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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09 02:57:53

F-15/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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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F-15는 1976년 실전배치된 이래 현재까지도 고성능 전투기로 손꼽히는 기종으로, 특히 실전을 많이 겪는 미군 이스라엘군의 주력기이다 보니 실전기록이 매우 풍부하며 이것이 F-15의 세일즈 포인트이기도 하다.

2. 미합중국 공군

2.1. 걸프전

F-15C와 F-15E가 파견되었으며, F-15C는 총 34대의 적기를 격추했다.[1] 공인된 기록은 MiG-29 5대, MiG-25 2대, MiG-23 8대, MiG-21 2대, 미라주 F1 6대, Mi-8 헬리콥터 2대 등이다. 초반에는 이라크군이 F-15에게 덤벼들기도 했지만 이후에는 주로 이란으로 도망치다가 덜미가 잡힌 것들.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교전은 제58전술전투비행대대 소속 시저 "리코" 로드리게스(Cesar "Rico" Rodriguez) 대위[2] - 크레이그 "몰" 언더힐(Craig "Mole" Underhill) 대위의 2기 분대가 자밀 사이후드(Jameel Sayhood) 대위[3]가 이끄는 MiG-29 2기 분대와 맞붙어 승리한 사례로, 걸프전에선 보기 드물게 이라크 공군기가 GCI의 관제 하에 미군기의 측방으로 기습적으로 접근하여 유리한 상황에서 BVR 교전을 벌인 경우였다. 여기서 2기 종대대형의 선두에 있던 사이후드의 동료기는 로드리게스의 F-15에 록온하고, 급선회한 언더힐의 F-15도 동시에 사이후드의 요기를 록온했다. 교전수칙상 BVR 공격을 실시할 수 없었던[4] 로드리게스가 ECM, 채프 살포와 빔 기동+급강하를 통해 MiG-29의 레이더 락을 풀려고 노력하는 사이 펄크럼과 좀 더 떨어져 있던 언더힐은 즉각 AIM-7을 발사해 사이후드의 윙맨을 격추했다. 양측이 동시에 락온을 걸었음에도 F-15의 선제 공격으로 MiG-29 분대가 패하는 결과가 나온 것은 결국 두 기종의 BVR전 성능 차이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로드리게스 예비역 대령은 이때 MiG-29의 레이더가 F-15C의 전자전 체계에 재밍당해 자신을 쏘지 못한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

약 10NM 거리를 두고 후속하던 사이후드는 편대원을 잃었음에도 그대로 돌진, 로드리게스-언더힐 분대에 덤벼들었다. 이번에는 F-15C 분대가 시계외 전투를 벌이지 못하고 근접전에 돌입했는데[5], 사이후드는 로드리게스의 F-15C에게 총알 한발 안 맞고 격추당했다. 당시 MiG-29는 직전의 레이더 락 회피 기동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저고도에 있던 로드리게스 대위와 정면으로 교차, 보다 우세한 에너지 상태에서 교전을 시작했다. 그러나 수평으로 선회하는 사이후드의 MiG-29에게 로드리게스 대위는 선회원 중간에서 수직면으로 하강, 평면을 바꿔 접근하며 기체 특성상 F-15C에게 더 유리한 원서클 전투(one circle fight)를 열었고, 결국 나선으로 강하하며 선회를 이어가는 과정에서 로드리게스의 F-15C가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 사이후드는 AIM-7[6] 공격범위에 들어갔다는 것을 깨닫고 300피트라는, 너무 낮은 고도에서 스플릿-S 기동을 하며 무리하게 이탈을 시도하다가 지면에 격돌하여 전사했다. 미군 공식 전과 기록에는 로드리게스 대위의 기동에 의한 격추(maneuver kill)로 기록되었다.

부대 단위로 살펴보면 전투기무기학교(FWS) 수료생을 다수 보유한 정예 제58전술전투비행대대가 총 16기의 전과를 올려 최다 격추 기록을 세웠다. 58대대는 이라크 공군이 공대공 전투에서 잃은 MiG-29 5기 모두를 격추한 대대이기도 했다. 2위는 10기를 잡아낸 제53전술전투비행대대였고, 4기 격추의 제522전술전투비행대대가 그 뒤를 이었다.

F-15E는 지상 공격, 특히 장시간 체공하다가 자체 탑재된 레이더, 혹은 E-8이 보내주는 정보에 따라 스커드가 나타나면 잽싸게 파괴하는 스커드 킬러 역할을 주로 맡았다. 당시 F-15E는 개발이 완전히 끝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레이저 유도 폭탄(LGB) 무장 테스트(무장 투하시 안전성 여부를 확인하는 테스트)는 마쳤으나 클러스터 폭탄 류의 무장 테스트는 하지 못했고 랜턴도 편대장기만 풀 세팅(AN/APQ-13 타게팅 포드 + AN/APQ-14 항법 포드)을 하고 편대기는 AN/APQ-14 항법 포드만 장착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전쟁에서 장거리 지상공격은 사실 F-15E보다는 F-111이 더 많이 맡았다.

걸프전 중 2대의 F-15E가 격추당했는데 두 번 모두 적 레이더 및 미사일 제압해주기로 되어있던 F-4G/ EF-111이 여러 가지 이유로 합류하지 못한 상황이나 저고도 침투-폭탄 투하 후 이탈 과정에서 대공포화에 맞아서 발생한 것.특히 후자의 경우 무척 불운한 케이스였다. 선행 공격편대의 공습으로 치솟는 불길이 구름층에 반사되어 저공으로 접근하는 F-15E 편대가 완전히 노출됐고, 육안으로 조준할 수 있는 모든 화기가 편대를 향해 불을 뿜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격추된 기체는 폭탄 투하 후 이탈하다가 대공포탄에 맞은 것으로 추정된다. 마지막 무전 교신이 무장 투하를 완료했으니 이탈하겠다는 것이었고, 편대 전체가 빠져나온 후 점검 도중 실종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공대공 전투에서는 적기를 격추하지 못하였으나 이라크군의 기지를 공격하면서 전투기 상당수를 파괴하였다. 공대공 격추 스코어라고 하기는 애매하지만, 1991년 2월 14일 스커드 미사일 기지를 공격하다가 이라크군의 반격을 받은 미합중국 육군 특수작전부대 CAS를 맡은 F-15E가 몇백 미터 상공에서 이라크군 증원군을 투입하던 Mi-24 헬리콥터에 GBU-10 레이저 유도 폭탄을 투하해서 격추한 기록이 있다. 결과적으로, 걸프전에 투입된 F-15E는 SAM에 1기, AAA에 1기, 그리고 비전투 손실 1기로 총 3기가 손실됐고 이 전쟁 후 F-111을 성공적으로 대체한다.

2.2. 이라크 비행 금지 구역 초계

1994년 4월 14일 두 기의 F-15C가 UN직원, 미국 고위 인사, 이라크 내 친미 부족 인사 다수를 태운 미 육군 소속 UH-60 2대를 이라크군의 Mi-8 헬리콥터로 오인하여 AIM-120으로 격추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E-3 조기경보기의 IFF(피아식별장치)지원까지 받은 상태에서 이 사건의 파장은 더욱 컸다. 여담으로 이때 초계비행을 하던 E-3 77-0354기는 이 사건이 발생하고 1년 5개월이 지난 1995년 9월 22일, 알래스카 엘멘도르프 기지에서 이륙 중 발생한 버드 스트라이크로 추락해 승무원 24명 전원이 사망했다.

2.3. 유고슬라비아 내전

F-15C가 4대의 MiG-29를 AIM-120으로 격추했다. 1999년 3월 24일 야간의 격추 사례 두 건은 시저 "리코" 로드리게스 중령과 마이크 "도저" 샤워(Mike "Dozer" Shower) 대위가 암람으로 기록했는데, 실전최강 전투기 대전 "심야의 공중전" 에피소드에서 이들의 교전을 다룬 바 있다. 로드리게스의 전과는 흠잡을 데 없이 깔끔한 BVR 교전이었지만 샤워 대위의 경우에는 처음 발사한 AIM-120과 AIM-7이 호위대상인 F-117을 수십 피트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거나, 세르비아군 조종사의 정확한 빔 기동으로 미사일이 두 발 다 빗나가는 등 긴박한 상황을 맞이하기도 했다. 하지만 샤워 대위는 5.5마일 거리에서 다시 한번 암람을 발사했고, MiG-29를 격추하는데 성공했다.

1999년 3월 26일 저녁에는 제493원정전투비행대대 제프리 "클로" 황(Jeffrey "Claw" Hwang) 대위[7]의 F-15C가 발사한 AMRAAM 2발에 MiG-29 2기가 동시에 격추당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윙맨과 동시에 펄크럼 분대를 향해 AMRAAM을 한 발씩 발사한 뒤 다시 한 발을 더 발사했는데, 윙맨의 미사일은 빗나가고 황 대위의 미사일이 모두 명중한 특이한 사례.

F-15E는 이번에도 주로 지상 공격 임무를 맡았다. 이때 F-111은 퇴역하였고 F-15E는 모든 무장 통합이 완료된 상태여서 각종 공대지 무장을 사용하여 지상 시설, 비행장 등을 파괴하였다.

2.4. 이라크 전쟁

F-15E는 이라크 전쟁 개전 초기에 다시 이라크의 각종 시설을 공격하였으며 이번에는 피격되는 일 없이 임무를 마무리 지었다. 후세인 정권이 붕괴된 뒤엔 알 카에다 등의 게릴라를 상대하는 지상부대의 근접항공지원 임무를 주로 뛰었는데 폭탄뿐만 아니라 기관포를 통한 항공 지원 기록도 몇 번 있었다. 폭탄류는 아군에게 피해가 갈 위험이 있고, 이라크 반군이 보통은 제대로 된 대공 화기를 갖춘 경우가 없기 때문에 저고도로 비행해도 위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독특하게도 폭탄과 공대공 미사일로 무장하고 공중초계임무-근접항공지원-공중초계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당시 미 공군은 F-15E 1대당 4개조(8명)를 편성했다고 한다.

2.5.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이 지역은 딱히 공중전을 벌일 일이 없었기 때문에 F-15E는 주로 지상 공격 임무에 나섰다. 2009년에는 미군 소속 무인기 MQ-9 리퍼를 격추시킨 기록이 있다. 오인 사격은 아니고 MQ-9 리퍼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지상에서 조종이 불가능해져서 잘못하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갈 위험이 있었기에 급히 인근에 있던 F-15E가 AIM-9으로 격추시켜버렸다.

이곳에서도 F-15E가 폭탄류뿐만 아니라 기관포로 지상군을 지원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2.6. 오디세이 새벽 작전

미 공군 제3공군의 레이큰히스 기지( 영국 서포크 레이큰히스) 소속 F-15E 1기가 추락했다.

발견한 것은 영국인 기자. 추락 지점이 반군 기지 근처였다. 이게 알려진 것도 트위터 덕분.

다행히 승무원들은 탈출에 성공했고 추락 지역도 나토 연합군에 우호적인 반군 지역이라 신변엔 이상이 없다. 추락 원인은 일단 펜타곤의 발표로는 기기 오작동. 이 오작동은 미군 선박 USS 마운트 휘크니(Mount Whitney)에 의해 전해진 바에 따르면 이전에도 일어났었던 일이었다고... 승무원 중 조종사는 미군 구조팀에 의해, 무장관제사(WSO)는 리비아 반군에 의해 구조되었다 한다. 참고

이 과정에서 조종사를 둘러싸고 환영해주던 리비아 민간인들을 미국에 적대적인 이들로 간주하여 해병대가 발포해서 몇 명이 다쳤다는 주장도 있었으나, 곧 구출 과정에서 미 해병대가 발포한 사실은 없으며 민간인 부상자는 조종사를 엄호하기 위해 출격한 AV-8 해리어의 근접 지원에서 발생한 파편에 맞은 것으로 정정되었다.

이 문제로 F-15E의 기체 설계 자체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이야기가 잠시 나왔는데, 이후 사건 조사 과정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1차적인 원인은 플랫 스핀이었다. 기체가 기수로부터 떨어지지 않고 배면부터 떨어졌기 때문에 파편이 멀리 흩어지지 않았으며 땅속 깊이 박히거나 기수가 박살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수직꼬리날개는 양쪽 모두 우측으로 꺾여있었다. 이것은 이 기체가 기수 방향 기준으로 좌측으로 플랫 스핀에 빠져있다가 땅에 부딪히는 순간 회전이 멈추면서 그 관성력으로 수직 꼬리날개가 모두 반대쪽으로 꺾여버린 것이므로 해당 기체가 플랫 스핀에 빠졌다는 증거가 됐고 구출된 조종사도 플랫 스핀에 빠졌다고 증언하였다.

원래 F-15E는 기관포가 우측에 달려있기 때문에 기본 상태에서도 오른쪽이 더 무겁다. 그런데 미 공군의 F-15E 무장관제용 소프트웨어인 슈트6E에는 6측 CFT 쪽에 탑재된 폭탄에 문제가 생길 경우 투하 순서를 뛰어넘어 다음 폭탄을 투하하는 기능에 문제가 있었고(이 문제는 슈트7E에서 패치될 예정이었다), 그래서 당시 작전에 투입된 대부분의 F-15E는 왼쪽에는 3발의 JDAM(GBU-38), 오른쪽에 4발의 LGB(GBU-12)를 탑재했다(JDAM은 미리 계획된 표적 공격용이며, LGB는 긴급 CAS(특히 이동 표적)용).

따라서 처음부터 F-15E는 오른쪽이 무거운 데다가 임무 특성상 JDAM을 달긴 해야 했는데 소프트웨어 문제로 JDAM을 좌측에 달수 밖에 없다 보니 무게중심이 점점 오른쪽으로 쏠릴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승무원들도 이 문제를 알고 있었으나 비행 매뉴얼에는 "이러한 상황에서 선회하면 안된다"는 말은 적혀있지 않았다. 이렇게 무장하고 출격한 해당 항공기는 3만 피트 상공에서 GBU-38 JDAM 투하 후 적 위협을 피하기 위하여 선회하면서 기수를 돌렸다. 사실 3만 피트 상공은 그 이전까진 이런 폭장을 하고 날 일이 잘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 대한 비행 데이터가 많이 부족했으므로 메뉴얼에도 딱히 언급되어 있지 않았다(원래 LGB 계열은 최소 2만 5천 피트 이하에서만 투하가 가능하였다. F-15E가 막 개발되던 시점에는 JDAM이 없었으므로 비행 매뉴얼이 3만 피트 이상에 대해선 기초적인 비행 관련 정보는 있지만 2만 5천피트 이하의 상황에 대해서는 적혀있지 않았다). 그래도 그때까지 큰 문제는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따라 오른쪽 연료탱크에도 문제가 생겨서 왼쪽부터 연료가 공급되는 바람에 우측 연료 탱크에는 연료가 2,500파운드(=1톤 가량)가 남은 반면 좌측은 거의 텅 비어있었다. 즉 평소보다 무게중심이 오른쪽으로 더 크게 쏠려있었던 것이다.

당시 화재에 탄 F-15E의 잔해에 여기저기 구멍이 나있다고 하여 대공포나 미사일 공격에 의한 격추라는 주장도 많았으나 이는 화재에 의해 해당부분이 녹아내린 것이다. 알루미늄이 일단 그 자체에 불이 붙으면 워낙 잘 타다 보니...[8]

워낙 이슈가 된 내용이라 그런지 미 공군도 직접 사고 조사서를 원본까지 공개했다.

2.7. 시리아 내전

미군의 대 ISIL 작전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3. 미국 외의 사례

3.1. 이스라엘 시리아 분쟁


▲ F-15 시리즈 최초의 실전에 관한 영상

F-15 시리즈의 최초의 실전 기록. 1979년에 이스라엘 공군 소속 F-15A가 시리아 소속 전투기를 격추하면서 최초로 격추 기록을 세우기도 하였다. 1979년부터 1981년 사이에 총 15대의 시리아군 소속 전투기를 격추시켰는데 대부분은 MiG-21이었으나 MiG-25 2대도 포함되었다. F-15의 설계 사상이 애당초 BVR과 WVR 모두를 중시한 물건이다 보니 실전 기록도 원거리에서의 격추뿐만 아니라 근거리에서의 격추 기록도 적잖다. 특히 2개의 격추 기록은 20mm M61 벌컨으로 세운 기록.

3.2. 오시라크 원자로 공습

이라크의 오시라크 원자력 발전소를 폭격한 일명 오페라 작전(Operation Opera). 이 작전에서는 F-15는 폭격 임무에 나선 F-16의 호위만 담당했다.

3.3. 레바논 내전


1982년 이스라엘 레바논 침공 당시 해당 전투기의 레바논에서의 공중전을 DCS로 다룬 영상

그 유명한 베카 계곡 공중전이다. 이스라엘 소속 F-15A/B가 (F-16들과 함께) 시리아군 소속 MiG-21, MiG-23을 일방적으로 도살했다. 전쟁 중 F-15는 MiG-21 23대, MiG-23 17대, 총 40기의 시리아군 전투기를 격추했으며, 가젤 헬리콥터 1대도 격추.

베카 계곡 항공전에서 이스라엘 공군 F-15는 단 1개 대대, 제133전투비행대대 " 트윈테일 기사단(Knights of the Twin Tail)"만이 참전했음에도 3개 대대가 투입된 F-16의 격추전과에 거의 맞먹는 성과를 올리면서 그 역량을 전 세계에 과시했다. 특히 개전 초 시리아군의 SAM 포대가 제압되지 않은 상황에서 AIM-7F 운용능력을 살려 지대공 미사일 사거리 바깥에서 시리아 공군기들을 일방적으로 공격하며 그 예봉을 꺾어놓는 임무는 다른 이스라엘 공군기들이 결코 대신할 수 없는 F-15만의 영역이었다.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단 둘뿐인 F-15 에이스 파일럿 역시 이 전쟁에서 탄생했다. 아브네르 나베(Avner Naveh)와 요람 펠레드(Yoram Peled)가 그 주인공으로, 각각 6.5기와 5기를 격추했다.

3.4. 사우디아라비아 vs 이란

1984년에 사우디아라비아 소속 F-15C 2대가 이란 소속 F-4E 2대를 격추해 버렸다. 이란-이라크 전쟁 때문에 이란, 이라크가 서로 유조선 격침하기 놀이를 하던 와중에 이란 소속 F-4가 자주 사우디 아라비아 영공을 넘어왔고, 이에 사우디아라비아가 또 영공을 침범한 F-4를 격추해 버린 것. 이때 미군 소속 공중급유기 조기경보기가 사우디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맥도넬 더글러스 사의 전투기 간 유일한 공중전 사례이기도 하다.

3.5. 걸프전

1991년 1월 24일, 사우디 아라비아 공군의 아예히드 살라 알 샴라니 대위가 조종하는 F-15C가 엑조세 대함 미사일을 탑재했던 이라크군 미라주 F1 3기 중 2기를 격추했다. 나머지 1기는 도주하였다. 격추 순간의 교신과 건카메라 기록.

3.6. 우든 레그(Wooden Leg) 작전

1985년에 이스라엘은 키프로스 근처에서 PLO에 의해 요트에 있던 이스라엘 민간인 3명이 사망한 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튀니지에 있는 팔레스타인의 PLO 기지를 공습하였다. 자그마치 지중해 3/4 거리를 왕복하는 공습거리 2060km짜리 대장정으로 오시라크 원자로 공습을 넘어서는 이스라엘 공군 사상 최장거리 폭격 임무였고, F-15 외에는 항속거리가 닿는 기종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이글이 투입되었다. 흔히 제공형 이글이 지상 공격 능력이 없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F-15에도 CCIP, CCRP 등의 투하 모드를 지원하여 F-16과 동등한 무유도폭탄 정밀운용을 가능케 하는 탄도계산기능이 임무컴퓨터에 내장되어 있다. 단지 제공형 이글 운용부대의 임무 특성상 이를 써먹을 일이 거의 없었을 뿐이다. 게다가 이스라엘의 F-15B/D에는 GBU-15 TV 유도폭탄 탑재 개수가 이루어져 정밀유도무기 운용이 가능한 상태였다.

당시 총 10대의 F-15가 투입되었으며 이 중 6대는 F-15B/D, 나머지 4대는 F-15C였다. 실제 폭격 임무는 8대가 맡았으며 2대의 F-15C는 백업 개념으로 중간까지 함께 비행하다가 되돌아갔다. 이들 F-15들은 공중 급유를 받아가며 사우디아라비아나 리비아의 레이다망을 피하여 저고도로 비행하여 목표 지역인 튀니지 근처에서 급상승, 고도를 4만 피트까지 올렸다.

놀라운 점은 임무를 맡은 F-15B/D는 단순 비유도 폭탄이 아니라 GBU-15 유도 폭탄을 탑재한 점이다. 허나 이것의 운용을 위해서는 데이터링크 포드까지 달아야 하는데 GBU-15급의 2000 파운드 폭탄은 주익 하부에만 달 수 있고 데이터링크 포드는 주익과 동체 하부에만 달 수 있다 보니 남는 연료 탱크 탑재소가 없었다. 이에 F-15B/D는 각각 주익에 1발씩의 GBU-15를 탑재하고 나머지 주익에는 연료 탱크를 달았다(기체 하부에는 데이터링크). 또한 이 당시 투입된 F-15D는 당시 막 개발된 CFT틀 탑재하였다(F-15E 개발보다 CFT가 먼저 F-15 성능 개량 방안의 일환으로 개발된 시점이다). 뒤따른 F-15C는 일반 비유도 폭탄만 탑재하였다.

비행 중 1기의 F-15D의 폭탄 투하 장치에 이상이 생기는 악재에다가, 해당 지역 기상이 생각보다 안 좋아 이스라엘 공습편대는 GBU-15 투하를 위해 구름 아래로 고도를 낮춰야 했다(초기형 GBU-15는 투하 후 처음부터 끝까지 조작자가 영상을 보며 유도해야 했다.). 본래 GBU-15는 고고도에서 투하 시 40km 정도까지 활공(에 가까운 자유낙하)할 수 있으나 이렇게 고도를 낮춰야 했기에 F-15 편대는 더 위험 지역 근처로 진입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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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격 당시 F-15 건카메라에 찍힌 사진
결국 폭탄 투하 장치가 고장난 F-15D를 제외한 나머지 F-15B/D들이 5발의 GBU-15 폭탄을 투하하였으며 그중 4발이 명중하였다. 같이 동행한 F-15C들은 비유도 폭탄을 투하하였으나 앞서 폭발한 GBU-15에 의한 연기 때문에 표적에 대한 정밀 조준은 어려웠다(F-15C/D는 비유도 폭탄 투하시 레이다 조준 방식이 아닌 CCIP 모드, 즉 표적을 직접 눈으로 보며 투하할 수밖에 없다).

한편 이스라엘은 이 사건 이후 국제적인 비난을 받았으나 자신들은 정당한 자위적 행동을 강조하였다. 지중해의 거의 절반을 날아가 남의 나라 땅에 폭탄 떨구고 온 행동이...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레이건도 크게 화를 냈으며 회담을 준비 중이던 다른 아랍 국가들도 이스라엘과의 회담을 전면 중단하였고, 튀니지의 경우에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미국과도 관계가 악화되었다. 결국 이 문제는 UN 안보리까지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행동을 비난하는 결의안이 채택되었다.

이 작전을 전후로 제공형 F-15가 직접 폭탄 배달 임무에 나선 예는 거의 없다. 적어도 공식적으론...... 하지만, 실제로는 본 작전의 예와 같이 여전히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의 플랫폼으로 CFT를 단 D형을 활용하고 있다.

3.7. 예멘 내전(2015년)

사우디 공군의 F-15가 SAM을 맞아 격추되었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거짓 선전임이 밝혀졌다.

[1] F-15E는 주로 지상 공격 임무에만 투입되었기에 격추 기록이 없다. 사실 몇 번 정도 BVR, WVR를 포함하여 공중전 기회가 있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실제 격추에는 이르지 못했다. [2] 1959년 3월 22일 생으로 2024년 현재 [age(1959-03-22)]세. 베트남 전쟁 이후 미 공군 내에서 가장 에이스에 근접한 조종사였다. 1981년 22세라는 어린 나이에 공군 장교로 임관했으며, 이듬해인 1982년 조종기장을 취득한 뒤 한국 수원 공군기지에서 A-10 조종사로 본격적인 군복무를 시작했다. 1985년부터는 3년간 T-38 훈련기 담당 조종교관으로 복무하다가 1988년 F-15C로 담당 기종을 전환했다. 1991년 걸프전에 참전했으며, 자신의 F-15C를 이용하여 AIM-7 스패로우 MiG-23을, 본 문서에서 설명하는 교전에서 MiG-29를 각각 1기씩 격추했고, 1999년 코소보 전쟁 당시에는 중령 계급으로 참전, 동일한 F-15C로 AIM-120 암람을 사용해 유고슬라비아 공군 소속 MiG-29 1기를 격추했다. F-15C로만 총 3기를 격추한 셈이다. 이후 2006년에 대령으로 예편했으며, BVR 격추 기록이 많은 덕분인지 예편 후 곧장 레이시온 테크놀로지(현 RTX)의 미사일 부문에서 스카우트했다고 한다. [3] 개전 초기 영국 공군 파나비아 토네이도를 격추한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걸프전 진행 중 해당 로드리게스-언더힐 F-15 분대에 의해 전사했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 [4] 로드리게스 대위는 후일 한 기고문에서 지근거리(10NM)에서 갑작스럽게 출현한 항적에 대해 육안식별을 강제하는 교전수칙 때문에 스패로우를 사용하지 못했다고 적었다. 이 교전수칙은 F-117에 대한 오인사격 우려 때문에 설정된 것이었는데, 이날의 교전 이후 상당부분 완화된다. [5] 실전최강 전투기 대전에서 언더힐 대위가 회고한 내용에 따르면 IFF 오작동 문제로 BVR 공격을 포기한 뒤 육안식별을 시도했다고 한다. 고속으로 접근하는 펄크럼이 아군기로 표시됐는데, 아마 저 멀리 어딘가에 떠 있던 다른 다국적군 기체의 IFF 신호를 잡았던 것 같다는 게 언더힐의 추측이다. [6] 로드리게스는 근접전투에서 굳이 AIM-7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사막의 저고도에서 AIM-9 사이드와인더는 달아오른 지면의 열기에 간섭받아 빗나갈 확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증언했다. [7] 성을 Huang이 아닌 Hwang으로 적은 데서 알 수 있듯 한국계다 #. 2014년 오레건 주방위공군 제142전투비행단 부단장을 끝으로 대령 전역. 마지막까지 기종을 전환하지 않고 F-15C 파일럿으로 남았다. [8] 유사한 화재 사고 잔해를 봐도 기체 표면에 구멍이 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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