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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192b6c> 오라녀나사우 왕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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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럼 1세 | 빌럼 2세 | 빌럼 3세 | 빌헬미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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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아나 | 베아트릭스 | 빌럼​알렉산더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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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녀나사우 왕조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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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녀나사우 왕조
Huis van Oranje-Nassa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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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기 | 문장 | |
<colbgcolor=#feba49><colcolor=#21468b> 창립일 | 1515년 | |
창립자 | 헨드릭 3세 | |
現 당주 | 빌럼알렉산더르 | |
국가 |
오랑주 공국 룩셈부르크 대공국 네덜란드 왕국 |
|
웹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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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네덜란드의 왕조이다. 한때 룩셈부르크의 왕조이기도 했다. 빌럼알렉산더르가 네덜란드 국왕으로 재위 중이다.2. 역사
2.1. 네덜란드 성립 이전
1515년에 신성 로마 제국의 귀족 가문 나사우 가문의 일원인 헨드릭 3세(Hendrik III van Nassau)[1]가 오랑주(네덜란드어로는 오라녀) 공작 필리베르 드 샬롱(Philibert de Chalon)의 여동생인 클로드 드 샬롱(Claude de Châlon)[2]과 결혼을 하게 된 것이 그 시초이다. 헨드리크와 클로드는 아들 르네 드 샬롱오랑주(René de Châlon-Orange)[3]를 낳았는데 1530년 샬롱오랑주 가문으로서는 마지막 오랑주 공작이던 그의 외사촌이 후사없이 사망하자 오랑주 공국을 상속받으면서 나사우 가문이 오랑주까지 다스리게 되었다.브레다 백작이자 오랑주 공작 르네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5세의 합스부르크 네덜란드 영지였던 저지대 국가의 17개 주 중 홀란트, 제일란트, 위트레흐트, 헬러의 4개주 총독을 동시에 맡을 정도로 유능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1544년 카를 5세와 프랑스와의 전쟁 중 카를 5세 편에서 종군하던 중에 불행하게도 생디지에 공략 도중 전사하고 말았다. 불과 2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르네는 결혼은 했으나 자식이 없었고 유언으로 자신의 영지를 사촌에게 물려줄 것을 남겼다. 결국 르네의 작위와 영지는 사촌인 빌헬름 폰 나사우딜렌부르크(Wilhelm von Nassau-Dillenburg)가 상속받게 되었는데 이 사람이 바로 네덜란드의 국부 빌럼 1세이다.
빌헬름 폰 나사우딜렌부르크, 즉 빌럼 1세는 오랑주 공국을 물려받으면서 원래 가문인 나사우 가문에 물려받은 영지인 오랑주(오라녀)를 더해 오라녀나사우로 성씨를 정했다. 이후 빌럼 1세는 네덜란드 독립전쟁 때 네덜란드의 독립을 위해 싸웠다.
2.2. 네덜란드 성립 이후
네덜란드 공화국의 이름으로 독립한 17세기 이래 빌럼 1세의 후손이 대대손손 네덜란드 공화국의 국가원수(Stadthouder)를 맡았다. 합법적으로 자리를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었으므로 실권을 갖춘 국왕이나 다름없었다.[4]19세기 초반에 프랑스 제1공화국에 점령당하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황제로 등극한 이후에는 스타트허우더 빌럼 5세가 죽은 틈을 타 나폴레옹의 동생 루이 보나파르트가 홀란트 왕국의 국왕이 되기도 했으나,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빈 회의의 결과 네덜란드를 오라녀나사우 가문이 지배하는 왕국으로 독립시키는 것이 결정되었고, 이를 통해 오라녀나사우 가문은 네덜란드의 왕가가 된다. 이 때 오라녀나사우 가문은 대공국으로 승격된 룩셈부르크의 대공이 되기도 하여, 네덜란드 국왕이 룩셈부르크 대공을 겸하게 된다. 그러나 룩셈부르크는 살리카법을 채택하였으므로 빌럼 3세가 사망하고 빌헬미나 여왕이 즉위할 때 대공위가 나사우 가문의 직계인 나사우바일부르크 가문의 아돌프 대공에게 넘어갔다. 또, 15년정도 벨기에와 네덜란드와 연합왕국이 되어서 벨기에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한편 19세기의 빌럼 3세, 빌헬미나 여왕 시기를 거쳐 사회주의가 대두하면서 왕정 폐지 요구가 있기도 했지만, 네덜란드와 왕가는 보통선거제 도입과 새 헌법 제정 등 여러 사회개혁을 진행함으로써 지지 기반을 확보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나치 독일의 침공을 받아 왕가가 통째로 영국의 수도 런던에 망명한 바 있다. 비록 독일의 침공 앞에 무력하게 당했지만 왕가는 빌헬미나 여왕의 지도 하에 결사항전의 의지를 불태우고 각국을 돌아다니며 나치 독일을 규탄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1890년에 즉위한 빌헬미나 여왕 이래로 군주가 생존한 상태에서 자식에게 양위하는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빌헬미나 여왕은 68세가 되던 1948년에 딸 율리아나에게 양위해 1962년 82세를 일기로 사망했고 율리아나 여왕은 71세가 되던 1980년에 딸 베아트릭스에게 양위해 2004년 94세를 일기로 사망했고 베아트릭스 여왕은 75세가 되는 2013년 4월 30일에 아들 빌럼알렉산더르에게 양위하고 상왕에 해당하는 여공으로 물러앉았다.
3. 역대 수장[5]
3.1. 나사우지겐 백작
- 오토 1세 (1224 ~ 1289 or 1290)
- 하인리히 1세 (1270 ~ 1343)
- 오토 2세 (1305 ~ 1350 or 1351)
- 요한 1세 (1339 ~ 1416)
- 앙헬베르트 1세 (1370 ~ 1442)
- 요한 4세 (1410 ~ 1475)
- 요한 5세 (1455 ~ 1516)
- 빌럼 (1487 ~ 1559)
3.2. 네덜란드 공화국 스타트허우더
대수 | 이름 | 취임연도 | 퇴임연도 |
1대 | 빌럼 1세 | 1581년 | 1584년 |
2대 | 마우리츠 판 나사우 | 1585년 | 1625년 |
3대 | 프레데릭 헨드릭 | 1625년 | 1647년 |
4대 | 빌럼 2세 | 1647년 | 1650년 |
5대 | 빌럼 3세 | 1672년 | 1702년 |
6대 | 빌럼 4세[6] | 1747년 | 1751년 |
7대 | 빌럼 5세 | 1751년 | 1795년 |
3.3. 네덜란드 주권공
대수 | 왕호 | 재위시작 | 재위종료 | 재위기간 | 비고 |
1대 | 빌럼 1세 | 1813.12.06. | 1815.03.16. |
3.4. 네덜란드 국왕
대수 | 왕호 | 재위시작 | 재위종료 | 재위기간 | 비고 |
1대 | 빌럼 1세 | 1815.03.16. | 1840.10.07. | 25년 6개월 21일 | |
2대 | 빌럼 2세 | 1840.10.07. | 1849.03.17. | 8년 5개월 10일 | |
3대 | 빌럼 3세 | 1849.03.17. | 1890.11.23. | 31년 8개월 6일 | |
4대 | 빌헬미나 | 1890.11.23. | 1948.09.04. | 57년 9개월 11일 | |
5대 | 율리아나 | 1948.09.04. | 1980.04.30. | 31년 7개월 26일 | |
6대 | 베아트릭스 | 1980.04.30. | 2013.04.30. | 33년 | |
7대 | 빌럼알렉산더르 | 2013.04.30. | 재위중 |
4. 가계도
4.1. 나사우 백작 빌럼 ~ 빌럼 1세[7]
- 나사우 백작 빌럼 (1487-1559) - 妻 에그몬트의 왈버가(1489-1529) - 妻 슈톨베르크의 율리아나(1506-1580)
- 1남 빌럼 1세(1533-1584) 1대 네덜란드 스타트허우더 - 妻 에흐몬트의 안나(1533-1558) - 妻 부르봉의 샤를로트(1546-1582) - 妻 루이즈 드 콜리니(1555-1620)
- 1남 필립스 빌럼(1554-1618) - 妻 부르봉콘데의 엘레노오라(1587-1619)
- 저스티너스 판 나사우(1559-1631)[사생아] - 妻 메로드의 안나(1567-1634)
- 슬하 1남 2녀
- 3남 마우리츠 판 나사우(1567-1625) 2대 네덜란드 스타트허우더
- 6녀 루이제 율리아나(1576-1644) - 夫 프리드리히 4세(1574-1610) 팔츠의 선제후
- 2남 프리드리히 5세(1596-1632) 보헤미아 국왕 - 妻 엘리자베스 스튜어트(1587-1619)
- 2남 카를 1세 루트비히(1617-1680) 팔츠의 선제후 - 妻 데겐펠트의 마리 루이제 (1634-1677) - 妻 베르나우의 엘리자베트 홀란더(1659-1702)
- 1남 카를 2세(1651-1685) 팔츠의 선제후 - 妻 덴마크의 빌헬미네 (1650-1706)
- 5녀 팔츠의 조피(1630-1714) - 夫 에른스트 아우구스트(1629-1698) 하노버 선제후
- 1남 조지 1세(1660-1732) 영국 국왕
- 4남 프레데릭 헨드릭(1584-1647) 3대 네덜란드 스타트허우더 - 妻 졸름브라운펠의 아말리아(1602-1675)
- 2남 요한 6세(1536-1606) - 妻 뤼튼베르크의 엘리자베트(1537-1579) - 妻 시메른의 쿠니근데 자코바(1556-1586) - 妻 자린비르겐스타인의 요하네타(1561-1622)
- 6남 에른스트 카시미르 (1573-1623) - 妻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의 조피(1592-1642)
- 2남 빌럼 프레데릭 (1613-1664) - 妻 앨버틴 아그네스(1634-1696)[9]
- 1남 하인리히 카시미르 (1657-1696) - 妻 안할트다사우의 헨리에테 아말리아(1666-1726)
- 2남 요한 빌럼 프리소(1687-1711) 6대 네덜란드 스타트허우더 - 妻 헤센카셀의 마리 루이제(1688-1765)
- 1녀 아말리아(1710-1777) - 夫 바덴두를라흐의 프리드리히(1703-1732)
- 1남 카를 프리드리히(1728-1811) 1대 바덴 대공
- 1남 빌럼 4세(1711-1751) 7대 네덜란드 스타트허우더 - 妻 앤 (1709-1759)
- 1남 빌럼 5세(1748-1806) 8대 네덜란드 스타트허우더 - 妻 프로이센의 빌헬미나(1751-1820)
- 1남 빌럼 1세
4.2. 빌럼 1세 ~ 율리아나
- 빌럼 1세(1772-1843) 1대 네덜란드 국왕 - 妻 프로이센의 빌헬미네(1774-1837) - 妻 헨리에트 둘트레몬트(1792-1864)
- 1남 빌럼 2세(1792-1849) 2대 네덜란드 국왕 - 妻 안나 파블로브나 여대공(1795-1865)
- 1남 빌럼 3세(1817-1890) 3대 네덜란드 국왕 - 妻 뷔르템베르크의 조피(1818-1877) - 妻 발데크피르몬트의 에마 공녀(1858-1934)
- 1남 오라녀 공 빌럼(1840-1879)
- 2남 마우리츠(1843-1850)
- 3남 오라녀 공 알렉산더르(1851-1884)
- 1녀 빌헬미나 여왕(1880-1962) 4대 네덜란드 국왕 - 夫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하인리히(1876-1934)
- 1녀 율리아나 여왕
- 2남 알렉산더르(1818-1848)
- 3남 헨드릭(1820-1879) - 妻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의 아말리아(1830-1872) - 妻 프로이센의 마리(1855-1888)
- 4남 에른스트 카시미르(1822-1822)
- 1녀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의 대공비 소피(1824-1897) - 夫 카를 알렉산더 (1818-1901)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
- 2남 프레데리크(1797-1881) - 妻 프로이센의 루이제(1808-1870)
- 1녀 네덜란드의 루이세 공주(1828-1871) - 夫 칼 15세(1826-1872) 스웨덴 국왕
- 1녀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로비사 공주(1851-1926) - 夫 프레데리크 8세(1843-1912) 덴마크 국왕
4.3. 율리아나 여왕 이후
괄호 안의 숫자는 왕위 계승 서열, 기울임체는 이혼했다는 표시이다.- 율리아나 여왕(1909-2004) - 리페비스터펠트의 베른하르트 공자(1911-2004)[10]
- 베아트릭스 여왕(1938-) - 클라우스 폰 암스베르크(1926-2002)
- 빌럼알렉산더르(1967-) - 막시마 소레기에타 세루티(1971-)
- (1) 오라녀 여공 카타리나아말리아오라녀 여공(2003-)
- (2)알렉시아(2005-)
- (3)아리아너(2007-)
- 요한 프리소(1968-2013)[11] - 마벨 비서 스밋(1968-)
- 루아나(2005-)
- 자리아(2006-)
- (4) 콘스탄테인(1969-) - 페트라 라우렌틴 브링크호스르트(1966-)
- (5)엘로이스(2002-)
- (6)클라우스카시마르(2004-)
- (7)레오노르(2006-)
- 이레너파르마 공작부인(1939-)[12] - 카를로스 우고파르마 공작위 요구자(1930-2010)
- (8)마르가레트(1943-)[13] - 피터르 볼렌호벤(1939-)
- 크리스티나(1947-2019)[14] - 호르헤 윌리엄(1946-)
5. 기타
- 오랑주 공국은 빌럼 1세의 후손인 네덜란드 공화국의 국가원수들이 오랑주 공작의 자격으로 계속해서 통치했으나 1713년, 위트레흐트 조약의 결과 프랑스 왕국로 넘어가게 되었다.
- 네덜란드의 상징색이 주황색인 것은 오라녀나사우 가문 이름과 주황색을 가리키는 네덜란드어 '오라녀'(영어로는 오렌지)와 똑같았기 때문에 오라녀나사우 가문이 가문의 상징색으로 주황색을 쓰면서부터이다.
- 한때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왕위를 차지한 가문이었다. 빌럼 3세는 메리 2세의 남편 자격으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국왕 윌리엄 3세가 되어 잉글랜드-스코틀랜드-아일랜드-네덜란드 동군연합을 구성한 적이 있다. 둘 사이에 자식이 없어서 잉글랜드/스코틀랜드/아일랜드 왕위는 스튜어트 왕조의 앤으로 넘어갔고, 네덜란드는 국가원수를 옹립하지 않기로 결정하여 동군연합은 해체됐다.
[1]
네덜란드어. 프랑스어로는 Henri III de Nassau. 브레다 백작이었기 때문에 헨드릭 3세의 가문은 나사우브레다(Nassau-Breda) 가문이라고도 한다.
[2]
프랑스어. 네덜란드어로는 Claudia van Châlon.
[3]
프랑스어. 네덜란드어로는 René van Châlon. 원래라면 아버지의 성인 나사우브레다를 물려받는 것이 원칙이나 르네 본인은 어머니의 성인 샬롱오랑주를 더 자주 썼다.
[4]
그래도 명색이 공화국인데 이런 세습에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주로 계승이 이루어질 때 지지하는 주와 반대하는 공화파 주가 갈려 대치하다가, 오라녀 공이 회유와 협박, 공화파 지도자 제거와 같은 수단으로 국가원수직을 얻어내거나, 외교 형세가 불리해지면 통합적인 리더십을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인 오라녀 공을 울며 겨자먹기로 추대하는 식이었다. 그래서 아래의 역대 스타트허우더의 임기를 보면 중간중간 빈틈이 있다.
[5]
침묵공 빌럼 이전은 직계만 작성
[6]
빌럼 3세가 아들이 없어 빌럼 1세 침묵공의 동생인 나사우딜렌부르크 백작 요한 6세의 후손인 빌럼 4세가 스타트허우더 직을 받게 되었다.
[7]
당주였던 사람은 굵은 글씨로 작성. 여계 후손은 통치 가문의 직계만 기재
[사생아]
사생아로 태어났기 때문에 서열에서 제외됨.
[9]
빌럼 프레데릭과는 6촌
[10]
아내와 9개월 차이로 사망했다.
[11]
마벨의 학창 시절 조직폭력배 두목 클린스 브륀스마와의 관계에 문제가 있어 네덜란드 의회의 승인을 받지 못했다. 이로 인해 요한 프리소는 왕위 계승권을 포기했고 당연히도 그의 두 딸에게 왕위 계승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12]
배우자인 카를로스 우고가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에 왕위 계승권이 박탈되었다. 이 때문에 그녀의 후손들은 여기서 생략한다. 또한 그녀의 남성 후손들은
스페인 왕위를 주장하는
카를리스타의 후계자이기도 한다.
[13]
빌럼알렉산더르의 즉위 이후 그녀의 후손들은 왕족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에 생략한다.
[14]
남편이 로마 카톨릭 신자였기 때문에 왕위 계승권을 박탈당했다. 이 때문에 그녀의 후손들은 생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