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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9 16:33:46

강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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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리호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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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리호[1]
姜里湖|Kang Ri-ho
출생 1990년 7월 10일 ([age(1990-07-10)]세)
서울특별시 서초구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학력 서울이수초 - 경원중 - 장충고
신체 183cm|89kg| O형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 입단 2009년 1차 지명 ( 우리)[2]
소속팀 서울- 넥센 히어로즈 (2009~2017)[3]
NC 다이노스 (2017~2021)
롯데 자이언츠 (2021~2022)
가평 웨일스 (2023)
병역 상무 피닉스 야구단
(2014년 12월 22일 ~ 2016년 9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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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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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부모님, 누나
반려묘 퓨리
등장곡 Dan Farber - 〈Don't Touch〉
종교 불교
기록 무결점 이닝 (2012.4.11., 2018.7.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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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선수 경력3. 플레이 스타일4. 여담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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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

KBO 리그에서 현재까지 유일무이한 무결점 이닝 2회를 달성한 선수이다.

2. 선수 경력

통합 선수 경력: 강리호/선수 경력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상무 야구단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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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시절

3. 플레이 스타일

파일:강윤구패스트볼.gif
시속 146km의 포심 패스트볼
파일:강윤구슬라이더.gif
135km 슬라이더

빠른 공을 던지는 정통파 좌완투수로 타고난 유연성과 체격조건이 좋다.[5] 데뷔 당시 류현진 김광현에 비견되었을 정도로 훌륭한 구위를 가지고 있으며 피안타율이 낮고 탈삼진 능력도 최상급으로 평가받는다. 140km/h 중후반대 강속구와 빠른 포심과 횡 변화가 매우 뛰어난 완성도 높은 슬라이더, 커브 그리고 체인지업을 구사한다. 다만 체인지업의 평가는 그리 좋지 못한 편.[6] 무엇보다도 경기 운용능력이 떨어지고 밸런스가 자주 흔들리며 특히 제구력의 기복이 심해 많은 이닝을 소화하지는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7]

최고구속은 152km/h다.[8] 2010년 토미 존 수술을 받은 이후 2012년까지 150km/h를 넘지 못하다가 2013년에 151km/h를 찍었다.[9] 선발로 등판할 때는 포심의 평속이 시속 130km대 후반~140km대 초반이었으나 불펜 전환 후에는 140대 중반까지는 구속이 나온다.[10]

2013 시즌 후반기의 체력적인 한계를 느끼고 비시즌 동안 벌크업으로 체격을 키우는 선택[11]을 했지만 계획과는 다르게 2014 시즌 강리호는 밸런스가 망가지면서 구위, 구속을 모두 잃어버리고 시즌 중반 시즌 아웃되고 말았다.[12]

그렇게 2014년부터 서서히 떨어졌던 투구 스피드는 상무 복무와 NC 다이노스 이적을 거친 후 2018년 들어서야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 시작했다.[13][14]

끊임 없는 고민과 집요한 연구를 통해 되찾은 구위를 통해 긁히는 날에는 언터쳐블 좌완불펜으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고질적인 약점인 제구와 경기운영도 꾸준히 등판 경험이 쌓이면서 개선되었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히어로즈 시절에 이어서 NC 팬들에게도 늘 환호와 탄식이 교차하는 애증의 대상이었다.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하고 나서는 평균 구속이 하락하면서 구위가 하락했지만 그 대신 2022년 BB/9을 2개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다만 중요한 상황에서 등판하지 못했다.

4. 여담

파일:윤구연봉킹.png }}} ||<width=50%>
파일:윤구야구왕.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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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시즌 연봉킹 2010 시즌 야구왕
파일:attachment/강윤구/wprn.jpg
파일:attachment/강윤구/snsk.jpg * 모친에게 왜 그렇게 제구가 안되냐며 디스당했다.
파일:attachment/강윤구/한정규.png * 클로저 이상용의 등장인물 한정규의 모티브로 추정된다.
파일:윤구봉은사.png 파일:윤구봉은사2.jpg * 2019년 9월 9일, 본인 인스타에 봉은사. 절박함 이라는 인스타스토리를 남기며 봉은사에 다녀왔음을 알렸는데, 그 다음날부터 귀신같이 호투를 이어가고 있어[21] 엔갤러들은 "부진한 선수들 손잡고 전부 봉은사 다녀와라", "내년 투수조 스프링캠프는 봉은사 템플스테이나 하라"며 드립을 치고 있다. 그러더니 이번엔 시즌 최종전을 앞둔 9월 29일에 봉은사를 또 다녀왔는데, 또다시 1이닝 무실점 호투를 펼치면서 그 효험을 인정받아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앞두고 있던 NC 팬들의 성지순례가 이어졌다. # # # 결국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팀은 패배했지만 강윤구 본인은 또다시 2이닝 무피안타 3K의 호투를 보여주며 기도빨은 유효했음을 입증. 이후에도 절을 다녀왔다는 사진을 SNS에 올리곤 한다. 홈경기가 있는 주간에는 창원에 위치한 성주사에 종종 다녀오는 듯.

5. 관련 문서


[1] 개명 전 이름은 강윤구(姜倫求). 개명 이후 FA 계약을 하지 못하여 소속팀을 구하지 못한 상태로 은퇴하여 강리호라는 이름으로 KBO 리그에서 등판한 적은 없다. [2] 히어로즈 창단 이후 처음으로 1차 지명으로 뽑은 선수다. 현대 유니콘스는 연고지 관련 문제로 인해 2003년 드래프트부터 1차 지명권을 상실했고, 그걸 회복한 게 2009년 드래프트다. 2010년부터 전면 드래프트 제도로 1차 지명 제도가 없어져서 히어로즈의 유일한 1차 지명 선수였지만, 2014년 드래프트부터 1차 지명 제도가 부활해서 이 타이틀은 2013년까지만 유효했다. [3] 2017 시즌 연봉 계약 후 시범경기 기간에 김한별과 맞트레이드 되었다. 후에 이 계약은 1억원이 얹어진 이면 계약으로 드러났다. [4] KBO 리그 유일의 무결점 이닝 2회 달성자. [5] 2020 시즌 NC 자체 청백전 해설을 맡았던 염종석은 강윤구의 투구폼을 보고 던지는 자세, 하체 사용, 상체의 유연성, 끌고 나가서 때리는 힘 등이 모두 부드럽고 유연하다며, 아주 이상적인 투구폼을 가지고 있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 [6] 우타자 공략을 위해 2019 시즌부터 체인지업 구사를 늘렸다. [7] 2012 시즌에는 규정이닝을 채우지도 못했는데 볼넷이 유창식에 이어 74개로 전체 2위를 기록했다. [8] 출처 스포츠 투아이. [9] 엠스플 스피드건으로는 152km/h까지 찍혔다. [10] 출처: 네이버 스포츠 선수/분석 항목. [11] 이강철 수석코치는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이지풍 코치에게 상담을 받은 이후 직접 결심했다고 한다. 류현진 만큼의 체격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고 한다. [12] 2014 시즌 이닝당 홈런 허용률 1위였다. [13] 강리호는 "나는 제구가 좋은 투수가 아닌데 몸이 변하니까 방법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전역하고 트레이드되면서 이러다가 진짜 유니폼을 벗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야구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면서 어린 후배들과 경쟁에서 이기려면 압도할 만한 실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더 야구에 집착하게 했다"고 밝혔다. [14] 또 "예전에 근육을 키우면서 기동성이 떨어졌다. 나는 직구 스피드로 먹고 사는 사람인데 스피드가 떨어지니 아웃 카운트 한 개 잡기도 힘들었다. NC에 와서 가장 많이 한 게 근육 빼는 일이었다. 그렇게 1년을 하니까 올해 첫 경기에서 147km가 나왔다. 그때서야 '됐다' 싶었다"고 만족스러워 했다. 인터뷰 [15] 2012년 4월 11일(넥센 히어로즈 시절), 2018년 7월 18일(NC 다이노스 시절) [16] 다니엘 리오스, 금민철, 강윤구, 김혁민, 우규민, 라울 알칸타라, 박세웅, 김택연. 케이시 켈리는 우천 노게임으로 인해 기록이 무효화되었으므로 제외한 것이다. [17] 그는 2018년 같은 날 데뷔 첫 두자릿수 홀드를 올리기도 했다. [18] 당시 성적은 3승 2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5.51 이었다. [19] 이용찬은 강윤구가 1학년 때 모자챙에 ‘구속160km’ 적어놓고 ‘계약금 13억 원'이라고 써놓았다고 인터뷰에서 말하기도 했다. [20] 엔갤러들은 컨디션 따라 제구 기복이 심한 강윤구가 갤주급 아니냐며 분개하고 있지만, 이 분야 최강자 모창민이 있기 때문에 모창민이 은퇴하기 전까지는 갤주자리를 넘보기는 힘들 듯. 2021년 모창민 은퇴 이후에는 강윤구가 1군에 오지 못하고 있다. [21] 직후 등판이 9월 11일 두산전이었는데 1이닝 삼자범퇴, 다음날 kt전은 5위 싸움이 걸린 중요한 상황에서 1⅔이닝 1피안타 무실점으로 역시 호투를 펼쳤다. 이후 9월 등판에서도 구원으로 1이닝씩 꼬박꼬박 먹어주며 활약을 이어갔다. [22] 이건 불가피했던 게 이 당시 참가자들의 유니폼은 은퇴한 전 프로선수는 마지막 소속팀의 유니폼을 입었는데 강리호라는 이름으로 뛴 시즌은 없었기 때문에 강윤구 시절의 유니폼을 입고 출연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제작진측에서 부여한 이름표는 개명한 이름인 강리호로 마킹되었다. [23] 참고로 심사위원 평가로 선발된 선수는 제구력으로 정평이 나있던 신재영으로, 이날 트라이아웃에서 엄청난 강속구를 뿌려댔지만 제구를 잘 잡지 못한 다른 투수들과 달리 137km이지만 엄청난 제구력으로 스트라이크 존 구석구석을 통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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