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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해군 수병 |
독일 해군 수병 |
- 한자 표기: 水兵
- 영어: Seaman/Sailor
- 독일어: Seemann/Matrose
- 프랑스어: Le Marin/Le Matelot
- 네덜란드어: Matroos[2]
- 러시아어: моряк/матрос
해군 및 해안경비대의 병을 의미하며, 영어로는 'Seaman'이라고 부른다.
2. 명칭
' 선원'으로 번역되는 'Sailor'라는 단어는 계급과 직책을 막론하고 배를 타는 사람들을 포괄적으로 칭하는 것이며, 군함과 어•상선을 구분하지 않는다. 특정 선박 내의 인원들을 계급에 상관하지 않고 부를 때는 'Ship crew'(승조원)라는 표현을 쓴다.대한민국 해군에서 수병은 이등병부터 병장까지 4단계로 구분되는 하나의 신분이지만 미국 해군에서 수병은 Enlisted man이라는 하나의 신분에서 9단계로 구분되는 계급중 Seaman으로 불리는 말단 두 계급만을 뜻한다.[3] 반면 영국은 Able rate라는 이름으로 수병 신분에 한 계급만 남겨두어 그 자체로 신분이자 계급으로 운용 중이다.[4] 프랑스는 국군과 동일하게 하나의 신분 4계의 계급으로 구성되며 독일은 아예 6계급으로 더 세분화되어있다.
위나 아래나 다 수병이다. 윗 사진은 전탐병, 아래 사진은 해군 해안초소 경계병이다.[5] |
해병대의 병은 해병이라고 부른다.
육군에서 병사라는 단어를 공식 문서 등에서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관습적으로만 쓰는 반면, 해군은 수병이라는 단어를 공문서 등에도 쓰는 등 정식 용어로 인정하고 있다.
북한군은 해병대가 없기 때문에[6] 수병을 해병이라고 부른다.
러시아 해군 등 동구권 국가의 해군들은 보병, 항공, 법무, 헌병과 같은 비승함 병과들은 지상군식 계급을 사용하고 수병이 아닌 병사 명칭을 쓰는 곳이 많다.
대한민국에서는 해군의 수병과 해병대의 해병을 헷갈려하는 경우가 많아 해군 수병 출신인 이들을 보고 해병이라 칭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는데, 듣는 입장에선 불편하게 들릴 가능성이 높으므로 주의하는것이 좋다.
3. 계급 체계
대한민국 해군에서 수병은 이등병에서 병장까지의 계급이지만, 세계 모든 나라가 이런 4계급 체계인 건 아니다. 해군은 육군에 비해 경력과 기술을 많이 요구하는데, 이 때문에 중사 이하의 부사관도 수병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통상 중사 이하를 "Petty Officer", 상사 이상을 " Chief Petty Officer"라 하며 전자는 경력이 쌓인 수병이 받는 계급이고, 후자는 하급 장교다. 많은 국가에서 PO는 수병의 복제를, CPO는 장교와 같은 복제를 착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대한민국 해군도 1983년 5월 복제개정 이전까지는 중사 이하는 수병과 같은 옷을 입었다. 진해기지사령부에 있는 지덕칠 중사 동상이 수병복을 입은 모습으로 조각된 것도 그 때문이다.
미군의 경우 3년 이상 복무한 수병에게 장교가 될 기회를 준다. 이 경우는 민간 지원자와 달리 학사 학위가 없어도 된다. 제러미 마이클 보더의 경우 수병으로 시작해 해군참모총장까지 올라간 수병 출신 제독이다.
4. 복장
보통 선원도 비슷하지만 수병도 창작물에서는 바다 사나이의 강직한 인상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으며 보통은 파이프 담배를 물고우락부락한 근육질에 거친 성격을 가진 사람으로 표현되는데, 이 경우 보통은 팔에 닻 문신 정도는 이미 클리셰처럼 되어 있다. 해군은 보통 영국 해군의 영향으로 인해, 흔히 대항해시대의 해군 하면 장교들은 금테가 달린 긴 코트와 삼각모를 착용한 귀족적인 이미지로 나오는 반면 수병들은 두말할 것 없이 보통은 우락부락하고 거친왜냐하면, 그들에겐 통일된 제복이 정해져 있지 않았고 그리고 무엇보다 배 탈 때까지만 해도 비실비실했던 샌님이라 하더라도 죽거나 거친 바다사나이가 되어 살아남을 정도로 배를 타는 생활은 힘든 생활이었다. 육군은 모병제였던 반면에 해군은 힘든 생활로 인해 지원하는 사람이 없기에 거의 납치 수준으로 강제 징집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생했었다. 문제는 배에 수병을 채우는건 함장들이 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이었고, 해군본부는 각 함 명부에 등재된 수병들의 급여 지급 정도의 일만 했기 때문에, 기껏 얻은 배를 놓치지 않으려는 무명 함장들의 필사적인 모병 행위가 뒤따랐다.
고기와 밀가루로 만든 빵[7]을 매일
최초로 수병에게 국가에서 제복을 지급한 것은 1850년대 영국 해군으로, 그 이전엔 어느 해군이든 제복조차 없어 그냥 사복을 입었다. 다만, 흰색 바탕에 가로 줄무늬가 그려진 셔츠를 입거나 긴 수건을 양갈래로 묶어 오늘날의 네커치프 모양으로 만들어 목에 두르는 암묵적인 유행 정도는 있었고, 그래서 함장이 돈이 많으면 멋진 수병복을 단체로 맞춰서 입히고는 했다. 이 사제 제복들은 수량도 적고 단정하게 입어야 하며 손망실시 재지급이 까다롭거나 사비로 보충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평소엔 짱박아뒀다 행사 등에만 입는 게 대부분이었다. 일상 근무복이나 전투복으로 아낌없이 입을 만큼 승조원 총원의 옷을 지급할 만큼 부유하거나 씀씀이가 큰 함장이나 제독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아니면 보급관이 배 안에서 같은 디자인의 옷을 대량으로 사다가 옷이 떨어진 수병들에게 팔다 보니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일종의 제복과 같은 효과가 나기도 했다.
트라팔가 해전을 묘사한 그림. 저기서 제복 같지 않은 걸 입은 사람들이 다 수병이다. 붉은색 군복을 입은 사람들은 해병대이고,
수병 하면 흔히 떠올리는 이른바 세일러복은 1850년대에 생겨난 이래 불과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일상 근무복과 전투복의 역할도 했으나, 오늘날 몇몇 가난해서 정복/전투복도 구분 안 하고 지급하는 나라들을 빼면 대부분 행사용 복장인 정복으로 바뀌고, 일상 근무 및 전투시엔 그에 맞도록 함정이나 육상에서 입을 수 있는 근무복 및 전투복이 있다.
한때는 세일러복 차림으로 육상 전투도 치렀다. 사진은 제2차 세계 대전 때의 소련 해군보병대
한국 해군 수병들의 근무복 겸 전투복. 정식 명칭은 해상병전투복이나 미 해군의 그것에서 유래한 샘브레이(Chambray, 셔츠)와 덩거리(Dungaree, 바지), 약칭 샘당이라는 명칭으로 더 많이 부른다. 자세한 것은 군복 항목 참조. 육상 근무하는 수병들 중 군사경찰이나 도서지역 근무자 등 일부에겐 간부들이 전투시에 입는 통합위장무늬의 전투복이 지급된다.
영국 해군의 함상 근무복.
태국 해군의 근무복. 오른쪽 견장 달린 옷 입은 둘은 장교이다. 특이하게 카키색 세일러복을 일상 근무복으로 착용하는 사례.
현존하는 가장 특이한 함상 근무복인 미 해군의 NWU(Navy Working Uniform). 함정에서는 흙먼지보다 페인트 작업이나 기름때 등이 많이 묻기 때문에 이런 오염을 최대한 가려줄 수 있는 위장복으로 이런 색배열을 채택했다. 한국 해군도 2020년 복제개정을 통해 이와 비슷한 디자인의 함상 전투복을 도입했다.
5. 열악한 보급
전통적으로 수병의 처우는 가혹했다. 전세계 모든 국가들의 함상 생활이 전체적으로 참담했는데, 전근대의 저장 기술로는 항해가 오래되면 저장해둔 식재료들이 썩어가 곰팡이가 생기거나 벌레가 생기는 게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해군 특성상 항구에 기항하기 전까진 보급이 불가능하기 때문. 이 탓에 바다에서 일하는 것은 기피되는 일이었으며, 당장 조선 수군만 하더라도 신량역천으로 여겨져 수군 입대를 피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점이 난중일기등의 기록에 남아 있다.섬나라인 일본도 마찬가지라 수군을 모집하려고 하니 일반 서민 징집병들은 기겁하고 거부하기 일쑤라서 붙잡힌 왜구들을 극형에 처해야 하지만 수군으로 일하면 살려준다고 하여 때울 정도였다. 아니면 서구와 마찬가지로 죄수들을 수군으로 일하게 하든가.[8] 특전 U보트에서는 식탁에 오르는 고기의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는 것이 잘 묘사되며[9], 오래되어 상한 보급품의 썩은 부분만 칼로 도려내고 먹는 장면도 나온다.보급의 난해함과 후달리는 저장 기술이 문제였으므로 전세계 최강인 영국 해군조차도 염장고기를 오크통 속에 잔뜩 쌓아놓는 게 현실이었으며, 굶을 수는 없으므로 녹색 곰팡이가 피든 말든 배고프면 꺼내먹어야 했다. 염장고기에 곰팡이가 생기는 건 보존기술의 한계상 병조림과 통조림이 나오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신선한 야채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주식으로 먹던 건빵의 경우 해당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더럽게 딱딱하기 그지없었는데 어느 정도였냐 하면 영국 해군의 군율에는 "식사시간에 전우에게 절대 건빵을 던지지 말 것"이라는 조항이 있을 정도로 거진 벽돌 취급을 했다. 뿐만 아니라 물조차도 오래되면 썩었기 때문에 항해가 길어지면 물 대신 장기 보존에 유리한 럼을 마셔댔다. 왜 하필 럼이었냐면, 설탕 산업의 부산물인 사탕수수 찌꺼기로 만든 가장 저렴한 술이었기 때문. 그래서 상선, 해군[10] 가릴 것 없이 모든 종류의 선원들은 알코올 의존증에 시달렸으며, 채소나 과일을 장기간 먹지 못해 나타나는 비타민 C 결핍으로 괴혈병에 시달리기까지 했다.
특히 괴혈병은 당시로서는 왜 일어나는지 알 턱이 없는 병이라 대책이 없어 뱃사람들을 괴롭히는 큰 위협이었다. 1753년에야 영국 해군 군의관 제임스 린드(1715 ~ 1794)가 괴혈병을 앓던 수병들을 대상으로 실험한 끝에 괴혈병이 채소나 과일을 먹으면 낫는다는 걸 입증하며 레몬을 수병들에게 보급하면 괴혈병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해결책을 내놓았는데, 영국 해군성은 레몬이 비싸니 수병이 괴혈병으로 죽으면 신병을 뽑아 채워넣으면 그만이라 하여 이 해결 방안을 거부하였다.[11] 그나마 아시아에서는 회를 먹으면 괴혈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았지만 유럽에선 회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괴혈병을 퇴치할 방법을 알았음에도 예산 문제로 괴혈병에 계속 시달릴 수 밖에 없었던 것. 그나마 린드가 살아있을때 같은 영국인인 제임스 쿡이 휘하 선원들에게 자우어크라우트와 과일을 지급해 세계 최초로 괴혈병 없이 세계 일주를 이뤄냈다. 이후에 영국군은 레몬 대신 오렌지를, 더 나중에는 라임을 주어 괴혈병에 대처하게 된다.
다만 영국해군은 범선시절 말기에 이미 통조림을 개발해 보급해서 구더기와 염장 고기 시절은 졸업했고, 괴혈병도 끝났다. 하지만 그건 영국 같은 나라만 그랬던 거고, 20세기 초까지도 상당수 나라들 수병들은 계속 보급 문제를 겪었다.
6. 가혹한 처우
이렇게 선상 생활이 어려우니 선원들을 모집 하면 세상 물정을 모르는 멍청이들이나 매우 가난한 극빈층, 공짜로 술을 준다는 얘기에 들어온 부랑자들이나 지원했지 대부분은 당연히 기피하였다. 그래서 강제 징병된 사람들은 다들 배를 안 타려고 발버둥을 쳤다.해군 강국인 영국은 되려 타국 해군보다 수병 처우 개선이 늦어서, 전함들조차 제2차 세계 대전 때까지 공식 수병 거주구역이 따로 없었다. 수병들은 잠을 잘 때면 복도에 해먹을 걸고 올라가 잤는데 이 해먹조차도 부족하여 해먹 1개를 교대로 써가면서 잠을 자야 할 정도였다. 이와 반대로 당시만 해도 장교는 귀족급이라는 인식이 남아있기 때문에 개인 침대와 공간이 허락되었다. 위생도 개판이라 넘쳐나는 쥐를 때려잡을 고양이는 반드시 군함에 태우고 다녔다.[12]
이런 생활로부터 조금 자유로운 함선이 그나마 인권과 개인의 자유에 대한 인식이 일찍부터 있던 미 해군 함선 정도였다. 그나마 자유롭다는 미 해군에서도 여러 크고 작은 일[13]을 겪으면서 차근차근 고쳐나갔다. 남북 전쟁 당시 남겨진 기록을 봐도 북군이나 남군이나 해군 환경이 막장이라 백인 흑인 가리지 않고 수병이 되었고 이 열악한 극한환경 속에서 백인과 흑인이 차별대우 받지 않고 어울려 지내기도 하였다.[14] 오죽하면 서로 죽어라 싸우던 적국의 해군들이 전투가 끝나면 아군, 적군 관계없이 입수자의 목숨만은 살려주는 경우가 보통이었다. 뱃사람이라는 고된 일을 한다는 동질감 때문이다.
2차 대전 직전, 영국 해군에 있었던 재미있는 일 중 하나는 영국 해군성이 수병 월급을 대폭 낮추자[15] 수병들이 거기에 대한 반대표시로 단체 파업을 일으킨 것이 있는데( 인버고든 항명), 하필 대규모 기동훈련이 있는 날이었기에 항구에 정박하는 배들마다 소식이 전해져 파업 규모가 점점 커졌다고 한다. 그러나 장교들이 슬기롭게 대처한 덕에 파업은 평화롭게 진행되었고, 해군성은 곧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이후 주동자 처벌 등도 전혀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는 등 무난히 넘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다만 그렇다고 아예 아무것도 안한건 아니고 파업을 주도한 수병들을 전역시켰다.
이러한 수병들의 파업은 나름 영국 해군의 전통(?)이었다. 프랑스 혁명 기간 중(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도 이런 대규모 파업이 있었다. 당시에도 영국 해군 수병들은 급여 인상이나 식단 개선 등을 내걸고 파업을 했지만 스스로 규율을 지켜 장교들에게 해를 가하지 않았고, 또 전쟁 중이던 프랑스 해군이 나타나면 파업을 일시 중단하고 프랑스 함대와 맞서 싸우겠다고 천명하며 교섭을 벌여 일부 요구조건을 관철시켰고 주동자 처벌도 없었다고 한다. 단 같은 시기에 다른 곳에서 벌어진 파업에서는 주동자들이 되도 않은 정치적 요구[16]까지 해대다 최후에는 프랑스로의 도주까지 꾀해서 주동자들은 모두 처벌(처형당하거나 호주로 유형당하는 등...)되었다고 한다. 그외에도 해외에서 작전 중이던 군함의 수병들이 봉급 지급이 행정착오로 제때 이루어지지 않자 이에 항의해 파업을 했고 영국 해군은 주동자 처벌없이 봉급을 지급했으며 수병들도 바로 임무에 복귀한 사례도 있다. 즉, 수병들의 파업을 무조건 항명이나 반란으로 처벌한게 아니라 요구조건을 내부적인 처우개선(봉급 인상 등) 정도로 국한하고 장교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하지 않을 경우엔 해군 고위층과 정부도 일종의 정당한 권리주장 정도로 받아들였지만, 이를 벗어난 무리한 요구나 폭력 등이 수반되면 단호하게 처벌했다.
수병들의 반란조차 해군 특유의 상황 탓이 컸다. 육군 병사들이 반란을 일으키면 주변 부대에서 파악하고 진압하러 오겠지만, 장시간 고립된 상태로 항해하는 경우가 많은 해군의 경우 수병들이 반란을 일으키면 소수의 장교들은 어떻게 손을 써 보지도 못하고 배를 점거당하기 쉬웠다. 그래서 가혹한 체벌로 수병들을 억눌러야 했던 것인데, 가혹한 체벌을 가할 수록 수병들의 반발은 더 커질테고, 그러다 한계를 넘으면 반란이 일어나게 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그래서 강하게 처벌하면 결국 해군 조직이 유지되기 힘들어진다. 따라서, 불만에 못 이긴 수병들이 파업이나 반란 등의 형태로 그것을 표현할 경우 장교들에게 해를 끼치고 배를 점거하는 등 도를 넘은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수병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며 가담자를 처벌하지 않고 불문에 붙이는 등 유화적으로 대응했던 것이다. 이런 분위기의 연장선상에서, 범선 시대 영국 해군의 경우 반란을 모의중인 수병들은 밤중에 갑판에서 포탄을 굴린다는 전통이 있었다(...). 당연히, 진짜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보다는 갑판 밑에 위치한 장교 침실에 포탄 굴리는 소리를 들려주며 "우리 지금 화 많이 났다. 뒈지기 싫으면 처우 개선해라."고 시위하는 것에 가까웠다.
해병대가 창설된 주 원인 중 하나도 이것이었는데, 수병들이 반란을 일으킬 경우 장교들을 보호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수병들을 수감하는 등 일종의 헌병 역할을 맡기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해병들을 딱히 우대해 주거나 한 것도 아니고, 되려 19세기 중반 세일러복이 생기기 전까진 자유롭게 사복 입었던 수병들과 달리 한여름에도 꽉 끼는 레드 코트 입고 각잡고 서있어야 하는 등 개고생을 해야 했던지라, 대우가 거지같으면 해병들이 되려 수병들과 합세해 장교들을 족치는 데 앞장서기도 했으므로 만능 해결책은 아니었다. 실제로 전술했던 인버고든 항명 당시에도 초기에 사태를 해결하려고 해병대를 투입해보기도 했지만 해병들도 수병들이랑 똑같이 임금이 삭감되는 상황이어서 오히려 가담해버렸다.
이러한 현실은 현대에도 별반 달라진건 없어서 대한민국 국군 중 가장 심하게 모병난을 겪는 곳이 바로 해군이다. 이미 경쟁률이 저세상으로 가버린 공군은 말할것도 없고, 육군조차 병영문화 개선과 짧은 복무기간을 강점으로 내세우는 판에, 복무기간은 길고, 휴대전화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데다가 육군 최전방 수준의 함정생활을 해야하는 해군 수병을 고를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나마 최근에는 공군의 미쳐버린 경쟁률로 인해 해군 비승함 직별(일명 드라이 해군)의 인기가 높아지긴 했지만, 소속만 해군일 뿐 육상 기지에서 타군과 별반 다를바 없는 업무를 보는 곳이라 해군 자체의 인기가 나아졌다고 보긴 애매하다.
7. 대한민국 해군의 수병
대한민국 국군에서는 병으로서의 수병 말고도, 직별(육군 병의 주특기와 유사한 개념) 이름으로도 있었는데 원래는 갑판병을 말하는 단어였다. 그러다가 수병 병종이 분화되어 갑판, 조타 등등 세부적으로 나뉘게 되었다. 이는 전통적으로 외국에서도 마찬가지라서, 계급으로서의 수병 말고도 원래 수병이라고 하면 특별한 병종이 없는, 즉 육군의대한민국 해군의 경우, 타 군처럼 수병들을 부를 때는 계급이 아닌 '수병'이란 호칭으로 부르는 게 일반적으로, "000 병장님" 대신 "XXX 수병님"으로 호칭한다. 간부가 수병을 부를 때도 'XXX 수병'[17]으로 호칭한다. 육군에서 분대장 등을 따로 호칭하는 것과 달리, 해군은 병은 무조건 수병이다. 물론 계급은 존재하므로 공문에 표기할 경우이거나 복명복창시에는 '병장 XXX' 같이 계급으로 한다. 사실 해군 함정에서 계급 명을 넣어 부르는 경우는 하사를 호칭할 때밖에 없을 정도로 드문데, 중사는 전부 '직별 + 선임하사'로 호칭하며(예를 들어서 '갑판 선임하사님' 등등), 상사나 원사는 직별장('직별 + 장')으로 호칭한다.(갑판 직별의 상사 = 갑판장님) 또한 장교도 해당 장교가 맡은 직책으로 호칭(통신관, 전투정보관, 작전관, 부장 등)하게 된다. 수병들 사이에서는 자기와 기수 차이가 별로 나지 않은 수병을 수뱀으로 칭하기도 하는데 '수병님'을 줄인 말이다.
그리고 참고로 육군이나 공군은 타 부대 병들을 ' 아저씨' 라고 부르는데 반해 해군 수병들은 타 부대 수병들에게도 아저씨가 아니라 수병님이라 부른다. 즉 육군 병이 육군 병을 보면 " 아저씨 무슨일로 오셨어요?" 하는걸 수병끼리는 "수병님은 어떤일로 오셨습니까?" 라고 부른다
제2함대의 수병들 중 함정 근무자로서 전역시까지 배에 남기로 서약하면 서해 수호자가 될 수 있다(서해수호자 배지는 큰
하지만 2010년대 중순부터 2020년대까지의 대대적인 건함정책과 메리트가 부족해서 매기수마다 미달나는 입영자 부족으로 인해 하루가 멀다하고 새 함정이 취역하는 상황에서 지원제인 해군이 정해진 수병 TO를 채우기 위해는 육상의 수병 TO를 줄이는 방향밖에 없다는 의견이 있다.
8. 각종 매체에서의 수병
수병 캐릭터로 가장 유명한 인물은 뽀빠이가 있다. 도날드 덕도 모티브는 수병. 그런데 제2차 세계 대전 때 전시 홍보 애니메이션에선 육군에 갔다. 또한 스폰지밥에 등장하는 인물 중 한 명인 집게사장도 해군 군수지원함 조리병 출신이다. 그가 항상 입고 다니는 옷이 해군의 피복인 샘브레이와 덩거리이기 때문.오다 에이이치로의 만화 원피스에도 해군 수병들이 엑스트라로 다수 등장한다. 여기서는 일반적인 세일러복이 아닌 네커치프에 조끼 차림으로 나온다. 수병들이 'MARINE'이라고 적힌 모자를 쓰고 있는데, 이는 영,미 문화권과는 달리 Marine이라는 어휘를 "해군"이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비영어권 유럽 국가들식의 군사 용어를 택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선 'Marine'이라는 말은 '해병'을 뜻하는 단어라는 인식에 워낙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한국어 번역판에는 '수병'이라 하지 않고 '해병'이라고 번역했다. 사실 만화 원문도 조직명 자체는 해군이지만 그 군인들은 해병이라고 써 있다.
마리얼레트리에는 광명학회 예하 해군 소속으로 전 승조원이 여성으로만 구성된 정보수집함 잿빗 10월함이 등장하는데, 당연히 여기는 수병들도 여성이다.
스타워즈에선 스톰 트루퍼 다음으로 등장이 많은 은하제국군이 은하 제국 해군인지라, 수병들도 많이 등장한다. 일반 수병들은 검은 제복을 입고 헬멧을 쓰고 있고, 오퍼레이터 등 기술 계열 수병들은 회색 작업복을 입고 군모를 쓰고 있다.
밀리라이브 마지막 화에서 Aqours의 사쿠라우치 리코가 FF에 갓 부임하는 신병 수병으로 등장한다.
뷰티풀 군바리의 주인공 정수아의 친구 하영이 한국 해군 수병이다.
[1]
위의 사진들은 다 행사 및 휴가용 복장, 즉
정복으로 근무복/
전투복이 아니다.
[2]
한국어에서 AB급 선원(able seaman)을 이르는 '마도로스'의 어원이다.
[3]
이중 3번째 계급인 Petty Officer 3rd Class는 국방부 공식번역에 따라 상등병으로 해석되지만,
Petty Officer 3rd Class라는 명칭에서 보듯 직역하면 3급 부사관이라는 계급으로 되며 실제로도 PO 대우를 받는 위치이다. 다만 실무자들의 말에 따르면 말단 부사관이라지만 하는 역할만 보고 따지면 하사 보다는 병장에 가깝다고 한다. 오히려 바로 위 2nd Class가 적당히 짬도 있고 머릿수도 많아 각 함정들의 확실한 실무자 역할을 떠맡는 역할이다보니 이 계급이 대한민국 해군 하사에 더 부합하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일본의 해상자위대에는 국군 대응 병장에 해당하는 사장을 미해군 P.O.3에 대응시켜 연계하고 있다. 계급 대응 논란은 해군뿐만이 아니라 미 육군의 Specialist/Corporal과 국군 상병/병장 사례처럼 다양하다. 나라마다 계급 운용정책이 다르기 때문.
[4]
Landman, Ordinary등등 직설적인 표현으로 3~4단계로 세분화했던 시절이 있었으나 후에 군을 개편하며 병, 부사관 계급을 아주 단순화시켰다. 명령권 우선 순위 문제로 부사관이 더 잘게 쪼개진 미국, 아예 한술 더떠서 병까지 6단계로 더 잘게 쪼갠 독일과는 대조적.
[5]
해군의 육상 해안초소는 경계군사경찰이라는 이름으로 군사경찰이 들어간다.
미합중국 해군의 경우
미합중국 해병대 대원들이 군항이 있는 해안을 지키는 초소에 들어간다.
[6]
북한은
해병대 대신
해군에 특수부대인 해상저격여단이 편제되어 있다.
[7]
우리나라로 치면 쌀밥
[8]
이순신과 맞붙어 패하던 쿠리 요시히데같은 수군 장수조차도 왜구 출신이었다가 바로
오다 노부나가에게 진압되어 원래는 참수당할 팔자였으나, 그의 왜구 지휘 능력 및 배들을 이끄는 솜씨를 눈여겨 본 오다가 수군 장수로 등용하여 살려준 것이다.
[9]
초반엔 꽤 고급스런 느낌이지만, 나중엔 곰팡이가 슬어있는 빵이 제대로 조리되지도 않고 나온다.
[10]
해적이 럼을 달고산다는건 잘못된 인식이다. 일반적으로 해적은 물이 상할정도로 오래 항해하지 않았다.
[11]
실로 어이없는 대책이었지만 지금과 달리 린드가 활동했던 시대에는 레몬이 전량 수입품이었기 때문에 매우 비싼 고급 음식이었다. 따라서 장기간 항해에 레몬을 지속적으로 배급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12]
일본군함은 처우가 좋았다는 말은 오류인데,
묘코급이 관함식 참여차 영국에 갔을 때, 그 배를 둘러본 영국인들은 "일본군함에 비하면 우리 군함은 호텔"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런 열악한 처우들 속에서도 딱 한가지 예외는 있었는데, 바로 그 유명한
야마토 호텔.
[13]
1844년에 사관후보생이 열악한 대우에 불만을 나타내다, 럼에 취해 반란을 일으킬 거라는 농담을 했는데 이 말이 함장에까지 퍼져 관련된 3명이 처형당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처형된 사관후보생은 당시 미 해군 장관의 아들이었는데, 함장은 그 뒤로 보복성 인사조치로
한직으로 쫒겨나
제독이 되지 못한 채 군 생활을 마감해야만 했다. 당시만 해도 해군장교 후보생들은 현역 해군함에 타서 훈련 및 여러가지를 실습하면서 보조로 배우면서 등용하였는데 이게 어디까지나 함장의 마음대로 이뤄졌기에 이 사건을 계기로 해군사관학교가 생겼으며 해군에 대한 대우 인식이 거론되었다고 한다.
[14]
당시 촬영된 사진을 보면 남군이나 북군 수병들이 흑인 백인 따지지 않고 거리낌없이 어깨동무를 하거나 한 곳에 모여 찍혀 있다. 반면 당시 육군에서는 흑인과 같이 있는 것마저 재수없다고 여겨 사진 하나에 흑인 백인이 같이 나와있는 것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15]
1차 대전 때 쓴 엄청난 전비부담 및 막대한 식민지 유지비용으로 전후 영국의 국가재정이 악화되었기에 삭감 자체는 수병들도 납득하고 있었다. 서류상으로는 10% 삭감이었지만 급여 지급 기준이 같이 바뀌면서 실질적인 삭감폭이 25%로 매우 컸기에 파업이 일어났던 것.
[16]
의회해산이나 프랑스와의 강화 등을 요구했다고 한다.
[17]
공식적인 자리이거나
함장 등 계급차이가 꽤 있는 경우.
함정에서 오래 근무해서 어느 정도 안면이 튼
장교는 보통은 그냥
이름으로 수병들을 부른다. 야- XXX야 오늘 야식 뭐냐? 비빔면입니다 전정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