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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민석/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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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정치활동 이전3. 정치 활동4. 수상내역

1. 개요

안민석 의원의 생애를 정리한 문서.

2. 정치활동 이전

1963년 8월 13일, 경상남도 의령군 부림면 손오리 구산마을에서 아버지 안용기(安龍基, 1932. 2. 16 ~ )와 어머니 벽진 이씨 이신분(李新粉, 1931. 7. 4 ~ 2023. 5. 7)[1] 사이에서 3남 1녀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2살 때인 이듬해 가족들과 부산시로 이주했다가, 1974년에 다시 경기도 화성군 오산읍 오산5리 남촌마을(현 오산시 남촌동)로 이주하였다.

이후 오산 성호국민학교, 오산중학교, 수원 수성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과를 졸업하고 1988년 미국으로 건너가 노던 일리노이 대학교 대학원[2]에서 교육학· 이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1990년 9월 노던 콜로라도 주립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해 1993년 5월 교육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유학 시절 재미교포 피아니스트 황진희(黃珍僖, 1966. 6. 6 ~ )[3] 결혼하였다.

1993년 귀국한 뒤 1994년 6월 29일 공군사관후보생 91기로 공군 소위로 임관하여 공군사관학교 체육처 교수사관으로 복무하였으며, 1997년 6월 30일 중위로 전역하여 병역을 마쳤다. 2000년 3월 중앙대학교 안성캠퍼스 체육과학대학 사회체육학부 교수 부임했고, 2004년 5월 30일 제17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지기 직전까지 재직했었다. 현재는 휴직 상태라고 한다.

3. 정치 활동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경기도 오산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한나라당 이기하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이른바 탄돌이 출신이었는데, 이 탄돌이 중에 조정식, 김진표, 변재일, 이상민,[4] 조경태[5]와 더불어 내리 5선에 성공한 여섯뿐인 현역의원이며 민주당계 정당이 역대급 대패를 당했던 18대 총선에서도 살아남았던 사람들이다.[6]

열린우리당에서 체육특별위원회 위원장, 제2사무부총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당 원내부대표, 대한민국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간사, 민주당 교육특별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5년부터 새정치민주연합 교육연수원 원장, 대한민국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를 역임하고 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 위원장을 맡았으며, 민주당 내에서 남북문화체육협력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안민석 의원 본인은 아주 예전부터 남북한 문화체육관광 교류를 꿈꿔왔는데, 비로소 그 꿈에 매우 가까워진 것이다.

계파 성향이 옅은 인물로 평가받고 있으며, 그 때문인지 4선이나 한 중진급이면서도 최고위원이나 원내대표 등의 감투를 쓴 적이 없다. 그래서 그간 자신의 지역구인 오산을 제외하고는 인지도가 높지 않은 인물이었는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의 활약 덕에 단숨에 전국구급 인물로 부상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에서 국정조사위원으로서 박근혜 정부의 비리를 캐는데 공을 세웠다. 계속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소속되어 있어서, 승마협회와 정유라의 존재를 수 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 순방길에 따라가 미국에 있던 문정왕후의 어보를 회수해 왔다. 그리고 7월에 같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전재수 의원, 국민의당 유성엽 의원, 정의당 윤소하 의원 등과 함께 최순실 재산몰수 특별법을 발의했는데, 통과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7]

이 법안에 동의한 사람은 발의자 포함 135명으로 정족수인 5분의 3에 45석이나 모자란다. 이 반대파들은 보수 정당인 자유한국당 바른정당인데, 자유한국당에서는 오직 김성태 의원 단 1명만 찬성[8]했고, 바른정당은 0명이다. 안민석이 대표 발의한 최순실 재산 몰수 특별법에 반대하는 명분으로 위헌 소지가 있다는 것을 내세웠다. 그렇다면 과거 전두환의 비자금을 몰수한 것은 뭐냐고 반론하기도 했던 것은 덤이다.[9]

2017년 8월 27일 북 콘서트를 위해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했다가 극우 친박단체의 기습시위로 봉변을 당했다. 결국 출동한 LA 경찰의 보호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본인의 지역구인 경기도 오산시에서 공경자 오산범시민연대 공동대표와 경선 끝에 공천을 받았고, 당선되어 5선의 고지에 오르게 되었다. 제21대 국회 전반기 국회부의장에 도전할 것으로 보였으나 불출마하였다.[10]

8회 지선에서 유력한 경기도지사 선현역 최다선이기도 하거니와 인지도 측면에서도 타 경쟁자들에 비해 우위에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1]

2022년 3월 12일, 중앙당에 오산시 지역위원장 사퇴서를 제출하면서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 준비에 들어갔다. 이후 경기지사 야권 후보로 물망에 오르고 있는 새로운물결 김동연 대표의 행태를 간보기 정치로 비판하면서 견제구를 던졌다. #

3월 23일에는 CBS 라디오에 출연해 기존의 비판에서 한발 더 나가 김동연 대표가 제2의 윤석열 당선인이 될 수 있다면서 민주당과 뿌리가 다르고 결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다만 안 의원은 “그분과 선의의 경쟁, 공정한 경쟁은 마다하지 않겠다”며 “연대는 가능하다”고 밝혔다. #

3월 31일, 경기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도지사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이 자리에서 안 의원은 "경기도 선거에서 민주당이 다시 패배한다면 윤석열 정권은 문재인, 이재명 두 분을 향한 기획수사, 정치보복을 곧바로 시작할 것"이라며 "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에 맞서 투쟁한 제가 검찰공화국에 맞서 경기도를 지키겠다"고 출마의 변을 밝혔다. #

4월 4일,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를 보고 ' 국무조정실장을 하면서 국정 농단에 부역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 4월 21일에 있었던 경기도지사 경선 토론회에서도 김 전 부총리에 대한 저격에 앞장섰다.

한편 4월 24일, 본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조국 사태로 인해 대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의 사면을 호소했다. #

4월 25일 발표된 경선 결과, 21.61% 득표에 그치면서 2위로 탈락했다. 김 전 부총리가 1차 투표만에 과반이 넘는 득표율을 확보하면서 본선에 직행한 터라 결선 투표도 성사되지 않았다.

4월 27일에는 속칭 검수완박 중재안으로 불리는 검찰청법 개정안과 관련한 무제한 토론의 네번째이자 마지막 주자로 참석해 찬성 의견을 밝혔다. 이 자리에서 입법 로비 사건[12]으로 유죄를 받았다가 자살을 선택한 김재윤 전 의원을 언급하면서 울먹이기도 했다. #

2024년 2월 23일, 민주당 내부에서 오산시를 전략지역구로 설정하고 차지호 영입인재의 전략공천이 이루어 질 것이라는 소식이 떴다. # 하지만 다음 날, 안규백 전략공천관리위원장이 오산이 전략지역구가 아님을 못 박았다. # 하지만 2월 28일, 결국 오산이 전략지역구로 지정되어 사실상 컷오프 되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 그런데 기동민만 명시적인 컷오프고, 안규백의 권한이라는 설명도 있었다. # 안규백은 방송에 출연하여 '컷오프할 수도 있고, 경선시켜 줄 수도 있다'고 대답했다. #[13]

2월 29일에 결국 컷오프된 직후에는 당에 공천 재심을 신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3월 7일에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불출마를 선언하며 승복했다. 이후에는 오산 지역구에 민주당이 단수공천한 차지호 후보를 지지해달라고 호소했다. # 너무나도 산뜻하게 승복해서 지지자들에게 의외란 반응과 좋은 인상을 남겼는데, 아마도 선당후사하는 모습을 보여서 지지를 얻으면 9회 지선에서 경기도지사에 재도전할 때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는 계산으로 컷오프도 순순히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출마해서 당선됐다면 6선 의원이라 갈 곳은 국회의장 밖에 없는데, 의장이 된다면 직을 내려놓고 지선에 출마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니 도지사 출마가 목적이라면 그냥 국회의원 2년 더 하는 것 밖에 개인적인 이득이 없기 때문.

4. 수상내역



[1] 이윤두(李允斗)의 딸이다. [2] # [3] 평양 황씨(平壤 黃氏) 황중영(黃中永)의 딸이다. [4] 18대 총선에서는 자유선진당 당적으로 당선되었다. 다만 선진당에 가서도 진보성향을 계속 보였고, 19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에 복당해 19대부터는 다시 민주당 당적으로 당선되었으며 20, 21다 총선에서도 더불어민주당 당적으로 당선되었으나 22대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으로 이적했다. [5] 다만 조경태는 20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으로 이적했다. [6] 조경태도 19대 총선까지는 부산에서 민주당 당적으로 살아남았던 사람이다. [7] 원래 입법은 발의는 쉽지만 통과가 어렵다. 특히 자기 정당 소속 의원들이 과반수가 되지 않을 경우 다른 정당 국회의원들까지 설득해야 한다. [8] 이마저도 안민석과의 친분 때문이라는 추측도 있다. [9] 친일재산 환수법도 통과된 적이 있다. 위헌 소지와 관련해서는 최고 전문가들과 네 번 이상의 국회 공청회를 거친 법안이라고 한다. [10] 사실 5선이면 국회의장에 도전해도 될 횟수이다. 5선 의원치곤 2020년 기준으로 젊은 56세라 7선까지 성공한다면 64세에 불과해 국회의장에 도전할 기회는 충분한 셈이다. 무리한다면 10선까지도 가능하다. [11] 그나마 3선 수원시장을 지낸 염태영 전 시장, 이재명계 조정식 의원이 당내 경쟁자로 꼽히고 있다. [12] 안 의원은 이 사건을 검찰의 기획수사라고 주장하였다. 실제 기획수사 의혹이 2년전에 KBS를 통해 재조명되기도 했었다. # [13] 더불어민주당 공천 시스템에서 전략공천지역구에 해당 지역구 현역을 전략경선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장르만 여의도에서는 '뜨거운 아이스아메리카노'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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