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부퍼탈 SV에서 2년 동안 뛰고 복귀한
황선홍은 92시즌
홍명보의 선례에 맞춰 드래프트 시장에 나왔다. 무슨 일이 있어도 황선홍을 데려오길 원했던 포철 측은 그 해 황선홍을 지명할 것이 거의 확실시되는 완산 푸마와 접촉했다. 가뜩이나 선수단 부족에 시달리던 푸마 측은 포철의 제안을 곧바로 받아들였다. 완산 푸마는 팀의 분위기를 다잡아줄 주전급 선수를 원했고, 포철은 어떤 선수라도 내어줄 기세였다. 심지어 완산 푸마 측은 포항제철이 93시즌 드래프트 1순위를 누구로 지명해 완산으로 넘겨달라고 사정까지 했다고 한다. (완산 푸마 측은 당시 실업팀에서 상당한 경험을 쌓았던 김기남을 포철이 1순위로 지명케 하여 완산 푸마로 입단시킬 의도였다. 불발되긴 했지만.) 결국 양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드래프트 지명 직후, 1:4 초대형 트레이드가 성사되었다. 아직도 역대 K-리그 이적시장에서 1:4 트레이드는 이것이 유일하다.[2]
5경기 4승 1패(승점 8)로 2위인
현대 호랑이와 동률을 기록했으나, 득실차(+5)로 우승을 차지했다.
[1]
완산 푸마는 당시 전라도에 프로축구팀이 없었던 상황에서 리그 수뇌부가 다소 무리하게 밀어붙여 창단되었다. 그리하여 완산 푸마는 재정적으로 부실했기 때문에 선수들은 완산 푸마에 지명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그로 인해
노정윤, 정재권 등의 선수가 드래프트를 거부하고 일본행 또는 실업 구단행을 택했다.
[2]
한편 황선홍 선수와 포항 스틸러스 측은 1:8 트레이드로 기억하고 있는 모양인데, 이는 완산 푸마가 1:4로 황선홍을 영입한 것 외에 포항제철 2군에 있던 이태형, 김종록, 백태현, 강영호 4명을 추가로 영입했기 때문에 의미에 혼선이 벌어진 듯하다.
[3]
완산 푸마에 2순위로 지명된
김일진도 와해된 후 포항에 입단.
[4]
단, 이흥실 선수는 완산 푸마가 해체되자, 포철 복귀가 아니라 은퇴를 선언했다. 이 선수도 애초에는 1992년 시즌 종료 후 은퇴할 생각이었으나, 완산 푸마가 창단되자 플레잉코치나 뛸 요량으로 완산 푸마 입단을 희망했던 것. 결국 완산이 해체되자 별 미련없이 은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