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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스리랑카 경제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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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원인
2.1. 바닥난 외화 보유고2.2. 경제 정책 실패2.3. 족벌 정치 부정부패, 그리고 갑질 만연2.4. 중국의 일대일로 영향 때문인가?
2.4.1. 그렇다2.4.2. 아니다
3. 반정부 시위 발발 및 정권 붕괴 4. 영향5. 관련 영상

1. 개요

2022년 4월 18일 연합뉴스

코로나 19 등으로 주력 산업인 관광업이 붕괴되었고, 정치인 가문인 라자팍사 가문의 족벌정치에 따른 폐단 등으로 인해 스리랑카 경제에 위기 신호가 감지되었다. 결국 2022년 4월 12일 대외부채 510억 달러(62조 9천억 원) 상환을 잠정 중단하면서 일시적 디폴트를 선언하였고, 6월 18일 국채 이자를 상환하지 못하여 정식으로 디폴트의 늪에 빠졌다. 이로 인해 스리랑카는 최악의 경제난을 겪게 되었고, 전국적으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발생하였다. 이 위기로 인해 스리랑카의 정치권력을 쥐고 있던 라자팍사 가문이 축출되었다.

2023 년 3월 20일, 스리랑카 정부와 IMF는 오랜 협상를 거쳐 경제 구조조정을 조건으로 마침내 IMF 가 스리랑카 정부에 30억 달러에 이르는 차관기금을 제공해서 간신히 국가부도는 면했다. 2022년에는 스리랑카의 GDP가 무려 -7.8% 줄어드는 큰 위기를 겪었지만 이번 경제 구조조정으로 내년 2024년부터는 경제가 다시 회복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2. 원인

2.1. 바닥난 외화 보유고

관광업 의존도가 높은 스리랑카는 지난 2019년 4월 21일 스리랑카 연쇄 폭탄 테러와 2019년 말부터 2022년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관광객이 급감하며 주요 외화 취득 수단이 사라졌다. 관광업은 스리랑카 GDP의 15% 이상을 차지하는데 여기에 공백이 형성된 것.

문제는 이런 경제상황을 오래전부터 겪었음에도 외환 위기가 발생했을 때 IMF 구제금융을 2022년에야 신청할 정도로 위기대처가 늦었다는 점이다. 시작은 1976년 타밀 엘람 해방 호랑이가 등장해 반정부 테러활동을 시작해 국내 치안이 무너지면서부터이다. 국내의 위기에 이어, 79년 중국의 개혁개방 시작으로 신흥국 투자자본이 중국으로 이동하기 시작하면서 외환수지 불균형이 가속화되었다. 그런 가운데 국내 위기가 결국 내전까지 확전되어 수습불가의 단계에 이르렀다.

스리랑카는 국제 정치학에서 가진 관계 때문에 실권자들인 라자팍사 가문이 IMF 구제금융은 물론 다른 국제사회의 개입을 계속 꺼렸다. 스리랑카의 현재 외환위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큰 나라는 현재 미국 주도의 IMF, 중국, 인도 세 나라가 있는데, 모두 스리랑카의 지정학적 이권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이를 건드리는 과정에서 현 실권 세력인 라자팍사 가문의 정권유지에 도움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

2.1.1.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으로 2020년 국내총생산지수가 3.5% 하락하고 경상수지 적자가 GDP 7.9%에 달하며 재정 적자는 11.1%를 초과했다. #

전세계적인 코로나 유행으로 스리랑카의 주요 외화획득 수단인 외국인들의 관광 입국이 코로나로 급격히 감소했고 또 해외에서 취업해서 본국에 송금을 하던 많은 스리랑카 노동자들도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귀국해 외화송금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는 스리랑카뿐 아니라 말레이시아나 태국, 필리핀, 그리스 등 여러 관광이나 해외노동자 송금에 크게 의존하는 국가도 마찬가지인 상황이지만 스리랑카의 경제구조가 취약하다보니 더 큰 충격을 받은 것.

2.1.2.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러시아 우크라이나는 스리랑카의 중요 교역국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를 즐겨 마시지만 두 나라 영토 대부분이 차나무 농사에 적합하지 않은 편이다. 그래서 스리랑카는 찻잎 수출 물량 중 두 국가의 비중이 높았는데 여기가 막혔다. 러우전쟁으로 교역 축소에 역으로 두 나라에서 수입해오던 원유와 밀 등 식량 가격 폭등도 스리랑카에게 심각한 악재가 되었다. 스리랑카는 국가발전의 30% 이상을 원유에 의존하는데 원유 공급망이 마비되면서 결국 전력난으로 이어졌다.

이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 원자재 가격이 계속 비싸지자 스리랑카는 더욱 더 외화가 고갈되어 심지어 종이조차 구할 수 없게 되었다.

2.2. 경제 정책 실패

2019년 11월 3선에 성공한 라자팍사 대통령은 전면 감세를 선언하며 15% 수준이었던 세금을 8%로 조정하고 다른 세목들도 대거 철폐했다. 하지만 이 조치로 스리랑카는 국가신용등급이 하락하며 국제금융시장에서 배제되었고 세수는 줄어들었다. 스리랑카는 채권을 상환하기 위해 외환을 소비하면서 외환보유고가 급격히 고갈되어 갔다. 게다가 스리랑카 정부는 외환이 고갈되는 와중에도 IMF와 협상을 시도하지 않았고 결국 국가부도를 맞았다.

또한 비료 수입에 들어가는 외화 유출을 막기 위해 농업 전면 유기농화를 선언하면서 화학비료 수입금지 조치를 내렸는데, 쿠바가 소련 해체 이후 식량난에 시달리다가 유기농 농법과 도시농업으로 회생한 것에 영감을 얻은 것이었다. 허나 준비되지 않은 채로 무리하게 유기농 농법을 도입하다보니 농업 생산량이 25% 이상 줄어들고 식료품 가격은 22% 이상 급등하면서 식량부족 문제까지 겪고 결국 해외에 더더욱 의지하게 되었다. 이 와중에 유럽의 빵바구니로 불리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전쟁에 돌입하여 밀 등 곡식 수출을 금지시키자 스리랑카는 더 이상 식량을 구할 수도 없어졌다. 게다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2022년 식량·에너지 위기로 인해서 스리랑카 내 식량 물가가 상승했다. 다시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고 싶어도 이를 수입하는 데 사용할 외화도 없어서 스리랑카의 농업은 붕괴 위기에 직면했다.

또한 인프라 건설을 위해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했고 그 과정에서 막대한 차관을 도입했다. 처음에야 인프라 확충으로 성장률이 높아졌지만 위의 상황이 겹치면서 채무상환을 못하여 결국 디폴트로 이어졌다.

2.3. 족벌 정치 부정부패, 그리고 갑질 만연

스리랑카 정부는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의 가족과 형제들로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마힌다 라자팍사 총리는 고타바야의 형이며 장관들도 라자팍사 가문 출신들이 채웠다. 이들은 아버지 D.A. 라자팍사, 큰아버지 D.M. 라자팍사의 정치적 후광을 물려받았는데, 그 정치적 권위는 1983년 발발한 스리랑카 내전으로 발생했다.

라자팍사 가문은 스리랑카의 절대다수 민족인 싱할라족의 최대 정치가문이었다. 이들은 과거 대영제국 식민지 시절 영국이 실론 섬 거주민의 다수인 싱할라족과 소수 타밀족이 공존하던 스리랑카의 통치를 위해 소수인 타밀족을 이용한 디바이드 앤 룰로 타밀족에 특혜를 몰아준 것에 대해 불만을 품었다. 그 결과 1948년 독립과 동시에 영국이 차 농사 지으려고 플랜테이션 농장 인력으로 데려왔던 타밀족에 대한 시민권 부여를 거부함을 시작으로 철저한 민족차별과 탄압을 가했다. 그렇게 쌓이고 쌓인 원한이 있는 타밀족이 1970년대 타밀 엘람 해방 호랑이라는 반군 조직을 결성해 무력으로 저항하자, 라자팍사 가문을 중심으로 한 싱할라 극단주의 정치세력이 이를 부추겨 내전으로 확전되었다. 라자팍사 가문은 무려 26년의 기나긴 내전을 통해 정치적 입지를 강화했다.

이들은 처음부터 타밀족과의 인종갈등을 부추겨 정치적 입지를 강화한데다, 26년의 내전으로 국민들이 전쟁에 노출될 동안 자신들만의 이익을 추구했고 국가의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만 남발했다. 여기에, 스리랑카는 섬의 지리적 가치 때문에 근대 열강 시대에 여러 나라가 다툰 끝에 결론적으로 영국 식민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정치체계가 지극히 복잡하다. 거기다 내각책임제이기까지 하다보니 그만큼 족벌이 정치까지 장악하면 국가 분열은 시간문제였다. 스리랑카 경제문제의 본질적 원인인 제조업 기반의 부재는 사실 26년 내전으로 인한 전쟁경제와 함께, 내각책임제의 불안한 정치환경이 낳은 유산인 무분별한 포퓰리즘 정책 실패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라자팍사 가문은 상술한대로 이 과정에서 가문의 이익을 위해 2000년대를 마지막으로 97년 한국처럼 강력한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IMF의 구제금융도 거부하고, 남인도 최대의 정치세력인 타밀나두와 연결되어있는 인도의 도움도 거부했다. 이 상황에서 손을 잡을 수 있는 거대자본이라고는 중국뿐이었기 때문에 외세인 중국과 손을 잡았다. 그 과정에서 자기 가문의 이익만 챙기고 스리랑카 섬 전체의 발전에는 제대로 신경쓰지 않다가 2019년 이후 일대일로 사업을 재고하기 시작한 중국의 돈줄이 막히면서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경제위기가 발생한 이후 고타바야 대통령은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뒤늦게 라자팍사 가문 출신 장관들을 사퇴시켰지만 총리는 여전히 마힌다 라자팍사의 자리이다. 무엇보다 가문의 브레인이자 재무장관인 바실 라자팍사가 '미스터 10%'로 불릴 정도로 지독한 부정부패[1]로 악명이 높기 때문에 국민들은 바실부터 쳐내라고 아우성이다.

게다가 스리랑카에서도 한국의 땅콩 회항보다 더한 갑질 사건이 벌어져 국제적인 비웃음을 산 적이 있었다. 예시

2.4. 중국의 일대일로 영향 때문인가?

2.4.1. 그렇다

2022년 4월 24일 KBS NEWS

2000년대에 내전이 끝난 스리랑카에는 재건을 위한 경제개발이라는 거국적 과제가 있었다. 그러나 해외 투자자들에게 이제 막 내전에 끝난 국가에게 투자하는 것은 엄청난 리스크였고, 결국 스리랑카는 경제개발을 위해 중국과 접촉하면서 자연스럽게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일대일로는 본질적으로 중국의 세력 확장을 1순위로 하는 사업이고, 지은 국가기반시설을 중국에 헐값에 팔아 넘기는 악순환이 주목적이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난다는 점이다.

특히 스리랑카 섬은 인도-태평양 해상 전략에서 아라비아 해와 벵골만 사이에 있고, 한번 차지하면 인도 전체는 물론 인도양과 남아시아 전체의 해상 전초기지로 사용할 수 있는 인도양판 불침항모이기 때문에, 중국이 파키스탄의 과다르 항구와 함께 일대일로의 가장 중요한 플랜 B로 장악할 필요가 있는 지역이었다. 그 타겟이 남부 최대 도시인 함반토타 항구인데 이 지역은 일대일로의 중요한 군사적, 물류적[2] 거점이자 라자팍사 가문의 지역구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함반토타를 노리고 중국이 투자하기 시작한 것. 라자팍사 가문의 부는 이 과정에서 중국 자본과 이익을 공유하면서 엄청나게 불어났다.

그런데 2019년에 벌어진 부활절 테러로 외국인 관광객이 뚝 끊어지고, 그 충격이 가시기도 전인 2020년에는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유행으로 관광수입이 끊기는 동시에 그동안 스리랑카의 중요한 외환수입원이었던 인력수출조차 막히게 되었다.

따라서 스리랑카 정부는 재정난에 봉착하여 함반토타 항구의 운영권을 중국에게 99년 동안 양도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채무를 스리랑카가 그대로 진다는 것이었다. 결국 스리랑카의 외채는 2019년 기준 GDP의 약 42% 수준이었지만 2021년에는 GDP의 119%로 # 엄청나게 불어났다. 스리랑카는 2022년 말까지 채무자에게 40억 달러를 준비해야 하지만 정부의 유동준비금은 23억 달러에 불과했다. 거기에 더해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 경제가 그야말로 얼어붙고 그에 따라 중국도 일대일로를 재고하기 시작하자 돈줄까지 끊기면서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다.

2.4.2. 아니다


중국의 일대일로 계획이나 소위 부채함정(debt trap)의 예시로 스리랑카, 특히 함반토타 항구 건설 사업의 예를 흔히 든다. 하지만 이를 중국의 음모로 보기에는 상황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3. 반정부 시위 발발 및 정권 붕괴

스리랑카에 최악의 경제난이 일어나자 2022년 3월 16일을 기점으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반정부시위가 전국 각지에서 발생했다.

4. 영향

5. 관련 영상


[1] 국가사업을 하려면 사업비의 10%를 리베이트를 가장한 뇌물로 바치라는 의미로 붙인 별명이다. [2] 함반토타 항구는 현대자동차 첸나이 공장에서 생산한 중동지역 자동차 생산분의 수출 배송 때 1차 배분을 하는 항구이기도 하다. [3] 스리랑카의 수도는 ' 스리자야와르데네푸라코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