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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77년 Apple에서 만든 세계 최초[1]의 일체형 개인용 컴퓨터.2. 역사
가장 초창기의 개인용 컴퓨터 중 하나이자 그 중에서도 가장 성공한 제품으로 1970년대 말부터 80년대 전반에 걸쳐 개인용 컴퓨터 붐을 이끈 주역이었다. 1976년에 만든 Apple I의 후속작이지만 Apple I이 초창기 개인용 컴퓨터들이 그렇듯이 이게 좀 DIY스러운 반제품 상태로 판매됐던 관계로 완제품으로 나온 것은 Apple II가 최초다.아무래도 초창기에 나온 제품이다 보니 1980년대에 나온 후발 주자인 코모도어 64, MSX 등과 비교하면 하드웨어 성능이 떨어지는 편이었지만 성공한 선발 주자이니만큼 소프트웨어의 양과 질은 압도적이었으며 이를 밑천으로 떨어지는 성능에도 불구하고 경쟁 기종들에 뒤쳐지지 않는 수명을 자랑했다. 일례로 Apple IIe 플래티넘 모델은 1993년에 단종되었다! Apple IIe 카드는 1995년이나 가야 단종. Macintosh LC 475, 5xx가 1995년 단종되었는데 주변기기 제품으로서 그 때까지 Apple IIe 카드 라인업을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Apple 내부에서도 Apple II의 뒤처지는 성능을 인지하고 있어 여러 차례 업그레이드 모델을 내놓기도 했지만 1986년에 등장한 최종 테크 Apple IIGS를 마지막으로 1980년대 중반부터는 Macintosh 시리즈로 주력 사업이 바뀌면서 우선 순위가 밀려나게 되었다. 결국 1990년 무렵부터는 그 전까지 높은 연산 성능에 비해 비쌌던 가격과 홈 컴퓨터로는 적절하지 못한 그래픽 성능 등으로 비교적 부진했던 IBM PC 호환기종이 급격하게 부상하면서 Apple은 개인용 컴퓨터의 왕좌를 내주게 되었다.
3. 하드웨어
CPU로는 ' MOS 테크놀로지 6502'를 썼으며, ROM의 부트 로더에 기본적으로 Apple BASIC 인터프리터가 내장[2]되어 있어서 CP/M등의 운영체제 없이도 바로 BASIC 프로그램을 할 수 있었다. 이 'Applesoft BASIC' 인터프리터를 개발한 회사는 Microsoft였고, 스티브 워즈니악이 만든 'Interger BASIC' 인터프리터와 다르게 실수 계산도 가능했다. 그래서 정식 명칭도 Apple + Microsoft란 의미의 Applesoft BASIC. 울티마 1이 Applesoft BASIC으로 개발된 것으로 유명하다.8비트 머신들 중에서는 가장 일찍 나온 편에 속하기 때문에(1977) 하드웨어 자체의 성능은 동급의 머신들 중에서 가장 떨어지는 편이었지만 높은 시장 점유율 덕에 다양하고 품질 좋은 소프트웨어가 많아 하드웨어 열세를 커버할 수 있었다.[3] 일례로 같은 게임이 코모도어 64나 MSX로 나와있는 경우, Apple II판의 품질이 저 두 기종보다 눈에 띄게 떨어졌다. 하지만 보급률에서 앞섰던 관계로 일단 먼저 Apple II로 나오고 한참 후에 타 기종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 CPU인 MOS 테크놀로지 6502는 1.023 MHz의 클럭을 가지고 있었다. Apple IIe에서도 동일한 클럭이었고 Apple IIc Plus에 와서야 고속화가 이루어졌다. Apple IIc Plus는 Zip 테크놀로지의 CPU를 라이선스해서 속도가 4 MHz로 빨라졌다.
- 메모리 기본 사양은 ROM 12 KB, RAM 48 KB(혹은 64 KB). 64 KB는 MOS 테크놀로지 6502가 접근할 수 있는 최대의 메모리 양이다. 페이징 기법을 사용한 확장 메모리 보드를 장착할 수도 있었다. IIe부터는 128 KB까지 내장 가능하게 되었다.
- 그래픽 성능은 고해상도 모드에서 280×192 단색 or 140×192 6색[4]이다. 이 또한 워즈니악의 천재적 설계인데 위 그래픽 모드가 두 개가 아니라 그냥 280x192 한 개에 1도트당 1비트만 할당된다. 1비트라 흑백 단색이 맞는데 이웃한 2개의 도트와의 홀짝 관계 가지고 옆 비트가 비면 컬러 표시를 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홀수 픽셀은 빨강, 짝수 픽셀은 파랑 이렇게 할당하고 두 픽셀이 모두 on이면 둘 다 흰색, 이런 식이다. 7개 도트에 8비트를 할애해 한 비트는 컬러 전체 전환용(즉 7개 픽셀 전체의 색을 전환한다)으로 써서 이론적으로 6색을 나타낸다. 메모리 가격이 무척 비쌌던 당시 흑백이나 표현하면 딱 알맞는 메모리 가지고 저런식으로 컬러를 표현한 것이 당시로는 대단하고, 게임 소프트웨어의 경우 이런 컬러 구조에 최적화되게 만들어졌다.[5] RAM이 비싼 탓에 메인 메모리 겸용이며 화면은 최대 2개, 개당 16KB씩이다.[6]
- 또한 별개의 저해상도 모드가 있었는데 40x48이며 픽셀당 16색이다. 텍스트 모드와 메모리를 공유하며 40x24 텍스트 모드를 반 쪼개 4비트씩 할당하여 16색을 구현했다. 큰 해상도가 필요 없고 속도가 중요한 소프트웨어는 이 모드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역시 40x40 그래픽에 4줄 텍스트도 가능했다.[7]
- 사운드는 내장 스피커[8]뿐이었지만 머킹보드라는 일종의 사운드 카드[9]를 통해 사운드 기능을 대폭 확장할 수 있었다. Apple IIGS는 엔소닉 ES5503칩을 내장해 사운드 성능이 이전 모델에 비해 넘사벽이다.
- 보조 기억장치로는 카세트테이프 데이터 리코더 및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를 많이 썼다. Apple II의 5.25인치 외장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였던 '디스크 II'는 데이터를 읽어들이는 헤더가 하나 뿐이었기 때문에 2D나 2S와 같은 양면 디스크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디스크를 뒤집어서 넣어야 했으며, 기록을 위해 반대편에도 쓰기 금지 구멍을 뚫어주어야 했다.[10][11] 어디서 뭔가 좀 본 당시의 꼬꼬마들에게 IBM PC 호환 기종에서도 디스크 용량을 2배로 쓰겠다며 멀쩡한 디스크에 쓰기 금지 구멍을 뚫게 한 오해의 원흉. 참고로 IBM PC 호환 기종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는 헤더가 2개라 양면에 기록된 데이터를 자동으로 읽어들일 수 있어 디스크를 뒤집어 삽입할 필요가 없었다.
IBM PC처럼 아키텍처가 공개되어 있어서 호환 기기가 많이 출시되었지만[12], 호환 기기가 많아봤자 Apple에게 득보다 실이 컸기 때문에 그 이후로 지금까지 Apple은 폐쇄 아키텍처 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당대의 업계 최선두 주자였기에 희한한 주변 기기도 나왔는데, 80자 텍스트 확장 카드(일명 바이덱스 카드)나 모뎀, 네트워크 어댑터 등은 물론이고 별도의 프로세서를 박은 가속 카드나 보조 프로세서 카드, 심지어는 오늘날의 SSD의 조상뻘쯤 되는 램 디스크까지 있었다. 1984년의 카탈로그에서 Solid-State-Disk,
확장 슬롯은 총 8개 (0~7)가 준비되어 있는데 호환 제품에 따라서는 확장 카드를 마더보드에 내장한 경우가 많아 8개가 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확장 슬롯에 연결된 카드의 기능은 PR# + 확장 슬롯 넘버 명령어 입력으로 활성화시키는데[14] 이유는 모르지만 확장 카드 종류 및 기능에 따라 특정 번호의 슬롯을 사용하는 게 일종의 관행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확장 슬롯이 8개나 늘어서있는 모습이 보기 싫다고 2개로 줄이자는 의견을 내놓았지만 스티브 워즈니악은 8개를 2개로 줄여서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없다는 이유로 잡스의 의견을 무시했는데 결국 그 확장성이 신의 한 수가 되었다.[15]
확장 슬롯이 8개였다고 하지만 슬롯별로 연결하는 하드웨어는 거의 관용적으로 정해져 있다.
사실상 용도가 고정된 슬롯 [16][17]
- 슬롯 1: 프린터
- 슬롯 2: 모뎀
- 슬롯 3: 비디오 카드. Apple IIe부터는 80자 텍스트 카드 (+ 64 KB 확장 메모리) 는 3번 슬롯으로 인식된다.
-
슬롯 6: 디스크 II 외장형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사실상 디폴트. 대부분의 소프트웨어는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가 6번 슬롯에 연결된 것으로 가정 되고 개발되었다
(PR#6 명령이 기억나는가!?)
위 3종 보다는 덜하지만 관용적으로 따르는 슬롯 배치
- 슬롯 4: Clock 카드, 메모리 카드[18]
- 슬롯 5: 머킹보드, 3.5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19], 하드디스크 드라이브.[20]
- 슬롯 4 or 7: 마우스 인터페이스 카드
- 슬롯 7: Apple셰어 카드
4. 비디오 및 오디오
비디오 출력 단자는 RCA 규격 컴포지트 비디오 출력 단자이다. Apple II는 컬러 영상으로 출력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당시 애플 로고의 무지개색 사과가 컬러 기능이 있음을 홍보하는 것이다.그래픽 모드에서는 280×192 해상도에서 4색[21]으로 출력할 수 있었고, 텍스트 모드에서는 가로 40자, 세로 24줄로 16색을 지원하였다. 당시 대부분의 8비트 PC들이 지원했던 준그래픽 모드(semigraphics mode)에서는 7×4 해상도의 블럭을 40×48 블럭들로 표현할 수 있었고, 여기서 16색을 지원했다.
허나 당시 컬러 모니터는 매우 고가품이라 대부분의 사용자는 단색(모노크롬) 모니터를 이용하였다. 모노크롬 모니터는 단색 계조(Greyscale) 표현조차 지원하지 않는 매우 단순한 물건이었지만, 대부분의 개발자들이 단색 출력을 염두에 두고 프로그램을 만들었기 때문에 사용이 불편하지는 않았다.
사실 Apple II의 컬러는 '컴포지트 아티팩트 컬러'라는 기법으로 표현되었다. 당시 아타리 8비트 컴퓨터 시리즈나 MSX 등의 8비트 컴퓨터들은 저렴한 사양에도 컬러를 표현하거나 더 많은 컬러를 표현하기 위해 상세한 기법은 조금씩 달랐어도 흔하게 사용되었다. 심지어는 CGA에도 사용되었다. 애플 II의 컴포지트 아티팩트 컬러 기법은 스티브 워즈니악이 고안했으며 자세한 내용은 링크를 참고하자. #
컬러 모니터가 매우 비쌌기 때문에, 대용으로 TV를 사용하기도 했다. 당시 컴포지트 비디오를 TV 안테나용 동축 케이블에 연결할 수 있는 변조기가 흔했기 때문이다. 물론 화질은 너무 흐려 텍스트 모드에서 글 읽기가 불편할 정도로 떨어졌다. 허나 이를 VCR에 연결해 컴퓨터 화면을 녹화하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었으며 이는 당시 컴퓨터 화면의 녹화에 이용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단 중 하나였기에, 교육용으로 널리 이용되었다.
Apple II는 기본으로 내장 스피커로 오디오를 출력할 수 있었는데, 부팅 또는 오류 발생 시 삑 소리를 내는 기능밖에 없는 단음 스피커였다. 허나 스피커 소리의 피치를 조절해 음성을 출력하는 게임( 캐슬 울펜슈타인 등)이 만들어지기도 하였으며, 머킹 보드 같은 확장 슬롯에 장착하는 사운드 카드를 이용해 다채널 PSG 음악을 재생할 수 있다.
5. 운영 체제
하드웨어 목록에서 상술했 듯이 Apple II는 ROM에 BASIC 인터프리터를 집어넣어 별도의 운영 체제 없이도 동작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1978년 Apple에서 디스크 II 출시 이후, Apple 역시 다른 컴퓨터 회사들과 같이 운영 체제를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에 넣어 보급하기 시작했는데 <Apple DOS(Disk Operating System)>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Apple DOS는 버전 3.0을 시작으로 1980년까지 3.3까지 업데이트했다. Apple DOS 최종 버전이었던 3.3에서는 파일 시스템을 개선해 디스크 포맷 용량이 증가했으며(113.75 KB→140 KB) Apple II에 있었던 슬롯 0에 'Apple II 랭귀지 카드'나 '펌웨어 카드'를 꽂으면 Integer BASIC 인터프리터와 Applesoft BASIC 인터프리터를 선택 가능할 수 있게 만들었다.
1983년에 Apple은 Apple DOS를 Apple III에 쓰였던 운영 체제 SOS를 참고해 만든 <ProDOS>로 대체했다. 이후 ProDOS는 Apple에서 오랜 기간 동안 발매했던 Apple II의 주력 운영 체제가 됐다. 다만 ProDOS는 오랫동안 사용되었던 것이 원인이었는지, 버전에 따라 구동 가능한 Apple II 모델에 제한이 있었다.
- ProDOS 8 1.x: 최초의 ProDOS 1.x 버전은 1.0. 모든 Apple II에서 구동이 가능했으나, 64 KB의 RAM이 필요했다. 그러므로 Apple II나 Apple II 플러스의 경우에는 슬롯 0에 Apple II 랭귀지 카드나 펌웨어 카드 같은 확장 메모리 카드를 꽂아야 했다. 최종 버전은 1990년 6월에 출시한 1.9이었다.
- ProDOS 16: Apple IIGS 전용 ProDOS. Apple IIGS와 함께 출시했다. ProDOS 16이 나오면서 Apple은 기존의 ProDOS를 ProDOS 8로 개명했다. 그러나 2년 만인 1988년 Apple 최초의 컬러 GUI 운영 체제 <GS/OS>가 나오면서 지원이 끊겼다. 최종 버전은 1988년 7월에 출시한 1.6이었다.
- ProDOS 8 2.x: 1992년 1월에 출시했다. 65C02 CPU가 들어간 애플 II 컴퓨터 모델만 구동 가능했다. 요구 RAM 용량이 128 KB인 관계로, 애플 IIe Enhanced의 경우 추가 RAM이 달려 있는 Apple IIe 보조 카드를 꽂아야 했다. 최종 버전은 1993년 5월에 출시한 2.0.3이었다.
6. 모델
6.1. Apple II
1977년 6월 10일 발매. 발매 당시의 가격은 1298 달러였으니 (당시 한화 약 63만원) 당시 물가를 생각하면 꽤 비쌌던 편으로[22] 이 시절에 컴퓨터라는 물건 자체가 아무나 쓰는 물건이 아니라서 더욱 그랬다.[23] 최초의 II 시리즈이며 스티브 워즈니악이 하드웨어 설계, Integer BASIC 인터프리터까지 다 만들었다. 기본 구조는 이 때 다 완성되었다고 봐도 좋다. 부팅할 때 나오는 타이틀에 APPLE ][ 라고 나왔기 때문에 클래식 컴퓨터 매니아들은 지금도 Apple II의 II를 ][로 쓰는 일이 많다. 기본적인 사양은 대략 다음과 같다.
- CPU : MOS 테크놀로지 6502 1.023 MHz
- RAM : 4 KB[24] 보드 상에 48 KB까지, 슬롯에 Apple II 랭귀지 카드나 펌웨어 카드로 64 KB까지 확장 가능.
- 사운드 : 5 V 스피커
- 확장 슬롯 : 8개
- NTSC TV 출력 기능
- 그래픽
- 텍스트 모드: 40자×24줄 단색 (반전, 점멸 표시 가능)
- 준그래픽 모드: 7×4 크기 블럭, 40×48 16색
- 그래픽 모드: 280×192 4색
- 발매 초에는 카세트테이프 데이터 리코더를 저장 장치로 사용했으나 1978년 디스크 II를 발매를 통해 플로피 디스크로 바뀌었다. 참고로 스티브 워즈니악과 랜디 위긴턴 같은 Apple 엔지니어들이 설계했다. # #
- 키보드 입력은 소문자 입력도 안 될 뿐더러, 현재 흔히 쓰이는 특수 문자들 중 일부는 입력이 불가능하다. 특수 문자 배열도 지금 보편적으로 쓰는 키보드의 배열과 다르고[25] 일본 JIS 키보드와 유사하다.[26]
- 키보드에 REPT라고 리턴키 좌측에 아주 특이한 키가 하나 있다. 이건 Repeat의 약자로 동일한 키를 반복 입력할 때 같이 누르는 용도로 사용되었는데 그 때문에 Apple의 키보드는 아무리 오래 누르고 있어도 자동 반복 입력이 되지 않는다.
- 반도체의 집적률이 별로 높지 않고, 이른바 VLSI 조차도 아직 상용화되지 않았던 시절에 만들어진 물건이다보니 메인보드에 IC 칩들로 가득하다. 스티브 워즈니악이 시중에서 흔히 구할수 있는 부품들을 가지고 구현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48 KB 버전을 기준으로 할때 2 KB(16 Kbit)짜리 RAM 24개에, 50개 가까운 TTL(Transistor-Transistor Logic)칩들이 박혀있고, 여기에 CPU와 ROM등을 더하면 80개 이상의 칩으로 구성된 자태를 자랑한다.[27] 이 거대하고 복잡한 보드는 1979년의 Apple II Plus에서도 그대로 유지되다가, 이후 Apple IIe를 출시하면서 20개 남짓의 칩으로 줄었고 크기도 조금 작아졌다.
- 조이스틱, 혹은 조이패들[28] 커넥터가 특이하게도 일반 IC 칩의 소켓 형태로 되어있다. 상판을 열고 내부를 보면 확장 슬롯 옆에 마치 IC 칩이 하나 빠져서 소켓만 남은 것 같은 모습이 보이는데 바로 거기에 IC 칩 형태의 8개의 발이 달린 조이스틱 커넥터를 끼우게 되어있다.
6.2. Apple II Plus
파일:external/tanrunomad.com/1iiplus.jpg1979년 출시. Microsoft가 개발한 Applesoft BASIC 인터프리터를 ROM에 내장했다.
- 한국에서 많이 보급된 소위 Apple 2는 이 Apple II+의 호환 기종이다. 정확히는 이것의 세운상가표 클론(멜론 II라든지)[30]+소문자 지원+한글 내장된 형태. 소문자 지원은 오리지널 Apple II Plus에는 없던 것인데 Apple IIe의 것을 참고해서 만들었으나 문자만 박아 넣은 것이기 때문에 소문자로 명령어를 입력할 수는 없었다. 요컨대 클론 Apple II의 BASIC 인터프리터에서 HOME은 명령으로 인정이 되지만 home이라고 치면 에러가 난다는 이야기. 한글은 하드웨어 내장형도 있었지만 call-3327로 대표되는 소프트웨어 구현 방식이 더 보편적이었다. 한글 코드는 주로 n바이트나 3바이트 조합형.
-
내장된 Applesoft BASIC 인터프리터는 스티브 워즈니악의 Integer BASIC 인터프리터보다 기능이 크게 늘어나고 실수 계산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산술 연산을 무조건 실수로 처리해 버리는 바람에[31] Integer BASIC 인터프리터에 비해 정수 연산이 느렸다.
Microsoft가 손 대면 다 왜 이런 거냐.Applesoft BASIC 인터프리터은 어셈블리 코드가 비슷했던 탓에 Microsoft가 다른 데 납품한 MOS 테크놀로지 6502 기반 컴퓨터의 BASIC 인터프리터(예를 들면 코모도어 64 BASIC 인터프리터)들과 비슷했다고 한다. 참고로 Apple Integer BASIC 인터프리터의 원래 이름은 그냥 Apple BASIC이었는데 Applesoft BASIC 인터프리터가 나오면서 Integer BASIC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 Apple II에 내장되었던 미니 어셈블러가 빠졌다.
- 일본과 유럽 시장용으로 J-Plus , Europlus가 나오기도 했다. 미국의 원본 II+와 별다른 차이는 없고 캐릭터 셋에 해당 국가에서 사용하는 문자를 추가 시킨 정도의 조정을 한 버전.
6.3. Apple IIe
1983년 출시된 II Plus의 업그레이드 모델. e는 enhanced의 e다. Apple IIe야 말로 Apple II 시리즈의 스펙의 완성형이라 할 수 있다. 최종 테크인 Apple IIGS는 하위 호환이 가능할 뿐 새로 추가된 기능들은 기존의 Apple 시리즈와 많이 이질적이었기 때문. 한국에서는 Apple II Plus 계열 클론이 압도적이었고 뒤늦은 1988년께에 와서야 MR-128을 비롯한 Apple IIe 호환 기종이 들어와서 그다지 보급률이 높지 않았지만, 미국에서는 가장 많이 보급된 모델이 IIe였기 때문에 미국에서 Apple II 하면 떠올리는 기종은 한국과 달리 대개 Apple IIe다. Apple III의 기록적인 폭망(...)으로 맛이 간 Apple을 구원한 것이 바로 Apple IIe였다고 한다. 여전히 동시대의 경쟁기들에 비하면 비교적 떨어지는 성능을 지니고 있었지만 기존의 넓은 Apple II 인프라를 그대로 이용할 수 있으면서 Apple IIe 전용 소프트웨어는 이전보다 크게 나은 성능을 제공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10년간 판매된 기종이라 버전이 나뉘지만 스펙 상 크게 2가지로 나눈다. 상세 스펙은 Enhanced 모델을 기준으로 기록한다.
6.3.1. 오리지날 Apple IIe
기존 50핀 Apple II 버스 슬롯 외에 60핀 보조 슬롯 등장. 여기에 메모리 확장 카드나 80자 텍스트 카드를 장착했다. 초기 모델은 고해상도 그래픽도 안됐다. Apple IIe임에도 불구하고 컴퓨터를 켜면 APPLE ][라고 떴다고.6.3.2. Apple IIe Enhanced
1985년 출시된 Apple IIe의 발전형. 보통 Apple IIe라고 하면 이 인핸스드 사양을 가리킨다.- CPU: NCR 65C02 1.023 MHz. 몇 가지의 명령어와 어드레싱 모드가 추가되고 버그 수정과 비정규 코드가 제거되었다. 동작 속도 자체는 6502와 차이가 없었지만, 추가된 명령과 모드를 사용해 어셈블리어 코드를 최적화시켜 작성하면 한 10% 정도의 성능 향상이 있었다고. 다만 버그와 비정규 코드 제거로 인해서, 기존에 이를 이용해 작성되었던 코드는 동작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6502와 완전한 호환성은 없었다고 한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볼때 가장 눈에띄게 향상된 점은 무려 20분의 1로 줄었다는 소비 전력이지만......애초에 6502는 고작 트랜지스터 3천개짜리 칩이고, 원래의 6502가 소모하던 20배의 전력이라는 게 0.5W에 불과하다보니 줄어도 전혀 티가 나지 않아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장점이었다.[32][33] 명색이 '휴대용'인 IIc에서는 다소나마 가치가 있었겠지만, IIe에서는 아마 IIc와의 부품 통일에 의한 원가 절감에 보다 주안점이 있었을듯.
- RAM: 64 KB. 최대 1M 이상까지 확장 가능. 80자 텍스트 기능을 겸한 64KB 메모리 카드를 꽂아 128KB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Apple Works와 같이 다다익램인 프로그램들은 당시에도 존재해서 512KB나 1메가 용량의 메모리 카드도 유통되었다. 당시 잡지 광고를 보면 1.5MB짜리도 있었던것 같고, 주문하면 2MB에서 16MB까지도 만들어 주기는 했던 모양.
- 그래픽
- 텍스트 모드: 40자×24줄 단색
- 그래픽 모드
- 40×48 16색, 280×192 6색
- 80×48 16색(Double-Low-Resolution), 560×192 16색(Double-High-Resolution) - 이 두 가지 모드는 확장 슬롯에 꽂는 64KB 추가 메모리가 있는 80자 텍스트 카드가 필요했다.
- 미니 어셈블러 내장.
- 타이틀 표시가 Apple //e로 변경.
- 키보드 배열을 변경. 상, 하 화살표 키와 오픈/클로즈 Apple키가 추가돼 전반적으로 오늘날의 Windows나 Mac 키보드와 유사한 배열 상태를 가지게 되었다.
- IIc에서 도입된 메모리 관리 전용칩을 사용해 보드가 조금 더 단순해졌다. 이것이 II 시리즈 보드의 사실상 최종판이며, 이후 플래티넘 버전에서도 메모리가 8KB 8개에서 32KB 2개로 바뀐것을 제외하면 이 보드를 그대로 사용한다.
6.3.3. Apple IIe 플래티넘
1987년 1월에 출시된 Apple IIe의 마지막 버전. 키보드에 키패드를 추가하고 Frog 디자인의 스노우 화이트 디자인 언어를 적용해 Macintosh처럼 바뀌었다.[34] 또한 Apple IIe 보조 카드의 기능이었던 80자 텍스트와 RGB 카드를 이미 내장했다. 참고로 1993년 11월 15일까지 생산해, 가장 마지막까지 생산된 Apple II 시리즈이다.
- CPU: NCR 65C02 1.023 MHz
- RAM: 128 KB
- 그래픽
- 텍스트 모드: 80자×24줄 단색
- 그래픽 모드
- 40×48 16색, 280×192 6색
- 80×48 16색(Double-Low-Resolution), 560×192 16색(Double-High-Resolution): IIe Enhanced와 달리 80자 텍스트와 추가 메모리가 내장되어 생산되었으므로 자체적으로 지원한다.
- 한국에 출시된 Apple IIe 호환 기종이었던 미래교역 MR-128은 이 플래티넘을 기반으로 했다. 실제 생긴 것도 Apple IIe Platinum과 거의 비슷. [35]
6.4. Apple IIc
1984년 4월 24일에 발매했다. c는 Compact의 약자로 본체 크기가 지금의 13인치 노트북 정도의 크기로 작아지고 여러 인터페이스 카드를 내장 시킨 휴대용 올인원 컴퓨터 모델이었다. 모니터 별도에 전원 어댑터가 벽돌만 하고 배터리도 없다. 들고 다닐 수 있다는 데 의의(들고 다니라고 핸들도 달려 있다!!)를 뒀다. Macintosh 출시 몇 달 후 Apple II Forever 행사에서 발표했다. 의도된 것이었다고는 하지만 Apple II를 쓰는 이유라 할 수 있는 확장 슬롯이 아예 없어서 실패작 취급을 받았다.[36] 1986년에 Vtech에서 발매한 복제품 Laser 128은 Apple II와 같은 규격의 확장 슬롯 하나를 외부에 설치했으며, 여기에 연결해서 두 개의 슬롯을 제공하는 확장 슬롯 유닛도 발매되었는데, 이 슬롯들은 5, 7번으로 인식되어서 머킹 보드등을 사용할 수 있었다. 당시 Vtech는 Laser 128 광고에 '확장 슬롯이 없는 컴퓨터는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뒤쳐지는 막다른 골목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고 계셨습니다.'[37]라고 했다.
- 내장된 인터페이스 카드
- 슬롯1 : 시리얼포트 프린터
- 슬롯2 : 시리얼포트 모뎀용
- 슬롯3 : 80컬럼 출력
- 슬롯4 : 마우스 컨트롤러
- 슬롯5 : 3.5인치 FDD 컨트롤러 ( 연결했을 경우만 인식된다)
- 슬롯6 : 5.25인치 FDD 컨트롤러 (내장 FDD은 슬롯6 드라이브1 로 인식된다)
- 스티브 잡스가 지지한 'Frog 디자인'의 '스노우 화이트 디자인 언어'가 최초로 반영된 제품으로, 스티브 잡스의 취향이 반영된 디자인이다. Macintosh도 Macintosh Plus와 Macintosh SE 사이에 디자인이 확연히 달라진다. 참고로 스노우 화이트 디자인 언어는 Macintosh SE부터 1990년 IIfx까지의 모든 Macintosh 디자인에 쓰였다. [38]
- 내부 ROM에 따라 버전이 4개로 갈린다. BASIC 에서 PRINT PEEK(64447) 를 실행한 값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
- 오리지널 Apple IIc(ROM 버전 255)
- 최초 출시 버전. 디스크 포트에 5.25인치 외장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1대만 연결 가능. 후에 시리얼 포트 타이밍 문제가 수정되었다.
- 일명 "모기장 키보드"라 부르는 독특한 스프링 방식의 키보드가 사용됨.[39]
- Apple '유니디스크' 3.5 지원(ROM 버전 0)
- 메모리 확장 지원(ROM 버전 3)
- 메모리 확장 수정(ROM 버전 4)
Apple 유니디스크 3.5인치 외장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지원.
XON/XOFF 지원.
Apple II GS 출시와 동시에 발매. 키보드가 알프스제로 변경. [40]
IIc 메모리 확장 카드 지원. 마더보드에 34핀 소켓이 추가됨. 최대 1M 추가 가능.
IIc 메모리 확장 카드 구매자에게는 구버전 마더보드 무료 교체 제공.
메모리 확장카드 슬롯이 4로 할당됨. 기존 마우스용 슬롯 할당은 4에서 7로 변경.
키보드 버퍼링 펌웨어 버그 픽스.
어드레스 버그 픽스. 메모리 확장 카드 인식률 개선.
Apple IIc 메모리 확장 카드 구매자에게는 구버전 마더보드 무료 교체 제공.
- Apple IIGS 출시와 더불어 Apple IIc 키보드도 알프스제로 바뀌었다. Apple IIGS의 키보드와 동일한 키감. 컬러로 플래티넘으로 변경.
-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모델이었으나 최근은 이베이로 많이 보급된 상태.
-
Apple 플랫 패널 디스플레이라 불렸던 LCD도 출시됐지만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쓰레기 같은 물건이라고. 그래도 이베이에서는 비싸게 거래된다.
- 알프스 키보드 모델은 A2S4100, 구모델은 A2S4000으로 모델명이 다르다. 키감의 차이는 넘사벽.
- 키보드 패널 모서리를 라운드딩 처리하기 위해 Esc, Delete, Caps Lock, Down 화살표 키는 한 모서리씩만 라운딩된 별도 부품으로 만들어졌다. 각진 모서리를 혐오하는 스티브 잡스의 흔적.
6.5. Apple IIc Plus
1988년 출시된 Apple IIc의 업그레이드 모델. 대만 Vtec의 Laser 128시리즈[41]와 경쟁하기 위한 모델이라는 얘기가 지배적이었다. Apple이 신발매한 최후의 Apple II 모델이다. 1990년 11월 단종.
- Apple 3.5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내장했다.[42]
- Zip 테크놀로지의 CPU를 라이선스하여 클럭이 4MHz로 빨라졌다. 게임 등의 프로그램 호환을 위해 1.023 MHz로 동작시킬 수도 있었다. [43]
- 전원 어댑터를 본체에 내장. 기존 Apple IIc의 악명 높았던 전원부를 주렁주렁 달고 다닐 필요가 없어졌다.[44] [45]
- 시리얼 포트가 mini DIN-8로 변경. Apple IIGS, Macintosh와 동일 사양.
- 헤드폰 잭 제거.[46]
- 40/80자 스위치 제거. 대신 슬라이드식 볼륨 조정 으로 변경됨.[47] [48]
- 키 배열은 Apple IIGS, Macintosh와 유사하다. Open Apple, Closed Apple키를 Command, Option으로 변경했다. [49]
- ROM 버전은 "5".(PRINT PEEK(64447) 리턴값)
- IIc 는 유럽키보드 사양이 있었으나, IIc Plus는 영문키보드만 존재.
지금 시점으로 보면 뜬금포 같은 기종이다. 이미 Apple은 Macintosh에 집중하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Vtec은 Apple IIc Plus에 대항하기 위해 Laser 128EX, Laser 128EX/2 모델을 출시하였다.
6.6. Apple IIGS
1986년 9월 15일 출시. 발매 초 가격은 999 달러.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고.
ADB(Apple Desktop Bus)가 가장 먼저 도입된 컴퓨터다.
6.7. Apple IIe Card
1991년 3월에 출시. Macintosh LC 시리즈용 하드웨어 에뮬레이터 확장 카드. 이것을 Macintosh LC PDS(Processor Direct Slot)에 장착하고 IIe 아이콘을 실행하면 Apple IIe Enhanced로 부팅된다. 교육용 Apple II 소프트웨어를 다수 갖고 있어서 Macintosh 도입을 망설이는 교육 기관에 Macintosh를 팔기 위해 개발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고.
7. 대한민국에서의 Apple II
한국에서 가장 많이 보편화 된 기종은 Apple II Plus이다.[50] Apple II 클론 모델들은 1983년을 기점으로 세운상가의 컴퓨터 매장에서 만들어 많이 보급했다. 물론 그 이전인 1980~1982년에 세운상가에서 Apple II 클론을 만들기는 했으나 이쪽은 대부분 구형 II. 1983년이 기점이 된 이유는 그 해 전두환 정부에서 '정보산업의 해'로 선언하고 8비트 컴퓨터 5종을 교육용 컴퓨터로 지정하여 학교에 보급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해당하는 5종의 컴퓨터에는 Apple II Plus 호환기종인 삼보 트라이젬 20이 포함되어 있었고 차후의 사업에서도 Apple II 호환기는 교육용 컴퓨터로 지정되어 학교에 보급했다.[51]1980년대 초중반부터 업무용/교육용/게임용으로 많이 팔린 기종 중 하나로서, 1980년대 컴퓨터 학원이 생기고 개인용 컴퓨터 붐이 일어나면서 세운상가제 Apple II Plus 클론의 보급이 늘어났다. 한국에 팔린 Apple II는 99.9999% 한국에서 제조된 클론이거나 혹은 대만산 호환 기종이었으며 오리지널 Apple II는 그 당시 거의 볼 수 없었다.[52] 역설적으로 오리지널 Apple II 시리즈는 근래 들어 한국에 더 많아졌는데 아래에 소개된 동호회에서 이베이 등을 통해 중고품을 낙찰받아 수입하기 때문. 참고로 스티브 잡스 사후 오리지날 Apple II는 이베이 시세는 이전보다 비싸진 것은 물론이고 매물 자체가 씨가 마른 상황이다.
당시 문교부(현재의 대한민국 교육부와 문화부)가 선정한 교육용 8비트 컴퓨터 중 하나이기도 했으나 대기업에서는 대우전자 IQ-1000/2000을 필두로 하는 MSX 계열, 삼성전자의 SPC-1000/ SPC-1500, 금성 패미콤 시리즈 등 일본산 컴퓨터의 클론 제품을 중심으로 생산하였고 Apple II 계열은 거의 생산하지 않았다. 효성컴퓨터[53] PC-8000 같은 대기업제 Apple II 클론이 아주 없던 것은 아니었으나 드물었고 기본적으로 Apple II는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한 중소기업 진영의 메인 기종이었다. 오늘날의 삼보컴퓨터를 있게 한 히트작 '트라이젬' 시리즈도 Apple II 호환 기종이다.[54]
그럼에도 불구하고 Apple II의 보급률은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대기업 제품에 뒤지지 않았는데, MSX와 SPC-1000는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가 본체(대략 30만 원 대)와 맞먹는 충공깽의 가격을 형성하여 본체만 구입하고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구입하지 못하는 사용자가 매우 많았지만 Apple II 클론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는 가격이 매우 저렴하여(대략 10만 원 대 초중반) Apple II의 본체+모니터+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의 가격이 MSX/SPC의 본체+모니터의 가격과 비슷했다. 이는 MSX 등이 플로피 디스크의 양면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도록 2개의 헤더를 채용한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쓰는데 반해, Apple II의 디스크 II는 헤더를 하나만 채용한 단면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라 가격이 저렴했던 것이 이유였다.[55] 타 기종 소유자들이 테이프로 힘겹게 쓰고 있을 때 Apple 사용자들은 플로피 디스크로 쾌적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1985년 당시 MSX 본체는 30만 원, 14인치 컬러 모니터 역시 40만 원 가량이었다. 게다가 대우전자에서 MSX용으로 내놓은 싱글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가 49만 9천 원 더블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가 79만 9천 원이었으니 가격이 실로 후덜덜해진다. Apple II 본체와 단색 모니터(Apple II의 형편없는 고해상도 컬러 기능 때문에 컬러 모니터가 사실 상 필요없었고 오히려 단색 화면이 깔끔했다.)와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갖추는 데 드는 비용은 당시 40~45만 원 정도. 참고로 1985년 당시의 물가를 살펴보자면 짜장면이 500원, 서울 지역 국공립대 등록금이 24만 원, 삼성전자 대졸 초봉이 55만 원, 독방 하숙비가 7만 원 정도, 사립대학 평균 한 학기 등록금이 50~60만 원 정도, 개포동 주공 아파트 11평형이 1200만 원 정도였다. 지금 물가로 보면 당시 PC를 갖추는 비용이 얼마나 거금인지를 알 수 있다.[56]
Apple IIe/IIc/IIGS 같은 후기 모델들은 Apple II+와 달리 한국에서 그다지 흥하지 못했다. 이 기종들은 1988~1989년을 기점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는데 Apple IIe 호환 기종은 1987년 말~1988년 초쯤 등장한 미래교역의 MR-128이 거의 유일한 모델이었고 Apple IIc 계열도 비슷한 시기에 수입된 대만제 LASER128이 있기는 했으나 양쪽 다 보급률은 그다지. Apple IIGS는 폐쇄 아키텍처라 호환 기종도 없어 소량 수입된 것 외엔 아예 정식으로 들어온 적이 없다. 현재 한국에 있는 Apple IIGS 물량 대부분은 한참 지나서 애호가들이 이베이 등에서 들여온 것. 그리고 1989년엔 8비트 시장 전체에 재앙이 다가오고... [57]
MSX를 사주면 게임만 한다고 학부모들은 교육용으로 Apple II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었다. 실제로 MSX를 가진 소년들은 재믹스를 가진 친구들과 팩을 서로 빌려가면서 신나게 게임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Apple II라고 게임을 못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교과 학습용 프로그램은 Apple II가 더 빈약했다. MSX2나 SPC 시리즈 쪽은 제조사가 대우, 삼성이라는 당시 대기업이었고 한글이나 그래픽 지원이 좀더 원활한 덕에 제조사의 지원 하에 초중고교 교과 학습용 프로그램이 상당수 개발되어 학년·과목별 소프트웨어가 제법 갖춰졌지만 Apple은 그런 지원을 받기 어려웠기 때문.
여담으로 1980년대 초중반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의 군북초등학교는 총 학급수 12학급의 면소재지 학교 주제에 효성 PC-8000 40대(!)로 무장한 컴퓨터실이 있었는데, 군북면 신창리가 고향인 효성그룹 조홍제 회장이 작정하고 밀어준 것이었다.[59] 이 학교는 심지어 이 문서에 나와 있는 애플2 플러스 원본 기종에, 일부 MSX까지 구비하고 있었다. 이러다보니 군북초는 88올림픽 하던 시절에 전산 발매 성적표를 찍어내는 용자짓을 하기도 했다. 당연히 도시 학교들도 죄다 선생님이 수기로 성적표에 행동발달상황 등을 기재하던 시기. 그러나 도시 인구집중 가속화로 인해 이 학교의 컴퓨터 특화사업은 8비트 시대와 함께 끝나고 말았다. 교육용 PC 사업이 IBM으로 넘어갔는데 조홍제 회장 타계와 함께 효성그룹 지원이 끊기면서, 16비트 IBM PC는 열악한 군 교육청 재정으로 충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덕택에 시골 학생들이지만 당시 해외기술의 총아(...)이던 컴퓨터란 물건을 만져 볼 기회를 가질 수 있는 학생들이 있었고, 일부는 서울대학교 등을 거쳐 출연연이나 IT바닥에서 근무하고 있다.
8. 기타
- 후속작인 Apple III는 Apple의 흑역사로 유명한 패배 하드웨어. 자세한 내막은 해당 항목 참고.
- 도스 프로그램의 기계어/어셈블리어 버전 프린트물이 웹상에 존재한다. 그것도 주석까지 친절히 달려 루틴별로 나뉘어 있다. 그야말로 컴퓨터 계의 고대 문서이다. #
- 넥슨컴퓨터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데 상태가 민트급 이상이다.
- Apple 스티커가 동봉된 최초의 디바이스이다. Apple II를 시작으로 현재까지도 꾸준히 제품 내에 스티커를 동봉해주는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
- Apple IIc가 물 속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 스마트 워치로 재탄생했다. Apple 2 Watch
- 제임스 그레이의 2022년작 영화 아마겟돈 타임에 중요한 물건으로 등장한다.
9. 현재의 가치
- 레어 모델은 가격이 매우 비싸다.[60]
- Apple II 오리지날[61]은 이베이에서 씨가 말라 빈티지 아이템 등극. 이미 수집가 손에 다 들어갔고 드문 드문 나오는 것도 멀쩡한 물건은 잘 없다. 1000 달러 이하는 없다시피 하다.
- Apple II Plus는 돌릴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제한적이라 수집용이 더 적합.[62] 가격은 II 오리지날 다음으로 비싼 편.
- 게임 용도라면 Apple IIe(Enhanced), IIc, IIGS가 적당하다. 워낙 미국에서 많이 쓰이던 기종이라 이베이에서 풀세트를 100~800 달러 사이에서 구할 수 있다. 성능만 놓고 보면 이 쪽이 더 좋다. 배송 중 모니터가 파손되는 사례가 자주 있으니 복불복. 모니터가 없어도 일반 비디오 출력용 RCA 연결만 된다면 TV에서도 다 볼 수 있다.[63]
- 주변기기, 확장 카드 수집에 욕심이 있다면 Apple IIe, IIGS가 적합. 그냥 올인원 하나로 편하게 놀고 싶다면 애플 IIc.
- Apple IIc Plus는 드물게 나오는 레어템. Apple II 오리지날과 반대 의미(가장 마지막을 장식하는 기종)로 수집용 아이템.[64]
-
Apple IIe 카드는 집에서 굴리는 Macintosh LC3 LC 475 컬러 클래식이 있다면 구해 볼 가치가 있다. 반드시 Y케이블을 같이 구할 것. 전용 케이블이라 자작은 사실상 불가능.[65] 이베이에 매물이 나오나 박스셋은 800 ~
400~[66] 달러 이상이며 ~가격이 올라가면서 100~200 달러 하던 시절보다는 eBay 매물은 많아진 편~.[67] - 한국에 있는 Apple II 네이버 카페와 같은 올드 Mac 동호회에 가면 가끔 국산 호환판도 보인다.
- 2024년 기준 Apple II의 이베이 가격은 모델 상관 안하고 500-1000 달러 상당으로 높아지고 있다. 앞으로 가격은 더욱 오를 것으로 보인다.
10. 함께 보기
11. 외부 링크
[1]
세계 최초의 완제품 PC는 TRS-80.
[2]
Apple II 첫 모델에는 'Integer BASIC' 인터프리터(워즈니악이 만든 정수 계산만 가능한 BASIC 인터프리터. 실수 계산은 안되지만 대신 속도는 엄청 빨랐다.)이 있었으나, Apple II Plus부터 'Applesoft BASIC' 인터프리터를 내장했다.
[3]
사실 이렇게 된 데에는 워즈니악의 공이 컸다. 애플 II가 나올 바로 그 시기에는 동 시대의 타 기종과 비슷한 수준의 하드웨어였으나 워즈니악의 천재적인 설계로 인해 확장성이 훌륭하여 원 기기의 뒤지는 성능을 보완한 많은 주변기기가 출시되어 퍼포먼스는 더 뛰어났다. 그런 고로 초기부터 소프트웨어를 많이 확보할 수 있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타사의 더 우월한 하드웨어가 나와도 어느 정도 열세를 커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언급한 코모도어나 MSX 모두 애플 II보다 5년은 더 뒤에 나온 기종이다.
[4]
8색이지만 흑백이 중복되어 있으므로 실질적으로는 6색
[5]
다만 저런 기능으로 만든 컬러이기 때문에 고해상도 컬러 화면에 텍스트가 합해진 경우는 텍스트의 색이 제멋대로가 되어 가독성이 크게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그런데 이 또한 꼼수로 해결한 게, 한 화면을 280x160의 고해상도 화면과 아래 4줄의 텍스트 모드를 섞어서 보여줄 수 있다. 그림은 고해상도 화면에 넣고 텍스트는 아래 4줄을 이용하는 것.
비욘드 캐슬 울펜슈타인 등 많은 게임이 이를 활용했다.
[6]
2개의 화면에 각각 그림을 그려 넣고 필요한 화면을 보여줄 수 있다. 이 전환은 빨라서 많은 게임 소프트웨어에서 응용되었다.
[7]
사실 1977년 당시의 PC라면 이 저해상도 모드 정도의 그래픽만 가능한 경우가 대다수였다.
[8]
1비트 비프음
[9]
모델에 따라 세부 사양은 조금씩 다르지만 제너럴 인스트루먼트 AY-3-8910 계열의
PSG와
음성지원을 위한 스피치 칩을 장착하고 있다.
[10]
이런 전용 도구도 있었다.
[11]
전용 도구가 없는 경우 보통 문구용 칼 혹은 구멍 뚫는 펀치를 주로 사용하는데 구멍의 위치가 디스크 바로 바깥쪽 아슬아슬한 곳에 위치해서 펀치를 잘못 쓰다가 디스크를 뚫어버리는 눈물 나는 사연도 드물지 않았다. 참고로 1980년대 중반 당시 5.25인치 디스크 가격은 1장에 2~4천 원 정도.
[12]
사실 공개한 것은 아니다. 구조가 간단했기 때문에 역설계(
리버스 엔지니어링)가 쉬웠을 뿐. 오죽하면 당시 컴돌이들은 "스티브 워즈니악이 조금 빨리 태어났을 뿐이지 내가 만들었다면..." 라고 생각했을까. 물론 언급한 대로 몇몇 설계는
만들어진 것을 보면 쉽지 아이디어 자체는 쉽지 않았다.
[13]
CP/M 카드란 1970년대 후반 유행한 표준 운영체제인 CP/M을 돌릴 수 있는 카드로, 해당 운영체제가
Z80 CPU를 사용하는 관계로 사실상 Z80 CPU 카드다. 메인 프로세서를 보조하는 것이 아닌 별도의 프로세서라 본체에 박혀 있는 6502와 동시사용은 불가능하고 이 카드를 동작시키면 아예 Z80 CPU가 장착된 별도의 PC가 부팅되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물론 디스크 드라이브에 CP/M 운영체제가 있어야 한다.
[14]
도스 부팅은 PR#6 이런 식으로. 단, 0번 슬롯은 이런 방식으로 활성화 시킬 수 없고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 PR#0 하면 0번 슬롯 활성화가 아니라 활성화 된 다른 슬롯을 비활성화 시킨다. 이를테면 PR#3으로 확장 비디오 카드를 활성화시킨 후 다시 원래의 비디오 모드로 되돌릴 때 사용하는 것.
[15]
정확히는 잡스가 계속 2개를 밀어붙이자 평소에는 그냥 수긍하던 워즈니악이 참지 못하고 ”그럼 너가 만들어라“라고 협박해서 잡스의 고집을 꺾었다. 이후 잡스는 매킨토시를 제작할 때 확장 슬롯을 넣지 않음으로서 자신의 이상을 실현했다(..).
[16]
원칙적으로 용도가 고정된 슬롯은 없으므로 사실상이라는 말을 붙인다. 실제로는 꼭 저 위치에 장착할 필요는 없으나 관용적으로 따름과 동시에, 적지 않은 소프트웨어는 저 슬롯에 있다는 전제 하에 개발되어서 위치를 바꾸면 동작하지 않는다.
[17]
Apple IIc 는 슬롯 1, 2, 3, 6에 하드웨어가 장착된 것으로 인식됨
[18]
애플 IIc 확장 메모리 카드는 4번으로 인식된다
[19]
애플 IIc Plus는 내장 3.5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가 5번 슬롯에 고정 할당
[20]
애플 II는 한개 인터페이스에 2개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장착할 수 있다. 2개를 초과하여 드라이브가 필요할 때 주로 여기에 인터페이스 카드를 장착한다.
[21]
후기 모델의 경우 6색.
[22]
한국으로 치면 중고 차값.
[23]
단 그걸 감안해도 Apple 의 컴퓨터는 그냥 항상 동시대의 컴퓨터보다 비싼 편이었다. 초기에는 약간의 기술적 우위가 있었고 TTL 칩을 다량 사용하는 특성 때문에 비쌀 수도 있었으나 이후 기술적 우위가 없어지고 원칩으로 대량생산하게 되는 시절에도 계속 고가였던 것은 순전히 스티브 잡스 등 Apple 경영진의 고가 마케팅으로 인한 것이었다.
[24]
당시는 4096 bit DRAM, 1024 bit SRAM 같은 게 있던 시절이다.
[25]
VAX 같은 유닉스 터미널을 써본 사람들은 그 쪽이 비슷하다고 느낄 수 있다.
[26]
숫자 2 위에 @가 아니라 "가 있다. [68]참고로 현재 우리가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키보드 배열은
IBM PC AT 발매 후에 나온 IBM 모델 M 키보드(101키)에서 유래한 것이다. 다양한 컴퓨터기종이 시장에 난립하던 1980년대에는 각 회사마다 키보드 배열 상태가 조금씩 달랐다.
[27]
이런 특징으로 인해 제3자가 기판을 복제하여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부품을 이용, Apple II 호환기종을 만드는 것이 매우 쉬웠다. 동아시아에서 8비트 컴퓨터 문화가 일찍 발현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 개발도상국의 기술력으로도 얼마든지 쉽게 복제품을 만들 수 있었고 가격도 무척 저렴하여 위에 언급한 모자란 성능에도 불구하고 가성비로 시장을 장악할수 있었다. 풍부한 소프트웨어는 덤. 어차피 동아시아의 개발도상국에서는 소프트웨어는 불법복제였으니. (취소선을 친 이유는 저작권법 미비로 불법이 아닐수도 있기 때문)
[28]
패드가 아니다 패들이 맞다. 아날로그 다이얼 2개가 한 세트로 구성되어 있다.
[29]
2년전 오리지널의 발매 당시에는 메모리 32KB 추가하는데 천달러가 넘게 들었고, 보드상의 최대 실장 용량인 48KB를 채우면 메모리 가격만으로 본체를 넘어섰다. 그 당시 기본인 4KB 버전은 위에 서술된대로 1298 달러였으나, 48KB 버전은 2638 달러(...)였다. '메모리 4KB'라는, 진짜 아무 것도 할 수 없어뵈는 물건이 기본형으로 발매된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30]
당시에는 용던 용산 전자상가는 없었다. 용산 전자상가는 세운상가의 전자 상가들을 이전할 목적으로 1987년에 조성되었다. 여담으로 그전에는 용던 자리에 청과물 시장이 있었고 이 시장이 이전한 것이 가락동 농수산물 도매 시장.
[31]
정수 연산은 일단 실수로 변환해서 연산한 다음 다시 정수로 변환해서 되돌려주는 삽질을 했다고 한다(...)
[32]
소비 전력이 이런 수준이었으므로 당연 당시의 Apple II는 CPU는 물론 파워 서플라이에도 팬이 없었다. 필요가 없으니.
[33]
트랜지스터 수십억개가 집적된 현대의 CPU, GPU의 전력 소모가 100W 남짓인 것을 감안하면 겨우 트랜지스터 3천개짜리 칩이 0.5W씩이나 먹었다는 것은 현대와의 기술 차이를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34]
모델명 폰트, 키보드 레이아웃도 Macintosh 키보드와 동일
[35]
Apple IIe Platinum은 우측에 숫자 키패드가 추가되었는데 PC키보드에 보는 4열 키패드인데 MR-128의 우측 키패드는 3열 키패드이고 사칙연산은 +, -만 있었다.
#
[36]
Apple의 예상보다는 적게 팔렸다는 의미. Apple III 같은 망작은 아니었다. Apple IIc에 도입된 기능은 일부 Apple IIe Enhanced에 추가되기도 했다.
[37]
You knew that a computer without expansion slots is a dead-end that stays behind as technology advances.
[38]
스노우 화이트 디자인에 대해서는 프로그 디자인 창립자 하르트무트 에슬링거의 도서 Keep It Simple (한국어판명 킵 잇 심플 : 애플 디자인의 시작) 에 자세히 나와 있다
[39]
키감은 최악.
[40]
모델넘버도 A2S4000에서 A2S4100으로 변경
[41]
당시 한국 PC 잡지에도 광고를 많이 했다.
[42]
하지만 대부분 소프트웨어는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로 나왔으므로 디스크 II 추가 장착은 필수였다.
[43]
내장 클럭이 없기 때문에 게임이 비정상적인 속도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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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 전원부와 3.5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는 소니가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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삑삑 소리를 헤드폰 통해 들을 이유가 있었을지. 하지만 당시 세운상가에서도 Apple II에 헤드폰 잭 추가 개조 서비스가 실제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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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80자 스위치 상태를 인식해서 화면을 띄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으나 대부분의 소프트웨어가 80자에 맞춰 나왔기 때문에 별 쓸모 없는 기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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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볼륨 조절은 하단의 다이얼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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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GS키보드와 동일한 알프스 키보드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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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잡지에서는 BASIC 소스 리스트를 게재하며 지원 컴퓨터로 Apple 컴패티블이라는 명칭을 주로 사용했기에 컴패티블의 뜻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게 Apple의 특정 모델 이름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세운상가 가서 아저씨 Apple 컴패티블 하나 주세요- 하는 식. 참고로 컴패티블의 영어는 compatible로, '호환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Apple 호환기종이라는 뜻으로, 이때는 호환기종이라는 단어가 정착되기 이전이라서 그랬다. 호환기종이라는 단어가 정착된건
IBM PC 호환기종이 보급된 1990년 무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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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후 1989년도에 정부에서 교육용 컴퓨터를 8비트가 아닌 16비트
IBM PC 호환기종으로 공식 재지정하면서 Apple 클론 및 MSX 호환 기종은 크게 쇠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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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유명했던 브랜드로는 삼보 트라이젬, 이행 사이보그, 효성 PC-8000, 그리고 정원 하트 등이 있었는데 그런 브랜드보다는 세운상가제 노브랜드 제품이 더 많이 팔렸다. 품질차이가 없으면서 가격도 더 싸고 무엇보다 저작권은 개나 주다보니 호환성이 더 좋았다. 브랜드 제품은 자사 브랜드를 어필하기 위해 Apple II Plus의 롬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약간 변형했기에 드물지만 기종에 따라 특정 게임이나 프로그램이 안 돌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당시 분위기상 굳이 저작권에 신경쓸 필요는 없었다. Apple사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으니. IBM PC의 경우 IBM이 저작권 압박을 하긴 했다. 이유인즉 Apple II 호환기종의 경우 세운상가 중소 공방이 주로 만들어 대부분 개인이나 소규모 단체에서 소비했기 때문에 압박을 해 봐야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IBM PC의 경우 대기업이 주로 생산하여 수요층도 기업체가 많았기 때문에 생산이던 소비던 개별 기업의 규모가 커서 압박이 가능했다. 당시는 베른협약 이전이라 저작권 압박을 해 봐야 얻는 것은 없었으나 IBM PC를 생산하던가 소비하는 기업체들은 수출을 주로 하는 기업도 많아서 해외 사업에 태클을 걸 수 있어 저작권 압박이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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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는 개인용 컴퓨터 사업도 했으나 이후 철수하여 B2B 사업에 집중했다. 최근에는 ATM기 만드는 효성티엔에스(구 노틸러스효성)로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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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컴퓨터의 최초 기종은 일본 샤프사의 MZ-80K/C 복제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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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당시 유통된 대부분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가 38트랙까지만 읽어들일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Apple II의 디스크 II는 40트랙을 기본으로 하고 있기에 드물게 용량을 꽉 채워 기록된 플로피 디스크는 읽지 못하고 헤더가 구석에서 딱딱 큰 소음만 내다가 오류가 났다. 그래서 나중에 40트랙을 전부 읽어들일 수 있는 조금 더 비싼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판매하기도 했다. Chinon 브랜드가 대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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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당시 많은 국민학교에서는 학부모, 특히 육성회 임원들에게 컴퓨터실 비용을 얻어냈다. 육성회장이 큰 소리 칠 수 있었던 게 이런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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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언급했지만 Apple II와 II+는 일반적인 IC를 채용하여 복제가 무척 쉬웠다. 하지만 IIe의 경우 커스텀 칩셋을 제법 사용하여 일정 규모이상 판매되지 않는 한 칩셋을 주문제작하는 게 채산성이 맞지 않았다. 대부분 중소기업, 아니 중소기업 수준도 안되는 세운상가 개별 점포에서 Apple II를 복제해서 만드는 분위기상 그런 칩셋을 만들기는 가성비가 안맞았다. 여기서 한국과 대만의 차이가 나오는데 삼성, 금성(LG) 같은 대기업 위주인 한국 분위기상 MSX 등을 밀었던 대기업이 있어 Apple II는 완전 중소기업만이 만들어 커스텀 칩셋 제조 의지가 없었지만 대만은 중견기업 위주라서 복제품 Apple II가 PC산업을 주도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IIe용 커스텀 칩셋 제조까지 손대게 되었다. 이 대만제 칩셋이 외부 판매되어 이를 수입, 1988년 한국에서도 IIe를 만들게 되는데 이 때는 이미 16비트 IBM PC 호환기종이 유행하고 있었으며 MSX의 위세도 높아서 시장성이 매우 약했다. 한 2~3년만 먼저 들어왔어도 이야기는 달랐을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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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교육용은 아니고 상식퀴즈 게임이라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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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함안 조씨 문중(효성가) 재실과 고택이 이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대략 지금의
군북역 바로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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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가 된 이상 어느 정도 시세 유지는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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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ger BASIC 인터프리터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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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티마 같은 명작은 다 잘 돌아가긴 하지만, 이미 빈티지가 된 컴퓨터에 게임 하기에는 좀 아깝지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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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HDMI만 입력 가능한 TV가 점점 많아지는 추세라
LCD 디스플레이도 구형 모델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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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5인치 FDD가 반드시 필요하므로 뉴비용 아이템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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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품을 파는 사례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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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 가격의 물건은 매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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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기준, 매물도 거의 없고. 박스셋이 00달러 이상 가격으로 올라온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