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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0 21:18:43

에마누엘 올리사데베

폴란드의 前 축구선수
파일:Emmanuel Olisadebe.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에마누엘 올리사데베
Emmanuel Olisadebe
출생 1978년 12월 22일 ([age(1978-12-22)]세)
나이지리아 델타 주 와리
국적
[[폴란드|]][[틀:국기|]][[틀:국기|]]
|
[[나이지리아|]][[틀:국기|]][[틀:국기|]]
신체 180㎝ / 체중 75㎏
직업 축구선수( 스트라이커 / 은퇴)
소속 선수 자스퍼 유나이티드(1990~1995 / 유스)
자스퍼 유나이티드(1995~1997)
폴로니아 바르샤바(1997~2001)
파나티나이코스 FC(2001~2005)
포츠머스 FC(2006)
스코다 크산티 FC(2006~2007)
APOP 키니라스(2007~2008)
허난 젠예(2008~2010)
비자스 메가론(2011~2012)
베리아 FC(2012)
국가대표 25경기 11골( 폴란드 / 2000~2004)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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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이지리아에서 태어났지만 폴란드의 러브콜을 받고 폴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최전방을 맡았던 선수로 최후방의 예지 두덱과 함께 당시 대표팀의 명실상부한 중심 인물이었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유럽 예선에서 10경기 8골을 뽑아내 폴란드가 제3공화국 최초이자 16년만에 본선에 올라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본선에서 맞붙게 된 한국에선 폴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에이스이자 경계대상 1호라는 기사를 연일 쏟아내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2001년에는 예지 두덱까지 제치고 폴란드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던 선수였지만 정작 한국전에서는 기대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며 거품 혹은 과대포장이라는 굴욕을 들어야 했는데, 별로였다는 한국전에서도 전반 10분에 위협적 기회를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마지막 미국전에서는 일찌감치 선제골을 터뜨리며 폴란드의 1승을 이끌었다.

2. 클럽 경력

1995년 나이지리아의 자스퍼 유나이티드에서 프로 데뷔했고 1997년 폴란드의 폴로니아 바르샤바로 이적해 리그 최고의 공격수로 거듭났고, 리그에서 보여준 활약으로 인해 폴란드 국적을 획득했다. 이후 그리스 명문 파나시나이코스 FC로 이적해 좋은 활약을 이어갔으나 04-05 시즌부터는 십자인대 부상의 후유증으로 폼이 급격히 떨어지며 전력 외로 분류, 포츠머스 FC 이적을 시작으로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다 2012년 은퇴했다.

3. 국가대표 경력

제이제이 오코차· 줄리어스 아가호와· 은완코 카누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공격진이 너무 막강했기이 엑스트라클라사 우승컵도 들어올렸지만 국가대표가 못되어서 시무룩했는데, 그를 유심히 지켜보던 알렉산데르 크바시니에프스키가 '폴란드 국가대표라도 상관없으면 내가 꽂아줌'이라는 떡밥을 뿌렸고, 이를 받아들여 폴란드 국적을 받고[1] 2000년부터 폴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활약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현지 시간으로 8월 16일 루마니아와의 친선경기에서 대표팀 데뷔전을 치렀으며, 그 경기 후반 79분에 대표팀 데뷔골까지 넣었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유럽 예선에서도 10경기에 8골을 박아넣으며 자신을 받아준 폴란드를 16년만의 월드컵 본선에 넣어주고 제대로 은혜를 갚았다.

당연히 본선에도 출전했지만 1·2경기에선 침묵했고 팀도 연거푸 무득점 패배. 결국 1라운드 탈락이 확정된 상태로 마지막 미국전까지 나섰는데, 시작과 동시에 골로 화풀이, 미국을 3:1로 제압해 1승이나마 챙기고 돌아갔다(최종 성적은 25위). 그 뒤로는 하향세에 접어들며 더 이상 A매치 득점을 기록하지 못했다.[2]

4. 기타


[1] 국적 취득에 걸린 시간은 단 하루였다. 폴란드 대통령이었던 알렉산데르 크바시니에프스키의 직권으로 그의 귀화에 필요한 모든 조건이 삭제 처리됐다는 레전드급 일화가 있다. [2] 2006 FIFA 월드컵 독일 출전 떡밥이 있었는데 그때는 이미 황혼기도 지나버린 뒤라 자기 입으로 출전설을 부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