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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5 23:19:42

H. R. 맥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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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R. 맥마스터 존 볼턴 로버트 오브라이언 제이크 설리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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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3458><colcolor=#fff> 제25대 미합중국 대통령실 국가안보보좌관
허버트 레이먼드 맥마스터
Herbert Raymond McMaster
파일:H._R._McMaster.jpg
출생 1962년 7월 24일 ([age(1962-07-24)]세)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학력 미국육군사관학교 ( 사학 / 학사)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대학원 ( 사학 / 석사)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대학원 ( 사학 / 박사)
직업 군인, 관료, 역사학자
최종 계급 중장
정당

경력 미국 대통령실 국가안보보좌관
2017년 2월 ~ 2018년 3월 22일
참전 걸프전쟁
이라크 전쟁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1. 개요2. 생애
2.1. 군사사학자2.2. 야전에서2.3. 트럼프 행정부 국가안보보좌관2.4. 대안 우파의 적
3. 평가4. 기타

[clearfix]

1. 개요

미국의 군인 출신 관료.

군사사 전공자로 학·석·박사 학위를 모두 사학 전공으로 받았으며, 미 육군 복무 중인 2017년 2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명을 받아 제26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재직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과의 불협화음을 내다 2018년 3월 경질되면서 후임자 존 볼턴에게 직을 넘기고 물러났다. 이후 2018년 5월 육군 중장으로 예편했다.

2. 생애

2.1. 군사사학자

베트남전은 야전에서 진 것이 아니었으며, 뉴욕타임스의 1면, 또는 대학가 캠퍼스에서 진 것도 아니었다. 베트남전은 미국이 완전히 전쟁을 도맡은 1965년은커녕 미국인들이 자신들이 전쟁에 돌입했다는 것을 깨닫기 한참 이전부터 진작 워싱턴 D.C에서 패배한 전쟁이었다.
- 《직무유기》 발췌.[1]

파일:external/news.antiwar.com/mcmaster_-1.jpg

국방일보에 게재된 서평 내용

미 육군 소령으로 복무 중이던 1997년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채플힐에서 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이 박사학위논문의 일부 내용을 책으로 출간하여 외교·안보 정가의 높으신 분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해당 책의 제목은 < 직무유기(Dereliction of Duty> - 베트남전을 야기한 존슨, 맥나마라, 합동참모본부, 그리고 거짓말들로, 베트남 전쟁 당시 존 F. 케네디, 린든 B. 존슨 등으로 이어지는 대통령의 내각과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을 보좌해야 할 군인들, 특히 합동참모본부 포스타들의 온갖 정책적 실패들을 통렬히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이 책에서 저자 맥마스터 본인은 군 작전의 효과성이 정치/외교 논리에 의해 왜곡, 훼손되어서는 안된다면서 맥스웰 테일러[2]를 비롯한 수많은 베트남 전쟁 당시의 미국 합동참모본부의 장성들을 보고 '군을 대변하고 대통령에게 직언을 해야 하는 책임을 직무유기했다'고 비판했다. 또한 케네디와 존슨의 뿌리 깊은 군에 대한 불신, 보신에 급급했던 합참의장, 맥마나라 장관과 백악관 관리들의 오만함과 무지 때문에 베트남 전쟁은 이미 미국이 지상군 투입을 결정하기 전부터 진작에 졌던 전쟁이라고 규정하였다.

베트남전의 패배 요인으로는 민주당의 케네디와 존슨이 전임 대통령인 아이젠하워가 세워놓은 합동참모본부의 역할을 전혀 신뢰하지 않고 외면했으며, 군의 전문성을 무시하는 한편 정책결정 과정에서 개인적 친소관계를 너무 강조한 점을 근본 원인으로 꼽았다. 그 결과 군부와 백악관의 사이는 돌이킬 수 없이 악화되었고, 정확한 정세판단이나 대전략이 없는 상황에서 베트남전은 아주 지엽적인 부분에만 휘말린 채 결말없는 소모전처럼 흘러갔다고 평가했다.

이 책은 군 내부에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면서 군의 전문성에 대한 고취의식, 민간 관료들에 대한 견제의 필요성을 강하게 불러일으켰다. 지금까지 미군 필독서 목록에 올라있으며, 맥마스터가 트럼프 정권에서 안보보좌관으로 발탁되며 베스트셀러에 다시 올랐다.

2.2. 야전에서

1984년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했다. 육사 시절엔 럭비를 했다고. 1991년 육군 대위(제2기갑기병연대 전차중대장) 시절 걸프 전쟁에 참전하여 부상에도 불구하고 단 9대의 전차만으로 이라크 최정예 공화국수비대 타와칼나 기갑사단 소속 전차 80여 대를 무찌르는 눈부신 전공을 세워 은성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당시 전투는 '73 이스팅 전투'(Battle of 73 Easting)로 불린다. #

이라크 전쟁에도 기갑장교로 참전하였는데, 2005년 제3기갑기병연대장으로 참전했던 탈 아파르 전투에서 미군으로서 보기 드물게 이라크 현지인들과의 친화력을 기르는 대민친화정책을 펴며 탈 아파르에서 알 카에다를 축출하기도 했다. 기존에는 미군은 위험한 도시 내에서는 순찰만 하고 저녁에는 외부 기지로 귀환했기 때문에 이라크인들이 적에게 보복을 당할까 두려워 협조하지 않았다. 그런데 맥마스터는 미군을 탈 아파르에 주둔시켜 야간에도 철수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지역 주민들에게 인식시켜 주민의 협조를 얻을 수 있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상부의 지휘/명령 체계와 마찰을 빚으면서 도널드 럼즈펠드 등 당시 펜타곤 수뇌부와 불편한 관계가 되었고, 이로 인해 2006년과 2007년에 장군 진급심사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피트 게렌 육군청장이 평소 그를 높이 평가하던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장군을 소환해서 2008년 세번째 진급심사에 배석시켜서야 겨우 진급이 승인되어 2009년 준장이 될 수 있었다. 이후에도 육군 높으신 분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고,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후 2011년 소장 진급심사에서도 1차에서 탈락했다. 마틴 뎀프시 합동참모의장이 "우리 준장들 중 얘가 최고인듯"이란 발언까지 했는데도 겨우 2차에서야 진급심사를 통과했다. 이후 교육사령부 관련 보직들을 거치면서 경험을 쌓다가 2014년에는 척 헤이글 국방장관이 밀어주며 중장 진급이 확정되어 교육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영전했다.

2.3. 트럼프 행정부 국가안보보좌관

파일:external/static.atimes.com/NSA-McMaster-960x576-1487642250.jpg
2017년 2월 20일 , 러시아와의 내통 혐의로 사임한 마이클 플린의 뒤를 이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두 번째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되었다. 이는 장성 출신으로 해당 직위에 임명된 5번째 사례다.[3] 또한 현역군인 신분으로 임명된 것은 파월 이후 30년만이며, 두 번째 사례다.

안보보좌관으로 임명된 직후, 백악관의 관련 참모들과의 회동에서, ISIS 등을 지칭할 때 쓰이는 '과격 이슬람 테러리즘'(radical Islamic terrorism)이라는 용어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세력들이 실제로는 종교의 이름을 앞세울 뿐, 행태와 주장들은 더 이상 종교와 무관한 왜곡된 양상을 띄고 있으며, 미국의 대테러 정책이 자칫 중동과 미국 내부의 온건한 이슬람교도들의 지지를 얻는 것을 어렵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라고. 이러한 맥마스터의 주장은 전임자인 마이클 플린 등 트럼프 행정부의 본래 외교안보팀과 다소 거리가 있다.

맥마스터는 또한 미군 주도 하에 군사적, 정치적 전략을 짜고 이걸 맥락적으로 끼워맞추는 것을 아주 중시 여기는 인물이다. 기본적으로 군사 작전이나 안보에 관한 한 민간 관료, 외교관들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저서 직무유기에서도 살짝 드러나는 성격인데 안보보좌관에 오른 이후로는 이런 점이 더 심하게 부각된다는 평가다.

한마디로, 미군이 현지에서의 군사적 작전은 물론이거니와 정치, 외교, 부족 간의 중재 등까지 모두 도맡아서 안정시켜야한다는 시각이 강한 인물이라고 보면 된다. 2007년 이라크 대공세의 성공 원인을 현지 정치 지도자들과 미군간 유대감이 형성된 덕으로 돌린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인데, 후술할 평가에서처럼 맥락에 너무 치우치는 점때문에 비판받기도 한다.

트럼프의 기존 시각과 일치하는 견해도 보이는데, 일례로 이란 핵협상을 중대한 결점이 있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점이나 북한에 대한 아주 강경한 개입론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점이 그런 부분이다.

3월 1일,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전화 통화를 갖고 THAAD 배치 등 양국 동맹간의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백악관 안보보좌관으로 임명된 후, 한국 정부와의 첫 공식 접촉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한국에 배치되는 THAAD 관련 비용을 한국이 내야 한다고 전달했다"는 발언이 물의를 빚자, 4월 30일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과의 통화에서 "(한국은 부지, 미국은 비용을 부담하는) 기존 합의를 존중한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해당 보도 직후에는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THAAD 비용에 관한 재협상을 추진할 것이며, 현재의 합의는 그 이전까지만 적용된다"고 말해 다시금 논란이 되고 있다. 아무래도 자국 대통령이 직접 한 발언을 통째로 부정하는 것은 곤란한 입장에서, 오는 2018년 이후로 예상되는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THAAD 배치 관련 비용을 어떻게든, 일부라도 한국측으로부터 짜내겠다는 의도로 비춰진다.

이렇게 태도를 바꾼 것은 "기존 합의를 존중한다"는 첫 해명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심한 질책을 받은 때문이라고 한다. '사드 비용' 혼선 맥마스터 보좌관, 트럼프 "내 말 뒤집었다" 호통 트럼프 대통령은 이 문제를 대통령의 통수권에 대한 도전이라고 판단하고 조만간 맥마스터 보좌관을 해임할 전망이라는 소문도 있지만 6개월이 지난 2017년 10월 현재까지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5월 16일 트럼프가 러시아 외무장관에게 기밀을 누설했다는 보도가 나자 이를 즉각 부인하면서 진화에 나섰는데, 불과 몇시간뒤 트럼프 본인이 오히려 보도 내용을 인정하는 트윗을 게시했다. 졸지에 맥매스터 보좌관은 거짓말쟁이가 되어 버렸고 곧바로 해명을 수정해야 했다. 이러한 충격적인 사태에 맥매스터 보좌관뿐만 아니라 백악관 전체가 공황상태라고 한다. #

맥마스터는 트럼프의 대(對)러시아 기밀 유출 논란을 해명하면서 기자들에게 "백악관은 지구상에서 가장 있기 싫은 장소(This is the last place I wanted to be)"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외견상 농담이 섞인 말로 보이려는 의도였겠지만, 어쩌면 본심이 적지 않게 반영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평. 하기야 평생을 야전에서 보내면서 문무를 겸비한 명장으로 칭송받고, 트럼프 대통령이 대내외적으로 신뢰받는 지도자로 보일 수 있도록 기여했다는 자신으로서는 일련의 사건들로 그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을 듯하다.

8월 5일 MSNBC 방송사 인터뷰에서 맥매스터는 "예방전쟁[4]의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받자"북한이 핵무기로 미국을 위협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전쟁, 예방전쟁을 말하느냐"고 되물은 뒤 "물론이다. 우리는 그것을 위한 모든 옵션을 제공해야만 한다. 거기에는 군사옵션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물론 군사적 행동에 따르는 한국의 피해도 감수해야 한다는 전제를 달아 선제타격은 최후의 카드임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전주에 틸러슨 국무장관이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시사한 것과는 상반된다.

해가 바뀌어 안보보좌관 취임 1년이 다 되어가는 2018년 1월에 맥마스터에 대한 내외부의 평가는 취임 당시와 비교해서 상당히 달라져있다. 진보진영은 물론이고 보수진영에서조차 맥마스터의 대북 초강경책에 대해 적지않은 우려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트럼프 정권이 지난 1년동안 중동정세는 말할 것도 없고, 이란, 파키스탄과의 갈등을 들쑤시는가 하면[5], 아프간 전쟁의 불씨를 다시 되살렸다는 측면에서 외교안보 노선이 선택과 집중을 하지 못하고 화약고만 늘리고 있다는 책임론에 휩싸여있다.

또한 한편으로는 여전히 트럼프와 신뢰 관계를 구축하지 못한 탓에 렉스 틸러슨, 개리 콘과 함께 트럼프 정권 2년차에 아웃될 인사로 거론되고 있다. 참고로 맥마스터는 아직 3스타 현역 군인이며, 안보보좌관에서 물러난 이후로는 아프간 전쟁을 도맡거나 아시아 쪽으로 차출된다는 이야기가 오르내리고 있는 상황이다.

자신은 2월 초에 "최대한 오랫동안 소임을 다하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다.

2018년 3월 22일(미국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를 통해 경질이 발표되었다.[6] 후임은 존 볼턴 전 UN대사. 향후 거취와 관련해서는 미 국방부 측에서 육군참모차장이나 주한미군사령관, 주아프가니스탄 미군사령관 등의 대장급 보직들을 제안하였으나 이를 거절하였다고 하며, 2018년 중반에 예편할 예정이라고 한다.

공직을 떠난 지 채 1달도 안된 4월 19일, 부친이 요양원에서 80대를 일기로 숨을 거두어 부친상을 당하는 개인적 슬픔을 겪었다.

현재는 스탠퍼드 대학교의 후버 연구소[7]에서 선임연구원 직을 맡고 있다.

트럼프 임기 말인 2020년, 자신의 백악관 안보보좌관 시절을 다룬 회고록 <배틀그라운드>(부제: 자유세계를 지키기 위한 싸움)를 출간했다. 이 책은 한국에서도 2022년(교유서가, 9791191278989)에 번역, 발간되었다. 서평 기사 서평 기사

2.4. 대안 우파의 적

마이클 플린의 뒤를 이어 들어온 인물로 대안우파적 사상을 전혀 공유하지 않는데다 스티브 배넌을 NSC에서 빼낸게 맥마스터라 대안 우파의 숙적으로 불렸다. 거기에 플린을 크게 신임하다가 억지로 떠나보내야했던 트럼프에게 자신의 성향과 맞지도 않는 맥마스터는 굴러온 돌이었고 해임설이 항상 떠돌 만큼 상당한 홀대를 당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트럼프가 맥마스터를 안심시키기 위해 친필로 해고 안하겠다고 쓴 메모를 건냈을 정도다.

7, 8월에 들어서는 대안 우파들과 친이스라엘 세력에게 협공을 당하는 중. 일단 맥마스터가 이스라엘에 관해 미적지근한 발언을 여러 차례했던 건 사실이며 특히 트럼프의 이스라엘 방문 중 통곡의 벽에 들어갈 때 이스라엘 쪽 인사들이 같이 못들어가게 막았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반유대 인사라는 설이 제기됐다. 대안 우파와는 처음부터 악연으로 맺어진데다 맥마스터가 NSC에서 친플린, 친배넌 인사들을 하나하나 해고하고 있어서 같은 하늘을 못이고 사는 원수 취급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맥마스터는 반 이슬람 성향이 아니고 서양이 똘똘뭉쳐서 이슬람과 세계의 주도권을 놓고 전쟁해야한다는 대안 우파의 사상을 음모론으로 취급하고 있어 이스라엘과 대안 우파에겐 공적인 셈이다.

그 밖에는 수전 라이스의 기밀인가를 유지시켰다는 것 때문에 대안 우파에게 거의 매국노급으로 까이고 있다. 한편 이 와중에 스티브 배넌과는 백악관 수석회의에서 몇차례나 언성을 높이며 거세게 충돌했다고 한다. 아프간에 병력을 더 보낼지 여부를 놓고 맥마스터는 찬성, 배넌은 반대 입장[8]인데 여기에 개인 감정까지 들어가서 심한 말싸움이 끊이지 않는다는 듯. 맥마스터는 배넌이 대안 우파 세력을 조직적으로 선동해 자신을 음해하고 있다는 분노가 서려있고 배넌의 경우 점차 사라져가는 백악관 안의 자기 세력을 지키기 위한 혈투를 벌이는 것이다.

대안 우파들은 자기들만으로는 아무리 맥마스터의 경질을 외쳐도 영향력이 제한적이다보니 반유대 의혹을 부풀려서 유대계 세력을 이용해 차도살인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여론전을 펼쳤지만 장렬하게 실패하고 말았다. 트럼프가 맥마스터에 대한 지지를 공개 표명하며 그가 매우 친이스라엘적인 인사라고 쐐기를 박아버린 것. 그 때문에 트럼프는 이제 자기 진영에서도 슬슬 이해할 수 없다며 까이기 시작했다.

아무튼 트럼프 정권의 안보정책을 정책지속성 측면에서는 안정적으로 유지시키는 좌장 역할인 동시에 트럼프의 지지기반에게는 요물로 여겨지는 1순위 제거 대상이다.

결과적으로 스티브 배넌 본인을 비롯한 대안우파적 성향을 가진 인사 거의 전부를 백악관에서 빼내면서 정치 싸움의 승리자가 되었다. 그리고 아프간에 추가 파병을 관철시켰다. 하지만 본인도 결국 트럼프에게 팽당하는 결말을 맺고 말았다.

극우성향 인사들이 조직한 단체인 '프로젝트 베리타스'가 지난 2018년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허버트 맥매스터를 상대로 몰래카메라 공작을 시도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2024년 다가오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누구보다 앞장서서 도널드 트럼프의 즉흥적이고 위험한 외교적 발상을 비난하며 예스맨 수준의 내각진들을 비판하는 중이며 도널드 트럼프가 재선되면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자서전을 쓰며 트럼프를 향해 맹목적인 지지를 하는 Qanon에서는 반역자라며 까이는 중이다.

3. 평가

미군 내에서의 평가는 형식과 절차에 얽매이지 않고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진 지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2014년 4월 타임지에서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타임지에서는 맥마스터를 '미 육군의 미래를 건설할 인물'(The architect of the future U.S. Army)로 소개하기도 하였다. 실전에서 무공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학문 및 정책 부문에서도 가시적인 성과를 나타내는 등 문무겸비의 모범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다만 너무 맥락적인 측면에 치우친다는 비판도 있다. 가령 아프간과 이라크 전쟁을 한국처럼 장기적으로 미군이 주둔하는 형태로 바라봐야 한다고 하는 등이 대표적이다. 그의 대표 저서인 <직무 유기>를 근거로 맥마스터를 비판하는 측은 "맥마스터가 베트남전을 도맡았으면 아마 우린 아직도 정글에서 뒹굴고 있을거다"는 주장을 한다.

한국 내에선 친한파라고 평가된다. 원래 한국을 미군의 최고 산물로 평가하기도 했고[9] 트럼프 정권 들어서 사드 비용 논란이나 한미FTA 폐기 논란에서 모두 한국을 옹호하는 측에 섰다. 이것이 한국에 특별히 우호적이라기 보다는 기존 동맹/우방국들과의 관계를 강조하는 것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맥마스터는 '한국은 북한이나 중국에게 있어 가장 취약한 지점인 동시에 미군이 아시아 대륙에 땅을 디딜 수 있는 유일무이한 거점이다'라고 주장하며, 중국에게 한국이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해 아주 강경한 대북 개입론과 안전보장을 견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의 핵무기 관련 도발이 미국의 주요 안보 현안으로 부각되면서,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니키 헤일리 유엔 대사와 함께 강경론을 앞장서 내세우는 대표적 인물이 되었다.[10]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의 주한미국대사 낙마 논란을 계기로 이슈화된 미 행정부 일각의 '대북 제한타격'(일명 코피전략)도 그가 주도하고 있다는 보도가 많다.

이에 트럼프의 대북 강경론에 부정적인 이들은 맥마스터를 트럼프를 부추기는 '위험한 전쟁광'으로 비판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는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미 군부의 대표적 초강경파였던 커티스 르메이 전 공군참모총장에 비교할 정도다. 케네디가 군 장성들을 '뭣도 모르면서 대책없이 떠들어대는 매파들'이라는 식으로 비꼰 것을 <직무 유기>에서 비판적으로 평가한 것을 볼 때, 어쩌면 그렇게 틀리지 않은 비유일 수도 있다.

맥마스터가 그동안 전략가, 학자 이미지가 매우 강한 군 인사였기에, 북한에 대해 무모하리만치 강경한 개입의사를 드러내는 것에 놀라는 인사들이 많은 편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맥마스터의 후임자는 그보다 더 강경파로 유명한 존 볼턴이다.[11] 그를 '전쟁광'이라고 비판한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늑대가 지나가니 호랑이가 나온' 셈이다.

4. 기타

"파워포인트는 이해했다는 환상과 통제하고 있다는 환상을 창조할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출처[12]


[1] 상당히 도발적으로 읽히지만 맥마스터는 수천개의 기밀해제된 관련 문헌들을 탐독하고 생존한 관련 인사들을 찾아다니면서 베트남전의 패배 이유를 탐사한 끝에 일종의 징비록을 만들었다. 때문에 출간 당시에는 군사사학계는 물론이고 정계에까지 적잖은 충격을 안겨줬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미군 내외에서 왜 맥마스터와 이 저서가 고평가를 받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2] 합참의장으로 퇴역한 후에 남베트남 대사로 부임하여 롤링썬더 작전의 배후로 활동했다. [3] 나머지 4명은 브렌트 스코크로프트(공군 중장. 포드, 조지 허버트 부시 행정부 시절), 콜린 파월(레이건 시절. 이후 걸프전에서 미군 합참의장을 역임), 제임스 존스(미 해병대 사령관 및 나토군 총사령관 역임. 오바마 행정부 시절), 그리고 맥마스터의 전임자인 마이클 플린(육군 중장. 미 국방정보국(DIA) 국장 역임)이다. [4] 선제타격보다도 더욱 강한 군사행동이다. 선제타격은 적의 도발 증후가 포착됨에 따라 아군이 선공하는 것이지만, 예방전쟁은 임박한 위험이 없더라도 필연적으로 전쟁이 불가피할 때 먼저 선제 공격을 강행하는 것이다. [5] 이란은 준핵보유국, 북한과 파키스탄은 사실상의 핵보유국이라 이러다 핵전쟁 일어나겠다는 소리도 나오는 상황. 여기에 트럼프 정권이 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저위력'(low-yield) 핵무기를 대량 양산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탓에 2018년 '지구 종말의 날 시계'는 1953년 이래 가장 자정에 가까워졌다. [6] 이보다 앞서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언론에서 교체가 확정적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7] 부시 행정부에서 백악관 안보보좌관, 국무장관을 역임한 콘돌리자 라이스도 이곳에서 활동했다. [8] 이 사람은 단순한 파병 반대를 넘어서 미군대신에 PMC를 보내서 아예 전쟁을 외주주자는 괴상한 주장을 했다. [9] 미국이 아니라 미군이라고 말한 것에 주목. 맥마스터는 한국의 경제적 번영과 체제대결 승리가 주한미군 덕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10] 반면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온건파로 구분되고 있다. 맥마스터와 헤일리가 북한에 대한 일전불사를 외치면, 틸러슨과 매티스가 진화하는 패턴이 반복되는 상황이다. [11] 게다가 볼턴은 치킨 호크이다. [12] 트럼프 정권에서 맥마스터와 갈등관계로 알려진 렉스 틸러슨은 파워포인트 신봉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