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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9 16:55:17

기쁨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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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특징3. 명칭의 유래4. 소속5. 증언과 증거6. 악영향7. 폐지? 존속?8. 기쁨조 출신 인물9. 대중매체

1. 개요

로마자: Kippumjo
영어: Pleasure Squad
일본어: 喜び組

김일성 북한의 통치자로 있던 시절인 1970년대에 김정일의 지시로 생겨난 정치적 목적으로 쓰이는 미모의 젊은 여성 집단을 대한민국에서 일반적으로 일컫는 명칭. 사실상 북한판 위안부[1]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형법》 제6장 '사회주의문화를 침해한 범죄' 제194조(퇴폐적인 행위를 한 죄)에 의하면 "퇴폐적이고 색정적이며 추잡한 내용을 반영한 음악, 춤, 그림, 사진, 도서, 록화물과 전자매체 같은 것을 보았거나 들었거나 그러한 행위를 한 자는 2년 이하의 로동단련형에 처한다. 정상이 무거운 경우에는 5년 이하의 로동교화형에 처한다."라고 하는데 정작 최고권력자인 김 씨 부자는 가장 퇴폐적인 성문화를 즐겼다. 애초에 법 위에 있는데 처벌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2. 특징

파일:국방TV BI.svg 파일:국방TV 페이스북.png
<rowcolor=white> 은둔의 지도자 '김정일'의 밀실 파티?
최악의 독재자 김정일②
(2023년 12월 23일 방송분)

북한에서 온 한의사에 따르면 "젊은 사람과 대화를 많이 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핑계로 모았다고 한다. 김정일 때부터 양성되었다고 하며 만족조, 피로해소를 위한 행복조, 댄서나 가수 등의 가무조 등으로 역할이 분류된다고 알려져 있다. 남한에서 생각하는 기쁨조의 역할을 하고 있는 조직이 조선로동당 5과 소속으로 북한에서 엄선한 미녀들을 모아서 편성된 것으로 보인다. 문서의 편의상 해당 단체를 이하 '기쁨조'로 통칭한다.

북한의 극도로 폐쇄적인 성격상 최고위층도 명칭은 물론 이 조직의 실체를 상세히 알고 있는 사람이 매우 드물며, 당연히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남한에 와서 이 같은 내용을 처음 알 수밖에 없다. 당연한 것이, 북한 자체가 여행의 자유가 없을 정도로 폐쇄적인 탓에 북한 사람도 북한이란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른다. 평양 외에는 자신이 살던 지역 일대에 갇혀 다른 지역의 상황조차 잘 알지 못할 정도로 폐쇄적인 곳에서 최고 지도자의 성적 만족을 위한 조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반 주민들이 어떻게 알겠는가.

확인되지 않은 탈북자의 증언에 따르면, 기쁨조를 관리했던 최룡해 오랄섹스를 용이하게 할 목적으로 만족조를 발치하고 틀니를 끼게 만들었다고 한다. 김정일의 처조카 이한영씨의 증언에 의하면 간부들끼리는 비공식적으로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공연실'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를 '남측 괴뢰의 선동과 최고존엄 모독 공작'이라며 부인하는 북한의 주장과는 달리, 실제 기쁨조와 관련된 내용은 1990년대 이후부터 탈북자들의 주장과 주 북한 외교관 및 심지어 일본공산당 기관지 기자의 보도 등 교차검증이 비교적 가능한 자료들을 종합해서 불거지기 시작한 내용이다. 이 시기 일본의 수많은 기자들, 특히 좌파 계열 기자들은 북한 기쁨조의 실상에 대해 논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일본공산당 기관지 기자의 폭로.[2] 설령 기쁨조라고 유출된 영상들이 중국에서 만든 조잡한 영상이라 할지라도 수많은 증언과 자료, 경험담들이 일관적인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적어도 김정일을 위한 1개 중대급의 전속 유흥단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는 증언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백 번 양보해서 난교 임신 섹스파티[3]라든지 스트립쇼 등의 사례가 존재하는지 안하는지는 확인이 불가능한들, 전속 유흥단이 존재하는 사실 자체는 확실하다고 볼 수 있다.

2009년, 북한에서 왕재산경음악단이 특수 고위층을 대상으로 제작한 공연 영상이 남한에 공개되면서 북한에도 비공개로 소위 자본주의식의 화려한 공연을 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설령 이것으로 김정일의 개인 유흥집단에 대한 유추가 지나친 비약이라 할지라도 이로 인해 기쁨조의 존재가 잠시나마 다시 이슈가 되기도 했다. 워낙에 북한이 내부사정을 알기 힘든 나라인 데다 겉으로는 엄숙주의로 무장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공공연한 비웃음거리가 된다고 볼 수 있다.

평양 출신 탈북 피아니스트 김철웅은 기쁨조에 대해 매불쇼에서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는데 5과 소속이라는건 중학교 입학 연령 즈음에 예체능에 재능이 있는 학생을 선발해서 공연교육을 시키는 엘리트 코스라고 한다. "나는 기쁨조에 대해 이야기 하는 탈북자들에게 정말 5과 출신을 만나 본적이나 있는지 묻고 싶다. 5과면 자랑할만한 경력인데 한국에 와보니 삼류 에로소설도 못될 헛소리가 퍼져서 5과 출신들이 어디가서 5과라고 말도 못하는게 안타깝다"라고 이야기했다. 김철웅은 가짜 평양 출신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는데 탈북자 80% 이상이 함경북도 양강도 출신인데 한국에서는 너도나도 평양 출신이라고 하는거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고... 그런 사람들은 한두마디 나눠보면 금방 알 수 있다고 한다. 기쁨조도 평양 출신이 아니면 평생 얼굴 볼 일도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지 신기하다고 빈정대기도.

3. 명칭의 유래

김철웅은 5과가 기쁨조로 불리게 된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유래에 대해서도 설명 했는데 5과 공연조 소속은 결혼하면 은퇴하게 돼서[4] 대부분 20대 초반을 넘기는 사람이 없는데 20대 중반이 넘어 보이는데도 공연을 하는 공연자를 보고 김일성이 "저 아이는 나이가 꽤 돼보이는데도 아직 결혼을 안 했어?"라고 묻자 5과 간부가 "수령님의 기쁨을 위해서라면 결혼이 대수겠습니까? 저희는 인민들을 위해 밤낮 고민하시는 수령님을 생각하면 쉴 수가 없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김일성은 딱히 별 다른 대답은 안하고 웃으면서 지나갔지만 이건 북한 기준으로도 좀 심한 딸랑이 짓이라 다른 과 간부들이 아무리 수령님 앞이라고 해도 어떻게 저렇게까지 아첨을 하냐면서 비아냥 삼아 5과를 너희들이 무슨 엘리트냐 너희는 그냥 '기쁨조'라고 놀린게 퍼졌다고 한다.

4. 소속

북한에서는 기쁨조를 소속 부서명인 '5과'라고 한다는 말도 있으나 이는 완벽히 맞는 말은 아니다. 조선로동당 5과는 북한판 채홍사[5]로 김 부자의 흥청(興淸)[6]을 뽑는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기쁨조는 이 5과 선발자 중에서 선발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5과의 선발과정은 조선로동당 5과 문서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본 문서에는 5과에서 기쁨조로 선발된 그 이후의 과정을 서술하겠다.

원래는 조선로동당 5과의 소위 계급의 군관이었으나 김정은이 조장은 대위, 조원은 중위로 격상시켰다. 그리고 대부분 김정은의 저택에서 김정은과 같이 산다. 기쁨조에서 근무하는 동안에는 집에 갈 수 없으며 당연히 가족도 못 본다.

이 일을 총지휘하는 중앙당 조직지도부 5과는 선발의 모든 과정에 개입되어 있다. 선발 인원의 100배수의 인원을 앞서 밝혔던 과정으로 추천을 받아 추천서와 서류 심사를 통해 10배수로 압축하여, 질병 검사를 비롯한 각종 검사를 받게 한다.[7] 그 후 이 과정을 모두 통과한 여성들을 당비서국에서 서류심사와 개인 면담을 통해 50명을 선발하는데, 당비서국은 이렇게 선발된 50명의 여성들의 사진과 최종 보고서를 김정일과 김정은에게 제출하여 결재를 받는 것.

이러한 과정 끝에 선발된 50명의 여학생들은 약 6개월간 교육을 받게 된다. 만족조는 술자리에서 시중 드는 방법, 성행위를 잘하는 방법을 교육받으며 행복조는 물리치료 전문의로부터 마사지 등 피로회복 전문 기술을 익힌다. 가무조는 흥을 돋우기 위한 노래와 춤을 배우게 되며 이후 보름간의 해외 견학을 다녀와 김정일의 정기 주연일인 매주 토요일 '자유의 밤'에서 공연을 하게 된다.

자유의 밤은 ' 인도의 밤', ' 페르시아의 밤', ' 도쿄의 밤', ‘ 파리의 밤’, ‘ 뉴욕의 밤’(...) 등 의상과 음악 등을 현지 풍습대로 연출하여 상영되는 공연을 말한다. 이 외에도 각종 연회 자리나 등에 시시콜콜 불려가서 김정일은 물론 북한 내 고위급 관료들까지 상대한다고 한다. 여성들은 기쁨조의 일원이 됨으로써 명목상 호위총국 소위 계급을 수여 받고 만 25세까지 인민군 군관으로 복무하는 것이 된다. 기쁨조로 차출된 후에도 검사는 끊이지 않는다. 1년에 2차례의 신체 검사를 받고 상대의 아이를 배어 임신하거나 부적격 판정이 나면 즉시 해임된다고 한다.[8]

만 25세 이후에 기쁨조에서 퇴직한 이후에는, 소속과 보직만 변경되고 군대에 그대로 남아서 고위급 군관이 되거나, 퇴역 후 무역상사의 고위 간부를 하거나, 당 고위 간부를 하는 등, 고관대작의 길을 걷게 된다. 또는 김씨 일가의 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기쁨조로서 만기퇴역을 할 경우이며, 중간에 짤리면 외국무역상사의 직원이 되거나 고려항공 스튜어디스 등 만기퇴역자보다 훨씬 낮은 직급에 종사하게 된다. 심하면 같은 나이에 똑같은 날짜에 똑같이 기쁨조에 들어온 2명의 동기가 하나는 중간에 짤리고 다른 하나는 만기퇴역했는데, 중간에 짤린 인원이 만기퇴역한 인원의 부하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 정도 직장도 북한에선 충분히 상류층에 속한다.

5. 증언과 증거

1970년 초 김정일이 아버지 김일성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북한 전역에서 미모를 갖춘 여성을 선발해 김일성 별장에 배치하면서부터 그 원형이 생겨났다고 한다. 김정일은 1974년경부터 자기의 측근들과 비밀파티를 가졌는데, 당 내 주요 자리를 자기 사람들로 채우고 친위 세력을 형성하기 위해 파티를 이용했다고 한다. 기쁨조 증언 기쁨조 안에 행복조, 만족조, 가무조가 있는데, 만족조는 성적으로 만족을 주는 조, 행복조는 안마 등을 해주는 조이다. 이것도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기쁨조를 하다가 퇴직한 사람은 고급 아파트에 들어가게 해준다. 그러나 기쁨조를 나올 때 내부에서 있었던 일을 발설하지 못하도록 각서를 쓰게 한다고 한다.

김일성의 경호원을 1년 6개월 정도 했었던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기쁨조는 1975년도에 처음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인민국 협조단에서 18명 정도를 뽑았는데, 실력보다는 예쁘기만 하면 됐다고 한다. 북한에는 '음팔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 사람이 스트립쇼를 하면 김일성이 좋아했다고 한다. 한편, 김정일이 자기 아버지에게만 안겨주기에는 부러웠는지 예술단에서 예쁜 사람들만 뽑아 김정일 주위를 빙빙 돌게 만들었다고 한다. 즉, 김일성도 살아있을 때 기쁨조를 신명나게 즐겼다는 이야기이다.

김정일은 본처(영숙, 성·나이 미상) 외에 첩 2명과 생활하면서도 주변의 근무여성을 특별양성하여 성적유희로 농락했다. 김정일은 1977년부터 매년 시·도 예술전문학교 졸업반 여학생 가운데 미모의 30여 명을 선발, 평양적십자병원 의대에 1년 과정의 특설 반에서 기본간호교육을 시키고 홍콩· 마카오 등의 지역에 파견하여 안마술 등 단기간의 연수를 시켜 자신이 최종심사한 여자를 집무실·공관·별장 등에 배치하여 즐겼다. 또 영화배우 유진희 (〈당의 참된 딸〉 주인공)·홍영희(〈꽃 파는 처녀〉의 주인공)·최삼숙·이정순·채수련·오화자·고지미 등 10여 명과 만수대예술단 무용수 10여 명·전용타자수·담당간호사 등 숱한 여자들과 성적유희를 자행했다.

김정일은 이들에게 공훈 배우 칭호를 수여하고 고급물품을 선물했다. 김정일은 변태적인 기질이 다분했는데, 주말마다 각종 연회를 열고 무용수들에게는 나체로 춤을 추게 하며 참석자(중앙당 부부장급 이상)로 하여금 이들을 애무하도록 한 뒤 즐기는 등 변태적 음란 기질자임을 잘 보여준다. 월간조선의 보도에 따르면 "실제로 여자관계가 복잡했던 김정일은 최소한 10명의 사생아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며, "러시아 타블로이드 일간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Комсомольская правда)는 1997년 9월 23일 이런 사실을 폭로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해당 일간지의 친북 논조를 생각해보면, 해당 기사가 실제로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다. 독립적인 출처로부터 검증되지 않았다. 조선계 출처(조선일보, 월간조선)의 성격상 북한 관련으로 많이 언급되는 외신과 북한 관련 내용을 억지로 엮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월간조선은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가 '수령과의 잠자리'라는 제호 아래, 기쁨조를 비롯한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여성 편력을 거의 전면에 걸쳐 소개했다고 주장하였다. "김정일에게 수많은 사생아가 있으며, 확인된 아이만 하더라도 10명 정도."라고 덧붙였다고도 주장했다.

외교관 출신 탈북자인 고영환에 따르면 김정일이 캄보디아 노로돔 시아누크에게 기쁨조 공연을 보여준적 있는데 시아누크는 공연을 본 후 매우 불쾌해 했다고 한다.[9]

6. 악영향

오히려 한국의 성문화가 북한보다 더 엄격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장성택 측근 강태석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라는 옛 속담을 증명하듯 기쁨조 때문에 북한 일반 인민들의 성문화도 퇴폐적으로 변질되었으며 성적 인권은 바닥까지 추락해버렸다. 힘없고 약한 어린 꽃제비 소녀, 소년들은 어른들에게 겁탈당하고 북한 곳곳에 집창촌들이 생겨나버렸다. 조선인민군에서도 여군들은 남성들에게 성폭행 당해 원하지 않는 임신을 당하는 경우가 흔하게 된 것은 물론이고 남성 군인들도 예외없이 상관들에게 동성성폭행을 당하게 되었다. 문제는 북한의 치안기관들도 최고지도자에 대한 모욕이 있었던 사건이거나 주민들의 민심과 관련된 일이 아니면 그냥 방치하는 것이 현실이며 당 간부와 군 고위층들은 뇌물로 자신들의 성적치부를 은폐하는 경우도 흔하다.

문제는 북한 일반 주민들도 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도 가지고 있지 않다보니 이러한 상황을 심각하게 여기지않고 있다는 점이다. 거기에다가 고난의 행군 이후로 북한의 의료 시스템은 붕괴된 상황이고 성병에 대처할 수 있는 수단과 체계도 전무한 상황이다 보니 성병의 전파도 매우 빠르다는 것도 문제이다.[10]

현재도 류경관이나 사우나, 휴양소 같은 장소들은 북한 간부들 전용 성접대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7. 폐지? 존속?

3대 세습에 성공한 이후, 김정은이 전격적으로 폐지를 했다는 의견과 존속을 했다는 의견이 엇갈린다.

선발 기준이 키 170cm 이상 장신의 미녀로 바뀌었다 한다. 김정은은 키가 큰 여자를 좋아하는데 본인의 키가 168cm 정도이므로 자신보다 키가 더 큰 여성들만 뽑는 것이다. 영양상태 문제에 대한 인터넷 여론이 있지만, 아프리카의 남수단 사람들이 최빈국 출신이지만 평균적으로 한국인보다 키가 크듯, 유전 인자도 키에 중요하기에 키 큰 집안 출신이거나 다소 사정이 나은 집 출신이면 아예 지금도 최현미 씨처럼 여자 170cm 이상이 없지는 않다.

김정은도 김일성, 김정일과 마찬가지로 여성들과 은밀한 사생활을 즐긴다는 의견이 있다. 대북소식통은 "김정은이 집권 초반에는 초대소나 별장을 별로 이용하지 않았지만 2014년 다리 이상과 발목 수술 이후엔 초대소·별장 등지에서 휴양하는 일이 잦다."며 "김정은이 자주 찾는 초대소와 별장 등지에는 키 170cm 이상 미모의 여성들이 근무하고 있다. 김정은은 김정일 생존 시 활동했던 기쁨조를 모두 해임하고 새로 (기쁨조를) 뽑았다."고 했다. 그는 이어 "최근 평양에선 기쁨조에 선발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얼굴에 흠집을 내는 여성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과거엔 기쁨조에 선발되면 '가문의 영광'으로 여기던 평양 여성들이 "김씨네와 중앙당 늙은 영감들의 노리개질은 하기 싫다"며 거부한다는 것이다.

반면 김정은은 기쁨조를 사실상 없애버렸다는 의견도 있다. 기쁨조라 불리는 5과 대상자를 선발할 때 여성들에 대한 모집을 전면 금지하고 대상자를 모두 남성으로 채웠으며, 간호사, 안마사와 같은 별장관리 임무도 전부 남자들이 맡게 됐다. 물론 절대권력자인 김정은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기쁨조가 부활할 수 있겠지만, 현재로선 기쁨조는 자취를 감춘 상태이다. # 정상국가를 지향하는 것으로 알려진 김정은에게 왕조국가에서도 보기 힘든 기쁨조는 대외적으로 보면 큰 마이너스다.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의 증언에 의하면 김정은은 평소 김일성과 김정일의 엽색행각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고, 고모부인 장성택을 처형한 이유 중엔 장성택이 김정일의 기쁨조를 선발하는 과정에서 저지른 심각한 여성편력 행위도 있다고 한다. # 김정은의 고모이자 장성택의 부인인 김경희가 김정은의 장성택 처형을 용인한 것도 장성택이 여색을 밝히는 것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고, 김일성대에는 소규모로 음성적이던 기쁨조를 본격화시키고 활성화시켜 김정일의 총애를 받고 또 김정일을 기쁨조로 망가트린게 바로 장성택이어서라는 해석도 있다.[11]

하지만 최근에 외신에서 몰래 찍힌 사진들에 의하면 사실상 기쁨조가 부활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으나, 계속 확인해야 할 듯 하다.

2024년 4월 28일 자유아시아방송 보도에 따르면 각 지역 노동당 6과에 어린 처녀, 과부 같은 독신 여성을 선발하라는 지시가 하달되었는데, 기사에서는 전국의 각 도, 시, 군당위원회 조직부 6과 '김정은을 호위(경호)하는 친위부대에 입대하거나 김정은 일가가 이용하는 저택, 별장 등에서 일하는 등 김정은 일가와 가까이 접촉하는 남녀 대상을 특별히 선발한다'고 설명했다. 함경남도의 한 소식통은 선발 기준은 키가 크고 멀쑥하며 '살색(피부)이 희고 눈이 크며 얼굴이 약간 계란형인 20살 미만의 어린 처녀들'[12]이라고 설명했는데, 친위 부대에 입대할 대상을 뽑는 기준은 매년 동일하지만 기타 다른 대상은 그때그때 중앙이 선발할 대상의 직업, 교육수준, 키, 몸무게, 얼굴형 등을 구체적으로 정해준다고 한다. 6과 간부들은 학교, 공장, 장마당 등을 돌아다니며 여성들을 찾은 후 지방, 평양에서 2차례 엄격한 조사를 거쳐[13] 최종 합격 비율이 100:1이라는 엄청난 경쟁을 거쳐야 한다고 한다. 여성을 순수 경호원으로만 채우려고 하면 외모, 체형, 나이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 게 뭔가 부자연스럽기에 김정은이 기쁨조를 부리는 게 아니냐는 의심은 들 수 있지만 김정은이 기쁨조를 부린다는 신뢰할 만한 증언은 아직까지도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

8. 기쁨조 출신 인물

9. 대중매체



[1] 일본군 위안부를 지칭할 때의 그 위안부가 맞다! 하술하듯 기쁨조 여성들은 위관급 계급까지 부여받았다. [2] 참고서적 : '서울과 평양'. 하기와라 료 저. 1990. 도서출판 다나. [3] 김일성 서자 김현이 이렇게 해서 태어났다는 의혹이 있다. [4] 합숙생활이 원칙이라서 결혼하려면 은퇴를 해야 한다. 특히 여자들은 공연 중 눈여겨 본 중앙간부 아들들의 청혼이 빗발치기 때문에 결혼 연령도 이르다. [5] 연산군 대에 연산군에게 보낼 미녀를 뽑던 관리. 영화 간신에 등장한다. [6] 채홍사들이 뽑아온 미녀나 관기 중에서도 선별한 미녀. 흥청망청이 여기서 나온 말이다. [7] 참고로 추천을 받은 여성들은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검사를 받으러 가야한다. 최종장까지 통과에 기쁨조가 되면 강제로 성노예가 되는것이다. [8] 예를 들면 전술한 바와 같이 기쁨조의 신체기준이 신장은 16세는 156cm/20세는 160cm/24세는 162cm 이상이어야 하는데, 16세 때 156cm였던 아이가 기쁨조로 뽑혀온 뒤 키가 자라지 않아서 20세 때도 여전히 156cm일 경우 부적격판정 대상이 된다. 물론 이것은 다른 여러가지 기준들 중 하나일 뿐이다. [9] 참고로 시아누크는 생전에 김일성과 매우 절친한 관계에 개인적으로도 친북 성향이었다. 그런데도 노골적으로 불쾌함을 보였을 정도라는 말. [10] 당연히 피임도구들도 갖출 수 없고 이렇게 태어난 사생아들은 그대로 버려져서 꽃제비로 전락한다. [11] 무엇보다 기쁨조를 운영하면 필연적으로 김정은의 사생아들이 생길 수 밖에 없는데 이러면 후계 구도가 복잡해질 가능성이 높다. [12] 그나마(...?) 박연미가 거짓 증언한 것마냥 10대 중반 이하는 선발 대상에 없었을 가능성이 100%다. [13] 출신성분과 계급적 토대까지 철저히 조사한다고 한다. [14] 실제로 2024년 박연미가 자신이 기쁨조 후보생이었다고 뻥을 친 적이 있다. 참고로 박연미가 자신이 기쁨조 후보로 선발되었다고 주장한 시기의 나이는 중학년 수준. 당연히 서양에서도 찌라시 취급 받고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