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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5 21:42:52

에디 밴 헤일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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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width=100%>
Van Halen
1978.02.10
Van Halen II
1979.03.23
Women and Children First
1980.03.26
Fair Warning
1981.04.29
Diver Down
1982.04.14
1984
1984.01.09
5150
1986.03.24
OU812
1988.05.24
For Unlawful Carnal Knowledge
1991.06.17
Balance
1995.01.24
Van Halen III
1998.03.17
A Different Kind of Truth
2012.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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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 밴 헤일런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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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링 스톤이 2023년 250대 기타리스트를 선정한 순위다. 실제 현역 기타리스트들과 평론가들이 뽑은 순위다.
<rowcolor=#fff> 1위 2위 3위 4위 5위
지미 헨드릭스 척 베리 지미 페이지 에디 밴 헤일런 제프 벡
<rowcolor=#fff> 6위 7위 8위 9위 10위
시스터 로제타 사프 나일 로저스 비비 킹 조니 미첼 듀언 올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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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산타나 지미 노렌 토니 아이오미 프린스 키스 리처즈
<rowcolor=#fff>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로버트 존슨 메이벨 카터 톰 모렐로 프레디 킹 스티비 레이 본
<rowcolor=#fff>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랜디 로즈 앨버트 킹 커크 해밋 & 제임스 헷필드 제임스 버튼 존 프루시안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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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빈센트 버디 가이 데이비드 길모어 에디 헤이즐 닐 영
<rowcolor=#fff> 31위 32위 33위 34위 35위
조지 해리슨 잭 화이트 브라이언 메이 제리 가르시아 에릭 클랩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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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코튼 피트 타운젠드 앵거스 영 & 말콤 영 쳇 앳킨스 존 페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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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디들리 버논 레이드 조니 그린우드 & 에드 오브라이언 조니 라몬 스티브 크루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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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자파 디 에지 커티스 메이필드 PJ 하비 엘모어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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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베를렌 존 리 후커 트레이 아나스타시오 보니 래잇 믹 테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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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 마 서스턴 무어 & 리 라날도 알렉스 라이프슨 로버트 프립 스코티 무어
<rowcolor=#fff> 61위 62위 63위 64위 65위
존 메이어 피터 그린 리처드 톰슨 스티브 크루퍼 캐리 브라운스타인
66위부터는 링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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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롤링 스톤 로고.svg 선정 100대 기타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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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링 스톤이 2015년 100대 기타리스트를 선정한 순위다. 실제 현역 기타리스트들과 평론가들이 뽑은 순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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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회사 깁슨에서 2010년 발표한 "50 Greatest Guitarists of All Time"의 순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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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헨드릭스 지미 페이지 키스 리처즈 에릭 클랩튼 척 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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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벡 에디 밴 헤일런 쳇 앳킨스 로버트 존슨 피트 타운젠드
11위부터는 링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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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 밴 헤일런
Eddie Van Halen
파일:에디 밴 헤일런옹.jpg
<colcolor=#00B3FA><colbgcolor=#000> 본명 에드바르트 로더베이크 판할런
Edward Lodewijk van Halen
출생 1955년 1월 26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성장지 미국 캘리포니아 패서디나
사망 2020년 10월 6일 (향년 65세)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 모니카
국적
[[네덜란드|]][[틀:국기|]][[틀:국기|]] |
[[미국|]][[틀:국기|]][[틀:국기|]]
직업 음악가
소속 파일:Van Halen.png 밴 헤일런 (1974 -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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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00B3FA> 부모님 얀 판할런
오이제니아 판할런[1]
배우자 밸러리 버티넬리 (1981 - 2007, 이혼)
제니 리스제스키 (2009 - 2020, 사별)
형제 알렉산더르 판할런
자녀 슬하 1남
볼프강 판할런
신체 173cm, 70kg
장르 하드 록, 헤비 메탈, 글램 메탈
활동 기간 1964년 - 2020년
사용 악기 기타, 키보드, 드럼
레이블 워너브라더스, 인터스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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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생애
3.1. 유년기3.2. 밴 헤일런3.3. 사망
4. 연주 스타일5. 사용 장비
5.1. 일렉트릭 기타
5.1.1. Frankenstrat5.1.2. Music Man EVH5.1.3. Peavey Wolfgang5.1.4. EVH Wolfgang
5.2. 앰프5.3. 이펙터
6. 여담

[clearfix]

1. 개요

파일:판할런.jpg
진정한 신사이자 진정한 천재
기저 버틀러
미국, 네덜란드의 음악가.

2. 상세

"신참 밴드나 후배 뮤지션들이 한결같이 성공하려면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한테 물어 보는 게 참 재미있다. 우선 그 '성공'의 의미부터 내게 설명해주길 바란다. 단순히 록스타가 되는 것이 목표인가, 아니면 음악 자체를 사랑해 평생 직업으로 하는 게 목표인가?"
태핑 기법을 록 기타 연주계에서 대중화 시킨 사람[2]으로 알려져 있다. 더불어 다양한 음향학적 실험을 전개한 전설적인 하드 록, 메탈 기타리스트이다. 데이비드 리 로스와의 기타-보컬 콤비는 정말 유명하다.

소위 기타리스트들의 슈퍼 기타리스트로 불리며 에디의 기타 톤, 연주 기법 [3], 사운드의 접근법, 주옥같은 리프 메이킹, 끝내주는 디자인 감각 등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의 요소들로 국내외 락/메탈 팬 및 뮤지션들에게 큰 영향을 준 사람이다.

기타 연주, 혹은 더 나아가 헤비 메탈, 하드 록 계열에서 에디 밴 헤일런의 존재감은 정말 엄청나다. 형제 성을 딴 밴드 밴 헤일런과 함께 등장해 새로운 일렉트릭 기타 주법, 이펙트 및 장비와 키보드 연주로 헤비메탈 작법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일렉트릭 기타뿐만 아니라 키보드 연주에도 두각을 드러낸 음악적 천재로 불린다.

그는 60세인 2015년까지도 화려한 연주로 노익장을 과시했으나, 젊은 시절부터 이어온 흡연으로 후두암에 걸려 결국 2020년 10월, 별이 되었다.

3. 생애

3.1. 유년기

1955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났지만, 출생 직후 네이메헌[4][5]으로 이주하였다. 이후 네덜란드와 인도네시아 전쟁이 발발하고 네덜란드 내 인도네시아 혼혈에 대한 인종차별로 가족 전체가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가족이 음악인 집안[6]이라 어렸을 때부터 형 알렉스와 함께 피아노를 배웠지만, 딱딱하고 체계적인 클래시컬 교육에 진절머리를 내 부모님과 한창 대립했다고 한다.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것 보다 귀로 듣고 카피하는 걸 선호했고 또 한 음 한 음 따라 치는 것보다는 자기만의 스타일을 가미해 즉흥연주 하는 걸 선호했다. 물론 정식 교육을 받은 음악인인 부모님 입장에서는 용납이 되지 않는 행동이었지만 록 유망주답게 끝까지 반항해 지금도 악보는 잘 읽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중에 그의 이토록 자유로운 자기류 음악 공부는 나중에 기타 연주와 키보드 연주에도 상당한 유연성을 가져다 주었으니 말짱 도루묵은 아니었던 셈. 실제로 콩쿠르에도 몇 번 나가기도 했지만, 나이를 먹고 나니 피아노에는 점점 관심이 멀어지게 되고, 형은 기타를, 에디 본인은 드럼에 매진해 밴드를 결성하게 된다. 그러다가 형이 오히려 드럼에 대단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악기를 바꿔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음악인의 길을 걷고 싶다고 생각 한건 초등학교 4학년때 첫 밴드 브로큰 콤스를 결성할 때였다. 이 시기에 일화가 있는데, 존 본햄이랑 앉아서 술 마시던 리치 블랙모어에게 공연 후 사인을 받으러 갔다가 꺼지라고 욕설을 들었다고... 이때 부터 형 알렉스는 드럼, 에디는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해 점점 세월이 지나며 실력을 갈고 닦으며 여기저기 아마추어 무대를 진전하다 17세 때 밴 헤일런의 전신이 될 만한 밴드 제네시스[7]를 결성. 이때 잘 하지도 못 하는 메인 보컬을 싫증내던 에디는 보컬 오디션에는 탈락했지만 무대 장비는 계속 해서 빌려주던 대학교 친구 데이비드 리 로스를 경제적인(...)[8] 이유로 고용을 하고 원래 베이시스트였던 마크 스톤은 마이클 앤서니로 교체해 밴드명도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제네시스와 겹치니 새롭게 맘모스라는 이름으로 개명한다. 그러나 데이비드 리 로스가 맘모스라는 밴드명은 뭔가 촌스럽다고 생각했던지 그냥 밴 헤일런 형제의 이름 자체가 산타나 같이 느낌이 좋다고 열심히 설득해 결국 밴드명이 밴 헤일런으로 바꾸게 된다.

70년대 중후반 주변 고등학교에 전단지를 돌려가며 본인들을 홍보해 무대에 서고, 선셋 스트립에서 나름 잘 나가던 나이트 클럽 '가자리'에서 연주도 하게 된 밴 헤일런은, 결국에는 유명 스튜디오에서 첫 데모 테이프도 녹음 하게 되는 기회도 부여받고 여러 유명 클럽을 전전하며 인지도를 쌓게 된다. 그러다가 당시 최고의 밴드였던 KISS의 진 시몬스의 관심을 끌어 두번째 데모 테이프를 녹음하게 되지만, 어쩐지 말도 안 듣고 하니 질렸는지[9] 진 시몬즈는 성공의 가망이 없다고 곧바로 손을 떼게 된다. 그렇게 버려진 밴 헤일런을 발굴한 건 오히려 워너 브라더스 뮤직의 프로듀서 두 명이었다. 비록 소규모 무대였지만 성공의 예감이 든 두 프로듀서는 곧바로 계약을 체결. 몇주간의 전문 스튜디오에서 앨범 작업을 통해 대망의 데뷔 앨범인 "Van Halen I"을 내놓는다.

3.2. 밴 헤일런

이후 활동 내역에 대해서는 밴 헤일런 항목 참조.

에디 밴 헤일런은 1집에 수록된 Eruption #이라는 곡으로 록기타계에 투핸드 태핑 주법을 널리 퍼뜨렸다. 또한 마이클 잭슨 Beat It의 기타솔로를 연주해서 주목받기도 했는데, 멤버들에게는 밴드외적인 활동에 대한 양해를 미리 구하려고 했으나 모두 휴가등의 이유로 연락이 안되자 그냥 스튜디오로 가서 녹음했다고 한다.[10] 참고로 솔로 부분을 제외한 다른 부분은 유명한 세션 기타리스트인 폴 잭슨 주니어와 TOTO의 현 기타리스트 스티브 루카서가 연주 #.

3.3. 사망

한국 시각으로 2020년 10월 7일(현지 시각 10월 6일 오전), 아들 볼프강 밴 헤일런이 트위터로 에디 밴 헤일런이 후두암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발표하였다. # 2019년 후두암 투병 사실이 밝혀졌을 당시 이미 투병 5년차였다고 한다. 2015년 정도만 해도 지미 키멜 쇼에 출연하여 노익장임을 과시하는 등 활발히 활동해왔으나, 이러한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에 전세계 수많은 록 음악 팬들이 충격에 빠졌다.

한편, 에디 밴 헤일런은 미국에서도 알아주는 골초로 매우 유명했다. 에디는 어렸을 적부터 담배, 마약을 즐겨해 왔었으며, 이로 인한 잦은 투병 생활을 했었다.[11] 결국 이러한 과도한 약물 사용으로 그의 건강은 악화되었었다. 2000년대 초반에 판정과 함께 수술을 받았음에도 끝끝내 금연에 실패하고 다시 담배를 피워대었고, 결과적으로 2015년경에는 후두암 판정을 받게 되었는데, 이것이 원인이 되어 결국 2020년 10월 6일에 사망한 것이다.

에디는 이미 험프리 보가트, 이주일처럼 그는 여러 매체에서 흡연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 바 있으며, 흡연을 하는 락스타의 아이콘이 될 정도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되려 이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사망했기에 저들처럼 끝내는 흡연이 왜 위험한지 알려주는 반면교사가 되었다. 그의 과거 동료였던 보컬 새미 헤이거 마이클 앤소니 그를 추모하는 영상을 올렸다.

4. 연주 스타일

1986년 미국 코네티컷 주 뉴 헤이븐에서의 Eruption 라이브
영상 4분 37초부터 그 유명한 태핑 프레이즈가 등장한다.
Jump의 뮤직비디오
헤비 메탈에 신디사이저 리프를 도입한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영상 2분 34초에서 키보드 솔로를 연주하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1984년 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에서의 Beat It 기타 솔로
마이클 잭슨의 Victory 투어에서 연주되었다.
2015년 빌보드 어워즈에서의 Panama 라이브
밴 헤일런의 멤버들과 함께한 라이브로, 베이스 주자로는 아들인 볼프강 벤 헤일런이 참여하였다.
에디 밴 헤일런의 기타 연주, 이펙트 운용법 및 톤은 당대 엄청난 파란을 몰고 왔다. 기존의 고전적인 하드 록 기타 연주 스타일에서 변화의 중간과정을 생략하고 건너뛴 듯한 혁신적인 스타일을 선보였으며, 더 빠르고, 자유분방하고, 화려한 헤비 메탈 기타 연주로 등장과 함께 락 기타계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버린 이른바 '게임 체인저'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오늘날 그의 연주를 들어보면 얼핏 전형적인 / 메탈 스타일의 기타 연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재 그러한 스테레오타입같이 들리는 연주 스타일의 상당수가 에디 밴 헤일런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슬래시는 자서전에서 마치 록 음악 업계가 에디의 출현 이후로 한 번에 뒤바뀐 느낌이 들었다고 썼다. 레드 제플린 딥 퍼플을 카피하던 동네 기타리스트 청년들은 이제 밴 헤일런의 모든 것을 카피하려고 들었다고.

우선 에디 밴 헤일런의 전가의 보도인 태핑 주법은 재즈 기타, 혹은 컨트리 뮤직 기타에서 가끔 쓰이는 주법을 헤비 메탈에 도입[12]해 대단히 유려한 3단음 클래시컬 멜로디를 들려주었다. 그것 뿐만이 아니라 트레몰로 피킹, 얼터네이트 피킹과 레가토 피킹을 섞어 새로운 방식의 속주를 보여주어 지미 페이지 리치 블랙모어 두 명의 위대한 기타리스트들의 영향력 하에 있던 동시대 기타리스트들을 충격에 휩싸이게 했다.

리프 메이킹에 있어서도 D 드랍 튜닝, 1970년대 블루스 록의 영향력 외 펑크적인 주법이나 일렉트릭 시타르의 도입, 아예 헤비 메탈 신디사이저로만 연주하는 메인 리프 연주를 도입하는 등 독창적이고 참신한 시도를 끊임없이 해가며 80년대 헤비 메탈의 기틀을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공을 세웠다. 잉베이 말름스틴이 등장하기 전까지 1970년대 1980년대 사이 헤비메탈/ 하드 록 의 음악적인 차이를 가장 많이 벌려놓은 장본인중 하나이다. 에디 밴 헤일런의 특징을 가장 잘 정리해놓은 곡이 바로 데뷔 앨범의 연주곡인 Eruption[13]인데, 이 곡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 솔로에서 10위권을 벗어나는 일이 없을 정도.

에디 밴 헤일런의 영향은 기타 하드웨어적인 부분에도 크게 미쳐, 슈퍼스트랫 기타와 플로이드 로즈 트레몰로 브릿지의 유행을 불러왔다. 에디 본인이 개발에 참여한 플로이드 로즈를 활용한 다이브 밤 주법을 비롯, 트레몰로 바를 활용한 여러가지 주법을 선보였다.

5. 사용 장비

5.1. 일렉트릭 기타

5.1.1. Frankenstrat

파일:Eddie_Van_Halen_Frankenstrat.jpg
에디가 사용했던 기타들 중 가장 유명한 건 위 사진에 나오는 프랑켄슈타인 스트랫 (Frankenstein Strat), 줄여서 프랑켄스트랫(Frankenstrat)이라는 애칭의 일렉트릭 기타이다.

이 기타의 탄생 일화는 매우 독특한데, 기성품이 아닌, 당시 에디의 집 근처에 있던 샤벨 악기점에서 본인이 직접 넥[14]과 바디를 구입하여 도색하고 조립한 것이 시초로, 처음에는 검은색으로 도색한 뒤, 마스킹 테이프를 붙이고 흰색 락카 스프레이를 뿌려 최종적으로 흰색 바탕에 검은색 줄무늬가 있는 모습이었다.[15] 이 처음 만들어진 프랑켄스트랫은 상술한 흰색/검은색 모습에 낡은 LP 판을 잘라 만든 엉성한 픽가드가 달려있었다. 픽업은 그가 보유하고있던 깁슨 ES-335에 달려있던 알니코 2 PAF 험버커 픽업을 장착하려 했으나, 처음에는 원치 않는 피드백 현상이 발생하자 아예 픽업 전체를 펄펄 끓는 파라핀 왁스에 담가 픽업 내의 빈 공간을 없애는 것으로 해결하였다. 이후 이 픽업에서 나오는 신호가 볼륨 노브만을 통과한 뒤 바로 아웃풋 잭으로 가는 비교적 간단한 배선으로 기타에 장착하였는데, 브릿지 또한 1958년에 생산된 펜더 스트라토캐스터에 장착되어 있던 싱크로나이즈드 트레몰로 브릿지를 떼어내서 달았다.

이후 밴 헤일런 1집이 히트를 치고 여기저기서 이 기타와 비슷한 모습의 모조품들이 등장하자, 이번에는 마스킹 테이프를 붙이고 빨간색 락카 스프레이를 한 번 더 올려서 최종적으로 지금 잘 알려진 빨간색/검은색/흰색 3색 조합의 모습으로 바뀐다. 기타 바디 뒷면에는 자전거 뒷면에 장착하는 플라스틱제 반사판을 여러 개 장착하였고, 그 유명한 플로이드 로즈 브릿지가 장착되었다. 플로이드 로즈 브릿지의 6번 새들쪽을 보면 구멍이 뚫린 1971년제 쿼터 동전 하나가 나사로 바디에 장착되어 있는데, 본인이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 동전을 회전시켜 플로이드 로즈의 브릿지 플레이트 아래쪽으로 밀어넣어 어떤 상황에서든 평형을 유지하도록, 일종의 트렘블록으로 쓰기 위해 장착한 것이라고 한다. 픽가드는 조작부쪽을 남기고 전부 잘라내서 바디에 뚫린 픽업 캐비티가 그대로 노출되었으며, 이 픽업 캐비티에 장착하려다 실패한[16] 싱글 코일 픽업과 픽업 셀렉터를 장식으로 대충 넣어놓았다.
파일:Eddie_Van_Halen_Kramer_5150_Frankenstrat_Guitar.png
파일:external/cascadestudios.com/classickramer10.jpg
이후 크레이머에서 엔도스먼트를 하면서 비슷한 컨셉의 모델을 여럿 만든 것으로 보이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기타 엉덩이 쪽에 5150이라는 숫자가 쓰여진 버전(사진 좌)이며, 원본 프랑켄스트랫과 유사한 버전(사진 우) 또한 만들어준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 달려있던 부기 바디즈의 넥도 다른 브랜드의 넥으로 여러 번 교체되었는데, 대표적으로 1980년대 초에 크레이머의 펜더 스타일 넥으로 바뀐 적이 한 번 있었으며, 1980년대 중반 그가 크레이머의 엔도서가 되면서 크레이머의 하키스틱 헤드스톡을 가진 넥으로 바뀐 적도 있다. 이후 2000년대 초반쯤 프랑켄스트랫에 처음 장착되었던 부기 바디즈의 넥이 원래 자리로 돌아온다.

펜더 커스텀 샵에서 2007년에 MBS 시리즈로 프랑켄스트랫을 완벽하게 재현해낸 레플리카 모델을 발매하였다. 리뷰 영상 이후로는 에디가 직접 런칭한 브랜드인 EVH에서 EVH 스트라이프 시리즈(EVH Stripe Series)라는 이름으로 양산형 레플리카 모델을 생산하고 있다. # 레릭이 되어 있지 않은 일반형 모델부터, 원본 프랑켓스트랫을 거의 완벽하게 재현한 모델까지 다양한 종류가 있다.

5.1.2. Music Man EVH

파일:Eddie_Van_Halen_Music_Man_EVH.png
1990년대에 엔도스먼트를 크레이머에서 뮤직맨으로 옮기면서 사용했던 시그니처 모델이다. 존 페트루치 이전 뮤직맨의 슈퍼급 엔도스먼트 아티스트로서 브랜드의 정체성을 만들어내는데 크게 일조하였는데, 지금까지도 뮤직맨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으로 여겨지는 작은 바디 크기와 동양인의 작은 손에도 딱 맞는 절묘한 쉐입의 오일 피니쉬 넥은 에디의 작은 손 크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그의 시그니처 모델인 EVH는 에디 밴 헤일런 본인이 직접 디자인하였다. 바디에 베이스우드와 트랜스 골드 피니쉬로 마감된 퀼티드 메이플이 사용되었으며, 넥에는 버드아이 메이플이 사용되어 매우 화려한 외형을 지니고 있다. 볼륨 하나만으로 컨트롤되는 심플한 배선에 디마지오의 험버커 픽업이 두 방 장착되었고, 브릿지는 에디의 상징이 된 플로이드 로즈 브릿지가 장착되었다.

이후 에디가 엔도스먼트를 피베이로 옮기면서 시그니처 모델인 EVH 자체는 단종되었으나, 이 시그니처 모델에서 파생된 직계 모델인 뮤직맨 엑시스가 여전히 생산되고 있다. 사실상 이 모델이 EVH의 직계 후손격 모델이라 볼 수 있기에 에디의 팬들 중에는 이 모델을 구입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는 편이다. 물론 다른 점도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게 픽업 셀렉터의 위치로, 원본 EVH는 픽업 셀렉터가 바디 상단, 넥 픽업 근처에 있으나, 엑시스는 픽업 셀렉터가 볼륨 노브 바로 옆에 있다.

5.1.3. Peavey Wolf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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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베이로 엔도서를 옮긴 후에 사용했던 시그니처 모델로, 바로 직전에 사용하였던 뮤직맨 EVH와 유사한 모양의 둥근 바디 모양, 험버커 픽업 2방, 그리고 플로이드 로즈 브릿지가 특징이다. 뮤직맨 시절에는 픽업 셀렉터가 기타 아래쪽 뿔에 있었으나, 이 모델에서는 위쪽 부분으로 옮겨간 것이 가장 큰 차이점.

볼프강(Wolfgang)이라는 모델명은 그의 아들인 볼프강 밴 헤일런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5.1.4. EVH Wolf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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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가 사용했던 마지막 기타 브랜드로, 다른 회사의 엔도서로 계약한 것이 아닌, 아예 본인의 이름을 걸고 만든 브랜드를 런칭한 뒤 시그니처 모델을 직접 설계, 발매하여 사용하였다. 마찬가지로 모습은 뮤직맨 EVH, 피베이 볼프강과 거의 유사한 모습인데, 말년에 킬스위치 주법을 애용하던 그의 플레이를 위해서인지 순정 상태임에도 킬스위치가 장착되어 나온다는 특징이 있다. 이 점은 양산형 모델에서도 동일하다.

2010년대에 진행된 각종 라이브에선 무광 검은색으로 마감된 모델과, 위 사진에도 나오는 레릭이 적용된 흰색 모델이 많이 사용되었다.

5.2. 앰프

초기에는 당대의 록 기타리스트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마샬 Super Lead 1959 앰프[17]를 사용했다. 밴 헤일런 1집의 사운드를 들어보면 당대 마샬 슈퍼 리드 앰프를 사용한 다른 레코딩들 대비 앰프 게인의 양이 어마무시하게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에디가 앰프를 구동할 때, 볼륨 노브를 포함한 앰프의 모든 노브를 10에 가깝게 둔 뒤, 가변형 전압 조절기를 사용하여 앰프 내부로 들어가는 전압을 낮추는 방식으로 소리를 줄여 사용하였기 때문이다.[18]

에디는 추후 인터뷰에서 본인이 발견한 이 운용법을 통해 만들어진 기타 사운드를 브라운 사운드(Brown Sound)라고 명명하였는데, 이는 그의 형 알렉스 밴 헤일런의 마치 나무를 두들기는 듯한 드럼 소리와 비슷하게 들리는 기타 사운드라며 그가 거의 즉흥적으로 이름붙인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앰프 내부로 들어가는 전압을 조절함으로서 소리를 줄이는 데는 성공하였지만, 여전히 브라운 사운드는 작은 공연장이나 레코딩 현장에서 사용하기에는 지나치게 볼륨이 컸으며, 이로 인해 여러 엔지니어와 기타리스트들이 브라운 사운드를 상대적으로 적은 볼륨에서 얻고자 하는 시도를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현대적인 저와트 하이게인 앰프 개발의 신호탄이 된다.

1992년부터는 자신의 시그니처 앰프인 Peavey 5150[19]을 사용했고, EVH 브랜드를 런칭한 후에는 EVH 5150으로 이름과 디자인을 변경했다. 피베이에서도 기존 5150 앰프를 6505로 이름만 바꿔서 계속 생산하고 있으며, EVH 5150과 피베이 6505는 본질적으로 뿌리가 같은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EVH 기타처럼, EVH 앰프도 펜더가 제조와 유통을 담당하고 있다.

EVH 5150은 특유의 금속성 섞인 강렬한 드라이브 사운드가 특징인 고출력 하이게인 앰프로, 헤비 메탈 사운드의 표준이라고 할 수 있는 앰프 중 하나이며, 많은 헤비 메탈 계열 기타리스트들이 사용하고 있다.

5.3. 이펙터

에디는 MXR사의 이펙터들을 애용하였는데, 가장 잘 알려진 모델이 MXR의 페이저 90 모델이다.[20] 특히 기타 솔로를 연주할 때는 거의 항상 켜놓았는데, 노브 값을 낮게 잡아서 마치 있는 듯 없는 듯 한 오묘한 사운드로 세팅해놓고 썼다고. 여담으로 에디가 당시 사용했던 페이저 90은 현재 나오고 있는 블록 로고 모델이 아닌, 초창기에 출시된 스크립트 로고 버전 페이저 90이다.

이후 MXR에서 에디 밴 헤일런 시그니처 페이저 90 모델이 출시된 뒤로는 줄곧 해당 모델만을 사용해온 것으로 보인다. 이 모델은 에디의 상징인 흰색/검은색/붉은색 스트라이프 패턴으로 도색되어 있으며, 페달 하단부의 EVH 로고가 박혀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기능적으로는 일반 페이저 90과 거의 일치한다.

페이저 외에는 MXR 플랜저, 6밴드 이퀄라이저 등을 애용하였다.

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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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바인과 인도네시아 화인 그리고 네덜란드인 혼혈이라 한다. [2] 흔히 태핑 기법을 록 음악에 처음 도입한 사람으로 알려져있지만, 태핑 기법을 록 음악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사람은 제네시스의 스티브 해킷이다. [3] 화려한 태핑이나 테크닉이 아닌 기타를 다루는 스킬 자체가 말도 안되게 능숙하다. 많은 이들이 그의 솔로에만 관심을 기울이는데 에디의 배킹 플레이는 기타리스트들의 교과서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4] 독일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가톨릭이 주류인 곳이라서 에디 본인을 포함한 가족 대다수가 가톨릭교도였다. 그리고 성씨를 네덜란드어로 발음하면 판 할런이 된다. [5] 여담으로 모계쪽은 네덜란드 인도네시아 혼혈인이다. [6] 아버지가 클라리넷 연주자로 후일 형제들의 앨범에 참여한 적도 있다. [7] 필 콜린스로 유명한 동명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와는 관계가 없다. [8] 데이비드 리 로스는 아버지가 의사였기도 하고 무엇보다 유대인 중산층 출신이다. 그래서 밴드 내에서 회계와 마케팅 등 음악 외의 경제 관련한 일들은 거의 다 리 로스의 업무였다. [9] 몇 번이나 고쳐 바꾼 이름 밴 헤일런을 'Daddy Longlegs'( 키다리 아저씨)라는 이름으로 바꾸라고 강요했으니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10] 에디가 바빠서 그냥 마스터링테입에 녹음했다는둥 전화상으로 녹음했다는 둥의 말도 안되는 소문이 있는데, 당대 최고의 프로듀서인 퀸시존스나 마이클 잭슨이 Thriller 앨범제작에 얼마나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안다면 그런 헛소리는 안할것이다. [11] 그는 무려 12살이라는 이른 나이 때 부터 흡연과 음주를 시작했다고 한다. [12] 그러나 에디 밴 헤일런이 태핑 주법을 개발한 건 아니다. 본래 재즈 기타에서 사용되고 있던 주법이기도 했고, 록 기타에서도 처음이 아니다. 이미 60년대에 여러 록 기타리스트들이 선보인 바 있었고, 심지어는 1970년대 초반에 전설적인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제네시스의 기타리스트 스티브 해킷이, 그리고 마찬가지로 전설적인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인 예스의 스티브 하우 같은 기타리스트들이 선보이기도 했다. 딱히 새로울 게 없었다는 이야기. 하지만 이 딱히 새로울 게 없는 주법을 전면에 내세우며 당대 록 음악의 변화를 주도하고 판도를 완전히 바꿔버린 장본인이 에디 밴 헤일런임에 대해서는 그 누구라도 폄하하고 깎아내리지 못한다. [13] 태핑 자체는 킹크스의 원곡을 커버한 첫 싱글인 You Really Got Me의 기타솔로에도 태핑이 일부 포함되어 있기도 하지만... [14] 워모스의 전신이 되는 브랜드인 부기 바디즈에서 제작된 넥이었다. [15] 이때의 모습은 Van Halen의 앨범 커버에서 확인할 수 있다. [16] 공식적으로 알려진 이유는 기존의 험버커 픽업 하나만을 사용하는 배선에 싱글 코일 픽업을 추가하는 방법을 알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17] JTM45 앰프 등과 함께 플렉시 글라스를 사용한 외장에서 착안하여 '플렉시'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18] 이런 요상한 방법으로 앰프를 굴렸던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시끄러워서였다. [19] 5150은 1986년 발표한 밴 헤일런의 7번째 앨범 제목으로, 정서 불안자를 가리키는 캘리포니아 주 코드 번호이다. [20] 주황색 외장에 착안하여 주로 오렌지 박스(Orange Box)라고 불린다. [21] 보통 팬들은 이 모습을 가리켜 “기타가 담배를 핀다”고 하기도 한다. 이걸 마왕이 따라하다가 건방지다는 소리를 듣고 학교 밴드에서 퇴짜를 맞은 일화도 있다. 그의 전매특허이긴 한데, 당시 록밴드 기타리스트 상당수는 이 행위를 꽤 자주 했다. 더 폴리스의 기타리스트 앤디 서머스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는데, Every Breath You Take의 뮤직비디오를 잘 보면 플랫에 담배기 끼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22] 커트 코베인 문서에도 나와 있지만, 당시 너바나의 세컨드 기타리스트로 들어온 팻 스미어에 대해 조금 안 좋게 말을 했다. 팻은 모계쪽으로 아프리카인과 아메리카 원주민의 피가 흘러 피부색이 다른 너바나 멤버들보다 살짝 어두웠는데, 크리스 노보셀릭이 에디에게 팻을 소개하자 에디는 "아 뭐야, 이 까만 친구야?(Oh no, not a dark one.)" 비슷한 투로 말을 했다고 한다. 이후로도 "자넨 뭐야? 인도인? 멕시코인인가?(What are you? Are you like a Raji or something? Are you Mexican?)"라고 하고선 커트에게 "나 이 멕시코 친구 기타 좀 연주해보자!(C'mon let me play the Mexican's guitar)"라고 했다고 한다. 팻 스미어는 이에 대단히 큰 충격을 받았다고. 사실 에디 역시 모계 쪽으로 인도네시아인과 자바인의 피가 흐르는, 따지자면 쿼터(Quarter)에 가깝기 때문에 그가 아무리 위대한 기타리스트라고 해도 이것은 나름대로 부적절한 언행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네덜랜드에서나 미국에서나 인도네시아-백인 혼혈이라서 인종차별을 여러번 겪은 것을 생각하면 본인 과거사를 잊고 흑인계인 팻 스미어에게 인종차별을 저지른 셈이다.아니면 자기 딴에서는 이런걸 농담이랍시고 던져댄걸지도 모른다(...) [23] 커트 코베인은 정치관이 강성 진보 성향이었기 때문에 평소에도 인종 차별, 여성 차별 등에 매우 민감히 반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