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정근우의 선수 경력을 정리한 문서.2. 아마추어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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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고 시절[1] |
1999년과 2000년 동기인 추신수, 김백만과 선의의 경쟁을 펼쳤고 조성옥 감독의 엄격한 지도가 어우러져 팀은 대통령배 2연패 달성에 성공했다.
2001년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했으나 어느 구단에도 프로 지명을 못 받고 고려대로 진학했다.[2] 고려대학교 야구부 정원이 다 차서 럭비부로 입학했다가 나중에 야구부로 간 일화가 있다. 대학 졸업 후 2005년 SK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동갑내기로는 한화의 1차지명 김태균, 롯데의 1차지명 추신수,[3] 2차 1R 이대호, 2R 이우민, SK 1차지명 정상호, 2차 2R 김강민, 4R 채병용, 9R 박재상. 나열한 선수들 전원 2001년 지명자들이다.[4] 또한, SK 입단 동기로는 최정[5]이 있다.
사실 부산고 시절에도 팀의 주장으로서, 팀의 에이스였던 추신수와 함께 부산고의 우승을 이끌었지만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다. 항간에는 추신수의 메이저리그 진출에 따른 보복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6] 고려대 졸업과 동시에 받은 지명도 당시 꽤 이른 순번이라는 평가가 있었던 점을 감안할 때, 아무래도 키가 작은 것이 낮은 평가의 원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근우 본인도 자기가 키가 작아서 지명이 안됐다고 밝히고 있다.[7]
3. 프로 경력
3.1. SK 와이번스
{{{#ffffff [[SK 와이번스|SK 와이번스]] 등번호 8번}}} | ||||
조경환 (2002) |
→ |
정근우 (2005~2013) |
→ |
김재현 (2014~2020) |
No.8
정근우 2005 ~ 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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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991경기 4057타석/3515타수 1057안타 59홈런 377타점 565득점 370BB/394K 269도루 .301/.374/.413 OPS .786 wRC+ 115.7 sWAR 32.16 |
자세한 내용은 정근우/선수 경력/SK 와이번스 문서 참고하십시오. |
3.2. FA
자세한 내용은 정근우/선수 경력/FA 문서 참고하십시오.3.3. 한화 이글스
{{{#fff [[한화 이글스|한화 이글스]] 등번호 8번}}} | ||||
오재필 (2013) |
→ |
정근우 (2014~2019) |
→ |
노시환 (2020~) |
No.8
정근우 2014~2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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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시절 |
자세한 내용은 정근우/선수 경력/한화 이글스 문서 참고하십시오. |
3.4. LG 트윈스
{{{#fff [[LG 트윈스|LG 트윈스]] 등번호 8번}}} | ||||
김용의 (2019) |
→ |
정근우 (2020) |
→ |
이주형 (2021) |
No.8
정근우 2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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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2루수에 대해 여전히 자부심이 있고 미련이 많이 남았던듯. 류중일 감독이 정근우와 상견례를 한후 "세칸(2루) 되제?" 라고 묻자 힘차게 된다고 답한후 다시 2루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고 한다. 나이가 많으니만큼 풀타임은 확실히 무리이고 정주현[12]과 적절히 번갈아서 2루를 본다면[13] 체력적으로 무리가 없고 기용 효과가 클 것이다. 아니면 최재원이나 구본혁 등을 2루수로 선발 출장시킨뒤 중요한 순간 대타로 내는 방법도 있다.
3.4.1. 2020 시즌
자세한 내용은 정근우/선수 경력/2020년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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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시즌. 시즌 후 은퇴를 선언하면서 현역 마지막 시즌이 되었다.
4. 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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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내용은 정근우/선수 경력/국가대표 문서 참고하십시오. |
5. 수상 내역
5.1. K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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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우의 KBO 수상 경력 | |
2006 | 골든글러브 (2루수 부문) |
2007 | 한국시리즈 우승 / 동군 올스타(감독추천) |
2008 | 한국시리즈 우승 |
2009 | 골든글러브 (2루수 부문) / 득점 1위 |
2010 | 한국시리즈 우승 |
2011 | 준플레이오프 MVP / 이스턴 올스타(베스트10) |
2012 | 플레이오프 MVP |
2013 | 골든글러브 (2루수 부문) / 이스턴 올스타(베스트11) |
2015 | 나눔 올스타(베스트12) |
2016 | 득점 1위 / 나눔 올스타(베스트12) |
5.2.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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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우의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수상 경력 | |
2000 | 2000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 우승 |
2008 |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종목 금메달 |
2009 |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준우승 |
2010 |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야구 종목 금메달 |
2015 | 2015 WBSC 프리미어 12 우승 |
5.3. 기타
정근우의 기타 수상 경력 | |
2009 | 조아제약 프로야구대상 최고 타자상 |
2010 | 조아제약 프로야구대상 최고 수비상 |
6. 연도별 성적
- 푸른 글씨는 KBO 최다, 붉은 글씨는 1위 입상 성적. 진한 글씨는 리그 5위 내 입상 성적.
정근우의 역대 KBO 기록 | ||||||||||||||||||
<rowcolor=#ffffff>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석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wRC+ | WAR* |
2005 | SK | 52 | 106 | 17 | 2 | 0 | 0 | 5 | 11 | 4 | 4 | 13 | .193 | .255 | .216 | .471 | 16.2 | -0.50 |
2006 | 120 | 487 | 122 | 19 |
4 (4위) |
8 | 42 | 69 |
45 (2위) |
36 | 60 | .284 | .342 | .402 | .744 | 113.0 | 4.21 | |
2007 | 111 | 391 | 110 | 24 | 2 | 9 | 44 | 62 | 24 | 35 | 44 |
.323 (4위) |
.395 | .484 | .879 | 149.1 | 4.88 | |
2008 | 124 | 550 |
154 (2위) |
20 | 4 | 8 | 58 | 73 |
40 (3위) |
46 | 53 | .314 | .373 | .420 | .793 | 122.6 | 4.57 | |
2009 | 127 | 565 |
168 (2위) |
29 | 4 | 9 | 59 |
98 (1위) |
53 (2위) |
67 | 55 |
.350 (5위) |
.437 (4위) |
.483 | .920 | 145.9 |
6.86 (2위) |
|
2010 | 128 | 563 |
148 (4위) |
25 | 2 | 2 | 48 | 75 |
33 (5위) |
47 | 51 | .305 | .375 | .377 | .753 | 97.6 | 3.05 | |
2011 | 90 | 385 | 100 | 19 | 0 | 6 | 40 | 60 | 20 | 38 | 37 | .307 | .384 | .420 | .804 | 118.4 | 2.96 | |
2012 | 127 | 534 | 124 | 13 |
4 (4위) |
8 | 46 | 53 | 22 | 47 | 33 | .266 | .339 | .362 | .701 | 100.5 | 2.93 | |
2013 | 112 | 476 | 114 | 19 | 3 | 9 | 35 | 64 | 28 | 50 | 48 | .280 | .368 | .408 | .776 | 107.5 | 3.20 | |
<rowcolor=#ffffff>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석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wRC+ | WAR* |
2014 | 한화 | 125 | 549 | 137 | 28 | 5 | 6 | 44 | 91 | 32 | 66 | 56 | .295 | .391 | .416 | .807 | 101.7 | 3.67 |
2015 | 126 | 552 | 148 | 30 | 2 | 12 | 66 | 99 | 21 | 61 | 66 | .316 | .403 | .466 | .868 | 119.2 | 4.91 | |
2016 | 138 | 650 | 178 | 31 | 2 | 18 | 88 |
121 (1위) |
22 | 60 | 58 | .310 | .381 | .464 | .845 | 112.5 | 4.37 | |
2017 | 105 | 442 | 129 | 22 | 0 | 11 | 46 | 73 | 6 | 32 | 48 | .330 | .392 | .471 | .863 | 120.1 | 3.08 | |
2018 | 102 | 425 | 114 | 24 | 1 | 11 | 57 | 63 | 6 | 39 | 43 | .304 | .377 | .461 | .839 | 111.8 | 1.64 | |
2019 | 88 | 305 | 77 | 10 | 1 | 3 | 30 | 37 | 8 | 20 | 43 | .278 | .334 | .354 | .688 | 94.3 | 0.75 | |
<rowcolor=#ffffff>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석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wRC+ | WAR* |
2020 | LG | 72 | 177 | 37 | 4 | 0 | 1 | 14 | 23 | 7 | 17 | 23 | .240 | .322 | .286 | .608 | 64.4 | -0.10 |
KBO 통산 (16시즌) |
1747 | 7157 | 1877 | 319 | 34 | 121 | 722 | 1072 | 371 | 665 | 731 | .302 | .376 | .422 | .799 | 112.0 | 50.50 |
[1]
사진에서 알 수 있듯 고등학교 시절에는 등번호를 8번이 아닌 16번으로 사용했다.
[2]
고려대 입학을 앞두고 부산고가 고려대와 연습경기를 했는데 조성옥이 '너 꼭 고대에 가야한다'면서 1번타자로 이름을 올렸고 그날 정근우는 3안타를 쳤다고 한다.
동아대,
동의대,
경성대 등 부산지역 대학들의 오퍼를 받았으나 서울에서 뛰고 싶다는 열망이 컸다고 밝혔다.
[3]
알다시피 입단을 거부하고
미국에 갔다.
[4]
특히, 1982년생 부산 출신 선수들이 많다. 같은 부산고 동료인 추신수와
김백만, 라이벌
경남고의
이대호와
장기영,
부산상고의
채태인,
이승화,
차정민,
경남상고의
김경언,
백승룡,
송산, 김덕윤,
부산공고의
이명우 등. 이명우는 1982년생이나 수술로 1년을 유급하여 이들보다 늦게 졸업했다.
[5]
빠른년생 고졸이자 1차지명
[6]
같은 부산고의
김백만은 2차 1라운더로 한화 이글스에서 계약금만 2억원을 받았던 걸 볼 때 신빙성은 낮다.
[7]
역시 172cm으로 단신이었던
손시헌이 대학 졸업 후에도 지명받지 못하고 결국 신고선수로 커리어를 시작했어야 했던 선례가 있기도 하다. .
[8]
일단 정찬헌 측에서
먼저 전화를 걸어 '곧 뵙겠다'라고 인사했다고 한다. 본인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경기 중에 있었던 일이며, 모두 잊었다. 착한 후배일 것'이라는 인터뷰를 남겼기도 했고. 얼마 후 "반갑다. 잘 지냈냐?"는 인사를 정근우가 했다는 걸 보면 화해한 듯..
[9]
류중일 감독이 정근우에게 제일 먼저 한 말이 "쎄컨(2루수) 되제?" 라고 한다(...)
[10]
사실 안치홍은 시즌 중반 손바닥 부상 이후로 좀처럼 보기 힘들어졌고, 벌크업 이후 수비 면에서 불안한 면이 많아진 데다 공인구 변경 후 홈런 수가 급감했기 때문에 차라리 정근우를 2루수로 쓰자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정근우도 한화 시절부터 노쇠화가 찾아왔고 최근 2년 정도 2루수 수비를 거의 본 적이 없는 점을 미루어보아, 외부 FA로
오재원이나
김재호를 데려와서 2루에 앉혀놓고 정근우를 1루수로 기용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이 두 선수도 1985년생(오재원은 빠른 1985년생이다.)이고 서서히 노쇠화가 오는게 보이긴 하는지라 이 대안으로만은 해결책이 확실히 나오진 못하고, 보상선수 문제 때문에 구단에서 만 34세의 두 선수 중 한 명 이상을 영입할 가능성은 낮다.
[11]
이 과정에서 정근우가 한화에서
정은원을 기용하게 위해 2루수 자리에서 밀려 포기하게 되었다는 식의 말이 퍼졌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정근우로 인해 정은원이 기용되었던 것이다. 17시즌 부터 정근우는 서서히 노쇠화가 오고 있었고, 18시즌엔 나오기만 하면 실책을 하다보니 부상이 아닌 수비 부진을 이유로 2군행을 지시받을 정도로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 허나 아무리 부진해도 같은 지타 요원인 이성열이나 김태균보다 발도 훨씬 빠르고 3할 가까이 치는 타격 능력도 있던 덕에 외야나 1루 수비를 시키면서라도 어떻게든 써보려고 했을뿐. 본인도 20년 초 인터뷰에서 기회를 받았을 때 본인이 못했던 탓이라고 밝혔다.
[12]
혹은 최재원이나 구본혁 등
[13]
144경기 기준으로 절반을 나눈다면 72경기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