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width=320><tablebordercolor=#fff,#1c1d1f><tablebgcolor=#fff,#1c1d1f> |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역대 사장 |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word-break: 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nopad> 박정희 정부 | |||
초대 김기엽 |
2대 김동조 |
3대 오범식 |
4대 안광호 |
|
<nopad> 박정희 정부 | <nopad> 전두환 정부 | |||
5대 장성환 |
6대 윤자중 |
7대 한봉수 |
8대 박영수 |
|
<nopad> 노태우 정부 | <nopad> 문민정부 | |||
9대 이선기 |
10대 김철수 |
11대 박용도 |
12대 김은상 |
|
<nopad> 국민의 정부 | <nopad> 참여정부 | <nopad> 이명박 정부 | ||
13대 황두연 |
14대 오영교 |
15대 홍기화 |
16대 조환익 |
|
<nopad> 이명박 정부 | <nopad> 박근혜 정부 | <nopad> 문재인 정부 | ||
17대 홍석우 |
18대 오영호 |
19대 김재홍 |
20대 권평오 |
|
<nopad> 문재인 정부 | ||||
21대 유정열 |
}}}}}}}}} |
<colbgcolor=#035698><colcolor=#fff> 김기엽
金基燁 |
|
출생 | 1915년 7월 25일 |
도쿄시
오타구
덴엔쵸우 1쵸메 7-7 (東京市 大田區 田園調布 1丁目 7-7) |
|
사망 | 2006년 9월 24일 (향년 91세)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 강남성모병원 | |
본관 | 안동 김씨 |
학력 |
청주고등보통학교 (졸업) 경성제국대학 예과 (문과을류 / 수료)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법학과 / 학사) |
경력 |
한국은행 부총재 금융통화위원 대한무역진흥공사 사장 제일화재 대표이사 사장 조선맥주 회장 |
[clearfix]
1. 개요
한국은행 부총재를 역임한 대한민국의 금융인이자, 대한무역진흥공사 제1대 사장.2. 생애
1915년 7월 25일 도쿄시 오타구 덴엔쵸우 1쵸메에서 태어났다. 청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4년 4월 경성제국대학 예과(제11회, 문과을류)에 입학하였다( 조선인 명단).예과 1학년 재학 중 신병 문제로 휴학하여 1년 유급하고 1938년 대학예과를 수료하고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로 진학( 참조), 1941년 법학과[1] 제3류(경제학전공)를 졸업하고 법학사가 되었다.
경성제대 졸업 후 최고의 직장으로 선망받던 조선식산은행에 입행한 그는 해방 후인 1947년 미군정청 직속기관으로서 외국환 거래 전담 조직으로 창설된 조선환금은행의 외국부장을 맡았다. 이 조선환금은행이 조선은행과 통합되어(換銀통합) 1950년 6월 한국은행이 발족하면서 그는 한국은행의 외환과장 및 외국부장이 되었다.
외국부 예외주의( 참조)가 널리 퍼져있었던 초창기 한국은행에서 외국부장으로 일하던 김기엽은 1952년 11월 천병규의 후임으로 오사카지점장에 전보되었으며 #, 이듬해인 1953년 10월에는 도쿄지점장으로 영전하였다 #.
식산은행, 조선환금은행 그리고 한국은행에서 계속 한솥밥을 먹었던 김진형 부총재가 1955년 10월 대한금융조합연합회(약칭 금련金聯) 회장으로 나갔다가 1956년 12월 김유택의 후임으로 다시 한국은행 총재로 부임하자, 김기엽 도쿄지점장은 1957년 1월 인사에서 본부의 업무부장으로 복귀하였으며 # 1958년 9월에 부총재로 승진하였다. #
외국부/외자부/외환관리부를 통할하는 부총재로서 김기엽은 1960년 4.19혁명 후 김진형 총재가 사의를 표명하자 후임 배의환 총재 취임시까지 한국은행 총재 직무대리로 근무하기도 했다. # 1961년 5.16 군사정변 후에도 4명의 부총재 중 최선임자로서 인사부/조사부/발권부/국고부 담당을 맡았다. # 1961년 6월 기존 한은 간부진이 대거 해임될 때 의원면직으로 물러났다.
대한무역진흥공사 현판을 다는 김기엽 사장 |
1962년 2월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으로 임명되었고, 1962년 설립 작업이 구체화된 무역진흥공사의 초대(初代) 사장으로 내정되어, 4월 25일 설립위원 5인[2] 중 한 명으로 위촉되었으며 # 6월 2일 대한무역진흥공사 사장으로 공식 임명되어 6월 21일 공사 출범과 동시에 대한무역진흥공사의 초대 사장으로 취임해서 코트라의 기틀을 세웠다. #
1964년 1월 후임 김동조에게 대한무역진흥공사 사장직을 이임하고, 1966년부터 1968년까지 제일화재 대표이사 사장을 지냈다. 1968년 신고려관광 사장, 1972년에는 조선맥주 회장으로 취임하여 # 1976년 한독맥주 인수 작업을 지휘하기도 했으며, # 1972년 6월부터 1975년 5월까지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으로 통화정책 결정에 기여하였다. #
1990년 7월 4일 상처하였으며, 2006년 9월 24일 향년 91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