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0-06 01:20:08

경성시대

경성물에서 넘어옴

1. 개요2. 상세3. '경성'시대라는 용어의 문제4. 경성시대를 보는 관점5. 관련 작품6. 관련 관광지7. 관련 문서

1. 개요

경성시대 19세기 말~ 20세기 조선 대한제국 시기 개화기, 특히 한양( 한성부), 그리고 일제강점기 시기 조선 경성부를 배경으로 한 복고 문화를 지칭하는 용어다.

2. 상세

과거에도 야인시대 등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은 여럿 있었지만 경성시대라는 용어를 쓰며 특별한 장르로 구분짓거나 하진 않았다. 경성시대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은 2010년대 후반으로 뉴트로라 부르는 신복고가 한참 유행하던 2019년 경이다. # 비슷한 시기에 구한말을 배경으로 한 미스터 션샤인이 흥행하면서 근대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덩달아 경성시대라는 용어도 대중화 하였다. 경성풍, 경성 모던, 경성 로망스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경성이란 말 자체가 일제강점기로 인한 부정적인 인식이 있어 보다 중립적인 용어인 개화기 스타일, 개화기 감성, 개화기풍 등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다만 경성이란 용어 자체는 고대부터 한중일 모두 자국의 수도를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해 온 동아시아 공통 용어이다.

한국의 '경성시대'는 중국의 '민국시대'와 일본의 ' 다이쇼 로망'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 시기적으로도 그렇고 세부적인 요소도 유사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각국의 기존 전통 문화에 서양에서 들어온 근대 문화가 혼합한 양식이라는 점이 공통적인 특징이다.

경성시대/개화기 양식은 전반적으로 기존의 조선시대 문화와 개항 이후 새롭게 들어온 서양 문화가 혼합한 양상을 보인다. 이런 개화기 당시에 형성된 혼합 양식을 한양절충(韓洋折衷)이라 부르기도 하며 #,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경우 강화도 조약 이후 들어온 근대 일본 문화가 일부 추가된다. 경성시대/개화기 양식은 특히 유럽 고전 건축 양식과 복식 등 유럽 귀족 문화와 도시 문화에 대한 동경이 개화기 조선과 대한제국 시기 문화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조선시대 궁궐 한복 무료 입장으로 한복 대여업이 성행하자 파생 사업 분야로 개화기시대 의상 대여업도 함께 성행한 사례가 있다.

대체적으로 시대 배경과 국내 정서상 항일이라는 테마가 기본적으로 깔리게 된다. 이에서 탈피해 추리물 같은 다른 테마를 시도하는 경우도 없진 않지만, 일제시대 배경 작품은 항일 요소가 있어야 한다는 압박이 강하기 때문에 그 수가 많지는 않다.

3. '경성'시대라는 용어의 문제

사실 경성시대라는 용어 자체가 이상한 단어다. 나무위키 내에서 '경성물'이란 명칭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위키 외에서는 쓰지 않는 독자연구 용어다. 이 '경성'시대라는 단어는 시기상으로도 지역적으로 이상한 용어다. 두가지의 문제가 있다. 첫째로 서울이라는 도시 하나로 조선 전체를 대변한다는 것, 둘째는 경성이란 용어가 일제강점기만의 용어는 아니라는 것이다.

비슷한 장르인 중국의 '민국시대'나 일본의 '다이쇼 로망'이 모두 국가 특성이나 연호 등으로 시대상을 함축한다. 반면 '경성시대'라는 용어는 조선 전체가 아닌 수도 서울의 이름만을 이용하여 경성이라는 도시만을 부각시킨다.
경성시대라는 용어가 구한말 대한제국 시기까지 포함해 무분별하게 쓰이면서 용어 혼란을 주는데 무엇보다도 시기적인 문제가 있다. 경성은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 사이에서만 쓰인 단어도 아니고, 조선시대 이전부터 내내 수도를 가리켜 쓴 표현이다. 한양, 한성, 도성, 서울이라는 용어만 쓴 게 아니며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수도 없이 경성이란 단어가 나온다. 그런데 경성이라 하면 마치 일제강점기 서울만을 가리키는 걸로 오해하는 (어린, 젊은) 사람들이 만든 용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을 따라 구한말을 분리하여 본다면 실제 대한제국의 연호였던 광무를 이용한 '광무시대' 나 '광무 낭만' 정도로 구분하는 것이 비교적 덜 어색한 용어가 된다. 아울러 1945년 광복 후~1950년 한국전쟁 발발 사이의 해방정국 기간도 '광복시대'라는 정체불명 용어가 종종 쓰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경성이란 용어 자체에 일제강점기의 강렬한 인식이 민족정서적으로 뿌리깊게 박힌 탓에 이 용어가 바뀌긴 어려워 보인다.

과거 경성이었던 지금의 서울은 물론 전국적으로 그 시대의 근대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일제강점기가 끝난 직후에 6.25 전쟁이 터지면서 전국이 초토화가 된 원인도 있지만, 그나마 남아 있던 것들도 경제개발과 일제 잔재 청산 등을 이유로 대부분 사라졌기 때문이다. 현대의 한국 도시들은 그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고층 빌딩이 빼곡하게 들어선 현대 도시가 되었다. 일본식 목조 건물은 보존수리가 힘든 데다 상점 건물이 아닌 주택 건물은 한국 기후와 맞지 않기도 해서 아주아주 극소수의 몇몇군데만을 제외하곤 전부 사라졌다. 규모가 있는 벽돌, 석조 건물들 역시 해방 후 효율이 훨씬 뛰어난 철근 콘크리트 건물에 밀려 허물어졌다.

그래도 서울에는 서울시청이나 구 조선총독부, 한국은행 등의 식민지 유산이 남아있(었)고, 또 개항장이었던 인천이나 군산, 포항, 목포같은 항구도시 군데군데에 당시의 건물이 일부 있다. 한국전쟁 화마를 비켜간 부산, 창원 등지에도 근대 건축물이 남아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촬영할 때는 서울보다는 대부분 개항장에서 촬영을 하거나 아예 세트장을 따로 만들어서 촬영을 한다.

4. 경성시대를 보는 관점

경성시대 자체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걸쳐 있다 보니 당대 문화를 조명하는 경성시대 장르 자체가 일제강점기 미화하고 식민 지배의 아픔을 왜곡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 실제로 조선귀족[1]과 같은 단어를 무분별하게 쓰는 물의를 빚는 사례가 나오기도 했다. #

그러나 그 당시의 옷을 입고 당대의 문화를 모방한다고 해서 미화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조선시대 양반의 한복을 입었다고 해서 양반들로 인해 고통받던 노비들의 아픔을 외면한다고 일반화할 수 없는 것을 예시로 들 수 있다. 또한 경성시대, 개화기풍 문화 자체가 한국풍+유럽풍 양식의 퓨전을 동경하는 것에서 나온 것이지 일제강점기 미화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며, 애초에 개화기 의상이라고 부르는 복식은 상당수가 서양 복식으로 서양에서 입었던 옷이 근대화의 흐름과 함께 동양으로 오면서 개화기 의상이 된 것이다.

또한 당대의 여러 독립운동가 이상, 백석, 이효석처럼 시인, 작가와 같은 문학가들 중에서도 적극적으로 근대문화를 향유하던 이른바 모던보이, 모던걸들이 의외로 많았다. 당연한 것이 문학가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교양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당대에 고등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구제전문학교로 만족할 게 아니라면 경성제국대학에 진학하거나 일본 내지의 대학으로 유학을 가야 했는데, 이는 어느 정도 재력이나 개인적 능력이 있어야 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기회를 가졌으면서도 변절하지 않고 민족성을 유지한 현진건, 황순원 같은 몇몇 작가들의 작품성이 특히 더 높게 평가받는 것이다.

특히 독립운동가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도 항상 품위있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최대한 세련되고 깔끔한 옷차림을 하는 등 더욱 문화적 소양에 신경썼다. 이봉창, 윤봉길 의사가 의거 전에 한인애국단에서 찍은 사진등이 그 예다. 결국은 당대 문화를 어떻게 다루느냐의 문제인 셈.

따라서 당대의 역사를 직시하고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그 시대의 문화를 재현 및 장르적으로 재해석하는 시도 자체를 죄악시하고 식민지배 미화 내지 식민사관로 치부하는 행위는 학자들 역시 진짜 식민사관을 비판하는 데 있어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21세기의 경성에 일본은 필요없다

이렇듯 전통과 근대의 교차하는 시대라는 매력적인 점이 있지만, 동시에 민감한 맥락과도 연계된 장르 특성상 창작자와 수용자 양방의 노력이 많이 필요한 장르이기도 하다.

5. 관련 작품

6. 관련 관광지

7. 관련 문서


[1] 일제가 공적이 있는 자들에게 내린 작위를 받은 이들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친일파 인증표다. 대한제국의 '오등작'과 착각했을 수도 있지만 함부로 쓸 단어는 절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