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靑竹會대한민국 육군의 비밀 사조직. 하나회와 더불어 가장 유명한 국군 내 사조직이다.
2. 상세
하나회와 대립하던 사조직으로, 하나회가 영남 출신 생도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된 반면 청죽회는 이북 5도와 서울특별시 출신 생도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되었다.하나회와 비슷하게 청죽회도 공부 잘 하는 엘리트가 많았다고 하는데 일부는 일본 조총련과의 연계나 이북 출신이라는 이유로 중용되지 못해서 육군사관학교 11기 생도들이 소위로 임관했을 때 하나회는 대부분 전투 지휘관으로 갔고 청죽회는 육군사관학교 교원 등 후방에 많이 남았다고 한다.
청죽회와 하나회의 운명은 5.16 군사정변으로 갈리게 되었는데 박정희가 하나회 위주로만 진급을 시킨 반면 청죽회는 계속 죽여나갔다. 강재륜은 그의 형이 조총련이라는 사실을 하나회 측에서 무기명 투서로 고발해서 결국 중령으로 예편했으며 임동원은 허화평에게 하나회를 탈퇴하라고 권유했다가 대통령이 된 전두환이 그를 강제 예편시킨 뒤 나이지리아 주재 한국대사로 임명하는 사실상의 유배를 보내 버렸다. 다만 이상훈은 5.16 생도지지행진을 육사 동기이자 하나회 두목 전두환과 함께 이끌 정도로 전두환, 노태우와 매우 친했기 때문에 대장까지 진급하고 노태우 정부 시절 국방부장관을 지냈다.
군정이 종식되고 김영삼의 문민정부가 들어선 후 청죽회는 하나회와 함께 일망타진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제5공화국 시절을 통해 그 조직 구성원이 널리 알려진 하나회와 달리 청죽회는 하나회보다 외부에 훨씬 덜 알려져 있는 조직이었기 때문에 문민정부 시절에 철퇴에도 불구하고 상당수는 군과 정치계에 여전히 잔존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기사에 의하면 1993년 8월 23일자 기사로 기사가 검색이 된다. # 몇몇 정치계에 잔존해 있던 청죽회의 명단은 신동아를 통해 알려졌다.
원칙적으로 김영삼 정부에서 사조직 청산 작업으로 사라졌어야 했었으나, 무엇보다 덜 알려진 조직이었기에 청죽회 중 일부는 정치계에서 성공하게 된다. 김대중 캠프에 뛰어들며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을 도왔고, 그래서 정치적인 연줄로 고위직이 된 경우가 있으니 대표적인 청죽회 멤버는 이종찬, 천용택, 임동원이다. 육사 청죽회 시절부터 3년 선후배로 가까운 사이였다.
3. 명단
11기: 강재륜, 이상훈(前 국방부장관)13기: 임동원(前 통일부 장관, 前 국정원장), 김종하(前 체육회장)
16기: 이종찬(1936)(前 안기부장), 천용택(前 국정원장)
17기: 민병채(前 경기도 양평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