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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6 18:15:18

피에트로 세란토니

피에트로 세란토니의 감독직 및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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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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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트로 세란토니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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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前 축구감독
파일:omini.jpg
이름 피에트로 세란토니
Pietro Serantoni
출생 <colbgcolor=#fff,#191919> 1906년 12월 12일
이탈리아 왕국 베네토 베네치아
사망 1964년 10월 6일 (향년 57세)
이탈리아 로마
국적
[[이탈리아|]][[틀:국기|]][[틀:국기|]]
신체 163cm / 체중 69kg
직업 축구선수( 하프백, 인사이드 포워드 / 은퇴)
축구감독
소속 선수 베네치아 FC (?~1928)
암브로지아나 인테르 (1928~1934)
유벤투스 FC (1934~1936)
AS 로마 (1936~1940)
감독 칼초 파도바 (1947~1949)
칼초 파도바 (1950)
AS 로마 (1950~1951)
국가대표 17경기 ( 이탈리아 / 1933~1939)

1. 개요2. 생애
2.1. 선수 생활2.2. 감독2.3. 이후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4. 뒷이야기5. 수상
5.1. 선수
5.1.1. 클럽5.1.2. 국가대표
5.2.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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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의 전 축구 감독.

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고향 베네치아를 연고로 하는 베네치아 FC에서 처음 선수 생활을 시작한 세란토니는 1928년부터 우니오네 스포르티바 밀라네제(Unione Sportiva Milanese)에서 플레이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밀라네제 팀이 바로 인테르와 합병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세란토니도 인테르의 선수가 되었다.

세란토니는 인테르에서 1929년에 새로 출범한 세리에 A의 첫 우승 멤버가 되었는데 이 시즌에 15골을 넣어 주세페 메아차에 이어 인테르의 팀 득점 2위를 기록했다.[2]

1934년까지 인테르에 머물렀던 세란토니는 유벤투스 FC로 이적했고 이곳에서 한번 더 스쿠데토를 들었다. 1936년, 세란토니는 AS 로마로 팀을 다시 옮겼고 그곳에서 1940년에 자신의 커리어를 마감했다.

2.1.2. 국가대표

세란토니는 1933년 2월 12일에 있었던 벨기에와의 원정경기에서 이탈리아 대표팀에 데뷔했고 이탈리아는 브뤼셀 원정 경기에서 3대2로 이겼다.

세란토니는 산시로 경기장에서 열린 1934년 월드컵 지역 예선 그리스전에도 출전, 4대0으로 이탈리아의 대승에도 기여했지만 의사들의 만류로 정작 월드컵 본선에는 출전하지 않았다. 그리고 복귀전은 1934년 11월에 있었던 잉글랜드와의 친선 경기로, 하이버리의 전투로 유명한 그 경기이다. 이탈리아는 잉글랜드에 2대3으로 패했지만 포초 감독은 세란토니의 활약을 말 그대로 영웅적이었다며 칭송했다.

세란토니는 이후 193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이탈리아의 4경기에 모두 주전 라이트 하프백으로 출전, 이탈리아의 FIFA 월드컵 2연패에 공헌했다.

세란토니의 마지막 A매치는 1939년 5월 13일의 잉글랜드전으로 이탈리아는 2대2로 비겼다. 그는 총 17경기의 A매치에 참가했다.

2.2. 감독

세란토니는 칼초 파도바, AS 로마에서 감독직을 맡았다.

2.3. 이후

세란토니는 뇌종양으로 사망했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팀을 위해 헌신할 줄 아는 하프백. 볼컨트롤이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지만 강력한 중거리 슈팅 한방을 가지고 있어서 은근한 경계 대상이 되었다. 근성도 있어서 웬만한 부상, 심지어 발가락의 골절에도 불구하고 경기를 풀타임으로 소화한 적도 있었다. 또한 풀백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하고 전성기는 하프백으로 보냈으며 때에 따라서 포워드로 뛸 수 있었던 멀티 플레이어이기도 했다.

1930년대 이탈리아 축구계에서 최고급 하프백으로 꼽히는 선수 중 한 명이다.
세란토니는 뛰어난 자질을 가진 코치가 아니다. 그는 가장 덩치는 작았지만 대단한 파이터이며 어려운 상황에서 그는 전체 팀을 싸움으로 끌어들이는 사람이다.
비토리오 포초

4. 뒷이야기

5. 수상

5.1. 선수

5.1.1. 클럽

5.1.2. 국가대표

5.2. 감독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 일팔로네라콘타 [2] 메아차는 해당 시즌에 31골로 리그 득점왕이 되었고 당시에는 최연소 세리에 A 득점왕이었다. 여담으로 이 최연소 세리에 A 득점왕 기록은 3년 후 펠리체 보렐이 경신했고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