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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희망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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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대 총선 당시 미래통합당의 위성정당에 대한 내용은 미래한국당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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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한국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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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친박연대 흰색 로고타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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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희망연대


(흡수 합당)


[[미래연합|]]
(개별 합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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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미래희망연대 로고.svg
미래희망연대
<colbgcolor=#0065B3><colcolor=#fff> 영문 명칭 Future Hope Alliance
창당일 2007년 10월 2일 (참주인연합)
당명 변경 2008년 3월 13일 (미래한국당)
2008년 3월 21일 (친박연대)
2010년 2월 22일 (미래희망연대)
해산일 2012년 2월 6일 ( 한나라당에 흡수합당)[2]
당 색 파란색 (#0065B3)
붉은색 (#EE2B2B)
하늘색 (#049CC4)
진청색 (#0C449B)
의석 수
8석 / 299석
해산 전 대표 노철래(권한대행)
중앙당사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74길 12 (여의도동)

1. 개요2. 정당명 변천3. 역사
3.1. 참주인연합 시절3.2. 이삭줍기 시도3.3. 보수세력의 점령3.4.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3.4.1. 후보
3.5. 당명 변경3.6. 합당과 소멸
4. 평가5. 역대 지도부
5.1. 당 대표5.2. 원내지도부
5.2.1. 원내대표
6. 역대 선거 결과7. 유사 당명8.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에 존재했던 정당. 이름이 여러 차례 바뀌었으나 그 중 친박연대라는 이름이 가장 유명하다.

본래 이 당은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합민주신당 탈당 인사인 김선미 의원[3] 정근모 전 과학기술처 장관을 대선 후보로[4] 밀었던 군소 정당 참주인연합이었다. 이렇게 평범한 군소정당 중 하나로 역사에 남나 싶었지만 18대 총선을 앞두고 신당을 창당할 시간이 없던 한나라당 공천 탈락 세력이 대거 입당해 당명을 친박연대로 바꿔 버렸으며, 이후 한나라당에 흡수 합당되어 소멸하였다.

정작 박근혜 본인은 친박연대에 소속된 적이 없다.[5] 근혜 없는 근혜팀 물론 입당만 안 했을 뿐 한나라당 소속임에도 친박연대 인사들에게 "살아서 돌아오시라"라는 격려를 했다.

2. 정당명 변천

파일:external/www.dhns.co.kr/10080_3029_2135_150.jpg 파일:친박연대 로고.svg 파일:미래희망연대 로고.svg
미래한국당 친박연대 미래희망연대
미래희망연대가 되기 까지의 정당 로고와 상징색들. 친박연대의 경우 총선에서 한나라당, 자유선진당(
자유선진당 파란색 (#00529C)
)과 당색(
친박연대 파란색 (#0C449B)
)이 비슷한 관계로 방송에서는 보라색, 분홍색, 갈색[6] 등 다양한 색깔로 바뀌어 표현되었다. 본인들은 남색 배경에 (
붉은색 (#EE2B2B)
)으로 기호 6번을 표기하는 식으로 구분했다.

미래한국당에 친박 세력이 집단입당한 직후의 임시 로고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도 있다. #

3. 역사

3.1. 참주인연합 시절

2007년 9월 28일, 대선을 앞두고 대통합민주신당에서 탈당한 김선미 의원이 '참주인연합'을 만들어 제17대 대통령 선거에 기호 7번으로 정근모 전 과학기술처 장관[7]을 내보냈다.

3.2. 이삭줍기 시도

그러다 2008년 3월 13일 당명을 미래한국당(未來韓國黨)[8]으로 개칭하고 나서 한나라당 탈당파 당협위원장들을 모셔오기 시작했다. 당시 한나라당 남양주시 을 당협위원장의 입당 기사 총선을 앞두고 공천에 떨어진 사람들을 데려다가 당의 재기를 노린 것이다. 민주국민당이나 2020년의 한국경제당 등 군소정당에서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다. 특히 당대표는 공석으로 놔두었는데 박근혜까지 탈당할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3.3. 보수세력의 점령

예상대로 1년 전 치러진 대선에서 이명박이 당선되자 한나라당의 주도권은 친이계가 휘어잡았고 공천권도 친이계가 휘둘렀다.

그런데 2007년 대선은 사실상 한나라당의 승리가 확실시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인지 대선 본선보다도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 경선이 훨씬 격렬하고 살벌했다. 그래서 이명박 캠프와 박근혜 캠프가 당시 다시는 안 볼 사이처럼 서로를 지독하게 물어뜯으면서 감정의 골도 무척 깊어져 버렸다.

그로 인하여 김덕룡, 김무성, 서청원, 홍사덕 등의 구 상도동계, 친박계 다선 의원들이 줄줄이 공천에서 잘렸다. 애초에 친이계의 손을 들어준 김덕룡은 이에 승복했지만 친박계였던 김무성, 서청원, 홍사덕 등은 승복하지 않고 이를 공천보복으로 규정했다. 그렇게 18대 총선(2008년 4월)을 앞두고 당의 상황은 요상하게 흘러갔다. 이들은 공천에 불복해 탈당한 후 신당을 만들어 선거에 나서려고 했으나 창당 절차를 밟을 시간적 여유가 없자 미래한국당에 집단으로 입당하기 시작했다.[9] 거기에 함승희, 강인섭, 조영재 전 의원과 김종호 전 국회부의장도 입당하였다.

이들은 박근혜와의 관계성을 강조하기 위해 단 8일 만인[10] 동년 3월 21일 당명을 노골적으로 친박연대(親朴連帶, Pro-Park Alliance)로 바꾸었다. 친박연대라는 이름은 서청원 의원의 아이디어다.[11] 이로써 참주인연합 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정당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참주인연합의 원 당직자들은 친박계와 연합하여 당의 부채를 상환하고 공천에도 관여하려고 했으나 산전수전 다 겪은 서청원, 이규택 등에게 휘둘려 빚만 갚고 공천엔 관여하지 못했다는(...) 후문이 있다. 대선 후보였던 정근모 전 장관과 이 당을 만들었던 김선미 의원은 대선에서 패한 지 얼마 못 가서 탈당했으며 김선미 전 의원은 민주당으로 복당하였고 제6회 지방선거에서 안성시장에 출마해 낙선하였다.

3.4.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파일:친박연대 비례대표 후보자들.jpg
면목역에서 총선 승리를 다짐하는 친박연대 비례대표 후보자들
대구광역시, 경상북도 지역과 부산광역시 연제구를 비롯한 6개 지역에서 당선되었으며 심지어 수도권에서도 안산시 상록구 을 한 곳[12]을 얻었다. 비례 8석을 포함해 총 14석.
파일:친박 무소속 연대 성윤환.jpg
친박연대 홍사덕 후보와 친박 무소속 연대 성윤환 후보의 합동 기자회견
이 외에도 친박 무소속 연대 후보들과 함께 공동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친박 무소속 연대 역시 16명 출마, 12명 당선의 상당한 성과를 냈는데 합치면 지역구 18명, 전국구 8명으로 교섭단체까지 가능한 숫자다.[13]

지역구 당선자수(6명)보다 비례대표 당선자수(8명)가 더 많았다.[14] 박근혜라는 이름값만으로 이 정도의 성과를 거둔 것이다. 하지만 현역 의원이던 수도권의 이규택, 부산의 엄호성 의원은 낙선하였다.[15]

한편 이 시기에는 역대급 흑역사가 일어났는데 경주에서 당선된 김일윤 의원은 불법적으로 돈을 뿌린 것이 걸려서 4월 21일에 제명되었다. 선거법을 위반한 수도권 당선자인 홍장표 의원 역시 의원직을 잃었다.

압권은 비례대표 순번을 공천헌금을 받고 팔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돈을 준 양정례 의원(비례 1번/ 17억), 김노식 의원(비례 3번/15억 1000만원)과 공천헌금을 받은 서청원 대표(비례 2번)이 의원직을 상실했다. 이 때 공직선거법 제200조 2항의 비례대표 승계 제한 규정 때문에 3석이 공석으로 처리되었으나 2009년 10월 29일 선거범죄로 인한 당선무효시 비례대표 승계를 제한하는 규정이 위헌으로 판결되면서 곧바로 3석이 승계되었다.

2008년 강재섭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탈당 인사들의 복당을 불허한다는 방침이었으나 이명박과 박근혜의 회동을 거쳐 복당 불허 방침을 철회했다. 그 결과 지역구 의원 5명을 포함한 인사들이 모두 한나라당으로 복당했다.[16]

3.4.1. 후보

지역구 이름 당시 경력 비고
서울 중 오형석 중구 지역발전 포럼 대표
서울 광진 을 전지명 친박연대 상근 부대변인
서울 동대문 갑 김정석 전 동대문구의원
서울 중랑 갑 김철기 친박연대 사무총장
서울 노원 갑 함승희 전 국회의원[17]
서울 은평 갑 강인섭 전 국회의원[18]
서울 은평 을 장재완 한국청년기업협회 회장 사퇴
서울 마포 을 서준영 친박연대 수석 부대변인
서울 구로 갑 유영철 공인회계사회 윤리조사심의위원장
서울 구로 을 조평열 국가발전국민연대 공동대표
서울 영등포 갑 한경남 국민희망운동 상임의장
서울 동작 갑 손상윤 뉴스타운 인터넷신문 대표이사
부산 해운대,기장 을 김세현 친박연대 수석부대변인
부산 사하 갑 엄호성 현 국회의원[19]
부산 사하 을 배진탁 친박연대 직능총괄 본부장
부산 연제 박대해 전 연제구청장 당선
부산 사상 강주만 전 부산시의원
대구 서 홍사덕 전 국회의원[20] 당선
대구 북 갑 박영민 친박연대 선대위 부위원장
대구 달서 갑 박종근 현 국회의원[21] 당선
대구 달서 병 조원진 세계한인무역협회 북경회장 당선[22]
대전 서 갑 이영규 전 대전광역시 정무부시장
대전 서 을 서종환 대한 소프트볼협회장
대전 유성 조영재 전 국회의원[23]
울산 남 갑 이수만 전 울산시의원 사퇴
울산 동 박정주 전 울산시청 서기관
울산 북 최윤주 북울산포럼 이사장
경기 수원 권선 이상진 전 수원시의원
경기 성남 수정 박용승 전 성남시의원
경기 성남 중원 김기평 전 자민련 성남시 중원구 지구당위원장
경기 안양 동안 갑 박원용 전 동안구청장(관선)
경기 부천 원미 을 박성희 부천시 여성단체 협의회장
경기 안산 상록 을 홍장표 전 안산시의원 당선
경기 안산 단원 을 송진섭 전 안산시장 사퇴
경기 고양 일산동 김형진 전 외교통상부 통상전문관
경기 남양주 갑 박상대 전 박근혜 의원 경기도 특보
경기 남양주 을 조현근 한국대학생활체육연맹회장
경기 화성 갑 박윤구 전 경기도의원
경기 하남 박영길 전 경기도의원
경기 이천,여주 이규택 현 국회의원[24]
경기 용인 처인 이우현 전 용인시의회 의장 [25]
경기 용인 기흥 민학기 전 수원지방법원 판사
충북 청주 흥덕 을 김준환 전 박근혜 대선경선후보 충북선대위 총괄본부장
충북 증평,진천,괴산,음성 김종호 전 국회의원[26]
충남 논산,계룡,금산 심정수(정치인) 전 충남도의원
경북 경주 김일윤 전 국회의원[27] 당선
경북 안동 장대진 전 경북도의원
경북 영양,영덕,봉화,울진 이귀영 미연방공인건축사
경남 김해 갑 허점도 김해시 장애인 총연합회 회장
경남 밀양,창녕 김종상 친박연대 중앙 정책부의장 [28]
경남 의령,함안,합천 박희원 전 한나라당 중앙위원
경남 산청,함양,거창 양동인 전 경남 거창경찰서장 [29]
제주 제주 을 김창업 제주발전포럼 이사장

3.5. 당명 변경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다른 당에 있는 특정 개인의 이름을 딴 정당이란 엽기적인 상황을 벗어나고자[30] 새 당명을 시민공모하기로 했는데 이름들이 참 근사하당(...)[31] 결국 오랜 논의 끝에 당명을 미래희망연대(未來希望連帶, Future Hope Alliance)로 변경했다.

2010년부터 서청원 당시 공동대표는 한나라당과의 조건 없는 합당을 제안하였다. 이에 지방선거를 준비하던 미래희망연대 의원들은 반발하였고 이규택 공동대표는 자유선진당에서 갈라져나온 심대평 국민중심연합과의 합당을 추진했다. #

미래희망연대로 개명 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단독후보를 꽤 많이 냈지만 정작 공식 선거전에 미래희망연대 소속 후보는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이 당과 이름이 비슷한 친박연합과 여기서 갈라진 미래연합이 반사 이익을 봤다.[32]

여담으로 미래희망 연대라는 표현에 착안해 통일연세를 잇는 연세대의 새로운 FM(…)이라는 개드립이 회자된 적도 있었다.

3.6. 합당과 소멸

당 대표인 서청원은 실형을 선고받고 피선거권을 박탈당했으며 선거법에 따라 당적까지 상실되어 당 대표임에도 법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으므로 서청원의 최측근인 노철래 원내대표가 이규택 대표 탈당 후 당 해산까지 약 2년간 당 대표 대행을 맡았다.

게다가 문제의 공천헌금 사건의 여파로 부여된 증여세 14억원이 문제가 되어 한나라당과 합당 의결까지 다 해 놓고 정작 합당을 못 하는 상황이 되었고, 결국 해산 직전까지 미래희망연대는 한나라당의 위성정당 역할을 하면서 존속했다.

2012년 박근혜가 한나라당의 당권을 잡자 자연스럽게 한나라당에 흡수 합당되어 2012년 2월 2일에 최종적으로 합당 절차가 마무리되었으며, 이와 동시에 한나라당은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꿨다.

4. 평가

한국 정치의 보스 정치적 측면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정당이라고 할 수 있다. 정책 이념으로 뭉친 정당이 아니라 유명 정치가가 이끄는 명망가 정당(名望家政黨, Honoratiorenpartei)의 전형성을 보여주고 있다. 아예 당 이름부터 친박연대로 붙여 노골적으로 박근혜의 친위대임을 자처했다는 것에서 더 이상 거론할 것은 없을 듯하다. 그 당명 때문에 짧은 기간 내에 인지도를 높이는 것에는 성공했으나 너무 노골적으로 박근혜를 거론하는 바람에 욕을 많이 먹었다.

오늘날도 정계에서 당연하다는 듯이 계파를 인물에 따라 나누는데(예: 친박계, 친노계- 친문계, 안철수계) 사실상 특정 인물의 계파만 있는 정당들도 많이 있어 왔지만(예: 이승만 자유당, 박정희 민주공화당, 하나회 민주정의당, 김영삼 통일민주당[33], 김대중 평화민주당/ 새정치국민회의,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자유민주연합) 그런 정당이 아예 특정 정치인의 이름을 대놓고 당명에 기입한 경우는 전례가 없었다.[34] 이후 친박신당이 2020년에 창당되었으며 안철수가 국민의당을 재창당할 때 '안철수신당'을 당명으로 하려다가 반려당했지만 2024년에 기어이 조국혁신당이라는 당대표 이름 동음이의어 꼼수로 직접 넣은 정당이 탄생했다. 그러나 이 쪽은 일단 친박연대처럼 이름을 딴 특정 정치인이 당원이 아닌 엽기적인 상황까지는 아니고 공식적으로는 인물 조국에서 딴 이름이 아니라 나라를 뜻하는 말로 쓰이는 조국이라는 단어에서 따 왔다고 주장하는 데다 당의 공식 영어 및 한자 명칭도 인물 조국이 아닌 나라라는 단어를 뜻하는 조국이라는 단어에 맞게 지어져 있어서 회피할 여지는 있다. 물론 사실상 눈 가리고 아웅이긴 하지만.

이 정당으로 출마해서 떨어진 사람들 중 추후에 당선된 사람은 이우현 국회의원, 양동인 거창군수가 있다.

5. 역대 지도부

파일:미래희망연대 로고.svg 파일:미래희망연대 흰색 로고타입.svg 대표
개명 이전
김선미
조욱현
초대
서청원
이규택
2대
서청원
한나라당 대표

5.1. 당 대표

당의 명칭이 친박연대가 된 이후의 당 대표만 아래에 기재한다.

5.2. 원내지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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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1. 원내대표

6. 역대 선거 결과

연도 선거명 지역구 (비율) 비례대표 (득표율) 총 의석 (비율) 결과
2008년 18대 6 / 245 (2.4%) 8 / 54 (13.2%)[35] 14 / 299 (4.7%) 원내 4당

7. 유사 당명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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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용승 등. [2] 공고 [3] 지역구는 경기도 안성시였으며 정치 철새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남편 심규섭도 같은 지역구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이었다. [4] 실제로 17대 대선에서 기호 7번으로 나왔다. [5] 다만 박근혜는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직전에 잠시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다가 지선에서 참패하자 제16대 대통령 선거 직전에 한나라당에 복귀한 적이 있는데 이때 쓰인 미래라는 이름이 이 당과 여기서 갈라진 미래연합, 그리고 박근혜 정부 시절에 출범한 미래창조과학부에서 사용되기도 했다. 그리고 2020년에 미래통합당과 위성정당 미래한국당이 창당되었다. [6] 당시 SBS에서는 친박연대를 갈색으로 표현했다. [7] 2018년에 기록이 갱신될 때까지 무려 대한민국 최연소 박사(만 23세 5개월)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 [8] 2020년에 창당한 미래한국당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9] 김무성은 친박연대에 입당하지는 않고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며 이경재, 이해봉, 유기준 등과 함께 벽보에 ' 친박 무소속 연대'를 내세웠다. [10] '미래한국당'으로의 역사만 따지면 대한민국 최단명 정당인 제3신당과 맞먹는 셈이다. [11] 원래 생각했던 당명은 '미래친박연대'였는데 선관위가 줄임말 문제로 '미래'를 빼는 게 좋겠다고 해 친박연대로 당명이 정해졌다고 한다. [12] 당시 여야 모두 공천파동으로 표가 거하게 갈려 당선되었다. [13] 물론 조속한 복당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교섭단체가 구성되진 않았다. [14] 정당득표율이 무려 13%, 확보 의석이 8석으로 제3당이었다. (이회창과 충청 민심을 마케팅 전략으로 충청권 지역구 24석 중 14석, 6.8% 정당득표와 비례대표 4석을 확보한) 전체 제3당 자유선진당의 두 배. [15] 19대 총선에서 국민생각, 정통민주당 등 주요 양당 공천에 떨어진 인사들이 설립한 정당들은 의석수 배출은커녕 비례대표 득표율 2%도 달성하지 못하여 정당등록이 취소되었다. 그나마 선전한 것으로 평가받는 통합진보당의 의석수가 13석인데 민주통합당과의 야권연대로 가능했던 것이다. 지역 기반이 있는 자유선진당도 겨우 5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수도권 낙선은 당연한 것이다. [16] 비례대표 의원들은 탈당하면 의원직이 상실되는 특성상 계속 잔류하였고 미래희망연대가 한나라당과 통합하면서 들어왔다. [17] 16대 [18] 14,16대 [19] 16,17대 [20] 11,12,14,15,16대 [21] 15,16,17대 [22] 이후 19, 20대 총선 당선. [23] 15대 [24] 14,15,16,17대 [25] 이후 19, 20대 총선 당선. 그러나 20대 임기 도중 비리로 인해 낙마. [26] 11, 12, 13, 14, 15, 16대. [27] 12,13,15,16대 [28] 친박 무소속 연대 후보가 있는데도 출마했다. [29] 이후 거창군수 역임. [30] 친박연대라는 이름은 총선을 앞두고 인지도를 일거에 높이는 극약 처방으로서는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욕은 많이 먹었지만... 이후 친박연대라는 이름은 이미 그 역할을 충분히 했으니 해괴한 당명을 더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되어 좀 정상적인 당명으로 변경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31] 새 당명 중에는 자유공화당도 있는데 실제로 자유공화당이라는 정당이 창당되었다. [32] 물론 이 둘은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몰락했지만... [33] 단, 통일민주당 자체는 김대중, 김영삼이 함께 창당한 정당이지만 후에 김대중이 평화민주당으로 따로 살림을 차려서 김영삼 파벌만 남은 것이긴 하다. [34] 해외에는 호주에서 '폴린 핸슨의 일국당'이라고 아예 공식명칭을 붙인 일국당이라는 사례가 있었다. [35] 1인 2표제가 도입된 후 20대 총선에서의 국민의당 등장 이전까지 거대 양당을 제외한 당 중 최대 득표율이었다. [36] 김호일 전 의원이 중심이 된 정당인데 이쪽은 이전에도 신미래당과 국민의 힘(정당)으로 있었다가 총선에 득표율 미달로 해산된 바 있다. [37] 본래 이름은 국민행복당이었으며 총선 이후 환원되었다가 국가부패척결당을 거쳐서 통일민주당으로 변경하였다. [38] 참고로 또다른 공동대표인 조원진은 친박연대에 소속으로 처음 당선되었다. [39] 나중에는 '탈박(脫朴)'하여 비박이 되고 결국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까지 참여했다. [40] 실제로 여기에 해당되는 후보들이 벽보와 공보물 등에 이 문구를 내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