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플라스(로드 오브 히어로즈)

다닐: 제2 마탑 마탑주 직속 보좌관, 다닐 크바트가 엘펜하임의 첫 번째 기둥을 뵙습니다.

라플라스: 오랜만입니다. 다닐. 이런 식으로 만나 뵙는 건 처음이 아닌지요?

다닐: 하하, 늘 루실리카 님을 보좌하는 역할로만 인사드렸으니까요. 오늘도 말씀을 전하러 온 것이니만큼...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네요.

라플라스: 후후, 그렇군요. ... 루실리카는...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

다닐: ...아마 짐작하시는 그대로일 것 같지만... 네, 복잡한 심경이시겠지요. 애초에 이제 그만 쉬어도 좋다는 이야기를 꺼낸 건 저희 마탑주님이기도 하고요. 평소에는 훈련장에도 곧잘 내려오시고, 본 업무를 마치신 다음에도 견습생들을 봐주시고는 합니다만... 요 며칠 동안은 소식이 뜸했지요. 그래도 워낙 단단하시니만큼, 오래가지는 않았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 다짜고짜 제 자리로 찾아오셨거든요. '아발론에 얕보이지 말라'고 신신당부해달라고. 꼭 직접 전해달라고 부탁하시면서요. 혹여나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연락하라고도 덧붙이셨죠.

라플라스: 하하, 루실리카답군요.

다닐: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하고 싶은 일을 하셨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엘펜하임을 위해서가 아니라, 라플라스 님께서 원하시는 일을요.

라플라스: ...

다닐: 직접 오시지 못한 이유는... 짐작이 가실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라플라스: ...예. 괜찮습니다. 루실리카에게도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다닐: 네. 이성적으로는 납득하고 있는 상황이어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깊이는 다른 법이니... 뭐, 이제는 제 코가 석 자이지만요.

라플라스: ...그대의 부담이 더욱 늘어나겠군요.

다닐: 으음... 혹시라도 죄책감을 가지지는 말아주시겠습니까. 본래 여럿이 나누어 드는 게 마땅한 책임이었는데, 이제야 제자리를 찾아간다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또, 사람은 닥치면 어떻게든 하게 되어 있더군요. 지금도 구체적인 계획이 짜여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사 어떻게든 굴러가는 법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라플라스: ...믿음직스럽군요. 그대가 있어서 다행입니다, 다닐.

다닐: 흠, 흠... 아, 그러고 보니 출발은 언제 하십니까?

라플라스: 내일 절차가 종료되는 대로 아발론에서 마중을 나와주시기로 했습니다.

다닐: 이것 참, 아발론에서도 신경을 많이 써주셨군요. 언젠가 한 번 제대로 보답을 드려야겠어요.

라플라스: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다닐: 아뇨, 저는 그분을 모시는 입장이지만, 개인적인 의견과 혼동해서는 안 되겠지요. 사실 저는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차, 앞뒤를 자르고 말하니 어감이 조금 이상하네요. 이제 부담을 내려놓게 되시니... 안심이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라플라스: 하하... 다닐이 그렇게 말해주니 마음이 놓이는군요.

다닐: ... 혹시 허락해 주신다면, 개인적인 질문을 한 가지만 드려봐도 되겠습니까?

라플라스: 물론입니다. 얼마든지요.

다닐: 라플라스 님께서는... 저로서는 짐작도 하기 어려울 만큼, 긴 시간을 살아오셨지 않습니까. 제가 태어났을 때부터 쭉 마탑주로 계셨지요. 저는 지금도 가끔 부담감에 목이 멥니다. 부하들을 책임져야만 하는 입장에서도 그렇고, 제 역량이 부족하지는 않을까 서투른 걱정을 하는 측면에서도요. 그럴 대면 루실리카 님께 혼났던 날을 떠올리고는 합니다. '한 사람에게 그만큼의 책임을 지우는 나라에서 살 마음은 없다!'고요. 그러면 조금 숨통이 트이더군요. 저라는 개인을 포기하지 않아도, 과중한 책임감에 얽매이지 않아도... 얼마든지 맡은 바를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들었습니다. ...라플라스 님께서는, 마탑주라는 정체성과 개인을 구분하고 계십니까?

라플라스: ... 후후...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우려해주시는 바가 맞을 겁니다.

다닐: ...죄송합니다. 혹 무례가 되었다면,

라플라스: 아뇨, 이제 와서 숨길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오히려 시간을 내어 저를 생각해주신 마음에 감사를 표해야겠지요. 아주 오래전부터 혼동은 찾아왔습니다. 비단 저만이 아닌, 모든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겪게 되는 변천이라고는 생각합니다만... 저의 경우는 기간이 좀 길었으니까요. 아무래도 나날이 부담이 쌓여간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였는지... 덮어버리기로 결정했나 봅니다. 엘펜하임의 마탑주로서의 자신과, 저라는 개인... 그 두 가지의 정체성이 대립하는 상황이야말로 불완전한 결과를 낳을 테니까요. 그러니 그만큼 쉽게 걸려들었던 것이겠지요. 덮쳐오는 이형의 손길에도 말이죠. 이야기하면 할수록 그대에게는 미안한 마음만 남게 되는군요.

다닐: ...아닙니다.

라플라스: 하지만, 그대의 상관이 말해주었듯... 이런 마음가짐을 통해 유지되는 나라야말로 꼴불견이겠지요? 그러니 이제는 편한 마음으로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루실리카에게 배우기만 하는군요. 어느새 이렇게 자라주었는지... 놀랄 틈조차 주어지지 않는 시간이 야속합니다.

다닐: 하하, 이래저래 끌려다니는 입장에서는 조금 무안하긴 해도... 루실리카 님을 볼 때마다 감탄하게 되는 건 사실이니까요. 뿌듯하실 것 같습니다. 저는 교육자가 아니니만큼 완전한 이해나 공감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내가 가르친 아이가 어느새 사람들을 이끌고 있다고 생각하면, 눈시울이 붉어질 것 같네요. 그것만으로도 며칠 더 힘낼 기운이 샘솟을지도 모르겠어요.

라플라스: ...

다닐: 이렇게 보면 더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후세들이 활약하는 걸 지켜보고 싶은 만큼은요.

라플라스: ...후후, 그렇지요.

다닐: 이크, 슬슬 돌아가지 않으면 혼이 날 것 같네요. 감사했습니다. 라플라스 님, 다음에는 아발론에서 뵙겠습니다.

라플라스: 네, 저 역시 즐거웠습니다. 조심히 돌아가세요.

라플라스: 살아남은 보람이라... 네. 저는 지켜내고 싶었습니다. 소소한 말 한마디에 위로를 받고,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되는... 그런 엘펜하임의 하루하루를요. 이 정도면 나름대로 성공했다고 봐도 무방할까요? 아집이라고 생각했던 작은 망념들이... 도움이 된 것일까요. 하하, 얼마나 보람찹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