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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지마 히로유키/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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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시절
1.1. 2001 시즌1.2. 2002 시즌1.3. 2003 시즌1.4. 2004 시즌1.5. 2005 시즌1.6. 2006 시즌1.7. 2007 시즌1.8. 2008 시즌1.9. 2009 시즌1.10. 2010 시즌1.11. 2011 시즌1.12. 2012 시즌
2.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산하 마이너 시절3. 오릭스 버팔로즈 시절
3.1. 2015 시즌3.2. 2016 시즌3.3. 2017 시즌3.4. 2018 시즌
4.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4.1. 2019 시즌4.2. 2020 사즌4.3. 2021 시즌4.4. 2022 시즌4.5. 2023 시즌
5. 주니치 드래곤즈 시절
5.1. 2024 시즌
6. 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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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시리즈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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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인물 감독 이노우에 카즈키 · 선수회장 야나기 유야 · 투수 주장 오노 유다이 · 야수 주장 오오시마 요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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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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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4687><colcolor=#191919> NO.3 H. NAKAJIMA
고등학교 시절에는 우익수와 투수로 활약했고 고교 졸업 후 2000년 드래프트에서 5위로 지명을 받아 세이부 라이온즈에 입단한다.

1.1. 2001 시즌

2001년 2군에서 외야수로 뛰었다.

1.2. 2002 시즌

2002년 10월 6일 1군 무대에 첫 출전했다.

1.3. 2003 시즌

2003년 1군 44경기에 출장하며 3루수로 20경기에 기용되기도 했다.

1.4. 2004 시즌

첫 풀타임 1군이었던 2004년에는 주전 유격수로 시즌을 시작을 하는데, 타율 .287 27홈런 90타점 18도루의 호성적으로 중심타선을 뒷받침하며 세이부의 일본시리즈에 우승에 공헌했다. 타격에서만큼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 진출한 마쓰이 가즈오의 공백을 메워줄 만한 활약이었고, 차세대 공격형 유격수로 주목을 받게 된다.

1.5. 2005 시즌

히로시마와의 교류전에서 부상을 당하기도 하며 타격 부진과 함께 유격수로 리그 최다 에러수를 기록하는 등 저조한 성적을 거둔다.

1.6. 2006 시즌

개막에서 3번 타자를 맡아 올스타 게임 에도 선출돼 일시 선두 타자 다툼에 참가하는 등 팀 선두 다툼에 공헌했다. 7월 30일 라쿠텐전에서 야마무라 히로키로부터 사구를 당해서 골절판정을 받았지만 예정보다 빠른 9월 12일에 복귀했다. 타율.306으로 처음으로 30%에 도달했다. 수비에서는 2년 연속으로 유격수 부문 리그 최다의 16실책을 기록.

1.7. 2007 시즌

개막부터 3번으로 기용되어 올스타게임 에 3번째 출전을 했다. 양대리그를 통해 유일한 9경기연속 타점을 기록하는 등, 리그 5위의 타율을 기록한 반면, 감소하고 있던 삼진수가 증가했다. 수비에서도 리그 2위, 유격수로서는 3년연속 리그 최다 20실책을 기록.

1.8. 2008 시즌

2008년 은 베이징 올림픽 야구 일본 대표 로 선출되어 올스타 게임 에도 4번째 출전. 함께 같은 유격수 카와시마 무네노리 , 니시오카 츠요시가 선출된 적도 있고, 올스타 게임에서는 3루수 를 맡았지만, 악송구에 의한 실책을 기록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가와사키의 고장으로 주로 유격수를 맡았다. 4년 만에 20홈런을 기록과 리그 우승에 공헌했다. 전반전 종료시 리그 톱이었던 타율은 후반전에 들어서 서서히 떨어졌지만, 라쿠텐의 릭 쇼트 와 선두타자를 싸워 라쿠텐과의 최종전까지도 얽혔다. 결과는 7모차로 미치지 않았지만 자신의 최고 타율.331을 기록. 시즌 성적은 팀최다 55사구를 기록해 각각 본인 최고를 경신하는 출루율 .410, 25도루로, 첫 타이틀이 되는 최고 출루율를 획득했다. 유격수 비에서는 리그 2위의 12 실책을 기록했지만, 수비율은 유격수 부문 2위를 기록해 송구 미스도 줄어 골든 글러브상 과 베스트 나인을 첫 수상했다. 같은 해, 한때 세이부에서 등번호 '3'을 입고 있던 기요하라 가즈히로가 은퇴를 표명해, 오릭스와 의 최종전의 날에 유니폼의 교환을 행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랑 맞붙은 일본 시리즈 에서는 2경기 연속 홈런을 날렸고, 5차전에서는 부상으로 도중 교대했지만, 6차전 이후에도 선발 출전해 7경기 모두에서 안타를 기록해 일본시리즈 우승에 공헌했다. 시즌 후 계약 갱신으로 연봉 2억엔에 도달. 「야구를 하고 있는 이상, 여러 나라의 선수가 있는 가운데 해 보고 싶다고 하는 꿈은 있습니다.메이저에 갈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라고 장래적인 메이저 리그 도전 의사를 밝혔다 .

1.9. 2009 시즌

시즌에는 개막으로부터 25경기 홈런이 없었지만, 6월 21일의 야쿠르트 전에서 통산 100홈런을 달성. 올스타 게임에 선수간 투표에 의해 선출되어 5번째 출전했다. 주로 3번타자로 출장해 유격수로서 리그에서 유일하게 전 경기 풀이닝 출전해 시즌 후반에는 부진하는 나카무라 타케야 대신 4번 타자로도 나와, 2년 연속 3할 20홈런 20도루, 본인 최다의 92타점, 173안타로 자신 최초의 최다 안타 출루율.398로 2년 연속 최다 출루율의 타이틀을 획득해, 2년 연속으로 베스트나인도 수상. 유격수비에서는 처음으로 수비율 980대를 기록.

1.10. 2010 시즌

타율이 40%를 넘었지만 시즌중반부터 찬스상황에서 병살타가 늘었다. 최종성적은 타율 .314 20홈런 15도루.

1.11. 2011 시즌

2011년 타율 .297 16홈런 100타점 21도루, 수비에서는 3년만에 골든글러브를 수상한다. 퍼시픽리그 최초 유격수 100타점. 오프시즌엔 MLB 진출 선언을 하고 포스팅을 한 결과, 브라이언 캐시먼 단장이 2백만불을 써낸 뉴욕 양키스가 협상권을 얻었는데... 이 팀 내야는 유격수 데릭 지터, 3루수 알렉스 로드리게스, 2루수 로빈슨 카노가 버티고 있었다. 포스팅 액수로 보나 팀내 사정으로 보나, 잘 풀려봐야 유틸리티맨 입지라서 정말 MLB를 갈지는 미지수였는데 결국 협상이 최종 결렬되었다.

1.12. 2012 시즌

세이부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2012년, 타율 .311 13홈런을 기록하며 통산 4번째의 베스트나인과 3번째 골든글러브를 수상.

전반적으로 흠잡을 데 없는 공격력에 비해 수비력이 딸리고 어이없는 실책이 잦아서 이시게 히로미치- 타나베 노리오- 마쓰이 카즈오로 이어지는 세이부 라이온즈의 철벽 유격수의 계보에 먹칠을 한다는 평이 있다. 위에 열거한 선수들도 대부분 공격력이 출중했지만 수비력은 그보다 더 출중했기 때문에 공격력만 놓고 보면 특급선수인 나카지마조차도 수비 못한다고 까이는 것. 그러나 고교 때 투수와 외야수로 뛰었기 때문에 프로에 와서야 유격수를 보고 있다는걸 생각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평가할만 하다. 그리고 나카지마 이후 세이부 유격수 자리는 겐다 소스케 이전까지 거의 5년가량 대체선수급 자원들이 돌아가면서 맡았다. 토코로자와 유격대라 불리며 조롱당할 정도였으니...

2.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산하 마이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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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취득했고, 11월에 한신 타이거즈 구단 측에서 4년간 20억엔이라는 충공깽스러운 계약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본인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도전을 선언했고 스티븐 드류와의 재계약에 실패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2년 650만 달러의 조건으로 계약했다. 한신에서 언급했던 액수에 비하면 적은 액수이지만 메이저리그 진출에 뜻을 뒀기 때문에 액수에 상관없이 미국으로 간 듯 하다.

하지만 스프링 트레이닝부터 1할대의 타격과 여타 일본인 내야수들이 그렇 듯이 눈물나는 수비를 보여주더니 결국 부상까지 겹치며 25인 로스터에 들지 못하고 폭풍 마이너리그행(...) 부상에서 회복 이후 AAA팀으로 배치되긴 했으나 구단에서도 유틸로 보고 있는지 수비 포지션이 고정되지 않고 유격수, 3루수, 2루수를 전전했고 타격은 타격친화리그 PCL에서 뛰었음에도 OPS가 7할도 넘기지 못하는 인상적이지 못한 성적을 냈다. 게다가 이 팀 내야엔 제드 라우리 조시 도날드슨같은 준수한 선수들이 버티고 있어서 2013년 내내 단 한번도 메이저리그에 올라오지 못하고 8월 16일부로 40인 로스터에서 완전히 빠져버린다.

3. 오릭스 버팔로즈 시절

파일:external/www.buffaloes.co.jp/141205_05.jpg
2년 계약이 종료될때까지 메이저리그에는 한번도 못 올라간 채 복귀하게 생겼고, 메이저리그에 가기전부터 러브콜을 하던 한신 타이거스가 팀의 레전드인 카케후 마사유키의 등번호 31번을 준비하고 교섭한다고 밝혔다. 물론 한신 팬들은 이게 무슨 지거리야라면서 대 폭발 중.[1] 세이부 팬들조차 덩달아 멘붕했었는데, 세이부에게도 콜이 왔으나 정중히 거절했다라는 카더라가 있다. 그리고 한신으로 간다는 예상과 달리 오릭스 버팔로즈로의 이적이 확정되었다. 그나마 본인이 뛰어본 퍼시픽리그에서 뛰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던 듯.

2014년 12월 5일, 오릭스 입단을 발표했다. 계약조건은 3+1년 총액 14억엔(추정). 등번호는 1번.

3.1. 2015 시즌

기대를 안고 시즌을 시작했으나 햄스트링 부상, 요통 등으로 부진했고 1군에서 117경기 출장, 타율 0.240, 10홈런, 46타점을 기록했다. 같은 해 9월에 결혼하여 10월에 첫 아이(딸)을 얻게 된다. 그리고 11월에 등록명 이름 부분의 한자를 宏之로 변경했음을 발표했다. 읽는 법은 동일.

3.2. 2016 시즌

시즌 초반에 개막전을 포함, 4경기 연속 선발 유격수로 기용되었으나 이후 경기에서는 지명타자나 1루수로 출장했다. 그러나 경기 도중 종아리 부상을 입었고 그 이후 타격 부진, 3번의 2군 강등 등 작년보다 더한 부진을 겪었다. 1군 출전 기록은 96경기에서 타율 0.290, 8홈런, 47타점. 일본프로야구 역사상 119번째 통산 1,500안타와 61번째 통산 1,000삼진 등의 기록을 세웠다.

3.3. 2017 시즌

지명타자로 주로 기용되었으나 7월 9일 롯데와의 홈경기 전 연습을 소화하던 중 당시 스폰서 간판 공사 때문에 5층 중견부 외야 좌석에 세워둔 쇠파이프가 떨어져 타박상을 입는 아찔한 사고를 겪었다. 자칫하다 머리 위로 직격했다면 생명까지 위협받을 수도 있었던 위험한 상황이었으나 그나마 재빨리 피한 덕에 한번 땅에 떨어진 파이프에 맞아 타박상을 입는 정도에 그쳤다.

이후 1군에서 등록 말소되었다가 7월 18일에 그라운드로 복귀했고 최종적으로 1군에서 124경기, 타율 0.285, 9홈런을 기록했다. 그러나 위험했던 사고로 이탈한 것을 감안해도 돈값을 고려하면 주전 지명타자로써는 너무 부족한 성적.

3.4. 2018 시즌

타격부진으로 1군에서 말소되기도 했고 부상으로 인해 오릭스 이적 후 최소인 77경기 출전에 그쳤고 타율 0.289, 5홈런, 34타점을 기록했다. 오릭스는 감액 제한(1억엔 초과 연봉자는 40%까지만 감액 가능하며 이 이상 감액하려면 본인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을 초과하는 금액을 제시했고, 나카지마는 구단에 탈퇴 의사를 전달하였다.

4.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WBC 제패 당시 감독이었던 하라 다쓰노리가 다시 지휘봉을 잡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관심을 보였고, 11월 22일 정식으로 입단을 발표하였다. 등번호는 5번, 연봉은 대략 1.5억엔 정도로 추정.

허나 요미우리에 얼마나 도움이 될진 의문... 흔히 요미우리는 타팀에서 잘나가는 선수들만 죄다 쇼핑하는걸로 유명하지만 나카지마는 이미 노쇠화가 뚜렷한 선수라 팬들도 왜 데려왔는지 이해할수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2]
2019년 시즌 요미우리의 내야 양코너엔 4번타자로 기용될 오카모토와 18시즌 MLB에서 20홈런을 기록한 빌라누에바가 있다. 그리고 유격수 자리에는 NPB 최고 유격수로 평가받는 사카모토가 버티고 있으니 많은 출전기회를 얻기는 힘들 전망. 내야 백업 및 대타자원으로 우선 기용될 것으로 보이며 이후 로스터 상황과 활약 정도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일단 2루수가 구멍이라 출전기회는 의외로 꽤 있을지도 모른다. 하라가 나카지마를 무리하게 데려온 것도 아직 확실한 2루수 주전후보가 없는 것도 이유로 작용했다.

4.1. 2019 시즌

시즌 초반, 주로 백업 및 대타로 활용되고 있는데 예상보다도 출전기회가 적은 편이다. 이럴거면 요미우리가 뭐하러 영입한 건지 궁금할 지경. 결국 1년 내내 유력한 전력외후보 통고로나 꼽히며 방출이 기정사실화된 상황까지 가버렸으나 극적으로 살아남았다.

4.2. 2020 사즌

시범경기에서 4홈런을 치면서 나름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개막 엔트리에 들었다. 100경기 312타석 타출장 .297 .369 .419 7홈런 OPS .788을 기록하며 멋지게 살아났다. 코너내야부터 사카모토의 백업, 대타 등등 이곳저곳 땜빵으로 굴러다니며 전성기의 모습까진 아니더라도 상당히 좋은 성적을 올리며 뜬금없는 부활로 팀의 리그 우승에 일조하며, 나카지마 개인으로서도 개인통산 200홈런을 달성하는 기록을 세웠다. 일본시리즈 엔트리에도 포함되었는데, 전 경기 지명타자제 도입이라 하라 감독은 나카지마를 지명타자 후보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파리그 출신이라 지명타자로 풀 시즌을 치러본 적도 있는 경험 많은 선수이기 때문. 일본시리즈는 비록 졌지만 애초에 주전이 아니라서 나카지마 때문에 말아먹었다고 할 만큼 많이 나오지도 못했고, 여튼 데려왔을 때만 해도 여러 사람이 의문을 표한 영입이었는데 어찌어찌 부활했다.

4.3. 2021 시즌

은퇴할거라 많은 이들이 예상[3]했으나 의외로 은퇴하지 않고 현역을 이어가는 중이다. 시즌 81경기 195타석 타출장 .271 .314 .425 6홈런으로 2021년도 쏠쏠한 백업 역할을 잘 수행했고 2022년에도 현역생활을 이어나간다.

이시점 기준 통산 1899안타를 기록중이라 명구회 가입 기준인 2000안타까지 어찌어찌 바라볼수 있기도 하지만 나카지마에게 얼마나 출장기회를 줄지는 미지수. 세이부 전성기 때였다면 한시즌이면 충분했겠지만...무리한 해외진출로 까먹은 년도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대목. 치바 롯데 마린즈의 심장 후쿠우라 카즈야도 이미 은퇴 4~5년전부터 노쇠화가 두드러졌음에도 2000안타를 위해 팀에서 진득하게 배려해주서 아슬아슬하게 2000안타를 채워 명구회 가입조건을 채워준 바가 있다. 하지만 후쿠우라는 치바 롯데의 성골 프랜차이저이자 출신지까지 치바현인 로컬 보이라서 상징성이 워낙 커서 롯데측이 배려해줘 이게 가능했던 거지 나카지마는 타팀출신이라 안그래도 선수에게 냉정한 요미우리가 나카지마의 2000안타를 위해 출장을 배려해 줄 지가 의문.

더군다나 나이도 41세인 나카지마는 이제 1루 외에는 보질 못하는데 이 자리는 어지간하면 외국인타자 슬롯으로 채우는 자리라는 점에서 더더욱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후쿠우라는 파리그 소속이라 수비가 힘들어진 나이에도 지명타자로 빼 줄수 있었지만 세리그는 안타깝게도 지명타자 그딴게 없어서 더더욱 난망. 팀 후배이자 요미우리의 순혈 프랜차이저 사카모토 하야토는 고졸 신인시즌부터 해외진출도 없이 레귤러로 밀어준덕에 31세 10개월만에 애저녁에 2000안타를 채우고 명구회 기준을 채운걸 생각한다면 자신은 아슬아슬한 2000안타 까지의 고지를 언제 출장기회가 확 줄어들지 모르는 자신의 처지가 더더욱 아쉬울듯.

여튼 2000안타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지금 페이스로는 1년 안에는 힘들고 2023년까지는 뛰어야 하는데, 구글에 나카지마 히로유키를 검색하면 '나카지마 히로유키 교진 필요없어' 가 뜨는 등 교진에서 여론은 안 좋은 상황. 타격은 그럭저럭 살아있지만 타격만 괜찮지 이젠 수비도, 도루도 안 되기 때문.

4.4. 2022 시즌

2022년 3월 26일 주니치전에서 대타로 나와 시즌 첫 안타를 동점 적시타로 기록하며 동시에 개인통산 1900안타를 기록했다.

2000안타를 달성할 수 있는 가장 가능성있는 방법은 교진에서 벽에 똥칠할 때까지 버티고, 안 되면 친정팀에 복귀해서 묻지마 기용으로 2000안타를 채우는 것. 파리그에서 지명타자로 나오면 되는 거 아니겠나 싶겠지만, 나카지마의 타격은 냉정하게 나이에 비해서 괜찮다 정도지, 주전 지명타자를 주기에는 아쉬운 수준이라 오히려 세리그에 있는 게 낫다. 세리그는 투수 타석이 있기 때문에 대타요원이 많이 필요해서 대타요원으로서 수명을 연장할 수 있고 실제로도 교진에서의 현재 롤 또한 대타요원이기 때문이다. 친정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쿠도 키미야스 마쓰이 가즈오, 마쓰자카 다이스케처럼 세이부는 비록 FA는 놓치더라도 놓친 선수의 말년은 잘 챙겨주기도 하는 구단이라 이후 세이부로 이적한다면, 더군다나 세이부는 현재 리빌딩 중이라 어느정도 묻지마 기용도 가능하기에 나름 현실성이 있는 전략이기도 하다.

2022년 들어 나카지마에게는 그나마 희망이 생겼는데, 주전 1루수 나카타 쇼가 타격부진으로 1군에서 말소되어 그 자리에 나카지마가 주전으로 들어가게 된 것. 당분간은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되었고 마침 본인의 페이스도 타율 .280+대에 1홈런 10타점으로 나쁘지 않다였으나.. 정작 나카지마도 주전 등극 후 5월 타율 1할대로 성적이 급하락하는 바람에 다시 백업으로 밀려났고, 설상가상으로 복귀한 나카타가 타격 페이스를 되찾으며 4번타자 자리까지 꿰차는 등 완벽하게 부활한 덕에 입지가 더 좁아져서 간간히 대타로 나오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그래도 대타 요원으로는 괜찮은 성적을 올리는 중.

최종적으로 62경기 타율 .243(111타수 24안타)/OPS .648 1홈런 24타점의 성적으로 2022 시즌을 끝마쳤다. 대타 요원으로써의 가치만 따지면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긴 하나 5천만엔이라는 적진 않은 연봉과 이름값을 감안하자면 아쉬운 성적.

2022시즌 종료 시점에서 통산 1923안타를 쳤는데, 2000안타까지 77안타밖에 남지 않긴 했으나 본인의 노쇠화와 나카타 쇼의 반등으로 입지가 좁아져서 기록 달성 가능성에 먹구름이 끼게 되었다. 시즌 종료 후 방출 가능성도 제기되었으나 어찌저찌 잔류에 성공하면서 2023년에도 현역으로 뛰게 되었다.

그런데 오프시즌에 요미우리가 내야 포지션이 겹치는 마츠다 노부히로까지 영입하는 바람에 입지가 더 위태로워졌다. 마츠다의 메인 포지션은 나카지마와 달리 3루수이긴 하나 이미 3루에 오카모토 카즈마가 자리잡았고 마츠다 본인도 노쇠화가 진행되는 중이라서 기용할 만한 포지션이 사실상 1루수밖에 없기 때문. 결국 1루수 자리를 두고 나카타, 마츠다, 나카지마 3명이서 주전 경쟁을 해야 할 모양새가 된 탓에 2000안타 도달 가능성이 위기에 빠졌다. 사실 본 포지션은 1루보다는 대타에 가깝긴 한데, 대타도 오프시즌에 초노 히사요시, 오코에 루이 등을 영입해 오면서 쉽지 않아졌다.

4.5. 2023 시즌

결국 마츠다, 오코에, 쵸노 등에게 밀려 1군 개막 로스터에 들지 못했다.

개막 후 3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1군에 콜업되지 못한 상태로, 이대로면 2천안타를 채우지 못하고 은퇴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올해는 1군 5안타로 끝났고, 10월 3일 전력외 통보를 받았다. 이후로는 시즌후 오랜만에 대대적 보강에 나선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접촉했고, 교섭을 진행중. 대타요원 정도의 소규모 계약이 유력하다.

결국 11월 15일 주니치 드래곤즈 이적이 확정되었다.

5. 주니치 드래곤즈 시절

5.1. 2024 시즌

주니치와의 계약은 2000만엔+옵션으로 거의 신인선수급 연봉. 이젠 정말 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그러나 시즌 초 12타수 무안타로 부진하던 도중 한신전에서 손에 사구를 맞고 손가락 골절로 2군에 가서 전반기를 모두 날려먹었다. 7월에 잠시 복귀했으나 안타를 하나도 못치고 다시 2군행. 명구회는 정말 못 갈 운명일 듯.

결국 시즌 15시합 무안타로 끝났고 예상대로 9월 17일 전력외통보를 받았다. 본인은 현역연장을 희망하지만 2군에서조차 2할을 못 치는지라 타팀의 오퍼가 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명구회 진입 확률 10%...

6. 국가대표 경력

6.1. 2008 베이징 올림픽

2008 베이징 올림픽 일본 대표팀 선수로 출전했다. 리그에서는 타율 .331 21홈런 25도루의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내며 팀을 일본시리즈 우승에 올려놓는다. 출루율 .410은 리그 수위였으며, 특히 수비에서 돌글러브의 오명을 벗어내며 골든글러브에 선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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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15년 고영민의 넥센 선수 보내기 작전 현재 재평가받고있다.

6.2.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이듬해인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팀 선수로 출전, 대한민국과 맞붙었던 대회 결승전에서 고영민의 2루 수비를 방해하는 슬라이딩으로 국내야구팬들에게 강하게 각인됐다.[4] [5] 이로 인해 나까지마라는 패러디로 합성에 쓰이며 많은 웃음을 자아냈다.

[1] 그 당시 한신 팬들은 가뜩이나 내야 자원이 넘쳐서 니시오카 츠요시를 3루수(니시오카의 주 포지션은 유격수)로 돌리고 있는 판국인데 정작 필요한 외야 자원은 안채우고 그냥 이름값만 보고 선수를 영입한다면서 신나게 디스했다. 그리고 니시오카는 돌아올때 나이라도 젋었으나 나카지마는 2014년 기준으로 만 32세.. 하지만 니시오카나 나카지마나 둘 다 부상과 타격 부진이 겹치며 먹튀가 되었다. 그나마 다른 점은 장타력이 남아있는 나카지마는 요미우리의 부름을 받으며 프로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그런 것도 없는 니시오카는 부르는 구단이 없어서 결국 독립리그행.. [2] 물론 계약규모나 기대치로 봤을 때 리스크가 큰 영입은 아니다. [3] 동세대 선수들이 지금은 열 명도 안남은 상태다. 거의 대부분 현역을 은퇴해서 나카지마도 언제 은퇴해도 안 이상할 시기다. [4] 2015년 야쿠르트의 다케우치 신이치 역시 이런 슬라이딩으로 수비방해 아웃되어 항의하다가 퇴장 [5] 일본 구글에 검색해보면 일본 국내 리그 경기에서도 2루 슬라이딩 때 이런 그림이 꽤 많이 나온다. 아마 습관인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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