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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4 14:07:31

곽윤기/선수 경력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곽윤기

1. 유년 시절2. 2007-08 시즌
2.1. 국가대표 선발전2.2. 월드컵 시리즈2.3. 2008 세계선수권
3. 2008-09 시즌
3.1. 국가대표 선발전3.2. 월드컵 시리즈3.3. 2009 세계선수권
4. 2009-10 시즌
4.1. 국가대표 선발전4.2. 월드컵 시리즈4.3.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4.4. 2010 세계선수권4.5. 담합 논란
5. 2011-12 시즌
5.1. 국가대표 선발전5.2. 월드컵 시리즈5.3. 2012 세계선수권
6. 2012-13 시즌
6.1. 월드컵 시리즈
7. 2013-14 시즌
7.1. 국가대표 선발전
8. 2014-15 시즌
8.1. 국가대표 선발전8.2. 월드컵 시리즈
9. 2015-16 시즌
9.1. 국가대표 선발전9.2. 월드컵 시리즈9.3. 2016 세계선수권
10. 2016-17 시즌
10.1. 국가대표 선발전
11. 2017-18 시즌
11.1. 국가대표 선발전11.2. 월드컵 시리즈11.3. 2018 평창 동계올림픽11.4. 2018 세계선수권
12. 2018-19 시즌
12.1. 국가대표 선발전
13. 2019-20 시즌
13.1. 국가대표 선발전
14. 2021-22 시즌
14.1. 국가대표 선발전14.2. 월드컵 시리즈14.3.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14.4. 2022 세계선수권
15. 2022-23 시즌
15.1. 국가대표 선발전
16. 2023-24 시즌
16.1. 국가대표 선발전
17. 2024-25 시즌
17.1. 국가대표 선발전

[clearfix]

1. 유년 시절

어릴 때 서울특별시 양천구 목동으로 이사한 후,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맹활약하던 김동성을 보고 취미로 시작했다. 이 시기 비염을 앓았는데, 빙상 운동이 비염에 좋다는 말에 어머니가 그를 빙판으로 이끌었다. 선수의 길에 접어든 것 역시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중학생 시절, 연습할 때는 항상 1등을 했는데, 시합만 나가면 결과가 나오지 않아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노력한다면 실력은 쌓일 것이고 실력이 쌓이면 반드시 좋은 기회와 결과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2. 2007-08 시즌

2.1. 국가대표 선발전

2007년 9월에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당시 아직 고등학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치열한 경쟁을 뚫고 5위를 기록해 국가대표 승선에 성공했다. 당시 한국 남자 쇼트트랙 선수 풍년이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곽윤기의 국대선발 성공은 상당한 선전이었다. 이 시즌이 한국 남자대표팀 최전성기로 꼽힌다. 하지만 5위를 기록했기에 세계선수권에는 출전할 수 없고 월드컵에만 참가가 가능했다.[1]

2.2. 월드컵 시리즈

곽윤기는 대표팀 마지막 순위였기 때문에 주로 500m에 참가했지만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이며 성시백에 이어 500m 세계랭킹 2위를 기록했으며 간간히 출전 기회를 부여받은 1000m와 1500m에서도 각각 13위, 29위를 기록했다. 주로 선발전에서 4위를 기록한 성시백과 콤비로 같은 종목에 출전을 했는데 둘 다 첫 국대승선이었음에도 월드컵에서 맹활약하여 세계 탑 이호석 안현수에 이어서 각각 세계랭킹 3위(성시백), 4위를 기록한다.

6차 월드컵에서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는데 이 월드컵이 열린 곳이 빠르기로 유명한 솔트레이크시티였다. 5000m 결승에 올라온 중국, 영국, 러시아 모두 당시 한국팀에게 전혀 상대가 되지 못하는 전력이었고 이를 기회 삼아 한국은 계주 세계신기록을 세우기로 계획했다. 이승훈, 성시백, 곽윤기, 이호석으로 꾸려진 팀으로 경기 시작부터 전력질주하며 세계신기록 페이스로 레이스를 진행했다. 하지만 몇 바퀴 남지 않은 상황에서 본인이 미끄러지며 한국 팀의 레이스 흐름이 끊기고 말았고, 거의 부상을 당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넘어지는 것을 발목힘으로 버텨내며 펜스에 부딪힌 후 다시 속도를 내 다음 주자에게 터치를 하였으나 결국 세계신기록을 세우는데는 실패했다.[2] 압도적인 실력차로 금메달을 따놓고도 모두 실망한 네 선수의 표정은 덤이다. 곽윤기가 시무룩하게 링크장을 빠져나오며 코치진 중 한 명에게 위로받는 모습이 나왔다.

2.3. 2008 세계선수권

그렇게 곽윤기의 첫 국가대표 시즌이 마무리되는 줄 알았으나 2008년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안현수가 태릉빙상장에서 훈련 도중 중부상을 당하며 곽윤기가 세계선수권에 출전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개인전은 출전할 수 없고 계주 준결승 멤버로 출전했으며, 결승에서 대한민국이 우승을 하며 첫 세계선수권 메달을 획득했다.

3. 2008-09 시즌

3.1. 국가대표 선발전

500m와 1000m에서 1위를 했고 덕분에 3000m 슈퍼파이널에선 7위를 기록했음에도 압도적인 점수로 당당히 1위로 국가대표선발이 되었고 동시에 자동적으로 2009 세계선수권 개인전 출전권을 따냈다.

3.2. 월드컵 시리즈

500m와 1000m에서 각각 종합랭킹 4위, 2위를 기록해 세계랭킹 5위에 오른다. 신기하게도 한국선수들이 가장 선호하는 종목이자 곽윤기 본인도 잘 타는 1500m에는 단 한번도 출전하지 않았다.[3]

3.3. 2009 세계선수권

세계선수권에서는 이호석과 종합 우승을 두고 경쟁했으며, 곽윤기도 굉장히 좋은 폼을 보였으나 이호석이 이 대회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종합우승을 했고, 곽윤기는 1500m와 500m에서 은메달을 땄음에도 3000m에서 충분한 포인트를 획득하는데 실패해 종합 3위 안에는 들지 못했다.

4. 2009-10 시즌

4.1. 국가대표 선발전

올림픽 선발전에서 4위를 기록하며[4] 올림픽 대표팀 승선에 성공했으나 계주 멤버로만 출전할 수 있게됐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전재목 코치의 지시하에 같이 대표팀 승선에 성공한 이정수, 김성일과 담합했던 것이 밝혀진다. 자세한건 '담합 논란' 항목을 참조.

4.2. 월드컵 시리즈

월드컵에서는 이정수 대신 꾸준히 500m에 출전했고 1000m에서 간간히 기회를 부여받으며, 500m에서 세계랭킹 4위를 유지했지만 1000m에서는 7위로 지난 시즌보다 하락, 세계랭킹 종합 7위를 기록했다. 3차 월드컵에서는 부상당한 이호석의 부재로 5000m 계주에서 2번 주자를 맡기도 했으며, 금메달을 따내는데 일조했다.[5]

4.3.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1500m와 1000m에서 금메달을 따내 2관왕을 하고 있던 이정수가 자신이 취약한 종목인 500m 출전권을 곽윤기에게 양보했다. 덕분에 그는 올림픽에서 개인전 출전이 가능하게 되었고 준결승까지 진출했을 때 프랑수아루이 트랑블레, 이호석, 아폴로 안톤 오노와 경기를 치렀고, 컨디션이 좋았던 이호석이 2위로 달리고 있었으나 4위에서 계속 기회를 노리던 곽윤기가 결승진출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의도였는지 무리하게 1위 트랑블레를 추월하려 시도했다가, 결국 넘어지면서 곽윤기에게 되려 더 어려운 상황을 만들어버렸다. 결국 트랑블레, 오노를 제치지 못하고 3위를 기록해 파이널 B에 진출. 파이널 B에서 1위를 기록해 500m에서 종합 4위를 기록했다.[6]

같은 날 열린 5000m 계주 결승에서는 이호석 대신[7] 두 번째 주자로 출격했다. 경기 내내 두 번째 주자로써는 걸맞지 않게 조금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고 팀원들 모두 500m 후유증 때문인지 서로 손발이 맞지 않으며 최악의 팀웍을 보였다.[8]

마지막에 한국이 극적인 은메달을 땄는데 이는 그의 원맨쇼 덕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캐나다 미국이 레이스 중후반쯤에 변칙 작전을 썼는데 이게 먹혀들어 한국이 3위로 밀려났으며 더군다나 나중에는 뒤에서 바짝 따라붙던 미국한테까지 자리를 허용해 마지막 2바퀴를 남기고 4위로 내려갔다. 급기야 선수들이 뒤엉키는 바람에 성시백이 곽윤기를 제대로 밀어주는 데 실패했다.[9]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코너 구간을 돌 때 중국의 한지아량과 미국의 아폴로 안톤 오노 사이로 파고들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4위에서 2위로 골인해 한국 팀에 은메달을 안겨주었다.

4.4. 2010 세계선수권

올림픽 이후에는 "부상"당한 올림픽 2관왕 이정수 대신 세계선수권 개인전에 출전하게 되었다. 차순위였던 김성일 대신 마지막 순위였던 곽윤기가 출전해 조금 의아해 하기도 했으나 실력이 좋은 선수이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밴쿠버 올림픽 계주 결승전에서 보여준 활약 때문에 아무도 곽윤기가 왜 개인전에 출전했는지 크게 의심하지는 않는 분위기였다.

올림픽때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던 게 한이었는지 2010년 3월에 열린 1500m에서 1위, 1000m와 3000m에서 각각 2위를 기록해 2연패를 달성한 이호석에 이은 종합 2위로 준우승을 거머쥔다. 그런데 세계선수권에 부상으로 불참을 선언했었던 이정수가 대회 도중 진짜로 부상당한 성시백 대신 출전을 하게 되어 논란이 시작되게 된다.

4.5. 담합 논란

2010 세계선수권에서 이정수가 거짓 발목 부상으로 인해 출전을 포기하였고 곽윤기가 대신 출전했다. 하지만 5000m 계주 결승에서 부상당한 성시백 대신 이정수가 출전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이정수의 가족들은 이정수가 발목 부상을 당하지 않았음에도 발목 부상을 이유로 세계선수권 개인전 종목 출전을 못했음을 알게된다. 이정수의 아버지는 당시 국가대표 대표팀의 선수를 지냈던 권수현 선수의 아버지인 권금중에게 이 사건을 알렸고 그들은 대한체육회 조사위에 대한빙상연맹에 대한 감사를 신청하기를 결정하고, 사건의 조사를 위해 200명의 사람들에게 서명을 받았다. 하지만, 대한체육회 조사위에 감사를 신청하기 위해서는 300명 이상이 필요했다. 이정수의 아버지와 권금중은 안현수의 아버지에게 팬이 많은 안현수의 팬 카페에 이 사건을 써서 공개해주길 요청한다. 안현수의 아버지 주변에서는 아들을 위해서 사건을 밝히지 마라 했으나 아버지는 공개하였고, 당시 이정수의 누나의 글 "왜 어른들의 싸움에 희생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라는 글과 함께 이 사건은 커뮤니티에 퍼져나갔고,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1 #2

대한빙상연맹은 이정수와 김성일 선수가 세계선수권에 출전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언론에 공개한다. # 그리고 선수들의 자의로 각서가 써졌다고 반박하였다. 당시 안현수의 아버지 안기원은 빙상연맹을 이끄는 두 부회장 전명규와 당시 쇼트트랙 담당 부회장이었던 유태욱이 코치와 선수들에게 압력을 행사했을 것이라 주장을 했고, 이정수는 전재목 코치가 윗선의 지시를 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당시 빙상인들 중에 일부는 선수측에서 주장하는 '윗선'의 실체를 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 같은 큰 대회에서 코치와 선수가 '선발전 순위'라는 원칙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출전 선수를 결정할 수 있었겠느냐는 설명이다. #

이정수는 동계올림픽 당시 전재목 코치가 1000m 출전권을 곽윤기에게 양보할 것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선발전에서 곽윤기가 도와주었으니 이번에는 이정수가 양보할 차례라는 논리를 내세웠고 만약 1000m를 타면 세계선수권을 포기하라는 협박성 발언까지 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김기훈 코치가 '개인전 성적대로 출전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기자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전 코치를 막아 해당 경기 출전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담합설에 대해서는 "당시 선수간 협의했던 사실이 없었다"며 강력 부인했다.

이에 대해 곽윤기는 2009년 4월에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000m 준결승을 앞두고 이정수가 전재목 코치를 찾아와 먼저 도와달라는 부탁을 했다면서 당시 전 코치가 나에게 이정수를 도와주라고 말해 (담합을)흔쾌히 수락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밴쿠버 올림픽 때 이정수가 약속을 안 지켰다면서 "솔직히 내가 올림픽 개인전 전 종목을 타게 될 줄 알았는데 정수가 올림픽 1000m를 앞두고 자신이 타겠다고 해서 좀 황당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성시백은 자신의 미니홈피에 곽윤기를 옹호하는 글과 앞에서 삐끗하는 이정수를 받쳐주는 곽윤기의 모습이 담긴 선발전 영상을 올렸다. 하지만, 당시 네티즌들은 다음과 같은 비판하기도 하였다. “곽윤기 선수가 도와줬다는 게 진실이었어도 왜 굳이 이런 동영상을 올리는 의문”입니다.“이정수 선수가 빙상연맹의 부조리에 대해 고발하려고 했지 곽윤기선수를 욕 먹이려 했는지도 분간이 안되나요”또 다른 네티즌은 “빙상협회의 비리를 밝혀내서 앞으로 이런 문제가 안 생기길 바랬는데 선수들 간의 싸움, 편가르기식으로 번지는 것이 안타깝다”고 여론은 악화되었고, # 파벌논란 및 진실게임 논란이 심화되었다. 또한 당시 성시백이 자의로 올린것이 맞냐는 주장도 제기되었으나 성시백은 이와 관련해 본인의 뜻으로 올린것이라고 해명한다. # 이로인해 성시백의 동영상 업로드는 사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 여론을 더 악화시켰다. 이 때 당시 진선유도 곽윤기를 옹호하는 영상을 올렸지만 화제가 되지 않았다. [10]

선발전 당시 이정수는 1500m, 500m에서 실격과 탈락으로 0점이었기에 국가대표팀 승선이 어려워졌다. 그로 인해 1000m 준결승에서 곽윤기는 이정수를 도와주다 3위로 들어와 결승 진출에 실패하고 이정수는 결승에 진출해 1위를 한다.

전재목 코치는 "지난해 대표선발전 1,000m 준결승을 앞두고 선발전 점수를 전혀 못 땄던 이정수가 ’도와달라’고 부탁해 곽윤기의 동의를 받았다. 종합 순위가 바뀌면 곽윤기가 올림픽 개인전에 나가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처음엔 부탁을 거절했으나, 이정수가 ‘그러면 개인종목을 곽윤기에게 양보하겠다’고 말해 부탁을 전했고, 곽윤기가 이를 승낙해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이정수의 개인코치인 송재근 코치는 "당시 윤기가 '저 너무 착하게 살았나 봐요. 전코치님이 정수 1,000m 올려주라는데 어떡하죠'라고 상의해와 마음아팠다"며 선발전 상황을 증언했다.

전 코치는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이정수가 말을 바꾸면서 약속이 틀어졌다고 말했다. "선발전 때 약속이 기억나느냐고 묻자 이정수가 ’기억나지 않는다’면서 출전을 강행했다"는 것이다. 전 코치는 "조금 뒤 이정수에게 ’그러면 곽윤기가 희생한 게 있으니 대신 세계선수권을 양보하는 게 어떠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이정수가 곽윤기와 의논한 다음 ’1,000m 양보하고 세계선수권에 나가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런 사정을 김기훈 감독에게 설명했으나 "지금은 바꿀 수 없다"고 말해 바꾸지 못했고, 대신 이정수와 곽윤기에게 "곽윤기가 세계선수권에 나가는 것으로 하자"고 말해 동의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전 코치는 그러면서 "이정수가 세계선수권대회 개인전에 출전하지 않은 것도 강압이 아니었다" 처음엔 "부모님과 학교가 걸려 나가야할 것 같다"고 주장했으나, 송재근 코치와 최재석 단국대 감독 등이 설득한 끝에 "곽윤기에게 미안하다"며 빠지겠다고 결정했다는 주장이다. "김기훈 감독이 ’그냥 바꿀 수 없으니 사유서를 받아와라’로 해 사유서 문구를 의논해 알려줬다"면서 "이정수 본인이 타지 않겠다고 해서 출전시키지 않은 것이며, ’강압’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빙상연맹은 초기에는 이정수와 김성일이 세계선수권 개인종목에 출전하지 않은 것은 두 명이 작성한 자필사유서에 의한 것이라고 반박했으나 추가 의혹들이 공개되었다. 그전해 대표선발전에서도 전 코치는 이정수와 성시백, 곽윤기, 김성일, 이승재 등을 지도했고, 짬짜미 의혹이 불거진 1,000m 준결승에서는 이승재가 처음에 선두로 달리며 다른 팀 선수의 체력을 떨어뜨리고 나서 뒤로 처지는 작전을 구사했던것이 알려지기도 했다. # 대한체육회 감사실이 빙상연맹에 대한 감사를 시작했다. 2010년 4월 8일 대한체육회가 발표한 감사 결과에 따르면 2009년 4월 국가대표선발전 3000m 슈퍼파이널 경기를 앞두고 일부 코치와 선수들은 서로 1~5위 랭킹 안에 들어갈수 있도록 협조하고 시즌 국제대회에서 모두 메달을 획득할 수 있도록 합의했다. #

그리고 그리고 성시백의 미니홈피 영상이 올라온 이후 성시백과 곽윤기 또한 담합을 했었다는 주장이 '2009 코리아 챔피언쉽 남자 3000m 수퍼파이널(2009 Korea Championship Male 3000m SuperFinal) 영상과 함께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시되었다. 그 주장에 따르면 “노란 모자가 성시백, 주황 모자가 곽윤기”라며 “당시 성시백은 포인트가 다 차서 국대가 확정된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1분 30초에 보면 시종일관 성시백이 1등을 유지하다가 천미터 포인트 지점에서 코치가 성시백에게 '뒤에 윤기가 있으니 벌리라'고 소리 질러 곽윤기가 포인트를 획득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적었다.[11] 그리고 글을 쓴 네티즌은 “애초에 초기 감사 때 처음 담합 이야기가 나온 것은 3000m 경기였다”고 주장했다. 대한빙상연맹에 대한 비난 여론은 더 나빠졌다. #

대한체육회는 감사결과 "전 코치가 곽윤기의 메달 획득을 위해 두 선수에게 불참 사유서를 작성하도록 강압적인 지시를 내렸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결론지었고 담합에 관해서는“선수들이 확실하게 인정하지 않았으나 정황으로는 담합이 분명했다"고 결론내렸다. 이로 인해 전재목 코치는 영구 제명, 김기훈 감독은 3년 자격 정지의 징계를 받았으며 송재근 코치와 최광복 코치 등 선발전 당시 경기심판위원 5명은 1년 자격 정지를 받았다. 당사자들인 이정수와 곽윤기에게는 3년 간 자격 정지 조치를 취했으나 너무 가혹한 처분이라는 여론도 있었고 자격 정지를 받은 본인들도 항의를 하여 6개월 자격 정지로 확정되었다. 하지만 6개월 정지 적용 시점이 2010년 7월이었기 때문에 같은 해 9월에 있었던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여할 수 없었으며 따라서 2011 아스타나·알마티 동계 아시안 게임 2011 세계선수권에도 출전하지 못했다.

5. 2011-12 시즌

5.1. 국가대표 선발전

자격정지 징계가 풀린 후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여하였고 1,2차에서 모두 좋은 성적을 거두며 종합 1위로 개인전 출전권과 함께 대표팀에 복귀했다.[12]

5.2. 월드컵 시리즈

한 시즌을 쉬었지만 전혀 녹슬지 않은 기량을 선보이며 1000m에서 4차례나 금메달을 따내며 본 종목에서 랭킹 1위에 올랐다. 1500m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2011 세계선수권부터 포텐을 제대로 터트리며 1500m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는 노진규에 번번이 패했다.[13] 최종 500m 14위, 1000m 1위, 1500m 3위로, 종합랭킹 2위를 달성하며 성공적으로 월드컵 시리즈를 마친다.

5.3. 2012 세계선수권

2011 세계선수권 우승으로 정상에 올랐던 한국의 신예 에이스 노진규와 그야말로 마지막까지 접전을 벌였다.( 대회 요약 영상) 모두가 예상한대로 1500m는 노진규가, 1000m는 곽윤기가 우승했고, 곽윤기가 500m에서 동메달까지 따내며 포인트에서는 앞서나갔으나, 3000m 슈퍼파이널은 체력이 좋은 선수일수록 유리하기 때문에 당시에는 노진규가 종합 우승에 더 유리하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그러나 후반까지 최대한 체력소모를 줄이고 두바퀴 남은 상황에서 노진규가 막판 스퍼트를 시작하기 전에 타이밍을 뺐어 먼저 인코스로 앞서나가며 선두를 탈환한 이후, 노진규가 아웃코스로 크게 도는 특징을 잘 파악해 노련하게 아웃코스만 견제하며 1위를 유지한 후 결국 그를 꺾고 종합 1위에 오르며 커리어 첫 세계선수권 우승을 거머쥔다.[14]

물론 부상을 당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거의 1년 동안 국제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던 점을 감안하면 굉장히 대단한 일이다.[15] 이후 몇년이 지난 후 인터뷰에서 이정수와는 친구 관계를 회복했다고 밝혔다.[16]

6. 2012-13 시즌

6.1. 월드컵 시리즈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계속해서 주가를 올려나갔고 2014 소치 동계올림픽 때는 신예 에이스 노진규와 금메달을 두고 경쟁할 거라 예상되었다. 굳이 실력으로만 말한다면 당시 국가대표 선수 중엔 최고라고 할 수 있겠다. 한 인터뷰에서는 밴쿠버 올림픽에서는 아쉬웠던 걸 모두 해소하기 위해 소치 올림픽에선 "아주 박살을 내겠다" 라고 했다.[17]

1000m에서도 최강자의 면모를 이어나갔는데 모든 1000m 경기를 우승한건 아니었으나 경기력면에서 안현수, 샤를 아믈랭, 노진규 같은 쟁쟁한 경쟁자들을 상대로 우위를 점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4차 월드컵에서는 1000m 1차와 2차 경기 모두 참가해 두번 모두 우승을 거머쥐기도 했다.

하지만 5차 월드컵에서 입은 부상으로 인해 6차 월드컵에 불참한 후 귀국해 정밀검사를 받은 결과 발목 부상이 생각보다 큰 부상임이 밝혀지고, 그 때문에 3월 세계선수권 2연패 도전은 물 건너가게 되었다. 그리고 4월에 열릴 대표 선발전을 위해 컨디션을 100%로 끌어올리기 위해 박차를 가했다.

7. 2013-14 시즌

7.1. 국가대표 선발전

부상 때문에 아직 경기력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탓인지 500m를 제외하고는 다른 종목에서 결승 진출조차 하지 못했고 총점 10점으로 종합 8위에 머물러 우려대로 대표팀 승선에 실패했다. 남자 국가대표팀의 실질적인 에이스[18]였기 때문에 곽윤기의 탈락은 엄청난 손실이었고, 실제 남자 대표팀은 곽윤기의 대표팀 승선 실패 및 부상 및 암 투병으로 결장한 노진규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면서 결국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이후 빈손으로 귀국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때는 만 29세(한국나이 30세)가 되기 때문에 또 다시 올림픽에 참가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울 것으로 추측되었는데, 이것은 대한민국은 세대 교체가 워낙 빠르게 이루어지는 것 뿐만 아니라 베테랑을 지원하기 위한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2010년 올림픽 이후 급격한 노쇠화를 보였던 이호석, 그리고 20대 중반에 은퇴한 성시백 등이 있다. 샤를 아믈랭이나 아폴로 안톤 오노만 봐도 각 국의 빙상연맹이 자국 선수를 잘 관리해 주었을 때, 그 선수들이 얼마나 롱런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다만 빅토르 안이 러시아 귀화 후 만 29세의 나이로 소치 동계올림픽에 참가해 3관왕을 해내면서 국내 쇼트트랙계에서도 선수 관리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스러운 부분이다.

만약 대한민국 쇼트트랙이 조금 더 선수들을 위한 시스템으로 개선되고, 본인도 국제대회에서 옛 기량을 되찾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올림픽에 또 출전하는 것도 가능하다. 실제로도 곽윤기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모두 출전했다.

8. 2014-15 시즌

8.1. 국가대표 선발전

27명까지 선발하는 1차 타임레이스를 21위로 간신히 통과한 후, 4월 5일과 6일 벌어진 2차 선발전에서 종합 6위를 기록하며 3차 선발전에 진출했다. 첫 날 종목인 1500m와 500m에서 전성기에 한참 못 미치는 스피드를 내며 추월조차 버거워하는 모습에 이러다 곽윤기가 2시즌 연속 탈락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으나, 둘째 날 자신의 주종목인 1000m에서 저력을 발휘하며 2위로 21점을 획득하며 3차 선발전 진출을 의미하는 슈퍼 파이널 참가에 성공하였다. 곽윤기의 몸상태가 여전히 좋지 않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다행히도 오픈 레이스에서의 관록이 빛을 발한 셈이다. 3차 선발전이 열리는 9월까지 떨어진 신체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이 당면 과제가 될 것이다. 참고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당시 같은 대표팀 멤버이자 절친인 이정수도 2차 선발에 성공했다.

9월 29일 열린 3차 선발전에서 1500m 6위, 1000m 3위, 3000m 슈퍼 파이널 3위로 3차 선발전 6위, 2차와 3차 선발전 합산 순위에서 이한빈과 동률을 이뤘다. 그러나 3차 선발전 슈퍼파이널에서 이한빈보다 높은 순위를 차지했기 때문에 최종 순위 6위로 국가대표 승선에 성공했다. 3차 선발전을 직관하러 간 팬들에 의하면 아직까지 예전 기량을 완벽히 회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제한적인 출전 기회만을 부여받게 될 월드컵에서 과연 예전 경기 감각을 완전히 되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8.2. 월드컵 시리즈

오랜만에 국제대회로 복귀한 1차 월드컵에서는 다소 부진했다. 떨어진 경기 감각에 여전히 스피드가 제대로 나지 않으며 특유의 추월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아무래도 6위로 국가대표에 선발되었기 때문에 월드컵을 500m 위주로 출전하게 될 것으로 보이는데, 과거 전성기에 돌입하기 이전에는 500m에서도 괜찮은 모습이었으나, 대표팀에서 에이스로 자리잡은 이후 500m에는 거의 출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곽윤기가 500m에 빨리 적응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2차 월드컵 500m(1)에서 동메달을 따며 오랜만에 월드컵 메달을 따냈다. 특히 이 월드컵에서 부터 스피드가 상당히 살아난 모습을 보여줬는데, 500m(1) 결승전에서는 5명 중 4레인에서 시작하여 스타트를 꼴찌로 끊었음에도 곧바로 2명을 추월하고 마지막 바퀴에서는 2위인 미구노프까지 추월에 성공하는 등[19] 500m에서 무려 3명을 추월할 정도로 스피드가 제대로 붙은 모습이었다. 5000m 계주 결승전에서도 2번 주자로 출전, 레이스 중반까지는 이따금 불안한 모습을 연출하였으나 막판 기가 막힌 인코스 추월을 성공시키며 대한민국 남자 대표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그리고 상하이 3차 월드컵에서는 500m(1)에서 금메달을 따냈다![20] 마지막 바퀴의 인코스 추월 장면에서 우다징의 강한 몸싸움 시도가 있었으나[21] 바디 밸런스를 잘 잡고 끝까지 1위로 통과하였다. 500m(2)에서도 비록 실격되기는 했지만 재차 결승에 진출하는 등 지금까지는 500m에서도 상당히 잘 해주고 있다. 1년간의 공백이 있었음에도 순식간에 500m 세계 랭킹 6위에 진입하였고[22] 월드컵을 치르며 계속해서 경기력이 회복되는 추세인지라 앞으로도 500m에서의 활약이 기대된다. 계주 결승에선 2바퀴 남은 시점에서 네덜란드와 캐나다의 터치미스로 손쉽게 우승했다.

한국에서 열린 4차 월드컵에서는 오랜만에 자신의 주종목인 1000m 출전 기회를 얻어, 예선부터 여유 있고 가벼운 모습으로 경기를 잘 풀어나갔다. 준결승에서는 이 종목 현재 최강자 중 한 명인 샤를 아믈랭을 상대로 아웃코스 추월을 성공시키며 1위로 결승에 진출했다.[23] 결승전에서 경기 도중 싱키 크네흐트의 스케이트 날에 빙판을 짚은 손이 걸려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나 두 번째로 골라인을 통과, 상당히 오랜만에 1000m에서 메달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3000m에도 출전하여 은메달을 획득, 이정수, 신다운과 함께 시상대에 섰다.

5차 월드컵에서 500m 3위를 기록하며, 현재 500m 랭킹 3위이다. 단거리 전문 선수였던 박세영의 500m 부진[24]이 이어지는 가운데 곽윤기의 500m 부활은 반가운 소식이다.

월드컵 시리즈가 끝나고 최종 세계랭킹 8위에 올랐다. 한국 선수 중에는 신다운(1위) 다음으로 랭킹이 높으며, 비록 2015 세계선수권에서 개인전을 뛸 수는 없지만 큰 부상을 겪고 1년 동안의 세계무대 공백이 있었음에도 이 정도로 폼을 회복한 걸 보면 다음 시즌이 더 기대되었다.

9. 2015-16 시즌

남자 대표팀의 희망
베테랑의 부활. 하지만 아쉬운 세계선수권 활약상

9.1. 국가대표 선발전

2차 선발전에서 좋은 성적을 냈음에도 3차에서는 부진을 하면서 대표 탈락의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노련미와 저력을 발휘해 최종 5위로 턱걸이 선발에 성공했다. 이정수도 이해가 안 될 정도로 큰 부진을 겪었는데 이쪽은 결국은 최하위로 탈락했다.[25] 30을 바라보는 나이도 무시할 수 없다는 얘기도 많았다.

곽윤기가 2016 세계선수권에서 개인전 출전권을 따내려면 3, 4위 선수들과 경쟁해서 좋은 점수를 따내야되는데, 3위인 신다운에게는 출전 이벤트 선택 권한이 있음은 물론 1500m에서는 현재 가장 강한 선수들 중 한 명이라 상당히 유리한 위치에 있다. 즉 곽윤기는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500m에 주로 출전하게 될 것으로 보이는데 성적이 어지간히 좋지 않은 다음에는 또 다시 세계선수권에 계주 멤버로만 참가하게 될 위험에 처했다. 다음 시즌에는 아시안게임이 있고 그다음 시즌에는 모든 선수들이 기다리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있기에 이번 시즌에 제대로 재기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향후 커리어에 큰 지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신다운에 대한 출장정지 징계[26]가 확정되면서 세계선수권에서 개인전을 뛰게 될 확률이 높아졌다. 4위를 기록한 박지원과, 신다운이 아웃되면서 대표팀에 합류하게 된 김준천과 세계선수권 개인전 출전권을 두고 경쟁하게 된다. 물론 종목 선택권은 박지원에게 주어졌다.

9.2. 월드컵 시리즈

9.3. 2016 세계선수권

가장 큰 경쟁자들은 싱키 크네흐트, 세묜 옐리스트라토프 그리고 샤를 아믈랭 이렇게 세 명인데, 크네흐트는 부상으로 불참이 일찌감치 확정되었고, 옐리스트라토프는 도핑 문제로 갑작스럽게 불참하게 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로써 이변이 없는 이상 이번 대회는 아믈랭과의 정면대결이 될 것으로 보였지만, 가장 메달 획득 가능성이 높았던 1500m 결승 진출에 실패, 아믈랭은 주특기 결승에서 자빠링을 시전했다. 더불어 둘 다 500m 결승에도 진출을 못한다. 1000m 준결승에서는 시징난과 우다징을 한 번에 인코스로 추월에 성공했으나 후에 왼쪽 스케이트날이 얼음에 걸리는 바람에 넘어지고만다. 결국 포인트가 부족해 종합 8위 안에도 들지 못했고 슈퍼파이널에서도 제외되었다. 이번 시즌 월드컵을 우승하며 좋은 상승세를 보였고 원래 실력적으로 검증이 된 선수였기에 팬들도 적지 않게 실망하는 분위기였다. 대한민국은 5000m 계주에서 3위를 기록하여 동메달을 따냈다.

10. 2016-17 시즌

10.1. 국가대표 선발전

3월 30일~31일에 치러진 1차 선발전에서 총 11점을 획득해 8위에 랭크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예상한대로 목동요정 서이라가 압도적인 점수 108점으로 1위에 랭크되었으며 2위인 또 다른 목동요정 박세영 (52점)과 점수차가 많이 난다. 이정수는 47점이나을 얻어 4위.

곽윤기는 2차 선발전에서는 8위 밖으로 떨어지며 3시즌 연속 선발에는 실패했다. 이 때문에 실력이 탑급인 선수가 선발전에서 고전하는게 선발전 방식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냐는 팬들도 있긴하지만 2번의 기회를 모두 살리지 못한 곽윤기의 잘못이라고 밖에는 말 할 수가 없다. 반면 지난 시즌 선발에 탈락한 이정수는 1,2차 종합 3위로 선발에 성공하였다. 그렇게 곽윤기는 다음 시즌을 바라보는 듯 했다.

2차 선발전이 끝난 지 3일 후, 쇼트트랙 선수들이 불법 도박에 연루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 선수들 중에는 2차 선발전을 통과한 8명의 선수 중 3명이 속해있다고 했다. 이 때에는 고교생 선수도 연루되었다고 하여 8명 중 유일한 고교생인 김한울만 거의 공개되다시피 되었었는데, 5월 13일 대한빙상경기연맹에서 발표한 남녀 쇼트트랙 태릉 입촌 명단을 발표, 이효빈, 김한울[30], 임용진이 제외되었고, 곽윤기, 서현고 홍경환, 화성시청의 임경원이 교체 선발되었다!

3차에서 6위, 최종 순위 8위를 기록해 대표팀 최종 선발에 실패했다. 이로써 세계선수권 종합우승을 노려 다음 시즌에 자동 선발되는 기회는 물건너 가버렸고, 자신의 첫 아시안게임 출전도 또다시 무산되었다. 곽윤기의 나이를 감안해 현재 커리어 끝자락에 와있는 만큼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걸린 다음 선발전을 탈락한다면 바로 은퇴하게 될 확률이 상당히 높다. 쇼트트랙 커뮤니티에서도 국내 대회나 선발전에는 운이 따라주지 않는다며 대부분 안타까워 하는 반응을 보였다.

11. 2017-18 시즌

11.1. 국가대표 선발전

1차, 2차 점수 합산 최종 4위를 기록해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하지만 서이라 2017 세계선수권 종합 우승으로 자동 선발됨에 따라 2위까지만 개인전 출전자격이 주어짐으로 계주에만 참가 가능하다. 하지만 계주에서도 강한 면모를 보여주는 선수이기에 지난 시즌 극도의 부진을 보이던 한국 남자 계주팀의 경쟁력을 끌어올려줄 것으로 보인다.

11.2. 월드컵 시리즈

계주 멤버이기 때문에 별다른 활약은 없었고 계주에서조차 1, 2차 월드컵에서 한국이 각각 결승과 준결승에서 넘어지는 불운이 잇따랐다. 2차에서는 부상당한 임효준 대신 1500m 종목에 출전했지만 준결승에서 3위를 받고 떨어졌다. 그래도 파이널 B에서는 멋진 아웃코스 추월을 선보이며 1위로 골인했다.

3차에서는 1000m 종목에 박세영, 황대헌과 함께 출전했는데 혼자 결승에 진출하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결승에서 아웃코스 추월 중 리우 샤오앙과 충돌하며 레이스에서 이탈되어 마지막 순위를 기록했으며 실격 판정을 받았다.

계주 준결승에서는 두 번째 주자로 출전해 결승 진출에 기여했으며, 특히 마지막 코너를 돌며 한톈위를 인코스로 앞지른 후 날 내밀기로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하는 장면이 인상적. 계주 결승에서는 두 번째가 아닌 네 번째 주자로 출전했는데, 그 답지 않게 부진하는 모습을 보이며 박세영 김도겸이 벌여놓은 거리를 계속해서 추격하던 미국에게 따라잡히는 장면이 계속 나왔다. 금메달을 놓치게 된 결정적인 이유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나 계주에서 해결사 노릇을 맡아왔던 곽윤기라 아쉬움을 남겼다.[31]

4차 월드컵에는 500m에 출전해 파이널B에서 1위를 차지했다. 계주 결승에서 노련함과 자신의 강점인 순간 스피드를 제대로 뽐내며 남자 대표팀이 오랜만에 계주 금메달을 따내는데 큰 기여를 했다.[32]

11.3. 2018 평창 동계올림픽

5000m 계주에 출전하여 준결승전에서 쉽게 1위를 내주지 않는 헝가리 선수를 상대로 급격히 페이스를 올려 격차를 크게 줄였다. 또한 황대헌과 터치하면서 황대헌이 역전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 곽윤기의 노련함이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1위로 들어오면서 올림픽 신기록을 세웠다.

결승전에서 팀의 2번 주자를 맡았으며 경기 중후반에 임효준이 빙판에 걸려 넘어지는 치명타로 아쉬운 도전을 마쳤다. 이로인해 1차 월드컵부터 연습 중이던 마네킹 세레머니는 안타깝게도 무산되었다. 경기 종료 후 임효준을 서이라와 함께 위로해 주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11.4. 2018 세계선수권

5000m 계주 준결승에서 2번 주자로 나와 계주 결승진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결승에서는 3번주자로 출전해 결정적인 추월들을 해내면서 팀의 금메달에 일등공신이 되었다. 방정윤기에 취해 잠시 그의 실력과 기술을 잊고 있던 국민들이 다시 "역시 곽윤기"라는 말을 하게 해준 경기였다.[33]

특히 사뮈엘 지라르를 아웃으로 제치는 척하다 인코스로 추월하며 견제를 속수무책으로 만드는 움직임은 왜 곽윤기가 아직도 최고의 테크니션 중 한명으로 인정받는지 제대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34] 갓윤기 클래스

12. 2018-19 시즌

12.1. 국가대표 선발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2차 종합 4위를 기록함으로써 월드컵 출전권 및 세계선수권 계주 멤버 출전권을 획득했다. 2차 선발전에서 500m 결승 및 슈퍼 파이널에서 예의 빈틈을 파고드는 추월능력을 보여주면서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것을 확인시켰다. 그러나 이후 국가대표로서의 시즌을 스킵하겠다고 결정하여 차순위인 박지원이 대신 대표팀으로 들어왔다.

13. 2019-20 시즌

13.1. 국가대표 선발전

1차 선발전에서 5위를 차지해 국가대표 팀 승선 기대감을 높였다. 그러나 2차 선발전에서 모든 종목에서 결승 진출에 실패하여 1, 2차 종합 10위로 국가대표 승선에는 실패했다.

14. 2021-22 시즌

14.1. 국가대표 선발전

1차 선발전에서 500m 3위, 1000m 2위, 1500m 6위, 슈퍼파이널 3위로 종합 3위를 기록했다.[35] 2차 선발전에서는 500m에서 파이널 B 1위, 1000m 4위를 기록했고 1500m에서는 박지원을 추월하다가 페널티를 받았다. 종합 7위를 기록했으며, 두 선발전 합산 결과 최종 4위에 오르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계주 멤버에 선발되었다. 아울러 대한민국 쇼트트랙 역사상 최고령 올림픽 국가대표가 되었다.

14.2. 월드컵 시리즈

14.3.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남자 쇼트트랙 국가대표팀의 맏형으로서[39] 5000m 계주 경기에만 출전했다. 개회식에서 김아랑[40]과 공동 기수를 맡았다.

남자 5000m 계주 준결승에서 중반과 막판 인코스로만 두 번 추월에 성공해 1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했고, 결승에서는 2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12년 만에 올림픽에서 다시 한 번 은메달을 획득했다.[41][42][43]공교롭게도 12년 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도 곽윤기가 최종 주자로 결승선을 통과했으며, 그때도 1위가 캐나다였다. 그리고 시상대에 올라간 곽윤기는 12년 전 Abracadabra에 이어 이번에는 방탄소년단 Dynamite를 췄다. 후에 밝히길 이는 RM이 쇼트트랙 판정 논란이 일어났을 때 보낸 응원글에 대한 화답의 뜻으로 한 것이라고 한다. 경기가 끝난 후 라이브 방송에서 언급한 바에 따르면, 경기 중반 스케이트 날이 정상적인 주행이 불가능했을 정도로 크게 망가졌다고 한다. 이 때문에 추월할 상황이 보임에도 망가진 스케이트가 계속 미끄러져서 가속을 할 수 없었다. 끝내 그의 커리어에는 올림픽 금메달을 추가하지 못했지만 올림픽을 계기로 유튜브 구독자가 대폭 상승하면서 엄청난 수혜자 중 한 명으로 꼽혔다. 결국 2월 17일자로 구독자 100만 명을 넘겨 골드 버튼을 받았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자신의 유튜브 영상을 통해 이번 올림픽이 마지막 올림픽이라는 의사를 밝혔다. 인터뷰에서는 2022년까지는 스케이트를 탈 생각이라고 언급했다. 우스갯소리로 밀라노까지 현역을 유지하자는 반응도 있다. 귀국한 후 소속팀인 고양시청에서 진행한 Q&A 영상에서 일단 2022년을 잘 마무리한 다음에 무릎·관절이 괜찮다면 선수 생활을 연장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쇼트트랙 선수로서는 역대 최고령의 나이로 활동하고 있는[44] 샤를 아믈랭보다 곽윤기가 5살 더 어리다. 곽윤기는 피지컬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 테크니컬형 스케이터고, 중부상이나 노쇠화가 심하게 오지 않는 한 아직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는 기량을 갖췄기 때문에 가능성은 있다.

14.4. 2022 세계선수권

황대헌이 코로나 확진으로 세계선수권에 불참하게 되면서 차순위 자격으로 개인전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이는 2015-16 시즌 이후로 무려 6시즌 만이다.

500m 예비예선에서 긴장한 탓인지 2회 모두 부정 출발을 하면서 실격되었다. 1500m 준결승에서는 후반 아웃코스로 단숨에 2위로 올라섰지만 한 바퀴를 남기고 인코스로 바꾸는 상황에서 날이 빙판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고 결국 결승에는 진출하지 못했다. 5000m 계주 준결승에서는 변함없이 2번 주자( 이준서-본인- 한승수- 박인욱) 로 나섰으며 무난하게 결승에 진출했다.

1000m에서는 다행히 실수나 변수 없이 결승에 진출했다. 이후 결승에서는 이준서의 포디움 진입을 도와줄 목적이었는지 앞에 가는 리우 샤오앙과 이준서에 추월 시도를 하지 않고 계속해서 뒤에 따라오는 선수들만 주시하며 코스마킹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무리해서 추월 시도를 하다 뒤쪽 선수들에게 자리를 뺏기는 것보다 안전하게 대한민국 선수 둘이 메달을 획득하는 쪽으로 전략을 세운 듯 하다. 이후 그대로 순위가 유지되며 3위로 골인했으며 10년 만에 세계선수권 개인전 메달을 획득했다. 또한 이 덕분에 슈퍼 파이널에 진출하게 되었다.

슈퍼 파이널에서는 다시 한번 이준서의 개인종합 포디움 진입을 돕기 위해 앞서 나가는 라트비아 선수를 뒤따라가며 팀 플레이를 펼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자기 역할이 끝난 이후 다른 선수들을 위해 자리를 비켜주었다. 이후 경기 결과에는 DNF(Did Not Finish)가 뜨며 레이스를 마치지 못한 것으로 나왔는데 이는 계주 결승을 위한 체력 안배로 추정되며, 종합 순위 8위를 기록했다.

5000m 계주에서는 한국이 캐나다와 네덜란드 사이에 각축전이 벌어질때 순간을 놓치지 않고 치고 나왔으며 본인이 마지막 두바퀴를 무사히 마무리 하면서 오랜만에 다시 한번 남자 계주 금메달을 획득했다.

4월 12일 귀국 인터뷰에서 오랜만에 따낸 개인전 메달이 좋은 자극제가 되었다면서 선수 생활을 지속할 것을 암시하는 듯한 말을 했다. 결국 4월 27일 스포츠머그와 인터뷰에서 “아직 은퇴는 없다”고 밝혔으며 직접 은퇴를 번복하면서 다음 올림픽까지도 도전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15. 2022-23 시즌

15.1. 국가대표 선발전

국가대표 1차 선발전 1500m 준준결승 경기 직선코스 구간에서 크게 넘어지며 왼쪽 다리 근육파열 부상을 당했다. 결국 남은 선발전 경기를 기권하고 다음 시즌을 기약하게 되었다.

경기를 치른 태릉실내빙상장의 빙질이 경기하기에 충분히 단단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규격도 문제가 되었는데, 국제대회 규격에 맞추어진 빙상장은 한국체육대학교와 진천국가대표선수촌 두 곳 뿐이며, 그 외 빙상장들은 경기를 치르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16. 2023-24 시즌

16.1. 국가대표 선발전

1차 선발전에서 500m 3위, 1500m 8위, 1000m 35위를 기록하며 14점으로 7위에 올랐다.

2차 선발전에서 500m 8위, 1500m 4위, 1000m 20위로 결국 최종 11위로 국가대표 승선에 실패하였다.

사실 어느정도 예견되있었는데 곽윤기가 지난시즌 모든 국내대회에서 크게 부진했기 때문에 더 이상 국대 승선은 힘들다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결국 우려가 현실이 되면서 향후 국가대표 승선도 전망하기 힘들어졌다.

그리고 2023년을 마지막으로 10년간 몸담았던 소속팀인 고양시청 빙상단을 떠나게 되었다.

17. 2024-25 시즌

FA 신분이 됨에 따라 제105회 전국 동계체육대회에서는 서울시청 선수단에 합류해 참가했고, 제38회 전국남녀 종별종합 쇼트트랙 선수권대회는 소속팀이 없어 대회에 참여할 수 없게 됐다. 우선 6개월 간은 프리랜서 선수로 활동하면서 국가대표 선발전 등에 참석하고 피드백을 수렴해 향후 계획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한다.

17.1. 국가대표 선발전

전 종목 준결승에 진출하지 못하며 부진하였고 1차 선발전 최종 25위로 2차 선발전으로 진출하지 못하였다.



[1] 추후 2008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안현수의 부상으로 곽윤기가 세계선수권 계주 준결승 경기에 참가할 수 있었다. [2] 본인이 미끄러지자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리던 송재근 코치가 아쉬워하며 탄식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3] 그나마 이전 시즌 몇 번 출전한 것이 반영되어 랭킹이 106위로 기록되었다. [4] 이호석이 2009 세계선수권 우승으로 자동 선발이 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5위다. [5] 이때 성공적으로 2번 주자를 맡았던 것이 밴쿠버 올림픽에서 컨디션이 100퍼센트가 아닌 이호석 성시백을 대신해서 2번 주자를 담당하게 되는 것으로 이어졌다. [6] 만약 500m에서 오노말고 또 다른 선수가 실격당했다면 동메달을 차지할 수도 있었다. [7] 이호석은 3번 주자로 출전했다. [8] 특히 이호석 성시백은 1500m에서 동시에 넘어졌고 500m에서도 넘어졌던 터라 심적 부담이 클 수 밖에 없었다. [9] 특히 마지막 주행때에는 푸싱이 가장 중요한데 성시백이 손목 스냅만으로 밖에 곽윤기를 밀지 못했다. [10] 성시백은 벤쿠버 당시 쇼트트랙 담당 부회장 유태욱의 실업팀인 용인시청 소속이었고, 유태욱은 진선유를 지도했다. [11] 남자 3000m에서는 1000m를 1위로 통과한 선수에게 포인트가 주어진다. [12] 노진규 2011년 세계선수권을 우승으로 자동 선발되었기에 대표팀 내에서는 2순위인 셈이다. [13] 참고로 해당 시즌 노진규는 월드컵과 세계선수권에서 1500m 무패를 달성한 시즌이다. [14] 개인종합 우승으로 2012-13시즌 대표팀에 자동선발된다. [15] 사실 원래 잘 타는 선수였지만 성시백, 안현수, 이호석 등 쟁쟁한 실력자들에 가려져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뿐이다. 또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때 한국 선수들이 강한 1000m, 1500m에 참가하지 못해 임팩트를 남기지 못한 것도 한 몫 했다. [16] 서먹했던 분위기를 위닝일레븐을 하면서 서로 풀었다고 최근 인터뷰에서 밝혔다. [17] 곽윤기는 밴쿠버 올림픽 선발전에서는 4위를 기록해 개인전에 참가할 수 없었고 그나마 이정수가 500m를 양보해 파이널 B까지 갔었다. 계주 결승을 제외하고 큰 활약을 하지 못해 약간 한이 된 듯하다. [18] 노진규는 1500m에서 압도적인 에이스임은 맞지만 다른 종목에서의 활약이 부족한 편이었다. 중부상을 당하고 복귀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선수들, 쇼트트랙 팬들이 곽윤기가 선발전에서 1위를 할 것이라 예상했었다. [19] 아쉽게도 곧바로 재추월당하며 2위를 지키는 데까지는 실패했다. [20] 대한민국 월드컵 500m 우승은 2010-11 시즌 4차 월드컵 성시백 우승 이후 4년 만에 우승이다. [21] 우다징은 이 플레이가 임페딩으로 판정되어 실격되었다. [22] 500m 기대주인 박세영보다도 높은 랭킹이다. 사실 곽윤기가 예전에 500m에서 보여준 활약을 감안한다면 박세영이 아직 곽윤기에게 한참 멀었다고 하는게 더 맞다. [23] 안상미 해설위원은 이에 대해 샤를 아믈랭의 기를 죽이는 레이스를 보여줬다고 했다. [24] 1000m, 1500m에서 활약하고 있지만 500m는 5차 올림픽이 되어서야 준결승에 처음 진출했다. [25] 3차와 4차 월드컵에 김한울 대신 참가하게 되었다. 자세한 건 김한울 항목 참조. [26] 항목참조 [27] 곽윤기가 대표팀에 막 처음 합류했을 때는 안현수, 이호석, 성시백, 송경택, 이승훈 같은 정상급 선수들이 포진해 있었다.특히 첫 세 선수는 사기급 선수들이다 물론 선수 본인이 재능도 있어야하지만 좋은 멤버/선배들이 있어야 새로운 멤버/후배들이 보고 배우는 게 가능하다. 이게 별로 중요치 않다고 생각이 든다면 소치 올림픽 시즌 때 부진하던 신다운과 기대 이하의 실력을 선보인 이한빈이 이끌던 대표팀이 결국 어떻게 됐는지 떠올려보자. [28] 임시 코치인 송경택이 지시한 것으로 보인다. [29] 대신 1000m는 출전하지 않아서 5위로 하락했다. [30] 하지만 3차 선발전에 참가했다. [31] 아무래도 최대 속력에서 약점을 보이기 때문에 스피드가 좋은 박세영에게 두 번째 주자를 준 것으로 보이나 경기가 상당히 빠르게 진행됨에 따라 순간 스피드와 경기 운영으로 해결을 하는 곽윤기에겐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었다. 물론 전성기가 지난 노장으로 분류되는 선수인 점을 감안하면 예전보다 스피드가 떨어졌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또한 푸싱을 해주는 세 번째 주자 서이라도 작고 가벼운 편에다 푸싱이 안 좋은 편이라 시너지를 노리기도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32] 참고로 월드컵 계주 우승은 2014-15 시즌 3차 월드컵 이후 3년 만에 우승이다. [33] 참고로 세계선수권에서의 남자 계주 우승은 2010년 이후 8년 만이다. [34] 앞 선수를 환상적인 기술로 앞지르고 바로 살짝 뒤를 확인하는 장면이 백미다. [35] 남자부에서 유일하게 전 종목 결승에 진출했다. [36] 이 추월을 시작으로 곽윤기는 자신이 여전히 세계 정상급 테크니션이라는 것을 팬들은 물론이고 상대선수에게까지 확실히 일깨워주었다. [37] 앞선 1000m 예선에서도 날에 문제가 생겨 넘어질 뻔하며 앞 선수의 충돌로 겨우 준준결승에 올라갔다. 여자부도 많은 선수들이 이번 시즌에 날 문제가 생겨 경기를 포기하고 있는데, 대한빙상경기연맹에서 날 관리 전문가도 뽑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져 욕을 먹었다. [38] 2017-18 시즌 4차 월드컵 5000m 계주 금메달 이후 4년 만에 따낸 금메달이다. 포효하는 모습이 압권이었다. [39] 빙상 종목 선수들 중에는 이승훈에 이어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고참이다. [40] 처음엔 김민선과 맡을 예정이었으나 2월 1일에 김아랑으로 바뀌었다. 후에 밝혀진 사실에 의하면 김민선은 대한체육회의 기수 제안을 받은 직후 코로나 방역 등의 문제로 인해 거절했다고 한다. 의사소통의 문제로 김민선과 기수를 할 것이라고 나간 것으로 추측된다. [41] 그리고 이 대회에서 편파판정 덕분에 어거지로 혼성계주 금메달, 남자 1,000m 금메달 및 은메달 등을 땄던 중국 대표팀은 11바퀴 남은 시점에서 3번 주자 쑨룽이 혼자 호랑나비 댄스를 추다가 넘어지는 생쇼를 한 끝에 당당히 꼴등을 차지했다. [42] 참고로 곽윤기와 비슷한 경험을 한 선수가 있는데, 펜싱의 최인정이 있다. 최인정도 곽윤기와 마찬가지로 2012 런던 올림픽 여자 펜싱 에페 개인전 준결승전에서 동료 선수 유럽 출신 심판에게 편파판정을 당하는 피해를 지켜봤고, 그 선수와 함께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또한 두 번째 올림픽인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하지 못했지만, 2020 도쿄 올림픽에서 9년 만에 2연속 단체전 은메달을 획득했다. [43] 하계올림픽을 포함한다면 장용호, 임동현, 박경모, 이승훈, 김정환, 구본길, 김우진 이어 2연속 단체전 메달을 획득한 여덟 번째 남자 선수가 되었다. [44] 2022 세계선수권에서 은퇴를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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