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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준/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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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아마추어 시절3. 현대 유니콘스
3.1. 2004 시즌3.2. 2005 시즌3.3. 2006 시즌3.4. 2007 시즌
4. 우리-서울-넥센 히어로즈
4.1. 상무 피닉스 야구단4.2. 2010 시즌4.3. 2011 시즌4.4. 2012 시즌4.5. 2013 시즌4.6. 2014 시즌4.7. 2015 시즌4.8. 1차 FA
5. kt wiz
5.1. 2016 시즌5.2. 2017 시즌5.3. 2018 시즌5.4. 2019 시즌5.5. 2차 FA5.6. 2020 시즌5.7. 2021 시즌
6. 은퇴7. 연도별 주요 성적

1. 개요

현대 유니콘스, 우리-서울-넥센 히어로즈, kt wiz 소속 외야수 유한준의 선수 경력을 모아 놓은 문서.

2. 아마추어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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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부천신흥초, 부천중을 거쳐, 유신고 시절에는 유격수 3루수를 겸하던 선수였다. 때문에 프로 입단 초기에는 간혹 3루수로 나오기도 했다. 상무 제대 첫 시즌인 2010년 이후 외야수로 완전히 정착했으며, 내야에는 경기 후반 교체로 인해 수비가 꼬일 때 가끔씩 1루 수비를 보는 정도다.

비교적 빠른 순번으로 현대 유니콘스가 2차 3순위 지명을 했지만, 본인은 대학에 먼저 가기를 희망해서 동국대학교 체육교육학과(2000학번)로 진학했다. 동국대학교 체육교육학과 재학 시절 3년 선배가 박한이, 2년 선배가 투수 이대환, 포수 강귀태, 동기가 좌타자 박정권에 감독은 한대화였다. 상위 순번임에도 불구하고 동국대학교 체육교육과에 진학한 건 교사인 부친이 "그래도 대학 교육은 먼저 마쳐야 하지 않겠냐?"고 권유했기 때문이라고...[1] 그리고 교생 실습을 나가면서 수업시간 외에는 야구부를 도왔는데,[2] 여기서 만난 선수가 바로 최정이라고 한다. 성격이 워낙 유순한 탓에 대학 시절 후배들이 간혹 기어 올랐다는데, 이를 앞장서서 제지한 사람이 동기 박정권이다.[3] 이 인연을 계기로 둘은 절친이 됐으며, 넥센을 상대로 어마무시한 파괴력을 보여주는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박정권은 넥센 팬들 사이에서 호감 상위권인 타 팀 선수가 됐다.

3. 현대 유니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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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입단 후 포지션을 외야수로 바꿨다. 당시 전준호 송지만의 나이로 볼 때, 외야에서 먼저 기회가 올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성갑 코치에게 엄청나게 펑고를 받으면서 외야 수비가 급상승했다고... 현대 시절 호수비 영상

김재박 감독이 유망주라고 지목했지만, 정작 그가 현대 감독으로 있었을 때는 그리 활약하지 못했다. 타격이 좀 안되었지만, 그래도 수비면에서는 나름 상위급이었으며 특히 롯데전에서 워낙 잘 치고, 호수비도 많이 보여주면서 롯데 팬들에게는 유한준 님으로 불리는 공포의 대상이었다.[4] 딱히 활약한 것이 없던 2007년에 롯데 전에서 7타점을 기록하고, 3할이 넘는 타율을 기록했다. 다만 어디까지나 2007년도의 이야기고, 상무 제대 후인 2010년에는 딱히 롯데에 강하진 않다. 장원준만 빼고.( .429 .556 .857 1홈런 3안타 2볼넷 2타점) 현대 시절 홈런 영상

3.1. 2004 시즌

1군에 콜업되지 못한 채 2군에서만 시즌을 보냈다.

3.2. 2005 시즌

18경기 28타석에서 .192/.250/.346 1홈런 5타점을 기록했다.

3.3. 2006 시즌

110경기 295타석에서 .244/.331/.346 3홈런 31타점을 기록했다.

3.4. 2007 시즌

112경기 231타석에서 .223/.313/.330 5홈런 35타점을 기록했다.

4. 우리-서울-넥센 히어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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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상무 피닉스 야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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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시즌 후[5] 상무에 입대하여 2009년 2군 타점왕에 등극했다. 김상현, 박정권, 최형우의 사례와 같이 군 팀에 입단한 후 2군에서 맹활약한 선수가 1군에 올라와 주전을 꿰차는 경우가 많아서 팀의 기대가 컸다. 여기에 이택근이 유한준이 제대한 후 팔린 상황이었으니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

4.2. 2010 시즌

상무에서 제대한 후 시즌 초반 한 때 심한 타격 부진에도 선발 출장 매 경기 출장하는 것을 두고 ' 김시진의 양아들'이라고 엄청나게 까였으나, 점점 타격감이 나아져 가면서 덕 클락과 함께 팀이 중심 타선 역할을 해가며 활약했다. 시즌 종료 시점에선 3할에 가까운 0.291의 타율과 9홈런, 팀 내 최다인 79타점을 기록하면서 나쁘지 않은 활약을 보여 줬다.(사실 10홈런이 될수 있었으나 8월 13일 홈런성 타구를 이병규가 잡아버려 아쉽게 9홈런) 뒤를 받쳐줄 강타자들이 많았다면 참 딱인데, 당시 팀 사정이 그렇지 못한 것이 아쉽다.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타자가 더 많았다면 훨씬 좋은 성적을 냈을 것이라는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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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5월 19일, 문학 SK전에서 안타-2루타-투런홈런-2루타-만루홈런-뜬공으로 6타수 5안타, 8타점 2득점을 기록했는데, 이날 기록한 8타점은 2015년 920 대첩 박석민이 9타점으로 경신하기 전까지 한국프로야구 한 경기 최다 타점 타이 기록이었다. 이때의 임팩트가 워낙 커서 대부분의 야구팬들은 유한준 하면 이 8타점짜리 활약을 기억한다. 5월 19일 하이라이트 2010시즌 호수비 영상 여담으로 유한준이 8타점 기록을 세우던 날 위의 짤방처럼 안개가 꼈기 때문에 '무한준'이라는 별명이 '無限준'과 '霧한준'[6]의 중의적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시즌 131경기 출장하여 타율/출루율/장타율 각각 0.291/0.355/0.403을 기록했고, 140안타(27 2루타, 9홈런)를 때리면서 79타점을 올렸다. 병살이 17개로 조금 많았으나 중심타선에서 고군분투 한 점을 감안하면 이전 시즌보다 자연스럽게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이 해 리그가 다소 타고투저 양상이라 꽤 준수한 클래식 기록을 냈음에도 wRC+는 102.6이었다. 그래도 sWAR 기준 1.92로 데뷔 후 처음 1을 넘겼다.

4.3. 2011 시즌

넥센 히어로즈의 주포로 기대를 모으고 있었다. 등번호를 2010년까지 쓰던 12번[7]에서 61번으로 바꿨는데, 이 숫자는 딸 유하진 양의 생일인 6월 1일에서 딴 것이라고 한다.

초반에는 2번 타자로 출장해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으나 팀의 4번타자였던 용병선수 코리 알드리지의 심각한 부진 때문에 타순이 조정되어 3번에서 뛰게 되었는데, 그 이후로 부진했다.

그러나 5월 1일에는 2루타를 연달아 때려내고 필사적인 주루로 결승 득점까지 올리는 맹활약을 선보이는 등 넥센의 주력타자의 면모를 유감 없이 보여주었다.

6월 24일. 무사 만루 상황에서 시즌 첫 홈런을 만루홈런으로 장식했다.

올스타전에서는 ‘타자 스피드 킹’ 이벤트에 나와 140km/h를 찍고 2등을 하였다. 1등은 147km/h을 찍은 최정. #

8월 30일에는 뜬금없이 경기 후 '유한준 개x끼'라는 소리가 울려퍼졌는데 KIA 팬이 마이크에 대고 소리친 거라는 말이 있다. 그 날 유한준이 타점도 올리는 등 활약을 한 데다가 마지막 아웃카운트가 우익수 플라이로 끝나자 KIA 팬이 소리를 쳤다고 한다. 덕분에 KIA의 팬 문화는 또 욕을 진득하게 먹었다.

시즌 121경기 출장하여 타율/출루율/장타율 각각 0.289/0.365/0.369를 기록했고, 129안타(23 2루타, 2 3루타, 3홈런)를 때리면서 54타점을 올렸다. 이 해 리그가 다소 투고타저여서 작년에 비해 wRC+도 소폭 상승했고, sWAR 기준 작년보다 더 높은 2.22를 기록했다.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4.4. 2012 시즌

팔꿈치 재활로 경기에 못 나오다가 5월 10일 오윤을 대신해 대수비로 출전하였다. 시즌 전 감독, 코치, 치어리더가 뽑은 저평가된 선수 1위에 올랐다. 전반적으로 5월에는 다소 부진한 편이다. 외야 수비에서는 위치 선정이나 포구는 여전히 KBO 최고 수준이지만, 부상 후유증 때문에 송구가 다소 약해졌었다. 그리고 공격은 감을 완전히 잡지 못했던 상황.

그래도 5월 29일 목동 야구장에서 열린 SK와의 경기에서 9회말 정우람을 상대로 극적인 동점 2루타를 치면서 팀이 연장 10회말 끝내기로 3:2 승리를 거두는데 발판을 놓았다. 이 날 성적은 4타수 2안타 1타점 1도루. 6월 6일에도 3:3으로 맞선 7회말 2사 1,2루에서 우규민 상대로 역전 적시타를 치면서 1타점을 기록, 팀의 5:3 승리의 발판을 놓았다.

이 해에는 부상 후유증으로 인해 제 기량을 거의 발휘하지 못했다. 5월에 보여준 수비력의 저하와 공격에서 감을 잡지 못한 모습이 시즌 내내 이어졌다.

4.5. 2013 시즌

연습경기와 시범경기에서는 괜찮은 활약을 보여 2012 시즌의 부진을 씻어낼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개막 이후 4월 초까지 보이는 모습을 보면 매우 실망스러운 모습. 크보 정상급 수비 능력은 어디 안 가지만 타석에서는 매우 침체된 상황으로 24타수 3안타 6삼진 2병살 타율 0.125[8]라는 열악한 성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4월 7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는 타석에서도 여전히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7회말 김태완의 플라이 타구를 놓치는 중대한 실수[9]를 저질러 김병현의 6이닝 노히트 노런이 깨졌다. 흔들린 김병현은 이후 폭투 - 안타 - 볼넷으로 순식간에 무사 만루가 형성되었고, 이후 3실점하는 등 팀을 위기에 빠트린 에러가 되었다. 다행히 불펜진의 호투로 팀은 이겼지만, 만약 졌으면 영구까임권을 획득할 뻔한 수비였다. 김병현도 승리투수 인터뷰에서 '한준이가 제일 잘했습니다.'라고 반어법으로 언급. 불암콩콩에서도 이 상황이 소재로 쓰였다.

그 이후에도 부진한 타율을 이어갔으나 계속 1군에 남아있었다. 4월 18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중견수로 출장하여 5타수 4안타 1 홈런 3타점 3득점이라는, 이전까지의 부진을 완전히 씻어내는 활약을 하여 당일의 MVP로 선정되어 인터뷰를 하였다.
7월 23일 목동 두산전에서 악송구를 던져 오재원을 조련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장면은 7월 12일, 그러니까 열흘 먼저 최훈 만화에 비슷한 상황이 나왔다!

그저그런 타격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출장하고 있어 염경엽 감독의 양아들이라는 의미로 '염한준'이라고 불린다. 8월 25일 KIA와의 홈 경기에서 홈런 타구 2개를 걷어내고 2루타성 타구를 재빨리 달려가 잡아내는 등 호수비를 잇달아 선보이며 수비는 여전한 클래스를 가지고 있지만, 타석에 서면 공을 몇 개 안 보고 타격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고 그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어 많은 비난을 듣고 있다. 결국 끝없는 부진 끝에 7월에 2군으로 강등되었으나, 얼마되지 않아 다시 복귀해서 강병식 버프를 받아 좋은 성적을 내다 8월 하반기에 들어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9월 8일 무릎 부상으로 2군으로 내려갔다.

9월 28일 박동원과 교체해 1군에 복귀했다.

9월 29일 목동 두산전에서 3타수 2안타 1홈런 1희생 플라이 4타점 1득점을 기록했다. 7타점의 박병호와 함께 팀의 모든 점수를 뽑아냈다.

두산 베어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는 17타수 2안타 1볼넷 1도루 1득점, 타율&장타율 .118, 출루율 .167를 기록했고, 팀은 2연승 뒤 3연패로 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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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도 호수비는 꼬박꼬박 적립했다.

4.6. 20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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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첫 한국시리즈에 출전하였다.

4.7. 20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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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KBO 리그 안타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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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준의 커리어하이 시즌
[인터뷰] ‘지각 전성기’ 30대 유한준이 20대의 유한준에게

4.8. 1차 FA

시즌 후 넥센과 결별하여 FA 시장에 나온 후 2015년 11월 29일 kt wiz와 4년 60억[10]의 계약을 맺었다. 공교롭게도 유한준이 첫 프로 생활을 시작한 현대 유니콘스의 임시 연고지가 kt wiz의 연고지인 수원시였다. 본래 현대가 인천에서 서울로 연고 이전을 추진하면서 제반 여건이 마련될 때까지 잠시만 수원에 머무르려고 했는데, 여러가지 사정으로 계획이 틀어지면서 2007 시즌을 끝으로 해체될 때까지 서울에 입성하지 못하고 쭉 수원에 머물렀다.[11]

이 FA 계약에 대해서는 말이 많은 편이다. 아무리 직전 2년에 잘했다지만 꾸준히 커리어를 이어온 송승준, 이범호, 이택근, 이동현에 비해 지나친 금액이라고 보는 편이 지배적. 게다가 나이도 저들이랑 비슷하다는 게 흠.[12] 넥센 입장에서는 50억이라는 큰 투자를 하려고 했음에도 10억이라는 차이로 팀의 베테랑을 잃게 되었고, 아직 신생구단 혜택을 받는 kt이기에 보상선수도 받지 못하는 데다 직전 연봉도 2억 8,000만 원으로 스타급 FA 후보 치고는 적은 편이었기에 히어로즈가 받는 보상금도 적다. 거기에 사전 접촉 의혹까지 있어서 넥센 팬들의 여론도 좋지 않은 상황. 유한준의 이적으로 결국 넥센은 2015 시즌 골든 글러브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13][14] 다만 일부 팬들의 의견 중에는 꾸준했던 것도 아닌, 제대로 보여준 것이 단 두 시즌 뿐이었던 선수를 60억이라는 큰 금액에 잡기엔 확실히 무리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는 팬들도 있다.

한편 "고향인 수원을 연고지로 하는 kt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kt wiz 구단 이미지나 홈 구장이 맘에 들었다"라는 말을 해서 넥센 팬들에게 아주 잠깐이나마 까이기도 했었다. 유한준의 고향은 문서 상단에 나와 있듯이 저 멀리 전라북도 고창군이고, 성장은 군포시 부천시에서 했다. 수원시 연고 관련성은 고등학교 3년 정도가 전부이기 때문.

다만 kt wiz가 넓게는 경기도 전역을 연고지로 두고 있으며, 운동선수들은 자신이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운동부가 속한 출신 고등학교 혹은 그 지역에 대해 고향이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많이 있으므로 무리가 없는 발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유한준은 부천에서 중학교를 다녔으나 당시 왜소한 체구 때문에 인근 고교에서는 받아주지 않았으나, 유신고 감독의 지원으로 유신고에 입학하여 수원으로 이사를 오게 된다. 즉, 그렇게까지 까일 이유도 없고, 선수 나름대로 소신있는 발언을 했으며 넥센을 향해 나쁜 말을 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앞에도 설명되어 있듯이 유한준의 프로 커리어 첫번째 소속팀은 수원에 세들어 있던 현대 유니콘스였으니 그것과도 연관하여 기인한 발언이라고 봐야 한다는 점도 있고.

그나마 상조회비를 안 받고 고척돔에 고급 장비를 달아달라고 했다는 점은 위안이 되는 듯. 덕분에 고척돔 트레이닝룸에 고급 스피커를 달게 되었단다.

5. kt w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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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2016 시즌

3월 16일 시범경기에서 우중간 안타성 타구를 백핸드 캐치로 잡아내는 호수비를 선보인 데 이어 삼성 김기태를 상대로 쓰리런 홈런을 때려냈다. 그전까지 5타수 1안타로 썩 좋은 모습은 아니라 우려가 있었는데 그런 걱정을 홈런으로 말끔히 씻어냈다.

하지만 5월 6일 경기서 1회초 정근우의 뜬공을 처리하던 도중 큰 통증을 호소했고 다음날 내전근 부분 파열 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약 6주 정도 결장할 예정. 대신 조무근이 올라왔다.

이후 6월 14일 경기를 기점으로 복귀했다. 오랫동안 쉬었으니 경기감각이 떨어졌으면 어떡하지? 라는 팬들의 우려와는 달리 보란듯이 홈런과 2루타를 날려버렸다! 그리고 이 홈런포는 결승포가 되었다. kt wiz에서 유한준이 얼마나 중요한 선수인지 다시금 깨닫게 해준 경기.

2016년 결국 부상 때문에 기대치가 낮은 성적이 나왔다.

돈값을 제대로 못했다는 소수 의견도 있다.
물론 부상으로 인해 풀타임 실패가 큰 원인이었으나, 팀에 몇 안되는 고참이자 최고의 외야 수비에, 클린업트리오에서 팀 타선의 구심점을 잡아주는 등 나쁘지 않았다.

내년이 더욱 기대가 되는 선수. 2014년 이후 매년 3할 이상의 고타율, 2015부턴 3할 3푼이 넘는 엄청난 타격감을 과시하고 있다.

최종 성적은 0.336-0.404-0.493으로 3-4-5에 육박하며, OPS도 0.9에 근접했다. 다만 WAR은 작년의 절반 가량으로 떨어져 3점대가 되었다. 부상이 아쉬웠던 시즌.

5.2. 2017 시즌

3월 31일 SK와의 원정 개막전에서 1회 1사 2루상황에서 안타를 때려내 2017년 KBO 리그의 첫 타점을 신고했다. 그 후 2회 5회 뜬공, 7회 병살로 썩 좋은 결과가 있진 않았다.

4월 1일과 4월 2일 경기 모두 4타수 1안타를 쳐 SK와의 3연전 모두 0.250의 타율을 기록했다.

4월 6일 두산과의 경기에서 번트를 선보였다.

5월 7일 한화전에 4번 타자로 출장해 1회 무사 1,2루에서 또 번트를 선보였다. 이후 좌익수 뜬공, 3루 땅볼, 삼진으로 물러났다가 장민재를 상대로 2루타를 만들어 KBO 리그 통산 80번째 1,000안타의 주인공이 되었다. 조니 모넬의 안타로 득점까지 성공해 팀은 10대 0으로 대승.

5월 21일 넥센전에서 2년만에 만루홈런을 때려냈다. 상대는 최원태.

6월 20일 4타수 4안타를 쳤으나 팀은 롯데에 대패했다.

21일 장외 솔로포를 쏘아올렸지만 역시 롯데에 대패하여 묻혔다.

24일 9회 무사 1,2루에서 깔끔한 인필드 플라이로 찬스를 말아먹었다.

29일 청주 한화전에서 유땅-삼진을 당하다 6회 송창식을 상대로 시즌 9호 홈런을 3점 홈런으로 장식했지만 8회 병살타를 치며 허무하게 공격 기회를 또 날렸다.

최종적으로는 0.306 13홈런 68타점 45볼넷으로 90억 이상을 받고도 제 값을 못한 선수들에 비해선 나은 모습이긴 했으나, 작년 못지않은 타고투저였음에도 OPS가 0.1 가까이 떨어졌고 유한준의 나이가 이미 만 36세인 걸 감안하면 다소 우려가 되는 스탯이었다.

5.3. 2018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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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5시즌 활약에 큰 도움을 받았던 이지풍 코치가 KT 코치로 부임하면서 다시 한번 그의 지도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5.4. 2019 시즌

처음으로 주장을 맡게 되었다.

시즌 초반엔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이던 유한준이지만, 이후 5월 타율 .370으로 3할대 타율 진입, 6월엔 .330의 타율과 늘어난 홈런(5개)으로 점차 살아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7월이 된 후에도 2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하는 등 좋은 타격감을 이어가는 중.

특히 5월 31일엔 본인의 통산 600득점 기록과 프로 데뷔 후의 첫 끝내기 홈런을 기록했다. 7월 3일엔 시즌 10호 홈런을 기록하면서 6시즌 연속 두자릿 수 홈런, 다음날인 7월 4일에는 개인 통산 2,000루타와 6년 연속 100안타까지 달성하였고, kt의 창단 최다 연승 동안 결승타를 4개나 기록하는 등, 주장으로서 훌륭하게 팀의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

최종 성적은 14홈런 86타점 0.317 0.383 0.443으로, 직전 시즌보다 타격 성적은 떨어졌지만 이는 공인구 변화 때문으로, wRC+로 보면 직전 시즌 못지 않은 좋은 활약을 펼친 것을 알 수 있다. 2014년부터 6년 연속 규정타석 3할을 기록하고 있는데, 2014시즌에서 2018시즌이 타신투병으로 분류되는 것을 감안하면 첫 투고타저에서 친 3할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게다가 득점권 타율 0.373으로 39살에 리그 득점권 타율 1위라는 기록도 세웠다.

5.5. 2차 FA

시즌 종료 후 계약금 8억, 인센티브 2억을 포함 2년 총액 20억에 kt wiz와 재계약하였다.

5.6. 2020 시즌

5월 16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내전근 파열 부상을 입어 부상자명단에 올라가고 말았다.

5번타자, 지명타자로(또는 우익수)로 꾸준히 출장하고 있지만, 2할 8푼대의 타율과 한자리수 홈런, 40개 중반의 타점을 기록 하는 등 작년에 비해 크게 부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kt 팬들사이에서 '지게'로 평가가 낮아졌다.

kt 입장에서도 5번 타자가 부진하니 공격의 흐름이 끊겨 답답한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유한준이 39살이라는 점도 어느정도 감안해야 한다. 아무리 자기관리가 철저해도 나이를 속일 수는 없나보다.

9월 6일 고척 키움전에서 6대6 동점 상황 8회초 2사 1,2루 상황에서 리그 최강의 마무리투수 조상우를 상대로 1타점 적시타를 때려냈다. 팀이 8대 7로 키움 히어로즈에게 승리하면서 이 적시타는 결승타가 되었다.

9월 말 들어 최악의 부진을 겪고 있다. 9월 4주차에서 중요한 상황 병살 두번으로 상대 팀에게 분위기를 내주기도 했다. 이젠 정말 노쇠화가 와서 정말 힘들어지는 듯. 때마침 만년 후보 문상철 김태균에게 타격폼을 전수받은 이후 맹활약하며 선발 자리마저 잠시 빼앗기고 말았다.

10월 3일 LG전 2차 경기 4회말 2사 3루 상황에서 김윤식을 상대로 왼쪽 담장을 넘기는 2점 홈런을 쳤다. 이로써 KBO 역대 30번째로 7년 연속 10홈런을 기록했다. 며칠간 와신상담한 것인지 예전같은 펀치력을 뽐내며 3타수 3안타의 맹타를 기록, 삼중살로 침체될 뻔한 팀 분위기를 역전시키는 등 팀의 승리에 크게 공헌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30타수 2안타를 기록하던 극심한 부진에서 벗어났다.

10월 21일 수원 삼성전에서 10회말 1사 만루 끝내기 찬스에서 끝내기 희생플라이로 경기에 마침표를 찍었다. 올 시즌 첫 끝내기.

10월 22일 잠실 두산전에서 kt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짓는 멀티히트 4타점 경기를 펼쳤다.

11월 12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두산과의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도 중전 적시타로 결승타점을 기록하며 kt가 플레이오프 첫 승을 거두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베테랑 한파가 유독 심했던 올 시즌, 팀이 필요한 것을 꾸준하게 해주는 선수. 내년에도 유한준과 kt와의 동행은 걱정이 없어 보인다.

5.7. 2021 시즌

1월 5일 김주찬이 현역 은퇴를 선언하면서 20세기 신인드래프트 지명을 받아 입단한 최후의 선수가 되었다.[15]

4월 7일 LG전에서 3회 말 1루로 뛰던 과정에서 1루수 로베르토 라모스와 충돌하여 쓰러졌고, 머리 통증을 호소하여 앰뷸런스를 통해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5월 중순 박경수와 함께 최악의 부진을 겪고 있다. 그러나 김병희, 신본기 등 백업들이 많은 내야와 달리 외야는 조일로 알몬테 덕에 포지션이 상당히 꼬인 지라 꾸준히 출장 기회는 얻는 중이다. 5월 30일 KIA전에서는 8회 1사 3루에서 대타로 올라와 결승타를 쳤다. 6월 첫 경기에서도 멀티히트를 기록하며 부활의 조짐이 보이는 중이다.

6월 9일 시즌 첫 홈런을 터트렸다. 작년부터 시작된 급격한 장타력 부재가 올해 더 심화된 상태인데, 유한준 본인도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며 코치진들과 여러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다. 밸런스를 포기하고 장타력을 유지할 것인 지, 장타력이 떨어진 현실을 받아들이고 장거리 타격을 완전히 포기할 것인 지, 혹은 다른 답이 있을 지 고민중이라고.

10월 1일 롯데와의 DH 1차전에서 박세웅을 상대로 동점 스리런포를 터뜨렸다. 하지만 팀은 한동희의 적시타로 패배.

10월 5일 NC전에서 안타를 기록하여 박경수와 함께 이용찬에게 블론세이브를 선물했고, 6일에는 9회말에 대타로 나와 또 한번 이용찬을 상대로 기어코 볼넷 출루하였다.

10월 24일 kt가 시즌내 지켜 온 1위를 삼성에 내 주고 홈으로 돌아와 열린 키움전에서, 유한준은 2루와 홈으로 두 번의 헤드퍼스트슬라이딩을 하는 투혼을 보여주었다. 이에 자극받은 선수단은 5연패 끝에 소중한 승리를 따낼 수 있었다.[16] 평소 후배들에게 최대한 부담을 주지 않으려 하는 유한준은 이 경기 이전에 모처럼 선수단을 소집해 우승은 하늘의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늘을 감동시켜 보자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스스로 경기에서 실천한 것이다.

10월 27일과 28일 반드시 잡아야만 했던 NC와의 3연전에서도 홈런 포함 6안타를 치며 DH 2차전 승리와 공동 1위 탈환을 이끌었다. 28일의 안타로 통산 1600안타, 같은 날의 홈런[17]으로 통산 150홈런을 기록하였으며 7회말 장성우의 적시타 때 1루에서 홈까지 전력질주와 하며 20대 못지 않은 주력을 보여줌과 동시에 선수단을 일깨웠다.

10월 30일 문학에서의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2:2 동점 상황에서 천금같은 역전 솔로 홈런을 때려냈고 그대로 결승타가 되었다. kt는 이 경기에서 지면 3위까지도 가능한 상황이었는데, 경기를 잡아내며 1위 결정전에 가게 되었다. 후배들에게 우승을 선물해 주고 싶었던 그의 정규시즌 막바지 활약은 정말이지 눈부셨다.

정규시즌 1위 결정전에서 안타를 기록하지 못해 별다른 활약은 없었지만[18], 팀이 승리하며 프로 입단 이후 처음으로 정규시즌 우승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번 시즌에는 컨택이나 선구안은 여전히 살아 있는 모습[19][20]을 보여줬지만, 나이를 속일 수 없었는지 장타력이 크게 떨어지는 모습이었다. kt 역시 지난 4년간 고생했다고 선심성으로 2년 추가 계약을 해준 셈이기에 유한준 역시 기량 저하를 어느 정도 의식하고 계약 기간 동안 숙이고 들어갔다. 나이에 비해 괜찮은 성적을 내 줬기에 이번 시즌의 부진은 팬들 사이에서도 별 말이 안 나오는 중. 하지만, 좋은 성적을 냈을 때도 잦은 잔부상으로 10~20경기씩은 결장하곤 했는데 이번 시즌은 노쇠화의 여파인지 부상으로 자리를 비운 시간이 많았으나 10월 29일 기준 102경기에 출장하며 100경기를 넘겼다. 게다가 시즌 중반까지만 해도 장타력이 떨어진 것처럼 보이던 것도 귀신같이 회복하며 기어코 4할의 장타율을 찍고 0.8이 넘는 OPS를 기록하였다. 결과적으로 만으로도 불혹이 된 나이에, 4살 더 젊었던 시즌과 엇비슷한 성적을 거두며 '그 나이에 이만하면'이 아니라 거의 대놓고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시즌을 마쳤다. 70% 이상 기준 0.304의 타율로 리그 12위, 0.813의 OPS로 리그 23위 125.9의 wRC+로 리그 22위라는 가공할 만한 성적을 거뒀다. 팀 내에서도 이보다 나은 성적을 거둔 타자는 강백호 정도 뿐이다.

시즌 최종 성적은 104경기 281타수 87안타 5홈런 42타점 30득점 1도루 .310/.411/.420 OPS .831 WAR 1.87 wRC+ 130.5.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해 누적 스탯은 그저 그렇지만 타격 생산성만큼은 여전히 최상의 기량을 보여주었다. 또한 WAR 1.87은 역대 만 40세 이상 WAR 6위이기도 하다.[21]

2021년 한국시리즈에서는 41살의 나이에 4번타자의 중책을 맡았다. 비록 시리즈 타율은 .125에 그쳤으나, 4차전에서는 3볼넷을 얻어 나가는 등 좋은 선구안을 보였으며 최고참 선수로서 동료 선수들을 다독이며 팀 우승에 기여하였다. 그리고 우승이 확정된 직후 덕아웃에서 박경수와 뜨겁게 포옹하였고, 이윽고 마운드에서 환호하던 선수들이 기다리자 다리가 불편한 박경수를 부축하며 마운드로 걸어가 같이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파일:kt wiz 창단 첫 통합우승.jpg
참고로 이 사진으로 2021년 골든포토상을 박경수와 공동으로 수상했다.

6. 은퇴

시즌 종료 후인 2021년 11월 24일, 공식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성적은 이 시즌에도 여전히 좋았던 편이지만, 이전에도 기사를 통해 선수 생활을 연장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밝혀왔고, 솔직히 운동선수로써 이 나이면 은퇴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나이인 데다[22] 현재 kt의 외야진도 배정대를 중심으로 김민혁 등의 20대 후반 ~ 30대 초반 선수들이 주축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염원하였던 우승반지도 마침내 얻게 되었으니 미련 없이 선수 생활을 끝내기로 결심한 모양. 이후에는 구단이 마련한 프로그램을 통해 프런트 경험을 쌓을 예정이라고 한다. 그가 은퇴함으로써 1981년 생 야구선수들은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2022 시즌이 진행 중이던 2022년 5월 14일, 친정팀 키움과의 홈경기에서 유한준의 은퇴식이 열렸다. 팬들이 은퇴식 기념으로 트럭을 보내 은퇴 반대 시위를 하는 이색적인 이벤트를 해 주었다. 왜 60살까지 선수 생활 안 하냐고 따지는 문구가 압권. 본인도 기분이 좋았는지 트럭 앞에서 인증샷까지 찍었다.

유한준이 kt wiz에서 출전한 기간 동안 기록한 성적은 다음과 같다.
kt wiz에서의 6년간 기록
<rowcolor=#ffffff> 경기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볼넷 삼진 병살타 도루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726 2449 772 114 2 77 320 407 275 298 70 9 .315 .386 .458 .844

7.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rowcolor=#fab93d>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장타율 출루율
2004 현대 1군 경기 없음
2005 18 26 .192 5 1 0 1 5 3 1 2 .346 .250
2006 110 246 .244 60 16 0 3 31 24 5 33 .346 .331
2007 112 197 .223 44 6 0 5 35 21 2 26 .330 .313
<rowcolor=#fff>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장타율 출루율
2008 우리-서울-넥센 군복무( 상무 피닉스 야구단)
2009
2010 131 481 .291 140 27 0 9 79 52 2 50 .403 .355
2011 121 447 .289 129 23 2 3 54 64 4 56 .369 .365
2012 74 246 .240 59 11 1 3 25 22 3 21 .329 .299
2013 97 298 .272 81 13 0 7 40 37 4 41 .386 .358
2014 122 405 .316 128 31 0 20 91 71 2 49 .541 .384
2015 139 520 .362
(2위)
188
(1위)
42
(1위)
1 23 116 103 3 69 .579
(5위)
.430
<rowcolor=#fff>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장타율 출루율
2016 kt 110 408 .336 137 22 0 14 64 70 4 49 .493 .404
2017 133 445 .306 136 19 0 13 68 52 0 47 .436 .370
2018 121 428 .339 145 21 1 20 83 59 1 49 .533 .406
2019 139 501 .317 159 19 1 14 86 61 3 56 .443 .383
2020 119 386 .280 108 17 0 11 64 48 0 40 .409 .347
2021 104 282 .309 87 16 0 5 42 30 1 44 .418 .409
KBO 통산
(18시즌)
1650 5316 .302 1606 284 6 151 883 717 35 594 .443 .374


[1] 게다가 이 시기에는 지명을 한 번 받으면 지명권이 소멸되지 않기 때문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뒤늦게 프로에 가는 경우도 많았다. [2] 체육특기자로 교생 실습을 나가면 교생 실습을 하면서 운동부 후배들 지도도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3] 유한준 본인하고도 친한 고등학교 2년 후배 최형우를 빠따로 군기잡던 박정권이고, 프로 가서는 친한 형동생이긴 하지만... 사실 알다시피 운동부의 군기는 매우 센 편이다. 유한준 정도면 정말로 매우 신사다. 실제로도 굉장히 온화한 선수이자 주장이고 인격도 매우 훌륭하다. [4] 2006년에 롯데戰 경기에만 유독 좋은 호수비 참 많이 보여줬었다. 특히 이대호의 장타성 타구 3연타 멋진 호수비들 연발 보여줬던.. [5] 정확히는 2008년 시즌 개막 한 달 후. 이때문에 유한준의 KBO 공식 프로필 경력사항에는 우리 히어로즈가 기록되어 있다. [6] 전자의 '無限'은 흔히 말하는 그 무한(infinity) 맞고, 후자의 '霧'는 '안개 무'자다. [7] 참고로 현대 시절에는 등번호가 39번. [8] 4월 5일까지 기준 [9] 에러로는 기록되지 않았다. [10] 계약금 36억원 [11] 당시 유니콘스는 정식 연고가 없어져 버린 상황이었기에 무려 6년 동안 1차 지명을 할 수 없었고, 이는 현대 선수단을 인계받은 히어로즈 초기 팜이 극도로 황폐해지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오랫동안 머물렀다 해도 어찌 됐든 임시 연고지였고 당시 현대 구단의 이미지도 바닥급이어서 수원 지역 팬들에게도 철저하게 외면받으며 유니콘스는 쓸쓸하게 몰락했고, 유한준도 이 역사를 함께하며 군에 입대했다. [12] 1981년생으로 손승락보다 나이가 많고, 두 번의 FA 계약을 이뤄낸 이택근보다 겨우 한 살 어리다. [13] 박병호가 에릭 테임즈에게 밀려 수상해 실패했고 타율 빼고는 김하성보다 앞설 게 없는 김재호가 우승빨로 유격수 골글을 차지하고, 유한준이 kt로 팀을 옮겨서 골든글러브를 받는 바람에... [14] 물론 탬퍼링 의혹을 제외하면 팀 선택은 선수의 고유 권한이다. [15] 프로 입단 및 데뷔는 2004년에 했으므로 20세기 최후의 프로 입단 선수는 아니다. 1999년 신인드래프트 지명 선수인 송승준은 롯데 입단 대신 보스턴과 계약했고 국내에는 2007년부터 복귀했다. 최후의 20세기 프로 입단 선수인 이성우의 경우 2000년에 LG 트윈스에 입단하였으나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한 신고선수였으며 실질적인 1군 데뷔 연도는 2008년이었다. [16] 신인 권동진은 홈아웃 상황에서 포수와 충돌해 쓰러졌음에도 기어가 홈플레이트를 터치했고, 코치의 칭찬에 선배님들도 다 그렇게 하시니까.. 라고 답했다. [17] 이 홈런은 유한준의 홈구장에서의 마지막 타석에서 나온 것으로, 잘 보면 유한준이 이 타석에 뭔가 감회가 새로운 표정으로 들어서는 것을 볼 수 있다. 관중들은 몰랐지만 본인은 이를 직감하였는지 홈에 들어온 뒤 곧바로 덕아웃에 들어가지 않고 홈관중석을 향해 인사를 하였다. [18] 강백호가 유일한 적시타를 때려낸 뒤 들어선 타석에서 갑작스레 넓어진 스트라이크존으로 인해 거의 오심성 삼진을 먹었다. 평소 매우 온유한 성품의 유한준이지만 이 때만큼은 매우 아쉬운 듯 타석에 한참 서 있었다. [19] 원래부터 삼진을 잘 당하지 않는 타자이다 보니 매년 BB/K가 리그 최상위권인 0.9 언저리에서 놀고 있었고, 이번 시즌은 그보다 더 발전하여 1.3 정도로 리그 정상급 선구안을 보여주고 있다. [20] 사실 선구안이라는 스킬 자체가 한번 장착하게 되면 어지간한 큰 부상을 당하거나 하지 않고서야 에이징 커브가 와도 유지하기가 쉬운 편이다. 선수 말년에 한화, 롯데, KT에서 뛰다 은퇴한 장성호만 봐도 BB/K는 은퇴할 때까지 1.0 언저리거나 그 이상을 유지했다. [21] 2021 시즌 종료 기준으로는 역대 4위였으나, 다음 해 추신수 이대호가 유한준을 넘어섰다. [22] 2021 시즌 기준 한국 나이로 41세이며, 1982년 생 이대호, 오승환, 추신수, 김강민보다도 한 살 형이다. 당장 김승회, 김주찬, 윤성환 등 같은 81년 생 선수들이나 본인보다 나이가 더 많은 박용택, 이택근, 권오준 등의 프로야구 선수들 상당수가 2020년을 끝으로 전원 은퇴했고, 같은 해 프로야구선수만 해도 금지약물 소지 논란 징계로 출전 자체를 하지 못한 1살 위 송승준과 본인과 동갑내기인 이성우 밖에 없었으며, 송승준과 이성우 모두 시즌 후 은퇴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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