희가 농사지은 수확물 중 가장 좋은 것을 가져가고 끝내는 너희 모두가 왕의 노예가 되고 말 것이다. 그때서야 너희가 후회하며 내게 기도해도 난 니들 기도를 들어주지 않겠다."라는 말이 되며 상당히 소름끼치는 내용. [35] 그리고 7절~9절의 내용을 보면 주님은 이 어리석은 백성들이 이럴 것임을 알고 있었다. 표준새번역 기준 <주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백성이 너에게 한 말을 다 들어 주어라. 그들이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버려서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들은 내가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하는 일마다 그렇게 하여,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더니, 너에게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니 너는 이제 그들의 말을 들어 주되, 엄히 경고하여, 그들을 다스릴 왕의 권한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려 주어라."> 즉 "이집트를 탈출해 이스라엘로 돌아올 때부터 툭하면 나를 버리고 다른 신을 의지해오더니 또 이러는구나, 이젠 나도 지쳤다. 그러나 내가 창조한 내 백성들이니 마지막 자비로 왕이 생길 경우 일어날 참상만은 알려주겠다." 라는 말이다. 여호와가 얼마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크게 실망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36]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이스라엘이 원했던 것은 왕이라기보다는 유능한 전투 지휘관이 필요했던 것이라 볼 수 있다. [37] 왕이란 사람이 암몬이 쳐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하고 있던 일이 몰고 밭 가는 일이었다. 소식을 듣자마자 밭 갈던 를 죽여 토막낸 뒤 전 이스라엘로 보내며 "나하고 사무엘 안 따러나서면 너희들도 이 꼴로 만들어주겠다"고 알리게 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 말에 따랐고 결과는 대승. 암몬군은 두 사람이 짝지어 도망치는 이가 없을 정도로 아주 박살이 났다. [38] 아직 즉위식을 시행하지 않았기도 했고, 사울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전쟁에서 승리한 후 이들은 백성들에 의해 처형될 뻔했으나 사울이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해주신 날에 웬 사형입니까?"라고 말려서 살았다. [39] 사람들이 필리스티아 때문에 지레 겁을 먹은 상황이었다. 그와 상황이면 번제를 주도할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을 써서라도 사람들을 진정시키는 것이 맞다. [40]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점성술이나 요술을 의뢰하는 일)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죽어있는, 생기가 없는) 우상에게 절하는 것과 같음이라'로 연결된다. [41] 이 구절 또한 오늘날 일부 목사들이 자신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순종할 것을 강요하는 데 악용되고 있다. 이 구절은 오히려 자신의 종교적 열심 때문에 하나님보다 앞서나가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침착하게 분별한 후에 거기에 순종하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개인적 욕심에 초점이 맞춰질 때에 하나님보다 앞선 행동이 나오게 되는데, 이것은 칭찬받을 행동은 커녕 죄에 해당하고, 죄이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행할 수 있으며, 그 행위를 한 후 그 행위를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게 된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의 동기에서는 거액의 기부와 뼈를 깎는 헌신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고, 그런 행위를 하고 난 후에는 그 행위를 자랑하고 싶어 견디지 못하게 되며, 자신의 죄를 합리화하려는 인간의 본능 때문에 스스로는 교만한 자신의 마음의 동기를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의 행동에는 숨겨진 내면의 동기가 있는데, 가령 어려운 이웃들을 돕기 위해 봉사활동을 한다고 했지만 그걸 누가 알아주지 않아서 섭섭하다면 그 봉사활동을 한 근본적 내면의 동기는 순수한 이웃 사랑이 아니라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며, 이러한 무의식적인 내면의 동기는 스스로 발견하기 쉽지 않다. 성경은 성도라면 부족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하는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하고, 하나님을 무엇보다 사랑하여 하나님만을 위해 사는 것이 우선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것도 의미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순종해야 하는 어떤 행위에 대한 동기적 불순물을 없애버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서 그것을 하려고 하면 그것을 순종하는 것이 몹시 힘들어진다. 즉 성공욕, 인정욕, 성취감 등등의 육신적 동기를 제거하면 인간의 악한 본성이 불순종으로 매우 잘 드러나게 된다. 이러한 악한 본성을 제어하려면 그만큼 하나님과의 교제가 잦아야 하는데, 이는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려면 영적인 민감성과 하나님과의 교제 빈도는 정비례 해야 함을 의미한다.
[42] 혹은 이 옷조각처럼 당신도 하느님에게서 버림받을 거라고 했다는 해석도 있다. [43] 이때 사무엘의 행동이 걸작이라면 걸작인데 자기는 이제 살았다고 착각한 아각에게 "네가 칼로 수많은 여인의 자식을 죽였으니 이제 네 어미가 자식을 잃을 것이다." 라고 말하며 목을 딴 것. [44] 이때 너무 호기심에 넘쳐 주변의 병사들에게 묻고 다니는 것을 본 큰형 엘리압에게 "심부름을 왔으면 잘마치고 가서 할일이나 할것이지 웬 참견이냐?"며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45] 사울은 처음엔 상대가 되지 않는다며 만류했으나 다윗은 자신이 아버지 이새의 양치기로 일하면서 양을 노리는 맹수를 물리쳤단 경험담을 얘기해서 어렵사리 승락을 받는다. [46] 사실 여기 나온 숫자는 과장법으로 사울과 다윗이 모두 대단한 업적을 세웠다는 것인데, 사울은 숫자에 집착하여 다윗을 경계한 것 [47] 인물의 이름이 아니라 당시 지배층을 부르던 칭호. [48] 성경에선 마옥의 아들이라고만 나온다. 앞의 미치광이라며 내쫓은 아기스와 동일인물인지는 불명. [49] 이 때 그냥 "네!" 하고 돌아가면 의심을 살 수 있기 때문에, 다윗은 사울에게 오래 쫓긴 점을 어필하면서 "제가 왜 왕의 원수와 싸우지 못한다는 겁니까 아이고" 하며 일부러 큰소리까지 쳐본다. 아기스는 "나는 너를 믿지만, 신하들이 불안해하니 일단 돌아가 있어라." 고 달래어 돌려보낸다. 다윗이 필리스티아에서 퍼진 악명을 생각하면 그는 적국의 왕에게 악명을 트집잡히지 않을 정도로 큰 신뢰를 받은 것이다. [50] 접신한 자는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분명히 선언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예언자로써 역시 영매나 점성술을 혐오해야 정상일 사무엘이 영매술을 통해 불려 나왔다는 것부터가 대놓고 말이 안 되는 일. 이는 사무엘상이 판관기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왕이 없으므로 그냥 아무 일이나 막 일어나고 있는 것이며, 따라서 사무엘상 전체가 17장 이후의 판관기와 궤를 같이하여 인과관계를 따지는 게 무의미한 형태로 서술되어 있다. 왕이 없으므로 그를 대신하여 질서를 세울 왕을 세웠으나 잘못 세웠으니 결국 이 없어 모든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다. [51] 무당이 보았던 영이 누구였는지에 대해서는 몇 가지 해석이 제시되고 있다. 무당이 본 영이 사무엘의 영이 아니라 사무엘을 가장한 귀신의 영이었다는 해석이 있다. 한편, 하느님이 사울에게 그의 죽음을 선고하기 위해서 사무엘의 영을 진짜로 보내주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두 번째 해석의 경우에는 무당이 자기 능력으로 사무엘의 영을 불러온 것이 아니라, 사울의 기도는 무시해도 그의 행동은 당연히 지켜보던 하느님이 한심해하다 못해 이만 사울의 목숨을 거두기 전 사무엘을 시켜 사울의 파멸을 알리게 한 것이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 어찌됐든 이 없어 인생들이 제멋대로 하던 시대에 그대로 있으므로 대관절 이 사무엘 등판이 뭔 상황인지는 애초에 알 방도가 없다. 그야말로 황당 그 자체이니까. [52] 또한 제2경전에 속하는 집회서 46장 20절에서는 "사무엘은 잠든 다음에도 예언을 하였는데 임금에게 닥쳐올 죽음을 미리 알려 주었고 예언으로 백성의 무도함을 없애려고 땅속에서조차 목소리를 높였다." 라고 말하며, 사울 앞에 나타난 영혼이 사무엘 본인이라고 증언한다. [53] 요나단, 아비나답, 말기수아. 이렇게 명시된 아들들만 3명. [54] 사무엘은 결국 질서를 다시 세울 "왕"이 세워지는 과정에 대해 서술하고 있으므로 인물 '사무엘'은 어떻게되든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리고 과연 그 '사무엘'은 왕을 세우는 이야기가 본 궤도에 오르자마자 존재감이 줄고, 사무엘상이 다 안 끝났을 때 사망해버리니, 따지고보면 아주 훌륭한 맥거핀이다. 죽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에 무당한테 불려나와 독자의 뒷통수를 후려치는 것만 빼면 (...) [55] 사울은 죽기 전에 필리스티아 병사들에게 모욕당하고 죽는 것이 두려워 자신을 죽여달라고 옆의 부하에게 부탁했지만 부하가 꺼리자 자살했고, 그 옆에 있던 부하 병사도 그 광경을 보고 따라 자살했다. 보통 신학 쪽에서는 이 소년 병사가 헛된 공명심을 품고 거짓 보고했다가 스스로 자신의 신세를 망친 것으로 해석된다. [56] 역대기에서는 에스바알로 나오는데, 이는 이름에 바알이 들어가는 구절에 대해 '보셋'이라는 욕을 넣은 후대 기록자들의 가필이다. 바알 중동 지방의 토착신 중 하나인데 이스라엘 민족이 곧잘 하느님 대신 섬기곤 해서 하느님의 분노를 사곤 했다. [57] 다윗이 자랑하던 30인의 맹장중 한 사람으로, 발이 노루처럼 가벼워 달리기를 잘했다고 한다. 전투에서 후퇴하는 아브넬을 발견하고 그를 추격하는데, 역시 발이 빠른 장수 답게 아브넬을 곧장 뒤쫓아온다. 도망치던 아브넬이 "야 너 허튼짓하다 죽지 말고 딴데 가서 적당히 전공이나 챙겨라. 내가 너 죽이면 니 형 요압 얼굴을 어떻게 보냐"라고 하지만 당연히(?) 아사헬은 씹고 계속 쫓아왔고, 결국 아브넬이 기습적으로 찌른 창 뒤끝에 찔려 사망(...). 발이 워낙 빨라서 아브넬이 창 뒤로 찌를거라고 생각을 못한듯 아브넬은 원래 아사헬을 죽이지 않고 밀어내려고 했는데, 아사헬이 너무 빨라서 창 뒤끝에 달린 쇠에 배가 관통되어 버렸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58] 사울의 죽음에 대한 애도에서부터 아브넬과 이스보셋에 이르기까지 다윗이 이렇게 정적에 해당하는 사울 측 인물들을 관대하게 평가하고 심지어 칭송까지 한 이유는 다윗 본인이 그렇게 관대했을 수도 있지만, 여전히 잔존해 있는 잔당 세력들을 포용하기 위한 정치적 제스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로마의 카이사르도 정적이었던 폼페이우스의 사망 후 완벽하게 똑같은 행보를 보였고, 이런 모습은 역사적으로 굉장히 흔하다. 더구나 부인도 사울의 딸이었던 만큼 정치적 당위성도 있다. [59] 대신 다윗의 아들 하느님을 위한 집(성전)을 짓게 될 것이라고 했다. 역대기상에는 다윗이 전쟁으로 피를 너무 많이 흘렸기 때문에 아들 대에 짓게 된 거라고 기록되어 있다. [60] 레너드 코헨이 처음 부르고 이후 제프 버클리가 리메이크한 < 할렐루야>의 첫 2절까지가 사울의 시종이었던 다윗의 이야기와 그 다윗이 밧세바에게 매혹당한 사건을 모티프로 한다. 이후 삼손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61] 압살롬을 죽이지 말라고 명령했으나 요압이 개의치 않고 압살롬을 끔살. 사실 압살롬이 이전에 여동생 다말이 다윗의 장남이자 맏형인 암논에게 강간당한 일로 앙심을 품고 암논을 죽이는 사고를 쳐서 있어서 다윗의 눈 밖에 났는데, 군사령관 요압이 다윗왕과 압살롬 왕자 사이에서 중재를 잘 해서 그 관계가 어느정도 회복된 일이 있었다. 그랬는데 결국 반란을 일으켰으니, 요압 입장에서는 압살롬에게 빡이 쳤을 수 있고, 또 과거에 압살롬을 두둔했던 일로 압살롬의 반란 이후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곤란해질 것을 염려해 왕의 어명을 어기면서까지 압살롬을 죽여서 과잉 충성을 보이려 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62] 이 일도 요압이 한 일인데 아마사는 요압의 이종 사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