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3-05-01 10:20:30

견수

진서(晉書)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color: #ece5b6"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제기(帝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181818,#e5e5e5
1권 「선제기(宣帝紀)」 2권 「경제문제기(景帝文帝紀)」 3권 「무제기(武帝紀)」
사마의 사마사 · 사마소(昭) 사마염
4권 「혜제기(惠帝紀)」 5권 「회제민제기(懷帝愍帝紀)」 6권 「원제명제기(元帝明帝紀)」
사마충(衷) 사마치 · 사마업 사마예 · 사마소(紹)
7권 「성제강제기(成帝康帝紀)」 8권 「목제애재폐제기(穆帝哀帝廢帝紀)」
사마연(衍) · 사마악 사마담 · 사마비 · 사마혁
9권 「간문제효무제기(簡文帝孝武帝紀)」 10권 「안제공제기(安帝恭帝紀)」
사마욱 · 사마요 사마덕종 · 사마덕문
※ 11권 ~ 30권은 志에 해당. 진서 문서 참고
}}}}}}}}}}}}
[ 열전(列傳) ]
||<-6><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 31·32권 「후비전(后妃傳)」 ||
[ 재기(戴記) ]
||<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width=33%> 101권 「유원해재기(劉元海戴記)」 ||<-2><width=34%> 102권 「유총재기(劉聰戴記)」 ||<width=33%> 103권 「유요재기(劉曜戴記)」 ||
유원해 , 유화 · 유선, 유총 , 유찬 · 진원달, 유요
104 · 105권 「석륵재기(石勒戴記)」 106 · 107권 「석계룡재기(石季龍戴記)」
석륵 , 석홍 · 장빈, 석계룡 , 석세 · 석준 · 석감 · 염민,
108권 「모용외재기(慕容廆戴記)」 109권 「모용황재기(慕容皝戴記)」
모용외 , 배억 · 고첨, 모용황 , 모용한 · 양유,
110권 「모용준재기(慕容儁戴記)」 111권 「모용위재기(慕容暐戴記)」
모용준 , 한항 · 이산 · 이적, 모용위 , 모용각 · 양무 · 황보진,
112권 「부홍등재기(苻洪等戴記)」 113 · 114권 「부견재기(苻堅戴記)」 115권 「부비등재기(苻丕等戴記)」
부홍 · 부건 · 부생 , 왕타, 부견 , 왕맹 · 부융 · 부랑, 부비 · 부등 , 삭반 · 서숭,
116권 「요익중등재기(姚弋仲等戴記)」 117 · 118권 「요흥재기(姚興戴記)」 119권 「요홍재기(姚泓戴記)」
요익중 · 요양 · 요장 요흥 , 윤위, 요홍
120권 「이특등재기(李特等戴記)」 121권 「이웅등재기(李雄等戴記)」
이특 · 이류 · 이상 이웅 · 이반 · 이기 · 이수 · 이세
122권 「여광등재기(呂光等戴記)」
여광 · 여찬 · 여륭
123권 「모용수재기(慕容垂戴記)」 124권 「모용보등재기(慕容宝等戴記)」
모용수 모용보 · 모용성 · 모용희 · 모용운
125권 「걸복국인등재기(乞伏國仁等戴記)」
걸복국인 · 걸복건귀 · 걸복치반 · 풍발 , 풍소불,
126권 「독발오고등재기(禿髪烏孤等戴記)」
독발오고 · 독발리록고 · 독발녹단
127권 「모용덕재기(慕容徳戴記)」 128권 「모용초재기(慕容超戴記)」
모용덕 모용초 , 모용종 · 봉부,
129권 「저거몽손재기(沮渠蒙遜戴記)」 130권 「혁련발발재기(赫連勃勃戴記)」
저거몽손 혁련발발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800080><tablebgcolor=#800080> ||
}}} ||

牽秀
(? ~ 304)

중국 서진의 인물이며 자는 성숙(成叔). 견초의 손자이자, 견초의 장남 견가(牵嘉)의 아들.

기주 무읍군 관진현 사람으로 사물을 분별할 줄 알고 글에 재능이 있으며, 성품이 호방하고 협기가 있어 어려서부터 이름을 날렸고 위관, 최홍 등이 그를 알아주었다.

태강 연간[1]에 선발되어 신안령이 되었다가 여러 차례 승진해 사공종사중랑이 되으며, 왕개와 사이가 나빠 고평국의 병사인 전흥의 처를 간통했다는 모함을 받았고 견수는 죄가 없음을 호소하면서 격렬한 말로 왕개의 품행이 더럽고 그가 외척이라 처벌받지 않는다고 비웃었다.

조정의 신하들이 견수의 품행에 대해 증명해줬지만 그의 명성, 명예는 이 일로 인해 훼손되어 연좌되면서 면직되었으며, 장화의 요청으로 장화의 장사가 되었다. 견수는 기분에 따라 치우치게 행동하고 장수가 되기를 좋아했으며, 303년에 장창이 반란을 일으키자 사마예의 명으로 그를 토벌하러 가기 위해 관을 나왔다가 사마영을 섬겼다.

사마영이 사마예를 공격하면서 관군장군에 임명되어 육기, 왕수 등과 군사를 일으키도록 했지만 육기가 번번이 패하자 적과 아군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고 하면서 육기를 죽게 만들고 사마영의 부하인 황문시랑 맹구에게 아첨해 사마영의 총애를 받았다.

혜제가 장안으로 향하자 상서가 되었고 견수는 자신이 재상이 되면 조정의 나쁜 풍토를 없애고 좋은 기풍을 살리겠다고 했는데, 그의 말은 조정에서 제일 먼저 받아들여졌지만 건의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데에 힘을 보탠 적은 없었다.

사마영이 죽은 후에는 사마옹을 섬겼고 총애를 받았으며, 평북장군에 임명되어 빙익군을 진수했다. 마첨과 함께 사마옹을 도와 관중을 지키려 했지만 사마옹이 은밀히 사마월에게 사자를 보내 맞이해달라고 했다. 사마월의 부하인 미황[2]이 사마옹을 맞이하려 했지만 견수가 빙익군에서 무리를 끼고 있어 함부로 나아가지 못 했는데, 양등이 사마월의 군사가 응하지 않는 것을 보고 토벌을 두려워해 견수를 죽여 바치고자 했다.

양등이 빙익군의 대호족인 여러 엄씨와 함께 사마옹의 명을 사칭해 병사를 거두도록 하자 견수는 이를 믿었으며, 견수는 만년현에서 양등에게 살해당했다.


[1] 280 ~ 289년이다. [2] 그의 조상이 평생 유비를 따른 미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