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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01 23:03:22

안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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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안광호(安光鎬)
본관 죽산 안씨
학력 나남중학교 (졸업)
만주국 건국대학 (정치학과 / 학사)
만주국 대동학원 (수료)
일본제국 육군예비사관학교 (수료)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 (제8기 특별4반)
경력 대한민국 육군 병참감
국방부 관리국장
주미대사관 무관
주영국 공사
주일본 공사
튀니지 대사
대한무역진흥공사 사장
벨기에 대사
이탈리아 대사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육군 병참감, 국방부 관리국장, 주미대사관 무관 등을 역임한 대한민국의 군인(군번 15150). 육군 준장 예편 후 주 케냐 총영사, 주 영국 공사, 주 일본 공사, 주 튀니지대사, 주 이탈리아 대사 등 외교관직을 지냈으며, 대한무역진흥공사 사장으로 재임했다.

2. 생애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 생도 시절 일본육군사관학교에 위탁교육 보내졌던 안병범(異名 안종인)[1]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바로 아래 동생 안광수(군번10024)는 일본육군사관학교(58기) 출신으로 대한민국 육군 대령 예편 후 주 로스앤젤레스 총영사, 주 휴스턴 총영사, 외무부 의전실장, 본부대사 등을 역임했고, 그 아래에 동생 안광석(安光錫)은 1950년 입교한 육군사관학교 생도 2기로 6.25 전쟁 개전 직후 내촌-태릉 전투에 투입되어 육사 동쪽 93고지에서 전사했으며 셋째 동생인 안광진 역시 경기중학교 4학년 재학 중 전사했다.

부친 안병범 장군이 나남시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 육군 제19사단 보병 제73연대[2] 복무하고 있던 함경북도 나남공립중학교( 구제중학교)를 졸업하고, 만주국에 세워진 건국대학에 제1기로 합격하여 # 동년 5월 2일 입학했다.

1943년 6월 건국대학 졸업 후 대동학원을 수료하고, 조선인 학병으로 소집되어 간부후보생으로 육군예비사관학교를 거쳐 일본 육군 소위로 히메지시 주둔 부대에서 해방을 맞았다. 조선으로 돌아와 부친 안병범의 특별임관(육사 8기 특별1반)에 이어 1949년 육군사관학교 제8기 특별4반을 거쳐 장교로 임관했다(군번 15150).

3군단 군수참모를 거쳐 1952년 정래혁의 후임으로 이종찬 육군참모총장 비서실장에 보임되었으며, 이후 육군총장에서 해임된 이종찬을 모시고 미국 육군 지휘참모대학(U.S. Army Command and General Staff College)에 유학하였다.

미군 지참대 과정을 마치고 귀국한 이후 육군 준장으로 진급했으며, 김창규 소장의 후임으로 군사정전위원회 한국대표(1955.10~1957.7), 1956년 7월 임부택 소장의 후임으로 육군 병참감, 1957년 8월 백선진 소장의 후임으로 국방부 관리국장에 임명되었다. 1958년 1월 7일에는 군사정전위원회 근무 공적으로 유엔군 총사령관 및 미8군 사령관으로부터 미 육군 공로훈장(Legion of Merit)을 받았다. # 4.19 이후인 1960년 5월 주미대사관 무관으로 보임되어 1963년 4월까지 복무하였으며, 6월 예편하였다.

군복을 벗고 1963년 7월 나이로비의 주케냐공사 겸 총영사로 나가 1964년 9월 주영국 공사로 전보되었고, 1965년 11월에는 주일본 공사로 발령받아서 1966년 1월 김동조 초대 대사가 부임 전까지 대리대사를 맡았다. 1968년 12월까지 주일 공사직을 수행한 후 1969년 1월 대사급인 주 튀니지 총영사로 승진하였고, 동년 3월 대사관을 개설하며 초대 주튀니지 대사가 되었다,

1970년 6월 오범식의 후임으로 대한무역진흥공사 사장(제4대)으로 임명되었다. 1973년 6월 무공 사장에 한 차례 유임되었다.

1976년 5월 주 벨기에 대사(주 룩셈부르크 및 주 EC 대사 겸임)로 나갔다. 1979년 6월에는 주 이탈리아 대사로 옮겨 1982년 9월까지 재임하였다.

대사 임기를 마치고 귀국한 후에는 동강실업(東岡實業)을 차려 운영했고, 1984년 12월 대한무역진흥공사 퇴직 임직원 단체인 무공동우회 제2대 회장으로 선임됐다.

1992년 7월 2일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11동 302호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1] 일본육군중앙유년학교 및 일본육군사관학교(26기) 졸업 후  일본 육군에서 복무하며  영친왕의 시종무관을 지냈다.  이응준, 유승렬 김석원 등과 함께  일본 육군 대좌로 해방을 맞았으며, 1948년말 육사 특임8기로 일주일간 교육받고  대한민국 육군 대령으로 특별 임관하여  호국군 제103여단(부산) 여단장으로 부임하였다. 이후 수도방위대 고문 등을 지내다  6.25 전쟁 당시 서울이 함락당하자 인왕산에서 자결하였다. 사후 준장으로 추서되었고, 1955년 현충원에  안병범장군순의비가 세워졌다. [2] 대소전선 최전방에 배치되어있던 부대로, 1938년 발생한 장고봉 사건에서 소련군과 직접 전투를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