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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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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D1B3D><colcolor=#fff> 카타르 제7대 아미르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 حمد بن خليفة آل ثان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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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52년 1월 1일 ([age(1952-01-01)]세) | ||
카타르 도하 | |||
재위기간 | 제8대 아미르 | ||
1995년 6월 27일 ~ 2013년 6월 25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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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D1B3D><colcolor=#fff> 가문 | 사니 가문 | |
이름 |
셰이크 하마드 빈 칼리파 빈 하마드 빈 압둘라 빈 자심 빈 모하메드 알사니 Sheikh Hamad bin Khalifa bin Hamad bin Abdullah bin Jassim bin Mohammed Al Than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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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칼리파 빈 하마드 알사니 | ||
어머니 | 아쉬야 빈트 하마드 알아티야 왕비 | ||
배우자 |
1처 :
마리암 빈트 무하마드 알사니 왕비 2처 : 모자 빈트 나세르 알미스네드 왕비[1] 3처 : 누라 빈트 칼리드 알사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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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 이슬람( 와하브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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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악수하는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과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 아미르 |
카타르의 전 아미르(국왕)이며 현 아미르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의 아버지다.
일각에서는 개혁주의 노선을 내세운 명군이라는 평이 있으나, 알 카에다 계열 알 누스라 전선과 무슬림 형제단의 무함마드 무르시를 막대한 자금으로 후원하는 등 살라프파 이슬람 극단주의 계열 테러리즘과 유착하는 전근대적인 걸프 왕실의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면모가 더 강하다.
2. 왕위 계승
가만히 있어도 아미르가 될 왕세자였음에도[2] 1995년 무혈 쿠데타를 일으켜 왕이 되었다. 그것도 선왕이었던 할리파 빈 하마드(خليفة بن حمد) 국왕이 해외 여행을 나간 상황에서. 쿠데타 후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이 왕이 되었음을 알렸다. 이 탓에 한동안 아버지와는 절연 상태였고, 나중에 아버지는 카타르로 귀환해서 화해했다고 한다. 할리파는 하마드에서 손자 타밈으로 양위가 완료된 시점에도 살아 있었으며 2016년 10월 23일 8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2009년 사진. 왼쪽이 하마드 상왕, 가운데가 할리파 태상왕. 옆의 노인은 할리파의 동생이자 하마드의 작은아버지이자 현 국왕의 작은할아버지인 칼리드 알사니.
3. 정책
왕이 되자마자 종교 제한 및 여러 가지 검열 정책을 없앴으며[3], 여성 활동을 일부 허용했다. 이런 가운데 1996년 보수파들이 주도한 쿠데타를 사전에 막아버리기도 했다.나아가 1997년 자국에서 열린 아랍 경제 회의에 아랍 역사상 처음으로 이스라엘을 초청하는 일을 한다. 이웃 사우디아라비아는 물론, 이스라엘과 수교국인 이집트조차도 이걸 비난했다. 1998년에는 왕이 절대 왕정에서 입헌군주제로 바꾼다. 나아가 외국 유학 나간 여성 지식인들을 초청하여 회의도 가지고, 여성부 비슷한 기관을 만들었으며 여성 정치가 활동 및 언론 활동까지 전면 허용한다. 1999년 역사상 첫 선거에서 29명 국회의원이 나왔는데 7명 여자후보가 나왔다. 모두 낙선했지만 그래도 여성 후보가 나온 것으로도 파격적이었다. 그 가운데 한 여성 후보가 인터뷰로 말하길 "내가 정치에 나온다니까 어머니나 친척 여성들이 맹렬하게 반대하더군요. 어머니는 '여자가 정치라니 무슨 말도 안되는 말이니? 그러려고 유학갔니?' 이렇게 비웃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영국 BBC가 아랍 지부를 포기하고 물러나자 그 방송 건물과 장비들을 죄다 사서 바로 알 자지라 방송사를 만들게 했다.
알 자지라 방송에서는 이슬람 극우적 언론인과 진보적 언론인이 나와서 논쟁을 벌이고 여성 정치인이 나와서 '여성 억압하는 보수적인 이슬람 율법이 왜곡되었으며 시조 무함마드와 거리가 먼, 아득한 옛날부터 있던 샤리아법을 이슬람과 연루하는 짓 그만해라'는 말도 거리낌없이 해도 전혀 안 자르고 방송한다.
더불어 알 자지라에서 여러 나라 왕족들이 벌이는 추태까지 보도하는데, 아무래도 돈줄인 카타르 왕은 부조리를 삼가는 편이고, 왕의 허락 아래 다른 카타르 왕족이 저지르는 더러운 짓도 보도한다고 한다. 한 예로 알 자지라 방송사를 취재하러 다른 해외 방송사가 갔더니 카타르 고위 왕족이 외국인 메이드를 건드려 임신까지 시키고 나 몰라라 하다가 그녀가 낙태를 거부하자 조폭을 시켜서 그녀를 구타했던 일까지 상세히 보도했다고 한다. 덕분에 카타르 전역에서 아주 쓰레기 같은 왕족이라고 대대로 알려져서 개망신당한 그 왕족이 아주 열 뻗쳐서 직접 방송사로 들이닥쳐서 외국 기자 보는 거 상관없이 있는 욕 없는 욕 다하고 헐크가 되었다고.
나중에 그 왕족은 왕에게 찾아가 이걸 하소연했으나 왕은 "니가 처음부터 그런 짓을 안하면 되는 일 아니냐? 왕가에게 피해가 간다고? 아니, 되려 백성들은 이런 더러운 일도 거뜬히 알리는 왕가를 다시 볼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그 왕족을 입다물게 했다. 이 일이 방송으로 알려지면서 대학생들이 폐하! 멋지십니다라며 환호까지 했었다.
더불어 국왕의 부패 지수는 꽤 낮다. 1990년대 중반까지 인구 70만 명 밖에 안되던 이 나라에서 풍부한 자원에도 부를 누리는 건 극히 극소수 몇 천 명도 안 되었는데, 그는 재위하면서 2000년부터 알 자지라를 통하여 그동안 기득권 귀족들이 얼마나 부를 누렸는지 죄다 까발리게 했다. 그리고 그들의 재산 상당수를 국영화시켜서 카타르 국적 민중들에게 사업 지원 및 유학과 여러 모로 경제적 지원을 하면서 절대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이 지원이 또 장난이 아닌데 전국민에게 주택을 무상으로 제공하며, 사업이 망해 빚을 지게 되면 국고에서 빚을 모두 갚아줄 정도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자원의 수출 소득을 전국민에게 분배하므로 자국민은 일을 하지 않아도 풍요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다. 실제로 카타르에서 모든 전문직을 포함한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은 외국인(한국인도 상당수)이며, 대부분의 가정엔 외국인 메이드를 고용하고 있다.
1999년에는 이집트 독재자인 호스니 무바라크가 알 자지라에서 권력 승계 및 막대한 국고금으로 뭐 하는지를 집중보도하자 대놓고 이런 말을 했다. "이렇게 작은 나라에서 알 자지라같은 3류 방송으로 쇼를 하는군" 당연히 왕도 울컥했고 카타르 여론도 울컥했다. 아예 왕은 카타르에서 일하던 이집트 노동자 수천여 명을 해고시켜 추방해버렸다. 덕분에 이집트 여론은 무바라크에게 입이나 다물면 중간이라도 간다며 화를 냈고 무안해진 무바라크는 카타르 왕실에 따졌지만 왕은 딱 한 마디 말해주었다고 한다."이집트같은 큰 나라가 뭐하러 이리도 작은 나라에 사람 보내서 일하는 거지?" 이집트는 카타르 땅 크기 80배가 넘고 인구도 100배에 달한다.
2009년 9월 조지 W. 부시에게 신발투척을 해서 세계적으로 알려진 이라크 기자인 '문타다르 알자이디'가 석방되자 그를 칭찬하면서 두둑한 보상을 했다. 그렇다고 국왕이 반미, 반이스라엘이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4. 비판
하지만, 자기를 반대하는 반대파를 철저하게 뭉개고 있기에 좀 비난도 받는다. 그런데 카타르인들은 대부분 별로 신경 안 썼는데, 국왕이 철저하게 뭉개버리는 대상이라는 게 보수 꼴통들이기 때문이다(...) 2001년 선거 당시 반대파인 보수파 정치인들이 인기를 얻자 선거를 취소하고 2년동안 미룬 적이 있다. 이를 두고 미국이나 유럽에서 무척 깠는데, 정작 카타르 여론에선 이 조치에 꽤 긍정적이었다고 한다. 더불어 국왕이 쿠란을 모독한다고 까던 보수적 신학자는 불경죄로 2년 동안 교도소에 갇혀 아주 실컷 얻어맞고 나왔다. 보수파들 반발에 왕이 하던 말도 참 명대사."그동안 반대파가 당해본 아픔을 겪어보는 게 어떻소?"
그런데 그 반대파들이 다른 나라에선 기득권인 이슬람 보수파들이기에 진보파들이나 젊은 층, 해외 유학파로부턴 현 국왕이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그의 민주적 개혁이 너무 느리고 눈가리고 아웅 식이라고 비판적으로 본다. 이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 급 막장 절대 왕정 나라고 왕실 주도 개혁 이후에도 세계 이슬람 테러리즘의 주요 후원국 목록에서 항상 거론된다. 아랍에선 그나마 비슷한 역사를 가진 요르단과 오만 정도가 카타르의 개혁에 긍정적이었을 뿐, 다른 나라들 반응은 그야말로 충공깽이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보수파들이 주도하다가 실패한 쿠데타를 사우디아라비아가 지원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알카에다 계열 알 누스라 전선에 카타르가 자금을 지급하기 시작한 것도 이 사람 치세 때다. 아들이자 후계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방적이어도 걸프 만 왕실이라는 권력집단 특유의 이슬람 근본주의 지향에는 이 사람도 자유롭지 못하다. #
5. 지지도
2010-2011 아랍권 민주화 운동이 벌어지면서 그동안 어느 정도 개혁적이라던 요르단이나 오만을 비롯한 왕가들도 잇달아 벌어지는 시위에 불안해하는 거와 대조적으로 카타르는 느긋하다. 되려 알 자지라는 시위가 벌어지는 나라들을 취재가서 현지 분위기를 생생하게 보도하고 있으며, 다른 나라들이 받을 영향까지 분석하여 보도하고 있다. 아니,왕실 관영매체 알 자지라의 영향력을 이용해서 1차 리비아 내전과 시리아 내전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고 무슬림 형제단 등의 우호단체에 무기와 자금을 보내 내전을 후원했다.알 타니 왕가에 대한 지지도가 높은 현재로선 카타르는 민중 혁명을 우려하긴커녕 되려 여유롭게 주변 나라들에게 충고하고 있다. 그리고 이집트에서 무바라크가 하야하자 시민 혁명을 축하하는 의전을 보냈다. 3월까지 시위 자체가 없던 나라는 겨우 아랍에미리트와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와 카타르뿐이다. 반국왕파로 보이는 이들의 국왕 퇴위 요구 및 비난이 트위터로 올라왔있지만 그야말로 '그래서?' 이런 평을 받으면서 흐지부지되어 버렸다.
미군에게 기지를 제공하여 정권의 안정을 보장받으면서도 이란과 관계가 상당히 좋다. 심지어 이란의 핵개발은 중동의 평화를 해치는 일이긴 하지만 평화적인 목적의 개발까지 막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계신다. 위에 언급했듯이 카타르는 미국에 군사기지를 제공하고 있다. 이렇게 이란과 우호관계를 다지는 이유는 카타르 남쪽에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를 견제하기 위해서, 덕분에 무력충돌까지 갔던 사우디아라비아를 적절하게 견제하면서도 이란과 카타르 사이에 있는 전세계 매장량의 15%를 차지하는 천연가스전도 안정적으로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
6. 왕위 이양
하마드 국왕은 2011년 자문위원회 국정연설에서 2013년 하반기 중 선거 실시 예정임을 선언하였으나, 2013년 6월 왕권 이양 직전에 자문위원들의 임기를 2016년까지 연장하고 동 선거를 연기하는 칙령을 발표함으로써 선거 실시는 다시 연기했다. 사족으로 셋째아들을 왕세자로 책봉하였으나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업무에 열중하지 않자, 넷째아들로 왕세자를 바꿔버리셨다.2013년 6월 25일, 알사니 국왕은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된 대국민 연설을 통해 왕세자에게 양위한다고 밝혔다. 아랍 왕정 국가중 최초로 생전에 아들한테 양위한 건 맞지만 최초로 생전에 양위한 경우는 아니다. 2006년에 쿠웨이트에서 왕이 최초로 생전에 물러난 경우가 있기 때문. 다만 쿠웨이트는 부자세습제가 아니라 친척관계인 자베르 일가와 살렘 일가가 돌아가면서 국왕직을 맡는 체제다.
아직 61세인 국왕의 갑작스런 양위 발표를 둘러싸고 여러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왕세자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에게 양위하면서 내각을 젊은층으로 대폭 교체하려는 것이 국왕의 의도로 보인다고 한다. 그동안 왕세자가 국왕 수업을 충실하게 받았기 때문에 대내외 정책은 유지될 것이나, 국왕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질 때까지 명예 국왕직을 유지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7. 여담
[1]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현 국왕의 어머니
[2]
다만, 중동 국가의 왕위, 가문 계승법은 종법제가 확고했던 동아시아라든지, 살리카 법을 비롯해 장자 상속제였던 유럽과 달리 애당초 분명하지도 않고 엄격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부자상속이 아닌 형제상속인 경우도 많다. 그러므로 왕위 계승이 확정된 것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
[3]
오만, 아랍에미리트와 더불어 중동 국가중에서 유일하게 교회건축을 허용하는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