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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4 00:12:56

와다 류지

파일:일본중앙경마회 흰색 로고.svg JRA 1000승 달성 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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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img_profile_ryuji_wada_01_sp.jpg
<colbgcolor=#268300> 이름 와다 류지([ruby(和田 竜二, ruby=わだ りゅうじ)], Ryuji Wada)
국적 일본파일:일본 국기.svg
출생 1977년 6월 23일([age(1977-06-23)]세), 시가현
신체 165cm, 50kg, O형
직업 경마 기수
데뷔 1996년 3월 2일

1. 개요2. 경력3. 주요 기승마 목록4. 여담

1. 개요

일본 경마 기수다. JRA 경마학교 12기생으로 후쿠나가 유이치와는 동기지간이다.[1]

2. 경력

1996년에 기수로 데뷔하여, 1998년 신마전을 시작으로 티엠 오페라 오의 주전 기수로 활동했다. 클래식 시즌에 사츠키상을 우승했으나 이후 우승을 추가하지 못한 채 클래식 시즌을 마감하며 기수 교체설까지 나오게 되지만, 이듬해 G2 3경기를 포함해 8전 8승, 고마왕도 완전제패를 달성하며 기수 교체설은 쏙 들어갔다.

티엠 오페라 오의 은퇴식에서 "오페라 오에게 많은 걸 받았지만 아무것도 갚지 못했다. 이제는 일류 기수가 되어 오페라 오에게 인정받고 싶다"라는 발언을 했지만 오페라 오 은퇴 이후 17년 동안, 원더 어큐트와의 Jpn1 제패까지는 이루어냈어도 G1 우승만은 추가하지 못했다. 그 후 2018년, 오페라 오 사후 한 달 뒤에 열린 타카라즈카 기념에서 미키 로켓을 타고 우승하며 염원하던 G1 우승을 달성했고, 인터뷰에서 오페라 오가 뒤에서 밀어줬다는 소감을 남겼다.[2]

현재에는 안정적인 베테랑 기수이며, 위의 사연대로 G1 우승과는 인연이 없지만 레이스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의욕이 적어 게으른 식으로 기성이 좋지 않거나 순발력이 떨어지는 말을 북돋아서 입착(상금을 받는 5위 이내의 성적)까지 끌어넣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3][4] 그래서 그런 말이라도 가능성이 있어보이면 일단 계속 경주에 보내봐야 하는 중소목장, 개인마주들에게 인기가 높다. 그 덕에 G1에도 자주 출전한다. 미유키 히데아키와 더불어 젊은 신인수준 이상의 기승수를 기록하는 하드워커 노장이다. 2022년에 891기승으로 1위이고 2023년 현재 282기승이다.

오페라 오 이후 와다 류지가 탄 말 중 대표적인 말로 쿨링거가 있다. 통산 54전으로 와다의 최다 기승마이며, 본인에게도 힘든 시기를 버티는 데 도움을 준 파트너라 애착이 크다고 한다. 위의 와다가 잘 모는 타입의 전형적인 말로 패덕을 돌다가도 깜빡 잠이 들 정도로 느긋한 성격의 말이었다고. 인터뷰 할 때에도 "쿠짱"이라 부르며 친근감을 드러낸다. 오페라 오에 대해 언급할 땐 "오페 상"으로 칭하며 존칭을 다는 것과 대조적. 스케줄에 차질이 생겨서 이동할 시간이 촉박해 기승하지 못할 상황이 되자 부인이 경비행기를 수배해주어 기승한 적도 있다. 은퇴 후에는 종마로 활동했으나 교배는 5년간 49회에 불과, 종마 은퇴 후 한 승마 클럽에 넘겨졌다가 2021년 승마도 은퇴해 승마장에서 나와 은퇴마 목장 호스 라스트 홋카이도라는 곳으로 옮겨가서 잘 살아 있다.

2022년 3월 26일 나카야마 제 10경주에서 승리하며 JRA 사상 24번째, 현역 기수로는 11번째의 통상 1400승을 달성했다.

맹하거나 순한 말을 잘 다루기 때문에 딥 본드의 주전 기수를 하고 있으며,[5] 딥 본드로 G2까지는 1착을 자주 해내지만 G1은 아쉽게도 2착을 3번 연속으로 하고 있다.

2023년 5월 12일 후쿠나가 유이치 기수가 은퇴하면서 공석이 된 일본기수 클럽 부회장 자리에 취임하였다.
2024년 4월 7일 한신 7R에서 출발직후 낙마로 인해 병원으로 실려갔다.

2.1. 티엠 오페라 오



오페라 오의 통산 26전을 모두 함께 한 기수. 그는 오페라 오의 은퇴 이후에는 2018년 타카라즈카 기념에서 우승하기 전까지 G1 승리가 없었던 걸로 유명했다. 사실 오페라 오의 현역 당시에는 중상 2승에 불과한 새파란 신예기수로, 오페라 오 외의 유력마에는 전혀 기승하지 못할 정도로 업계에서 실력을 쳐주는 기수가 아니었다.[6] 당장 오페라 오도 더비- 킷카상 연패 이후 마주가 교체를 요구한 적이 있으나,[7] 조교사의 설득으로 계속 기승할 수 있었다. 99년 아리마 기념에서의 패배도 기수 탓이 컸던지라, 잔뜩 뿔이 난 마주가 다음 해에 한 번이라도 지면 기수를 변경하겠다고 최후통첩을 했다고 한다. 게다가 마주가 이 계획에 대해 미리 언질을 넣어둔 교체 예정 기수는 그 유명한 타케 유타카였고, 그도 오페라 오를 눈여겨봤었기 때문에 응했다고 한다. 그런데 2000년 무패 전승을 해버리면서 마주의 계획은 백지화되었다.

덕분에 와다는 "말에 업혀간다"는 의미로 "오페라 오의 등짐"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으로 불렸으며, 그의 G1 우승 경력은 순전히 티엠 오페라 오가 잘 달려서 그런 거라며 비하의 대상이 되곤 했다. 신예기수였던 당시가 아닌 베테랑 기수가 된 현재 시점을 기준으로 비교해 봐도 역대 현창마 주전 기수들과 비교했을 때 기록 면에서 명백히 최하위권이며, G1 승수를 제외한 중상 우승 횟수나 승률 면에서도 하위권이다. 게다가 과거 기수는 기록이 누적되는 면에서 명백하게 불리하기 때문에, 실제 순위는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와다 기수가 그저 말을 잘 만난 실력 없는 기수라고 할 수는 없다. 오페라 오를 타기 2년 전 48위에 랭크된 것을 제외하면 JRA 기수 리딩 순위에서 30위권 밖으로 벗어난 적이 없으며 최근 2014년~2022년 사이 9년간 20위권 안에 안정적으로 진입했다. 와다 류지는 초일류 기수라고 언급되기에는 부족하지만 충분히 상위권 기수라고 볼 수 있으며, 평균 은퇴 시기가 30대인 기수 세계에서 40대까지 살아남아 있다는 것은 그만큼 실력을 인정받은 베테랑 기수라는 것을 반증한다. 2022년 기준 중앙 누적 승수 1435승은 JRA 기수 10위에 해당하는데, 그만큼 G2 이하 경기에서 착실하게 승수를 쌓아왔다는 것이다. 2022년 기준 중앙 중상 승리 수도 50승으로 상위권에 위치한다. G1 경기에서도 2~3착으로 입상권 성적은 내왔고, G1 경기에서 단 한 번이라도 승리해 본 기수는 2022년 기준 152명에 불과하다.

반대로 오페라 오 현역 당시 기수가 풋내기여서 오페라 오는 고평가를 받는다. "저런 초보 기수를 태우고도 그만한 활약을 했다"는 식이다. 다른 기수라면 오페라 오의 성적이 얼마나 나왔을지도 논쟁거리이며, 더 많은 승수를 챙겼으리라는 것은 거의 확실시된다.

당시 와다 류지가 말에게 제대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초보 기수였기 때문에 오히려 안정적으로 기승하여 한 해의 중장거리 G1을 싹 쓸어가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할 수 있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이런 주장을 펴는 측에서는 그랜드슬램 중 와다 기수가 큰 사고를 내지 않은 점에 주목하며 높이 평가한다. 무난하게 이길 수 있는 경기에서 기수가 과욕을 부려 패배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유명 기수가 탔다면 클래식 3관은 달성했어도 과도한 자신감으로 사고를 내 그랜드슬램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시선이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로는 일본 제일의 기수로 손꼽히는 타케 유타카가 있다. 1991년 천황상 (가을)에서 당대 최강마였던  메지로 맥퀸에 탄 타케 유타카는 포지셔닝을 강하게 굳히려다가 사행 강착을 당해 6 마신 차이의 압승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강착 판정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메지로 목장의 당주마저 항의해 봤자 의미가 없다고 말할 정도로 돌이킬 수 없는 판정이었다. 결국 사행 강착을 당한 말과 기수 둘 다 엄청난 슬럼프에 빠지게 되었다. 슬럼프에 빠진 타케 유타카는 이후 메지로 맥퀸을 소극적으로 몰게 되었고, 그 결과 재팬 컵과 아리마 기념을 내리 지며 1991년 가을을 부진한 성적으로 마무리하게 된다. 이후 타케 유타카는 강착 이후 슬럼프로 인한 부진한 성적의 아쉬움이 아직까지도 가슴속에 남아있다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티엠 오페라 오의 은퇴식에서 그는 "오페라 오에게 많은 걸 받았지만 아무것도 갚지 못했다.[8] 이제는 일류 기수가 되어 오페라 오에게 인정받고 싶다"라는 말을 남겼다.



결국 2001년 타카라즈카 기념에서 정확히 17년이 지난 2018년 6월 24일, 미키 로켓을 타고 타카라즈카 기념을 우승하며 오페라 오와 함께 한 천황상(봄) 이후 G1 121전째에 승리를 거두었다. 그렇게 염원하던 중앙 G1 우승을 차지해냈지만, 티엠 오페라 오는 약 한 달 전인 5월 17일에 죽었기 때문에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오페라 오가 뒤에서 밀어줬다"는 우승 소감을 남겼으며, 오페라 오에게 보고하러 가고 싶었다며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것에 감정이 복받쳤는지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이 승리 이후 아직 G1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있다. 2021년 천황상(봄)에도 딥 본드를 타고 출주했으나 결국 2착. 일본 더비에서는 원더풀 타운에게서 오페라 오의 느낌이 난다고 인터뷰했으나 착순은 커녕 꼴박했다. 아리마 기념에서 똑같이 딥 본드를 타고 2착.

와다가 자력으로 G1 우승을 일궈내기 전까지는 오페라 오를 찾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하여 은퇴식 이후 그대로 영영 생이별한 것으로 한일 양국에 잘못 알려져 있었으나, 이 부분은 와전된 내용이 있다. 실제로는 Jpn1 경기를 우승하고도 찾아갔고, 그 외에도 몇 차례 방문하기도 했었다. 위의 은퇴식 당시 발언이 와전된 것으로 추정된다. 생전의 오페라 오는 은퇴 후에도 와다와 꽤 친했는데, 자신을 찾아온 와다를 알아보고 현역 시절처럼 그에게 등을 내어주며 태워주려고도 했을 정도로 살가웠다. 정작 와다는 노쇠한 오페라 오의 건강이 염려되어 타지 않았다가, 실망한 오페라 오에게 깨물렸다고 한다. 다만 이렇게 깨물린 후 본인도 오기가 들어 중앙 G1 우승을 하고 당당하게 보고하러 오겠다고 다짐한 것은 사실이며, 생각보다 G1 우승을 못한 기간이 길어 차마 찾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가 스페셜 위크의 부고를 듣고 불길한 예감이 들더니 어느새 오페라 오도 떠나버렸다며[9] 진작 찾아가지 않아 후회한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

현재에도 오페라 오를 자신의 기수 인생에 남는 말로 여기는 듯하다. SNS 프로필 사진을 오페라 오의 사진으로 한다던가, 오페라 오의 자마 티엠 사츠마돈[10]를 타고 "오페라 오의 자식에게 승리를 줄 수 있어서 기쁘다"라는 소감을 남겼다.

오구리 캡의 라스트런에 꽂혀 기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오페라 오는 성적으로 오구리를 한참 넘어섰는데 인기가 좋지 않아 고민이 많았으며, 그래서 승리 인터뷰의 목소리 톤까지 의식하며 인기를 끌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나리타 탑 로드 기수와의 팬미팅에선 성적이 더 높은데 왜 응원소리는 탑 로드보다 높지 않냐며 팬들에게 직설적으로 따지기도 했다. 라스트런인 2001년 아리마 기념을 이기고 싶었으며, 역전승으로 드라마틱한 인기 상승을 노렸다고 한다. 경기 후 복기하면서 기승에 대해 자책을 많이 했다고 한다. 번역[11]

2.2. 기승 관련

파일:1661440330.jpg

와다 류지의 "투혼 주입"으로 가장 유명한 짤방. 격렬한 채찍질로 진이 빠진 와다와 와다를 눈빛으로 죽이려고 하는 의 살기가 포인트.
2016년 코쿠라 기념 영상

순하다 못해 맹해서 뛸 의욕을 잘 내지 못하는 말들을 잘 다독여 전광판 안에 넣어 상금을 타는 기술이 뛰어난 것으로도 유명한데, 이 '다독인다' 라는 단어는 너무 순화된 표현으로, 실상은 "투혼주입" 이라고 불리는 무지막지한 채찍질을 통해 이뤄낸 것이다. 2021년에도 채찍 관련 벌점 공동 2위(4회)를 기록할 정도로 말을 거칠게 몬다.

물론 애매한 성적에 맹한 성격의 말들이 성적을 잘 내지 못하면 미래는 뻔하기 때문에[12] 이런 식으로 몰아가는 것이지만, 거의 동물학대에 가까울 정도의 잦은 채찍질 때문에 선배 기수들 중에는 와다의 기승 스타일을 좋지 않게 보는 사람이 많았다. 특히 타케 유타카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예 "(말을)부모의 원수처럼 몬다(親の仇ぐらい追ってくる)"고 뼈있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해당 인터뷰에서 딥 본드에 기승하면 어떻겠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는 타케 유타카 기수도 "와다가 아니면 몰지 못할 말"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업계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로 취급하는 듯하다.[13]

이것 때문에 베테랑이 된 후에도 G1에서 강착 및 기승 정지를 당한 적이 있다. 2020년 타카마츠노미야 기념의 일로, 쿠리노 가우디에 기승해 코 차이 1착으로 들어왔으나 4착으로 강착당해 우승마는 모즈 슈퍼플레어가 되었다. 물론 와다의 실수만은 아니고 기승했던 말의 상습적인 사행벽을 잡기 위해서 채찍질을 하다가 난 사건이었으며 강착의 직접적인 원인은 채찍질이 아니라 사행으로 인한 진로 방해.

2021년 교토대상전 칸테레 중계에서는 키세키에게 채찍을 갈기기 시작한 와다의 모습을 보고 대놓고 와다 류지, 투혼 주입, 채찍이 날아든다(和田竜二 闘魂注入 鞭が飛ぶ)라고 언급했으며 이 실황은 경마팬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어 밈이 되었고 와다 류지의 기승 스타일을 표현하는 캐치프레이즈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일본 경마도 2024년 시점부터는 과도한 채찍 사용에 대한 징계에 기승 정지가 추가되는 등 징계가 강화될 예정이라 기승 스타일에 위기가 생겼다. 그래도 3월 3일 한신에서 열린 3승 클래스 경기인 에비스바시 스테이크스(戎橋ステークス)에서 레이벨링(レイベリング, 프랑켈 산구)을 타고 예의 투혼주입을 보여주며 우승하였다.

3. 주요 기승마 목록

굵은 글씨는 G1 또는 Jpn1 우승 경력이다.

4. 여담



[1] 호소에 준코를 포함한 JRA 최초의 여성 기수들이 이 12기에서 나왔고, 시바타 다이치(장애물 J•G1와 평지 G1을 모두 제패한 몇 없는 기수.), 후쿠나가 유이치 등 G1을 딴 유명 기수들도 많아 일본에서는 "꽃의 12기생"으로 부르기도 한다. [2] 이 타카라즈카 기념은 티엠 오페라 오 메이쇼 도토에게 패배했던 그 경기와 같은 마번을 받았고, 메이쇼 도토의 기록에서 딱 0.1초 빠른 타임으로 승리했다. [3] 베테랑 기수가 된 이후에도 G1 우승을 하지 못하였던 이유도 그 능력 덕에 G1을 우승할 법한 유력마보다 G1 우승과 인연이 먼 경주마의 기승 의뢰를 주로 받기 때문이다. 애초에 9세 고령의 경주마였던 원더 어큐트를 타고 카시와 기념을 우승하거나 미키 로켓 수준의 경주마를 타고 타카라즈카 기념을 우승한 시점에서 실력이 떨어지는 기수라고 보기 어렵다. [4] 그래서 이미지와는 달리 주행 스타일이 상당히 거친 편이다. [5] 개선문상 이후로는 카와다 유가로 주전 기수가 교체되었다. [6] 여담으로 라이벌 메이쇼 도토 나리타 탑 로드도 매우 평이 낮은 주전 기수들과 뛰었다. 탑 로드의 주전기수 와타나베 쿠니히코는 기수 커리어 중 G1 우승은 탑 로드가 유일할 정도였으며, 도토의 주전기수 야스다 야스히코는 도토 이전에 G1 우승 경력은 있었지만(1999년 슈카상) 나쁜 주벽에 폭행 사건을 일으키는 등 행실이 불량해서 기피 대상이었다. 그나마 조교사의 아들에 마주가 조교사에게 일절 간섭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 겨우 도토를 탈 정도. [7] 특히 킷카상에서는 와다 류지 자신이 악몽에 나온다고 말할 정도로 커다란 기승 미스를 저질렀다. [8] 특히 2000년 아리마 기념에서 본인은 마군에 갇혔을 때 패배를 예상하고 기승 도중 눈물까지 흘렸는데 오페라 오가 스스로 경로를 찾아내 우승을 쟁취했으니, 마음의 빚이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9] 오페라 오가 사망한 날짜는 스페셜 위크의 사망 후 고작 3주 뒤였다. [10] 2018년생. 외조부는 어드마이어 베가로 99년 클래식 동기의 혈통 조합이며 유독 잔디에서 별 적성을 못 보이고 더트, 장애물로 빠지기 일쑤였던 오페라 오의 자마 중에서도 데뷔전부터 잔디에서 가능성을 보이는 말로 기대를 받았지만 겨우 3전을 치루고 조교 중 심한 부상을 입어 장기 휴양, 2022년에야 복귀했는데 중앙이 아닌 사가 지방경마로 내려갔다. [11] 출처 : NumberPLUS 경마 논픽션 걸작선 명마당당. Legends on the Turf 1980-2021. (패왕의 은퇴) 티엠 오페라 오 2001 "세월이 흐르고 성이 보인다" [12] 위 사진에서 눈을 부라리는 크랑 몬타나도 저 코쿠라 기념이 유일한 중상 우승이었다. 이후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장애물까지 흘러가서 그 유명한 2017년 나카야마 대장해에도 얼굴을 비추다 은퇴, 지금은 샤다이 팜에서 훈련마로 활동하고 있다. [13] 오죽하면 2022년 천황상(봄)에서 최종 코너 진입 직전부터 딥 본드에 채찍질을 하자 해설자가 영혼을 담은 채찍이라 할 정도이다. 타케 기수도 상술한 인터뷰에서 딥 본드가 반응이 굉장히 안 좋은 말이라고 평했다. [14] 눈에 띄기 좋아하는 이 엔터테이너 기질이, 우마무스메 티엠 오페라 오의 캐릭터성에 크게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15] 일본 중앙 경마 기수는 수입도 많은 편이고, 지방 이동이 잦다보니 유난히 불륜이 많은 직업으로 꼽힌다. [16] 해당 조교사 밑에서 활약한 유명 말이라면 나이스 네이처가 있다. [17] 도쿄 대상전 등 더트 중상을 여럿 딴 경주마로 은퇴 후인 2001년부터 렉스 스터드에서 종마를 시작했으나 2005년 렉스 스토드에서 나와 쿠마모토현의 개인 목장에서 종마를 하다가 2008년 종마를 은퇴하고 용도불명이 된 이후로 소식이 두절되었다.참고로 쿠마모토현은 말 고기로 유명한 지역 중 하나이다. [18] 아그네스 디지털 산구로 지방 및 중앙 중상 우승마로 2014년 부상 은퇴 후 승마로 지내다가 2015년 호스 라스트 홋카이도라는 양로 목장으로 이동해서 지내고 있다. [19] 2020년 전까지는 이와사키 츠바사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20] 다이타쿠 헬리오스의 후계 종마로 활동했던 다이타쿠 야마토의 몇 안 되는 자마로 17전 1승으로 1승이 바로 와다 류지가 기승한 3세 미승리전.현재는 효고현 미키 호스랜드 파크라는 데에서 승마로 지내고 있다. [21] 학교에서 7과목을 수석해 표창을 받은 신인 트레이너이지만 11번이나 계약을 해지당했다는 점은 와다가 티엠 오페라 오로 G1 7승을 달성했으나 이후 11년만에 원더 어큐트로 우승하기 전까진 G1에서 우승하지 못했던 점을 오마주했으며 와다를 상징하는 '투혼 주입 채찍질'도 투혼 주입 안마로 순화해서 패러디한 부분이다. 또한 와다의 커리어에서 빼놓을 수 없는 티엠 오페라 오도 스토리 중간에 등장하는데 말년에 와다가 티엠 오페라 오를 찾아가자 자기 등에 태우려 할 정도로 살갑게 굴었는데 티엠 오페라 오의 나이와 건강을 생각한 와다가 거절했다가 삐진 티엠 오페라 오에게 깨물렸다는(...) 일화를 'G1에서 하나라도 우승을 못하면 정수리에 춉을 먹일 거다.'라고 농담을 하는 것으로 오마주했다. [22] 해당 조교사가 목장을 방문한 건 재팬 컵 2착 당시 받았던 트로피를 주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23] 그조차도 흔히 사납다고 알려진 말들처럼 대놓고 상처를 입히려고 물은 게 아니라 거의 잠깐 깨무는 수준이라 '그 와다를 공격하는 도토도 그나마 살살 문게 도토답다.'는 의견이 많다. [24] 현역시절 도토는 티엠 오페라 오라는 말을 들으면 짜증을 냈다는 일화가 있는데, 사람들은 오페라 오가 이길 때마다 마주나 마방 사람들이 한탄을 한 것 때문에 오페라오=나쁜 것으로 인식한 것이 이유가 아닌가 했었다. 하지만 정작 은퇴 후 오페라 오와 같은 목장에서 지내게 되었을 때는 서로 데면데면한, 딱히 나쁘지 않은 사이를 보여주며 의아함을 사기도 했다. 사실 말 입장에서야 자기 이름은 그래도 매일 듣다보니 자길 부르는 것이란 걸 인지할 수 있지만 다른 말의 이름은 같은 마방이나 목장에서 지내지 않는 한 알 수가 없다. 즉, 도토에게 있어서 자기 주변 인간들을 슬프게 하는 단어인 오페라 오란 소리가 들릴 때 마다 마주친 인간이자 자주 함께 뛰었던 갈색털의 친구(=즉 오페라 오)를 채찍으로 마구 때려대는 인간인 와다가 바로 오페라 오라고 인식하고 있는게 아니냐는 것. 처음엔 농담으로 받아들이던 사람들도 들어보곤 다들 그럴싸 한데 라는 반응이 나온다고... (후속 영상에서도 와다에게 도토치고는 매우 까칠한 반응을 매번 보여줘서 더더욱 심증이 굳어져가는 상태.) [25] 하지만 당근만 먹고 고개를 돌리거나 조금이라도 길게 만지면 싫어하는 반응을 보였다. [26] 실제로 와다는 한 인터뷰에서 도토에 대해 "항상 저 말만 꺾으면 이길 수 있어! 라 생각하고 탔을 정도"라고 밝히는 등 고평가를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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