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연설기록비서관 | ||||
이명박 정부 | ||||
초대 이태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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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정용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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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김영수 |
<colbgcolor=#082e59><colcolor=#fff> 이명박 정부 제2대 대통령실 연설기록비서관 정용화 鄭容和 | Chung Yong hw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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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4년 9월 9일 ([age(1964-09-09)]세) | ||
전라남도 강진군 작천면 | |||
현직 |
광주과학기술원 대외부총장 새날학교 명예이사장 고려인마을 후원회장 코리안드림네트워크 이사장 국민통합위원회 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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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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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82e59><colcolor=#fff> 학력 |
강진작천국민학교 (졸업 / 27회) 조선대학교부속중학교 (졸업) 광주인성고등학교 (졸업 / 6회)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외교학 /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외교학 /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 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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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정당 |
[[무소속(정치)| 무소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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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
대통령자문
21세기위원회 상근연구원 (
노태우 정부 ·
문민정부) 하버드 대학교 방문연구원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초빙연구원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북경대학 방문학자 도쿄대학 객원연구원 대통령실 연설기록비서관 (제2대 / 이명박 정부) 호남미래연대 이사장 인성교육범국민실천연합 사무총장 연세대학교 동서문제연구원 연구교수 충훈고등학교 운영위원장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초빙교수 2015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 조직위원회 부위원장 대통령직속 국민통합위원회 위원 ( 윤석열 정부) 광주과학기술원 초빙석학교수 광주과학기술원 대외부총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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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2. 생애
1964년 9월 9일 전라남도 강진군 작천면에서 태어났다. 강진작천초등학교, 광주 조선대학교부속중학교, 광주인성고등학교(6회),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외교학과, 서울대학교 대학원 외교학 석사 및 정치학 박사 과정을 졸업했다.이후 노태우 정부와 김영삼 정부에서 대통령 자문 21세기 위원회 상근 연구원을 역임했고, 연세대학교 국학대학원 연구 교수 등으로도 활동하였다.
2007년 3월 이명박 캠프에 합류하면서 학자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하였다. 지역주의 극복을 주장하며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광주광역시 서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통합민주당 조영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친이계로서 2008년 7월부터 2010년 2월까지 이명박 정부 청와대 대통령실(현 대통령비서실) 연설기록비서관을 지냈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광주광역시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강운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광주광역시 서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통합당 박혜자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연세대학교 동서문제연구원 연구교수, 2015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조직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지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당 소속으로 광주광역시 서구 갑 예비 후보로 활동하였으나 경선 승리로 공천이 확정된 상황에서,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광주광역시장 선거에 출마한 경력을 숨겼다는 이유(+ 신인 가산점)으로 자격이 박탈되었고, 송기석이 해당 선거구에 출마하였다.이때 자격박탈에 항의하고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당사 앞에 지부상소[1] 형식의 연좌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결국 낙천을 수용하였다.
3. 평가
호남 출신 보수 정당 정치인으로선 몇 안되는 맨땅(호남)에 헤딩하는 사람이었다. 2008년과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광주시장에도 연거푸 한나라당으로 출마하여 낙선했지만 두 자리 수 득표율을 올렸다.[2][3] 2년 뒤 무소속 출마 때는 점점 높아진 주목도에 인물론이 먹혀 20%에 육박하는 득표를 했다.[4]그러나 당이 호남정책을 사실상 포기하다시피 한 것에 대한 실망감과 함께, 친박계의 친이계 숙청이 막 시작되던 2012년 초의 당내 상황에서 친이계에 속해있던 정용화는 결국 보수정당을 포기하고 만다.[5] 이후 국민의당, 바른미래당에 소속했으나 보수정당 출신이란 것에 덜미를 잡혀 국민의당 바람도 타지 못했다. 특히 2016년 당시 또 광주서갑 후보에 확정되었으나 결국 출마하지 못했던 것이 정치생명에 치명적이었다.
이후의 행보(국민의당 분당시 바른미래당 합류)를 보면 그래도 정치적 신념은 확실히 보수인 듯하다. 또 윤석열 정부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으로도 합류하였다.
4. 소속 정당
소속 | 기간 | 비고 |
|
2008 - 2012 | 정계 입문 |
[[새누리당| |
2012 | 당명 변경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012 - 2016 | 탈당 |
[[국민의당(2016년)| |
2016 - 2018 | 입당 |
[[바른미래당| |
2018 - 2020 | 합당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020 - 현재 | 탈당 |
5. 선거 이력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808080><tablebgcolor=#fff,#1c1d1f><tablewidth=100%><rowcolor=#fff><rowbgcolor=#808080>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2008 |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 광주 서 갑 |
|
4,742 (11.14%) | 낙선 (2위) | |
2010 |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광주광역시장 | 74,490 (14.22%) | 낙선 (3위) | ||
2012 |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 광주 서 갑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2,134 (19.96%) | 낙선 (2위) |
역대 선거 벽보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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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총선 ( 광주 서구 갑) | 5회 지선 ( 광주광역시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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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총선 ( 광주 서구 갑) | }}}}}}}}} |
모든 선거에서 낙선했지만 두 자리 수 득표율을 올리는데 성공했다. 가장 최근 출마한 2012년 총선에서 무소속 출마 때는 점점 높아진 주목도에 인물론이 먹혀 20%에 육박하는 득표를 했다.
6. 관련 문서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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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 부산시장 | 대구시장 | 인천시장 |
오세훈 | 허남식 | 김범일 | 안상수 | |
광주시장 | 대전시장 | 울산시장 | 경기지사 | |
정용화 | 박성효 | 박맹우 | 김문수 | |
강원지사 | 충북지사 | 충남지사 | 전북지사 | |
이계진 | 정우택 | 박해춘 | 정운천 | |
전남지사 | 경북지사 | 경남지사 | 제주지사 | |
김대식 | 김관용 | 이달곤 | 무공천 | |
}}}}}}}}}}}} |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광주광역시장 후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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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5BA6,#FFC224> 기호 | 정당 | 이름 | 비고 |
1 | 한나라당 | 정용화 | ||
2 | 민주당 | 강운태 | 당선 | |
5 | 민주노동당 | 장원섭 | ||
7 | 진보신당 | 윤난실 | ||
8 | 국민참여당 | 정찬용 | ||
9 | 평화민주당 | 조홍규 | ||
서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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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
강원 ·
대전 ·
충북 ·
충남 광주 · 전북 · 전남 · 대구 · 경북 · 부산 · 울산 · 경남 · 제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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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시대 선비가 왕에게 상소할 때 도끼를 앞에 두고 하면서 이 상소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자기를 치라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 방식
[2]
심지어 득표율로만 말하자면
20대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매우 선전했다고 평가받는 12.72%보다도 더 높은 14.22%였다. 게다가 옛날 대선 때만 해도 고작 3~4%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걸 생각해보면 매우 선전한 것인 것.
[3]
이 기록은 의외로 민주당-한나라당 양자구도가 아니라
국민참여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까지 총출동 했으며 당해 지방선거에서 반MB바람이 불었던 것을 생각하면 더 놀라운 결과다. (순위는 국민참여당에 밀려 간발 차로 3위였다.) 정용화 후보의 14.22%는 12년 뒤
8회 지선에서
국민의힘
주기환 후보가 무려 15.90%라는 득표하여 선거보전라인을 넘어서 사상 최초로 최고 득표율을 갱신하였다.
[4]
당시 무소속 출마한
조영택,
송갑석보다 득표를 많이 했다. 인물론은 확실히 지지층이 있었던 것.
[5]
5회 지방선거 당시 호남 광역자치단체장 3곳에 도전한 한나라당 후보들은 모두 15% 내외의 득표력을 보이며 서진정책의 등불이 되어주었으나... 전북의
정운천은
20대 총선 당선 후 바른정당-바른미래당 루트를 밟았고, 전남의
김대식은 아예
친홍 인사가 되어정치적 기반을 부산으로 옮겼다. 새누리당과 그 후신 자유한국당 시기의 호남 정책은
이정현 개인의 깜짝 당선을 제외하고는 이처럼 깜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