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등장인물 ]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000><width=20%><-3><bgcolor=#EDD68F> 주요 인물||그 외 등장인물 및 특별출연은 등장인물 문서 참고.
1. 개요
드라마 기황후의 방영 후 논란 및 오류를 정리한 문서.2013년 10월 28일 첫 방송 이후 시청자들의 반응은 '조상들이 통탄해 마지않을 역대 최악의 역사왜곡 드라마'라는 부정적인 반응이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이다. 아직 초반이므로 지켜보자는 시각도 존재했으나 결국 후반부까지 반전은 없었다.
대부분의 경우는 매우 부정적인 반응이 대다수로 '역사도 모르는 인간들이 뭘 알고 저따위 드라마가 재밌다고 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 조선왕조밖에 모르는 것들이 고려왕조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자가 있겠냐', '현대사 왜곡도 모자라서 이젠 중세사도 왜곡이냐', '이러니 수능에서 한국사 필수과목 지정이라는 게 중요한 것이다'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허구인 드라마와 역사는 무관하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의 미화는 지나치다'는 의견과 함께, '뒤늦게 픽션이라고 말을 바꾸긴 했지만 실존 인물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이미 완벽한 픽션이라곤 절대 할 수 없으며 단순 미화'라는 주장이 많다.[1]
또한 드라마든 교과서든 역사왜곡은 어느 매체에서든 받아들일 수 없으며, ' 일본에서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거나 전쟁 범죄자들을 미화하는 역사 왜곡 드라마를 만들고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니 재미로 봐달란 변명을 했을 때도 받아들일 수 있겠냐?'라는 반응도 있다. 사극의 역사적 의의를 중요시하는 입장에서는 이 드라마를 갈 데까지 간 한국 사극의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는 막장이라고 보는 비판 여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2. 역사 왜곡
결론부터 말하면 제작진 측에서 허구라고 주장하며 비판을 무시했지만, 사실 여러 핑계는 눈 가리고 아웅이다. 인터뷰에서 나오는 작가의 사관도 기황후가 애국했다느니, 충혜왕이 훌륭했느니, 하는 온갖 역사왜곡 발언을 쏟아내는 등 심각한 수준이고, 홈페이지에선 제작의도에서부터 기황후의 삶을 복원했느니, 과거를 통해 미래의 비전을 보느니 하고 있다.또한 제목과 주요 등장인물의 대부분을 역사적 인물과 똑같이 하여 드라마상의 인물과 실제 인물과 동일시하는 사람이 생겨날 가능성이 크고, 맨 마지막에 "1368년, 기황후는 주원장에게 대도를 정복당하고 북쪽 초원지대로 물러나 북원을 건국했다. 기황후의 아들 아유시리다라는 북원의 황제가 되었다"라고 굳이 역사를 들먹이다가[2] "이 드라마는 기황후의 삶을 재구성했다"는 자막에서 역사를 바탕으로 했다는 식으로 말하기에, 시청자는 '저렇게 역사와 기황후의 삶를 설명하니 그래도 저 드라마 내용(인물의 행적)이 역사적으로 대강 사실일 거야.'라고 믿을 위험성이 크고, 작가도 자기 사관이 옳다고 생각한 모양이기에 허구라고 하고 놔두기엔 곤란하다.[3]
게다가 일부 가상의 인물과 허구적인 사건을 다루었다니 뭐니 하는 자막조차도 소용이 없었다. 극중 내용의 반의 반도 안 되는, 매국노라 할 수 있는 기황후를 애국자로 왜곡하고 미화하는 내용이 전혀 나오기도 전인 19화 이후부터 아예 생략했고, 매국노로 일컬을 수 있는 기황후에 대한 애국자라는 왜곡과 미화가 전개되는 19화 이후의 내용에선 전혀 고지되지 않았다. 이는 처음에 면피하려고 변명으로서 자막을 띄우다가 잠잠해지자 은근슬쩍 없앤 것으로 보인다.
비유하자면 " 이완용은 한국을 위해 일본에 한국을 바쳤고 매우 선량한 인물이었다. 일부 가상의 인물과 허구의 사건을 다루었습니다. 실제 역사와 다름을 밝혀드립니다."라는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다.
제작진은 허구라고 주장하며 비판을 무시했지만, 아무리 드라마라 해도 매체 등에서의 미화와 동정적인 시선이 시청자들의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한 가뜩이나 역사를 잘 모르는 어린 학생들, 그리고 한 발 더 나가 수출됐을 시, 우리의 역사를 잘 모르는 외국인들의 경우 허구와 실제의 분리가 잘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도 많다.
어쨌거나 픽션이란 경고문을 삽입하고 일부 등장인물의 이름을 바꿔봤자 실제 인물을 다루는 이상 완벽하게 픽션이라곤 할 수 없기에, 역사왜곡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제작진은 언플도 신나게 때리는 중.
삼각관계, 치정, 궁내 암투극 등 사극에서 자주 쓰이는 요소가 들어가 있다. 다만 기승냥이 고려 왕의 아이를 임신/ 출산하고도 다시 원나라 황실의 재인( 후궁)으로 입궁한다든지[4], 타나실리가 불임인데 임신을 위해 치성을 드리러 간 절의 비구니가 주운 아이를 데려다 키운다는 등[5] 아이와 관련된 배경 설정은 꼬여 있는 편이다. 다만 전개에 큰 영향을 끼치진 않았다.
3. 드라마 정도전과의 비교
이후 KBS 1TV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대하사극 정도전이 2014년 1월 4일부터 방영되면서 정도전과 기황후를 비교하는 분위기가 일어나고 있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퓨전사극 vs 정통사극.초반에는 정도전 제작진 측에서 "우리들이 평가할 게 아니다"라면서 자제를 요청했지만, 20화에 접어들어 시청률이 상승하면서 동시간대 경쟁 프로들, 심지어 그동안 정도전의 일요일 시청률 저하 주범으로 지목되었던 개그콘서트까지 추월하자 자신감이 붙었는지 출연진들의 기자 간담회 현장에서 조재현과 서인석, 박영규를 중심으로 드라마 '기황후'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 #, #.
조재현부터가 "드라마 <정도전>의 시청률 가치가 더 높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지만, 발언 수위를 보면 조재현보다 서인석의 비판이 더 강력했다는 게 중론.
한편 월간조선 4월호에 저명한 원로 역사학자이자 정도전 전문가인 한영우 교수의 인터뷰가 실렸는데, 정도전의 각색은 작가의 상상력이 돋보인다고 칭찬했지만 기황후에 대한 각색은 "공인된 악인을 미화하는 건 문제."라며 디스했다.
그리고 주몽에서부터 내려오는 MBC 사극의 동네 싸움급 전투씬은 여전하다. 게다가 하필이면 KBS 정도전이 약간 규모가 크면서도 퀄리티 있는 전투씬들을 보여주고 있던지라 더욱 비교되고 있다. 제작비 문제만은 아닌 게, <기황후> 제작비가 <정도전>보다 더 비싸다. <주몽>이 <대조영>과 붙어서 전투씬이 까인 것과 똑같은 처지다.
4. 후반에도 이어진 기황후 미화
종영을 한 회 앞둔 50회에서 그야말로 대형사고가 벌어졌는데,첫 회에서 나온 황후 책봉식이 50회에서 대폭 편집되고 변경되었다. 이걸 보면, 아예 첫 화에 보였던 에필로그는 기본적인 스토리 구성조차도 구성 안 하고 촬영한 듯하다.결국 51화에서 급전개를 뛰어넘은 초전개를 보여주었다. 남아 있던 악역인 골타, 황태후, 염병수를 제거하는데, 이 과정에서 악역들에게 일장연설을 할 시간을 준 반면, 주인공 기승냥이 승리한 이후 벌어진 일들은 그야말로 초압축되었다. 기철 일파의 숙청과 원나라의 고려 침공 등은 대사 몇 마디로 퉁치고, 탈탈은 박불화의 대사 한 마디로 언급되어 이미 사망한 걸로 나온다. 악역들에겐 그렇게 많이 비중을 줬으면서! 그리고 주원장의 반란으로 북으로 밀려난 북원 언급, 그리고 "이 드라마는 역사를 바탕으로 재구성했다"는 자막이 빛의 속도로 지나가고 끝난다. 기황후의 오빠들인 기철, 기원, 기윤은 막판 언급만 했다. 기식의 경우 어차피 일찍 죽은 터라 제외해도 상관 없으나 특히 기철이 더욱.
기황후를 다루면서 가장 문제가 된 것이, 기황후가 공민왕을 반대한 세력의 편을 들어주면서 고려를 침공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제작진은 ' 황후가 될 때까지만 그리겠다'고 하여 고려 침공은 다루지 않을 것처럼 하다가, 결국 고려 침공까지 약간 다루면서 공민왕을 '은혜도 모른다'로 폄하했다. 원나라 입장에서는 기껏 왕위에 올려줬더니 반원 정책을 펴는 공민왕이 배은망덕하다고 느낄 수 밖에 없었고, 드라마 작가가 방영 초기 논란이 일자 " 기황후의 암(暗)적인 부분을 같이 그리겠다"고 해서 나온 것이다. #
문제는 이 드라마는 원나라의 기황후가 괴롭힌 고려인의 후손인 한국인이 시청하고 한국인이 연기하는 드라마라는 데 있었다. 공민왕의 자주 정책을 '은혜를 모른다'고 표현하는 제작진과 출연진들은 대체 어느 나라 사람인 걸까? 게다가 공민왕에게 숙청당한 기황후의 오빠 기철의 도를 넘은 패악질에 대해서는 보여주지도 않았다. 아니, 사실 기철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마지막회 이전까지 언급되지도 등장하지도 못했던 캐릭터가 되었다.
그리고 위의 기황후 미화 논란의 기사에 나왔다시피, 기황후가 공녀 차출을 막았다는 근거 자체가 없고, 오히려 기황후를 모델로 공녀가 더 늘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무시하고 '공녀 차출을 막았다고 역사 왜곡하는 씬'을 기어이 집어넣고야 말았다.
2013년 MBC 연기대상에서는 주인공 기황후 역을 맡은 하지원은 이 작품으로 대상, 인기상을 수상했고 이 외에도 최우수상 주진모, 우수상 지창욱, 신인상 백진희, 작가상 장영철과 정경순까지 싹쓸이로 상을 줘서 나눠먹기의 극치를 보여 주었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이 문서에도 언급된 많고 많은 비판 때문이었는지, 2014년 백상예술대상에서는 <기황후>는 남녀 인기상 및 여자 신인 연기상을 제외한 TV 관련 모든 부문에 후보로도 오르지 못했다. 애당초 이 문서의 온갖 비판들을 보면, 백상예술대상 측에서 저렇게 나오는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니다. 그나마도 남녀 인기상도 별에서 온 그대와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 상속자들 등 경쟁사인 SBS 드라마들이 차지했다. 참고로 KBS의 정도전은 주인공 역의 조재현이 남자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했고 2014년 KBS 연기대상에서도 조재현이 최우수상, 박영규가 우수상, 유동근이 대상을 수상하였는데, 기황후에 비하면 100% 이견이 없는 수상이다.[7]
5. 시대적 재현 오류
당시 무성의한 시대적 재현 오류 때문에 강도 높게 비난받는다.역사왜곡 논란이나 막장 전개 같은 문제를 떠나, 재현 오류 하나만으로도 이 드라마는 대차게 비판받아도 할 말 없다.
보통 사극이 역사 재현에 실수를 할 때는 제작비 상의 문제가 있거나, 아니면 역덕들이나 잡아낼 만큼 디테일한 부분에서 오류를 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반해, 이 드라마의 제작진은 아예 역사 재현에 관심도 성의도 없다는 것이 화면에 역력히 나타난다. 대체 제작진이 원나라 왕조에 관련된 도서나 논문을 한 번이라도 읽은 적이 있긴 한 것인지 의심이 들 정도로 막 나가는 모습을 보인다. 논문은 고사하고 교양서적 1권이라도 들춰봤다면 이렇게 나올 수가 없다.
일단 작중에 나오는 몽골인들이 누구는 한자 가차 표기를 쓰고 누구는 몽골어 표기를 써서, 같은 나라 사람의 이름을 쓰는데도 전혀 일관성이 없다. 백안의 조카딸 바얀 후투그라는데, 그 바얀을 한자 가차로 읽은 게 백안이다.
거기다가 몽골인 캐릭터들이 변발부터 하지 않아서 고증은 안드로메다로 이민 갔다. 굳이 실드를 치려면 "배우들이 이 작품만 하는 것도 아니고 변발을 하기가 어려웠다"고 하겠지만, 시청자들은 '누가 진짜 하라던? 가발은 놔뒀다 사골국 끓여 드시나?', '요즘 기술도 좋은데 가발 씌우고 CG로 보정하면 되잖아?' 등의 반응을 보이며 치졸한 변명으로 취급 중. 당장 2005~2006년에 같은 방송사에서 방영된 드라마 신돈을 생각해 보자. 그때 기철이나 원나라 측 인물로 나왔던 사람들은 모두 변발을 했었다.
애당초 조선시대 배경의 사극들의 상투 머리도 다 가발이다. 거기에 개그 프로그램에서 대머리 분장도 가능한 요즘 같은 시대에, 변발 분장을 못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게다가 변발을 하지 않은 건 그렇다 쳐도, 염색에 왁스를 바른 모히칸 머리라든지(탈탈), 여자가 똥머리를 한 것 등 아주 현대적인 머리 모양들이 나온다. 그리고 기승냥(기황후)이나 타나실리 등 어느 정도 높은 지위에 있는 여성들은 하나같이 티아라를 연상케 하는 국적 불명의 머리 장식을 쓰고 나온다.
헤어스타일과 함께 포스터에서 보이는 몽골계인 원나라의 복식이 원대의 것이 아니라 당나라[8] 시대의 복식이라는 점도 논란이 되는 부분이었다. 드라마의 주 무대가 원나라 황실인데, 등장인물들의 복장이 원나라 시대 의상이 아니라는 점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것도 모자라 원나라측 등장인물 중 한 명인 연철이 원나라에서 사용하던 칼인 곡도가 아닌 환두대도를 태왕사신기 때 사용한 것을 그대로 사용하지를 않나[9] 주몽에서 사용한 갑옷들도 그대로 사용된 게 밝혀졌다. 몽골인들이 이 드라마를 보면 멘붕하고 욕설을 퍼부을지도. 거기다 차라리 여자들 복식은 당나라 복식과 비슷하기라도 하지, 남자들 옷은 국적불명의 온갖 괴상한 의상들 조합이다. 남자들 옷에는 단추가 달려 있는 옷이 많은데, 그런 단추는 청나라 시대에나 가야 볼 수 있는 것이다. 제대로 된 중세 몽골풍으로 하기보다 대충 북방 이민족 느낌을 주려고 한 것에 가까워보인다. 원나라 조정 대신 관복의 경우 발립형 관모는 잘 고증했으나 관복의 형태가 실제 원나라 관복과 다르고 대충 몽골풍 느낌만 낸 형태다.
차라리 제작비 절감과 시대적 연출 오류 최소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차원에서 신돈이나 무신에 나온 몽골 제국·원나라 의상을 재탕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특히 무신에 나온 몽골 제국·원나라 의상들은 무신의 방영 시기가 기황후 첫방송 시점으로부터 약 1년 전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재탕하기 좋았을 것이다. 결국 기황후 제작진은 시대적 재현에 안 맞는 의상과 소품을 새롭게 만드느라 제작비를 낭비한 셈이며, 사극 속 시대적 연출 오류가 제작비가 부족한 탓에 어쩔 수 없이 생겨난 오류인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시대적 연출 오류를 만들어내기 위해 제작비를 낭비한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인 셈이다.
<기황후>에서 보이는 후궁 계급도 실제 역사와 차이를 보이는데 귀비, 첩여, 재인 등은 당나라에서 가져온 것이다. 극중 타나실리가 "2계급을 뛰어넘어 승냥이 정3품 첩여가 됐다"고 타환에게 따지는 장면을 보면 확실하다. 실제로 원나라는 황후-비-빈 밖에 존재하지 않았다가 순제 때 빈 아래로 드라마에 실제로 나오는 재인이 추가되긴 했지만, 첩여와 귀비는 전혀 고증에 맞지 않다.
또한 타나실리가 내훈을 공부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내훈이 조선 초 인수대비가 만들었던 책이라는 걸 생각하면 이게 조선시대 사극인지 뭔지 헷갈릴 지경이다. 차라리 금나라의 여진 문자 서적, 남송의 성리학 경전 등 원나라 이전 중국 왕조의 책을 공부하거나 몽골 제국 초기 역사를 다룬 몽골어 서적을 공부하는 장면이 나왔으면 올바른 시대 재현이 되었을 것이다.
고려 왕의 복식이 황제의 복식인 12류 면류관인데, 12류 면류관은 반원 개혁을 펼친 공민왕 대 들어서야 잠깐 채택되었지 그 전에는 9류 9장복을 입었다. 즉 외왕내제마저 관둔 원 간섭기에 황제의 복식을 입히고 있는 오류를 저지른 것이다.
또 30화에서는 원나라 황실 연회에서 음식으로 새우가 나온다. 몽골인들은 물에서 나는 것들은 먹지 않으며, 그걸 먹는다는 건 굶어 죽기 직전 같은 비참하고 극단적인 상황으로 여겨질 정도다. 몽골 요리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21세기의 몽골인도 새우를 벌레로 여겨 기피하고, 해물도 문화적으로 기피한다. 게다가 저 장면이 만일 몽골에 퍼지면 어찌될 건지 생각도 하지 않은 것 같다![10] 비유를 하자면, 황제에게 벌레를 삶아서 제공한 셈이다.[11]
36화에서 타나실리가 기황후에게 "네 아들( 아유시리다라)을 위한다면, 태자 자리를 탐할 생각은 아예 말거라. 폐하는 너에게 백 번 양보해도, 네 자식이 내 자식 머리 꼭대기 위에 오르는 건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경고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실제 타나실리는 아유시리다라가 태어나기 3년 전에 백안에게 독살당했다.
타나실리의 처형에 사약을 쓰는데, 사약은 전근대 한국의 사형 제도지, 몽골이나 중국의 제도가 아니다.[12] 또 타나실리가 폐해진 뒤 새 황후를 책봉하는데 간택을 한다. 간택은 조선의 독특한 제도로, 다른 나라에서는 조정에서 새 황후감에 대해 논의하는 일은 있어도 간택처럼 후보자들을 불러놓고 심사하지는 않았다. 거기다 후궁 경선은 그 어떤 나라에도 없었던 제도다.
41회의 마조 씬에서 황제인 타환이 "고려가 국호를 버리고 원나라에 편입 되는 것이 옳다고 보네." 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실제로는 황제라도 저런 대사가 나올 수가 없다. 바로 원 세조 쿠빌라이 칸이 정한 원칙인 세조구제(世祖舊制)로 쿠빌라이가 고려를 부마국으로 삼아 직접 통치를 하지 않고 독자적인 내정 운영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내용이다. 이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원나라 초대 황제가 정한 원칙이라 후대의 황제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원칙이었다.[13]
마지막 화에서 원혜종이 조서를 쓰겠다고 하는데 원혜종은 황제이므로 조서가 아니라 칙서라고 해야 맞다는 의견이 있으나, 조(詔)와 칙(勅)은 모두 황제의 명령에 해당하며, 전자는 천하 만민에게 모두 적용되는 선포의 성격을 가지고 후자는 특정 대상에게 어떤 명령을 내리는 지시의 성격을 가지기 때문에 극중 '조서'라는 용어 사용은 틀린 것이 아니다. 참고로 고려 국왕과 일본의 천황은 '선지(宣旨)'라는 용어를, 조선 국왕은 초기에는 '왕지(王旨)', 세종대왕 이후 '교지(教旨)'라는 용어를 사용하다가 갑오개혁 후인 1895년부터 중/일과 같이 조와 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본작의 시대적 재현 오류가 워낙 심하다 보니 이렇게 제대로 된 시대적 재현조차 오류로 오해받는 일이 일어난 듯하다.
극중 인물들이 불로초를 공동구매해서 먹었는지 나이 따위는 안 먹는다. 나이를 먹는 건 왕유나 염병수, 텡기스 등의 장년 남자들 정도. 원나라가 망하고 2년 후 순제가 죽었을 때 그의 나이가 50세였는데, 극중 후반부에 타환과 승냥이 40대 중년인 상황에서 낳은 애들이 다 자랐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늙지 않았다. 전근대의 40대와 50대가 사실상 노인에 가까운 나이였음을 감안하면 노인 분장을 하거나 아예 원로 배우로 교체되어야 했다.
일단 기황후가 주인공이고 그녀를 띄우려고 하다보니 기황후와 접점이 없어 이미 기황후 등장 시점에는 죽어있어야 할 사람이 멀쩡히 살아 있다거나 선한 사람이 악녀가 되고 기황후 편에 선 사람의 최후가 완만했다든지 역사왜곡이 상당했다.
그러면 역사적 내용들을 참고해 하나하나 집어 보자.
가장 먼저 전국환이 연기한 연철을 예로 들 수 있다. 연철은 타환, 그러니까 혜종이 원나라의 대칸이 되기 이전에 죽은 사람이다. 물론 딸인 타나실리를 타환에게 시집보낸 것까지는 역사적 사실이지만 자신의 권세를 위해서 타환의 즉위를 반대했다.[14] 타환 역시 연철 때문에 정식으로 취임하지 못했다가 그가 죽어서야 취임을 했다. 연철이라는 이미 죽은 사람을 살려 사실상 드라마의 최종 보스처럼 보이게 하여 기황후를 띄운 셈이다.
바얀 후투그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평생을 검소하고 조용하게 살다가 편히 죽었다. (절대로 폐위되어 귀양을 가거나 사약을 강제로 마시고 죽은 사람이 아니다.) 실제로 기황후가 그녀가 입던 옷을 보고 비웃었다고 할 정도로 검소하게 살았던 사람인데 그녀 역시 기황후 띄우기에 희생되었다.
또 백안과 연철의 관계도 의미심장한데 사실 역사적 정황상 백안이 연철보다 나이가 많다.[15] 역사적 사실대로 연철 사후에 두 아들이 권력을 이어 받았는데 백안이 그 두 아들을 죽였다라고 하면 되었을 것을 처음부터 틀을 잘못 짜서 백안을 연철의 부하로 출연 시킨 것. 실제 역사를 보건데 백안은 황후를 배출하던 명문가의 자손이고 연철은 권력을 쥐고는 있었지만 킵차크 칸국에서 들어온 외부인이다. 게다가 백안이 연철보다 나이가 많으니 연철이 백안을 존대했어야 했다.
그 외에도 고려에서 공신 작위까지 받으며 친원파로 활동한 이문식이 연기한 방신우(?~1343)는 충혜왕의 졸개 노릇이나 할 만한 위치의 인물이 아님에도 극의 전개를 원활히 하기 위해서 이 역시 역사 왜곡을 하였다.
또한 진이한이 연기한 토크토아 또한 그러한데 삼촌인 백안을 몰아내고 원나라 중흥을 위해 힘 쓴 것은 사실이고 또 연철이나 백안처럼 흑화한 인물이 아닌 것은 사실이나 하마라는 인물에게 모함을 당해 귀양을 가 독살을 당했다. 탈탈이 단순히 극 중에서 기황후를 돕는 위치이다보니 모함을 당해 독살까지 당한 것을 홍건적과 싸움 중에 전사한 것으로 처리한 것이다.
이 외에도 유인영이 연기한 연비수가 뜬금없이 이미 역사에서 사라진 돌궐 사람이라거나 하는 오류 등이 있다. 다만 연비수가 돌궐인이라는 설정의 경우 당시 한자문화권에서 튀르크계 민족들을 총칭하는 말이 돌궐이었기 때문에 다소 애매한 감이 있다. 실제 원나라도 튀르크계 민족이 색목인 계급으로 존재했으니 말이다. 뿌리깊은 나무의 카르페이 테무칸과도 비슷한 경우다.
[1]
멀리 갈 것도 없이 작가의 전작
대조영이 시청률 흥행에도 불구하고 몇몇 인물에 관한 사실 왜곡 때문에 욕 먹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시청률 대박난 드라마조차도 이럴진대 하물며 기황후야...
[2]
북원이라는 나라를 세웠다는 말 자체도 틀린 것이,
명나라에 밀려 북쪽 초원으로 달아난 것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3]
실제로 이 드라마를 본 몽골인 중에서는 '기황후라는 인물이 나름 괜찮은 인물이었던 모양이다...' 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국인들 중에서도
드라마 명성황후를 시청했던 세대들은 실존인물
명성황후를 나름 괜찮은 인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많다. 드라마 종영 후 미화 비판여론은 다시 드러나긴 하지만...
[4]
물론 이걸 알고도 들어오게 한 건 아니다.
출산한 사실을 알고 있는 건 기승냥 본인과 방신우 정도.
[5]
그것도 자기가
임신해서 낳은 아이로 꾸민다. 그리고 이 설정은
타나실리가 아이에 대해 갖는 집착을 표현할 때 가끔씩 나오곤 한다. 참고로 이 아이는 기승냥이 낳은 아이다. 또한 실제
타나실리는 불과 14살의 어린 나이에 죽어 자녀를 두지 못했다.
[6]
실제로 최영 장군은 기황후가 보낸 군사들을
이성계와 함께 모두 격파했다.
[7]
조재현을 제치고 유동근이 대상을 수상한 이유는 유동근이 정도전 뿐만 아니라
가족끼리 왜 이래에서도 맹활약했기 때문이다.
[8]
참고로 당나라의 지배층은 원나라의 몽골족과 같은 몽골계 민족인
선비족이었지만 당나라 건국 이후 시점에서는 한족과의 혼혈 및 언어·문화적 한화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다. 문화적으로 한화되는 것을 꺼렸던(그나마 한화된 경우도 원말명초 시점의 일) 원나라의 몽골족과는 대조적이다.
[9]
웃기는 점은 실제 원나라의 곡도가 본작에도 엄연히 나온다는 것이다. 해당 장면에서 연철이 사용하던 칼도 그대로 곡도로 나오면 좋았을 것을 괜히 환두대도 소품을 써서 문제가 된 것이다.
[10]
참고로 현대
몽골에서도 다른 사람한테 해산물을 선물하는 건 상대방을 조롱하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이에 대해선 내륙 지방인 점이 관련되어 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현대 몽골인들 중 그나마 해산물을 먹는 데 거부감이 없는 사람들은 주로 몽골 본토(
외몽골)보다는 중국에 많이 거주하고 그마저도
다롄시,
톈진시,
친황다오시 등 해안 도시에 거주하는 몽골인들이다. 내륙에서 전통적인 생활을 하는 몽골인들은 국적을 막론하고 해산물을 먹는 데 거부감이 있다고 보면 된다. 사실 몽골인 뿐만 아니라 중국 한족들도 내륙 지역에 거주하는 경우에는 해산물을 먹는 데 거부감이 있는 경우가 많다.
[11]
차라리
청나라가 배경인 사극에서 청나라 황실 연회에 새우 요리가 나오는 게 맞는 고증이다. 청나라의
만주족은 원나라의 몽골족과 달리 전형적인 유목민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그에 따라 해산물 요리를 먹는 데도 거부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만주족이 몽골족과 같은 전형적인 유목민이었다면 애초에
서태후가
샥스핀을 즐겨먹지도 않았을 것이다. 물론
서태후가 집권한
청나라 말기쯤 가면 만주족이 문화적으로 한족에 거의 동화되어 만주족으로서의 민족 정체성만 간신히 유지하고 있었다는 걸 감안해야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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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같은 경우 피를 불길한 것으로 생각했기에 교수형이 일반적이었다. 같은 유목민족인 투르크인이 세운
오스만 제국도 마찬가지라 보통 교수형에 처하고 예외적인 경우에나 참수를 했던 것을 보면, 유목민들의 공통적인 특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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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군다나 원 순제의 두 번째 연호가 지원(至元)인데 이건 세조 때 썼던 연호와 한자까지 똑같으며, 이 때문에 순제가 세조를 본받으려 했던 것이 아닌가 하고 보는 견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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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철은 자신의 딸 타나실리를 타환에게 시집 보내면서 권세를 쥐려고 했지만 그게 불안해서인지 부다시리(김서형이 연기한 황태후)의 아들을 칸으로 세우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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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탈의 아버지인 마자르타이(1285~1347)은 연철과 같은 년생인데 마자르타이가 백안의 동생이니 백안이 당연히 연철보다 나이가 많을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