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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4 15:49:09

요크의 엘리자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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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000> 잉글랜드 왕국 헨리 7세의 왕비
요크의 엘리자베스
Elizabeth of York
파일:Elizabeth_of_York_.jpg
이름 요크의 엘리자베스
(Elizabeth of York)
출생 1466년 2월 11일
잉글랜드 왕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궁전
사망 1503년 2월 11일 (향년 37세)
잉글랜드 왕국 런던 런던탑
장례식 1503년 2월 24일
잉글랜드 왕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
배우자 헨리 7세 (1486년 결혼)
자녀 아서, 마거릿, 헨리 8세, 엘리자베스, 메리, 에드워드, 에드먼드, 캐서린
아버지 에드워드 4세
어머니 엘리자베스 우드빌
형제 메리, 세실리, 에드워드 5세, 마거릿, 리처드, , 조지, 캐서린, 브리짓
종교 가톨릭
서명
파일:요크의 엘리자베스 서명.svg
1. 개요2. 생애3. 가족관계
3.1. 조상3.2. 자녀

[clearfix]

1. 개요

헨리 7세의 왕비이자 에드워드 4세의 딸이다. 헨리 7세와 사이에서 아서, 마거릿, 헨리 8세, 메리 네 명의 자녀를 두었다.

2. 생애

에드워드 4세 엘리자베스 우드빌 사이에서 장녀로 태어났다. 1475년 루이 11세의 아들 샤를과 결혼을 약속하였으나 돌연 취소되었다.

1483년 아버지 에드워드 4세가 갑자기 사망하여 남동생 에드워드 5세가 즉위하였다. 아직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삼촌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 왕자가 섭정을 하였으나 곧 조카의 왕위를 찬탈하였고, 에드워드 5세는 런던탑에 감금당하였다.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막내 아들 리처드와 딸들을 데리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피신하였다. 하지만 리처드 3세는 리처드 왕자마저도 런던탑에 감금시켜 버렸다.

두 달 뒤인 1483년 6월, 리처드 3세는 자신의 왕위 계승을 정당화하기 위해 에드워드 4세와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결혼을 무효화시켜 그들의 자녀를 모두 서자로 만들었다. 그 즈음 에드워드 5세와 리처드 왕자는 런던탑에서 사라졌고, 그들이 살해당하였다는 소문이 무성하였다.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왕위 계승을 주장하던 헨리 튜더의 어머니 마거릿 보퍼트와 동맹을 맺고 엘리자베스와 헨리의 결혼을 약속한다. 1485년 헨리와 리처드 3세는 보즈워스 전투에서 싸웠으며 리처드 3세가 전사함으로서 헨리는 헨리 7세로 즉위하게 된다.

당시 에드워드 4세의 모든 아들이 사망함에 따라 엘리자베스가 여왕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왕위 계승을 주장하지 않았다고 한다. 헨리 7세는 엘리자베스와 결혼함으로서 정통성을 강화하였고, 에드워드 4세와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모든 자녀를 적자로 인정하였다. 두 사람 사이에서 1486년 장남 아서가 태어나고, 후에 일곱 명의 자녀를 더 낳았지만 살아남은 아이는 마거릿, 헨리, 메리 뿐이었다.

1501년 장남 아서 페르난도 2세 이사벨 1세의 딸 아라곤의 카탈리나과 결혼하였으나 1502년 돌연 사망하였다.

1503년 엘리자베스는 딸 캐서린을 런던탑에서 출산하였다. 그러나 캐서린은 며칠 뒤에 사망하였고 엘리자베스 또한 산욕열로 37번째 생일에 사망하였다.

3. 가족관계

3.1. 조상

본인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요크의 엘리자베스
(Elizabeth of York)
<colbgcolor=#fff3e4,#331c00> 에드워드 4세
(Edward IV)
<colbgcolor=#ffffe4,#323300> 제3대 요크 공작 리처드 플랜태저넷
(Richard Plantagenet, 3rd Duke of York)
제3대 케임브리지 백작 코니스버러의 리처드[1]
(Richard of Conisburgh, 3rd Earl of Cambridge)
앤 드 모티머
(Anne de Mortimer)
세실리 네빌
(Cecily Neville)
제1대 웨스트모어랜드 백작 랄프 네빌
(Ralph Neville, 1st Earl of Westmorland)
조안 보퍼트[2]
(Joan Beaufort)
엘리자베스 우드빌
(Elizabeth Woodville)
제1대 리버스 백작 리처드 우드빌
(Richard Woodville, 1st Earl Rivers)
리처드 우드빌 경
(Sir Richard Wydeville)
조안 비들스게이트
(Joan Bidlesgate)
룩셈부르크의 자퀘타
(Jacquetta of Luxembourg)
생폴의 백작 피에르 1세
(Peter I, Count of Saint-Pol)
보의 마거릿
(Margaret of Baux)

3.2. 자녀

자녀 이름 출생 사망 배우자 / 자녀
1남 웨일스 공 아서
(Arthur, Prince of Wales)
1486년 9월 19일 1502년 4월 2일 아라곤의 카탈리나
1녀 스코틀랜드의 왕비 마거릿
(Margaret, Queen of Scots)
1489년 11월 28일 1541년 10월 18일 제임스 4세
슬하 4남[3]
제 6대 앵거스 백작 아치볼드 더글라스[4]
슬하 1녀[5]
제 1대 메스번 영주 헨리 스튜어트
2남 헨리 8세
(Henry VIII)
1491년 6월 28일 1547년 1월 28일 아라곤의 카탈리나
슬하 3남 3녀[6]
앤 불린
슬하 1녀[7]
제인 시모어
슬하 1남[8]
클레베의 앤
캐서린 하워드
캐서린 파
2녀 프랑스의 왕비 마리
(Mary, Queen of France)
1496년 3월 18일 1533년 6월 25일 루이 12세
제 1대 서퍽 공작 찰스 브랜던
슬하 2남 2녀[9]

유산되거나 사산된 자녀들은 제외하고 최소 유아기는 넘긴 자녀들만 나온 것이다.


[1] 에드워드 3세의 손자이자 페드로의 외손자다. [2] 에드워드 3세의 손녀다. [3] 제임스 5세를 제외하고 모두 요절했다. 제임스 5세가 낳은 적자녀들도 메리 스튜어트를 제외하고 요절하는 바람에 메리 스튜어트가 생후 6일만에 여왕으로 즉위하게 된다. 메리 스튜어트의 친조모가 잉글랜드 공주이기에 메리 1세가 서거하고 엘리자베스 1세가 즉위하자 구교 세력들은 메리 스튜어트가 더 정통성이 있는 후계자라고 반기를 들기도 했다. [4] 제임스 4세가 잉글랜드와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전사하는 바람에 마거릿은 청상과부가 됐는데 너무 일찍 재혼하는 바람에 스코틀랜드에서 실권을 잃고 잉글랜드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재혼한 남편과도 사이가 틀어졌고, 이에 마거릿은 동생 헨리 8세에게 이혼을 허가해 달라고 수차례 요청해 겨우 이혼할 수 있었다. [5] 이름은 마거릿 더글라스. 잉글랜드 궁정에서 태어났고 외숙부인 헨리 8세의 총애를 받으며 자랐다고 한다. 참고로 마거릿 더글라스의 아들인 단리경 헨리 스튜어트이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 스튜어트의 두번째 남편이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국왕이 된 제임스 6세의 생부이다. [6] 대부분 요절했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딸이 메리 1세. [7] 엘리자베스 1세 [8] 에드워드 6세 [9] 아들들은 요절했다. 찰스 브랜던은 메리와 사별한 뒤 아들의 약혼녀를 뺏어 재혼해 두 아들을 낳았으니 이 아들들 역시 요절해 대가 끊겼다. 참고로 메리가 낳은 장녀 프랜시스 브랜던의 장녀가 9일 여왕으로 유명한 제인 그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