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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5 08:05:23

귀화 선수/축구

1. 개요2. 대한민국
2.1. 귀화 선수 목록
3. 일본
3.1. 귀화 선수 목록
4. 중국
4.1. 귀화 선수 목록
5. 동남아시아 지역6. 중동 지역
6.1. 귀화선수 목록
7. 유럽 지역
7.1. 귀화선수 목록
7.1.1. 독일7.1.2. 프랑스7.1.3. 이탈리아7.1.4. 스페인7.1.5. 잉글랜드7.1.6. 네덜란드7.1.7. 포르투갈7.1.8. 벨기에7.1.9. 스위스7.1.10. 러시아7.1.11. 크로아티아7.1.12. 스웨덴7.1.13. 오스트리아7.1.14. 덴마크7.1.15. 알바니아7.1.16. 그리스7.1.17.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7.1.18. 폴란드7.1.19. 벨라루스7.1.20. 세르비아7.1.21. 코소보7.1.22. 튀르키예
8. 아프리카 지역
8.1. 귀화 선수 목록
8.1.1. 가나8.1.2. 가봉8.1.3. 기니8.1.4. 세네갈8.1.5. 기니비사우8.1.6. 중앙아프리카공화국8.1.7. 코트디부아르8.1.8. 나이지리아8.1.9. 콩고민주공화국8.1.10. 카메룬
9. 오세아니아 지역
9.1. 귀화 선수 목록
10. 남아메리카, 북아메리카 지역
10.1. 브라질에서 타국으로 귀화한 선수들
10.1.1. 브라질에서 대표선수로 선발되지 못한 선수들10.1.2. 브라질에서 대표선수로 발탁된 경력의 선수들
11. 기타 사례

1. 개요

각 국가에서 활동하는 귀화 축구 선수에 대해 정리해놓은 문서.

귀화선수의 유형은 크게 두 가지 경우로 나뉘는데, 해당 국가와 혈연적으로 관련이 없지만 해당 국가의 리그에서 오래 활동한 뒤 귀화요건을 갖추어 귀화한 경우혈통상 해당 국가와 연관되어 해당 국가의 국적을 취득하는 경우가 있다. 과거엔 혈통적 연관도 없으면서 그 국가의 리그에서 오래 활동하지도 않았던 상태로 해당 국가의 금전적 보상이 수반된 스카우트 형식의 귀화 선수도 있었고, 해당국의 국적을 저렴하게 매입하는 방식으로 귀화하는 편법도 있었으나, FIFA의 규정이 확립된 이후에는 더 이상 유효한 방법이 아니게 되었다.

2. 대한민국

대한민국 축구계는 귀화에 대해서 소극적이었고, FIFA의 귀화 선수 규정을 만족한 케이스도 거의 없었다. 귀화 한국인 축구 선수 1호라고 할 수 있는 신의손의 경우는 K리그에 외국인 골키퍼 금지라는 로컬룰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나오지 않았을 케이스. 개최국으로써 좋은 성적이 절박했었던 2002 월드컵 준비기간에 당시 K리그 공, 수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평가받았던 샤샤 드라쿨리치, 마시에우 루이스 프랑쿠를 귀화시켜 대표팀에 합류시키자는 여론이 나왔지만 무산되기도 했다.[1]

이후 데니스 락티오노프, 라디보예 마니치, 야센코 사비토비치 등이 귀화하여 한국인이 되었으나, 대표팀에 뽑히는 일은 없었고, 모따, 제난 라돈치치, 에닝요, 히카르두 로페스, 말컹, 조나탄등 항상 월드컵 시즌만 되면 당시 K리그 정상급 외국인 선수들의 귀화설이 나왔지만 FIFA에서 요구하는 귀화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해서 성사된 적은 단 한 건도 없다.

귀화선수에 대한 문턱이 높은 이유는 기본적으로 한국말과 한국인의 정신이 없는 사람이 단순히 월드컵만을 위해 귀화해 대표팀에서 활동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국민적 정서가 강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대한민국 축구팬들은 카타르, 중국과 같이 성적만을 위해 무분별한 귀화정책을 펼치는 국가들을 절대 좋게 보지 않는다. 2000년대 이후에는 자국 선수들의 수준이 올라서 그 실력을 바탕으로 유럽 리그에 입성하는 선수들도 늘어난 편이고 K리그 자체의 평가도 당시보다 꽤 오른 상황이라, 굳이 귀화 선수에 목을 맬 이유가 없어진 것.[2]

하지만 인식의 변화가 최근 일어나고 있다. 2020년 6월 대구 FC 세징야의 귀화 의사는 기존 케이스와는 많이 다른 유형의 케이스인데, 특별귀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선수 본인이 이싸빅이나 데니스처럼 거주 목적으로 일반귀화 시험을 준비하고 있어 축구 팬들의 보기드문 지지를 받고 있다.

2025년부터는 K리그의 경우 홈그로운 제도가 생겨 대한민국의 유소년 시스템에서 축구를 배운 외국인 선수들은 첫 프로계약을 K리그 팀과 하면 앞으로 영원히 외국인 쿼터에서 제외될수 있게 되었다. 이 제도의 혜택을 받는 건 대체로 유년시절부터 한국에서 나고 자란 국적만 외국인 유소년 선수들인 만큼, 나중에 이 제도로 한국에서 커리어를 시작할수 있게 된 유소년 외국계 선수들이 성인이 된 후 한국으로 귀화할 가능성도 커졌다. 2024년에는 연령별 대표에 사상최초로 러시아계 한국인 찰릭 아르카디로마노비치가 선발되었다

2.1. 귀화 선수 목록

3. 일본

일본은 역사적으로 귀화선수에 대해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일본 또한 실질적으로 귀화인들의 대표팀 진출은 1990년대나 되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본 귀화 1세대 선수들은 피지컬 열세를 보완하기 위한 목적이었으며, 이 무렵부터 J리그의 출범 등 일본 축구계가 상승곡선을 타기 시작하며 일본 국대에 귀화 선수들이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귀화선수 1세대가 1989년 귀화한 루이 라모스. 1992년 AFC 아시안컵 우승멤버이면서 1994년 미국월드컵 본선진출을 위한 일본축구협회의 비장의 카드로 한국에서도 유명했다. 이후 일본이 아시아의 강호로 자리매김한 뒤에도 로페스 바그너, 산토스 알레산드로, 세르히오 에스쿠데로, 다나카 마르쿠스 툴리오, 마이크 하프나, 리 타다나리 등 많은 귀화선수들이 일본 대표로 선발되어 대표팀의 주축으로써 활약했다. 다만 이후에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마찬가지로 자국 선수들의 수준이 오르고 대한민국과 맞먹을 수 있을 정도로 자국 선수들의 피지컬도 개선된 데다가 유럽 무대에서 주전으로 자리잡는 선수가 늘어나기도 했고, 귀화 선수들이 예전만큼의 기량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부터는 단 한 명도 귀화 선수가 차출되지 않고 있다.

3.1. 귀화 선수 목록

4. 중국

중국은 본래 일반적인 외국인이 귀화를 할 수 없는 나라다. 본토에만도 인구가 15억 가까이 있는데다 전 세계에 중국계 혈통인 화교들이 무지하게 많으므로, 중국에서의 귀화는 중국계 혈통을 가진 화교들만을 위한 제도였다. 하지만 축구굴기를 주창하며 시진핑 주석 주도 하에 했던 투자로도 중국이 여전히 월드컵과는 거리가 먼 실력을 유지하자, 특단의 조치를 내리게 되고, 중국 혈통이 섞이지 않은 자국리그의 우수한 외국인 선수들을 하나 둘 귀화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중국계 선수들을 찾아내서 중국으로 귀화시키는 작업도 병행했다. 2018년 첫 귀화선수인 욘 세테르가 등장한 이후 약 10여명의 선수들이 중국으로 귀화한 상태며, 이 중 니코 예나리스 엘케손은 중국 대표팀 데뷔전까지 치렀다.

이들 귀화선수의 수준이 상당한 수준이라서, 중국 축구가 미래를 포기한 결정이라고 비난을 받아도 확실히 대표팀의 성적은 올라가고 있다. 엘케손, 알랑 카르발류 등의 브라질계 귀화 선수들은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경력이 있는 선수들이라 우레이 말고는 확실한 골잡이가 없는 중국의 전방에 큰 힘이 되고 있으며, 니코 예나리스, 타이어스 브라우닝 같은 유럽계 귀화선수들이 수비에서 큰 전력상승을 돕고 있다. 자존심을 버려가면서까지 귀화선수에 올인한 중국 대표팀이 2022 월드컵 본선에 진출할 수 있을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었으나 결국 본선 진출에 실패하고 브라질 귀화 선수들이 모두 중국을 떠났다.

4.1. 귀화 선수 목록

5. 동남아시아 지역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가릴것 없이 모두 귀화선수를 적극 활용한다. 자국 축구 인프라의 취약성을 만회하기 위한 조치이기도 하지만, 식민역사를 겪으면서 생긴 유럽 교포들이 적잖기 때문. 이중 가장 귀화선수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국가는 필리핀. 필리핀 축구 국가대표팀 문서를 참고하길 바란다. 베트남은 본래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역사가 있었지만, 중국, 대한민국과 비슷하게 순혈주의가 강했고, 국가대표팀에도 귀화선수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러나 박항서 감독 취임 이후 베트남이 기대 이상의 선전을 펼치며 아시아의 다크호스 위치로 올라섰고, 이후 탄력을 받기 위해 베트남계 선수들을 물색하며 귀화선수 영입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 교포 위주로 귀화를 추진하고 있는데, 이미 과거부터 어느 정도 귀화 선수에 대한 정책이 있었다고 한다.

5.1. 귀화선수 목록

5.1.1. 베트남

5.1.2. 싱가포르

5.1.3. 인도네시아

5.1.4. 태국

5.1.5. 필리핀

6. 중동 지역

FIFA가 국가대표 선수 규정을 바꾸게 된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 동네다. 과거 오일머니로 불리는 악명높은 외국인 국가대표 영입행태로 유명했다. 사실상 클럽이 선수 영입하는 수준으로 축구 강국의 우수 선수들을 많이 모셔왔으며,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가 카타르 축구 국가대표팀이다. 어느 정도였냐면, 한창 분데스리가에서 잘 나가던 브라질 국적 공격수 아일톤 곤칼베스 다 실바[64]가 2000년대 풍족하다 못해 넘쳐난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의 공격 자원때문에 자국 국가대표로 1경기도 출전하지 못하자, 2004년 카타르가 대뜸 귀화를 제시했고, 국가대표 커리어가 없던 아일톤도 이에 응하여 카타르로 귀화한다. 하지만 그는 카타르와 혈통적으로도 관계가 없었으며, 하다못해 카타르 리그에서 1경기도 뛰어본 적이 없다는 점이 FIFA에게 지적당했고, 월드컵 예선까지 100만 유로, 그 이후에도 카타르 대표팀으로 뛰면 매년 40만 유로를 수령한다는 귀화 조건이 알려지면서 바로 귀화가 취소된 사례가 있다. 당시 아일톤과 더불어 도르트문트의 주전 수비수였던 데데 또한 카타르로 귀화하기로 했으나 같은 이유로 무산. 하지만 이후에도 카타르는 귀화 정책을 고수했고[65] 세바스티안 소리아, 알모에즈 알리 같은 대박 케이스도 등장하는 등 서서히 귀화 효과를 보다가 2019년 드디어 AFC 아시안컵 첫 우승을 일궈내기까지 한다.

또 다른 중동의 귀화 케이스는 전쟁으로 피난간 이민 2세들의 컴백. 현대사 들어 중동은 항상 전쟁 위험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과거 아프가니스탄이 그랬고, 이라크가 그랬고, 팔레스타인이 그랬으며, 현재 시리아가 그러하다. 이들 국가는 모두 굵직굵직한 전쟁을 겪었고, 많은 난민이 발생하는 아픔을 겪었는데, 이 난민들 중 일부 축구 선진국으로 간 사람들의 후손이 그 나라의 축구 시스템의 뜻하지 않는 수혜자가 되어 준척급 자원으로 성장하는 경우가 생긴다. 혼란국면이 진정된 나라들에서 난민 2세들을 찾아내고 하대표팀에 합류시키는 케이스가 2010년대부터 활발히 일어나는 중이다. 이들 이민 2세들의 활약으로 이라크 축구 국가대표팀은 2015 AFC 아시안컵 준결승에 올랐으며, 팔레스타인 축구 국가대표팀은 2015년과 2019년 아시안컵에 2회 연속 본선진출을 일궈냈고, 시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은 2018 FIFA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호주와의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해 대륙간 플레이오프도 노려보는 중동의 다크호스가 되었다.

6.1. 귀화선수 목록

7. 유럽 지역

유럽은 귀화선수들이 정말 많다. 솅겐 협정으로 인해 국경이 자유롭게 개방된 유럽 국가들의 특징이기도 하고, 비교적 좁은 대륙안에 40여개국이 위치한 지정학적 조건때문이기도 한데, 복수국적까지 귀화로 따지면 정말 한도 끝도 없이 귀화 선수들은 많다. 이를 제외해도 여전히 귀화 선수들이 많은 이유는 유럽이 프로축구가 제일 활성화된 곳이기 때문. 많은 남미의 선수들이 어린 나이에 유럽으로 진출하고, 이들 중 실력 좋은 선수들은 유럽에서 오랫동안 활약하며 귀화요건까지 채우게된다. 리그 정상급의 외국인 선수들이 그 나라의 대표팀으로 뛰게 되고 자연스레 대표팀의 전력은 업그레이드 된다.[66] 이들 국가로 귀화하는 축구선수들은 자국 대표팀이 강해서 선발되지 못할뿐 뛰어난 선수들이다. 또한 FIFA가 한 차례 국가대표 룰을 변경하며 본국에서 친선 A매치만 뛰었다면 한 차례에 한해 타국 대표팀으로의 이적이 가능해지면서[67] 귀화선수들은 더 자주 보이게 되었다.

첫 번째 케이스는 정치적 분쟁으로 인한 망명 및 이주로 귀화하는 경우다. 주로 아프리카에서 스위스, 오스트리아, 덴마크 등 중립국, 난민에 적극적인 국가로 귀화하는 경우며, 이에 해당하는 선수들의 대부분은 사실상 그냥 그 나라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할 수준으로 어릴때부터 귀화하는 국가로 온다. 또 90년대 한창 분쟁이 많았던 발칸 반도발 난민들의 후손들도 유럽 여러 국가대표에 존재한다. 이들은 아프리카계 귀화선수들과는 달리 자신의 뿌리에 대한 정체성이 강한 편이며 이로 인해 귀화한 국가대표로 뛰면서도 자주 자신의 뿌리에 대해 언급하고, 심지어는 몬테네그로, 코소보 같은 신생 독립국이 생기면 그 국가로 국적을 스위치하는 경우도 왕왕 볼 수가 있다. 특히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이 과거 자신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 세네갈 같은 아프리카 프랑코포니 출신 이민자들과 그들의 자손들을 활발하게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두 번째 케이스는 선조의 뿌리를 찾아가는 케이스. 이탈리아가 가장 대표적이다. 이탈리아는 조부모의 혈통에 따라 국적을 부여하는 국적법이 있다. 아르헨티나, 브라질, 우루과이 등에는 선조가 이탈리아인인 연유로 이탈리아 이중국적으로 가진 선수들이 많다. 그 예전의 라이문도 오르시, 루이스 몬티부터 해서 이 계보는 생각보다 오래되었다. 비슷한 예시로는 그리스가 있다. 폴란드 또한 이런 귀화선수가 한때 많았다. 단 이들은 귀화한 뒤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부작용을 겪기도 한다.

마지막 케이스는 상술했던 리그 최고 외국인선수들의 귀화. 브라질 선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케이스다. 세계에서 가장 선수풀이 넓다고 하는 브라질이기 때문에 브라질 국가대표 경쟁 또한 압도적으로 치열하며 웬만한 커리어를 쌓아서는 주목해주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가 데쿠. 브라질 리그 최고의 공미로 손꼽혔으나 당대의 경쟁자들이 히바우도, 호나우지뉴였기에 유럽 진출을 해도 이들과의 경쟁은 버거웠고 결국 FC 포르투소속으로 뛰면서 포르투갈로 귀화하여 포르투갈의 40년만의 월드컵 4강진출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

귀화선수가 정말 너무나 많은 지역이라 국가별로 주요 선수들만 나열한다.

7.1. 귀화선수 목록

7.1.1. 독일

7.1.2. 프랑스

7.1.3. 이탈리아

7.1.4. 스페인

7.1.5. 잉글랜드

7.1.6. 네덜란드

7.1.7. 포르투갈

7.1.8. 벨기에

7.1.9. 스위스

7.1.10. 러시아

7.1.11. 크로아티아

7.1.12. 스웨덴

7.1.13. 오스트리아

7.1.14. 덴마크

7.1.15. 알바니아

7.1.16. 그리스

7.1.17.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7.1.18. 폴란드

7.1.19. 벨라루스

7.1.20. 세르비아

7.1.21. 코소보

7.1.22. 튀르키예

8. 아프리카 지역

8.1. 귀화 선수 목록

8.1.1. 가나

8.1.2. 가봉

8.1.3. 기니

8.1.4. 세네갈

8.1.5. 기니비사우

8.1.6. 중앙아프리카공화국

8.1.7. 코트디부아르

8.1.8. 나이지리아

8.1.9. 콩고민주공화국

8.1.10. 카메룬

9. 오세아니아 지역

9.1. 귀화 선수 목록

10. 남아메리카, 북아메리카 지역

브라질, 아르헨티나 두 강호들의 인맥 풀은 정말 어마어마한 수준이라, 남미에서는 귀화한 대표팀 선수를 찾아보기 정말 쉽지 않다. 반대로 다른 나라로 귀화해 활약하는 선수들은 정말 많다. 그렇기 때문에 타국으로 귀화한 선수, 타국에서 귀화한 선수 두 경우를 모두 기재한다. 미국으로 귀화한 축구선수 목록은 위키피디아의 미국으로 귀화한 남자 축구 선수 목록를 참고하면 된다.

10.1. 브라질에서 타국으로 귀화한 선수들

10.1.1. 브라질에서 대표선수로 선발되지 못한 선수들

10.1.2. 브라질에서 대표선수로 발탁된 경력의 선수들

11. 기타 사례



[1] 당시 거스 히딩크 대표팀 감독이 대놓고 귀화선수를 원하지 않는다는 인터뷰로 일축했다. 언어 문제로 피치 위에서의 소통이 힘들어서 전술을 정상적으로 수행하지 못할 위험을 크게 봤기 때문. [2] 여기에 귀화 선수의 경우 한 명을 귀화시키는 데에 드는 비용이 지나치게 높게 발생하는 터라 그 돈이면 차라리 국내 선수 육성에 투자를 하는 것이 더 이득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 귀화로 넘어올 법한 외국인 선수의 기량은 국내 선수와 크게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데, 실력 대비 연비가 너무 구린 탓에 귀화 선수를 쓰지 않는 쪽으로 가게 되는 것. [3] 타지키스탄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소화 [4] 러시아 대표팀으로 A매치 2경기 소화 [5] K리그 등록명을 이성남으로 지었으나, 주민등록은 귀화전 본인의 이름인 데니스를 그대로 사용했다. [6] 크로아티아 올림픽 대표팀 경력이 있다. [7] 대한민국에 살던 화교로 중학교 1학년때 한국인으로 귀화 [8] 중국 이름의 한자를 그대로 음차. [9] 조선족 출신의 재중교포, 중국에선 중국 2부리그 난징 팀에서 뛴 경력이 있다. 팀이 해체된 후 한국으로 건너와 명지대 축구부에 입학한 뒤 드래프트를 통해 수원 삼성에 입단. [10] 2군리그만 뛰고 1년만에 방출 [11] 2003년 11월 1일 타계 [12] 일본계 선수 [13] 일본 축구 최초의 외국인 선수로 기록되었으며, 브라질에서 일본회사인 얀마에 근무하면서 선반공으로 근무하여 그 인연을 통해 JSL 얀마 팀[335]에 입단했다. [14] 일본계 선수(오키나와 혈통) [15] 1986 멕시코 월드컵 최종예선 대한민국과의 홈앤 어웨이 2경기에 출전했다. [16] 1977년부터 일본무대에서 뛰었다. J리그 전신 JSL에서는 210경기 69골 기록. [17] 골키퍼이며 1986년부터 일본무대에서 뛰었다. JSL에서는 48경기 출장 [18] 그리고 도하의 비극(일본)를 현장에서 목격했다. [19] 선수 은퇴 후 귀화하여 일본에서 지도자 생활중. [20] 귀화명 마쓰다 카즈야 [21] 감바 오사카의 창단멤버다. [22] J리그 참가 전 교토 상가에서 1시즌 활약 [23] 최근까지 교토 상가의 코치를 역임했다. [24] 이 사람의 아버지다. [25] 1993년 우라와 레즈에서 2군리그 7경기 출전 후 은퇴. [26] 1987년부터 일본무대에서 뛰었다. JSL에서는 69경기 16골. [27] 볼리비아 U-16 대표로 1985년 FIFA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여 3경기 뛴 경력이 있다. [28] 1989년부터 일본무대에서 뛰었으며, JSL에서는 50경기 출장. [29] 1992년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와의 B매치에 1경기 출장 [30]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예선에서는 주전으로 뛰었다. [31] 한국명 강일성 [32] 후에 K리그 포항 스틸러스로 아시아 쿼터로써 뛰게 된다. [33] 한국명 이충성 [34] 대한민국 U-19 대표팀에도 소집된적 있으나, 소집 후 일본으로의 귀화를 결정한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35] 디도 하프나의 아들 [36]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전성기를 보냄 [37] 뉴질랜드 대표로 A매치 3경기 출전 [38] 세르히오 아리엘 에스쿠데로의 아들 [39] 정확히는 아르헨티나, 스페인, 일본 3중국적 [40] 이후 2008년 올림픽에 일본대표로 출전한다. [41] U-23 5경기 1골 [42] 중국인 어머니를 두었다. [43] 노르웨이 국적 회복 [44] 노르웨이 16,17,18세 대표팀 출신 [45] 중국인 어머니를 두었다. [46] 가봉으로 A매치 3경기 [47] 가봉 올림픽 대표로 2012 올림픽 출전 [48] 중국계 어머니를 두었다. [49] 잉글랜드 17,18,19세 대표팀 출신 [50] 중국 혈통과 무관한 최초의 귀화 축구선수 [51] 포르투갈 16~21세 대표팀 출신 [52] 중국 혈통이 없는 최초의 중국 국가대표 선수 [53] 중국계 할아버지를 두었다. [54] 잉글랜드 17,19,21세 대표팀 출신 [55] 코로나 19 시국 때문에 중국에서 브라질로 몇 개월간 가있었고 이것 때문에 연속거주기간이 깨지게 되어 귀화가 반려되었다 [56] 중국계 할아버지를 두었다. [57] 페루 국적 회복 [58] 페루 17, 20세 대표팀 출신 [59] 중국계 혈통의 페루 선수. [60] 페루 국적 회복 [61] 모스크바 태생에 아버지가 베트남인 [62] 귀화전 이름은 삼손 카요데 [63] 순수 한국인인데, 생계 문제로 싱가포르에 건너간 뒤 두 번이나 귀화 시험을 불합격하고 삼수만에야 성공했다고 한다. [64] 과거 베르더 브레멘 임대시절 이동국의 가장 큰 경쟁상대였다. [65] 카타르는 인구 300만이 안되는 작은 나라이기도 하지만 이 인구들 중에서도 90% 이상의 비율을 외국인이 차지하고 있다. 즉 순수 카타르인의 비율이 너무 낮아서 귀화 정책을 고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66] 물론 잉글랜드,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의 축구 강대국에는 상대적으로 귀화 선수가 적긴 하다. 물론 없는건 아니다. [67] 물론 이적하는 나라는 본인의 혈통이나 거주요건을 만족하는 국가여야 한다. [68] 분데스리가 슈투트가르트에서 10년 가까이 활동하면서 독일 국적을 취득. [69] K리그 전북 현대에서도 뛴 적이 있다. [70] 1990년대 독일로 이주해서 시민권 획득. [71] 2001년 독일 국적 취득. [72] 그가 4살 때인 1977년 이주해왔다. [프랑스] [74] 그가 1살때 프랑스로 이주. [프랑스] [76] 킨샤샤 태생이며, 동생도 축구선수인데 동생은 콩고민주공화국 대표팀을 선택했다. [프랑스] [78] 아버지가 자이르, 어머니가 앙골라 사람이며 앙골라 내전 중에 올라탄 피난선이 공해상을 지날 때 태어났다. 즉 어느 나라에도 소속되지 않은 바다 위에서 태어난거라 출생지가 그냥 바다 위인 특이한 케이스. 프랑스에 거주하면서 20살 되던 2004년에 정식으로 프랑스 국적을 발급받았다. [프랑스] [80] 엄밀히 말해 국적법상 모두 프랑스 국적이다. 단 축구의 세계에서는 이 두 지역은 따로 대표팀이 구성되어있다. 프랑스령 기아나 태생으로 프랑스 대표팀에서 월드컵 준우승까지 경험한 뒤 말년에는 프랑스령 기아나 대표팀으로 5경기를 소화했다. 프랑스령 기아나는 CONCACAF에 속해있기 때문에 2017 골드컵 본선에서 온두라스와의 조별리그에 출전까지 했고 이후 FIFA의 유권해석에 의해 이 기록은 말소되었다. 하지만 친선전 4경기는 A매치 기록으로 남아있다. [프랑스] [프랑스령기아나] [프랑스] [84] 8살에 마르세유로 이주. [프랑스] [86] 이중국적자 룰이 정교해지기 전이라 두 국적으로 모두 월드컵 본선무대를 밟았다. 심지어 두번 다 결승을 갔다!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89] 루이스 몬티 이전에 이탈리아에 진출해 먼저 국적을 바꿨다. [90] 그리고 말년에 아르헨티나 대표로 한번 더 바꿨다!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94] AS로마에서 8년동안 활약하며 국적취득 [우루과이] [이탈리아] [97] 기지아와 같은시기 선수로 AC밀란에서 활약하며 국적취득 [우루과이] [이탈리아] [100] 이탈리아계 선조를 두었기 때문에 국적 회복의 개념으로 취득했다. [101] 이탈리아계는 아니지만 세리에 A에서 활동하며 이탈리아 국적 취득 [102] 2006년 월드컵을 준비하던 미국 대표팀에 소집되었으나 선발되지 못했고, 이후 21세 이하 대표팀과 올림픽에 이탈리아 대표로 참가하면서 이탈리아 국적을 택했다. [103] 조부모의 혈통을 통해 2009년 이탈리아 국적을 취득했다. [104] 이탈리아계 조부모를 두어 세리에 A 두시즌 만에 이탈리아 국적 발급. [105] 역시 조부모의 이탈리아 혈통으로 곧바로 국적취득 [106] 역시 조부모 혈통이 인정되어 국적 발급. [107] 헝가리 반정부 시위 이후 본인이 활약하던 레알 마드리드의 스페인으로 망명. [헝가리] [스페인] [110] 레알 마드리드에서 오래 활약 [우루과이] [스페인] [113] 거의 유래가 없는 3개국 대표팀 경력이다.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스페인] [브라질] [스페인] [119] 11년간 비야레알에서 핵심으로 활동. [스페인] [121] 슬로바키아계 아버지와 헝가리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체코슬로바키아와 헝가리 이중국적자였고, 이후 FC 바르셀로나에서 활약하며 스페인으로 귀화한다.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스페인] [125] 12살 때 런던으로 이주. [126] 5살때 영국으로 이주 [127] 12살부터 네덜란드에서 살았고 이후 2008년 귀화 [128] 부모의 국적인 콩고민주공화국, 태어난 곳 스위스 대신 이주해서 자란 네덜란드를 선택해 유소년 국가대표부터 네덜란드 대표로 뛰었다. [129] 3살 때 네덜란드로 이주. [130] 수리남 파라마리보 태생. [포르투갈] [132] 3살 때 포르투갈로 이주했다. [포르투갈] [134] 어렸을 때 포르투갈로 이주. [포르투갈] [136] 스포르팅 CP에서 그야말로 리그를 폭격하는 활약을 보이면서 2009년 국적 취득과 동시에 파울레타 이후 중앙공격수 부재에 시달리던 포르투갈 대표팀에 선발되었다. [포르투갈] [138] 14세 이후 포르투갈로 건너가 2006년 귀화 [포르투갈] [140] 캐나다 태생으로, 2006년 아버지의 나라 포르투갈로 국적을 바꿨다. [포르투갈] [142] 브라질 리그에서 정평이 난 공격형 미드필더였는데 그 당시 브라질 국대에는 히바우두, 호나우지뉴가 있던 시기라 리옹의 주니뉴도 후보였던 시절이다.... 그가 브라질 국대에 뽑힐 가망성이 거의 없던 상황. [143] FC 포르투 소속이던 2003년 귀화했다. [포르투갈] [145] 5살 때 포르투갈로 이주. [포르투갈] [147] 2021년 3월 포르투갈 국적 취득 [포르투갈] [149] 어렸을 때 가족이 전부 벨기에로 이주. 이주 후 동생인 에밀 음펜자가 벨기에서 태어났다. [150] 원 국적은 벨기에. 부모의 혈통인 모로코를 택했으나 다시 벨기에 대표팀으로 환원 [모로코] [벨기에] [153] 1993년 벨기에로 이주. [154] 현 콩고민주공화국 [155] 2003년 스위스로 이주 후 2014년에 국적 취득 [스위스] [157] 역시 카메룬 야운데 태생으로 스위스로 이주. [스위스] [159] 카메룬 두알라 태생으로 스위스로 이주함. [스위스] [161] 태어난지 17개월만에 스위스로 이주 [스위스] [163] 5살 때 스위스로 이주 [스위스] [165] 현 코소보 질리안 [166] 현재는 코소보 대표팀 이적도 가능하다. [스위스] [168] 현 코소보 미트로비차 [169] 코소보 대표팀 선택도 가능하다. [스위스] [171] 현 북마케도니아 고스티바르 [172] 13살 때 스위스로 이주. [스위스] [174] 7살 때 스위스로 이주. [스위스] [176] 내전을 피해 스위스로 이주. [스위스] [178] 스위스로 입양되면서 자연스레 스위스로 국적 변경 [스위스] [브라질] [러시아] [182] 8강 크로아티아전에서 연장 막판 동점골을 넣은 주인공 [183] 현 우크라이나 드니프로페트로우시크 태생인데 독일계다. 분데스리가 진출 후 독일 국적을 취득하며 독일 대표팀에 선발되었는데 친선경기 2경기만 뛰고 다시 본래 정체성인 러시아로 국가대표 변경. [독일] [러시아] [러시아] [187] 크로아티아 리그에서 5년 활약 뒤 크로아티아로 귀화 [크로아티아] [189] 역시 크로아티아 리그에서 5년 활약 뒤 귀화했으며 아주 어릴때 귀화하여 21세 이하 대표팀도 크로아티아에서 지냈다. [크로아티아] [191] 보스니아 내전 당시 스웨덴으로 이주 [스웨덴] [193] 태어나고 나서 몇주 후 바로 스웨덴 이주 [스웨덴] [195] 청소년 대표는 터키대표팀을 택했었다. [196] 부모의 나라 세르비아에서 청소년 대표로 잠깐 활동했다가 스웨덴 국대로 국적을 바꿨다. [스웨덴] [198] 2살 때 스웨덴으로 이주. [스웨덴] [200] 현 코소보 프리슈티나 [스웨덴] [202] 14살 때 오스트리아로 이주 [203] 현 세르비아 로즈니카 [204] 1997년 오스트리아로 이주 [205] 1996년 귀화했다. [206] 태어나자마자 덴마크로 이주했는데, 이 때문에 FIFA에서 덴마크 국가대표 자격을 인정해주지 않고 18세 이후 5년간 거주하는 일반 귀화요건으로 귀화할 것을 요구했다가, 덴마크 협회에서 이의제기를 한 것이 받아들여지면서 덴마크 국가대표로 즉시 선발되었다. [덴마크] [208] 3살 때 덴마크로 이주. [덴마크] [210] 스웨덴 대표로 올림픽에 나온 뒤 1년 후 알바니아 대표로 A매치 데뷔 [알바니아] [212] 스위스 태생으로 올림픽도 스위스 국적으로 나왔으나, 이후 부모의 국적인 알바니아로 2013년 귀화해 알바니아 대표팀으로 활약. [알바니아] [214] 2011년 그리스 시민권을 발급받았다. [그리스] [216] 2살때 아테네로 가족이 이주함. [그리스] [그리스] [219] 2007년 FIFA U-20 월드컵 캐나다 대회에서 캐나다 팀 주전으로 뛰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221] 2013년 부모님 혈통의 보스니아로 귀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223] 청소년 대표는 크로아티아에서 활동.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스위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227] 출생은 보스니아, 오스트리아에서 성장하여 프로생활도 오스트리아에서 시작했고 청소년 대표도 오스트리아에서 지냈으나 2013년 9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로 국적변경.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229] 할아버지의 국적 폴란드로 귀화 [폴란드] [231] 2011년 폴란드 국적 취득 [폴란드] [233] 독일 청소년 대표로 프리츠 발터 메달을 받기도 한 유망주였으나 성인대표에 들지 못한채 부모의 국적인 폴란드로 귀화 [폴란드] [235] 특별 귀화 형태로 신속하게 귀화했다. 폴란드 거주 3년만. [폴란드] [237] 폴란드 리그에서 활약하던 중 대표팀 전력 강화를 위해 특별귀화. [238] 벨라루스 리그에서 6년간 활약하며 국적 취득 [벨라루스] [240] 현재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지역 [241] 1999년부터 미국 솔트레이크로 이주. 미국 청소년 대표팀으로 FIFA U-17 선수권 대회도 출전했다. [242] 2008년 성인이 되면서 세르비아 국적을 선택 [세르비아] [244] 스위스 태생으로 부모의 국적인 세르비아로 귀화. [세르비아] [246] 지금의 코소보 질라니 [247] 8살 때 스위스로 이주. [248] 코소보 FIFA 가입 후 제일 먼저 코소보 국적 취득한 선수. [스위스] [코소보] [251] 귀화 후 메멧 아우렐리오로 개명 [252] 튀르키예 리그에서 7년간 활약 [튀르키예] [254] 북키프로스인인 어머니를 따라 튀르키예 국적을 취득. [255] 북키프로스인은 튀르키예 국적 신청시 즉시 발급된다. [튀르키예] [257] 아버지가 가나 국가대표 출신 아베디 펠레이며, 아버지를 따라 가나 국적을 취득. [가나] [259] 아버지가 가나 국가대표 출신 아베디 펠레이며, 아버지를 따라 가나 국적을 취득. [가나] [261] 아버지가 가봉 국가대표 출신 피에르 프랑수아 오바메양이며, 프랑스 태생으로 프랑스 청소년 국가대표로 뛴 경력도 있다. [가봉] [263] 기니인인 부모의 국적을 따라 기니 국적 취득. [기니] [265] 기니인인 부모의 국적을 따라 기니 국적 취득. [기니] [267] 기니인인 부모의 국적을 따라 기니 국적 취득. [기니] [269] 세네갈인인 부모의 국적을 따라 세네갈 국적 취득. [세네갈] [271] 세네갈인인 부모의 국적을 따라 세네갈 국적 취득. [세네갈] [273] 기니비사우에서 포르투갈로 6살때 이주했다가 재혼한 아버지를 따라 덴마크에 가서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프로데뷔도 덴마크, 덴마크 국적도 취득하여 덴마크인으로 올림픽에 출전했으나, 이후 기니비사우로 다시 국적을 바꾸어 A매치 소화중 [기니비사우] [275] 프랑스 태생으로 프로생활도 프랑스에서 시작했고 청소년 대표도 프랑스에서 지냈으나 2018년 8월 중앙아프리카공화국으로 국적변경. [프랑스] [중앙아프리카공화국] [278] 4살 때 잉글랜드로 이주. [279] 프로생활, 청소년 대표 모두 잉글랜드에서 지냈고 잉글랜드에서도 A매치 2경기를 뛰었으나 2016년 11월 원래 국적인 코트디부아르로 환원. [잉글랜드] [코트디부아르] [282] 코트디부아르인인 어머니의 국적을 따라 코트디부아르 국적 취득. [코트디부아르] [284] 코트디부아르인인 부모의 국적을 따라 코트디부아르 국적 취득. [코트디부아르] [286] 나이지리아인인 부모의 국적을 따라 나이지리아 국적 취득. [나이지리아] [288] 나이지리아인인 부모의 국적을 따라 나이지리아 국적 취득. [나이지리아] [290] 나이지리아인인 부모의 국적을 따라 나이지리아 국적 취득. [나이지리아] [292] 나이지리아인인 부모의 국적을 따라 나이지리아 국적 취득. [나이지리아] [294] 나이지리아인인 아버지의 국적을 따라 나이지리아 국적 취득. [나이지리아] [296] 나이지리아인인 아버지의 국적을 따라 나이지리아 국적 취득. [나이지리아] [298] 콩고민주공화국인인 부모의 국적을 따라 콩고민주공화국 국적 취득. [콩고민주공화국] [300] 콩고민주공화국인인 부모의 국적을 따라 콩고민주공화국 국적 취득. [콩고민주공화국] [302] 카메룬인인 부모의 국적을 따라 카메룬 국적 취득. [카메룬] [304] 카메룬인인 부모의 국적을 따라 카메룬 국적 취득. [카메룬] [306] 카메룬인인 어머니의 국적을 따라 카메룬 국적 취득. [카메룬] [308] 카메룬인인 부모의 국적을 따라 카메룬 국적 취득. [카메룬] [310] 카메룬인인 부모의 국적을 따라 카메룬 국적 취득. [카메룬] [312] 카메룬인인 아버지의 국적을 따라 카메룬 국적 취득. [카메룬] [314] 덴마크 출신 새아버지를 따라 덴마크로 이주하여 국적을 취득했고, 청소년 대표도 덴마크 대표를 지냈다. 그러나 월드컵을 1년 앞둔 뉴질랜드 대표팀에 전격 합류하며 원래 국적으로 돌아갔다. [315]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데포르티보에서 400경기 가까이 뛴 레전드 [316] 셀타비고 레전드 공격수 [317] 1999년 브라질 청소년 대표로 남미 청소년 선수권에 나간 경력이 발목을 잡아 카타르 대표로써 FIFA 공식전에 나갈 수 없다는 유권해석이 내려지며 그대로 대표팀 경력은 끝났다. [318] 후에 코스타리카 대표팀 감독으로 2002, 2006 월드컵을 지휘한다. [319] 2014 FIFA 월드컵 대비 명단에 소집은 되었으나 최종 명단에 들지는 못했다. [브라질] [러시아] [브라질] [323] 1958 월드컵 [이탈리아] [325] 1962 월드컵 [브라질] [327] 골드컵 [이탈리아] [329] 2011년 한 차례 소집되었으나 경기 출전은 불발 [중국] [브라질] [중국] [브라질]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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