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로 제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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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군교위 조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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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伷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후한 말의 군벌이며 자는 공서(公緖)로 연주 진류군 사람.2. 정사 삼국지
같은 군 사람 부융(符融)의 추천으로 범염, 한탁과 함께 진류 태수인 풍대에게 추천되어 상계리를 지냈다.[1]권력을 장악한 동탁이 인심을 사기 위한 수단으로 삼아져 그는 예주 자사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공주는 동탁을 배반하고 반동탁 연합군에 참가해 각지에서 모인 군웅들과 함께했다. 장홍전에 따르면 동탁이 소제를 살해했다는 얘기가 퍼지자 이에 반발해 반동탁 연합군에 참여했던 중원지역 관리들이 집결한 진류군 산조에 공주도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공주와 모반 계획을 협력한 허창의 사촌동생 허정이 공주에게 의탁했다.[2] 이후 190년 2월에 공주는 산조에서 예주 영천으로 주둔했지만 대다수의 제후들처럼 동탁의 군세를 두려워해 진군하지 않았다.
언어 능력이 뛰어났는지 정태가 동탁에게 말하길 "공공서는 청담고론에 능하여 마른 나무에 생기를 불어넣는다."고 평가했지만 전투 능력은 떨어진다고 덧붙였다.[3]
191년에 원술이 손견을 예주자사에 임명한 사실과 원소가 주앙을 예주자사에 임명한 역사적 사실을 감안하면, 공주는 190년 말이나 191년 초쯤에 죽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공주가 죽자 그의 밑에 있었던 허정은 양주 자사 진위에게 의지하게 된다.[4]
3. 삼국지연의
18로 제후의 한명으로 참전하면서 언급이 된다.4. 미디어 믹스
4.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자세한 내용은 공주(삼국지 시리즈) 문서 참고하십시오.4.2. 삼국군영전 시리즈
가장 최고 난이도의 군주로 손꼽히는데 휘하 무장이 단 1명도 없고 주위에는 조조, 원술, 도겸등에 세력이 있는 데다 공주 본인도 약하기에 가장 하드 난이도로 손꼽힌다.4.3.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
직접적인 등장은 없지만 동탁토벌군에 참가하는 원소에게서 그가 이끄는 군대가 멀리서나마 발견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