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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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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1876 항소관할법3. 1958 일대귀족법4. 이상과 현실5. 여담

1. 개요

一代貴族, Life Peer

영국 귀족의 일종으로, 세습되지 않고 본인 일대에 한하여 작위를 가지는 귀족을 말한다. 반대말은 당연히 작위를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는 세습귀족.

일반적으로는 일대귀족보다는 종신귀족(終身貴族)이라는 번역어가 더 자주 쓰이지만 일대귀족 외의 다른 귀족들도 당연히 종신직이고, 세습이 가능한가 아닌가의 차이만 있을 뿐이니 올바른 표현은 아니다.

일대귀족 수작의 근거가 되는 법령은 1876년의 항소관할법과 1958년의 일대귀족법이다.

2. 1876 항소관할법

1876년의 항소관할법은 상원 의장이 대법원장을 맡고 법관은 상원의원인 일대귀족 중에서 총리의 제청으로 국왕이 임명하도록 되어 있다. 이 법의 제정 목적은 두 가지로, 첫째는 상원 의원들이 대법원을 구성함으로써 대법원을 상원이 통제하는 데 있다. 때문에 이 제도 하에서 영국 대법원의 판결은 상원의 의사를 강하게 반영하게 된다. 또 하나는 세습귀족과 고위 성직자만이 등원할 수 있던, 즉 신분을 통해서만 입성할 수 있던 상원에 전문 법조인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법에 따라 대법관은 상원 의원인 일대귀족이 맡게 되는데, 기술적으로는 '일대귀족 중에 대법관을 임명하는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대법관 취임자가 자동으로 일대귀족이 되며 상원 의석을 얻는 양상으로 흘러간다. 영국 대법원의 법관은 취임과 동시에 남작 작위를 받으며, 대법관에서 퇴임한 이후에도 작위는 유지하지만 본인의 사망과 함께 소멸된다.

2005년 헌법개혁법이 2009년 10월에 발효되어 대법원과 상원이 분리되면서 더 이상 법관귀족을 임명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법관귀족을 봉작한 것은 2009년 6월 29일이다. 당시 상원에 재직중이던 법관들은 전부 대법원으로 옮겨갔고, 대법관 은퇴 전까지는 상원에서의 투표 및 발언권이 제한되었다.

3. 1958 일대귀족법

현재 영국에서 대다수를 차지하는 일대귀족은 1958년의 법령에 기초한다. 수작자들은 보통 총리 역임자나 장관, 하원 의장 및 각 정당의 당수나 주요 당직에 재직했던 은퇴 공직자 및 하원 의원들이다. 이렇게 임명된 일대귀족 역시 법관귀족과 마찬가지로 총리가 제청하고 국왕이 임명하는데, 2000년 이후로는 상원 임명 위원회 역시 일대귀족 봉작을 제청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남작으로 임명되며 당연히 상원 의원이 된다. 보통 여성을 신규로 봉작하지 않는 세습귀족과는 달리 여성도 수작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 또한 작위가 없는 자만이 아니라 귀족 부인들도 임명된 바 있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여성 일대귀족의 대표적인 예로는 마거릿 대처가 있다. 기사와 같이 일대귀족은 영국, 아일랜드 영연방에서 태어나 현재 영국에 거주하며 세금을 내는 사람만을 대상으로 한다. 당 기부자들도 작위를 많이 받는데 블레어 총리와 캐머런 총리가 이런 부자들을 많이 지명했다. 블레어 총리는 측근들을 일대귀족으로 너무 많이 임명해 Tony's Cronies(토니의 친구들)이라고 불리는 사건도 있었다.

후술하겠지만 영국의 하원은 귀족이 아닌 자들에게만 피선거권이 있다. 그래서 세습 귀족이 정계에 입문하고 싶다면 세습 귀족의 작위를 자기 대에 한해 포기할 수 있는데, 이렇게 귀족의 작위를 포기한 세습 귀족이 정계 은퇴 후 일대귀족 작위를 받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세습 귀족으로써 상원의원직을 역임하고 있던 알렉 더글러스 흄 전 총리가 작위를 내려놓고 하원의원이 된 후 총리가 되었다가, 하원의원 은퇴 후 일대귀족이 되어 다시 상원의원이 되었다.

귀족의 작위를 포기할수 있는 것은 세습 귀족에 한정되며 일대귀족의 경우에는 작위를 포기할수 없기 때문에 일대귀족 작위를 받는 순간 평생 정계에 입문하는것이 불가능해진다. 아랫 문단에 더 자세히 언급되어있지만, 이런 특성으로 인해 은퇴한 거물급 정치인의 정치적 영향력 거세를 위해 쓰이는 경우도 있다.

또한 아직 귀족을 물려받지 못한 세습귀족의 장남 혹은 차남, 삼남이 일대귀족 작위를 받을 때도 있고 심지어는 왕족에게 수여되기도 했다.

2014년 상원 개혁안이 통과돼 상원의원들이 사임할 수 있게 됐다. 이전엔 죽기 전까지 한번도 등원을 안한다고 해도 공식적으로는 상원의원이었다.

일대귀족법 발효 이후 2022년까지 작위를 받은 일대귀족의 수는 총 1504명에 달한다. 가장 많이 나온 때는 토니 블레어(10년간 357명)와 데이비드 캐머런(6년간 243명) 시기이다.

4. 이상과 현실

귀족제가 없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귀족이라는 단어가 불러오는 신분상승 판타지의 로망과는 달리, 영국의 일대귀족은 만화 ' 정치9단'에 나오면 어울릴법한 철저한 정치적 산물이다.

일대귀족을 임명하는 가장 주된 이유는 바로 집권당이 상원을 장악하기 위함이다. 법령에 의한 일대귀족은 영국 정치제도, 그 중에서도 상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영국의 상원은 국민의 선출로 구성되지 않고 세습귀족들이 당연직 의원이 되는 구조이다. 그래서 노동당이 집권할 때면 전통적으로 보수당의 아성인 이 상원에 노동당 의원을 집어넣기 위해서 임명하는 것이 바로 일대귀족인 것이다.

예전에는 일대귀족이 아닌 세습귀족을 봉작하곤 했으나, 이렇게 하자 보수당이 정권을 탈환하면 한 번 준 귀족 작위를 뺏을 수는 노릇이라 보수당도 더 많은 귀족들을 봉작할 수밖에 없었고, 이런 이유로 세습 귀족 가문의 수가 끝도 없이 늘어나는 상황을 귀족 사회와 공화주의자들 양쪽에서 모두 극도로 불편해 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만들어낸 꼼수가 바로 일대귀족이다. 당사자를 남작으로 봉해 상원의원으로 임명하되 세습시킬 수가 없기 때문에 전체 귀족가문의 수가 늘어나지 않으면서도 상원의 구성을 바꿀 수 있다.[1]

때문에 구 법제도 하에서의 대법관 임명과 58년 체제 하에서 일대귀족 임명은 공을 세운 사람에 대한 포상이라기보다는 그냥 상원 의원을 임명하는 정치적 행위나 마찬가지다. 물론 긍정적으로 보자면 본래대로라면 귀족만이 입성할 수 있는 상원이 시대의 흐름에 맞춰 문호를 넓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작위를 받아 상원에 입성하는 사람들의 절대다수가 정치인이라는 점을 보면 일대귀족은 그냥 상원 장악의 방편임을 알 수 있다. 2010년 오랜만에 노동당을 물리치고 집권한 데이비드 캐머런 내각은 집권 이후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117명(!!)이나 일대귀족을 봉작해 연 평균치의 다섯 배에 달하는 스코어를 올렸다.

일대귀족은 정치인이 몰락한 이후 그의 영향력을 거세하기 위한 목적으로 임명하기도 한다.[2] 귀족은 평민의 의회인 하원의 의원으로 출마할 수 없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 명예는 줄테니 이만 정계에서 물러나라.'는 이야기이다. 마가렛 대처 보수당 당내 반란으로 총리직을 사퇴한 이후 곧바로 일대귀족 작위를 받은 것도 이러한 의미에서이다.

내각 요인이 총선에서 낙선하여 원외인사가 되면 보직에 유임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일대귀족 작위를 쏘는 경우도 있다. 영국에서는 관습법적으로 의원만 장관이 될 자격이 있는데, 상원의원도 의원은 의원인지라 내각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낙선한 다음 귀족으로 박제당해서 영원히 하원의원 자리에서 멀어지는 것는 것이 정치인으로서는 커리어가 재기불능으로 박살나는 굴욕이지만. 이렇듯이 정치인에게 일대귀족 작위는 단순한 정치적인 행보에 불과하며 명예와는 큰 상관이 없다. 오히려 총선에서 똑 떨어져서 차선책으로 받는 것이니 오히려 불명예의 상징이라 봐도 될 정도.

그러나 기사 작위보다 한 단계 높은 명예직으로서 일대귀족을 봉작하는 경우도 여전히 존재한다. 정치와 상관없는 인물을 국민적 지지와 예술적 성과에 대한 치하를 위해 일대귀족으로 봉작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예를 들어 2014년 타계한 명배우이자 감독 리처드 애튼버러 경의 경우 67년 대영제국 훈장 서훈, 76년 기사작위 서임, 93년 남작으로 승작(일대귀족)하는 루트를 밟았으며, 그는 어떤 정치적 활동도 하지 않았다. 즉 이런 사람들이 귀족 작위를 받는 건 정치적 의도와 상관 없이 매우 뛰어난 성과에 대한 치하의 의미로 준 것이다. 2011년 6월 외신 뉴스에 올랐던 알렉스 퍼거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의 일대귀족 제청 역시 비슷한 의미이다. 이런 사람들은 애초에 정치적 활동을 하지 않으므로 상원에도 거의 출석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이 명예직으로서의 일대귀족 이미지만 강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데 다시 말하지만 여전히 일대귀족 구성의 대부분은 정치인들이며, 명예직으로서의 일대귀족은 소수에 불과하다.

일대귀족들은 출석만 해도 하루 300파운드가 나오는 등 세금 낭비라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온다. 심지어 발언은 한 마디도 안 하고 5만 파운드 넘게 청구한 경우도 있다. #, 또한 귀족원 의원 5명 중 한 명은 민간기업의 자문으로 일한다고 드러났다. #

결국 귀족원 의장 파울러 남작의 조사와 요청에 따라 총리는 자연적으로 귀족원의 숫자를 줄이기 위해 되도록 일대귀족을 잘 임명하지 않게 되었다.

5. 여담

2011년 6월 외신 뉴스에 올랐던 알렉스 퍼거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의 일대귀족 제청 역시 퍼거슨을 영국 상원 의원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의사 표시인 셈. 그러나 그 이후로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2013년 5월 8일에 퍼거슨 경이 공식 은퇴를 발표하면서 다시 퍼거슨 경이 작위를 받을 수 있을지 논의되었으나 별일 없이 지나갔다.

은퇴한 런던광역경찰청장, 영국군 장군, 왕실 시종무관장 (Private Secretary to the Sovereign), 서민원 최고 서기(Clerk of the House of Commons), 내각부 장관(Cabinet Secretary) 등 은퇴한 공무원들이 일대귀족 작위를 받는 경우도 종종 있다.

제레미 헤이우드 내각부 장관(Cabinet Secretary)이 일대귀족 작위를 받았는데, 얼마 뒤 사망하여 귀족원에서 활동하지 못했다.


[1] 물론 일대귀족법 발효 후에도 드물게 세습귀족도 봉작되지만 애시당초 시대가 시대다보니 그 수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1964년 이후로는 비 왕족 계통에서 9개 가문만이 만들어졌다. 1965년 다섯 가문이 세습 남작으로 서임 된걸 제외하면 모두 대처 정권 시대 만들어졌는데, 백작 가문은 1개( 해럴드 맥밀런 前 총리, 9개 귀족 가문 중 가장 최근인 1984년에 만들어졌다), 자작 가문은 3개였다. 그 중 두 자작 가문과 한개의 남작 가문이 21세기 이전에 대가 끊겼다(...). 귀족은 아니지만 준남작가도 1965년 이후로는 하나만 만들어졌다. 1990년에 대처 前 총리의 남편 데니스가 받은 것이다. [2] 일대귀족이 생기기 전에는 세습귀족으로 임명했다. 클레멘트 애틀리가 그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