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e4042c><colcolor=#fff> 할랜드 샌더스 Harland Sander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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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할랜드 데이비드 샌더스 Harland David Sanders |
출생 | 1890년 9월 9일 |
미국 인디애나주 헨리빌[1] | |
별명 |
샌더스 대령[2][3] Colonel Sanders |
사망 | 1980년 12월 16일 (향년 90세) |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기업인, 요리사, 군인(명예직) |
계급 |
미합중국 육군
이등병[4] 켄터키 주 주방위군 명예대령[5] |
활동 | 1930년 ~ 1980년 |
신체 | 178cm, 80kg |
학력 | 라살 엑스텐시온 대학교 |
부모 |
아버지 윌버트[6] 데이비드 샌더스 (1866~1895) 어머니 마거릿 앤 샌더스 (1865~1935) |
배우자 |
조세핀 킹 (1909년 ~ 1947년, 이혼) 클라우디아 프라이스 (1949년 결혼) |
자녀 |
할렌드 데이비드 주니어 (1912~1932) 마거릿 조세핀 애덤스 (1910~2001) 밀드레드 마리 러글스 (1919~2010) |
종교 | 개신교( 재림교회 일요파[7] → 오순절교회)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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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요리사이자 유명한 패스트푸드 체인점인 KFC를 설립한 기업인. KFC 로고에 박혀 있는 일명 "KFC 할아버지"가 이 인물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다.2. 상세
약 600번 이상[8]의 많은 실패를 딛고 성공한 근성의 상징이며 세계적인 치킨 체인점인 KFC(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의 설립자이면서 KFC 앞의 커다란 할아버지 상으로 유명하며 사실상 KFC를 상징하는 인물이며 KFC의 대표 메뉴 오리지널 치킨의 레시피를 개발한 원작자다.해당한 실패들은 모두 현재의 레시피를 만드는 데까지의 실패들을 말하는 것이며 이건 그의 인생에 있어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40살이 넘을 때까지 고정된 직장은 사실상 없었으며 40이 넘어서 식당 관련 직종들 역시 성공한 적이 거의 없었던 수준이었다. 사실상 그가 편안히 여생을 보낼 수 있는 안정된 삶은 살게 됐을 때는 이미 60대 후반이었을 정도로 그는 대단한 노력으로 정상의 자리에 올라갔고 늙을 때까지 엄청난 열정으로 살았다는 걸 알 수 있다.[9]
특유의 화끈한 성격은 항상 그의 발목을 잡았지만 결국 그는 전성기이던 노년기에 마침내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으며 살다가 백혈병으로 인해 향년 90세에 눈을 감았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패스트푸드 기업가들과 종사자들은 그의 이런 기업정신을 기억하고 존경하고 있다.
3. 생애
젊은 시절의 샌더스 |
1890년에 미국 인디애나 주에서 태어났으며 5세의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고 어머니가 토마토 통조림 공장에서 생계를 꾸리느라 어린 동생들을 위해 일찍이 요리를 깨우쳤다. 12세에 어머니가 재혼했지만 새로 온 계부는 인간 말종이어서 아이들을 마구 부려먹었고 결국 새아버지의 악행에 참다 못해서 2년 후 고향을 떠나 농장과 시내 전차에서 일했다.
16세였던 1906년에 생계를 위해 나이까지 속여 미합중국 육군에 입대했지만 병에 걸리는 바람에[10] 넉 달 만에 전역했다. 19세에는 조세핀 킹과 결혼한 후 세 명의 아이를 낳는다. 이후 여러 사업들을 했지만 번번히 실패하면서 생계 유지에도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11] 나중에는 첫 레스토랑인 샌더스 카페를 운영하다 종업원인 클라우디아 레딩턴과 불륜하게 되고 조세핀 킹과 1947년에 이혼한 지 2년 후에 클라우디아와 재혼했다.
야간 대학을 다니며 법률을 익혔으며 보험을 비롯해 타이어나 램프를 파는가 하면 페리선 장사라든가 산파까지 맡았지만 본인의 성급하고 과격한 성격 때문에 싸움질로 사업이 아예 틀어진 게 부지기수였다. 40세가 되어 어느 정도 돈이 생기자 그동안 연구해 놓은 자신의 요리법을 바탕으로 켄터키 주 코빈의 국도 주변 로열 더치 쉘 주유소 옆에 작은 식당을 차려서 트럭 운전사들에게 햄과 스테이크 등을 팔기 시작했고[12] 건너편에 '샌더스 카페'도 차렸다. 장사가 호황을 보인 이후 지역 주유소 시장을 장악하기 전에는 경쟁자와 진짜로 피튀기는 경쟁을 했는데 자세한 정황은 아래 성격 문단으로.
그는 식당을 운영하면서 프라이팬보다 더 빠른 후라이드 치킨 요리법을 강구해내 '압력솥 방식'을 고안했고 '11가지 비밀재료'도 이 때 창조했다. 1939년 요리평론가 던컨 하인즈가 샌더스 카페를 저서 <Adventure is Good Eating>에 선정한 후 전미에서 맛집으로 유명해졌고 1950년에는 켄터키 주지사로부터 대령이라는 명예 호칭까지 수여받았다. 이 유명세로 이듬해에 주 상원의원까지 도전했지만 두 자릿수의 근소한 표차로 낙선하였다.
새옹지마인지 제2차 세계 대전으로 휘발유 배급제가 실시돼 주유소 이용객이 줄어 장사가 안 됐고 1955년에 그의 식당이 있는 도로를 대신할 새 고속도로가 만들어지면서 손님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으며 설상가상으로 식당에 화재가 나는 연속되는 불행을 겪었다. 65세가 되던 해에 결국 식당은 폐업했다.
남은 재산이라고는 월 105달러[13]의 사회 보장금과 낡은 트럭 한 대밖에 안 남은 상태에서 할랜드 샌더스는 다시 사업을 하기로 결심해 트럭에 요리도구를 싣고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그동안 쌓아온 자신의 요리 비법을 팔려고 시도했으며 수백 번의 시도 끝에 웬디스 창업주인 데이브 토머스[14]가 자신의 식당에서 샌더스의 요리법으로 만들어진 치킨을 판매하는 조건으로 그에게 치킨 1조각당 4센트(0.04달러)[15]의 로열티를 지불하기로 계약했다. 한동안 미국 남부의 가정식 같은 취급을 받던 후라이드 치킨이 전국으로 확산된 순간이었다. 이후 그는 사업가 피트 하먼(Pete Harman)과 계약해서 마침내 KFC 1호점을 탄생시켰다. 재밌게도 이 1호점은 켄터키가 아닌 유타 주의 솔트레이크 시티에 문을 열었고 지금도 할랜드 샌더스와 KFC의 역사를 간직한 기념관과 함께 영업 중이다. # 회사가 자리를 잡아가던 1964년에는 지역 사업가 존 Y. 브라운과 잭 매시에게 지분을 파는 대신 초상권 명목으로 로열티를 내도록 했다.
지분 매각 후 그는 자신을 샌더스 대령이라고 칭하며 흰 양복을 입고 홍보대사 겸 마스코트를 자처하고 장학 재단을 설립하는 등 왕성히 활동했는데 안 좋은 일도 많았다. 1966년 KFC 주식상장 후 주주들이 늘어나면서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주장했는데 제1회 주주회의에서 경영진이 내 이미지만 망친다고 40여 분 간 경영진을 욕했다가 가맹점들도 그에게 등을 돌렸다. 이후에도 대변인으로서 꼬장꼬장한 모습을 보이며 KFC를 고소하려고 했고 1970년 < 더 뉴요커>지 인터뷰에서 KFC의 새 그레이비 소스 레시피를 두고 "저건 개도 안 먹겠다"(ain't fit for my dogs)며 비난을 가했다[16]
이렇게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샌더스는 1980년에 급성 백혈병으로 9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17] 장수의 비결은 육군 복무 시절 습관화된 규칙적인 생활이라고 한다. 그의 모습은 오늘날 전 세계에 퍼져 있는 KFC 체인점 앞에 서있는 플라스틱 상과 KFC의 마스코트 엠블렘으로 찾아볼 수 있으며 켄터키 주 의사당 앞에는 그의 동상이 있다.
샌더스 대령의 상징이라면 단연 하얀 양복이다. 이 옷은 사실 그의 여름 양복이었는데, 그가 어느 겨울날 큰 계약 때문에 양복을 입어야 했는데 겨울 양복을 세탁해 놓는 바람에 별 수 없이 입은 여름용 하얀 양복이 좋은 이미지를 냈다는 일화가 있다. 당시 여름과 겨울 각각 한 벌씩, 양복이 두 벌밖에 없었다는 이야기. 실제로 크게 성공하고 나서 KFC의 마스코트를 자처하던 시절엔 공적인 자리에선 무조건 흰 양복만을 입었다고 한다.[18][19]
그 외에도 이미지 메이킹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던 사람이라 양복 말고도 웨스턴 타이를 항상 하고 다녔는데 이 역시 상징이라면 상징. 주지사한테 받은 저 대령 칭호도 열심히 써먹었다. 특유의 염소 수염은 흰 머리에 맞게끔 염색한 것이라고 한다.
덧붙여 그는 영면 후 이 차림으로 안장되었다. 인생의 가장 전성기 복장으로 잠든 셈. |
이런 일화로 인해 끈기의 사업가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다. 말년(1970년대 후반)의 TV 광고 출연 장면도 재미있다.
또한 대표적인 패스트푸드의 창립자인 샌더스가 90세라는 고령까지 장수했기에 종종 가공 식품과 패스트푸드의 해로움에 대한 갑론을박의 논거가 되기도 한다. 60대 후반의 나이에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시제품 치킨으로 저녁을 해결했음에도 90세까지 살았기 때문.[20] 하지만 샌더스의 장수의 비결은 분명 자신이 밝힌 대로 군 생활 동안 체득한 규칙적인 생활 습관이 큰 기여를 한 거라 보는 게 좋을 것이다. 이는 라면을 매 점심마다 먹었던 안도 모모후쿠의 장수의 비결이 라면이 아니라 골프 등 운동인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배스킨라빈스 31의 설립자인 버트 배스킨이 54세로 급사한 경우나 KFC를 대항하여 파파이스를 창업한 알 코플랜드(향년 64세)[21]처럼 정반대도 얼마든지 있으므로 사람에 따른 차이 역시 감안해야 한다.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김준엽처럼 그렇게 담배를 즐겨 피우고도 장수한 골초들도 많지만,[22] 그렇다고 담배 즐기는 게 좋은 건 아니듯이 말이다.
3.1. 성격
인자한 모습과 친근한 이미지와는 대조적으로, 당시 미국 기준에서나 요리사라는 직업 기준에서나 꽤 불같은 성격에다 고집 있는 요리사였다. 체인점의 전국적인 증가로 KFC의 규모가 커지면서, 후에 스미노프를 생산하는 휴블레인에 2억 8,500만불에 인수된 후, 규모가 커지다 보니까 값싼 재료의 사용 빈도가 늘어나며 제품의 질이 떨어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 때문에 샌더스는 자신이 KFC의 상징임에도 불구하고, 주주가 아니어서 이익을 얻지 못해 회사와 여러 갈등을 빚을 만한 기행을 자주 벌였다.1970년대에 경쟁사 중 하나였던 처치스 치킨의 바삭한 닭튀김에 경쟁하기 위해[23] 회사에서 크리스피 치킨을 신메뉴로 내놓았을 때, 샌더스는 이 메뉴를 "반죽 튀김이 묻은 치킨"[24]이라고 비판했다. 안 그래도 품질 하락 때문에 팬들로부터 수많은 질문들을 편지로 받아서 힘들었던 샌더스는, 이것을 계기로 테네시로 본사를 옮긴 후 자신의 집이 된 건물에 자신의 부인에게서 따온 "커널스 레이디" (The Colonel's Lady, 대령의 부인)라는 이름의 식당을 새롭게 열었다.
이 식당에서는 KFC에서 사용되던 조리법을 그대로 사용했는지는 모르나 닭튀김도 제공되었는데, 이걸 빌미로 휴블레인이 샌더스를 고소하자 샌더스는 기다렸듯이 휴블레인[25] 측을 "술꾼"이라고 비하[26]하고, 자신의 명예를 실추하고 있다며 맞고소를 하였다. 재판에 따라 휴블레인은 샌더스에게 100만 불의 보상금을 지급하였고 그 대신 샌더스는 자신의 새로운 식당의 이름을 "클라우디아 샌더스 디너 하우스(Claudia Sanders Dinner House)"로 변경하는 걸로 양보하였다. 이 식당은 지금도 운영되고 잇다.
그러나 그 성깔은 어디 가지 않아서, 그렇게 한발 물러선 후에도 상술한 바와 같이 KFC의 한 체인점의 그레이비 소스를 맛보고는 신문 인터뷰에서 이를 "벽지 도배할 때나 쓰는 밀가루풀"이라며 혹평하며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
My god, that gravy is horrible. They buy tap water for 15 to 20 cents a thousand gallons and then they mix it with flour and starch and end up with pure wallpaper paste. And I know wallpaper taste, by God, because I've seen my mother make it. [중략] There's no nutrition in it and they ought not to be allowed to sell it.
하느님 맙소사, 그 그레이비 소스는 끔찍하기 그지없더군요. 15에서 20센트 정도 주고는 수돗물을 몇천 갤런이나 사와서는 거기에다 밀가루와 전분을 섞어서 벽지 바를 때 쓰는 밀가루풀이나 만들어 내더군요. 그리고 신에게 맹세컨대 전 그 밀가루풀 맛이 뭔지 압니다. 제 어머니가 만드는 걸 본 적이 있으니까요. [중략] 그 안에 영양소라고는 하나도 없고 그런 건 판매가 금지되어야 합니다.
하느님 맙소사, 그 그레이비 소스는 끔찍하기 그지없더군요. 15에서 20센트 정도 주고는 수돗물을 몇천 갤런이나 사와서는 거기에다 밀가루와 전분을 섞어서 벽지 바를 때 쓰는 밀가루풀이나 만들어 내더군요. 그리고 신에게 맹세컨대 전 그 밀가루풀 맛이 뭔지 압니다. 제 어머니가 만드는 걸 본 적이 있으니까요. [중략] 그 안에 영양소라고는 하나도 없고 그런 건 판매가 금지되어야 합니다.
They prostituted every goddamn thing I had. I had the greatest gravy in the world and those sons of bitches they dragged it out and extended it and watered it down that I'm so goddamn mad.
그자들은 내 모든 걸 망가뜨려 버렸어요. 난 세상 최고의 그레이비 소스를 만들었는데 그 개새끼들은 그걸 밑바닥으로 끌어내려 양을 늘려 물이나 잔뜩 타버렸다 이 말입니다. 정말로 화가 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자들은 내 모든 걸 망가뜨려 버렸어요. 난 세상 최고의 그레이비 소스를 만들었는데 그 개새끼들은 그걸 밑바닥으로 끌어내려 양을 늘려 물이나 잔뜩 타버렸다 이 말입니다. 정말로 화가 날 수 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샌더스의 그레이비 소스는 맛이 매우 훌륭했고, 본인 또한 그 유명한 치킨보다 더 자부심을 가진 메뉴였다.[27] 다만 그러다 보니 샌더스 본인처럼 숙달된 남부 요리 전문 요리사가 아니면 만들기가 어려웠고 손이 많이 가는 편이었기에, KFC 측에서는 알바생들에게 가르치기에는 지나치게 어렵다는 이유로 그레이비의 향만 비슷하게 유지하고 레시피를 크게 단순화시켜버렸다.[28] 원판의 명성이 어디 가는 게 아니라 레시피가 열화된 현재도 KFC의 그레이비는 맛있기로 유명하지만, 샌더스 본인을 비롯해 생전의 샌더스의 오리지널 그레이비를 먹어 본 사람들은 입을 모아 '원본보다 맛이 없다'고 혹평한다.[29]
샌더스는 평소에도 걸어다니다가 KFC 체인점이 보이면 일단 들어가서 메뉴들을 시식했고, 만약 자신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맛이 난다 싶으면 즉시 땅바닥에 집어던지고 자격이 없다며 육두문자를 퍼부었다고 한다. 이런 일을 해봐야 자신에게 돌아올 이득이 줄어들었으면 줄어들었지, 늘어날 리는 없을 텐데도 계속해서 자신의 손을 떠난 회사에게도 자신만의 엄격한 잣대를 고집한 것을 보면 반평생을 요리로 먹고 살아온 만큼 본인의 레시피에 대한 자부심이 정말 대단했던 모양. 말년에도 KFC가 원가 절감에 눈이 멀어 초심도 잃어버리고 레시피까지 다 망쳐놓았다고 맹비난을 하곤 했다.
또 다른 일화로 생애 문단에 상기한 것과 같이, 젊은 시절 로열 더치 쉘 주유소를 운영할 때 식당까지 같이 경영하며 성공하고 있던 중, 근처에 있던 스탠더드 오일 주유소의 사장이자 경쟁자인 맷 스튜어트가 샌더스의 식당 간판에 페인트를 칠해 대놓고 분풀이를 하자, 샌더스는 "한 번만 더 그러면 그냥은 안 넘어간다!" 라고 호통을 치고 간판을 고쳤다. 그러나 여전히 빡친 스튜어트가 샌더스 식당의 광고들에 또 똑같은 방식으로 영업방해를 하자, 그냥 두고 볼 수 없던 샌더스는 쉘 회사의 간부 두 명에게 도움을 청하고 같이 스튜어트의 주유소를 찾아갔다.
단단히 작정하고 있던 스튜어트는 샌더스 일행이 보이자마자 곧바로 총을 쏴 샌더스 측 간부 한 명을 살해하는 것으로 첫 인사를(?) 하자, 샌더스도 자신이 비상용으로 들고 온 산탄총으로 쏴서 화답하며 스튜어트의 어깨에 부상을 입혔다. 이 사건과 관련한 재판에서 샌더스는 정당방위로 무죄를 선고받았고 맷 스튜어트는 살인죄로 구속되어 징역 18년을 선고받았지만, 스튜어트는 수감 2년 만에 자신이 죽인 쉘 간부의 유족들에게 뒷돈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보안관 대리에게 살해당했다. # 참고로 이 당시 샌더스가 영업을 하던 지역은 당시 미국과 켄터키 주 내에서도 치안이 대단히 나쁜 지역이자 벽지로 유명했었으며, 총격전 정도는 매일 또는 하루 이틀 걸러 벌어지는 리얼 서부극인 장소였다. 본래 역경을 겪어온 인생인지라 강하고 괄괄한 성격인 것도 있었겠지만, 이런 위험한 곳에서 장사를 하면서 더욱 거칠어진 면도 있었다.
한편 청결에 매우 집착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20대 초반에는 증기기관차에 석탄을 때는 화부일을 했는데, 매일 일이 끝나고 나서 어찌나 꼼꼼히 씻었는지 하루 종일 석탄을 갖고 일한 사람이라는 것을 전혀 모를 정도로 깔끔한 차림으로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30] 물론 이런 결벽증 덕에 요리사로써는 위생을 칼같이 지키는 기본기를 갖추게 되었다.
물론 샌더스가 성질을 부리기만 했던 것은 아니며 오히려 불 같은 성격 뒤에는 남을 돕는 것을 좋아하는 자상한 일면도 갖추고 있었다.[31] 그래서 상당히 훈훈한 일화들도 많은데, 장사가 잘 되어가서 먹고 살 만해지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직접 노새를 타고 애팔래치아 산맥의 첩첩산중에 위치한 빈민촌을 찾아가 식자재 등을 나눠주는 등 빈곤층을 위한 봉사 활동에도 힘을 많이 썼다. 한 번은 의사도 없는 이 마을의 한 임산부가 출산을 하게 되자 스스로 산파를 자처했는데, 문제는 태아의 자세가 틀어져 있어 자칫하면 아이와 산모 둘 다 위험할 수 있었다. 샌더스는 재빨리 상황을 파악하고 바로 산 아래 마을의 의사를 찾아 갔으나, 마침 거하게 술을 마셔 만취 상태였던 그 의사는 배째라는 식으로 샌더스의 요청을 거부했다고 한다.[32] 그러자 샌더스는 군말없이 바로 집으로 돌아가 자신의 산탄총을 챙긴 후 다시 의사에게 갔고, 곧바로 의사를 정중하게 '설득'했다. 샌더스 대령의 정성에 감동해 술이 깬 의사를 임산부에게 데려갔으며 덕분에 산모와 아이 둘 다 무사했다. 아이 어머니는 자신과 아이의 목숨을 구해 준 샌더스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아이 이름을 "할랜드"로 지었다고 한다. # 훗날 자신의 본명보다도 더 유명해진 커넬 샌더스의 어원인 켄터키 주 명예대령 칭호를 부여 받게 된 것도 그의 이런저런 봉사 활동에 감사하는 의미에서 주지사가 부여해준 것이다.
4. 광고에서
본인의 높은 인지도로 인하여 별세한 지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KFC 광고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심지어 소울 칼리버 6의 커스터마이징에도 공식 인증과 함께 샌더스 대령 커스텀을 내놓을 정도.또한 전술한 성격 문단에서 알 수 있듯이 후덕한 인상과는 달리 고집스럽고 걸걸하며 강한 이미지가 있어서 코믹스나 액션물 등 여러 패러디로 등장하거나 콜라보되기도 한다. 히어로물에서 패러디되기도 하며 레슬링과 콜라보하여 찍은 광고도 있다.[33]
DC 코믹스와 홍보용 콜라보 에피소드에서는 선한 할랜드 샌더스 대령과 지구-3에서 건너온 악한 할랜드 샌더스 대령이 나오는데, 악한 샌더스 대령이 정성이 안 들어간 대충 튀긴 프라이드 치킨을 팔고 은행을 털자, 선한 샌더스 대령이 직접 나서서 악한 샌더스 대령을 막아내고 다시 지구-3으로 돌려보낸다. 이를 본 플래시와 그린 랜턴이 저스티스 리그 가입을 권하지만, 은퇴를 하면 가능하다고 거절을 한다.
그린 랜턴과의 콜라보에서는 샌더스 대령이 그린 랜턴이 되어서 할 조던과 함께 라플리즈와 대항을 하고, 라플리즈에게 KFC 분점을 차리면 징거버거를 먹을 수 있다고 설득시킨다.
미국 어머니의 날에는 춤을 추는 광고도 나온 바 있다.[34]
이와 연계해서 광고용 트위터에서 섹시한 미노년 아이돌 컨셉의 사진을 본인과 같은 종인 가상 인플루언서 imma와 함께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치킨 광고로 유명한 로보캅을 샌더스화 하여 광고를 찍기도 했다.
위 그림은 KFC가 한 트위터 유저에게 보낸 상품이다. 해당 유저는 KFC의 트위터 계정이 팔로우하고 있는 11명 중 5명은 스파이스 걸스의 멤버들이고, 나머지 6명은 Herb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인 것을 발견하여 커널 샌더스에게 업혀있는 그림을 선물로 받았다.
WWE 2K18에선 특별 게스트로 참전. PPV의 스폰서가 KFC라 그런 건지, 샌더스 대령이 치킨을 혼내주는 CM의 인기를 등에 업고 당당하게 플레이어블 캐릭터로 출전했다. 피니셔는 팔콘 애로우. 재비어 우즈의 업업다운다운에서 샌더스 대령역을 맡은 커트 앵글과 치킨 역을 맡은 히스 슬레이터가 대전을 펼쳤는데 결과는 커트 앵글이 조작한 샌더스 대령의 승리.
그 외에도 숀 마이클스, 돌프 지글러가 샌더스 대령으로 분장한 적이 있다. 위 경기는 2016년 섬머슬램 전 스맥다운 방송 후 촬영한 경기로, 당시 총체적 난국이었던 WWE 매치 라인업들 보다 훨씬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결국 KFC에서 미연시를 만들어버렸다! 스팀링크
5. 창작물에서
맥도날드와 숙적이라 수많은 짤들을 배출했고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로날드 맥도날드, 샌더스, 킹, 웬디 |
이것과 비슷하게 유명한 걸로는 M.U.G.E.N.의 창작 캐릭터인데, 오스왈드의 조커를 치킨으로 쓴다. 치킨 막대기로 127식 규화 비스무리한 콤보를 쓴다던가, 아니면 치킨은 기술 중에 하나이고 주요 전투는 지팡이에 검이 숨겨진 소드 스틱이라는 등 개그가 따로 없다. 캐릭터 성능은 일반캐 중에서 강캐에 속할 정도로 상위권에 위치해 있다. 마찬가지로 라이벌인 로날드도 무겐에 참전해서 서로 라이벌 의식을 계속 불태우는 중이다. 참고로 저 두 작품은 하도 유명해서 약 빨기로 유명한 KFC 스페인 공식 트위터에도 해당 무겐 캐릭터들이 올라왔다.
귀귀의 웹툰 작품 열혈초등학교에 나오는 등장인물 김퍽춘 교감도 이 인물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외모도 그렇고, 이름도 KFC의 이니셜에서 따왔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결정적으로 로날드 맥도날드가 모티브인 학생 함버거를 매우 싫어한다(...)
판타시 스타 포터블 2 인피니티에서는 콜라보레이션 기획으로 파트너 캐릭터로 등장한다. 지팡이를 휘둘러 몬스터들을 두들겨 패시며 불이나 냉기도 다루는 포스 캐릭터, 파트너 카드도 얻을 수 있다.
극장판 은혼 완결편 요로즈야여 영원하라에서는 골목길에 세워진 푸짐하게 생긴 켄터키 할아버지의 마네킹으로 등장한다. 맨 처음 히라가 겐가이가 양 팔에 대포를 붙이는 요상한 개조를 하다가 걸렸고, 이어 가츠라 고타로가 그 마네킹에 다시금 타카스기 신스케 복장을 입히다가 걸려서 감옥에 갇힌다. 그런데 사실 그 마네킹은 콘도가 스토커 짓을 하기 위해 변장해서 서 있었던 것. 결국 양 팔에 붙인 대포가 멋대로 폭발해서 근처 상가가 불바다가 된 죄로 콘도도 감옥에 갇힌다.
사우스 파크의 Medicinal Fried Chicken 에피소드에 등장했다. 제이미 올리버를 원수로 여기는 마피아처럼 나왔다. 방영 당시 커넬 샌더스는 이미 고인이었으니 어찌보면 사우스 파크라서 가능한 고인드립이다.
콜 오브 듀티 : 모던 워페어 2의 도전과제 중 하나인 Colonel Sanderson은 미션 중 10초에 닭 7마리를 죽여야 하는 과제이다. 주요 등장인물인 개리 '로치' 샌더슨과 KFC 샌더스 대령의 이름을 이용한 말장난 같다.(도전과제 아이콘도 KFC의 치킨버켓 모양)
으쌰으쌰 우비소년에서 외계인이 지어낸 거짓 회상에서 나오는데 김 회장으로 나온다. 국밥 집에서 쓰러진 그와 파트라슈를 보고 양자로 삼았다. 하지만 SBS 방영판에서는 간접광고 때문에 상표 명칭을 변형해서 나왔다.
워게임 레드 드래곤에서 한국군 KF-16C의 성능이 워낙 사기적이라[35] 외국인들은 KF-16C가 뜨면 샌더스 대령이 전투기를 몰고 왔다고 드립친다.
1980년대 중순 일본 만화를 한국화로 표절 해적판으로 낸 권법소년에서 무술 수련을 위하여 KFC 매장 앞에 있는 샌더스 상을 신나게 두들겨 패는 게 나오는데 당시만 해도 한국에선 일본과 달리 KFC는 서울 및 일부 지역에서만 있다보니 없던 지역이 많아서 '대체 이 노인상은 뭐지?'하고 알 수 없던 국딩들이 많았다.
비슷한 사례로 1990년대 초반 모 한국만화에서 샌더스 인형으로 분장하고 있던 빌런 졸개가 주인공을 소드 스틱으로 공격하는 장면도 나온 적 있는데, 비수도권 어린이들 중에서는 '대체 이 노인상은 뭐지?'라는 반응도 있었다고 한다.[36]
쿠키런: 킹덤 콜라보로 쿠키가 되었다. 양복이 원피스 정장이 되었다. #
2002년 일본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소설 해변의 카프카에도 등장한다. 작중 샌더스는 본인이 당연히 진짜는 아니고, 메타포적인 존재라고 스스로를 설명한다.
6. 기타
- 한국에서는 대부분 할랜드 샌더스의 이름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그냥 "KFC 할아버지", "커넬 샌더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 잘 안 알려진 사실이지만 196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부통령 후보로 점쳐진 적이 있다. 대통령 러닝메이트는 조지 월리스. 복잡한 내막을 설명하자면, 민주당 출신 린든 B. 존슨 대통령이 연방 민권법을 제정해 흑백 분리를 금지하며 인종차별 철폐를 지지한 북부와 이를 반대한 남부의 민주당이 갈라졌다. 이중 조지 월리스는 흑백 분리를 지지한 남부 민주당 출신으로 출마한 것이었고 대표적인 남부 출신 인물인 할랜드 샌더스를 자신의 대중적 표심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부통령 후보로 고려한 것. 결과적으로는 군인 커티스 르메이가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며 할랜드 샌더스 부통령 지명은 무위로 돌아가며 월리스 본인도 3위로 낙선했다.[37]
- 1951년 켄터키 주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하려 시도한적이 있었다.
- 상술했듯 KFC와는 이런 저런 갈등은 있었지만 그래도 회사 차원에서 마스코트로 밀어주고 있다. 푸근하고 깔끔한 노신사 이미지라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쉬우면서도 흰 머리에 흰 옷이라는 다소 개성도 섞여있는 독특한 이미지이기 때문에, 이 바닥 마스코트 중 대우와 인기가 독보적으로 좋다.[38] 특히 일본에서 인기가 높은데, KFC가 크리스마스 시즌 등의 기간에 치킨요리의 대명사로 인기가 높아서인지 일본에서는 산타클로스 못지않은 인지도의 서양 할아버지의 대표라는 인상이라 서브컬처 등에서 출연빈도도 높은 그야말로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는 캐릭터이다.
- 한국에서 방영된 광고에도 샌더스가 자주 등장했는데, 특히 어떤 광고에서는 샌더스의 동상이 직접 말을 하거나 표정을 짓는 장면도 종종 나왔다. 2002년에 방영된 광고. 참고로 성우는 장정진이다.
- KFC 앞에 있는 샌더스 조각상이 쓴 안경은 실제로 도수가 있는 볼록렌즈였다. 샌더스의 생전 모습에 가깝게 재현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새로 생기는 지점의 샌더스 상에는 안경알이 없고, 기존 지점에 있던 안경들도 알이 실종되거나 일부러 빼면서 적어도 대한민국 내에서는 안경알이 있는 샌더스 상을 찾아보기 매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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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프로야구 팀
한신 타이거스에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자세한 내용은
커널 샌더스의 저주 문서로. 2023년 기어코 38년간의 저주를 깨고
한신 타이거즈가 우승했는데, 흥분한 관중들이 또 커널 샌더스 상을
도톤보리강에 던지려다가 경찰이 만류하는 바람에 대신 샌더스 코스어를 던져버렸다.
코스어는 건졌으니까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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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에는 일본 도쿄 에비스에 있는 KFC 매장 앞에 있는 할랜드 샌더스 인형이 없어졌다가 한참 뒤에야 공중전화 부스에서 겨우 찾은 일화가 있었다.
이 일화는 MBC의 타임머신(24회, 2002년 5일 12일 방송분)에서 "치킨 노인 가출 사건"이라는 제목의 에피소드로 재현해서 방영된 적이 있었다. 해당 에피소드에서는 술 취한 행인이 매장 앞에 있는 할랜드 샌더스 인형을 길 잃은 할아버지로 착각해서 행인의 집으로 문제의 인형을 데리고 왔다가 다음 날 아침에 술이 깨고 정신 차려서 일어나 보니 길 잃은 할아버지인 줄 알았더니 문제의 매장 앞에 있는 할랜드 샌더스의 인형이었던 것이었다. 당연히 문제의 해당 지점은 발칵 뒤집어 지면서 할랜드 샌더스 인형이 사라지는 날벼락을 맞았고, 결국 이곳 저곳을 수소문하다가 결국 그 행인은 치킨 체인점에 전화를 걸어서 "나, 커널 샌더스야... 길을 잃었어..."라는 할아버지 목소리를 구사, 공중전화 부스에 문제의 할랜드 샌더스 인형을 집어넣었으며, 직원이 한참 동안 추적한 끝에 공중전화 부스에 박혀 있는 할랜드 샌더스 인형을 어렵게 발견했다는 내용이었으며, 후에 나온 신문 기사에는 일명 "K씨 유괴사건"이라는 제목으로 신문에 나간 적이 있었다.
아따맘마에서도 해당 내용을 패러디 한 것으로 보이는 에피소드가 방영된 적이 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파티에 쓸 케익을 사오기로 출근하기 전에 약속을 했던 아빠가 그날 회식 자리에서 술을 거나하게 마시고 취해서 귀가하는 중에 케익을 들고 있는 할아버지 인형(제과점 앞에 세워져 있었다)을 통째로 들고 집까지 가져온 것. 엄마와 아리는 충격에 빠졌고 당시 아직 아기였던 동동은 놀라서 빽빽 울어댔다. 평소였다면 아빠가 가져온 물건을 버리지 않고 보관했을 엄마도 그것만큼은 어쩔 수가 없어서 한밤중에 아빠와 둘이서 그걸 들고 원래 있던 자리에다 갖다 놓고 왔다고
시티헌터 원작 만화에서도 해당 사건이 패러디 된 적이 있었는데, 사에바 료가 술에 취한 후 집으로 가져온 '전리품' 중 하나가 샌더스 인형이였다.
- 미국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에서 남쪽으로 168마일(269km) 떨어진 지점 켄터키 주 코빈에 KFC를 1호로 개업한곳으로 Harland Sanders Cafe and Museum 카페와 박물관이 있는데 들어가보면 할랜드 샌더스 대령의 동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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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제작된 광고에서 치킨을 직접 때려잡았다.# KFC가 WWE를 후원하면서 제작된 광고로 WWE 프로레슬러 더 미즈가 닭 역할, 돌프 지글러가 샌더스로 분장하여 촬영하였다. 해당 촬영시 관중들은 미리 섭외를 한 보조연기자들이 아니라 실제 레슬링을 보러 온 관중들로 WWE의 주간쇼 중 하나인 스맥다운 방송 종료 직후 촬영되었다고 한다.[39]
- 한때 KFC에서 치킨을 먹다가 쟁반 종이나 접시에 그려진 샌더스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부분에 닭뼈를 조립해서 웃긴 사진을 찍었던 용자가 있었다. # 설명하기를, 팔은 날개뼈, 척추는 닭봉 뼈, 다리는 다리뼈를 썼다고 한다.
- 2010년대부터 KFC 로고가 샌더스의 상반신이 나왔던 기존 버전에서 얼굴과 보타이까지만 나오는 버전으로 바뀌었는데 하필 보타이의 리본이 몸통처럼 보이는, 즉 샌더스 졸라맨 설이 돌기도 했다. 가분수라는 드립은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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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우연히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앨리스 쿠퍼와 만난 적이 있다. 둘은 당시 같은 호텔에 투숙 중이었다.
커낼 샌더스와 앨리스 쿠퍼 |
7. 관련 자료
- ㅍㅍㅅㅅ 기고문: 원본은 Menuism에 기고된 칼럼 <Everything You Probably Didn’t Know About Colonel Sanders>다.
[1]
본인이 창업한 회사의 본거지인
켄터키 주 루이빌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다.
[2]
이 별명이 워낙 유명해서 '커널 샌더스'가 본명인 줄 아는 사람들도 많다. 그도 그럴 것이 80년대 한국 신문광고에서조차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을 만든 커널 샌더스 씨라고 광고한 적도 있으며 21세기에도 한국
KFC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커널 샌더스 대령이라고 쓰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커널 샌더스 혹은 샌더스 대령이라고 해야 옳다.
[3]
원래 colonel은 계급뿐만 아니라 미국 남부에서 중년 신사를 일컫는 존칭이기 때문에 (한국의
영감과 비슷하다. 원래 영감도 노인이 아니라 종2품/정3품(차관보-관리관급) 이상 벼슬아치에게 부르던 명칭이었다.) 해당 계급에 이르지 않았거나 군 경력이 없는 이에게 붙는 경우도 있으나 할랜드 샌더스는 친구이자 켄터키 주지사였던 로렌스 웨더비로부터 실제로
주방위군 명예 대령으로 위촉 되었으므로 실제로
대령이기도 하다. (켄터키의 명예 대령 제도는 지금도 존재한다. 켄터키와 관련된 인물 중 명예로운 업적을 가진 인사들을 선정하여 위촉한다. 켄터키 주에서 부여하는 최고 수준의 명예로 현대 영국의 기사작위와 비슷한 개념이다.) 샌더스 대령을 자칭하게 된 것도 이 이후의 일이다.
[4]
의병 제대
[5]
친구였던 로렌스 웨더비가 켄터키 주지사 시절 때 명예 대령으로 부여.
[6]
"
Wilbert David Sanders", findagrave.com
[7]
한국에 알려진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아닌 재림기독교회(Advent Christian Church)를 말한다. 이 교단은 제칠일안식교와 달리 제1일파라고 하여 타 정통교파처럼 일요일 예배를 준수하며 고기도 먹는다.
[8]
KFC 창립까지 1,009번이나 시도한 걸로 알려졌지만 사실 과장된 거고 실제로는 대략 600번~790번의 시도를 한 것이라고 그의 둘째 부인이 증언했다. '수백 번의 실패를 거듭하여 창업에 성공한 사례'로 볼 수 있다.
[9]
62살에 더 배운다고 대학 다녔으니 말 다했다.
[10]
일설에는 나이를 속인 게 들통나서 강제로 쫓겨났다는 설도 있다.
[11]
야사에 따르면 당시 킹이 생활고를 이유로 자식들과 처가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이를 알게 된 킹의 오빠가 샌더스에게 '조세핀은 너 같은 자격 미달의 남자와 결혼하지 말았어야 했음'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12]
현재는 샌더스 대령 하면 닭고기가 떠오르기 때문에 의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원래 샌더스 대령이 경영하던 식당은 스테이크와 컨트리 햄(country ham), 비스킷 등이 주된 메뉴였고 치킨은 많은 메뉴 중의 하나에 불과했다. 치킨뿐만 아니라 그냥 본인이 요리를 잘 했던 모양이다. 당시 샌더스 대령의 레시피는 이후 KFC에서 치킨만 제외하고 책으로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다.
[13]
이를 2024년 가치로 환산하면 약 1223달러이며, 연 지급을 감안해도 환산해도 1260달러(2024년 가치로 14679달러)에 불과한 수준이다. 1955년 미국의 1인당 GDP(2578달러, 2024년 가치로 30034달러)와 비교하지 않아도 샌더스가 열악하게 살았다는 것을 알 만하다.
[14]
이 사람도 샌더스만큼이나 어려운 조건에서 성공한 인간승리자다.
[15]
2024년 가치로 환산하면 46센트(0.46달러)다.
[16]
샌더스 본인은 치킨보다도 자신의 그레이비 소스에 더 자부심을 가진 사람이었고, 실제로 1964년을 기점으로 KFC 그레이비 소스의 레시피가 열화된 것도 맞다. 자세한 설명은 후술.
[17]
KFC가 한국에 들어오기까지 불과 4년 전이다.
[18]
그런데 KFC 노량진역점의 샌더스 상은 어째서인지 재킷이 검은색으로 나왔다
#
[19]
친숙한 소재를 통해 시작은 우연이었지만 이후 스스로의 상징이 된 것을 이미지메이킹에 잘 활용한 다른 사례로는
더글러스 맥아더의
콘콥 파이프가 있다.
해당 문단으로.
[20]
병사의 원인도 급성
백혈병으로 패스트푸드가 원인이 아니었고, 병에 걸리기 전까지 광고에 출연할 정도로 정정했다.
[21]
이 쪽은 불치성 희귀 피부암이었다.
[22]
다만 마오쩌둥도 잦은 흡연이 원인이 되어서 말년에는
파킨슨병 등 여러 질병들로 인해 병세가 악화되면서 꽤나 고생은 했다.
[23]
실제로 처치스 치킨은 당시 광고에서 KFC를 은근슬쩍 저격한 바 있다.
[24]
실제로 KFC
오리지널 치킨만 먹다가 KFC 크리스피 치킨을 먹어보는 경우, 튀김옷에서 밀가루 냄새를 느끼게 된다.
[25]
당시 KFC의 모기업으로 나중에 이 기업도 결국은 다른 기업한테 인수되었고, KFC는
펩시코로 팔렸다.
[26]
상술했듯이 보드카
스미노프를 생산하는 기업이라는 점에서 착안한 것.
[27]
심지어 한번은 자신의 그레이비에 대해 '
그깟 치킨 따위는 던져버리고 그레이비만 핥아먹고 싶어질 정도로 맛있다'고 자평한 적도 있었다.
[28]
팬들과 연구자들의 재구에 의하면 1964년 이전 KFC의 그레이비 소스는 버터, 오리지널 레시피의 튀김옷, 압력솥에서 닭을 튀기고 남은 기름에 가라앉은 튀김옷 부스러기(crackling), 우유, 물, 차가운 크림 등을 이용해 루를 만들고 재료를 섞어 끓이는 등 복잡한 레시피 아래 만들어졌지만 대신 맛은 매우 좋았다. 특히 부스러기는 KFC 그레이비 소스의 핵심으로 샌더스는 아예 자신의 그레이비 소스를 'Cracklin' Gravy'라고 불렀을 정도였다. 그러나 샌더스가 KFC를 판 1964년 이후 이 레시피는 튀김옷, 부스러기, 탈지유 등을 이용해 질이 떨어졌고, 현재는 그마저도 더 열화시켜 맥코믹(McCormick) 社의 그레이비 믹스와 옥수수 전분, 설탕, 카라멜 색소 등을 섞어 만들고 있다.
[29]
참고로 샌더스의 그레이비 레시피는 2024년 현재까지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
[30]
석탄이나 연탄을 다뤄본 사람은 알겠지만, 극히 미세한 탄가루가 손톱 밑을 포함해 온몸의 주름, 모공 등에 들어가 박히기 때문에 완벽히 씻어내기가 매우 어렵다.
[31]
본인 자서전의 표현을 빌리자면 "There's something inside of me that makes me want to help people, especially people who are having difficulty of some kind."(내 마음 속에는 사람들을, 특히 어떤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그런 생각이 있다.)라는 말을 남겼다.
[32]
사실 의사들은 술에 취한 상태 같이 심신이 미약한 상태면 진료를 거부할 권리+의무가 있다.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의료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진료를 거부한건 딱히 잘못이 아니었다.
[33]
이건 WWE를 KFC가 지원하면서 많이 하게 된 이유도 있다.
[34]
해당 영상은 미성년자 관람불가의 남성 스트립 댄스쇼인 치펜데일스 (Chippendales)와의 콜라보 광고이다. 풀 영상에서는 마지막에 엉덩이에 기념 문구 단어를 하나씩 적은 흰색 삼각팬티로 끝나는 좀 부담스러운 광고다.
[35]
대레이더 미사일을 들고 나오는 것으로 모자라 중장거리 공중전도 커버하는 암람을 들고 날아온다
[36]
이 당시는 KFC라는 약어가 아니라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이라는 풀 네임을 그대로 썼다. 특유의 샌더스 인형 상을 장사 시작하면서 가게 앞에 내놓는 장면도 있다.
[37]
참고로 이 때 선거 결과는 민주당이 북부와 남부로 분열된 결과 불과 40%대 초반의 지지율을 얻은
리처드 닉슨이 공화당 소속으로 근소하게 당선된다(...).
[38]
'경쟁자'라 할 수 있는
로날드 맥도날드는 하필
광대 기반 디자인이라
광대공포증을 비롯하여 묘하게 무섭게 생겨서 그런지 2010년대부터 캐릭터 노출이 줄어들었다.
[39]
하필 광고가 알려진 게 섬머슬램 때였는데 하도 섬머 슬램 엔딩이 안 좋아서 팬들이 장난삼아 PPV 최고의 경기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