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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27 20:53:04

코지마 후토시

파일:일본중앙경마회 흰색 로고.svg JRA 1000승 달성 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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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ojima_Futoshi.jpg
<colbgcolor=#268300><colcolor=white> 이름 코지마 후토시([ruby(小島太, ruby=こじま ふとし)], Futoshi Kojima)
국적
[[일본|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출생 1947년 4월 11일([age(1947-04-11)]세), 홋카이도 샤리군 코시미즈초
가족 차남 코지마 료타(小島良太)
삼남 코지마 카츠미(小島勝三)
사남 코지마 타이치(小島太一)
소속 일본중앙경마회
타카기 료조 (미호)
→ 타카기 요시오 (미호)
→ 프리 (미호)
데뷔 1966년 (기수) 1997년 (조교사)
은퇴 1996년 2월 28일 2018년 2월 28일
성적 및 상세정보 파일:netkeiba_logo.png 파일:netkeiba_logo.png

1. 개요2. 생애3. 기승 스타일4. 기타
4.1. GI/JpnI 우승마
5. 주요 조교마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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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전 경마 기수이자 전 조교사. 사쿠라 관명의 마주 전연식과 부자라 자칭할 정도로 친밀해 다수의 사쿠라 커머스 소속마들의 주전 기수로 뛰었다. 큰 무대에 강한 클러치 능력과 미칠듯한 기복으로 예측할 수 없는 기수로 유명했다.

2. 생애


1947년 마구와 장제사를 겸업하는 코지마 타케시로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가업 특성상 어릴적부터 말을 가까이하며 자랐고 당시에 개봉됐던 토키노 미노루 소재의 '환상의 말' 영화에 큰 감명을 받아 기수의 꿈을 꾸게 되었다.

어릴 적에는 기수가 되겠다는 의지가 과해 키가 늘지 않도록 벽장 서랍에서 다리를 붕대로 감은 채 잤다고 한다. 실제로 163cm 50kg은 학생으로 입학하기에는 꽤 큰 편. 중학교 졸업후 기수과정 14기생으로 입소해 다카기 료조 조교사 밑에서 실습과정을 지냈고 전연식과의 첫만남도 이곳에서 이뤄졌다.

1966년 기수 데뷔 후 10년간 다카기 마방 기수로 활동하며 2년차의 도쿄 장해 특별로 중상 첫승을 달성했고 72년 관동 리딩자키, 73년 하코다테 3세 스테이크스, 78년 사쿠라 쇼리의 더비 우승 등 기수로서의 마일스톤을 밟아나갔다. 그러던 중 76년에 이르러 스승 다카기가 은퇴하며 소속을 정리하다가 조교사 사카이 카츠타로의 딸과 결혼하는 것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마주 전연식, 조교사 사카이, 기수 코지마의 삼각편대를 결성하게 된다.

83년 다카기의 아들 마방에 걸어둔 명패를 완전히 떼고 프리 기수로 전향하며 동시에 전연식과 전속 계약을 맺게 되는데 이는 당시 기준으로 새로운 계약형식이었다. 이후 꾸준히 사쿠라 커머스 주전으로 뛰면서 승수를 추가했지만 87년 잠깐 동안 관계가 소원해지는 일로 사쿠라 군단의 클래식 최고 아웃풋 사쿠라 스타 오와는 인연을 맺지 못한다.[1]

93년 전연식의 사망 9일 후 사쿠라 바쿠신 오의 스프린터즈 스테이크 우승은 '아버지의 영전에 승리를 바친다'는 일념으로 심기일전하여 일군 결과물. 아후 전상열 마주에게 이어진 말들 중 94년 사쿠라 캔들의 승리로 1000승 클럽에 가입하고 바쿠신 오의 스프린터즈 스테이크스 연패에도 기승한다.

95년 가을에 이듬해 2월 전후로 기수를 은퇴할 것을 선언한 뒤 사쿠라 치토세 오의 천황상 가을과 사쿠라 캔들의 엘리자베스 여왕배 승리로 피날레를 장식한다. 커리어 마지막 기승은 나카야마 암말 스테이크스의 사쿠라 캔들 9착. 통산 1024승을 끝으로 터프를 떠나며 중상 84승의 절반은 사쿠라 군단 소속마의 안장에서 이뤄낸 것이었다.

조교사 커리어는 사카이 카츠타로의 소속마를 인계하는 것으로 시작해 즉시 사쿠라 로렐과의 프랑스 원정에 임했지만 당마가 전초전 직전에 부상을 입는 것으로 무산됐다. 이후 주로 카페 관명의 말들을 맡아보며 그중 이글 카페 맨하탄 카페로 G1 실적을 냈고, 이들의 은퇴 후에는 이렇다할 마일스톤 없이 정년 은퇴하게 되었다.

3. 기승 스타일


통산 1000승의 기록에도 불구하고 연도별 승리수를 보면 최다승은 58승, 30대 후반 이후로는 연평균 30승의 견실한 중견기수 정도의 기록이다. 그러나 큰 무대에서의 불가사의한 퍼포먼스로 승수 이상의 존재감을 발하며 관계자들로부터 '꽃이 있는 사람'[2]으로 평가됐다. 경마평론가 테라야마 슈지는 '파리의 지골로나 백작 부인의 날갯짓 같은 몸동작을 지녀 키도 크고 우아하다. 아름다운 말을 타고 화려한 레이스를 한다는 것이 코지마의 특색으로 자못 눈에 띄는 기수였다'고 평했다.

반면 유력마에 기승해 어이없이 패배하는 일도 빈번했다. 본인도 질 때는 잘 지는게 중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경마평론가 이치마루 박사는 "코지마는 열광적인 팬과 완전한 안티 딱 둘만 거느리고 있다"며 아마추어의 눈으로 알 법한 완패와 천재적인 승리가 양자를 더 미치게 만든다는 평가를 내린 바 있다.

이에 대해 사카이는 사쿠라 호쿠토 오가 최종직선에서 바깥으로 사행해서 5착한 국화상 패배나 코너링 대신 코스를 이탈한 사쿠라 에이코 오의 신마전 등을 꼽으며 '덕분에 몇억엔을 손해봤는지 모르겠다" "조교사석에서 몇번이고 쓰러질 뻔한 적이 있다' '팬에게는 화제성 덕분에 볼수록 즐거운 기수였을지 몰라도 말을 맡기는 입장에서는 여간 쌓인게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한편으로는 좋은 기승의 예로 사쿠라 치요노 오의 더비와 사쿠라 유타카 오의 추황상 승리를 꼽으며 그 둘은 말의 실력 이상을 끌어낸 승리로 언급하고 있다. 사카이는 기승 폼을 코지마의 큰 장점으로 꼽으며 저 나이에도 저런 폼으로 탈 수 있는 기수는 드물고, '타는 자세 하나는 일본 제일이다. 라는 칭찬을 남겼다

4. 기타


성격적으로는 품행방정과는 거리가 멀어서 사카이도 '멍청한 면은 어쩔 수 없다. 레이스에서도 사생활에서도 저렇게 멍때리는 녀석은 없었다'고 일침을 날리고 코지마 본인도 '원조 불량'이라고 자칭할 정도. '말을 타고도 승객의 냄새가 난다'니 '코지마씨 사람은 모두가 존경하고 따라하는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니 신나게 돌리는 말이 남아있으며 그 타바라 세이키도 자기 인생은 차치하고 '이런 삶의 방식은 하지 말자, 안된다고 생각하면서 어른스런 삶의 방식을 찾아갔다'는 멘트로 선배를 돌렸다. 이런 면모는 조교사 전직 후에는 싹 사라져서 본인 왈 '기수 시절에는 현실의 자신과는 전혀 다른 기수 코지마라는 픽션이 스스로 걷고 있었다'며, 정년의 나이에도 스스로 마구간을 청소하고 물이나 전기를 절약하며 사는 등 180도 다른 이미지로 살아갔다.

본인피셜 최고의 친구는 뜬금없는 사쿠라 로터리. 스타 오의 동기로 먼저 두각을 보이다 부상으로 재능을 다 못피고 은퇴한 마필이다. 코지마는 '무사했다면 틀림없는 삼관' '천황상이고 아리마고 전부 이겼을 것' 등으로 추켜세운 바 있다.

==# 주요 기승마 #==

4.1. GI/JpnI 우승마

5. 주요 조교마

6. 기타



[1] 사쿠라 스타 오를 타고 총 3경기를 뛰었으나 전연식과 트러블로 인해 야요이상 하루 전에 강판당한 이후론 아즈마 신지가 사쿠라 스타 오의 주전 기수를 맡았다. [2] 일본에서는 종종 예체능계에서 스타성 있는 선수 등에게 꽃을 가졌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