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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3 23:16:35

세르히오 에스쿠데로(1988)

파일:에스쿠데로 치앙마이 유나이티드.png
노스 질롱 워리어스 No.-
에스쿠데로 세루히오
エスクデロ競飛王 | Sergio Escudero
<colbgcolor=#1F1D1E> 본명 세르히오 아리엘 에스쿠데로
Sergio Ariel Escudero
K리그 등록명 에스쿠데로
출생 1988년 9월 1일 ([age(1988-09-01)]세)
스페인 그라나다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1] |
[[아르헨티나|]][[틀:국기|]][[틀:국기|]] |
[[스페인|]][[틀:국기|]][[틀:국기|]]
신체 169cm, 체중 75kg
포지션 윙어, 세컨드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소속 유스 CA 벨레스 사르스필드 (1996~2000)
가시와 레이솔 (2001~2002)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2004~2005)
선수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2005~2012)
FC 서울 (2012 / 임대)
FC 서울 (2013~2014)
장쑤 슌톈 (2015)
교토 상가 FC (2016~2019)
울산 현대 (2018 / 임대)
도치기 SC (2020~2021)
치앙마이 유나이티드 FC (2021~2022)
CD 아틀레티코 마르테 (2022~2023)
반율레 시티 FC (2023)
노스 질롱 워리어스 (2024~ )
국가대표 파일: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엠블럼.svg 5경기 1골 ( 일본 U-23 / 2008)

1. 개요2. 클럽 경력3. 플레이 스타일4. 여담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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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페인 출신의 일본 국적 축구선수. 호주의 노스 질롱 워리어스 소속이다.

2. 클럽 경력

2.1.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파일:external/www3.pictures.zimbio.com/Urawa+Red+Diamonds+v+Tokyo+F+C+J+League+AxqBQXUvVITx.jpg

스페인 그라나다 태생이지만 아버지가 J리그로 적을 옮기면서 3~8세 때까지 일본에서 자랐다. 잠시 아르헨티나에 거주하며 축구를 배우기 시작했고 13살 때 아버지가 가시와 레이솔의 코치를 맡게 되면서 다시 일본으로 이주했다. 일본에 완전히 정착한 후에는 가시와 레이솔과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의 유소년 팀을 거친 후 2005년 우라와 소속으로 16세 8개월 21일이라는 어린 나이에 J리그 데뷔전을 가졌다.[2] 이후 꽤 실력 있는 유망주로 인정받은 에스쿠데로는 2007년 7월 아버지, 삼촌과 함께 일본 귀화를 선택했고, 2008년 리 타다나리[3]에 이어 귀화 선수로는 2번째로 올림픽 대표팀에 선발, 5경기 1골을 기록했다.[4] 그러나 점차 몸이 불어나는 모습을 보이는 등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으며 오랫동안 벤치에 머무르다 12시즌 FC 서울로 6개월간 단기 임대되어 한국 땅을 밟게 된다. 우라와에선 05~12시즌까지 93경기에 나와 11골을 기록했다.

2.2. FC 서울

파일:external/www3.pictures.zimbio.com/Sergio+Escudero+Vegalta+Sendai+v+FC+Seoul+ZO7FGC3L7_4l.jpg

처음 에스쿠데로가 영입되었을 때는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남미 마약상 닮은 이아니스 지쿠보다 둔중해보이는 외모에 일본에서의 활약상도 변변치 않은 무명 선수를 왜 영입했냐는 의견도 나올 정도였으나, 데뷔전에서 이 우려는 깔끔하게 불식되었다. 후반전에 교체로 투입된 에스쿠데로는 저돌적인 돌파로 깊은 인상을 남겼고 데뷔골까지 기록했다.

기존 데몰리션 듀오[5] 체제에서 서울은 데얀이 뛰어난 2선 플레이로 상대 수비수를 끌어내고 몰리나가 빈 공간에 침투하는 식으로 쏠쏠한 재미를 보았다. 하지만 최태욱의 부상과 박희도, 김태환의 부진으로 상대적으로 오른쪽 라인이 부실해지는 바람에 공격에 단조로운 면이 있었고 이 점을 집중적으로 노린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게 여러차례 고배를 마셔야 했다.[6] 그러나 에스쿠데로는 부족했던 측면에서의 적극성과 파괴력을 보충해주었다.

2선 플레이로 공간을 창출하는 데얀, 그 틈을 파고드는 몰리나, 중앙과 측면을 쉬지 않고 오가며 상대 수비진을 최대한 흔들어 놓는 에스쿠데로의 조합[7]은 풀백들의 적극적인 오버래핑, 하대성, 고명진의 후방 지원과 합쳐져 막강한 시너지 효과를 내었다. 에스쿠데로의 영입으로 훨씬 막강해진 서울은 우승을 차지하면서 에스쿠데로는 12시즌 최고의 알짜 영입 중 하나로 평가받았고, 그 공로를 높이 산 서울은 시즌 종료 후 에스쿠데로를 완전 영입함과 동시에 3년 재계약을 체결했다.

2013년에는 새로 윤일록이 영입되어 우측 측면을 맡게 되자 데얀과 짝을 이뤄 중앙 공격수로도 출전하고 있다. 13시즌 중반 한동안 공격 포인트를 쌓지 못했는데 팀에 대한 애정이 강해 마음고생이 심했던 듯하다. 부산과의 FA컵 8강전에서 1-2로 패하자 울음을 터뜨렸고 8월 15일 대전전에서 데얀의 침투패스를 넘어지면서 몰리나에게 이어줬고 몰리나가 침착하게 성공시켜 오랜만에 어시스트를 기록하자 왈칵 눈물을 쏟으며 몰리나에게 감사를 표했다. 한동안 골 소식이 없다가 아챔 결승전에서 선제골을 넣는 사고를 쳤다. 게다가 데얀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하는 등 갑자기 터진 활약을 보여주며 오랜만에 에쿠스 모드로 돌아왔다. 그러나 팀은 2차전에서 광저우의 벽을 넘지 못해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14년에는 떠난 데얀을 대신해 최전방 공격수로 팀의 공격을 이끄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러나 원래 개인기나 결정력이 좋은 선수는 아니었던지라 리그 최고의 골잡이었던 데얀의 공백을 메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시즌 중반이 되도록 윙어 윤일록(5골)보다 적은 4골에 그쳐 서울의 부진에 한몫하고 있다. 월드컵 브레이크 이후 서울의 쓰리백이 정비되고 상승세에 있음에도 부족한 골 결정력은 전술만으론 해결할 방법이 없어 상위 스플릿 도약을 막는 가장 큰 아킬레스건으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2015년 2월 25일 장쑤 슌톈으로 이적하였고, 이후 본인이 작별 인사를 남기며 K리그를 떠나게 되었다. 서울에서의 리그 통산 기록은 86경기 14골 14도움.

2.3. 장쑤 슌톈

파일:external/pbs.twimg.com/CAD-In9W8AASAAt.jpg

장쑤에서는 리그에서 29경기 6골을 기록하는 등 서울에서 뛰던 시절과 비교해봐도 크게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특히 항저우 뤼청과의 경기에서는 보고도 믿기 어려운 그림같은 오버헤드 킥까지 넣기도 했다.

2.4. 교토 상가 FC

그러나 2016년 장쑤가 천문학적인 자금을 앞세워 알렉스 테세이라, , 하미레스, 트렌트 세인즈버리 등의 더 수준 높은 외국인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며 바로 방출당했고, 이후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 J2리그 교토 상가에 입단했다. 그리고 교토에서는 2016년 38경기 5골을 기록했고, 시즌 종료 후 팀과 재계약을 맺으며 2017년에도 교토에서 뛰게 되었다. #

2.5. 울산 현대

파일:에스쿠데로.jpg

2018년 여름 울산 현대가 아시아 쿼터로 그를 6개월 임대 영입했다. 계약 기간은 2018년 12월 31일까지. 이로써 3년 만에 다시 K리그에서 뛰게 되었다. 그리고 8월 22일 상주 상무와의 경기에서 선제골과 3번째 골을 넣으며 K리그 복귀골을 멀티골로 신고했다. 선제골 3번째 골 팀도 그의 활약에 힘입어 4:1로 승리. 울산 입단 이후 쭉 좋은 페이스를 보여주고 있다. 이 모습을 시즌 끝물까지 유지한다면 서울에서 뛰었을 때와 똑같이 완전 이적도 노려볼 수 있을 듯 했지만, 시즌이 끝난 뒤 원 소속팀인 교토에서 임대 만료 후 복귀했음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 최종 기록은 14경기 3골 1도움.

2.6. 도치기 SC

2020년 교토를 떠나 같은 리그의 도치기 SC로 이적했다. #

2021년 4월 22일 질서 풍기 문란행위로 방출되었다. #

2.7. 치앙마이 유나이티드

1달간의 무적 기간을 거쳐 2021년 6월 1일, 태국의 치앙마이 유나이티드 FC에 입단했다. #

3. 플레이 스타일

겉보기엔 단신에 둔중해 보이지만 탄탄한 피지컬과 상당한 스피드와 드리볼 기술을 살린 저돌적인 측면 돌파가 장기. 활동량도 많고 본인이 몸싸움을 피하지 않아서 중앙과 측면을 쉬지 않고 오가며 상대 수비진을 흔들어 놓는 플레이가 장점이다.

4. 여담

5. 관련 문서



[1] FC 서울 울산 현대에서는 아시아 쿼터제를 통해 영입했기 때문에 일본 국적으로 뛰었다. [2] 이는 당시 J리그에서 역대 두 번째로 이른 데뷔였다. [3] 재일교포로, 한국식 이름은 이충성이다. [4] 로페스 바그너, 하프나 마이크 등의 예시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은 귀화 선수나 혼혈 선수의 국가대표 발탁에 꽤 적극적인 나라다. [5] 데몰리션은 영어로 파괴라는 뜻으로, 2010년대를 풍미했던 FC 서울 역대 최강의 파괴력을 가진 공격수 조합으로 손꼽히는 데얀 다미아노비치 마우리시오 몰리나의 조합을 일컫는 표현이다. [6] 물론 말이 쉽지, 데얀-몰리나 상대로 절대 쉬운게 아니다. 시즌 내내 데몰리션에게 털리지 않은 팀은 수원 1팀 뿐이다. [7] 풀백의 오버래핑 시 중앙으로 이동해 풀백과 동선이 겹치는 것을 피하고 순간적으로 데얀과 투톱을 형성, 4-2-4 형태를 취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이럴 때 데얀이 종으로 움직인다면 에스쿠데로는 횡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8] 競(せる), 飛(ひ), 王(おう). 여기서 競만 훈독이고 나머지는 전부 음독이다. 참고로 훈독이 없는 한국식으로 읽으면 경비왕이라는 오묘한 이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