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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1 14:06:31

팀 케이힐

팀 케이힐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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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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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2000> 순서 선수 이름 출전 횟수 첫 경기 마지막 경기
1 마크 슈워처 109회 1993.7.31 2013.9.7
2 팀 케이힐 108회 2004.3.30 2018.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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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stralia men's national soccer team
파일:c22.jpg
<colbgcolor=#ffbc00> 이름 팀 케이힐
Tim Cahill
본명 티모시 필리가 케이힐
Timothy Filiga Cahill[1]
출생 1979년 12월 6일 ([age(1979-12-06)]세)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시드니
국적
[[호주|]][[틀:국기|]][[틀:국기|]]
|
[[사모아|]][[틀:국기|]][[틀:국기|]]
신체 178cm / 체중 77kg
직업 축구 선수 ( 공격수[2], 미드필더[3] / 은퇴)
축구 경영인
소속 <colbgcolor=#ffbc00> 유스 시드니 올림픽 FC (1995~1997)
시드니 유나이티드 FC (1997)
밀월 FC (1997~1998)
프로 밀월 FC (1998~2004)
에버튼 FC (2004~2012)
뉴욕 레드불스 (2012~2015)
상하이 선화 (2015~2016)
저장 뤼청 (2016)
멜버른 시티 FC (2016~2017)
밀월 FC (2018)
잠셰드푸르 FC (2018~2019)
기타 호주 대표팀 (2022~ / 단장)
국가대표 108경기 50골[4] ( 호주 / 2004~2018)
SNS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2004.3~2018.11)4. 플레이 스타일5. 은퇴 이후6. 기록
6.1. 대회 기록6.2. 개인 수상
7. 팀 케이힐에 대한 언사8. 여담

[clearfix]

1. 개요

호주의 전 축구 선수.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로 호주의 역대 최고의 축구 선수중 한명인데 한국의 박지성과 같은 위상을 지니고 있어[5] 호주에서 축구를 안보는 사람들도 팀 케이힐은 알 정도이다. 사모아인 어머니와 아일랜드계 잉글랜드인 아버지 사이에서 형 션, 누나 도로시, 남동생 크리스와 함께 네 자녀 중 세 번째 자녀로 .태어났으며, 서사모아 청소년 대표팀에 선발되기도 하였다.[6]

키는 178cm로 큰 편은 아니지만, 점프력이 매우 뛰어나다. 2011 아시안컵, 2015 아시안컵에서 한국 상대로 뛰었을때 보면 더 큰 한국 수비수보다 더 높게 점프를 한다.

그의 아버지는 영국-아일랜드 출신이며 호주에 정착하기 전에 상선에서 일했으며 그 곳에서 리깅 및 트롤 어선으로 일했다.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고관절 부상을 입어 일을 할 수 없게 된 후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호텔 직원과 공장 노동자로 두 가지 일을 병행하며 그의 가족이 임대료 때문에 자주 이사를 다녔다.

런던에서 자란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팬이었던 아버지와 함께 프리미어 리그 경기를 시청했다.

형제들과 매주 지역의 공원에서 축구 훈련을 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규율과 완벽주의적인 성격이 강해졌으며. 그의 가장 큰 영향은 사모아 문화와 규율, 근면, 인내에 대한 신념을 가르친 외할머니 에게서 나왔다.

에버튼 통산 프리미어리그 228경기를 출전하여 프리미어 리그 명예의 전당 입성 조건을 충족하였다.

2. 클럽 경력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팀 케이힐/클럽 경력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 국가대표 경력(2004.3~20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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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힐은 2004년 3월 30일 런던 로프터스 로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남아프리카공화국과의 친선 경기에서 호주 대표팀 데뷔전을 치렀으며 2004년 올림픽에도 참가했다.

Cahill은 2004 OFC 네이션스컵에서 호주 대표팀으로 출전하여 6골을 넣으며 대회 득점 2위로 대회를 마쳤고, 최종 라운드에서도 득점 1위에 올랐으며 호주는 역사상 네 번째로 대회에서 우승했다. 대회에서 우승한 호주는 2006 월드컵 지역예선 대륙간 플레이오프에서 승부차기 끝에 우루과이를 꺾고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는데 케이힐도 이 경기에 출전하였다.

2004년 오세아니아 올해의 축구 선수에 선정되었으며, 오스트레일리아의 아시아 축구 연맹 가입 이후 유럽에서 성공한 아시아축구연맹 지역 선수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는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오스트레일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역사상 최초로 FIFA 월드컵에서 골을 넣은 선수가 되었다. 이 때 넣었던 2골이 그 유명한 일본을 침몰시킨 대역전 경기이다! 히딩크 감독이 바로 '정의가 승리했다'라고 포효했던 그 경기다.[7]

현재까지 FIFA 월드컵에서 총 5골을 넣어 오스트레일리아 선수 중 FIFA 월드컵에서 가장 많은 골을 기록한 선수에 올랐다. 호주가 2007년 아시아축구연맹에 가입한 이후 처음으로 출전한 2007 AFC 아시안컵에서 오스트레일리아 국가대표팀 역사상 최초로 AFC 아시안컵에서 골을 넣은 선수가 되었다.

2010년 FIFA 남아공 월드컵 독일과의 경기 중 후반 11분에 다이렉트 퇴장을 당해서 가나전에 뛰지 못했다. 이후 세르비아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자신보다 약 10cm가 더 큰 네마냐 비디치와의 공중경합에서 완전히 승리하여 날카로운 헤더를 성공시키며 2-1 승리를 이끌었다. 하지만 독일에 0-4로 지고 가나와의 경기에서 어처구니없는 1-1 무승부 때문에 골득실에서 가나에 밀리며 조 3위로 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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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힐은 골을 넣으면 언제나 코너로 달려가 섀도복싱을 하는 세레머니로도 유명하다.

3.1. 2006 월드컵

F조에 브라질, 일본, 크로아티아와 속했다. 일본전에서 2골로 3대1 승리, 크로아티아전 0대0 무승부, 브라질전 0대2로 1승1무1패, 조 2위로 16강 진출했다. 16강에서 만난 이탈리아와 비등비등하게 경기했지만 막바지에 PK를 내줘 0:1로 졌다.

3.2. 2007 아시안컵

호주는 4포트 배정을 받았다. 오만전에서 1골을 넣고 1대1, 이라크전 1대3 패, 태국전 4대0. 1승1무1패로 A조 2위로 8강에 갔다. 8강에서 일본과 1:1, 승부차기 3:4로 졌다.

3.3. 2010 월드컵

D조 독일, 가나, 세르비아와 한 조. 독일전 0대4 패, 팀케이힐은 후반 10분경에 퇴장당했다. 가나전 1대1 무, 세르비아전은 1골을 넣고 2대1 승리했다. 1승1무1패로 가나와 동률이지만, 가나는 2득점 2실점, 호주는 3득점 6실점으로 골득실로 탈락했다.

3.4. 2011 아시안컵

호주는 2포트를 받았다. C조에 바레인, 한국, 인도와 함께 호주가 포함되었다. 인도전 2골을 넣고 4대0 승, 한국전 1대1 무승부, 바레인전 1대0 승리를 했다. 골득실에서 호주는 6득점 1실점, 한국은 7득점 3실점으로 앞선 호주가 조 1위로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8강 이라크전에서 연장 후반에 득점, 1대0 승, 4강전 우즈베키스탄전 6대0 승리를 했다. 결승전에서 일본과의 연장전 혈투 끝에 리 타다나리(이충성)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며 준우승을 차지했다.

3.5.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일본, 이란, 한국과 함께 월드컵 3포트를 받았다.
B조 조별예선에서 칠레 네덜란드를 상대로 각각 1골을 넣었으나, 팀은 칠레전 1:3과 네덜란드전 2:3으로 모두 패배. 마지막 스페인전도 0:3으로 모두 3실점 패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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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네덜란드전에서는 선제골 허용 이후 1분도 안되어서 동점골을 터뜨렸다. 공격 진영 오른쪽에 페널티 에어리어 부근으로 맥고완이 롱패스한 것을 팀 케이힐이 그대로 왼발 발리슛으로 연결한 것. 강력한 케이힐의 발리슛은 그대로 크로스바를 맞고 골문 안으로 흘러들어갔다. 3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선수로는 월드컵 개인 통산 5골을 기록하며 노익장을 과시했다.[8]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경고 누적으로 인해 최종전인 스페인과의 경기에 뛸 수 없었다는 것이다. 케이힐 없는 호주는 팥없는 찐빵과 같으므로 매우 아쉬운 상황. 전망에 비해 꽤 선전했지만 아쉽게도 승리가 없었던 호주는 스페인을 상대로 유종의 미를 거두려했지만 케이힐의 결장으로 매튜 레키나 브레시아노, 타가트 등 후배들에게 맡길 수 밖에 없게되었다.

한편 본인의 반응은 '후회없다.'는 반응. 네덜란드 전 후 호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 나는 내일이 아닌 오늘을 위해 뛰었다. 내가 한 경기를 더 뛰고자 느슨한 플레이를 하는 선수였다면 여기에 오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순간 순간 최선을 다했고, 결국 내 생애 가장 기억에 남을 다섯 번째 골을 만들었다. 경고를 받은 것에도 후회는 없다."라는 폭풍간지의 대사를 날리며 장렬히 월드컵 무대에서 퇴장했다.

여담으로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케이힐은 조별리그 첫 게임이였던 독일전에서 레드카드를 받아서 두번째 게임이였던 가나전에서 뛰지 못했다. 2006 월드컵을 합쳐서 월드컵 통산 총 8게임을 뛰었는데 무려 5골이나 넣었다.

3.6. 2015 아시안컵

이란, 일본, 우즈베키스탄과 함께 1포트를 받았다.
한국, 오만, 쿠웨이트와 A조가 되었다. 한국과 대회 2연속 같은 조가 되었다. 쿠웨이트전에서 1골을 넣고 4:1 승, 오만전 4:0 승, 한국전 0:1로 조 2위로 8강 진출을 했다.
조별리그 첫 경기 쿠웨이트전에서 뜻밖의 선제골 허용으로 끌려가던 호주를 구원하는 동점골을 작렬하고 전매특허인 시원한 섀도 복싱 세리머니를 보여주었다. 이후 조별리그에서 추가 득점은 없었으나 특유의 존재감으로 수비진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여 조별리그에서 호주가 무려 8골을 득점하고 각각의 골 자체도 모두 다른 선수로부터 나오게 하는 데에 크게 기여하였다. 2015 AFC 아시안컵 호주/조별리그 A조, B조 참조.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였던 한국전에서는 이미 서로 2승으로 8강 진출을 확정한 상태였으므로 체력안배를 위해 1:0으로 뒤지던 후반 71분에 교체 출장했다. 여전히 문전에서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부족한 시간탓인지 동점골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실패. 그래도 틈틈이 후배들을 다독이며, 침체된 분위기를 바꿔보기 위해 평범한 심판 판정에도 강하게 항의하는 등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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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강 중국전에서 2골, 2:0 승.
8강 중국전에서는 선발 출장으로 두 골을 몰아쳐 팀을 4강으로 이끌었다. 경기 내내 호주가 중국을 몰아붙였지만 좀처럼 골이 터지지 않아 초조하던 후반, 오른쪽으로 비스듬하게 올라오던 짧고 높은 크로스 상황에서 골대를 등지다가 벼락같은 바이시클 킥을 작렬하여, 그 때까지 과도하게 수비에 치중하던 중국에 치명적인 한 방을 날렸다. 골을 기록하기 직전 페널티 에어리어 내 위치 선정 과정에서 그의 뒤에 있던 중국 수비가 갑자기 드러누웠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슛. 경기가 살짝 초조해지던 상황에 나온 천금같은 골이라 동료들의 환호가 엄청나 깃발복싱 세리머니는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후 수비 조직력이 와르르 무너지며 사실상 전의를 상실한 중국 수비진을 유린하다가 헤더 골로 쐐기를 박았다. 헤더를 시도하기에는 골문에서 살짝 거리가 있었지만 용수철처럼 솟아올라 빨랫줄처럼 구석에 정확히 꽂히는 명품슛을 만들어냈고 중국 골키퍼는 제대로 반응하지도 못했다. 이후 체력안배를 위해 80분에 교체 아웃되었다. 이 때 브리즈번 렉탱귤러 경기장을 찾은 4만5천명의 관중 대다수가 기립박수를 보냈다. 두 골 모두 아시안컵 골 베스트에 꼽힐 만한 명장면들이었다.

4강 아랍에미리트전에서는 득점은 못했지만 2:0 승리로 결승에 진출했다.

한국과의 결승전에서는 득점을 기록하진 못했지만 무난한 활약이었고 결국 연장을 가서 한국을 2-1로 꺾고 2015 AFC 아시안컵 우승을 차지한다.

대회 이후 대표팀에서 오랫동안 함께한 단짝 마크 브레시아노는 국대 은퇴를 선언하고 떠났지만, 케이힐은 여전히 대표팀에서 활약 중이다.

3.7.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예선과 본선, 그리고 은퇴

2017년 10월 10일 현지시각 오후 8시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시리아와의 아시아 최종 예선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두 골을 넣고 맹활약했다. 말레이시아에서 열린[9] 원정 1차전에서 1:1로 비겨 비교적 유리한 조건에서 경기를 시작하고도 5분만에 수비 실책으로 어이없게 골을 허용하면서 분위기가 가라앉을뻔 했지만 10여분이 지난 후 전매특허인 캥거루 헤더 슛으로 경기를 원점으로 돌렸다. 이후 1979년 생의 노장인데도[10] 연장전이 종료될때까지 활발하게 뛰며 기어이 역전 헤더 골을 만들어내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 있던 팀을 구해냈다. 팀의 멱살을 잡고 2018 러시아 월드컵 대륙간 플레이오프로 끌고간 것이나 다름없는, 한마디로 나이를 잊은 활약. 마지막 관문은 온두라스와의 플레이오프 혈전이다. 2차전에서 득점을 하고 비기거나 패배하지만 않으면 케이힐을 러시아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자국이 플레이오프 끝에 승리하면서 케이힐 역시 러시아에서 볼 수가 있게 되었다.

이듬해 월드컵 본선에서는 페루전에서 교체로 들어왔다. 팀은 2:0으로 패배하였기 때문에 16강 진출은 무산되었다.

2018년 11월 20일 그의 국가대표 은퇴 경기가 될 레바논과의 평가전에서 후반 37분 투입되었다. 약 11분간의 경기를 소화하면서 은퇴 경기를 마쳤다.

4. 플레이 스타일



기본적으로 매우 유니크한 유형의 선수였다. 본업은 중앙 미드필더이나 패스는 평범하고 창의성도 부족했지만, 득점력이 뛰어나다보니 나중에는 아예 점점 포지션이 올라간 경험이 있다. 단순히 득점력이 뛰어난 중앙 미드필더들은 많지만 그렇다고 아예 공격수로 올라가는 케이스는 드문데, 이런 유형의 케이스로는 스페인의 라울 가르시아 정도가 있다. 둘 다 사실상 포처 유형의 공격수가 중앙 미드필더로 뛰는 듯한 플레이 스타일을 가졌다.

득점력 외에도 체력이나 슛, 활동량, 기동력이 좋았으며 특히 특출난 점은 에버튼 시절 리그 최고 수준이었던 서전트 점프와 헤더였다. 놀랍게도 이런 케이힐의 신장은 180cm가 채 되지 않았다. 당시 프리미어 리그에선 '헤더 떨궈주기' 하면 볼튼의 케빈 데이비스였고, '파워 헤더 슛' 하면 바로 에버튼의 케이힐이었다.

헤더 골을 무지막지하게 넣었으며, 그 외에 아크로바틱한 골들도 많이 넣었으며 운동 능력이 뛰어난 선수였다. 다만 노쇠화하면서 운동 능력과 체력이 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경기력이 떨어졌으며 자연스레 은퇴하였다. 특유의 코너 플래그를 샌드백 삼아 섀도 복싱을 하는 복싱 세레머니가 유명했다. 호주 출신이기에 캥거루 복서라고도 불렸다.

5. 은퇴 이후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을 앞두고 호주 대표팀의 단장으로 부임했다.

6. 기록

6.1. 대회 기록

6.2. 개인 수상

7. 팀 케이힐에 대한 언사

우리는 그가 얼마나 좋은 기량을 가졌고 중요한 선수인지 잘 알고 있다. 케이힐은 경기장 안에서나 밖에서나 상당히 멋진 선수다. 그가 결장했던 중국전에서 케이힐의 빈자리를 느낄 수 있었고 6월까지 뛰지 못하는 것에 상당히 아쉽다.
핌 베어백[14]
나는 호주 대표팀 감독 시절부터 Tim을 알고 있었고 그를 내 스쿼드에 포함시키는 것은 아름다웠지만 상대편으로 만나는 것은 좋지 않다. 에버튼은 매우 조직적이며 그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놀라운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박스 주변에서 매우 날카롭고 위험하다
거스 히딩크[15]
그의 용감한 공중전이 골문을 위협한다. 훌륭한 도약력 뿐만 아니라 용맹하게 공을 따내 헤딩을 하며 발도 잘 쓰는데 한 시즌에 10골 이상을 득점하는 경우도 있다. 나에게는 좋은 선수들이 있었고 Tim은 확실히 최고였다.
데이비드 모예스 당시 에버튼 감독 #
그가 가능한 역의 작은 카메오를 봤다. 그는 영리하다.
티에리 앙리 #
이거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많은 외국의 칼럼에서는 키웰과 비두카를 케이힐보다 위로 놓는 칼럼들도 꽤 많습니다. 축구 선수로서의 재능은 마크 비두카 해리 큐얼이 위라고 볼지도 모르지만 전세계에 자랑스럽게 이름을 알린 인물은 케이힐입니다. 호주의 역대 최다 월드컵 득점과 사상 본선 첫골과 멀티골 그리고 네덜란드에게 넣은 골은 월드컵 역대급 멋진골 이었어요. 고점의 재능은 키웰과 비두카가 위지만 꾸준함과 결정적 상황에서의 역량은 팀 케이힐이었어요.
한준희 기사

8. 여담



[1] "카힐"이라는 표기를 사용하는 곳들도 있다. 영어식 발음 자체가 두 가지다. 본인은 "케이힐"이라는 발음을 선호하는 걸로 보인다. [2] 센터 포워드 [3] 공격형 미드필더 [4] 호주 대표팀 최다 출장 2위, 최다 득점 1위 [5] 케이힐이 에버튼에서 활약하고 있었던 시기에 박지성이 맨유에서 뛰고 있었는데 둘은 같은 물리치료사에게 치료를 받았던 사이라고 한다. [6] 그의 동생 크리스 케이힐도 축구선수 출신이며 그는 형과 달리 사모아 축구 국가대표팀을 선택해 A매치 15경기 7골의 기록을 남기고 은퇴했다. [7] 일명 8분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기인데 그 당시 일본에서의 시청률보다 한국에서의 시청률이 높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8] 이들 중 두 골은 호주가 오세아니아 소속이였던 시절인 2006년 월드컵에서 넣은 골이여서 아시아 선수의 월드컵 최다수 골 기록이라고 하기에는 좀 애매해다. 호주가 AFC소속으로 나온 월드컵들 중 케이힐이 넣은 골 수는 총 3골로 한국의 박지성, 안정환, 손흥민,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자베르와 동률이다. 게다가 엄연히 말하자면 케이힐은 현재 AFC 소속 선수이긴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아시아 선수라 할수는 없기도 하다. [9] 시리아 현지 사정상 경기를 치를 여건이 되지 못했다. [10] 이동국과 동갑이다. [11] 팬 투표 [12] 옵타 선정 베스트 XI에 포함되었다. 기사 [13] 2022년은 사상 첫 호주의 A매치가 1922년 더니딘에서 시작된지 100년이 되는 해 기사 [14] 호주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시절 남아공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나온다. [15] 첼시 FC 감독시절에 2008-09 FA컵 결승전을 앞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