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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24 21:45:16

왕고(남진)

진서(陳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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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0275d><colcolor=#fff> 남진의 대신
王固 | 왕고
시호 공자(恭子)
왕(王)
이름 고(固)
자견(子堅)
본적 낭야군(琅邪郡) 임기현(臨沂縣)
부모 부친 왕림(王琳)
모친 의흥공주(義興公主)
생몰 513년 ~ 575년
1. 개요2. 생애3. 기타

[clearfix]

1. 개요

남북조시대 , 남진의 대신으로 자는 자견(子堅).

2. 생애

좌광록대부(左光祿大夫) 왕통의 아우로, 어린 시절에 고결하고 정직했으며, 문사를 섭렵하였다.

왕고는 무제 소연의 생질[1] 자격으로 막구정후(莫口亭侯)에 봉해졌고 수재(秀才)로 천거되었다. 양나라에서 비서랑(秘書郞)으로 기용되고 태자세마(太子洗馬)로 옮겼으며, 동궁의 관기를 맡았다가 모친상을 당하여 벼슬에서 물러났다. 상을 마친 뒤 단양윤승(丹陽尹丞)에 제수되었다.

후경이 반란을 일으키자, 왕고는 형주(荊州)로 달아났고 이때 효원제가 왕고를 상국호조속(相國戶曹屬)에 임명하고 관기를 맡겼다. 이윽고 왕고는 서위에 사자로 파견되었는데, 서위에서는 왕고가 양나라의 외척이었기에 매우 후대하였다. 552년, 태자중서자(太子中庶子)로 옮겼다가 뒤이어 정위장군(貞威將軍), 안남부 장사, 심양태수(尋陽太守)가 되었다. 형주가 서위에 의해 함락될 때, 왕고는 파양(鄱陽)에 도착한 뒤 형 왕질(王質)을 따라 동령(東嶺)을 넘어 신안현(信安縣)에 정착했다.

555년, 시중(侍中)으로 임명되었지만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557년 남진이 건국된 뒤에는 오군(吳郡)으로 옮겨 살았다. 문제 진천은 왕고의 고결한 성품을 사서 왕고에게 혼인할 뜻을 밝혔다. 561년, 국자좨주(國子祭酒)로 임명되었다. 562년, 중서령(中書令)으로 옮겼다. 563년, 산기상시(散騎常侍), 국자좨주가 되었다. 이때 왕고의 딸이 황태자 진백종의 비가 되면서 왕고는 두터운 대우를 받았다.

566년, 태자 진백종이 즉위하니 이가 제3대 황제인 폐제였으며, 왕고는 이때 시중(侍中),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 제수되었다. 당시 진욱이 정사를 보좌했는데, 왕고는 자신이 황실의 외척이고 또한 유모가 항상 궁중을 왕래했기에 폐제의 밀지를 받았다. 하지만 이 사실이 진욱에게 탄로나면서 왕고는 처형될 위기에 처했으나, 진욱은 왕고가 본래 병권이 없고 또한 청렴결백하게 살았기 때문에 왕고에게는 면직과 금고 처분만 내렸다.

570년, 선혜장군(宣惠將軍) 예장왕(豫章王) 진숙영의 자의참군(諮議參軍), 초원장군(招遠將軍)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태중대부(太中大夫), 태상경(太常卿), 남서주대중정(南徐州大中正)으로 옮겼다. 575년에 사망하여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 추증되었고 공자(恭子)라는 시호를 받았다.

3. 기타

왕고는 마음이 깨끗했고 욕심이 적었으며, 상중에는 효성으로 칭송받았다. 또한 불교를 믿어서 모친상을 당했을 때 평생 소식을 했으며, 밤에는 좌선을 하고 낮에는 불경을 암송하였다. 더불어 『성실론(成實論)』을 배웠지만 심오한 이치를 깨닫지는 못했다.

서위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연회에 참석했을 때 양 한 마리를 죽이는 것을 멈추라고 청했는데, 양이 왕고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또한 곤명지(昆明池)의 연회에서 서위 사람들은 남조 사람들이 고기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물을 쳐서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왕고는 불법으로 기도를 올려서 결국 한 마리도 건지지 못했다.


[1] 왕고의 어머니가 무제 소연의 동복동생인 의흥공주(義興公主)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