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bc002d><colcolor=#fff>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암살 사건 Assassination of Abraham Lincol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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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격 당시를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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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 발생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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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1865년 4월 14일 오후 10시 15분[EST] | |
유형 | 살인 | |
위치 | 미국 워싱턴 D.C. 포드 극장 | |
가해자 |
존 윌크스 부스 매리 수랏 루이스 파월 데이비드 헤롤드 조지 아트제로트 외 4명[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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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행 동기 | 미연합국 붕괴에 대한 보복 | |
피해자 | <colbgcolor=#bc002d> 사망 | 에이브러햄 링컨 / 제16대 미국 대통령 |
부상 | 존 윌크스 부스 / 가해자 | |
윌리엄 H. 수어드 / 제24대 국무장관 | ||
프레더릭 W. 수어드 / 제6·11대 국무부 차관보[4] | ||
오거스터스 H. 수어드 / 미합중국 육군 중령[5] | ||
프랜시스 "패니" 수어드 / 일반인[6] | ||
조지 F. 로빈슨 / 국무장관 수행원 겸 미합중국 육군 소령[7] | ||
헨리 래스본 / 미합중국 육군 소령 | ||
조셉 버로우즈[8] | ||
애머릭 한셀[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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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865년 4월 15일에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D.C.의 포드 극장에서 남부 지지자인 존 윌크스 부스에게 암살당한 사건.[10] 미국 역사상 최초로 일어난 대통령 암살 사건이다.[11]사실 링컨만이 아니라 다수의 목표를 대상으로 일어난 대규모 암살 시도였는데, 위의 표의 부상자 목록을 보면 알 수 있다.
2. 상세
2.1. 사건의 배경
존 윌크스 부스는 남부 출신의 인기 배우였고 링컨에게 극렬한 분노를 가진 사람이었다. 당초 부스의 목표는 링컨을 납치해 남군 포로와 맞교환하는 것이었다. 1865년 3월 4일에 열린 링컨 대통령의 제2기 취임식에 부스는 애인 루스 헤일의 도움으로 참석할 수 있었다. 이후 부스는 "이날에 링컨을 죽일 수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링컨은 인기 배우인 부스를 뒤풀이 파티에 초청하기도 했지만 부스는 "링컨하고 같이 식사하느니 돼지랑 식사하는 게 낫다."면서 거절했다고 한다.이후 3월 17일 부스는 링컨 대통령이 캠벨 미합중국 육군 병원에서 연극 공연을 볼 예정이란 정보를 입수하고 워싱턴 털락에 있던 식당에 있다가 돌아오는 링컨을 납치하려고 했다. 그러나 링컨은 공연을 관람하지 않고 내셔널 호텔에서 육군 140인디애나 연대가 탈취한 남군 군기의 송정식에 참여하는 바람에 부스의 납치 시도는 실패했다. 얄궂게도 부스가 내셔널 호텔로 돌아왔을 때 링컨과 대면했다(...).
4월 10일, 남군 총사령관 로버트 E. 리 장군이 북군에 항복하면서 사실상 남북 전쟁은 끝났다. 링컨을 납치해 남군 포로를 구해내고 남군의 위기를 해소하겠다던 부스의 계획도 허사가 되고 말았다. 이런 가운데 링컨 대통령은 연설에서 흑인의 참정권을 보장할 생각이 있다는 발언을 했고 부스는 이를 듣고 링컨과 몇몇 사람들을 죽이겠다는 결심을 했다.
4월 14일 부스는 조지 아트제로트와 데이비드 헤롤드 등의 몇몇 공모자들과 모여 링컨이 포드 극장을 방문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그 날 링컨 대통령, 부통령 존슨, 국무장관 윌리엄 수어드,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 등을 죽이기로 결정했다.
결과적으로 링컨만 사망해서 링컨만을 표적으로 한 음모로 착각하기 쉽지만 대통령, 부통령, 국무장관이라는 행정부 최상위 3명을 모두 죽이고 그랜트 장군도 죽이려는 대담하고 큰 계획이었다. 만약 성공했으면 리 장군의 항복으로 종전 상태에 가까워졌던 남북전쟁은 행정수반들을 잃은 북군의 혼란 속에서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남군의 주요 군사력은 붕괴되어 반항은 얼마 못 갔겠지만 원래 역사보다 더 험난한 재건 과정을 맞이했을 것이다.
부통령 존슨에 대한 암살은 암살자 조지 아트제로트가 긴장과 두려움에 술을 마셨다가 고주망태 상태로 암살 도구를 잃어버려서(...) 실패했다. 이후 조지 아트제로트는 붙잡혀서 교수형당했다.
국무장관 윌리엄 H. 수어드는 9일 전인 4월 5일 마차에서 떨어져 부상을 입어 깁스를 한 상태였다. 암살자 루이스 파월[12]은 링컨 암살과 비슷한 시간대에 수어드의 자택에 의사인 척 웨이터를 속여 들어가 칼로 살해하려 했으나 계단에서 마주친 수어드의 둘째 아들 프레더릭에게 들켰다. 프레더릭은 자신을 의사로 소개하며 직접 약을 처방해야 한다는 파월의 말을 의심해 자신이 직접 약을 가져다 주겠다고 실랑이를 벌인다. 그런데 아버지와 함께 방에 있던 동생 패니가 문을 열고 아버지가 방에서 자고있다고 말해버린다(...)[13] 수어드의 위치를 확인한 파월은 계단을 내려가는 척 뒤돌았다가 총을 꺼내며 프레더릭을 저격하려 시도한다. 하지만 불발되어 총으로 프레더릭을 가격, 방으로 진입한다. 방에는 국무장관 수행원 로빈슨 중사와 수어드의 딸 패니가 있었다. 파월은 패니를 밀치고 침대에 올라타 수어드를 칼로 찔렀지만 그가 부상 때문에 착용했던 턱 보호대 덕분에 뺨에 상처만 입힌 채 실패했다. 직후 패니의 비명소리에 다른 방에 자고 있다 깨서 달려온 첫째 아들 오거스터스와 로빈슨마저 찌른 이후 계단을 내려와 전령 애머릭 한셀도 난자한 뒤 도망친다. 이 때 워싱턴 지리를 알려줄 공모자 헤롤드는 앞서 패니의 비명을 듣고 놀라서 도망쳐서 부스에게 합류한다. 이후 며칠의 행적은 불분명하지만 결국 공범들이 회합을 하던 매리 수랏 여관 앞에서 조사를 하던 경찰과 마주친다. 경찰은 자신을 일용직 노동자로 소개한 그를 의심해 체포한다.[14] 이후 교수형을 당한다. 이 피습 사건에서는 사망자 없이 5명의 부상자만이 나왔지만 안타까운 것은 수어드의 아내 프랜시스 여사가 남편과 아들들이 부상당한 것에 놀라 2달 뒤 급사했다는 것이다. 수어드는 살아남아 링컨 암살의 배후에 있다는 음모론에 불 붙여진 것은 덤.
2.2. 사건 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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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소니언 채널에서 재연한 링컨 암살 영상 |
근처 주점에 숨어 있던 부스는 몰래 링컨의 뒤쪽으로 숨어들어가 밤 10시 15분 총성이 들리지 않게끔 사람들이 웃는 장면에서 링컨의 뒤통수에 데린저를 쏴 저격했다.[19] 이때 좌석 출입구를 지키던 경찰관이 자리를 비운 이유가 뚜렷하지 않아서 후술할 슈어드 음모론에서 핵심적인 떡밥이 되었다. 링컨은 전쟁 중에는 연방 보안관이나 육군 기병대의 호위를 받았지만 이 날은 워싱턴 시에서 파견된 경찰관 한 명(...)만 따라붙었다. 오늘날처럼 시크릿 서비스 요원들의 체계화된 경호가 없던 시절의 비극이다.[20][21]
저격 직후 옆에서 래스본 소령이 그를 저지하려 하자 부스는 권총을 던져 버리고 칼로 왼팔을 여러 차례 찌르고 가슴을 찔러 중상을 입혔고 그 칼을 든 채 밑층으로 뛰어내렸다. 뛰어내릴 때의 충격으로 다리를 다친 상태에서 피 묻은 칼을 머리 위로 꺼내보이며 마치 연극인 양 무대로 올라가 라틴어로 다음과 같이 외쳤다고 전해진다.
Sic semper tyrannis!(폭군은 언제나 이렇게 될 것이다!)[22]
링컨 부인과 클라라 해리스[23]는 비명을 질렀고 래스본 소령의 "저 놈 잡아!" 라는 외침은 부스의 행동이 연극이 아니라는 것을 관객들에게 자각하게 했으며 곧 대혼란이 발생했다. 부스는 래스본 소령이 소리치는 순간 무대를 가로질러 누군가가 오기도 전에 바깥 옆 문에 대기시켜 놓은 말을 타고 도주했다.
도주한 후 그는 헤롤드의 도움으로 버지니아 주로 도망쳤고[24] 1865년 4월 14일부터 4월 24일까지 리처드 갸렛이라는 농부의 집에 머물렀다. 부스의 정체를 몰랐던 농부는 4월 24일부터 4월 26일까지 부스를 손님 대접해 주었으나 결국 수상한 기운을 감지하고 연방군에 신고했다. 결국 암살 11일 뒤인 4월 26일 한 헛간에서 콩거 육군 중령이 지휘하는 연방 육군 병력에게 포위되었다. 헤롤드는 항복했지만 부스는 항복을 거부하고 격렬하게 저항해, 결국 총격전이 벌어지게 되었고 보스턴 코벳 육군 병장이 쏜 총의 총알이 목을 관통해 4번과 5번 사이의 척수가 절단되었고 전신이 마비된 상태로 있다가 총격이 일어난 날 아침 죽었다. 헤롤드의 설득 끝에 부스도 총을 내려놓고 항복하려 했지만 부스에 대한 분노가 강했던 코벳이 독단적으로 농장의 뒷편에서 부스를 사격하고 은폐하였다는 일각의 주장 또한 존재한다.
그를 부검하는 장면은 사진으로 찍혔지만 이 사진은 현재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태다. 한편 링컨은 총격을 받은 다음날인 4월 15일 아침 7시 22분경 세상을 떠났다.
3. 사건 이후
링컨은 남북 화합을 강조했기 때문에 링컨이 살아 있을 때 남부는 북군 포로 13,000여 명을 아사시킨 수용소장 전범 헨리 워즈 육군 대위만 사형에 처해지고 나머지는 관대한 처분을 받았으나 이 사건으로 인해 북부에서는 "남부를 박살내야 한다!"는 급진파가 힘을 얻게 되었다.[25] 그 결과 남부는 1877년까지 무려 12년 동안 군정 치하에 놓였다.[26][27] 또 남부 출신 사람들은 연방 공직 임명에서 무조건 배제되는 불이익을 받았으며 북부인과 달리 충성 서약을 해야만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등의 유례없는 대탄압을 받았다.[28] 이로 인해 남부 또한 링컨 암살 사건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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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 가담자들의 공개 처형식. 사진 좌측부터
매리 엘리자베스 젠킨스 수랏(Mary Elizabeth Jenkins Surratt, 1820 ~ 1865)[29], 루이스 쏜턴 파월(Lewis Thornton Powell, 1844 ~ 1865), 데이비드 에드거 헤롤드(David Edgar Herold, 1842 ~ 1865), 조지 앤드류 아트제로트(George Andrew Atzerodt, 1835 ~ 1865) |
당시 부스가 사용한 데린저 권총은 회수되어 정부가 보관하고 있다가 포드 극장을 당시와 같이 복원하면서 전시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 1997년에 한 교도소의 재소자를 통해 전시된 권총이 오리지널이 아닌 복제품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FBI는 조사를 시작하였고 1960년대에 도난당했다는 이야기가 있어 여러가지 추적과 총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여러 조사와 비교를 해 본 결과 총은 진품이며 재소자의 말은 거짓말이라는 것이 밝혀졌다.[30]
링컨 대통령 암살을 목격했던 마지막 생존자는 새뮤얼 제임스 시모어(Samuel James Seymour,1860~1956)다. 당시 5세로 극장에 있던 그는 총성이 울린 후 어떤 남자가 발코니에서 뛰어내리는 것을 보았고 아직 링컨이 암살되었다는 것은 알지 못했기에 어떤 남자가 떨어진 사실에 대해서만 염려했다고 한다. 참고
이후 2번의 세계대전을 거쳐 TV 시대까지 살아남은 시모어는 1956년 2월에 96세의 나이로 게스트의 비밀을 패널들이 추리하는 <I've Got a Secret>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두 달 뒤 사망했다.
링컨 옆에 있다가 부상당한 래스본 소령은 대령까지 진급하고 독일 제국에 국방무관으로 파견되는 등 승승장구했으나 평생 링컨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급기야 1883년 12월 3일에는 아내[31]를 칼로 찔러 죽이고 두 아이들에게 부상을 입혔다. 이후 정신질환자 진단을 받고 정신병원 독방에 30년 가까이 갇혀 있다가 사망했다.
4. 기타
링컨이 꿈 속에서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사건이 발생하기 불과 며칠 전 링컨이 꿈 속에서 수많은 이들이 관 주위에서 슬퍼하는 모습을 보았고 꿈 속에서 링컨이 관을 지키던 한 군인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자 "대통령께서 암살당하셨습니다"라는 대답을 듣는 순간 깨어났다는 것이다. 이 일화는 링컨이 살해된 직후 한 측근의 증언을 통해 알려졌다.시인 월트 휘트먼은 링컨의 죽음을 추모하며 오 선장님, 나의 선장님!이란 시를 지었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고.
에이브러햄 링컨의 자식 중 장남인 로버트 링컨은 본래 아버지와 함께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전날 하루종일 말을 탔다는 이유로 불참했다. 이후 로버트 링컨은 아버지 외에도 2번이나 미국 대통령 저격 사건에 본의 아니게 얽혔다. 앤드루 가필드, 윌리엄 매킨리가 저격 사건으로 사망할 당시 모두 로버트 링컨이 바로 근처에 있었다. 그래서 이후엔 로버트 링컨은 대통령이 다니는 행사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고.
4.1. 음모론
1920년대에 국무장관 수어드[32]가 사실 암살의 배후라는 설과 창고에서 죽은 자는 부스가 아니라는 소문이 미국에서 돌았고 현대에도 많은 음모론자들이 믿고 있지만 사실상 신빙성은 없는 떡밥이다. 동기부여가 확실하고 범죄 과정에서 딱히 의문점이 없으며 관련자들도 대부분 처형되었기 때문. 게다가 수어드도 이때 암살 가담자 중 하나인 루이스 쏜턴 파월에게 암살당할 뻔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과는 다르게 별다른 배후에 대한 심증도 물증도 없다시피하다. 늙어 죽으면서 내가 사실 부스였다고 고백한 노인들이 미국에서는 40명이 넘는다고 한다. 한편 수어드 이외에 당시 육군장관이었던 에드윈 스탠턴을 배후로 지목하는 음모론도 있다.그 외에도 남부연합 배후설, 조지 샌더스 배후설 등이 아직도 거론되긴 하지만 모두 논파되었다. 참고
남부연합 대통령 제퍼슨 데이비스가 링컨 암살과 연계되었다는 설도 있었다. 심지어 앤드류 존슨 내각에서 제퍼슨을 이 혐의로 재판에 세우는 것까지 고려했지만 관련 증거가 전무한 상황에서 제퍼슨 같은 거물에게 혐의를 씌우는 건 무리수였기에 흐지부지되었다.
5.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 영화 음모자의 중심 사건이며 초반부에 묘사되어 있다.
- 남산의 부장들에서 박용각이 링컨 기념관의 링컨상을 보고 총을 맞아 죽었다며 언급하는데 이 영화에서 다룬 사건이 클라이맥스에서 묘사된 것을 보면 복선이라고 할 수 있다.
- 팀 포트리스 2 세계관에선 엔지니어의 할아버지 레디건 코내거가 부스('모자의 탑'이라고 불림)가 링컨을 암살할 것을 예감하고 특수 암살 방지 장치를 발명하여 링컨은 암살당하지 않았다. 정작 링컨은 각고의 노력 끝에 2층집을 오를 계단을 발명했지만 오르는 법이 익숙하지 않아 평소대로 극장 2층으로 로켓 점프를 하다가 죽은 것으로 나온다.
- 역대 미국 대통령 암살범(미수범 포함)들에 대해 다룬 스티븐 손드하임의 뮤지컬 어쌔신에서도 중요한 사건으로 등장한다. 형식상 누가 주인공이라고 딱 꼬집어 말하기는 어려운 작품이나 굳이 따지자면 부스를 주인공이라고 봐도 될 정도.
- 영화 내셔널 트레져: 비밀의 책에도 링컨 암살 계획이 주요 소재로 다루어진다.
- 미국 모험소설 사하라에서는 부스의 원래 계획인 링컨 납치 계획이 성공하여 납치된 링컨은 남군 해군 장갑함에 실려 남군 잔당이 있는 지역으로 이송되나 이를 단독으로 알게 된 국방장관 스탠턴이 '차라리 링컨이 죽은 것으로 하면 남군 잔당이 링컨을 내세워 요구를 할수 없게 된다.'고 판단해 대역을 내세워 암살 사건을 연출하여 링컨은 공식적으로 암살당한 것이 되고 이제 미국에서는 어디로도 갈 수 없게 된 남군 장갑함은 대서양을 가로질러 아프리카로 갔다가 사하라 사막의 강이 말라붙으면서 고립되어 링컨을 비롯한 전 승조원이 굶어죽게 된다... 현대에 와서 말리 공화국 독재자와 결탁한 악덕 폐기물 처리업자와 싸우던 주인공 일행이 말리 군에 쫒겨 달아나다가 장갑함을 발견하게 되고 모든 일이 해결된 후 사막에서 진짜 링컨의 유해를 모셔와 링컨 기념관에 안치하게 된다.
- 바이오쇼크 인피니트에서도 암살 장면을 그린 벽화가 등장한다. 작품의 세계관이 되는 컬럼비아의 경우 인종차별이 극심한 동네라 링컨을 악마처럼 묘사하고 그 뒤에서 권총을 들고 있는 부스를 천사처럼 그려 놓았다. 또 본작에 적으로 등장하는 기계 애국자 중에는 링컨을 모티브로 만든 것이 있는데 이 링컨 기계 애국자는 뒷통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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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예고편 |
[EST]
미국 동부 표준시각
[2]
마이클 오라플렌, 새뮤얼 아놀드는 이전 링컨 납치 음모에만 가담, 새뮤얼 머드는 납치 음모+부스 치료+당국에 불고지, 에드먼 "네드" 슈팽글러는 부스와 친분이 깊었고 사건 당시 무대 감독으로서 부스의 탈출을 도운 혐의(아래 있는 피해자 조셉 버로우즈에게 말을 준비하라고 지시함)로 유죄. 슈팽글러는 이후 개인적으로는 노예 제도 폐지에 반대하고 남부가 분리되는 것에 찬성했지만 대통령 암살 음모에 대해서는 하나도 몰랐다고 억울함을 호소한다. 결과적으로 공모자 8명들 중에서는 가장 적은 6년형을 받긴 했다. 나머지 7명중 4명은 교수형, 3명은 종신형. 물론 사망한 오라플렌을 제외하고 3명은 4년만에 존슨에게 사면되긴 했지만. 심지어 머드는 그 와중에 탈옥까지 시도해 감방 동기들과 지하 감옥에 3개월간 갇히는 신세까지 추락했는데도 불구하고 감옥에서 오라플렌을 죽게한 황열병 유행 대처에 도움+존슨과 인맥이 있던 변호사 덕택에 3명 중에 가장 먼저 사면된다.
[3]
이 외에도
매리 수랏의 아들 존 수랏은
남북전쟁 당시 스파이 활동을 하고 새뮤얼 머드에게 부스를 소개받아 링컨 납치 음모에만 가담해 남부와 포로 교환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작전을 세운다. 링컨이 마음을 바꿔 납치가 실패하고 이후 암살 사건 당시에는 뉴욕주에 있었고, 사건을 알자마자 캐나다로 도망친 다음에
로마 교황령까지 가서 근무까지 하는 신분세탁을 시도한다(...) 결국 오랜 친구가 알아봐서 미국으로 송환되었지만 배심원 4:8로 무죄평결을 받아 여생을 담배농사로 보낸다.
[4]
윌리엄 H. 수어드 국무장관의 둘째 아들
[5]
윌리엄 H. 수어드 국무장관의 첫째 아들
[6]
윌리엄 H. 수어드 국무장관의 첫째 딸
[7]
사건 당시에는 중사. 사건 이후 전역하였다가 복귀해 20년 더 복무하였다.
[8]
부스가 탈출하기 위해 말을 빼앗았을 때 부상당했다.
[9]
국무부 전령
[10]
14일 저녁에 총에 맞았고 15일 오전에 숨을 거두었다.
[11]
암살 미수까지 포함하면
앤드루 잭슨이 먼저다. 이때는 암살범이 쓴 총이 불발이라 살아남았는데 분노한 잭슨 대통령이 지팡이로 암살범을 마구 패려고 해서(...) 주변에서 말리지 않았다면 도리어 암살범이 맞아 죽을 뻔했다.
[12]
암살자들 중 유일한 딥 사우스(
앨라배마) 출신이었다.
[13]
물론 그녀는 다친 아버지를 위해 의사가 왔다는 것으로 알았을 것이다.
[14]
곡괭이를 쓰는 일용직 노동자로 보이기에는 손이 고왔고 의복도 상류층의 것이었다.
[15]
1832년 2월에 건립된 워싱턴 DC의 10번가 511번지, NW에 위치한 극장이다. 원래는
침례교회 건물이었다.
[16]
영국에서 만들어진 연극으로, 내용은 재산을 상속받기 위해 영국으로 간 미국인이 영국 귀족인 자신의 친척들을 만나며 일어난 내용을 그렸다.
[17]
메리 토드 링컨은 그랜트 부인 외에도 많은 관리들의 아내들에게 갑질을 한적이 있어서 평판이 그리 좋지 않았다.
[18]
문서 맨 위 그림 속에서, 장교 정복을 입은 채 부스를 향해 팔을 뻗는 사람이다.
[19]
부스는 배우였기 때문에 연극 내용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으며, 어느 부분에서 관객들이 웃는지도 알았기에 타이밍을 잘 잡을수 있었다.
[20]
이 사건 이후에도 대통령에 대한 체계화된 경호는 한동안 없었고 그 결과
제임스 A. 가필드와
윌리엄 매킨리도 암살당했다. 매킨리 암살 사건 이후 전문적인 경호가 필요함을 느낀 미 정부가
시크릿 서비스에 대통령 경호를 맡기게 되었다.
[21]
참 기묘하게도 링컨이 암살되기 바로 전날 한 일 중 하나가 시크릿 서비스 창설 기획안 승인이었다. 물론 시크릿 서비스는 당시 재무부 산하 단속국이었고 위조지폐단속 등이 주업무였다. 대통령 경호를 맡게 된건 전 각주에 나와 있듯 그로부터 한참 뒤였다.
[22]
이것도 목격자마다 다르다. 라틴어로 외친 이유는 그가 연극배우였기 때문에 셰익스피어 극 중
줄리어스 시저의 한 장면을 재연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이 말은 그가 도주한
버지니아 주의 표어다.
[23]
래스본 소령의 약혼자다.
[24]
이 와중에 부스를 치료해 준 의사, 새뮤얼 머드는 후일 불고지죄 혐의로 연방군에 체포되었다.
[25]
실제로 이때 부스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테러를 당했다고 전해진다.
[26]
독립 이후 미국 본토의 특정 지역이 군부의 지배를 받은 것은 이 시기가 유일하다.
[27]
그나마 군정이 끝난 이유도 1876년 대선이 좀 찝찝하게 끝나고 남부에서 반발하자 당선인인 헤이스가 남부를 달래준다고 군정을 종료시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남부 입장에서는 군정이 비극이었지만 그곳에 살던 흑인들에게는 필요한 군정이었다. 노예해방선언 이후와 남북전쟁에서 북부가 이겼다고 해서 흑인에 대한 인식은 달라질 리 없었고 외려
쿠 클럭스 클랜 같은 작자들만 판치는 상황에 군정은 어느 정도 필요악이었다. 실제로 군정 시기에도 흑인에 대한 대우가 크게 나아지지 못했고 1876년 대선 역시 남부의 백인들이 흑인들의 투표를 방해하기 일쑤였다. 결국 그 군정마저 끝나자 흑인들의 권리는 군정 시기보다도 더 추락하여 100년 뒤
미국 흑인 민권 운동의 시대가 올때까지 짓밟혔다.
[28]
이러한 조치들은 모두 12년 뒤 군정이 종료될 때 같이 사라진다.
[29]
회합 장소 제공과 여러 도움을 준 여관집 여주인으로, 부스와 공모해 링컨을 납치하려 한 혐의로 체포되었다가 재판에서 무죄를 받고 석방되었던 존 수랏의 모친이다. 로버트 래드포드 감독의 영화
음모자가 그녀에 대한 재판을 다루었다. 미국 형사에서 최초로 직접 가담자가 아닌데도 사형 선고를 받고 집행된 사례이다. 사형 선고 이후 판사 9명 중 5명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존슨에게 석방을 요청했을 정도. 정작 존슨은 그러한 요청을 들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30]
거짓말을 한 이유는 추측건대 복제품을 만들어 진품처럼 속여 팔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31]
위 그림 속 왼쪽 두 번째의 여인으로, 사건 당시에는 약혼녀였다.
[32]
알래스카 조약을 체결할 때
국무장관이었던 그 수어드다.
[33]
마침 이 후손이 드라마 설정상으로는 전직 저격수다(...)왜 하필 저격수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