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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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 大順 Dà Shù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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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4년 ~ 1646년 | ||
성립 이전 | 멸망 이후 | |
명 | 청 | |
수도 |
서안부(西安府, 1644.2.8. ~ 1644.3.17.) 순천부(順天府, 1644.3.17. ~ 1645.6.5.) |
|
정치체제 | 군주제 | |
국가원수 | 황제 | |
언어 | 중국어 | |
문자 | 한자 | |
종족 | 한족 | |
종교 | 유교, 대승 불교, 도교 | |
주요사건 |
1644.2.8. 건국 1644.3.17. 북경 점령, 명 멸망 1644.4.29. 이자성 황제로 즉위 1645.6.5. 이자성 사망, 청에 실질적 멸망 |
|
연호 | 영창(永昌) | |
통화 | 영창통보(永昌通寶) | |
현재 국가 | 중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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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략 1년 4개월 정도 존재했던 나라로, 이자성의 난을 주도한 명나라의 농민반란군 이자성이 세운 나라이다. 명나라가 만주 등지에서 새로 일어난 청나라와의 전쟁에 전력하는 사이, 이자성은 힘을 길러 낙양 등 화북 지방을 점령해 나갔고, 마침내 1644년 2월 서안[1]에서 왕으로 즉위하고 대순(大順)이라는 정권을 세우기에 이른다.2. 역사
파죽지세로 진격하여 같은 해 3월 17일 북경을 함락시키고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는 자살하여 명나라는 멸망했다. 그러나, 북경에 들어간 뒤부터 병사들의 기강이 풀어져 닥치는 대로 약탈을 일삼아 민심을 잃었다. 북경 점령 전에는 북경을 점령하면 황실의 보물과 고관대작들이 축재한 재산을 나눠주겠다고 하여 병사들의 약탈을 막았으나, 막상 북경을 점령하고 보니 이미 그런 보물들은 숭정제가 이미 국방비에 충당하고 없어, 병사들에게 나눠줄 재산이 없다는 것이 알려지자 더 이상 통제하지 못했다고 한다.그리고 얼마 후, 청나라 군대를 막는 최전방 요새인 산해관을 지키고 있던 장수 오삼계는, 이자성에게 명나라가 멸망했다는 것을 알고 청의 실권자 도르곤에게 투항하여 청군과 함께 이자성을 공격하려 내려왔다. 이 때, 오삼계가 거느리고 있던 부대는 명나라에서 최고의 정예 병력. 일편석에서 벌어진 오삼계+청군과의 일전에서 이제까지 무적의 위세를 자랑하던 이자성의 순군은 철저하게 참패했고, 이자성은 북경으로 돌아와 성 안에 남아 있는 황금을 모두 긁어 모아서 떠났다. 도망치기 전에 칭제를 해 황제가 되었지만, 이미 패하고 있는데 큰 의미가 없는 행위나 다름없었다.
달아나는 사이, 그를 따르던 부하들도 대부분 뿔뿔이 흩어졌고, 이자성은 구궁산(九宮山)에서 최후를 맞는다. 자살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농민들에게 피살당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1645년 6월, 그의 나이 40세였다.
이자성의 죽음 이후에도 순나라는 지속되었고, 순나라의 잔당들 역시 오래도록 대를 이어갔다. 하지만 대순군 잔당은 대서군 잔당과 달리 하나의 리더(이를테면 대서의 손가망과 같은)의 통솔 아래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부상하지 못했다.
이자성이 구궁산에서 죽을 당시 그를 따르고 있던 학요기(학영충) • 유체인 등의 "동로대순군"은 이자성이 죽자 곧장 호남으로 들어갔다가 남명의 호광총독 하등교에게 투항한다. 또 이들과는 별개로 서북 지구에서부터 내려온 이자성의 조카 이과(이적심)와 고일공의 "서로대순군"은 호북의 형주로 향했다가 마찬가지로 하등교에게 투항하니 남명은 이 부대들을 이과와 고일공을 우두머리로 하는 "충정영忠贞营"으로 개편해 이후의 항청 전쟁에 투입시킨다. 이 충정영은 명나라 하등교가 이끄는 군대와 연합해 청나라에서 김성환과 이성동의 반정이 일어난 틈을 타 호남 대부분을 수복하고, 사천을 정복한 청나라의 아이신기오로 호오거의 군대가 북경으로 돌아간 틈을 타 사천을 수복하였으며 광서 지역 수복에도 기여하는 등 상당한 활약을 펼쳤다.
이렇듯 충정영은 몇 번 대첩을 거두었음에도 남명으로부터의 대접이 영 시원찮아지자, 이과는 병으로 죽고 학영충 등이 이끄는 부대는 사천 동부로 향해 현지의 지주 세력인 "삼담(담홍, 담문, 담예)" • 왕광흥 등과 연계하여 새로운 항청기지 "기동십삼가夔东十三家"를 이루어 항청을 지속한다. 이 기동십삼가 세력은 영력제가 시해된 이후 1664년 청군에게 토벌되기까지 줄곧 항청 활동을 지속했다.
중국사에서 보통 흑역사 취급받는 나라이지만 어쨌든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잠시나마 수도인 북경을 점령했으므로 명나라와 청나라 사이에 존재했던 중원의 정식 왕조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3. 역대 황제
- 참고 문헌[2]
대수 | 묘호 | 시호 | 휘 | 연호 | 재위 | 능묘 |
추존 | 태조(太祖) | 황태조고(皇太祖考) | 이계천(李繼遷) | - | - | - |
추존 | - | 황열조고(皇烈祖考) | 이씨(李氏) | - | - | - |
추존 | - | 황현조고(皇玄祖考) | 이씨(李氏) | - | - | - |
추존 | - | 황고조고(皇高祖考) | 이씨(李氏) | - | - | - |
추존 | - | 세보제(世補帝) | 이세보(李世辅) | - | - | - |
추존 | - | 해제(海帝) | 이해(李海) | - | - | - |
추존 | - | 수충제(守忠帝) | 이수충(李守忠) | - | - | - |
1 | - | - | 이자성(李自成) | 영창(永昌) | 1644 ~ 1645 | 이자성묘(李自成墓) |
2 | - | - | 이자경(李自敬) | 영창(永昌) | 1645 ~ 1646 | - |
- | - | - | 이과(李過) | - | 1646 | - |
4. 자칭 후신
현대 중국의 자칭 황제들 중에 국호를 대순(大順)이라고 칭한 사례도 있는데 1950년 세워진 大顺国이 있다. 자칭 황제를 칭한 구궁도(九宫道)의 교주 리마오우(李懋五)가 세웠다는데 위에 나온 이자성이 죽은 구궁산(九宮山)과 관계가 있는지는 불명.또 1983년 리셴둥(李先栋)이란 사람이 자칭 황제를 칭하고 세운 大顺朝도 있다. 이 사람은 스스로 이자성의 후예라고 자칭했다는걸 봐선 이쪽은 진짜로 이자성의 대순을 부활시키려고 시도했을 가능성이 높다.
[1]
당의 수도인
장안
[2]
《爝火录》:追尊其曾祖以下加谥号,以李继迁为太祖。设天佑殿大学士,牛金星为之。更六部为六政府,设尚书、侍郎等官。改文选司为文谕院,主事曰从政。改翰林院曰弘文馆,裁革詹事府。改中书曰书写房。国子监设三堂,革去祭酒,以司业为学正,学录博士为左右。改御史曰直指、给事中曰给谏、通政司曰知政司、尚宝司曰尚契司。大常、鸿胪,俱属礼政府。太仆寺曰验马寺,布政司曰统会可。巡抚曰节度使,按察曰防御使。府曰尹,州曰牧,县曰令。守备曰守领,把总曰守旅。改印曰契,一云大篆曰符、小篆曰契)。公服领尚方,以云为级,一品云一、九品云九。大僚冠加雉羽,带用犀银黑角三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