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궁예가 세운 국가
고구려부흥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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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 연대 | 부흥운동 | 주요인물 | 결과 |
670~673 | 한성의 고구려국 | 검모잠 / 고연무 / 안승 | 실패 | |
681 | 안동도호부에서의 보장왕의 모반 | 보장왕 | 무산 | |
684 | 금마저에서의 보덕국의 반란 | 대문 | 실패 | |
696~698 | 요동 일대의 반당전쟁 | 걸걸중상 / 걸사비우 / 대조영 | 발해 | |
897~901 | 송악의 궁예 정권 | 궁예 | 후고구려 | |
918 | 왕건의 역성혁명 | 왕건 | 고려 | |
1217 | 최광수의 난 | 최광수 | 실패 |
후고구려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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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삼국시대 궁예가 건국한 국가로, 901년 건국 당시 국명이 '고려'였으나 904년 ' 마진'으로 개명해 오래 쓰이진 않았고, 911년 다시 태봉으로 바꾸었다. 이후 918년에 궁예를 몰아내고 즉위한 왕건이 국호를 다시 고려로 되돌리게 된다. 오늘날 역사 교과서 등지에서는 선대의 고려(고구려), 그리고 후대 고려와 구분하기 위해 '후'를 붙여 '후고구려'라 지칭한다.
궁예가 이렇게 나라 이름을 바꾼 이유로는 초기엔 고구려 계승을 내세웠으나, 이대로는 후백제와 신라를 포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좀 더 넓은 의미의 명칭으로 바꿨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그러나 이는 궁예를 도왔던 옛 고구려 지방 호족의 반발을 사 쿠데타가 벌어졌고, 고구려계 호족인 왕건이 즉위하면서 나라 이름을 고구려를 중시하는 이름으로 고려로 선포했으며 궁예 왕조를 왕씨 고려와 구분하고 잔당으로 비하하기 위하여 후고구려라 명명하였다는 것이다.
제왕운기는 궁예의 고려를 후고려라 말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태봉 문서 참고하십시오.
2. 기타 고구려의 후계 국가
자세한 내용은 소고구려 문서 참고하십시오.자세한 내용은 보덕국 문서 참고하십시오.
1번 문단의 국가에 비하면 저명하지 않으나 일각에서는 고구려부흥운동과 관련하여 소고구려나 보덕국을 후고구려라 부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