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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5 17:27:11

지은(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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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三國史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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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석문 및 문헌기록상 신라 최초로 성씨를 사용한 왕은 진흥왕임
* 29~31권까지 연표
* 32~40권까지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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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줄거리

1. 개요

통일신라 시대의 효녀 이야기를 다룬 한국 설화.

알려진 여러 설화들과 달리 삼국유사 외에 정사 삼국사기 열전에도 관련 내용이 실려있고, 비현실적인 요소도 전혀 없으므로 디테일한 부분을 뺀 사건 자체는 설화라기보다는 실제로 있었던 사건의 기록일 가능성이 높다.

2. 줄거리

지은(知恩)은 신라 한기부 출신 연권(連權)의 딸이자, 심성이 매우 착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어려서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32세[1]가 되도록 혼인도 하지 않고 어머니를 홀로 모시며 효도하였다.[2] 하지만 집안 사정은 가면 갈수록 나빠져 지은은 결국 스스로 부잣집의 평생 노비가 되었고, 품삯으로 얻은 좋은 쌀로 밥을 지어 어머니께 드렸다. 그런데 며칠 뒤 어머니가 갑자기 밥을 먹다 말고 지은에게 물었다.
"전에는 밥이 거칠고 빌려온 것이라 해도 맛이 달았는데, 지금은 밥이 좋은데도 맛이 옛날만 못하고 마치 칼로 가슴 속을 긁는 듯하니 무슨 연유인지 ..."
지은은 사실대로 말하기가 꺼려져 핑계로 얼버무렸다가, 어머니가 하도 추궁하자 어쩔 수 없이 부잣집 노비가 되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어머니는 가슴을 붙잡고 오열하며 말했다.
"아아... 이 늙고 못난 어미 때문에 착한 네가 종이 되고 말았으니 차라리 이 늙은이가 빨리 죽는 것이 낫겠구나..."
두 모녀는 함께 껴안고 목 놓아 슬피 울었다. 이 사정은 어느새 마을 사람들의 입을 타고 퍼져 화랑 김효종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도 감동하여 지은의 집안 살림을 지원해주는 한편 그녀를 노비로 샀던 부잣집 주인에게 몸값을 치러 양민으로 되돌려주기까지 했다. 나중에 진성여왕[3]도 이 이야기를 알게 되어 지은에게 곡식을 하사했으며, 그녀의 결혼도 도와주었고, 지은을 물심양면 도운 김효종에겐 진성여왕 본인의 오빠인 헌강왕[4]의 남겨진 딸인 계아태후와 혼인시켰다.[5] 그리고 훗날 김효종과 계아태후 사이의 아들인 김부가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된다.

국문학계에서는 훗날 심청전의 모태가 된 설화 중 하나로 이 효녀 지은 이야기를 꼽는다.

[1] 삼국유사에는 20세로 나온다. [2] 오늘날(현대) 기준으로 여성의 나이가 32세이면 결혼 적령기 대우를 받지만, 이 시대에는 10대에 결혼을 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지던 시기이고, 20살에게 노처녀란 호칭을 쓰던 시기라, 30대가 되는 순간부터는 혼기를 한참 넘긴 노처녀였다. 조선시대에는 미혼남녀가 20살이 되면 큰일난다고 생각해서 서로 다른 지역의 19살인 처녀총각들을 원님(사또)들이 나서서 중매를 선 기록도 있다. [3] 삼국사기에는 어떤 왕인지 자세히 나오지 않으며, 삼국유사에 진성여왕으로 기록되어 있다. 다만 삼국사기에서 왕이 자신의 윗형제인 헌강왕의 딸을 시집 보냈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는데, 왕이 된지 1년만에 요절한 정강왕보다는 삼국유사의 기록대로 진성여왕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 [4] 이미 이 당시 헌강왕은 승하한 상태였다. [5] 일부 아동만화에서는 지은과 김효종이 이를 인연으로 혼인했다는 내용으로 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