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백인천/지도자 경력
1. 개요
전설적인 롯데 자이언츠 감독 시절[1] |
백인천은 롯데 자이언츠 시절 여러가지 심각한 문제점을 보였으며, 부임 20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도 종합적으로 KBO 리그 역사상 최악의 감독임은 물론, 전 종목을 통틀어 대한민국 프로스포츠 역사상 최악의 감독 중 하나로 반드시 꼽히게 되었다.[3][4] 또한 나아가 선수, 감독, 프런트를 다 통틀어서 KBO 리그 역사의 모든 종사자 중 가장 저평가를 받는 인물 중 한 명이다.[5] 당연하겠지만, 롯데 자이언츠 팬덤에 있어서는 영원한 금지어이자, 팀 역사상 최악의 인물이기도 하다.[6]
백인천 부임 시절 롯데는 KBO 리그 역사상 최약체 구단 중 하나로 불리며,[7][8] 그가 지나간 이후 롯데 자이언츠는 제리 로이스터 감독 부임 직전까지 전대미문의 비밀번호였던 8888577을 찍으며[9] 약팀의 상징이 되어버렸고, '꼴데[10]'라는 멸칭까지 붙었다.
백인천의 60년이 넘는 기나긴 야구 인생 동안 일본프로야구 선수로서의 활약, KBO 리그에서의 유일무이한 타율 4할, LG의 첫 우승, 이승엽 발굴 등 선수로도 지도자로도 뛰어난 업적들을 다수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국내야구 갤러리 같은 야구 관련 사이트들에서 그의 이름 석자를 언급하는 것이 간혹 꺼려지는 결정적인 이유로, 당연히 그의 야구 인생에서도 최대의 오점으로 평가받고 있다.[11] 실제로 전문가들이나 야구 관련 소식통에서 백인천을 평가할 때에도 그의 업적들은 칭송하지만, 그가 롯데 자이언츠 감독직을 맡은 시절 태업을 하며 본인의 명성을 스스로 망쳤다는 사실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며, 이로 인하여 그의 전반적인 평가 자체를 이것 하나로 매우 크게 떨어뜨렸다는 사실 역시 빼놓지 않는다. 이 시기의 부진으로 인하여 그의 가장 유명한 별명인 백골퍼가 탄생하였으며, 당시 롯데 팬덤은 그를 아예 마왕에 비유할 정도로 민심이 극악에 달했다.
일반적으로 백인천 정도로 업적을 세운 인물은 한국 야구사 최고의 위인 중 하나로 칭송받아야 하나 백인천은 업적에 비해 칭송 정도가 낮은데, 가장 큰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이 백골퍼 시기이다. 사실 백인천 같은 경우 선수로써도 레전드이나 감독으로써도 LG, 삼성 시절이 긍정적으로 평가받아 두 팀 모두에서 프랜차이즈 감독들 중 상위권으로 평가되기에[12] 롯데 감독만 맡지 않았다면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속설을 완전히 깨뜨린 한국 야구 역사상 손에 꼽는 레전드로 꼽힐 수 있었으나, 결국 이 1년 하나만으로 상당수의 팬덤에게 모든 공적들이 전부다 부정당했다는 점에서 얼마나 이 1년이 충격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이 롯데 감독 시절은 이후 야구인으로써 백인천의 활동 경로를 크게 제한하기도 했다. LG 트윈스에서의 감독직만 빼면 선수 시절 신인왕 수상과 라면수비, 은퇴 이후에는 빠삭한 야구지식과 이론, 입담으로 모든 분야에서 성과를 낸 이순철의 경우 역시 20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 LG 올드 팬덤에게는 사람 취급도 못 받고 올드 팬덤이 아예 이순철 관련 컨텐츠를 대놓고 피할 정도로 대단히 그에 대한 거부감이 거세지만, 어쨌든 여전히 해설위원으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으며, 2010년대 중반에 구시대적 혹사로 가뜩이나 망쳐져 있던 한화를 더 망치면서 몰락한 김성근도 일본에서 멀쩡히 지도자 생활을 오랫동안 해 온 것을 감안하면[13][14] 백인천이 얼마나 롯데 시절 문제를 많이 일으켰는지 알 수 있으며, 이 시기의 나쁜 의미로서의 임팩트로 인하여 백인천의 감독 커리어에서 팀 첫 우승을 안겨준 LG 시절과 이승엽을 발굴하고 556 탈출 기반을 확립한 삼성 시절이 묻히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백인천의 롯데 감독 시절만큼 비판받은 스포츠 종사자는 전 세계, 전 종목을 통틀어봐도 거의 없다.[15]
성적도 성적이지만 롯데 시절 백인천이 이견의 여지가 없는 KBO 역대 최악의 감독이자 대한민국 프로스포츠 사상 최악의 감독 중 하나로 평가받는 가장 결정적 원인은 본인의 순수 역량과 무관하게 팀을 제대로 운영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고의적으로 팀을 망쳤기 때문이다. 즉, 다른 감독들은 잘 해보려다가 능력 부족으로 망한 것과 달리 이 쪽은 막 나가기로 결정한 2003년부터는 팀을 일부러 망치고 싶어하는 사람처럼 아예 제멋대로 팀을 운영하며 완전히 롯데를 망가뜨렸다. KBO 리그 역대로 자신들이 맡은 소속팀을 나락으로 추락시킨 감독들의 이름이야 각 팀 팬들을 중심으로 많이 거론되지만, 롯데 팬들이 아닌 타 팀 팬들조차도 리그 역사상 최악의 감독이라 하면 누구든 독보적으로 백인천부터 가장 먼저 거론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보통 대부분 근 몇 년간 최악의 감독을 꼽으라면 자신이 응원하는 팀 감독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지만[16] 올타임 넘버원이라고 하면 누구든 롯데 시절 백인천부터 가장 먼저 1순위로 꼽는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LG 시절과 삼성 시절 이후로 대관절 무슨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17] 오죽하면 백인천이 태업하지 않고 제대로 본인의 능력을 통하여 여러 업적을 세워 백인천에 대한 평가가 좋은 LG와 삼성의 팬들도 "롯데 시절의 백인천은 완벽히 논외이며, 정상 참작이 절대로 불가능하다."라는 악평을 내릴 정도. 심하게는 롯데 부임 시기 백인천을 이름만 백인천이고 실제로는 '백골퍼'인 전혀 다른 사람 취급하기도 할 정도로 유독 롯데 시절에만 극도로 부진했던 것이다.
특히 중립적인 언론까지 나서서 단순히 통솔력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것도 아니고, 팀에 대한 관심이 하나도 없다며 직접적으로 대놓고 디스한 사람은 롯데 자이언츠 시절 백인천만이 유일하다. 프로야구는 순위제이기 때문에 누군가는 하위권 감독이 되기 마련이지만, 의도적으로 골프 등 야구 외적인 요소에 더 신경을 많이 쓰며 하위권으로 팀을 꼴아박은 감독은 백인천이 유일무이하다. 즉, 성적은 둘째치고 팀에 대한 관심보다도 다른 일에 더 신경쓰는 공개태업을 한 KBO 리그 역사상 유일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다른 졸장들보다도 더욱 큰 비판을 받는다. 게다가 후술할 백인천의 롯데 시절 행보나 전술했던 백인천의 LG, 삼성 시절 업적 등을 종합해보면 그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닌 다른 이유로 태업을 해서 팀을 망쳤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참고로 상술한 평가를 받은 프로 스포츠 감독은 백인천이 롯데 감독직에서 경질된 지 20년 가까이 대한민국 프로 스포츠계에서 2023년 위르겐 클린스만이 등장할 때까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로 인하여 현재는 야구계에서 떠난 지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롯데 팬들은 백인천이라는 이름 석자만 나와도 극단적인 분노를 표출하며, 심지어 백인천의 그 동안의 업적들을 언급하는 것도 롯데 팬들 앞에서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금지어 취급받는다.
일단 스포츠에서 감독들이 실패하는 대표적인 이유는 최소한 잘 해 보려는 생각은 있었는데, 자신의 능력이나 지도력이 그 생각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능력 부족의 경우가 대부분이다. 혹은 선수단이나 프런트와의 불화가 원인일 수도 있다. 아니면 선수들이 부상이나 사고 등으로 전력에서 이탈하거나, 팀 사정상 감독이 원하는 선수나 환경을 지원받지 못하는 등 감독 본인의 능력과는 상관없는 요인으로 실패하는 경우도 상당하다.[18]
그러나 백인천 감독은 앞서 말했듯이 개인 지도력은 나쁘지 않았는데, 본인의 고의적인 태업으로 인해 리그 역사상 가장 나쁜 성과를 만들어버렸다. 지금까지도 태업이라는 비판을 받는 전 세계 스포츠 역사에서 거의 흔치 않은 감독이며, 이 때문에 롯데를 끝으로 감독 커리어가 영구히 끝장난 것은 물론 롯데 팬들에겐 최악의 금지어로 전락했고, 그 임팩트가 워낙 커 타 팀 팬들에게 있어서도 역대 최악의 야구 감독이라고 하면 누구든 백인천부터 가장 먼저 언급할 만큼 거의 망한 감독의 밈이 돼버렸다. 얼마나 해악이 심했는지 부임한지 20년이 넘게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순수 역량과 무관하게 기분이 상했다는 이유로 팀을 대놓고 망친 죄악이 너무 커서 아예 롯데 자이언츠 경력만 문서가 따로 분리될 정도.
2001년, 김명성 감독이 시즌 도중 심장마비로 급사하자 우용득 수석코치가 감독 대행으로 나름 팀을 이끌었고, 비록 결과는 최하위였지만 시즌 막바지까지 4강 싸움을[19] 한 성과를 인정받아 이듬해인 2002년 상반기, 롯데의 정식 감독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타 팀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약했던 전력 탓에 시즌 초반부터 꼴찌에 허덕였고, 급기야 6월 들어 13연패를 기록하자[20], 롯데 구단은 2002년 6월 21일, 우용득 감독을 전격 해임하고 당시 각 팀을 돌아다니며 타격 인스트럭터를 하고 있던 백인천을 새 감독으로 임명했다.[21] 계약 기간은 잔여 시즌을 포함해 2004년까지 2년 6개월에 계약금과 연봉 포함 총 7억원의 조건이었다.
2. 감독 재임 기간 중
6월 26일 취임식 직후 가을야구 진출 등 성적을 내는 것을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사실 시즌 포기 선언 자체는 당시에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미 백인천이 오기 전부터 팀은 지속된 연패로 이미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성이 완전히 제로가 되었기 때문이다.[22] 때문인지 백인천은 부임 직후 "남은 시즌은 젊고 가능성 있는 선수들 위주로 기용하며 내년 시즌을 대비하는 기간으로 삼겠다."라고 선언하였다. 그 말과 함께 남은 시즌 동안 실제로 여러 선수들을 기용하면서 본인의 선언을 지켰다.[23] 어차피 그가 부임하기 전에 이미 팀이 상당히 저조한 성적을 기록해 온 바람에 가을야구는 일찍이 물 건너가버렸고, 이제 남은 기간 동안에는 여러 선수들을 올려보며 툴을 파악하고 팀 운영 방향을 설정하고자 하는 태도는 리빌딩 감독이라면 으레 취하는 태도이나, 문제는 이후 그가 행한 여러 정책 실패와 오판들이 상식적이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다는 것이다.우선 취임식 당일에 치른 6월 26일 경기마저 패해 연패가 16까지 늘어난 것이야 그렇다고 치지만[24], 취임 후 한 달도 안 된 7월 21일에는 바로 전 시즌 100타점을 기록한 팀의 주포였지만 이 해 심한 부진을 겪은 거포 조경환과 나름 준수했던 외국인 좌완투수 대니얼 매기를 SK로 보내고, 그제껏 유망주에 불과했던 윤재국과 박준서를 데려오는, 지극히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트레이드를 하기도 했다.[25] 다만 이 트레이드는 매기가 SK에 가서 혹사의 여파인지 단순 부진인지 모를 이유로 완전히 망가져 버렸고[26], 데려온 선수들도 잘 한 건 아니지만, 정작 조경환도 가서 잘 한 건 아니라서 그냥 서로 폭망한 트레이드. 유망주 둘이 조금이나마 잘 했더라면 성공한 트레이드였을 가능성 높다.
사실 취임 당시에는 아주 이해 못할 정도의 조치는 아니었다. 위에 썼던 것처럼 2002년의 롯데는 백인천이 새로히 지휘봉을 잡기 직전까지 15연패를 했고, 펠릭스 호세의 부재, 조경환의 부진 등 이미 최하위 팀으로 실시간으로 박살나고 있던 상황이었으며, 어느 누가 와도 우승은 둘째치고 가을야구조차 못 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그러니 포스트시즌에 진출한답시고 무리하게 선수를 혹사하는 등의 뻘짓을 하는 대신 이제 남은 기간 동안은 리빌딩에 쏟고 다음 해인 2003년부터 다시 가을야구권에 진출하겠다는 포부가 그나마 정상적인 상황이었다.[27] 그러나 이후 백인천의 행보들은 가을야구 진출이나 차기 시즌 대비를 위한 리빌딩은 커녕 태업과 기행이었고, 일반적인 야빠들과 야구인들의 상식으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할 수준의 기행들을 다수 저질러 팀 기반을 말 그대로 박살내버렸다.
KBO 리그의 다른 감독들은 재평가 여론이 등장하기도 하는 등 평가에 대해 갑론을박이 매번 벌어지지만, 롯데 자이언츠 시절 백인천만큼은 10개 구단의 모든 팬들이 아무런 이론 없이 역대 최악의 감독으로 평가하며, 정상참작의 여지조차 전혀 없을 정도로 팀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참히 박살내 버렸다. 보통 역사상 감독으로써 그만큼이나 많이 까이는 LG 시절 이순철도 거의 모든 분야에서 팀을 초토화시킨 것은 사실이나, 그 방향성이나 실책의 스케일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백인천의 롯데 시절과 이순철의 LG 시절을 비교해 보았을 때 기행의 수준이나 정책 실패 정도의 차이가 워낙에 커서[28] 그나마 다른 감독들이 등장해도 재평가되지 않는 감독 둘로써 같이 묶는 거지 실제로 행적을 비교하면 이순철을 백인천이랑 엮는 것도 이순철 쪽에 굉장히 미안하게 보일 정도로 백인천 쪽의 실책이 압도적으로 더 스케일이 크다는 것이 중론이다.[29][30]
선술하였지만, 롯데 자이언츠 시절 백인천은 제대로 팀을 운영할 의지 없이 고의적으로 팀을 망친 KBO 리그의 유일무이한 사례라서 다른 실패한 감독들과는 좀 결이 다른 취급을 받는다.
게다가 리빌딩을 한다면서 여러가지 무리수들을 일삼았는데, 그게 오히려 독만 되어서 성적은 고사하고 성과도 전혀 안 나오게 되었다. 당최 리빌딩이라는 것도 팀 전력 상승의 기반을 마련해야 성공적 리빌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쪽은 전력 상승의 기반은 커녕 성적도 개판에 전력은 심하게 훼손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망쳐진 전력으로 인하여 이미 시즌 전부터 가을야구는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지만, 백인천 감독은 2003년에도 전력 보강이나 운영으로 가을야구에 진출해보려는 노력은 커녕 아예 대놓고 팀을 망치려고 작정한 듯이 대놓고 막나가는 행보들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로 인하여 현재까지도 KBO 역사상 최악의 감독으로 평가받고 있다.
3. 롯데 감독으로서의 만행
롯데 자이언츠 감독 시절 다음과 같은 기행과 태업을 저질렀다고 알려져 있다.- 팀 운영보다 골프 등 본인의 취미생활을 우선시 하느라 팀을 전혀 돌보지 않았다. 경기 전 골프 치고와서는 경기 진행 도중에 선수단 교체나 항의 등의 기본적인 운용을 하지 않고 덕아웃에서 잠을 자는 모습이 포착되었으며, 기자들과의 회견에서도 팀 운영에 관한 내용이나 야구 관련 이야기들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안 하고 골퍼인 자기 아들 이야기와 골프 이야기만 줄창 했다. 기자들이 이를 보도하면서 민심이 매우 나빠졌고 이로 인하여 그의 가장 유명한 별명인 백골퍼가 만들어졌다.
- 선수 기용에 있어서 가장 큰 기준은 자기 말을 듣느냐 듣지 않느냐였다. 거기에 스윙폼 개조에 실패한 선수들은 가차없이 팀에서 쫓아냈는데, 직전 해에 3할, 20+홈런, 100+타점을 기록한 팀의 중심 타자 조경환을 억지로 스윙폼 개조에 시도하려다가 말을 안 듣자 마음에 안 든다고 SK로 강제로 트레이드 시켰으며, 당시 신고 선수였던 정보명은 쫓겨나듯이 상무 피닉스 야구단로 입대했다. 조경환의 경우 당시에 하도 어이없고 억울해서 비 오는 텅 빈 사직구장에서 눈물을 한바탕 쏟았다고 한다. 게다가 조경환은 당시 팀의 주장이었다. 딴 선수도 아니고 팀의 덕아웃 리더격인 대장 선수를 이런 식으로 내쳤으니 선수단의 사기는 어땠을지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 직전 시즌 다승왕 손민한이 항명을 하자 한화 이글스의 포수 채상병과 트레이드 하려다가 제지 당하자 "그러면 손민한을 포수 시켜야 하나?"라고 농담 삼아 말했다가, 진지하게 에이스를 포수전환 하려고 했다고 오해한 팬들에게 엄청난 욕을 먹었다.[31]
- 제리 로이스터 감독 이전에도 롯데 감독이 자기가 아는 용병을 영입한 경우가 있었는데, 하필 그 사람이 또 백인천이었다. 영입한 선수는 투수 모리 가즈마(森一馬)[32]와 외야수 보이 로드리게스. 이 두 선수는 골수 롯빠들에게도 상당히 낯선 이름들인데, 당연지사인 것이 먼저 전자는 시즌도 시작하기 전에 퇴출, 또 후자는 차마 시즌 전에는 퇴출 못하겠는지 7경기 출장하고 퇴출을 당해 버렸으니...당연히 모두 투타 최고 기록. 이에 대해서 모리 가즈마는 백인천 감독의 친구 아들, 보이 로드리게스는 NPB에서 1년 뛰었기 때문에 백인천도 알고 있고 영입할 수 있는 선수라서 영입했다는 설까지 돌았으나 사실은 아니라고 한다. 모리 가즈마는 애초부터 육성형 용병으로 데려왔지만[33] 시범경기때 부터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34], 안그래도 안습한 뎁스의 롯데상황에 용병을 육성형으로 쓰는건 말이 안된다는 생각에 구단에서 감독과 상의없이 방출 시켜버렸다. 두 선수가 퇴출된 이후 영입된 로베르토 페레즈와 마리오 엔카르나시온[35]이 모두 그럭저럭 활약해주어서 앞의 두 용병들은 더더욱 잊혀졌다.
- 위의 두 용병과 더불어 재일동포 선수인 포수 김영화(일본명 미쓰야마 히데카즈光山英和) 또한 백인천이 영입한 선수인데,[36] 일본 프로야구에서 십수년간 뛰긴 하였으나, 38살의 노장이라서 이미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였으며, 포수임에도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다.[37] 그러고 받은 연봉은 무려 1억 5천만원, 원래는 배터리 코치로 영입을 하려고 했으나 코치로 지급할 수 있는 연봉의 한계가 있어 선수로 영입했던 것이었다. 플레잉 코치라기엔 지나치게 연봉이 많긴 하나 코치로써 좋은 모습을 보였다면 흑역사까진 아닐 것이다. 실제로 주전 포수였던 최기문은 2001~2003년 타격에서 커리어 하이를 찍었고 백인천이 망친 투수진을 그나마 잘 이끌었지만, 억울하게도 투수 리드를 가지고 팬들에게 줄창 욕을 얻어먹었다. 딱히 포수 부문은 백인천이 건든 적이 없어서 평가하기가 애매하다.
- 2002년에 감독으로 부임하자마자 이대호와 최준석의 체구가 마음에 안 든다고 체중 감량을 요구했다. 실제로 이 선수들은 나중에 체중 감량에 성공하고 좋은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이 시절의 두 선수는 그래도 많아야 100kg 정도였다. 심한 감량이 필요한 정도는 아니라는 것. 문제는 살 빼랍시고 한 것이 쪼그려뛰기 및 오리걸음이었고 결국 이들의 무릎은 아작나고 말았다. 이 시기 무릎 부상으로 인한 운동량 부족의 여파로 당시 90~100kg 정도이던 이대호와 호타준족 포수였던 최준석의 체중은 급격히 불어나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38] 심지어 이대호는 SK 와이번스[39], 현대 유니콘스[40], 두산 베어스[41]와 독단적으로 트레이드를 시도했지만, 모두 구단의 반대로 무산되었다.[42][43]
- " 김주찬은 30-30 클럽도 가능한 선수다."라며 스윙폭을 크게 만들게 하여 한동안 부진에 빠뜨렸다. 부진 정도를 넘어 2003년은 1할 타자로 전락시켜 선수의 장래에 물음표를 달게 만들었을 정도. 다만 이 점만큼은 무조건 백인천만의 잘못이라고만 볼 수도 없는 게, 김주찬은 2015년에도 부상으로 풀타임을 뛰지도 못했는데 18홈런을, 2016년에는 20홈런+100타점을 기록하는 등 장타툴을 나름 보여주기도 했다. 보는 눈은 있었지만 감독 본인에게는 키워낼 능력이 없었거나, 아니면 선수 본인이 그 당시에는 아직 재능을 살리지 못한 것이거나 둘 중 하나라고 봐야 할 듯. 다만 김주찬이 저 성적을 기록한 시기는 KBO 리그 역사상 최악의 타고투저 시기로, 당시 타자들 대부분의 클래식 스탯이 비약적으로 향상된 시기임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일단은 롯데 시절엔 스윙폭을 짧게 잡고 주루에 집중했기 때문에 타격에선 기대치만큼의 좋은 성적을 내지는 못했지만[44] 기아로 이적한 이후엔 스윙폭을 적당히 넓혀 장타력과 컨택을 동시에 비약적으로 상승시킬 수 있었다.
- 프로 입단 첫 해의 고효준을 "얜 선수도 아냐."라는 말과 함께 1년 만에 방출해버렸다.[45] 이후 고효준은 제구가 나쁘고 폭투가 많기는 해도 좌완이라는 희소성과 구위를 무기로 SK로 가서 10승을 찍는 등 전천후 스윙맨으로 활약했었다.
- 타자로 뛰던 이명호를 좌완 사이드암 투수로 전향시키려고 하다가 실패했으며, 결국 이명호는 타자로 재전향했으나, 얼마 안 가 방출되며 은퇴했다. 물론 좌완 사이드암 투수가 희귀함을 감안해야 하긴 했어도...
- 경기 전 훈련하는 한 선수를 두고 저 새X는 내 말대로 안하는 새X인데 왜 여기서 훈련하고 있어? 2군 내려보내!"라고 노발대발 했다는 루머가 있었다. 다만 이 일화는 백인천 감독의 최측근이자 당시 2군 감독을 맡았던 이재환 감독은 이러한 얘기는 들어보지도 못했으며, 백인천 감독이 그런 성격은 아니라고 일축하여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 과한 혹사 역시 맹비판을 받을 만한 일이었는데, 2003년에 당시 유망주 투수였던 양성제를 지나치게 굴리며 어깨를 아작내게 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이 양성제는 조기에 은퇴를 했으며,[46] 손민한, 이정훈, 김사율 등은 선발과 중계를 가리지 않고 자주 출전했다. 이렇게 선발과 구원의 보직을 마치 손바닥 뒤집듯 파괴하는 주먹구구식으로 투수 운영을 했다. # 이러한 마구잡이 기용의 여파로 2003년 롯데는 8개 구단 중 유일한 5점대 팀 평균자책점과 구단 역사상 최악의 조정방어율(ERA+)를 기록하는 치욕을 당했다.
- 이 외에도 박정태를 특이한 타격폼 때문에 2군에 박아뒀다는 말이 있는데, 박정태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통념과는 다르게 사실이 아니다. 사실 2002년의 박정태는 부진 때문에 시즌 초반 2군에 내려갔던 것이며, 오히려 백인천의 조언으로 타격폼을 약간 손본 것이 엄청난 효과를 봐 9월에 월간 MVP를 따 낼 정도로 부활했다. 이듬해 박정태가 구단과 FA 갈등을 겪는 시점임에도 인터뷰에서 "끝난 줄 알았던 나를 다시 일으켜준 백인천 감독이 너무 고맙다."는 말을 했고, 백인천이 경질되었을 때도 유감을 표했을 정도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백골프의 망나니짓들이 커버되는 것은 절대로 아니지만...
그 외에 차마 눈 뜨고 못 봐주겠는 참 한심하기 짝이 없는 수준의 엔트리 남발과 롯데빠들의 속을 아주 뒤집어 놓는 질 떨어지는 인터뷰까지 남발했다. 이 때문에 제대로 뚜껑이 열린 롯데빠들은 백인천 퇴진 운동까지 벌였다. 백인천에 대한 반감이 얼마나 심했냐면, 위처럼 "백인천이 다른 팀 감독도 했으면 좋겠다. 너무 억울하다."라는 롯데팬들의 절규어린 짤방까지 다 나왔을 정도다. 가히 종신감독 드립의 원조라 할 만하다. 때문에 그 관중 흥행이 좋다는 사직 야구장은 끝내 2003년 시즌 막판 유료 관중 69명이라는 참혹한 신화를 쓰고 만다.[47] 2003 시즌도 처참함은 여전했는데, 먼저 개막전 패배를 시작으로 화끈하게 12연패로 시작하더니, 시즌 중후반 들어 또다시 기나긴 15연패로 내몰렸음에도[48] 불구하고 자진사퇴 없이 끝까지 뻐팅기는 등 양심이라곤 전혀 없는 행각을 보였다.
4. 경질 및 그 이후
결국 2003년 8월 5일, 더 이상 참다 못한 구단에 의해 전격 경질되었다. 참고로 경질 당일에는 박현승의 끝내기 안타로 승리하면서 연패를 끊었다.이 이후로 백인천의 지도자 경력은 당연하겠지만 완전히 끊겼다. 백인천은 경질 당시에 " 롯데는 향후 10년 동안 가을야구 못 할 것이다."라는 악담을 내뱉었는데, 사실 엄밀히 따지면 저주라기보다는 스스로 박살낸 팀에게 한 말이니 확인사살에 가깝다. 정작 롯데는 2008 시즌부터 2012 시즌까지 5시즌 연속으로 가을야구를 했으므로 백인천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으나, 이 기간동안에 강병철의 양아들들이 대활약해서 타선이 터졌음에도 불구하고 우승에 실패했고 이 기간동안의 육성 미비 문제가 터져서 결국 2013시즌부터 10년 넘도록 장기 침체기에 빠지게 되었다.
백인천이 롯데 감독을 맡았을 때 2군 감독이었던 이재환[49]은 대실패의 원인을 세대 차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최종적으로 롯데 자이언츠 감독으로서 2시즌 동안 총 163전 41승 119패 3무, 승률 .256으로, 본인 포함 역대 롯데 감독들 중 압도적인 최하위 승률을 기록했다. 전년보다 좋은 성적을 내야 할 2003년에 개막 12연패, 시즌 중반 15연패를 하고, 2002/2003년에 롯데가 각각 97패/91패라는 참담한 성적을 받게 된 결정적 요소가 된 건 덤이다. 이때 나온 2년 연속 90패 이상은 롯데 말고는 어느 팀에도 없는 상당히 치욕적인 기록이다. 133경기 체제에서 단일 시즌 90패 이상 기록은 1999년 쌍방울 밖에 없다. 다른 90패 팀은 144경기로 늘어나서야 나왔다.[50]
만일 저 연패가 조금이라도 더 갔거나 자신이 일본에서 선수 생활을 마지막으로 지낸 팀 마냥 한 시즌 100패를 하거나 하는 사태가 발생했다면 가뜩이나 많이 힘들던 롯데빠들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씻을 수가 없는 상처가 더해졌을 것이다. 여기에 위에서 말한 대로 선수단 붕괴+흥행 참패까지 더해져 넘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수준의 완벽한 삼위일체까지 만들어졌으니...
참고로, 역대 롯데 자이언츠 감독들은 통산 승률이 5할 5푼 이상인 감독이 전무하고, 그나마 5할 이상 되는 감독들조차도 손에 꼽을 정도로 수가 몹시 적은데, 그 명단이라곤 제리 로이스터와 성기영[51], 양승호, 조원우[52]까지 고작 네 명에 불과하다.[53] 더구나 롯데의 유일한 우승 감독인 강병철조차도 통산 승률이 5할 아래이다. 백인천 퇴진 이후 한동안 롯데빠들 사이에서는 백인천이 사직구장 들어오면 살아 나가지 못할 것이란 이야기가 돌기도 했다. 백인천이 롯데 감독으로 재임하고 있던 2002년 ~ 2003년 프로야구의 승률의 인플레는 심각했는데, 6할 승률 팀 2개가 2년 연속으로 나왔다. 2002년에는 삼성과 KIA가, 2003년에는 현대와 KIA가 6할 승률을 달성했다. 이 당시에 6할로 2위 찍은 KIA는 이종범의 복귀와 더불어 김진우, 신용운, 홍세완 등 많은 수의 신진 선수들, 그리고 김성한 감독의 감까지 잘 맞아 떨어져서 그런대로 강한 편이었지만, 한국시리즈에는 진출하지 못한 바람에 딱히 그 시대를 대표할 정도의 강팀이라 보긴 어려웠다. 여기에 롯데가 KIA전 18연패를 했으니 말 다했다. 추가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는 2003년에 119패를 기록했는데, 이는 상기된 백인천의 롯데 재임 시절의 패수와 딱 일치한다. 여기에 더 깊게 파고들자면, 디트로이트의 2003년 승률인 .265는 2002년 롯데의 승률과 일치한다.
단일리그제인 KBO에서 6할 승률 팀이 2개였던 적이라곤 저 시절을 제외하면 1995년, 2009년, 2014년, 2019년[54], 2022년 다섯 번 밖에 없다. 저 다섯 시즌의 6할 팀은 각각 LG,[55] SK, 넥센, 그리고 SK와 키움[56] 등이었는데, 1995년의 LG는 그 해 한국시리즈가 좌절되었어도 1997, 98년에 다시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일명 '신바람 야구'로 기억되는 당대의 강팀이었고,[57] 2009년의 SK는 그 해 대이변을 일으킨 KIA에 밀렸던 감이 있지만 그 해 시즌 막판 19연승을 올리며 연승 신기록을 세우기도 하는 등 김성근 체제의 SK는 한 시대를 풍미한 최강팀으로 불렸던 팀이었다. 그리고 2014년의 넥센은 역대 최고의 타고투저 시즌에서도 무시무시한 타선을 자랑했다. 2019년의 경우도 SK는 디펜딩 챔피언이었던데다가 시즌 내내 1위를 달리다가 막판에 미끄러져 승률은 같았음에도 상대전적에서 1위 두산에게 밀린 거였고, 키움 또한 실질적 전력차는 우승팀 두산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고, 시즌 내내 두산과 2위 싸움을 벌인 강팀이었으며 2022년의 SSG는 시즌 처음부터 끝까지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으며 KBO 역사상 첫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고, LG는 지속적인 외부 FA보강과 더불어 수년간 모았던 유망주들이 한꺼번에 터졌음에도 SSG 때문에 2위였으며 그 이듬해에는 보란듯이 우승을 차지하는 강팀이었다. 즉, 저 6할을 기록한 팀들은 역사적인 강팀으로 기억되고 있다. 특히나 09 SK와 19 키움은 당해 sWAR 총합 1위팀이며 LG는 19~22 시즌 동안 통산 승률 1위였다.
해임되고 5년 후인 2008년, 롯데가 한창 주가를 올릴 때 '롯데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겠는가?'란 질문을 모든 방송 해설가들에게 한 적이 있는데, 다른 해설가들은 모두 '한다'라고 대답한 반면 백인천만 유일하게 "한국야구를 보지 않아 모르겠다."란 대답을 했다. 이 해 롯데는 3위를 했지만, 준플레이오프에서 스윕을 당해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다. 결과적으로 틀린 말은 하지 않은 셈.
선술했듯이, MBC - LG 시절과 삼성 시절에는 꽤 괜찮은 평가를 받았으나 롯데 시절에는 사실상 1년 약간 넘는 다소 짧은 기간이었는데도 이와 같은 최악의 개막장 행보들로 인하여 순식간에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악의 감독으로 단단히 낙인찍혔다.
5. 롯데 감독으로서 실패한 원인
백인천은 LG 트윈스 시절과 삼성 라이온즈 시절은 현 시점에서는 여전히 긍정적 평가가 우세함에도 불구하고 유독 롯데에서만 대놓고 태업으로 고의적으로 팀을 초토화시키며 역대 최악의 감독으로 자리매김하였다는 특수성 때문에 왜 그가 태업을 하게 되었는지와 기본적인 감독으로써의 능력이 왜 이렇게까지 심하게 떨어졌는지에 대한 원인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오가고 있다.- 첫 번째 설로는 삼성 말기에 온 뇌출혈 후유증+노령으로 인한 건강 문제로 이렇게 되었다는 설이다. 실제로 뇌혈관 질환이 오면 심하게는 식물인간이 되거나 반신불수가 오지만, 가볍게 온 사람은 성격 변화 혹은 지적 능력 감퇴 등의 증상이 온다. 여느 스포츠 감독들이야 다 그렇지만, 특히 직업적 능력인 야구감독은 그 중에서도 스트레스를 매우 받는 직업으로, 재발 위험성도 있는지라 이러한 후유증을 회복할 시간이 충분히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백인천 자신이 이런 자리를 냉큼 수락했다는 게 문제다. 물론 급한 불 빨리 끈답시고 이런 준비도 덜 된 사람을 급하게 앉혀 놓은 구단 측도 문제지만... 실제로 한화 이글스 타격 인스트럭터 시절에는 김태균의 스윙폭을 무리하게 늘려서 성적을 하락시키는 등 개인적인 역량 면에서도 다소 감이 떨어진 듯한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 두 번째 설로는 구단이 2002 시즌 중 우용득을 성적 부진으로 경질시킨 후 백인천에게 "제발 좀 와 주십시오."라고 간절히 부탁한 뒤 구두로 여러가지 이런저런 약속들을 했었는데, 막상 백인천이 감독직을 수락하고 나자 이 약속들을 지키지 않았고, 그 후 구단 프런트가 경기 운영 면에서 월권행위를 저지르자 백인천이 이렇게 할 바에 차라리 경질해 달라고 요구했다는 것. 다만 사임과 달리 경질 시에는 구단이 잔여 연봉을 지급해야 하는데, 구단에서는 그 돈조차도 주기 싫어서 "그럼 차라리 당신이 알아서 사퇴하쇼!"라고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바람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결국 대판 싸웠고, 이후 백인천이 그럼 누가 이기나 한번 해 보자고 마음먹은 뒤 상기된 개막장 짓들을 고의로 했다는 설이다.[58] 사실 엘지에서도 1990년 당시 우승한 직후임에도 불구, 프런트들에게 한 요청 사항들이 모조리 묵살된 것은 물론 구단에서도 이를 제대로 들어주지 않아 1년만에 구단과 관계가 틀어지면서 중도 하차한 전례가 있기에 가뜩이나 강성으로 악명 높은 롯데 프런트와의 관계야 오죽했을까 싶기도 하다. 유승안의 증언에서도 보여지듯이 본인의 야구 철학이나 생각과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일체의 타협도 없는 성격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저 두 가지가 큰 원인으로 여겨지는데, 종합적으로는 삼성 시절까지는 그래도 어느 정도 선진적으로 야구를 하고 육성 능력 역시 매우 좋았으나 뇌졸중을 겪으며 기본적인 야구에 대한 감 자체가 하락하고,[59] 2002 시즌 본인이 진행한 리빌딩 정책들마저 그러잖아도 전부 성과가 좋지 않았는 마당에 이상구를 위시한 막장으로 널리 알려진 롯데 프런트마저 그를 존중하지 않자 크게 분노하여 2003 시즌부터는 대놓고 롯데에 앙심을 품고 팀을 작정하고 초토화시켰다는 것이 정설로 여겨지고 있다. 물론 감독으로써 일부러 팀을 초토화시키는 것은 막장 중의 막장의 행위이니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여겨지나, 백인천의 입장에서만 보자면 어느 정도의 핑계거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동시에 백인천 본인의 뚝심이 다른 야구인들에 비해서도 상당히 강한 축이라 일단 갈등이 생기면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는 성향인 것도 그가 기분이 상해서 팀을 망치는 데에 한 몫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아무리 명감독이라도 시대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면 막장이 되는 점이야 비단 야구 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들의 감독들도 다 해당되는 사항이지만, 백인천은 거기에 감독으로서의 의무 포기까지 더한 셈이다. 거기에 뇌출혈 후유증까지 덧붙여졌으니 이게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 것.
또한 백인천 특유의 고강도 리빌딩 스타일도 롯데 시절 무리수에 한몫했다. 백인천의 경우 삼성 시절에도 강력한 리빌딩 기조를 통해 팀을 뿌리부터 갈아엎어 강팀으로 만들어냈고, 이 과정에서 본인 특유의 비타협적인 성향을 통하여 엄청난 속도의 리빌딩을 해냈는데, 롯데 시절에는 이미 뇌출혈로 판단력이 다소 저하된 상황에서 온갖 무리수를 자행했고, 리빌딩 시도는 계속 실패만 한데다 구단과의 갈등까지 합쳐져 2003년부터는 골프 얘기나 실컷 하며 일부러 팀을 버렸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즉, 다른 팀 감독들은 덜 개간된 땅에 무턱대고 농작물을 심고 가꾸려다가 그 성과가 제대로 나지 않았던 것 혹은 이모작이고 지력이고 뭐고 고려하지 않고 무지성으로 지력을 많이 빨아먹는 작물들을 연속으로 키웠다가 풀 한 포기조차도 나지 않는 척박한 땅으로 전락해버린 것에 비유할 수 있는 반면 백인천의 롯데는 땅을 개간한답시고 무대포로 다 들이엎었는데 자신에게 편한 방식으로 농사일을 시작할 만한 날씨 조건이 도무지 나오지 않자 농사일 시작은 커녕 배째로 일관해서 땅은 안 그래도 엉망이 돼버린 마당에 어떤 작물도 얻지 못하고 농사조차도 짓기 어려워진 상태가 돼버린 걸로 비유할 수 있다.
6. 기타
어쨌든 감독으로써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것은 명백한 사실이고, 이로 인하여 KBO 리그 역사상 최악의 시즌이라는 결과가 나왔기에 백인천은 롯데 팬덤 사이에서 롯데를 망친 죄로 금지어를 넘어선 범죄자로 취급당하고 있으며, 그래서 "만일 롯데가 하나의 국가였다면 백인천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사형이었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인식이 나락으로 굴러떨어졌다. 당장 백인천은 2006년 당시 야갤러들이 정한 로나쌩 클럽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정도인데, 이는 롯데를 망쳐서 모든 팀을 로나쌩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이유이다.[60]현재의 백인천은 이미 오래전에 야구계를 은퇴한지 아주 오래 된 80대의 야구 원로로, 요즘 시대에 새롭게 유입된 신입 야빠들이나 백인천이 현역 야구인이었을 때 미성년자였던 사람들이라면 세대 차 때문에 인지도가 낮아져서 잘 모를 가능성이 높은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롯데 감독을 맡은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올드 롯데 팬들에게는 허구한날 까이고 있다. 게다가 20년이 지나면 잊혀지기 십상이어서 보통은 '뭐 그런 사람도 있었지' 정도의 가벼운 반응이 많지만, 상당수의 올드 롯데 팬덤은 여전히 백인천의 백자만 들려도 비정상적인 분노를 표출하면서 엄청난 저주를 퍼붓는 경우가 대다수일 정도로 이 시기 백인천에 대해 엄청난 원한을 가지고 있다.[61] 게다가 위에서도 언급되었듯 한국 야구사를 통틀어 한 손 안에 들 정도의 업적을 남겼음에도 롯데 시절 1년의 과오만으로 젊은 야구팬들에게까지 '백골퍼'로 불리며 팔순이 넘은 지금까지 조롱받고 있다. 즉, 이 시기 1년의 과오로 백인천은 본인의 찬란한 야구 인생에 영원히 씻을 수 없는 거대한 치욕을 남긴 것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롯데에서의 1년은 본인한테도 팬들한테도 여러 의미에서 최악의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대호의 은퇴사 때도 이대호가 롯데에 있었을 때의 전직 감독들인 우용득, 양상문, 강병철, 제리 로이스터, 조원우, 허문회에 대해서는 전부 감사하다고 언급됐지만[62], 유이하게 백인천과 양승호[63] 두 사람은 은퇴사에 언급되지 않았다. 양승호 같은 경우 감독으로써는 호평이 우세하나 하필 입시비리 혐의로 금지어가 되어버려서 언급이 불가능했지만, 백인천은 범죄는 안 했는데도 그 팀 역사상 최고 레전드 이대호조차 은퇴식에서 감히 이름 석자를 꺼낼 수조차 없었던 것을 보면 얼마나 평가가 안 좋은지 알 수 있다.
[1]
현재는 그가 퇴임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올드 롯데 팬덤은 여전히 그의 모습을 보면 화를 참을 수 없다고 한다. 참고로, 백인천이 감독을 하던 시절 태어났거나 새로이 유입된 어린 팬들은 2020년대 기준으로 이제는 어엿한 청년이 되었다. 즉, 백인천이 롯데 감독을 한 지도 매우 오래 되었다는 이야기. 사진에서 볼 수 있듯 저 당시 백인천은 약 60세 정도였고, 현재는 여든이 넘은 엄청난 고령이다.
[2]
사진에 없는 12번과 13번은 현재 사진을 찾을 순 없지만 남은 글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
선동열이 TV에 나오면...반사적으로 TV를 끈다.', '마찬가지로 삼성투수코치가 마운드에 올라오면 괜히 그 사람이 공을 던질 것 같다.'
[3]
즉, 롯데 시절의 백인천이 역대 최악의 감독인가에 대해서 반론하는 사람이 아예 없으며, 역대 최악의 감독 논쟁은 애초에 롯데 백인천 말고 대놓고 고의적으로 팀을 말아먹은 인물이 없기에 전무하다. 심지어 다른 종목 감독들까지 싹 다 통틀어 봐도 성적은 부진했을지언정 고의적으로 팀을 박살낸 인물은 단 한 명도 없다. 다른 감독들 중에서는 성적이 부진하고 팀 운영 비전도 부적절하며 투지도 결여된 모습이 자주 나오나, 백인천의 사례처럼 대놓고 태업임을 인터뷰에서 인증한 사례는 없었다.
[4]
단순히 프로 스포츠 리그 통틀어서는 전 종목을 아울러 현재까지도 적수가 거의 없다고 평가받는다. 2024년 기준으로
축구의
위르겐 클린스만과 2024년 7월 클린스만 후임으로 선임된 홍명보가 그나마 롯데 시절의 백인천과 비견될 무능, 워크에식으로 백인천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스포츠계 역대 최악의 감독 반열에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5]
백인천은 부임 20년이 지나고 야구계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사실상 일반인으로 말년을 보내고 있는 현재까지도 롯데 자이언츠 올드 팬들에게 있어서 단연코 최악의 생각도 하기 싫은 인물 1위로 꼽히며, 롯데 팬들의 그에 대한 증오는 상상을 초월한다. 또한 타 팀 팬들은 자신들의 팀의 종사자 중 노답 중 상노답인 인물들을 롯데 시절의 백인천과 비교하곤 하는데, 이는 곧 그 종사자가 자신의 팀을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대놓고 팀을 망친다는 소리를 하는 것으로, 그 종사자에 대한 할 수 있는 최악의 모욕을 한 것과 같은 이치다.
[6]
일단 롯데 팬들이 선수와 지도자, 행정가 다 통틀어서 팀 역사상 가장 싫어하거나 증오하는 인물을 꼽으라 하면 무조건 백인천이 가장 먼저 1위로 꼽힌다. 그리고 후임 감독들 중에서도 백인천을 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 당연하겠지만 감독을 맡아놓고서 태업을 해서
8888577의 주요 원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백인천이 떠난 지 10여 년이 지난 후 2015년
이종운 감독이 각종 기행들과 더불어서 롯데를 8위로 만들면서 한 시즌도 다 못 채우고 시즌 종료 무렵에 해임된 바람에 제2의 백인천 관련 드립이 나오기는 했지만, 이마저도 주류와 화제가 되지는 못했고, 또한 백인천에 비비기에는 떨어져도 한참 떨어진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종운은 신장개업이지만, 백인천은 이전까지는 감독으로서 그럭저럭 성적도 잘 냈고,
이승엽을 포함한 인재를 발굴해 황금 세대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있었는데, 롯데에서만 고의적으로 완벽하게 팀을 박살냈기 때문에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게다가
이종운/평가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나마 이종운은
선수 보는 눈만큼은 좋은 편이라는 장점이라도 있지만, 백인천은
김주찬의 호타준족으로서의 가능성을 본 것만 제외하면 롯데 감독 시절 어떠한 면에서 봐도 장점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그러다가 2021년,
허문회 감독이 감정적인 운용, 과한 양아들 양산으로 10위를 한 뒤 시즌 초에 짤리면서 백인천과 진지하게 비교하는 여론이 생기기는 했지만, 이마저도
단장과의 감정적인 갈등을 이유로 팀을 망쳤다는 평가가 대세지 고의적으로 태업을 했다는 평가는 소수다.
[7]
KBO 리그 역사상 가장 낮은 승률을 기록한 구단 순위를 매기면
삼미 슈퍼스타즈 다음가는 평가를 받는 팀이 해체 직전의
쌍방울 레이더스와 백인천 부임 시절의 롯데 자이언츠다. 그 다음 순위를
정재공,
유남호,
서정환 아래 848을 찍으며 꼴아 고양이즈로 불리던 2000년대 중후반
KIA 타이거즈, 답이 없는 한화의 수비로 대표되는 2010년대 초반과
정민철 체제 3년간 1차 암흑기보다도 더 낮은 승률을 기록한 2020년대 초반
한화 이글스가 잇는다. 또한 백인천 부임 시절 롯데보다 평가가 낮은 팀들은 전부 20세기 팀들이라, 백인천의 롯데 자이언츠는 자연스럽게 21세기 KBO 리그 최악의 약팀으로 불린다.
[8]
또한 단순히 승률을 넘어서 운영 면에서도 단장
이상구, 감독 백인천이라는 환장의 콜라보 아래 구단 자체가 그냥 방치되었으며, 2002 시즌과 2003 시즌 다음가는 최악으로 평가받는
2019 시즌도 아주 양반으로 보일 정도로 이 두 시즌은 프로구단이라고 하기도 심히 민망한 운영이었다. 오죽하면 구도
부산광역시을 연고지로 한 롯데가 홈구장 관중수가 1,000명을 찍지 못하고 KBO 사무국 차원에서 경고를 날릴까? 국내 최고 인기구단이자 전국 규모 2위 도시 부산을 연고지로 한 롯데가 저 정도로 관중이 박살났다는 건 기록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롯데의 2019 시즌 역시 롯데 역대 최악의 시즌임은 물론 타 팀의 시즌들과 비교해보아도 두드러지게 그 막장성이 부각된다는 매우 심각한 혹평을 받는데, 그래도 프로 구단의 틀은 갖춘 운영을 했다면 이 2년간 롯데는 아예 1982년
삼미 슈퍼스타즈나 1999년
쌍방울 레이더스와 크게 다를 바가 없을 정도로 단장이나 감독이나 아예 프로구단으로써의 운영 자체를 포기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비단 백인천 말고도 이상구 역시 로이스터 시기 초창기 가을야구 진출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롯데 자이언츠 팬덤 내에서 악명높은 2019 시즌 롯데를 만들어낸
이윤원만큼이나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원인이 바로 이 두 시즌의 극단적으로 방만한 경영 때문인 것.
[9]
물론 백인천 부임 바로 전 해였던 2001년에도 꼴찌였지만, 애초에 2001 시즌은 4위 한화와도 고작 두 게임차였다. 백인천이 2002년부터 태업으로 팀을 말아먹으며 암흑기를 연장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따라서 보통 한화 암흑기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류현진, LG 암흑기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박용택이라면, 롯데 암흑기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이 백인천이 된다. 선술한 두 명은 암흑기 때의 팀을 이끈 리그 올타임 레전드들이지만, 백인천은 리그 올타임 레전드급 졸장(...)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마침 백인천 역시 유일무이 4할로 선술한 두 명 못지않게 리그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지만 어쨌든 롯데에서는 그렇다는 것.
[10]
꼴찌 롯데의 약자
[11]
사실 선수 시절의 커리어는 대한민국의 기라성 같은 레전드들 사이에서도 준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고, 감독으로서도 비록 선수 시절의 명성에는 못 미치더라도 LG와 삼성 시절에는 나름 준수한 감독으로 평가받는 인물이었다. 다만 오히려 종전의 팀들에서는 감독 일을 아주 잘 했는데, 차후에 롯데에서 태업을 했다는 의혹을 증폭시켜 더욱 평판이 나빠진 것이기도 하다.
[12]
사실 이는 LG와 삼성 감독들이 거의 다 혹평받았던 것이 크다. 5할 5푼 정도의 승률을 기록한 김성근, 서정환, 선동열도 삼성에서는 까였고, LG는 아예 염경엽 전까지 29년간 우승도 전혀 못 했으니...
[13]
김성근 전 감독의 경우도 이미 오랜 기간 동안 특유의 '정신력 야구'를 통하여 한국 야구계에서 독보적인 인지도와 인기, 성과를 다 잡았던 덕분에 정작 야구계에서는 아직도 존경받고 있다. 단지 나이도 많고 한화 감독으로서 일으킨 각종 논란과 실패로 인해 지도자 생활을 더는 못 할 뿐이다. 게다가 김성근은 2023년부터 야구 예능 프로그램
최강야구
최강 몬스터즈에서
감독을 하고 있다.
[14]
사실 김성근은 30여 년 동안 많은 감독 생활을 하면서 불명예스럽게 경질되어서 팀을 떠났을지언정 프런트와 극한의 대립을 일으켰을 때도 최고위층인 구단주를 언제나 두둔하고 감사와 존경함을 표현하는 등 사회생활과 언론플레이에 능하기도 하여 실제
OB·삼성·한화 등에서 감독이 될 때 프런트의 의사와 무관하게 그룹 총수의 지시로 감독으로 영입이 되기도 하였다. 물론 이러한 것도 감독으로서 성과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고, 실제 김성근은 약팀이라 평가받았던
태평양, 쌍방울 감독을 맡아 창단 첫 가을야구 진출, LG 감독을 맡아
200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SK 감독을 맡아 4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에 3회 우승, 정규시즌 22연승의 대기록의 커리어가 있었기에 감독 말년 한화에서 비상식적인 운영 및 혹사로 많은 논란을 일으키며 불명예스럽게 해고되었음에도 일본 소프트뱅크 호크스 코치 고문으로 무려 5년 동안 활동하다가 여든이 되어서야 은퇴했다. 이처럼 백인천이 롯데 감독으로서 태업에 가까운 행동을 하지만 않았어도 단순히 성적이 좋지 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불명예스럽게 야구인으로서 생활을 마감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나아가 몇 년은 더 야구계에서 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당장에 백인천 다음 가는 KBO 최악의 감독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이순철도 LG 감독으로서 희대의 흑역사를 쓴 후에도 KIA 코치 및 해설위원으로서 현재도 멀쩡히 활동하고 있다. 물론 백인천도 몹시 많아진 나이 때문에 일본 야구 해설을 하다가 은퇴했지만, 백인천이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야구계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롯데 팬들의 엄청난 혐오감이 한몫했다. 그만큼 백인천이 롯데 팬들에게 남긴 상처가 어마어마한 것이다.
[15]
굳이 따지자면
FC 바르셀로나의
주제프 마리아 바르토메우 전 회장이 있는데, 재임 당시 경영 문제로 자팀 선수진 전원에게 맹비난받으며 선수들이 이 팀을 나가겠다고 원성을 했고, 지역 언론에게 '노진구'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아예 지역 언론에게 풍자를 당했으며 결국 경영 실패로 사임 이후 팀 레전드 리오넬 메시가 이적하고, 엄청난 재정 악화가 발생하는 등 온갖 문제를 일으키며 백인천급으로 까이고 있다.
[16]
흔히 거론되는
이순철,
서정환,
김한수 등의 사례를 말한다.
한화 이글스의
김성근의 경우 예외적으로
지나친 혹사와 그 동안의 일들이 나쁜 의미로 재조명받으면서 한화 팬덤 내 뿐만이 아니라 타 구단 팬덤들에게도 비판받았다. 가끔은 성적 부진으로 단 1년만에 잘린
송일수와 나름 괜찮았던 성적에도 불구하고 프런트와의 불화로 한 시즌도 다 못 채우고 시즌 말기에 자진사퇴 형식으로 해임당한
손혁 두 사람이 더는 업적(?)을 쌓지 못해서 생각보다 임팩트가 없다는 글이 올라오고는 하는데, 백인천도 총 재임 기간은 2002년 6월 ~ 2003년 8월로 1년 2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이었다.
허삼영이 2022년 7월, 1승 13패를 기록하고 자진사퇴하자 롯데 시절 백인천과 성적에서 비교하는 여론이 생겼지만, 그조차도 태업은 아니었기에 진지하게 비교되는 수준은 아니다. 그나마 최근 들어 배임수재 혐의로 기소된
김종국이 롯데 시절 백인천과 LG 시절 이순철, 한화 시절 김성근 다음 가는 정도에 오른 게 이 정도.
[17]
실제로 삼성 시절 이후로
뇌졸중 문제가 있었는데, 경질 이후 18년 후인 2021년에 이 문제가 심해져서 병세가 상당히 악화된 상태라고 한다. 롯데 감독 시절만 빼면 업적이 어마어마해서 한국 야구 역사를 통틀어서도 손에 꼽는 레전드라고 봐도 좋으며, 그걸 떠나서 백인천 같은 레전드급 인물이 나이가 들어서 건강 문제로 고생하는 모습 자체가 안쓰럽다는 반응이 많고 쾌차를 비는 야구팬들이 대부분이나, 롯데 감독 시절의 업보로 인하여 여전히 롯데 팬덤 한정으로는 백인천의 건강 문제는 차치하고 이미 야구계를 떠난지 한참 되어서 80이 넘어 노쇠해진 현재도 백인천의 백자만 들어도 치를 떨 정도다.
[18]
외국인 선수 제도가 도입된 이후로는 국내 선수층은 괜찮은데 비싸게 데려온 외국인이 드러누우면서 아깝게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는 경우도 생겼다. 물론 해당 선수 입장에서야 아프고 싶어서 아픈 건 당연히 아니겠지만, 이를 지켜보는 코칭스태프와 팬들의 심정은...
[19]
4위 한화와 단 2경기 차이며 이 때 승률 0.457은 KBO 리그 역사상 최하위 팀이 거둔 최고 성적이다.
[20]
이 시기에는
한일 월드컵 덕분에
한국 축구 국대 경기가 있던 날엔 야구 경기가 열리지 않았다. 즉, 중간중간에 쉬는 날이 있었음에도 그 전력을 추스리지조차 못했다.
[21]
공교롭게도 삼성 라이온즈 감독에 부임할 때도 전임 감독이 우용득이었다.
[22]
이 시즌(2002년)에 롯데는 승률 0.265, 역대 최다패 타이기록인 97패를 기록했고, 정규리그 1위 팀
삼성 라이온즈와는 승차가 무려 48.5경기, 바로 위에 있는 7위
한화 이글스와의 승차도 26경기 차이났을 정도로 압도적인 최하위를 기록했다.
[23]
백인천 덕택에 1군 데뷔를 경험한 선수들만 자그마치 열댓명에 이르렀을 정도다.
[24]
후일 KIA 타이거즈가 2010년 6월 18일부터 7월 8일까지 져 16연패 타이기록을 세운다. 그 유명한
잠실 KIA팬의 난이 이것 때문에 터졌다. 이를 뛰어넘는 기록은
쌍방울 레이더스의 8월 25일부터 10월 5일까지 17연패와 1985년 3월 31일부터 4월 29일까지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18연패, 한화 이글스의 2020년 5월 22일부터 6월 12일까지의 18연패.
[25]
정확히는 SK 쪽에서 용병 투수
페르난도 에르난데스까지 받아오는 3:2 트레이드였으나, 이미 에르난데스는 전년도 혹사로 인한 어깨 부상으로 시즌 아웃된 상태였기 때문에 트레이드에 포함된 건 어디까지나 구색 맞추기용이었을 뿐이었다. 실제로 에르난데스는 롯데에서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방출되었다.
[26]
애초 롯데 시절부터 ERA에 비해 WHIP가 높아서 불안한 유형이었고, 타자친화 구장인 문학으로 가자 불안한 피출루 관리가 뒤늦게 터져 망한 케이스로 보인다.
[27]
당시 롯데가 얼마나 심각했었냐면 용병 두 명이 일찌감치 퇴출되고 다른 팀들은 3명이나 보유하고 있는데도(2001년과 2002년에는 3용병 2출전이었다.) 유일하게 2명만 보유했었으며, 팀 전력에서 도움이 되는 명선수들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삼미의 18연패를 깰 최악의 상황이 오면서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28]
LG 시절 이순철은 선수 보호 실패와 FA 실패, 육성 실패와 베테랑 방출 등 비판받는 감독들이 저지르는 행위 전부를 저질렀으며, 운용 능력도 매우 나빴다. 요즘으로 치면 삼성 라이온즈 감독 시절
김한수가 저지른 실책을 극대화시킨 것에 가깝다. 그러나 이순철의 경우 일반적인 졸장들이 저지르는 실책들을 극대화시킨 것이라면 백인천 쪽은 태업으로 인하여 발생한, 일반적인 야빠들이라면 예측하기도 힘들 정도의 기상천외한 실책들을 다수 저질렀으므로 심지어 이순철의 실책을 직접 경험하고 백인천을 원년 4할 타자에 팀의 첫 우승 감독으로 인정하여 존경하는 여론이 많은 LG 팬들조차 역대 최악의 감독을 꼽을 때 이순철을 그나마 롯데 시절 백인천과 동급으로 놓지 그 이상으로 취급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백인천의 롯데 시절 실책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 수 있다.
[29]
공교롭게도 최악의 감독 중 1/2위를 다투고 있는 백인천과 이순철 둘 다 한국프로야구 은퇴선수 협회(한은회)에서 같은 한솥밥을 먹고 있다.
[30]
이걸 거꾸로 말하자면 백인천은
아예 감독의 본분을 망각하고 골프나 치는 등 대놓고 태업했지만, 이순철은 그러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백인천 다음 가는 최악의 감독으로 평가받고 있고, 역시 부임 20년이 다 된 지금에 와서도 역대 2위 최악의 감독으로 평가받는 경우가 잦으니 해설위원이나 선수로써는 확실히 레전드이고 코치로써도 준수하지만 이순철도 감독을 할 그릇만은 되기 힘들었다고 볼 수 있다.
[31]
그때의 트레이드 시도는 그 당시 재임 중이었던
이상구 단장에 의해 무산되었다.
관련 기사. 다만 포수 전향을 권유했다는 것에 대해 당시 롯데 코치였던
김용철은
금시초문이라며 부인했다.
[32]
99년부터 2001년까지 몬트리울 산하 트리플A에서 뛰다가 2002년 일본 사회인 강팀인 미쓰비시 자동차에서 뛰고 있었다. 현재는 미에 현 사회인야구단의 선수 겸 코치를 맡고 있다.
[33]
그래도 트리플A에서 뛴 데다 사회인 야구 강팀에서도 활약한 선수라 더블A에서 뛰던 선수도 KBO에 오던 걸 생각하면 절대 커리어가 나쁜 선수는 아니었다. 트리플A에서 사회인 야구로 간 것도 NPB 지명을 위해 간 것으로 추측되는데, 적응의 문제인지 결국 한국프로야구에선 영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34]
시범경기 평균자책점 9.84.
[35]
한국 등록명은 이시온. 약물의 후유증으로 2005년 10월에 사망했다.
[36]
한국프로야구는 1983년부터 재일동포 선수를 자유계약으로 영입할 수 있었는데
장명부나
김일융 등이 이 규정으로 KBO에서 뛴 바 있다. 다만, 백인천이 롯데 감독을 맡았던 2003년 즈음에는 이미 한국프로야구의 수준이 많이 높아졌기에 재일동포 선수를 쓸 일도 딱히 없어졌고, 또한 쓸만한 재일동포 선수도 쉽사리 찾기 힘들어 대부분의 팀이 굳이 재일동포 선수를 데려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2003년 당시 KBO리그에서 뛴 재일교포는 김영화 외에도
고지행(삼성),
이일의(LG) 등이 있었다.
[37]
김영화가 세운 38세 포수 데뷔전 기록은 역대 최고령 기록으로, 이후 십수년간 깨지지 않다가 십여년 후인 2021년,
이대호가 깨게 된다. 다만, 김영화와 달리 이대호는 토종 한국인이고 야수진을 모두 소모한 덕에 경기 후반 교체로 출장한 것이다.
[38]
차후임자
강병철은 이대호에게 산악 러닝 및 암자에서의 수행을 통한 체중 감량을 진행했고, 이는 성공적이었다. 실제 이대호는 이후 MLB, NPB 시절에도 이런 방식으로 체중 감량을 꼭 하고 시즌을 시작한다.
[39]
당시 SK 단장은
김강민,
박재상 카드를 검토했다고 한다.
[40]
김재박 감독에게 트레이드를 제안했다고 한다.
김시진의 말에 의하면
송신영이나
신철인과의 맞트레이드를 추진하려고 했다는데, 현대가
조용준 카드도 고려하였다는 설이 있다.
[41]
양승호 전 두산 코치에 의하면 2003년에
문희성이 사직 경기에서 홈런을 치자 경기 후 백인천 감독이 이대호를 줄테니 문희성을 달라고 했다고 한다. 만약 이 트레이드가 성사됐다면 롯데 역사 최악의 호구딜이 될 뻔 했는데, 문희성은 그저 그런 대타 요원이었다가 2006년에 은퇴했기 때문이다.
[42]
사실 이게 롯데 팬들이 백인천이라면 치를 떠는 가장 큰 이유라고 봐도 무방하다. 팀 성적이야 롯데 프론트의 막장 운영으로 인해 백인천이 감독이 아니었다고 해도 크게 낫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장 백인천이 부임 당시 이미 롯데는 15연패 중이었고 승률도 2할대였다. 그러나 이대호나 손민한마저도 팀에 없었다면 암흑기는 더 길어졌을 게 확실하다.
[43]
이렇듯 백인천은 롯데 팬들은 물론 이대호 개인에게도 악연 그 자체인 인물이기에 이대호가 은퇴사에서 선수시절 거쳐갔던 롯데감독들을 호명하며 감사인사를 전할 때도 그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았다.
[44]
롯데 시절에도
이대형과 도루 경쟁하던 때 이미지가 강해서 그렇지 원래 두 자릿수 홈런을 기대할 수 있는 뜬금포 능력이 있었고 도루 자체는 2010년을 빼면 이대형급의 선수는 아니었다.
[45]
당시 아예 제구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정확한 방출 사유는 심장 박동 불규칙으로 인한 건강 이상.
[46]
양성제는 2003 시즌 50게임, 2004 시즌에 불과 2게임 출장을 끝으로 줄곧 2군에만 있다가 2009년 7월 21일 자로
김장현과 함께
웨이버 공시되었다.
[47]
이날 롯데 유니폼이나 모자, 스트라이프 티셔츠 등을 입고 오면 무료로 입장시키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실제 입장객은 200명 남짓밖에 안 될 정도로 이 작전도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48]
그나마 시즌 개막 12연패 때는
두산 베어스도 같이 망해 줘서 5월 말까지 최하위를 면하긴 했다. 그러나 전반기 끝나기도 전에 두산에 따라잡혔고 2003년 7월 월간 1승밖에 못 하는 부진 속에 최종 결과는 두산과 17.5게임차 최하위.
[49]
1992년 롯데의 우승 당시 수석코치였다. 이재환은 2002년 백인천의 취임과 동시에 2군 감독으로 다시 롯데에 돌아왔지만, 결국 백인천이
해고될 때 같이 해고되었다.
[50]
kt가 창단 1,3년차인 2015, 2017년에 90패를 했고
2019년 롯데, 2020년과 2022년 한화, 2020년
SK가 90패를 했다. KBO 역사상 최악의 성적을 찍을 뻔한 2020년대의 한화 이글스도 2년 연속 90패는 면했다.
[51]
이 쪽은 비록 단 한 시즌에 불과하지만...
[52]
정확히 딱 5할.
[53]
사실 한화도 정식 감독들 중 5할 승률 이상 되는 감독은
김영덕 단 1명만이 유일하다. 다만 한화는 벌써 역대 감독만 20명에 달하는 롯데와 달리 장기집권한 감독이 많아서 이보다 좀 적은 11명의 감독이 거쳐갔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그리고 김영덕은 구단 역사상 최전성기인
빙그레 때 감독이라 이글스에서의 성적이 5할대 후반이다.
[54]
이 시즌은 3개 팀이 6할 승률을 기록했는데, 공교롭게도 이때도
롯데가 꼴찌를 한 시즌이다.
[55]
정규시즌 2위였으나 롯데와의 플레이오프에서 2승 4패로 탈락하면서 최종순위는 3위.
[56]
키움은 6할 승률을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승률 인플레 때문에 두산과 SK에 밀려 정규시즌 3위에 그쳤다. 이후 SK를 플레이오프에서 스윕 후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을 하면서 최종순위는 2위.
[57]
심지어 8월 27일까지는 6경기차 1위였고 OB와 엎치락뒤치락 한 끝에 아쉽게 1위를 놓치고 말았다. 후술하는 2019년 SK의 선행 사례.
[58]
지금이야 2년 7억이면 초보 감독들이 받는 연봉이지만, 당시에는 국내 감독 중 최고 대우 수준이다.
[59]
2020 시즌
SK 와이번스 감독으로써 역대 최악의 시즌을 만든 뒤 뇌졸중을 겪고 2023 시즌 LG 감독으로 부임한 염경엽 역시 과하게 선수들에게 도루를 지시하는 모습으로 까였다. 다만 그 쪽은 SK 시절 까이던 점들을 지나친 도루자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다 고쳤고, 결국 팀을 29년만에
KBO 한국시리즈 우승을 시켰기에 롯데 시절의 백인천과 비교하는 것은 그에 모욕이다. 사실 LG 부임 당시에도 뇌졸중 경력이 있던 백인천의 사례 때문에 LG 팬들은 물론 타 팀 팬들 사이에서도 우려가 상당했었다.
[60]
참고로 명예의 전당에는 롯데전 연승 기록의
선동열, 로나쌩 클럽 초대 회장
성준이 백인천 제외 멤버들이다.
[61]
사실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 롯데의 경우 백인천 이후
강병철의 양아들들이 제대로 터진 로이스터 - 양승호 시기 5년 정도를 제외하면 가을야구에는 딱 1번인 2017년밖에 가지 못했을 정도로 쭉 침체기이다. 2001년부터 2024년까지 23시즌 중 가을야구에 딱 6번, 즉, 로이스터 - 양승호 시대 5번과 조원우 체제 2년차이던 2017년밖에 진출하지 못했는데, 로이스터 - 양승호 시대를 빼면 18시즌 중 한 번 가을야구에 진출한 것이 된다. 1992년 이후로 우승을 하지 못한 구단이라지만, 그래도 1995 - 1999년 동안 준우승을 두 번 하는 등 적어도 1990년대까지는 약체가 아니었다. 물론 2013년 이후의 장기 침체기의 경우 대체로 전성기 기간의 육성 미비와 프런트의 삽질이 큰 원인으로 지목되기에 이 기간의 암흑기가 전부 백인천 단 한 사람만의 탓인 것은 절대로 아니지만, 롯데 팬덤 입장에서는 그래도 매번 중위권은 꾸준히 찍어주던 팀이 완전히 처참하게 무너져서 21세기 최약체 중 하나로 불리게 된 주요 원흉 중 하나로 8888577의 핵심 백인천을 지목할 수밖에 없다. 비슷하게 강팀이던 KIA를 애매한 팀으로 만든
정재공과
서정환도 자리를 떠난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현 시점에서도 올드 KIA 팬덤 사이에서는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할 정도로
평판이 아주아주 나쁘다. 그나마 KIA는 운영 자체가 비정상적인 수준은 아니라서 이 기간 동안 우승 두 번을 했으며, 2024년에도 챔피언을 먹은지라 롯데보다는 상황이 많이 낫다. 그리고 최근에는 삼성 라이온즈의
안현호와
홍준학이 백인천과 비슷하게 자팀 팬덤에게 비판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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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진과
이종운이 롯데를 맡았을 시기에 이대호는 NPB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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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도 있었는데다 재임 내내 포스트시즌에 항상 가서 로이스터와 더불어서 롯데 팬들에게 평가가 좋았던 인물이지만,
고려대학교 감독 시절 뇌물을 받은 입시 비리로 인해 전과자가 된 것 때문에 이미지가 심하게 나빠져서 부득이하게 언급을 꺼린 것으로 추측된다. 감독 시절에는 꽤 잘 했고 상당한 능력자인데도 전과 기록 하나 때문에 한순간에 백인천 이상의 금지어로 전락해버린 케이스. 그렇지만 능력도 좋은데다 성적 면에서도 부임 기간 동안 모두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하는 엄청난 활약을 보였기에 여전히 일부 롯데 팬들 한정으로는 이미지가 좋고, 수뢰 범죄만 아니었다면 지금도 타 팀 지도자 및 코치는 물론 행정가나 해설자로도 양지에서 활동이 가능할 거라는 아쉬움도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