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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2 05:44:23

12지파

타나크에 따른 민족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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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설명3. 현황4. 목록
4.1. 르우벤 지파4.2. 시므온(시메온) 지파4.3. 레위 지파(제사장 지파)
4.3.1. 이다말 지파
4.4. 유다 지파4.5. 지파4.6. 납달리(납탈리) 지파4.7. (가드) 지파4.8. 아셀(아세르) 지파4.9. 잇사갈(이사카르) 지파4.10. 스불론(즈불룬) 지파4.11. 베냐민(벤야민) 지파4.12. 에브라임(에프라임) 지파4.13. 므낫세(므나쎄) 지파
5. 잃어버린 10지파
5.1. 창작물

1. 개요

구약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tribe, 부족)이다.

2. 설명

12지파는 왕정 성립 전부터 존재한 유서 깊은 체제이다. 왕정 성립 전의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계약궤가 있는 실로를 중심으로 한 성소(聖所) 동맹이었다. 즉 종교와 성소를 공유하며 '이스라엘'이라는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비슷한 사례로, 고대 희랍 폴리스들이 제우스 성소 올림피아와 아폴론 성소 델포이를 공유하면서, 공동의 종교적 유대감이 범헬레네스(모든 희랍인)라는 정체성이 된 것과 비교할 수 있다. 비록 폴리스끼리 남남이고 전쟁도 하지만, 올림피아와 델포이에서 같은 제사를 봉헌하는 한 범헬레네스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12지파도 이와 비슷했다. 비록 지파끼리 서로 다르고 때로는 서로 얼굴을 붉히기도 하지만, 공동의 성소인 실로에서 함께 제사를 봉헌하면, 필리스티아인도 암몸인도 모압인도 아닌 '이스라엘인'이라는 것이다.

이 12지파는 야곱의 아들들로부터 시작된다.

창세기에서 야곱 레아, 라헬 및 레아의 하녀 실바(질파), 라헬의 하녀 빌하를 통해 열두 아들과 딸 하나(디나)를 뒀고 라헬 소생의 아들인 요셉도 두 아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낳았다.
생모 자녀(출생순서)
레아 르우벤(1) 시므온(2) 레위(3) 유다(4) 잇사갈(9) 스불론(10) 디나(딸)
빌하 단(5) 납달리(6)
질바 갓(7) 아셀(8)
라헬 요셉(11) 베냐민(12)
요셉의 도움으로 가족과 함께[1] 이집트에 온 야곱은 창세기 49장에서 죽으며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포함한 자손들에게 유언과 함께 축복 또는 저주를 남겼다. 성경에 따르면 이들의 후손이 바로 12지파다. 맏아들이었던 르우벤은 원래 다른 아들들의 두 배의 상속을 받을 자격이 있었으나 서모[2] 빌하와 간통하는 죄를 저질러 장자권을 빼앗겼다. 그 다음 순위인 시므온과 레위 또한 여동생 디나의 겁탈에 대한 지나치게 잔혹한 복수로 야곱의 총애를 잃었고, 4번째 아들인 유다가 요셉 손위의 10형제들 중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된 것으로 묘사된다.[3] 또 야곱은 요셉을 총애하여,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자기 아들로 간주하고 야곱의 다른 아들들과 동등한 몫을 차지하게 하여 결과적으로 요셉의 몫이 두 배가 되게 만들었다. 요셉은 야곱의 둘째 정실부인의 맏아들이었기에 첫째 정실부인의 맏아들인 르우벤 다음 계승권을 가졌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출애굽기(탈출기)에서 모세를 따라 이집트를 떠날 때까지만 해도 13지파였고 이들의 배치 순서가 따로 정해져있지도 았았으나,[4] 십계명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 뒤에 제사장을 맡게 된 레위 지파가 다른 지파와 구별되면서 12지파라고 칭하게 되었다.

민수기 2장에 따르면 광야에서 행군할 때 12지파의 장막 및 행렬 배치도는 아래 표와 같다.
아셀 납달리
베냐민 레위(므라리) 유다
므낫세 레위(게르손) 성막 레위(모세, 아론) 잇사갈
에브라임 레위(고핫) 스불론
시므온 르우벤
에브라임 르우벤 유다
아셀 므낫세 레위(고핫)
성막 가구
시므온 레위(게르솜, 므라리)
성막 물품
잇사갈 언약궤
레위(모세, 아론)
납달리 베냐민 스불론

모세가 죽은 뒤 여호수아의 지휘에 따라 요단강을 건넌 히브리인들은 예리코의 전투 가나안(팔레스타인 지역)에 정착했고,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는 12지파에게 땅을 분배했다.[5] 레위 지파는 제사장 지파로서 야훼(또는 여호와)의 것으로 간주되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재산 분배에서 제외되었다.[6]

사사기 시대에 12지파는 사사(판관)이 이끄는 부족 연맹으로 이어졌고 사무엘기 시대에 이스라엘이 왕국으로 바뀌며 지파마다 부침을 겪었다. 열왕기 시대에는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가 남유다 왕국, 나머지 지파가 북이스라엘 왕국으로 갈라졌다.

신약 시대에 예수는 수제자 12명을 12사도로 임명했고, 요한묵시록(요한계시록) 7장에서는 단 지파를 제외한 모든 지파가 12,000명씩 야훼에게 표를 받아 십사만 사천 명 유대인 대표로 뽑혔다. 단 지파 대신 레위 지파가 포함되었으며, 에브라임 지파는 '요셉 지파'라는 이름으로 나와서 열두 지파로 유지되었다.

이스라엘의 계보를 알고 있다면 왜 요셉의 장자인 므나쎄의 지파가 아니라 둘째인 에브라임의 지파가 '요셉 지파'라 불리며 명맥을 잇는지 의아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 에브라임과 므나쎄가 하나의 요셉 지파가 아닌 각각의 지파로 세력을 형성한 것은 에브라임과 므나쎄가 친조부인 이스라엘의 아들로 입적하여 요셉을 대신하여 다른 열한 명의 아들들과 같은 항렬에 들었기 때문인데, 이 때 이스라엘이 요셉의 차남이었던 에브라임을 장남으로, 장남이었던 므나쎄를 차남으로 입적하였다. 즉, 이스라엘의 아들로서는 에브라임이 므나쎄의 형이 되어 요셉의 명맥을 이을 자격을 얻은 것이다. 한편, 묵시록에서 이르는 '요셉 지파'란 에브라임 지파와 서쪽 므나쎄 지파(다른 지파들과 함께 여호수아를 따라 요르단 강을 건넌 지파)를 아울러 이른 것으로, '므나쎄 지파'란 동쪽 므나쎄 지파(소위 '길르앗 사람'이라고 불린, 요르단 강을 건너지 않고 강 동쪽에 남은 지파. 입다 항목 참조)만을 따로 이른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단 지파가 묵시록에서 빠진 것은 기독교의 오랜 떡밥 중 하나이다. 리옹의 이레네우스 등 초기 교부들은 적그리스도가 단 지파에서 올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예수를 배반한 가룟 유다가 단 지파의 후손이라는 썰이 있다. 또한 창세기에서 단이 이스라엘에게 받은 축복의 내용이 축복이라기보단 저주같아 보이는 면모가 있으며 그 축복의 내용이 단이 뱀으로 묘사되며 물어서 누군가에게 해를 입힌다는 것이 단 = 창세기의 뱀에 대한 저주 = 예수 고난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단 지파가 제명된 이유가 후술될 땅을 분배받은 이후, 아론의 후손을 데려가 제사장 직을 시킨 후 우상숭배 한 사건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여로보암 1세 역시 우상숭배로 인해 그 혈족이 절멸했지만 이 사건은 이스라엘 지파 중 한 지파가 저지른 사건이었다.(!!!) 에브라임의 경우 판관기에서 에브라임의 우상숭배를 지적하고 있으며 호세아와 아모스에서도 에브라임과 사마리아의 악함을 비판하고 있는 등 단과 비슷한 이유로 제외되었을 수 있다.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출신이며 그가 금송아지를 세운 두 곳이 단 지파의 단과 에브라임 지파의 베델이었음을 지적하기도 한다.

3. 현황

지파를 구분하는 풍습이 잔존하는 민족은 사마리아인들뿐인데, 2024년 기준 현존하는 지파는 레위 지파[7], 요셉 지파(므나쎄 지파, 에브라임 지파)이다.

유대인은 사실상 유다 지파의 후손이므로, 지파의 구분이 무색하고, 이미 고대 로마 이후 지파의 개념이 소멸되었다.

4. 목록

지파의 순서는 야곱의 아들들 및 손자들(요셉의 아들들)이 태어난 순서, 괄호는 가톨릭 성서의 표기다. 역대기 상권(역대상) 초반부에도 12지파를 언급한다.

4.1. 르우벤 지파

야곱과 레아의 아들이며 야곱의 자녀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르우벤의 후손. 르우벤이 야곱의 첩 빌하와 불륜을 저질렀다가 장자권을 박탈당했기에 구약에서의 비중은 거의 없고[8] 이름만 가끔 언급되는 지파.

민수기에 따르면 르우벤의 아들은 에녹, 발루, 헤스론, 가르미인데 이들이 르우벤의 씨족이라고 한다.

여호수아의 지휘 아래 가나안을 점령할 때에 므나쎄 지파의 절반과 가드 지파가 요단강을 건너지 않았는데, 이 때 르우벤 지파도 남았다.[b]

요르단 강 사해 북동쪽 길르앗 지역에 정착했고 역대기에 따르면[10] 다윗이 왕위에 올랐을 때 갓 지파, 므낫세 반지파와 함께 다윗을 지지했다. 열왕기하 15장 29절에서 아시리아의 침략으로 납달리 지파의 영토와 함께 주민들이 아시리아로 끌려갔다.

4.2. 시므온(시메온) 지파

야곱과 레아의 아들인 시므온의 후손.

민수기에는 시므온의 아들로 여무엘, 야민, 오핫, 야긴, 소할, 사울[11]의 이름이 나오고 이들이 시므온의 씨족이라고 한다.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는 시므온 지파의 수난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12]
구약 내내 입지가 좁았던 시므온 지파였지만, 요한의 묵시록에서 천국에 들어갈 사람이 각 지파 별로 1만 2천 명 씩 모두 14만 4천 명이라고 설명할 때 시므온 지파도 독립된 지파로 언급한다.

4.3. 레위 지파(제사장 지파)

야곱 레아의 아들인 레위의 후손.

제사장 지파로 분류돼서 따로 영토를 받지 않았으나 이스라엘 곳곳에 세워진 성소를 지켰다. 성경에서는 12지파로 분류하지 않았지만 편의상 같이 분류했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모세는 레위의 후손이며, 레위인들은 금송아지 사건에서 그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죽여[15][16] 12지파에서 분리되어 모세의 형 아론의 후손[17]이 맡는 제사장과는 별개로 각 지파의 제사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된다.

민수기[18] 역대기에 따르면 레위는 137년을 살았고 레위의 아들은 게르손, 크핫, 므라리라고 한다. 게르손은 리브나와 시므이라는 아들이 있었고 크핫은 아므람, 이스할, 헤브론, 우찌엘이 있었고 크핫은 133년을 살았다. 므라리의 아들들은 마흘리와 무시이다. 이게 레위의 씨족들이다. 아므람은 고모[19] 요게벳을 아내로 맞아들였는데, 이 여인이 아론과 모세를 낳았다고 한다. 이스할의 아들들은 코라, 네벡, 지그리다. 우찌엘의 아들들은 미사엘, 엘사반, 시드리다. 아론은 암미나답의 딸이고 나흐손의 누이 엘리세바를 아내로 맞이하는데 나답, 아비후, 엘르아잘, 이다말를 낳았다. 코라의 아들들은 아씨르, 엘카나, 아비아삽이다. 이들이 코라인들의 씨족들이다. 아론의 아들 엘리아잘은 부디엘의 딸들 가운데 하나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이 여인이 비느하스를 낳아 주었다. 이들이 레위인 가문의 우두머리다. 야훼의 분부를 받고 이집트 땅에서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이끄는 자들은 레위의 후손인 모세와 아론이다.

여호수아의 지휘 아래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땅을 나눈 뒤에 레위 지파는 각 지파의 땅에서 그들이 머물 성읍을 나눠받고 흩어져 살았다. 농경에 종사하지 않은 대신 성소를 지키는 대가로 각 지파의 사람들에게서 소득의 십 분의 일을 받았는데, 이것이 십일조의 기원이 된다. 분열 시대에 북이스라엘이 레위 지파가 아닌 사람을 제사장으로 삼자 북이스라엘의 일부 레위 지파는 남유다로 넘어왔다.

선지자 사무엘[20], 엘리 가문[21], 예레미야, 에스라, 세례자 요한[22], 바나바[23]가 레위 지파 출신이다.

레위 지파는 므나쎄 지파, 에브라임 지파, 이다말 지파와 함께 현재 사마리아인을 이루는 네 지파 중 하나이다.[a]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와 함께 유대 지역에서 추방당하고 전 세계로 흩어지게 되면서 지파 개념이 사라지고, 레위 지파 역시 사라졌다. 참고로 랍비는 레위 지파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요한의 묵시록에서 천국에 들어갈 사람들로 각 지파에서 1만 2천 명 씩 모두 14만 4천 명을 언급할 때 레위 지파도 다른 지파와 함께 언급된다.[25]

4.3.1. 이다말 지파

모세의 형 아론은 이스라엘 민족의 제사장이 되었고, 그의 후손들은 대대로 제사장의 직분을 세습하게 되었다. 이들은 같은 조상을 둔 레위 지파와도 구별되었으며 아론의 아들(나답, 아비후, 엘르아잘, 이다말)의 이름으로 각 집안의 이름을 삼았다. 로마 제국이 성전을 파괴하고 제사장의 직분을 잃은 뒤에는 각각이 나답 지파, 아비후 지파, 엘르아잘 지파, 이다말 지파가 되었는데, 이 가운데 이다말 지파가 지금까지 이어진다. 이다말 지파는 레위 지파, 므나쎄 지파, 에브라임 지파와 함께 현재 사마리아인을 이루는 네 지파 중 하나이다.[a]

4.4. 유다 지파

야곱과 레아의 아들인 유다의 후손.

예루살렘이 포함된 가나안 남부에 정착했고 훗날 유대인이 되었다. 다윗, 솔로몬을 포함한 다윗 왕조의 역대 왕, 갈렙[27], 예수가 유다 지파 출신이다.

민수기에서 유다 지파는 두 번의 인구 조사 모두 가장 장정 수가 많은 지파였다.

이스라일(야곱)이 유다에게는 조공을 바치고 민족들이 순종할 때까지 왕홀과 지휘봉이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그의 자손에게서 왕이 나온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말대로 유다 지파에서 유명한 다윗 왕이 나타나게 된다. 다윗 왕은 하느님을 잘 섬긴 대가로 영원치세의 왕조를 약속받아 12지파 중 가장 번성했으며 가장 큰 지파로 존재했다.

로마 시대에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유대인들이 유대 지역에서 추방당하여 전 세계로 흩어지게 되면서 유대인들에게 지파 개념이 사라지자, '유다 지파'라는 구분도 사라졌다.

그래도 후세에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유대(유다)인이라 불리게 되며, 성모 마리아 나자렛의 요셉이 유다 지파에서 나오게 되는 등 자손의 번영에 대해서는 가장 큰 축복을 받은 셈이다. 또 예수는 신약성경에 따르면 이사야가 예언한 임마누엘이자 유다의 자손으로 유다인들의 왕으로도 나오는데, 유다의 자손들이 제일 성공한 셈이다.[28]

4.5. 지파

야곱과 라헬의 몸종 빌하의 아들인 단의 후손.

민수기에 나온 두 번의 인구 조사 모두 유다 지파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장정 수를 자랑했다.[29]

여호수아에게 가자 주변[30]을 분배받았으나 사사기 시대 초기에 납달리 지파의 영토 북쪽로 옮겼고 모세의 손자인 요나단[31]을 제사장으로 추대한 뒤 집에서 이방신의 신상을 모시던 미카(미가)가 만든 신상을 야훼라고 모시는 우상숭배를 저질렀다. 그 후 북왕국 시대에 벧엘과 단[32]에 여로보암 1세가 금송아지 신상을 세웠다. 모든 지파 중에서 가장 북쪽에 정착해서 구약성경에서 '단에서 브엘세바[33]까지'라는 말이 생겼다.

판관기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판관이자 마지막 판관인 삼손이 단 지파이다.

아시리아의 침공 당시 괴멸적인 피해를 입어 르우벤, 갓, 나프탈리 지파와 함께 사실상 멸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요한의 묵시록에는 천국에 들어갈 사람 수가 각 지파 별로 1만 2천 명 씩 모두 14만 4천 명이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 가운데 단 지파의 이름이 없다.[34] 개신교에서 주석을 단 성경에선 상술한 우상 숭배를 이유로 들고 있다.[35][36]

한국에서 생겨난 기독교 근본주의 계통의 사이비 종교 중에 요한의 묵시록에 단 지파가 없는 것이 단 지파가 한반도로 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집단이 많다.[37] 그들은 단이 곧 단군이라고 설명한다. 물론, 단과 단군은 발음만 같을 뿐이다.[38] 이와 비슷한 또다른 케이스로 욕단이 있다.

뜬금없게도, 16세기에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라이프니츠는 데인인, 즉 덴마크인이 이 단 지파의 후예라 주장했다. 근거는 15세기에 작성된 한 라틴어 연대기가 근거인데, 이 주장은 무려 19세기 영국 이스라엘주의자들에게까지 이어진다. 물론 실제로는 전혀 관련 없다.

4.6. 납달리(납탈리) 지파

야곱과 빌하의 아들인 납달리의 후손.

여호수아를 필두로 한 가나안 정복 전쟁을 거쳐 갈릴리 호수 및 요르단 강 서쪽을 포괄하는 10지파[39] 중 가장 넓은 영역에 정착[40]했으며 다윗이 왕위에 올랐을 때 장수 100명과 전사 37,000명을 파견했다. 사사기 시대에 가나안 부족 일부를 예속시켰고 드보라와 기드온을 도와 가나안, 미디안과 싸웠다. 북왕국 시대에 아람과 아시리아의 침략으로 주민들이 포로로 끌려갔다.

사사기에서 드보라를 도운 발락이 납달리 출신이며, 토빗기에서는 등장인물 전원이 이 지파 소속이다.

4.7. (가드) 지파

야곱과 실바의 아들인 갓의 후손.

여호수아의 지휘 아래 가나안을 점령할 때에 므나쎄 지파와 르우벤 지파가 요단강을 건너지 않았는데, 이 때 가드 지파도 남았다.[b]

요르단 강 동쪽 길르앗 지방, 므낫세 반지파와 르우벤 지파의 영토 사이에 정착했다. 역대기에서 다윗을 지지한 지파 중 하나로 르우벤 지파 및 므낫세 반 지파의 인원과 합친 12만 명을 지원했다.

아시리아의 침공 당시 피해를 직격탄으로 입었다. 이후 기록에 두번 다시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대로 멸망한 듯.

4.8. 아셀(아세르) 지파

야곱과 실바의 아들인 아셀의 후손.

납달리 지파의 영토 서쪽인 지중해 연안에 정착했다. 사사기 시대에 기드온을 도와 미디안과 싸웠고 그 후 성경에서 비중은 거의 없으나 신약 시대에 아기 예수를 만난 여성 예언자인 한나가 아셀 지파 출신이다.

4.9. 잇사갈(이사카르) 지파

야곱 레아의 아들인 잇사갈의 후손.

갈릴리 호수 근처에 정착했다. 사사 시대에 이들은 드보라와 함께 가나안 왕 야빈과 싸웠고 사사(판관) 돌라가 잇사갈 지파 출신이다. 역대기[42]에 따르면 용맹한 전사가 많이 배출된 지파로 다윗이 왕위에 올랐을 때 우두머리 200명이 휘하 전사들과 함께 합류했다.

북왕국의 3대 국왕인 바아사가 잇사갈 출신이다.

4.10. 스불론(즈불룬) 지파

야곱 레아의 아들인 스불론의 후손.

아셀 지파와 납달리 지파의 영토 남쪽에 정착했고, 드보라 기드온, 다윗을 도운 지파다. 신약 시대에 예수가 기적을 행한 가버나움(카파르나움)이 옛 스불론 지파의 영토에 있었다.

판관(사사) 엘론이 스불론 지파 출신이다.

4.11. 베냐민(벤야민) 지파

야곱과 라헬의 아들 베냐민의 후손.

유다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의 영토 사이에 정착했다. 왼손잡이 판관 에훗이 베냐민 지파 출신이다. 사사기 시대에 드보라를 도와 야빈과 싸웠고 제법 힘이 강했으나, 이후 다른 지파들과의 분쟁에[43] 휘말려 1대 11로 싸운 끝에 남자 600명만 남고 다른 지파에서 너희들과 결혼하지 않을 거라는 맹세를 해서 씨가 말라 자동소멸할 뻔했다가 베냐민이 멸망하는 것만은 막기로 합의한 나머지 11지파가 야베스 길르앗 지역에서 약탈한 여자 400명 및 정해진 날에 임의로 납치한 여자 200명을 모아서 멸망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잃어버린 세력이 돌아오지는 않았고, 결국 왕정 시대에는 가장 작은 지파로서 유다 지파의 곁다리로 남유다에 복속되어 있었다. 날려먹는 건 한순간이라는 게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과 그의 아들이지만 다윗과 친한 요나단이 베냐민의 후손이다. 그래서 다윗 시절 가장 다윗을 경계한 지파이기도 한데, 정작 남북 분열 때 다윗 왕가 편을 든 게 유다 빼고는 이 지파뿐이라는 게 아이러니하다.[44]

유대인 중에는 사도 바울로가 베냐민 지파 출신이다.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유대인들이 유대 지역에서 추방당하여 흩어지게 되면서 유대인들에게 지파 개념이 사라지자, 베냐민 지파 역시 사라졌다. 사마리아인에 속한 베냐민 지파는 20세기까지 이어오다가 1968년에 단절되었다.[a] 연구자들에 따르면, 사실 이 베냐민 지파라고 스스로 칭한 이들은 아시리아 침공 당시 멸망한 르우벤, 갓, 단, 나프탈리 등의 지파나 피해를 입었던 지파들 중 유대 왕국에 귀순하거나 사마리아 지역으로 이주하지 않고 그대로 이 지역에서 산 이들의 후손이라고 한다.

4.12. 에브라임(에프라임) 지파

요셉과 아스낫의 아들 에브라임의 후손.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 요셉이라는 이름의 지파는 없고 요셉의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지파로 불리게 된다. 이스라엘(야곱)이 요셉의 자손들을 위해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양자로 삼아 복을 내리고 이들의 자손들이 지파가 되게 했기 때문. 굳이 요셉 지파를 언급할 때엔 에브라임 지파를 요셉 지파로 인정한다. 여호수아 판관기를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요한의 묵시록7:8에선 아예 에브라임 지파를 요셉 지파라고 칭하고 있다.[46]

여호수아가 에브라임 지파 출신이고 이들은 사마리아, 실로[47] 근처에 정착했다. 유다, 므낫세에 못지않게 강성한 지파였고 요셉의 장자권을 근거로 다른 지파에게 패권적인 모습을 보였다.

사사기에선 사사 기드온이 에프라임 지파의 비위를 살살 맞추거나[48] 입다가 에프라임 지파를 도륙[49]하는 등 기록을 자세히 살펴보면 강성한 지파임을 짐작할 수 있는데 면밀히 읽지 않으면 실감하기 어렵다.

에브라임 지파인 여로보암 1세가 북이스라엘 왕국을 세우면서 이사야와 호세아[50]가 북왕국을 에브라임이라고 부르는[51] 등 남쪽의 유다 지파와 함께 이스라엘 12지파의 쌍두마차로 할 수 있는 존재였다. 이로써 창세기의 요셉과 유다에 대한 축복은 모두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

에브라임 지파는 레위 지파, 므나쎄 지파, 이다말 지파와 함께 현재 사마리아인을 이루는 네 지파 중 하나이다.[a]

4.13. 므낫세(므나쎄) 지파

요셉과 아스낫의 아들 므낫세의 후손.

므낫세는 요셉의 두 아들 중 첫째지만 할아버지이자 양아버지인 이스라엘(야곱) 때문에 두 번째로 밀려버린 비운의 존재로, 아버지 요셉의 이름을 받지못한 대신에 자신의 이름으로 하나의 지파가 됨을 약속받았다.[53]

민수기의 두 인구 조사를 비교해보면 두 번째 인구 조사 때 모든 지파의 인구가 처음보다 약간 줄어들었는데,[54] 므낫쎄 지파만 인구가 거의 두 배로 늘었다.

여호수아의 지휘 아래 가나안을 점령할 때에 르우벤 지파와 가드 지파가 요단강을 건너지 않았는데, 이 때 므나쎄 지파의 절반도 남았다.[b]

요르단 강 동쪽과 서쪽에 나뉘어 정착했으며 유다, 에브라임에 못지않게 강성했다. 다윗을 도울 때 요르단 서쪽의 므낫세 지파는 18,000명을 지원했고 요르단 동쪽의 므낫세 지파는 르우벤, 갓을 합쳐 12만 명을 지원했다. 기드온, 입다, 엘리야가 므낫세 지파 출신이다. 요르단강 동쪽 길르앗 지역에 정착한 므낫세 지파는 입다 항목에서 보듯이 다른 지파에게 차별을 받았다.

성경에서 요셉 지파라는 표현은 에브라임 지파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은데, 요르단강 양편의 므낫세 반지파를 따로 서술하지 않고 요셉 지파와 므낫세 지파라고 한다면 에브라임 지파와 요르단강 서편의 므낫세 반지파를 한꺼번에 요셉 지파라고 불렀다고 보면 된다.

므나쎄 지파는 레위 지파, 에브라임 지파, 이다말 지파와 함께 현재 사마리아인을 이루는 네 지파 중 하나이다.[a]

5. 잃어버린 10지파

Ten Lost Tribes
북이스라엘이 망하고 12지파 중에 10지파가 이곳 저곳으로 이동하게 되다가 잃어버린 10지파가 정착해 다른 민족의 기원이 되었다는 설. 참고로 이 10지파는 실제로는 사마리아인 팔레스타인인, 아시리아인 등으로 갈라져 현재에 이른다. 다만 중에서 '지파' 개념을 유지하고 있는 이는 사마리아인 뿐이다. 즉 사마리아인이 10지파의 직계 후손인 셈. 팔레스타인인은 오히려 유대인의 분파민족에 가깝다. 정확히는 이슬람화되고 아랍과 섞인 유대인에 가까운 셈.

19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영국 이스라엘주의 (British Israelism)부터 북구-이스라엘주의 (Nordic Israelism), 프랑스 이스라엘주의 (French Israelism), 미국 흑인들 사이에 있는 흑인 히브리 이스라엘인 (Black Hebrew Israelites) 등이 있다.

일유동조론은 이 10지파가 일본인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이고, 한유동조론 역시 그 후손이 한국인이라는 설이다.

5.1. 창작물


[1] 이집트로 들어가기 전에 죽은 레아와 라헬은 지금의 팔레스타인 땅에 묻혔다. [2] 성경에서는 야곱의 첩으로 나온다. [3] 유다에 대한 창세기의 우호적 묘사가 후대 다윗 왕조의 성립 이후 가필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4] 내일 당장 떠나라는 말에 그 다음 날 아침 먹을 것도 제대로 못 챙기고 서둘러 떠났으니 순서고 배치고 할 틈이 없었다. 십계에서 여호수아가 지파의 위치를 지정한 건 영화의 각색. [5] 여호수아기 14장~22장. [6] 그 반대급부로 받게 되어있는 것이 바로 십일조다. [7] 이다말 지파 포함. 물론 성경의 12지파에는 수록되어 있지는 않으나, 레위 지파인 아론의 아들인 이다말의 후손들이다. [8] 판관, 예언자, 왕을 모두 배출하지 못했다. [b] 이들은 식구들을 요단강 동편에 남겨둔 채 군대만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정복을 돕다가 끝난 뒤에 돌아갔고, 가나안을 정복한 지파들이 농경민이 되어 살아갈 때 요단강 동편에서 유목민으로 살아갔다. 이들은 ‘길르앗’ 사람이라고 불리며 가나안으로 들어간 지파들에게 천대를 받았다. [10] 역대상 11장 42절, 12장 37절. [11] 가나안 여인의 아들. [12] 여동생이었던 디나가 세겜족의 족장의 아들에게 강간을 당한 것에 대한 앙갚음으로 세겜 족속을 속이고 그들을 죽인 것에 대한 댓가로 야곱이 임종 전 시므온과 레위에게 저주를 내렸다. [13] 당시의 인구조사는 전쟁에 참여할 20세 이상의 남성들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14] 그 당시에 진압이라는 건 학살이었다. [15] 이 부분에서 쓰인 용어가 바로 헌신(獻身)으로 성경 전체에서 단 한 번 쓰였다. [16] 광야에서 떠돌 때의 레위 지파 사람들은 조상의 불같은 성미를 이어받아 믿음을 더럽히는 친척(다른 지파 사람)들을 죽이는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17] 이 중에 일부가 이다말 지파로 이어지게 된다. 보통 이다말 지파는 레위지파의 일부로 포함된다. [18] 민수기에서 인구조사를 할 때 레위 지파 만은 지파 전체의 장정 수를 센 것이 아니라 씨족 별로 셌다. [19] 다시 말해 게르손, 크핫, 므라리가 낳은 딸 가운데 한 명. [20] 모세에게 반항했던 고라의 후손이다. [21] 아론의 막내아들 이다말의 후손들이다. [22] 아버지 즈카르야(샤가라)가 제사장이었고, 어머니 엘리사벳이 아론의 후손이다. [23] 사도 바울로가 1차 전도 여행 때 동행했던 인물이다. [a] [25] 대신 단 지파가 빠지는 바람에 각종 사이비 종교가 등장할 떡밥을 남기게 된다. [a] [27] 여호수아의 동료. [28] 유다는 그 성품으로 인해 복을 받은 케이스였는데 형제들이 시기로 가득해 동생 요셉을 죽이려 하자 비록 인신매매란 부도덕한 방법이긴 했지만 이스마엘족 상인들에게 팔아 살인을 막았고 에르와 오난이 죽임을 당하자 막내인 셀라만은 지키기 위해 며느리 다말에게 장가를 보내지 않았고 이를 못마땅히 여긴 며느리가 그를 유혹해 부도덕한 방법으로 임신을 하게 되자 대노한 유다가 그녀를 화형에 처하려 하자 재치로 미리 담보물로 가지고 있던 자기의 시아버지 소유의 지팡이와 도장을 보이며 '이 물건 임자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하자 "내 잘못이다. 셀라를 다말에게 장가보냈어야 했는데.."라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고 막내인 베냐민이 요셉의 계략에 의해 에굽에 남게 될 위기해 처하자 친히 나서서 간곡한 말로 설득, 마침내 요셉이 형제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29] 그 시대에는 특이(?)하게도 단은 아들을 하나만 낳아서 단 지파의 씨족도 하나 뿐인데 이렇게 많은 수를 기록했다. 다시 말해서 씨족 별 인구는 단 지파의 씨족이 가장 많다. [30] 인구에 비해 상당히 작은 땅을 받았는데, 이는 단 지파가 농경이나 목축이 아니라 도시 생활을 하는 지파였음을 의미한다. [31] 모세의 아들 게르솜의 아들.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동명이인이다. [32] 단 지파가 정착한 도시로, 원래 이름은 라이스였다. [33] 네게브 사막 근처에 있던 도시. 지금도 이스라엘 지도를 보면 네게브 사막 북부에 '베르셰바'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는데, 꽤 큰 도시이다. [34] 대신 레위 지파의 이름이 있다. [35] 하지만 가장 먼저 우상 숭배를 받아들인 건 광야에서 방황할 때 우상을 숭배한 시므온 지파로, 이 때문에 인구가 반토막나기까지 했다. 그런 시므온 지파조차도 요한의 묵시록에선 용서(?)를 받는데, 단 지파가 빠진 건 명쾌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사이비 종교가 등장하는 떡밥이 되기도 한다. [36] 일부에서는 적그리스도가 탄생하게 될 지파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37] 조희성이 만든 영생교가 대표적이다. [38] 심지어 시대 자체도 맞지가 않는다. [39] 땅을 받지 않고 성소를 지키는 직분을 받았은 레위 지파는 12지파에 속하지 않으므로 예외. 르우벤 지파와 갓(가드) 지파는 요르단 강 동쪽에 정착했으므로 제외. 므낫세 지파는 둘로 갈라져서 반이 요르단 강 동쪽에 남고 나머지 반은 서쪽에서 땅을 받았으므로 서쪽 땅을 받은 지파에 포함. [40] 위 지도에는 납달리 지파의 영토가 그다지 넓지 않은 것처럼 묘사되었는데, 이는 유다의 남쪽에서 북쪽을 바라보는 시점으로 지도를 그렸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보면 가까운 유다는 크게 그리고 멀리 있는 납달리는 작게 보일 수 밖에 없다. 같은 내용을 위성사진에 대입해보면, 납달리 지파의 영토가 훨씬 크게 그려질 것이다. [b] [42] 역대상 4장 2~7절. [43] 레위 지파 출신의 어떤 사람이 간음하다 도망친 자신의 첩을 데려오다 밤이 깊어 베냐민 지파의 영토에 들어가 그곳 거주민들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서 묵게 되었는데 그 지역의 동성애자들의 횡포에 레위족 사람이 자신의 첩을 대신 희생양으로 삼았고 이들은 첩을 밤새도록 윤간한 뒤 보냈다. 물론 그 첩을 죽었고 이를 들은 다른 지파들이 그 장본인들을 내놓으라는 것을 베냐민 지파가 자신들 사람이라며 거절한게 발단이었다. [44] 다윗이 압살롬의 반란으로 도피할 때 사울의 친족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했다가 훗날 솔로몬에게 살해당했다는 사무엘하의 기록, 열왕기 상 12:20절을 보면 처음엔 베냐민 지파도 다윗왕가를 따르진 않았던 걸로 보인다. 그러나 이스라엘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유다에서 베냐민 지파 땅 다음은 북왕국의 핵심 지파인 에프라임이라 다윗왕가 쪽에선 반드시 베냐민을 확보해야 했다. 열왕기 상 14:30절을 보면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 항상 전쟁이 있었다고 한만큼 베냐민 영토를 확보하기 위한 다윗 왕가의 노력이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베냐민 지파에게 여러가지 정치적 편의를 제공했을 가능성이 있다. [a] [46] 요르단강 양편의 므낫세 반 지파를 따로 서술하지 않고, 요셉 지파와 므낫세 지파라고 할 때엔 에브라임 지파와 요단강 서편의 므낫세 반지파를 아울러서 요셉 지파라고 칭했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에브라임 지파의 타락이 성경에서 지속적으로 비판받는 것을 봐서는 영구제명일 수도 있다. [47] 사사기 및 사무엘기 시대에 언약궤가 놓인 곳. [48] 기드온이 미디안과 싸울 때 빠졌다가 뒤늦게 끼어들어서 권리를 요구했을 때는 기드온이 달래서 무마했다. [49] 입다가 암몬족과 싸울 때 에브라임 지파가 간섭했다가 십볼렛 사건으로 전사 42,000명이 죽었다. [50] 북왕국의 마지막 왕인 호세아와 동명이인인 예언자. [51] 이사야 7장 2절, 호세아 4장 17절. [a] [53] 따라서 12지파를 순서대로 설명할 때에는 므낫세 지파를 가장 마지막으로 해야 맞다. [54] 특히 시므온 지파는 인구가 반토막이 났다. [b]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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