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 FIFA 월드컵 프랑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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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너먼트 | 1라운드 | 8강 | 준결승 | 결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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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38년 프랑스 월드컵의 4강에 대하여 정리하는 페이지.1938년 월드컵 8강은 1938년 6월 16일에 치러졌다. 이 당시 경기는 연장을 치르고도 무승부로 끝나면 재경기를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2. 1경기 이탈리아 2 vs 1 브라질
경기장 |
스타드 벨로드롬 마르세유 - 프랑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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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일 |
1938년 6월 16일 18:00 (1938년 6월 17일 0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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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 판 | 한스 위트리히 (스위스) | |
국 가 |
이탈리아 |
브라질 |
득 점 | 2 | 1 |
득점자 |
지노 콜라우시 (51') 주세페 메아차 (60')(PK) |
호메우 (88') |
이탈리아 선발 명단
2-3-5 감독: [[비토리오 포초|{{{#ffffff 비토리오 포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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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K 알도 올리비에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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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 알프레도 포니 |
FB 피에트로 라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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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 피에트로 세란토니 |
HB 미켈레 안드레올로 |
HB 우고 로카텔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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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W 아메데오 비아바티 |
FW 주세페 메아차 60' |
FW 실비오 피올라 |
FW 조반니 페라리 |
FW 지노 콜라우시 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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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W 파체스쿠 |
FW 호메우 88' |
FW 페라시우 |
FW 루이지뉴 |
FW 로페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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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 아폰시뉴 |
HB 마르팅 |
HB 제제 프로코피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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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 마샤두 |
FB 도밍구스 다기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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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K 바우테르 굴라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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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선발 명단
2-3-5 감독: [[아데마르 피멘타|{{{#01519f 아데마르 피멘타}}}]] |
브라질은 이탈리아와의 일전을 치르기 이틀 전에 체코슬로바키아와 재경기까지 치르는 혈전을 치렀다. 반면 이탈리아는 개최국 프랑스를 정규 시간 내에 꺾었기 때문에 브라질보다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브라질은 흰색. 이탈리아는 파란색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치렀다.
전반은 그렇게 눈에 띌만한 장면이 있지는 않았다. 브라질의 미들 진영에서 브라질 선수들이 공을 많이 잡기는 했지만 이탈리아의 수비가 한 수 위였기 때문이었다. 브라질의 공격이 몇 번 있을 뻔도 했지만 그마저도 이탈리아의 골키퍼 올리비에리에게 큰 위협이 되지는 못했다. 당시 브라질의 감독이었던 아데마르 피멘타가 부상 치료와 결승전에 대비한답시고 간판 공격수 레오니다스를 뺐는데 레오니다스가 없는 브라질의 공격력은 매우 무뎠다.[1]
후반이 시작되자마자 이탈리아의 공격수들은 본격적으로 브라질의 골문을 위협하기 시작했고, 결국 후반 6분, 이탈리아의 공격수 지노 콜라우시가 비아비티의 크로스를 받아 골을 성공시켰다. 그리고 9분 뒤인 후반 15분, 브라질의 수비수 도밍구스 다기아가 피올라에게 파울을 범했고 스위스 출신 주심 위테라이히는 자비없이 페널티 킥을 선언했다. 키커로는 이탈리아의 주장 주세페 메아차가 나섰다. 메아차는 상대 골키퍼 바우테르를 완벽히 속이며 왼쪽으로 공을 꽂아넣었다. 하지만 이 때 월드컵 역사에 기록될 만한 해프닝이 하나가 있었는데 메아차가 킥을 하려는 순간 유니폼 바지의 고무줄이 끊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메아차는 상당히 엉거주춤한 자세로 칩샷을 쏠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바우테르의 방어를 뚫기는 했다. 메아차는 골을 넣고도 마냥 좋아하지만은 못하고 그저 바지가 흘러내리는 것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
브라질은 공세를 취했지만 그 때마다 올리비에리의 방어에 막혔고, 후반 43분이나 되어서야 호메우의 골로 기세를 올렸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결국 이탈리아가 브라질을 2대1로 꺾고 결승에 올라갔다.
3. 2경기 헝가리 5 vs 1 스웨덴
경기장 |
파르크 데 프랑스 파리 - 프랑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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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일 |
1938년 6월 16일 18:00 (1938년 6월 17일 0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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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 판 | 뤼시앵 르클레르크 (프랑스) | |
국 가 |
헝가리 |
스웨덴 |
득 점 | 5 | 1 |
득점자 |
스벤 야콥손(O.G) (19') 티트코시 팔 (37') 젠겔레르 줄러 (39', 85') 샤로시 죄르지 (65') |
아르네 뉘베리 (1') |
헝가리 선발 명단
2-3-5 감독: [[디츠 카로이|{{{#ffffff 디츠 카로이}}}]], [[샤퍼 얼프레드|{{{#ffffff 샤퍼 얼프레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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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K 서보 언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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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 코라니 러요시 |
FB 비로 샨도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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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 설러이 언털 |
HB 투러이 요제프 |
HB 라자르 줄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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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W 셔시 페렌츠 |
FW 젠겔레르 줄러 39', 85' |
FW 샤로시 죄르지 65' |
FW 톨디 게저 |
FW 티트코시 팔 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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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W 구스타브 베테르스트룀 |
FW 토레 셸레르 |
FW 하뤼 안데르손 |
FW 스벤 요나손 |
FW 아르네 뉘베리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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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 쿠르트 스벤스트룀 |
HB 스벤 야콥손 19' |
HB 에리크 알름그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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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 올레 셸그렌 |
FB 이바르 에릭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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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K 헤노크 아브라함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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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선발 명단
2-3-5 감독: [[너지 요제프(1892)|{{{#0000ff 너지 요제프}}}]] |
같은 시각, 파리에서는 헝가리와 스웨덴이 또 다른 4강전을 치르고 있었다. 마침 이 경기가 치러지던 날이 당시 스웨덴의 국왕 구스타프 5세의 80번째 생일이라 스웨덴 선수들은 결승 진출을 국왕의 생일 선물로 바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선물을 바치기 위해서는 쿠바보다 훨씬 강력한 팀인 헝가리의 도전을 뿌리쳐야 했다.
첫 골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빠른 시간에 나왔다. 시작한지 1분도 안되어 스웨덴의 아르네 뉘베리가 재빠른 돌파를 이용해 선제골을 넣은 것이다. 하지만 스웨덴은 스벤 야콥손이 전반 19분에 자책골을 넣어서 리드를 오래 지키지 못했다. 헝가리의 공격수가 골문 구석 쪽으로 헤딩을 했는데 그걸 걷어낸다고는 했지만 제대로 걷어내지 못하고 골문 안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헝가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리그를 갖고 있는 팀답게 기술적으로 우월했는데 그 결실은 37분이 되어서야 나왔다. 티트코시가 스웨덴의 오른쪽 진영에서 날린 슈팅이 스웨덴의 골키퍼 아브라함손의 손에 맞고 들어간 것이다. 티트코시는 거의 사각에서 슈팅을 날렸고 아브라함손은 골문 오른쪽을 향해 몸을 날렸지만 공을 막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2분 뒤에 헝가리의 간판 공격수 젠겔레르가 한 골을 추가, 3대1의 스코어를 만들었고 그렇게 전반전이 끝났다.
후반에 들어서 헝가리는 스웨덴을 말 그대로 가둬놓고 패는 수준의 경기를 펼쳤고 후반 20분에는 헝가리의 주장 샤로시의 헤딩골이, 후반 40분에는 젠겔레르가 쐐기골을 넣음으로써 경기는 5대1로 끝났다.
헝가리는 이탈리아와 함께 결승에 진출하게 되었다.
4. 3위 결정전 브라질 4 vs 2 스웨덴
경기장 |
스타드 두 파르크 레스퀴르 보르도 - 프랑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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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일 |
1938년 6월 19일 17:00 (1938년 6월 20일 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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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 판 | 장 랑제뉘 (벨기에) | |
국 가 |
브라질 |
스웨덴 |
득 점 | 4 | 2 |
득점자 |
호메우 (44') 레오니다스 (63', 74') 페라시우 (80') |
스벤 요나손 (28') 아르네 뉘베리 (38') |
브라질 선발 명단
2-3-5 감독: [[아데마르 피멘타|{{{#01519f 아데마르 피멘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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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K 바타타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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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 도밍구스 다기아 |
FB 마샤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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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 제제 프로코피우 |
HB 브란당 |
HB 아폰시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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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W 호베르투 |
FW 호메우 44' |
FW 레오니다스 63', 74' |
FW 페라시우 80' |
FW 파체스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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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W 에리크 페르손 |
FW 오케 안데르손 |
FW 하리 안데르손 |
FW 스벤 요나손 28' |
FW 아르네 뉘베리 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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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 쿠르트 스반스트룀 |
HB 아르네 린데르홀름 |
HB 에리크 알름그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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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 에리크 닐손 |
FB 이바르 에릭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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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K 헤노크 아브라함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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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선발 명단
2-3-5 감독: [[너지 요제프(1892)|{{{#0000ff 너지 요제프}}}]] |
브라질은 마치 자신들이 이탈리아에게 패한 이유가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재경기의 후유증으로 인해 체력이 달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처럼 스웨덴을 거칠게 몰아붙였다. 하지만 전반전은 그들이 원하던 대로 흘러가지 못했는데 스벤 요나손과 아르네 뉘베리에게 연속골을 허용하여 0대2로 끌려갔다. 그러던 브라질은 전반 종료 직전 호메우의 골로 1대2로 따라붙는데 성공했다.
후반전에 들어오면서 브라질은 3분 만에 페널티 킥을 얻었지만 파체스쿠가 실축했다. 그래도 브라질은 레오니다스가 2골을 넣고 페라시우가 한 골을 추가하여 결국 4대2로 역전에 성공했고 동메달을 따서 브라질로 돌아가게 되었다.
5. 결승 대진표
이후 정보는 1938 FIFA 월드컵 프랑스/결승에서 기재.
[1]
이로 인해 피멘타 감독은 레오니다스의 결장 이유에 대한 대답을 평생에 걸쳐서 반복해야만 했다. 피멘타 감독의 결정을 뒷받침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근거를 대자면 레오니다스는 브라질 선수들 중 지난
체코슬로바키아와의 8강전에서 유일하게 이틀 후의 재경기까지 모두 뛴 필드 플레이어였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